영화 이야기

2016년 10월 28일 금요일

‘존스 부부 따라 가기’의 존 햄




“난 제임스 본드의 팬 그의 영화를 통해 세상 구경”


로맨스를 곁들인 스파이 액션 코미디‘존스 부부 따라 가기’(Keeping Up with the Joneses)에서 여행작가로 위장한 멋쟁이 스파이 팀 존스로 나오는 존 햄(41)과의 인터뷰가 지난 8일 샌타모니카의 페어몬트 미라마 호텔에서 있었다. 훤칠한 키에 건장한 체구 그리고 옛 할리웃 스타의 멋을 지닌 미남 햄은 늘 친절하고 상냥하고 겸손해 친근감이 가는 배우다. 전형적인 미국 신사 타입인데 인터뷰 내내 미소를 지으면서 자유롭고 편안하게 질문에 대답했다. 때로 장난기 짙은 아이처럼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상소리마저 섞어가면서 인터뷰를 즐기는 듯했다. 햄은 AMC-TV의 인기 드라마 시리즈‘매드 멘’(Mad Men)으로 스타가 된 사람으로 지금 작은 브라운관을 벗어나 빅 스크린에서도 성공하려고 노력 중인데 아직은 빅 히트작이 없다.  

-스파이 장르와 어떤 관계이며 제임스 본드의 팬인가.
“난 제임스 본드의 열렬한 팬인데 어릴 때 미주리의 작은 동네에 살면서 그의 영화를 통해 세상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의 영화를 통해 유럽과 세계를 여행한다는 것이야 말로 매력적이요 멋있는 경험이었다. 난 본드의 영화뿐 아니라 책도 도서관에서 빌려다 봤다. 사람들이 날 보고 다음 제임스 본드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영광이나 본드는 어디까지나 영국 사람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지 않은가.”

-이 영화에서 스파이 노릇 하기가 즐거웠는지.
“스파이 노릇 한다는 것은 진짜로 멋진 재미다. 나쁜 자들은 내 총을 맞고 쓰러지나 난 절대로 총을 안 맞는다. 담을 기어오르고 차를 거꾸로 고속으로 모는 일은 즐거운 일이었다.”     

-액션 연기하기가 힘들었는가.
“즐기며 했다. 영화에서 차를 고속으로 몬 사람은 진짜 나다. 일부는 특수효과이지만 난 차를 고속으로 몰고 또 회전하는 기술을 배워 신나게 사용했다. 그런 흥분되는 기회는 실제로는 좀처럼 많지 않은 것이다.”

-팀은 친구가 된 이웃에 사는 평범한 제프의 삶을 동경하는데.
“바로 그 점이 이 영화를 어리석은 장난과도 같은 영화의 범주를 벗어나게 한 것이다. 스파이 생활은 겉으로 보기엔 멋있는 것 같지만 그는 언제나 남을 속이고 또 위험 속에 살아야 한다. 그러니까 사람을 책을 표지만 보고 판단하듯이 판단하지 말라는 얘기다. 남이 보기엔 모든 것을 다 갖고 있는 것 같은 사람들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처럼 필요하고 원하고 욕망하는 것이 있다는 말이다.”  
부부 스파이 팀(아래)과 그의 아내 나탈리가 킬러들을 향해 사격하고 있다.

-어떻게 해서 이 영화에 나오기로 했는가. 
“난 이 영화의 감독 그렉 모톨라와 제프 역의 잭 갈리피아나키스와는 오래 전부터 잘 아는 사이다. 이렇게 친구처럼 잘 아는 사람들과 영화를 만든다는 일은 흔치 않다. 모르는 사람들과 일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게다가 나와 잭의 아내 역으로 갤 개도와 이슬라 피셔가 합류했으니 금상첨화라고 하겠다. 우리 넷은 함께 같은 장면에 많이 나오면서 즐겼다.”

-존 햄 하면 모두‘매드 멘’을 생각하게 되는데 그 이후로 역을 어떻게 선정하는가.
“난 그저 계속해 일하고 싶을 뿐이다. 한군데만 영원히 매달릴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린 다 늙고 또 모든 것은 변한다. 모든 것은 다 앞으로 나아가게 마련이다. ‘매드 멘’으로 보낸 나의 과거는 앞으로의 가능성과 기회를 찾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난 그저 내가 흥미롭게 여기는 일들을 계속해 하고 싶을 뿐이다.”  

-영화에서 뱀들이 나오는데 진짜 뱀인가.
“일부는 진짜다. 그런데 난 뱀에게 관심이 많다. 난 미주리에서 자라 뱀들을 많이 봤다. 어디를 가도 뱀들이 있었다. 그러나 영화의 뱀들은 위험한 것들이 아니다.”

-뱀 고기 먹어본 적 있는가.
“난 어렸을 때 달팽이를 비롯해 여러 가지를 먹었는데 지금도 무엇이든지 먹을 수는 있지만 아직 뱀 고기는 못 먹어 봤다.”

-당신은 여행작가로 나오는데 실제로 여행해 본 중에 가장 인상에 남는 곳은 어디인가.
“인도다. 아름답고 모든 것이 넘치는 나라다. 난 그 곳에 6개월간 머물렀었다. 그 나라의 문화는 백만가지가 넘을 정도로 다양한데 난 정말로 그곳에 더 오래 머물면서 그것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배우고 싶었다.”

-취미는 무엇인가. 
“내가 늘 좋아해온 것은 스포츠에 참가하는 일이다. 난 고등학생 때 운동선수였다. 그러나 본격적인 운동선수가 되는 일은 원치 않았다. 하루에 8시간씩 체육관에서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난 지금도 LA 야구팀 선수로 뛰고 또 테니스와 골프도 한다. 운동은 나를 바쁘게 할 뿐 아니라 젊게 만든다. 난 특히 야구를 좋아하는데 내 고향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의 야구팀은 그곳 사람들에겐 그들 삶의 일부나 마찬가지다. 난 인도에 머무를 때 크리켓을 시도해 봤으나 엉망이었다.”

-남에게 말하기가 쑥스러우나 재미있게 본 영화는.
“‘쇼걸스’다. 그 영화의 감독 폴 베어호벤은 천재이든지 아니면 미친 사람이든지 둘 중 하나다. 그의 다른 영화 ‘로보캅’도 마찬가지다. 난 이 두 영화에 완전히 반했다. 최근에 ‘쇼걸스’에 나온 지나 거숀을 만났는데 그 때 그 영화에 대해 말이 하고 싶어 목구멍이 근질거렸으나 꾹 참았다.”

-이 영화는 옛날 할리웃 풍인데.
“시간 보내기에 딱 맞는 즐거운 모험영화로 케리 그랜트와 오드리 헵번이 온갖 모험을 경험하던 영화와 비슷한 분위기다. 그렇다고 내가 케리 그랜트라는 말은 아니다. 옛날에는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이런 종류의 영화가 많았는데 요즘 영화들은 만화의 주인공들이나 수퍼히로들이 주인공들이다. 그들 나름대로 재미는 있지만 난 좀 다른 재미를 원한다.”

-여자의 어떤 점에서 매력을 느끼는가.
“난 늘 지적이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껴왔다.”

-현재의 자신에게 만족하는가.
“그렇다고 본다. 날 봐라. 꽤 괜찮지 않은가.”

-당신 아내 역의 갤 개도가 당신을 우습고 영리한 사람이라며 토크쇼 호스트를 해도 되겠다고 칭찬하던데 그럴 생각이라도 있는지.
“난 글을 안 쓴다. 난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이상하게 글 쓰는데 관심이 없다. 어렵고 별 재미를 못 느낀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 토크쇼 호스트를 하겠는가.”

-음악은 당신에게 영감이나 표현의 매체로서 얼마나 중요한 구실을 하는가.
“난 별로 음악적인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즐길 줄은 안다. 노래나 연주를 잘하는 사람들의 공연을 즐기기는 하지만 난 그런 재주가 없다. 난 초등학교 3학년 때 바이얼린을 배웠는데 신통치가 못했다. 난 고도의 재능을 지닌 가수나 연주자들의 연주를 들을 때마다 큰 의문에 젖곤 한다. 내게 있어 그들은 마법사나 마찬가지다. 난 밴조를 연주하고 싶다. 재미있는 악기라고 생각한다.”

-‘매드 멘’의 출연진들과 종종 만나는가.
“우린 그 후로 각기 제 갈 길들로 갔다. 우린 10년간 그 시리즈로 맺어졌지만 이제 서로 새로운 것을 모색하고 있다. 앞으로 나아가면서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배우가 된 이유다. 우린 모두 다음은 뭐지 라는 물음에 대한 다른 대답을 찾으려고 하고 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인퍼르노(Inferno)


로버트 랭던(가운데)과 시에나 브룩스(오른쪽)가 베니스에서‘인퍼로노’의 단서를 찾고 있다.

거대한 재앙을 막아낼 유일한 단서 찾아라


하버드대의 기호학자 로버트 랭던을 주인공으로 한 베스트셀러 미스터리 스릴러 ‘다빈치 코드’와 그 속편격인 ‘천사들과 악마들’을 쓴 댄 브라운의 소설이 원작. 이 두 소설의 영화판을 감독한 론 하워드와 역시 두 영화에서 랭던 역을 맡은 탐 행스가 나오는 시리즈의 세 번째 영화다.
영화가 재미가 없는 데다가 플롯이 터무니없이 복잡하고 과장돼 기호학자인 랭던도 어리둥절해 하니 보통 사람들은 도무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것이다. 솜씨가 좋은 하워드의 연출력도 나태하고 산만하기 짝이 없다. 지루하고 사람 피곤하게 만드는 영화로 이탈리아에서 찍어 경치 하나는 좋다.
랭던이 이탈리아의 플로렌스에서 머리에 심한 부상을 입은 채 병원에서 깨어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자기가 왜 플로렌스에 왔는지 모르는 기억 상실증자가 된 랭던은 지옥의 모습의 환상에 시달리는데 이런 랭던을 치료하는 의사가 영국인인 아름다운 시에나 브룩스(펠리시티 존스-‘모든 것의 이론’의 스티븐 호킹 박사의 아내 역).
이어 가죽옷을 입고 모터사이클을 모는 늘씬하고 냉기가 감도는 미녀 킬러가 병원에 와 랭던에게 총질을 하면서 랭던과 시에나는 숨이 턱에 차도록 영화 내내 도망간다. 이들 뒤를 여자 킬러와 기관총을 든 킬러들이 계속해 쫓고.
역시 첫 부분에서 누군가에게 쫓기는 과대망상증자인 억만장자 버트랜드 조브리스트(벤 포스터)가 높은 종탑 꼭대기로 도망가다가 갈 길이 막히자 투신자살한다. 조브리스트는 지구의 인구과잉 문제 해결책으로 세계 인구의 절반을 멸살시킬 바이러스 ‘인퍼르노’를 만든 장본인.
그런데 랭던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자기 수중에 들어온 작은 전등 모양의 환등기 장치를 통해 13세기 이탈리아 화가 보티첼리(‘비너스의 탄생’)가 단테의 글을 바탕으로 그린 ‘지옥의 지도’를 관찰하면서 이 그림 속에서 ‘인퍼르노’의 소재를 알 수 있는 단서를 찾아낸다.  
그리고 랭던은 재앙을 막기 위해 시에나와 함께 플로렌스에서 베니스로 이어 이스탄불로 킬러들을 피해 가면서 장소를 옮기는데 이렇게 경치 좋은 장소로 이동하는 까닭이 도무지 분명치가 않다. 그런데 과연 시에나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와 함께 랭던의 옛 연인 엘리자베스와 비밀단체의 정체가 불분명한 해리(인도 배우 이르판 칸)가 등장하면서 랭던은 누가 자기편 인지를 몰라 갈팡질팡 한다. 클라이맥스는 물위의 무대에서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하는 가운데 벌어지는데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고 맨 끝에 랭던이 하는 짓도 실소가 나올 정도로 유치하다. 행스의 연기야 늘 적당히 잘 하는 것인데 이 영화로 할리웃의 메이저 영화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연기파 영국 배우 펠리시티 존스가 아깝다. PG-13. Sony. 전지역.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탐포포(Tampopo)


고로(왼쪽)를 비롯한 손님들이 탐포포의 라멘국물을 사발째 들여마시고 있다.

도쿄에서 가장 맛 좋은 라멘집 만들기


섹스와 음식을 에로틱하면서도 코믹하게 요리한 먹는 영화로 특히 일본 라멘 먹는 영화다. 1987년에 미국에서 개봉된 일본의 풍자감독 주조 이타미의 ‘라멘 웨스턴’으로 새로 프린트해 재개봉한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있는 형태로 만들어졌는데 많은 사람들이 나와 소리를 내면서 열심히 라멘을 먹고 그 국물을 마시는 모습이 정겹고 우습고 따스하게 인간적이다. 
영화는 백색 신사복을 입은 갱스터가 요란한 화장을 한 애인과 함께 극장 맨 앞자리에 앉아 정식으로 음식을 시켜 먹으면서 영화를 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때 이들 뒤에서 한 남자가 소리를 내면서 포테이토칩을 먹자 갱스터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가 조용히 하라며 위협한다.
이어 카우보이 모자를 쓴 트럭운전사 고로(추토무 야마자키)가 자기 단짝 군(젊은 켄 와타나베)을 데리고 어린 아들을 키우는 예절 바르나 강인한 미망인 탐포포(노부코 미야모토)가 경영하는 작은 라멘집에 들른다. 탐포포는 정성껏 라멘을 만들어 고로에게 건넨 뒤 맛에 대한 의견을 묻는다. 대답은 정성은 들였으나 특징이 없다는 것. 
이에 탐포포는 고로에게 떠나지 말고 머물면서 자기에게 진미의 라멘 조리법을 가르쳐 달라고 사정하고 고로는 이를 수락한다. 탐포포의 꿈은 도쿄에서 가장 맛 좋은 라멘을 만드는 것. 그리고 둘 사이에 서서히 로맨스의 기운이 싹트고. 
이제부터 온갖 사람들이 나와 라멘을 요리하고 먹고 국물을 마시고 평가를 하고 또 라멘집끼리 경쟁을 하면서 ‘라멘 웨스턴’이 열기를 띠운다. 우선 고로는 탐포포에게 마치 올림픽 경기에 나가는 선수처럼 맹렬히 신체단련부터 시킨다. 그리고 다시 갱스터와 그의 애인이 나오면서 나체와 신선한 굴과 핏방울이 흐르는 기차게 섹시한 장면이 욕망을 자극한다. 
또 포장마차에서 신선과도 같은 나이 먹은 라멘 도사로부터 라멘 먹는 방법을 배우는 장면과 함께 탐포포를 사랑하는 동네 갱스터와 그의 졸개들 그리고 온갖 라멘 식충이들이 탐포포의 집을 찾아와 라멘을 먹는다. 
이렇게 에피소드 식으로 진행되던 이야기는 고로와 군 그리고 동네 갱스터와 그의 졸개들이 탐포포의 가게를 말끔히 새로 단장하고 간판도 새로 내건 뒤 탐포포가 그동안 공들여 연마한 일품 라멘 조리법을 사용해 맛 좋은 라멘을 제공, 모두가 포식하고 그릇 째 국물을 들여마시면서 대미를 장식한다. 군침이 돌고 입맛이 당겨지는 맛있는 영화로 연기들이 좋다. 많이들 가서 탐포포의 라멘을 즐기세요. 성인용. Janus. Nuart 극장(11272 샌타모니카). 3일까지.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블랙리스트




나는 박정희 정부시대 한국일보에 입사, 처음에 외신부에서 근무했다. 그때는 신문사에 중앙정보부원이 상주했고 야근에 쓴 기사가 밤새 검열에 걸려 아침신문에서 자취를 감추는 일이 종종 있었다. 
어느 해 온두라스에서 쿠데타가 났는데 당시 외신부장으로 후에 국회의원을 한 고 조순환씨가 내게 이에 대해 해설을 쓰라고 지시했다. 난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권을 빗대어 절대권력과 부패는 일란성 쌍둥이라고 해설의 끝을 맺었다. 
이튿날 조부장이 날 데리고 신문사 옆의 다방에 데리고 가 커피를 사주면서 심각한 표정으로 “박흥진씨 당신도 정보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를지 모른다”고 말했다. 내가 블랙리스트에 올랐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그때 신문기자들은 다 블랙리스트 감이었다고 해도 된다.
그런데 최근 박정희의 딸 박근혜씨가 대통령으로 있는 대한민국에 무려 9,473명의 문화예술계에 대한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문화예술계의 분노가 뜨겁게 끓고 있다고 한다. 나는 이 소식을 듣고 ‘아니 지금이 어느 때인데’라는 한탄과 함께 ‘역사는 반복한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블랙리스트는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들에게 공연장 대관이나 각종 지원을 배제하기 위한 것. 
정부의 문화예술계에 대한 통제는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부쩍 강화됐다는 것이다. 그해 부산영화제 측에서 영화제에 지원금을 대는 부산 시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참사를 다룬 기록영화 ‘다이빙벨’(사진)을 상영, 영화제가 전방위 감사를 받고 그 결과 이용관 집행위원장이 해촉되고 검찰의 수사를 받는 등 문화예술에 대한  검열이 노골화됐다고. 그래서 올 부산영화제는 반쪽짜리가 되다시피 했다.
그런데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문화예술위 회의록에 의하면 예술인 지원여부를 논하는 자리에서 한 심사위원이 “그 분도 청와대에서 배제한다는 얘기로 해서 심사에서 빠졌다”고 말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를 놓고 문화예술계는 블랙리스트 작성이 청와대의 뜻임에 분명하다고 비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라기보다 왕국이라 해야 할 만큼 모든 권력이 청와대에 집중돼 있다. 가장 자유로워야 할 문화예술계마저 이렇게 정부의 검열과 통제를 받아야 하니 다른 분야는 말할 필요도 없겠다.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을 출품하는 영화진흥위가 출품작을 선정하는 데도 늘 정치적 입김이 작용한다고 최근 LA를 방문한 한국의 한 영화인이 내게 말했다. 
블랙리스트는 박정권 시대 툭하면 긴급조치를 발동하면서 언론과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목 조르는 수단으로 사용됐다. 그 대표적 예가 대중가요에 대한 금지곡 판정. 통기타 가수 김민기의 ‘아침이슬’은 가사 중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의 붉은 태양이 공산주의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금지 당했는데 김민기 외에도 송창식의 ‘고래사냥’과 함께 여러 통기타 가수들의 노래가 반사회적이라는 이유로 금지됐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는 일본풍이라는 이유로 금지됐는데 박정희가 술 마시고 거나하게 취하면 일본 가요를 즐겨 불렀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야말로 이율배반적이다. 또 많은 외국 팝송들도 검열에 걸려 금지곡 딱지를 맞았는데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자니 캐시의 ‘링 오브 파이어’도 검열의 제물이 됐다. 당국의 검열지침은 엿장수 마음대로였다.
영화들도 혹독한 가위질을 당한 뒤 상영이 허락됐는데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은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비롯해 무기력한 청춘묘사라는 이유로 원본의 절반이 잘려나간 채 개봉됐다. 실제로도 파출소 순경이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대생들을 잡아다 자로 스커트 길이를 재고 장발족도 끌어다가 직접 가위로 공짜 이발을 해줬었다. 
블랙리스트는 미국에서도 있었다. 가장 악명 높은 것이 2차 대전 후 미국을 휩쓴 맥카시즘. 공산당 때려잡기로 미 하원의 비미국적 활동조사위의 집중공격을 받은 것이 진보파들의 아성인 할리웃이었다. 이 마녀사냥으로 좌파성향이 있는 감독, 각본가 및 배우들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할리웃에서 퇴출당했다. 조사위에 출두, 묵비권을 행사한 죄로 옥살이를 한 ‘할리웃 텐’이 그 대표적 경우다. 
부시 정권 때도 이라크전에 반대하는 가수와 배우들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설이 있었다. 블랙리스트는 이렇게 정적 분쇄용으로 쓰이면서 많은 창조적 사람들을 파괴해 오고 있다. 한국 문화예술계는 지금 정부의 통제와 검열로 인해 문화예술인들이 자기검열을 해 창작의 자유가 심하게 위축될 것을 염려하고 있다. 블랙리스트야 말로 시대착오적이요 퇴행적인 불상사다. 박근혜씨는 아버지로부터 배웠는가.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6년 10월 25일 화요일

실화 드라마‘부인’의 레이철 바이스




“영화와 현실이 충돌… 매우 특별한 경험했다”


실화 드라마‘부인’(Denial)에서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영국의 저술가 데이빗 어빙을 비판하는 책을 냈다가 어빙으로부터 고소를 당해 런던 법정에 섰던 미 대학교수 데보라 립스탯으로 나온 영국 배우 레이철 바이스(46)와의 인터뷰가 최근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씩씩한 모습의 바이스는 우아하면서도 시선이 따갑도록 강렬한 인상을 주었는데 약간 아이 같은 음성으로 위트와 유머를 섞어가며 질문에 지혜롭게 대답했다. 깔깔대고 웃으면서 액센트를 섞어 똑똑 부러지듯이 분명하고 총명하게 대답, 인터뷰가 재미있고 즐거웠다. 바이스는 현 제임스 본드 역의 대니얼 크레이그의 아내다. 한편 바이스와의 인터뷰 중간에 실제의 데보라 립스탯(맨 왼쪽)이 참석했다. *은 립스탯의 대답.         
-영화에서 립스탯은 아우슈비츠를 방문, 감정적으로 깊은 경험을 겪는데 역시 그런 느낌을 받았는가.
“이번에 처음으로 그 곳엘 갔다. 실화의 주인공으로 그 땅에 서 있자니 현실과 영화의 얘기가 충돌하면서 매우 특별한 경험을 했다. 아우슈비츠 밖에서 철조망을 통해 수용소 안을 향해 촬영이 허가되긴 이번이 처음이다.”

-역의 어떤 부분이 흥미 있었나.
“영국 사람인 내가 뉴욕 퀸즈에 사는 유대인으로 나와 런던에서 영국의 법제도에 대해 몰라 혼란을 겪는 노릇을 한 것이다.”

-영화 찍기 전에 립스탯을 만났는가.
“그렇다. 그를 안 만났더라면 이 역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우리 집을 찾아와 며칠을 함께 보내면서 자신의 얘기를 자세히 들려줬다. 립스탯은 뭐든지 자기가 하는 사람이다. 매우 독립적이요 생동적이며 다채로운 사람이다. 강렬하고 우습고 결단력이 있는 훌륭한 사람이다. 그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후에야 립스탯 노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립스탯처럼 불공정한 것에 대해 맞서는 사람인가.
“난 정의 수호를 위해 일어서는 사람을 존경한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인간성이다. 영화를 본 젊은 사람들이 불공정에 대해 맞서는 용기를 가져주길 바란다. 나 자신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데보라 립스탯이 런던 법정에 서 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사랑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난 내 고양이를 아주 사랑하는데 그것도 사랑이고 내 아들을 사랑하는 것도 사랑이다. 그 중에서도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 가장 강력하고 맹렬하다고 본다.”    

-누구와 친한가.
‘난 아직도 학교 때 사귄 친구들과 교제하고 있다. 자라면서 새로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좋지만 내게 중요한 사람들은 어렸을 때 안 사람들이다.“

-집과 식당 중 어느 곳에서 식사하기를 즐기는가.
“집이다. 난 훌륭한 부엌을 가지고 있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부인을 불법으로 취급하는 오스트리아와 독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난 홀로코스트 부인을 인정하지는 않으나 그것을 법으로 금지하는 것은 찬성하지 않는다. 언론의 자유를 보장해 틀린 말이라도 하게 하는 것이 낫다. 생각하는 것을 공개하지 않고 숨기면 오히려 썩게 마련이다.”

-당신의 아버지는 헝가리 유대인인데 그로부터 홀로코스트에 대해 얘기를 들었는가.
“아버지는 2차 대전 직전에 조국을 떠나 그것을 실제로 경험하진 않았으나 조국에 남은 가족은 잃었다. 늘 그의 가슴엔 그것이 남아 있는데 따라서 나도 홀로코스트를 생각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기고 있다. 나도 그것과 함께 자란 셈이다.    

-남편과 서로의 영화에 대해 얘기하는가.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서로의 각본도 읽지 않는다. 무슨 직업이든 간에 늘 그것에 대해 얘기한다는 것은 지루한 일이다. 그러나 난 남편의 영화에 매우 관심이 있고 그의 연기의 열렬한 팬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세계 정치 등 다른 할 말들이 많다.”

-다음 영화는 무엇인가.
“17세기 영국을 무대로 한 ‘페이보릿’이라는 작품이다. 앤 여왕과 그녀의 자문관인 레이디 소머셋의 얘기로 나는 소머셋 역을 맡는다. ‘권력의 균형’이라고도 부르는데 제목이 계속 바뀌고 있다.   

★이 때 립스탯이 인터뷰에 동참했다.            
-당신의 얘기가 영화로 만들어진 것에 대한 느낌은.
*“우선 레이철이 투사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그가 주연한 이 영화는 내 생애 있어 가장 좋은 일 중의 하나다. 영화에 대한 반응도 좋다. 레이철을 배우로서 뿐만이 아니라 개인으로서 알게 된 것이야말로 행운이다. 그는 내 얘기를 바로 표현하기를 원했다. 참으로 인간적인 사람이다.

-레이철이 당신 역을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에 대해 조사를 했는가.
*“레이철이 누구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몰랐기 때문에 철저히 연구를 한 결과 110% 찬성했다.”

-장애물이 앞에 있을 때 그것과 다투어 극복하는 편인가.
*“우리는 늘 그른 것과 싸울 수는 없으나 때론 싸워야 한다. 그러나 이 싸움은 내가 하고 싶어서라기보다 싸울 수밖에 없게 된 경우다. 그런데 승리란 기분이 좋은 것이다. 영화를 통해 젊은이들도 불의에 대항해 승리했을 때 그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가를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삶에 대한 청사진이라도 있는가.
“없다. 나아가면서 그때 그때 결정한다.”

-살다가 장애물을 만나면 어떻게 대처하는가.
“항복하지 않고 조용히 대응하는데 종종 실패한다.”

-당신의 책을 영화로 만든다고 들었을 때 우려한 점이라도 있는가.
*“처음부터 걱정한 것은 내 책은 진실에 관한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영화는 어느 정도 진실을 변경해야 한다는 것을 난 알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극영화 아닌 기록영화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얘기의 본질은 진실이어서 제작자들과 얘기할 때도 그 점을 강조했다. 그랬더니 그들은 진실에 충실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그 말을 믿고 영화화를 허락하면서도 망설였고 과연 내가 바른 일을 하고 있는가 하고 물어야 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서 그들이 내 믿음을 지켜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존스 부부 따라 가기(Keeping up with the Joneses)


스파이 팀(왼쪽부터)과 그의 이웃 잭과 잭의 아내 캐런과 팀의 아내 나탈리.


앞집으로 이사온 새 이웃 알고보니 스파이


할리웃의 스튜디오들이 국화빵처럼 찍어내는 전형적인 넌센스로 이름께나 있는 배우들이 아깝다. 액션과 코미디와 로맨스를 두루뭉술하니 짬뽕한 스파이영화로 브래드 핏과 앤젤리나 졸리가 나온 ‘미스터 앤 미시즈 스미스’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내용이 터무니없는 데다가 난장판 식의 액션에 억지웃음으로 뒤범벅을 해 보면서 잊어버릴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멋쟁이 존 햄은 AMC-TV의 인기 시리즈 ‘매드 멘’으로 스타가 된 배우로 TV의 작은 공간을 벗어나 빅 스크린에서도 성공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이런 영화에 나와 가지고는 그의 경력에 아무 도움도 못 될 것이다. 
애틀랜타의 중류층 동네 막다른 골목에 살면서 11년째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제프(잭 갈리피아나키스)와 캐런(이슬라 피셔)은 서로 사랑하고 있지만 옛날의 정열은 식어가는 상태. 제프는 인공위성과 레이다 및 미사일 기술 등을 제조하는 군수회사의 직원 상담원이고 캐런은 가구 디자이너. 
둘의 아이들이 여름방학을 맞아 서머캠프에 간 사이 둘은 정열의 불꽃을 되살리기 위해 온갖 섹시한 방안을 궁리 중인데 이런 시도가 둘의 앞집에 새로 이사 온 존스 부부로 인해 망가진다. 존스 부부의 남편 팀(존 햄)은 큰 키에 건장한 체격을 한 친절하고 상냥한 미남으로 여행작가이고 그의 팔등신 미녀 아내 나탈리(갤 개도-이스라엘 사람으로 텔아비브에 사는데 내년에 나올 ‘원더 우먼’의 주역이다)는 소셜미디어 전문가로 스리랑카의 고아들을 돕는 인류박애자.
캐런은 자기들에게 싹싹하게 구는 이들을 시기와 동경의 눈길로 바라보면서 저런 ‘고급 인간’들이 우리 동네에 살 이유가 없다며 둘의 동태를 감시한다. 그러나 낙천적인 잭은 아내와 달리 삶이 따분하던 차에 잘 됐다 하고 팀과 금방 친해지는데 이에 캐런도 서서히 나탈리와 가까워지긴 하나 의심은 못 버린다. 그리고 잭과 팀의 아이들 같은 심심풀이와 우정이 에피소드 식으로 묘사되고 이와 함께 존스 부부는 동네 사람들과도 친해진다.
그런데 존스 부부는 왜 이 동네로 이사를 왔을까요. 얼마 안 가 이들이 잭의 회사에서 기밀이 빠져나가는 것을 조사하기 위해 이 동네에 온 스파이들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이어 할리웃식의 황당무계한 총격과 자동차 추격과 도주가 있는 액션이 요란하게 일어난다. 팀이 아내와 잭 부부를 태우고 모터사이클을 타고 총을 쏘면서 쫓아오는 킬러들을 피해 초고속으로 벤츠를 역주행하는데 이 와중에 캐런은 죽는다고 비명을 지르면서 동시에 캠프에서 걸려온 자기 아이의 전화를 받는다. 
영화에서 잭 회사의 군사기밀을 사서 팔아먹는 나쁜 놈 스코르피온으로는 코미디언 패튼 오스왈트가 나온다. 뱀고기 요리도 나오는 어리석은 영화로 마치 속편이 있을 것처럼 끝난다. 킬링타임용. 그렉 모톨라 감독. PG-13. Fox.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문라이트(Moonlight)


완이 리틀에게 수영을 가르치고 있다.

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흑인 소년 성장기


마이애미에 사는 흑인 소년의 성장기이자 러브 스토리로 배우들과 감독이 모두 흑인들이다. 홀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소년이 틴에이저가 되고 이어 청년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한 점의 과장도 없이 차분하고 담담하고 자세하게 그렸는데 그런 고요 속에 강렬한 힘을 지닌 감동적인 작품이다.
세 차례의 성장과정을 세 배우가 묘사하는데 처음 보는 배우들의 연기가 마치 이웃사람의 모습을 보듯이 사실적이다. 거칠고 다소 어둡고 강인하며 또 날 것과도 같이 적나라하고 아프고 연민스러운데 연출이 매우 은밀하고 침착하며 민감하면서도 강한 흡인력을 지녀 영화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무엇보다 아름다운데 연기뿐 아니라 음악과 촬영도 훌륭하다.
소년 리틀(알렉스 R. 히버트)은 작고 약해 학교 왈패들에게 시달린다. 어느 날 다시 이들에게 당하던 리틀은 드럭 딜러들의 거래처인 폐건물로 달아났다가 여기서 만난 적에겐 위협적이나 순진한 사람들에겐 친절한 드럭 딜러 완(마헤르샬라 알리)의 보호를 받게 된다. 그러나 리틀의 어머니 폴라(네이오미 해리스-007의 상관 M의 비서 모니페니)는 완과 아들이 가까운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
리틀은 10대가 되어 본명 치론(애쉬턴 샌더스)으로 불린다. 키가 크고 비쩍 마른 치론은 역시 외톨이로 그의 유일한 친구는 다소 거치나 친절한 케빈(자렐 제롬). 둘은 밤의 해변에서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는데 두 사람 사이에 로맨틱하고 성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치론은 이제 신체 건장하고 터프한 청년이 돼 블랙(트레밴테 로즈)이라 불리며 애틀랜타에 산다. 그는 장식용 금이빨을 한 과묵하고 고독한 외톨이로 이제 비로소 과거 평탄치 못한 어머니와의 관계를 다소 회복한 상태.  
어느 날 느닷없이 마이애미에서 간이식당의 쿡으로 일하는 케빈(안드레 홀랜드)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이에 블랙은 케빈을 찾아가 둘이 식당에서 포도주를 마시며 장시간 대화를 나눈다. 이어 둘은 케빈의 아파트로 간다. 영화에서 가장 아름답고 조용하게 보는 사람의 감정을 울먹이게 만드는 장면이 마지막 장면. 블랙의 사랑의 고백이 있고 케빈은 이를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둘 사이의 분위기가 경이롭도록 은근하고 깊고 아름답다.
연기들이 다 뛰어난데 특히 로즈의 안으로 억누르는 듯한 섬세하면서도 긴장된 연기가 돋보인다. 블랙과 케빈의 대화장면과 배우들의 연기가 밤의 월광처럼 빛나는 보석과도 같은 영화로 상냥해 좋다. 배리 젠킨스 감독. 성인용. A24.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아가씨’




속임수가 판을 치면서 플롯이 반전을 거듭하는 세계적 오퇴르 박찬욱 감독의 레즈비언 에로틱 스릴러 ‘아가씨’(The Handmaiden-★★★★-5개 만점·사진)는 발가벗은 욕정과 선혈이 흥건한 범죄영화로 본질은 러브 스토리다. 원작은 웨일즈의 여류작가 새라 워터즈의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 레즈비언 로맨스 소설 ‘핑거스미스’(Fingersmith).
무대를 1930년대 일제치하 한국으로 옮긴 ‘아가씨’의 주요 인물은 4명. 친일파로 일본서 살다가 한국으로 온 음란서적 수집가인 변태적 인간 코주키(조진웅)와 자신의 후견인인 코주키의 엄격한 감시를 받으며 대저택(오사카서 촬영)에 갇혀 사는 히데코(김민희). 그리고 히데코의 막대한 유산을 노리고 그를 사랑으로 유혹하는 날사기꾼 백작(하정우)과 백작의 사주를 받고 히데코의 하녀로 들어간 소매치기 숙희(김태리).
누가 누구를 속이고 속는지 모를 만큼 얘기가 엎치락 뒤치락을 반복하는데 히데코와 숙희가 깊은 사랑에 빠지면서 흥미진진한 얘기가 점입가경에 이른다. 장르감독인 박찬욱의 뛰어난 솜씨가 뽐을 내는데 구도와 색깔과 촬영 및 프로덕션 디자인(올 칸영화제서 벌칸상 수상) 등 외형미가 완벽하고 연기도 훌륭하다. 특히 이 영화로 스크린에 데뷔한 김태리의 어리숙한 듯하면서도 당돌한 연기가 단연 돋보인다.
물론 박찬욱의 영화여서 피가 흐르는 잔인성을 목격하게 되는데 ‘친절한 금자씨’에서 처럼 손가락이 싹독 싹독 잘려나간다. 이와 함께 히데코와 숙희의 전라의 격렬한 성애장면이 장시간 계속되는데 이 장면은 프랑스 영화 ‘푸른색이 가장 따뜻한 색’의 레즈비언 섹스신 다음 갈만하게 극사실적이다. 그런데 음악이 BBC-TV의 드라마 ‘다운턴 애비’의 것을 똑 닮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내적 깊이나 투철한 예술혼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박감독의 재능에 감탄하면서도 왜 그가 장르감독의 틀을 벗어나 그 재주로 예술성이 강한 영화를 만들지 않는 것인가 하고 궁금히 여긴다. 그는 언젠가 내게 말했듯이 자기가 깊은 영향을 받은 장르감독 히치콕의 길을 고수하려는 것인가.
얼마 전 영화 홍보차 LA에 온 박감독과 김태리를 만났다. 그는 시대를 1930년대로 잡은 것에 대해 “귀족 아가씨와 하녀라는 신분제도와 정신병원이라는 근대기관이 공존하는 시기가 그 때였기 때문이다”면서 “이와 함께 한반도의 근대성과 친일파들의 내면도 탐구할 좋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김태리에 대해 “1,500명에 육박하는 배우들을 오디션 했으나 내가 생각하는 숙희를 찾지 못했다”면서 “거의 자포자기적 심정으로 마지막 한 명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김태리였다. 독립적이고 주체적이며 솔직한 여성의 모습을 그에게서 발견해 캐스팅했다”고 말했다.” 내가 김태리에게 “러브신 연기하기가 힘들었겠는데 참 용감한 연기”라고 말하자 태리는 “하기 힘들었어요”라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왜 한국어 제목은 ‘아가씨’인데 영어 제목은 하녀를 뜻하는 ‘핸드메이든’이냐고 물었다. 박 감독은 이에 대해 “두 여성 주인공이 균형을 이루기를 바랐다. 원제가 숙희를 가리키는 ‘핑거스미스’(소매치기)이니까 한국어 제목은 히데코가 주인공인 것처럼 ‘아가씨’ 그리고 영어 제목은 다시 ‘핸드메이든’으로 정했다”고 대답했다. 불어 제목은 ‘마드므와젤’이라고.
다소 길다고 느낀 동성애 장면에 대해서는 “애초에 우려했던 만큼 동성애 혐오자들이 준동하지는 않았다. 댓글을 악의적으로 달고 별점을 0으로 주어 깎아내리려는 시도는 많았지만 대세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면서 “젊은이들 특히 여성들 반응이 뜨거웠다. 무턱대고 혐오하던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자연스럽고 아름답더라’고 말할 때 정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영화는 한국에서 430만명이 관람하며 히트를 했다.
앞으로 구상 중인 영화에 대해서는 한국어, 영어 영화 여러 편이 기획 가동 중이나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는데 박 감독의 한 측근은 내게 네트플릭스 영화를 만들 가능성이 있다고 귀띔해 줬다.
박 감독은 지난 2013년 히치콕 스타일의 ‘스토커’(Stoker)로 할리웃에 데뷔했다. 박 감독은 이어 자신의 예술관과 영화관에 관해 “말로 설명할 만한 것은 없다”면서 “그때 그때 좋게 느껴지는 내용을 정확하게 표현하려고 애쓸 뿐”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어 “꼭 사람의 손가락을 잘라야 하느냐”고 물었다. 박 감독은 이에 “코주키에게 그의 장서와 서화 컬렉션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한다면 그것이 파괴되었을 때 그의 분노도 짐작이 갈 것이다. 손가락을 자르는 것은 최소한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세계적으로 칭찬을 받은 ‘아가씨’를 제치고 한국에서 김지운 감독의 ‘밀정’(The Age of Shadows-현재 CGV서 상영)을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후보작으로 올린 것에 대해 박 감독의 한 측근은 “그것은 늘 있는 한국의 정치적 성향 탓이라고 말했다. ‘아가씨’는 코리아타운 내 CGV, 아크라이트(바인과 선셋), 랜드마크(피코와 웨스트우드)에서 상영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6년 10월 17일 월요일

회계사(The Accountant)


회계사 크리스가 사격연습을 하고 있다.

수학천재 자폐증 회계사의 ‘킬러 본색’


메이저 스튜디오가 할리웃의 수퍼 스타를 써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는 전형적인 넌센스 액션 스릴러로 얘기가 도무지 씨가 안 먹혀 보고 있자니 지루해 몸살이 날 지경이다. 벤 애플렉이 어쩌자고 이런 영화에 나왔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나 그는 셈에 천재적 기억력을 지니고 사격과 무술에도 뛰어난 자폐증세의 공인회계사로 나와 회계도 하고 또 닥치는 대로 인명을 살상한다.
일종의 재정 액션스릴러요 가족 드라마이자 약간의 러브 스토리도 양념 식으로 섞어 넣었는데 내용이 터무니 없는데다가 애플렉의 로봇 같은 연기도 보기에 어색하기 짝이 없다.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는 영화여서 재미도 없고 또 관심도 없다.
일리노이주 교외의 작은 마을의 회계사 크리스천 울프는 자폐증자로 수학과 계산에 천재적 능력을 지녔다. 자폐증자여서 말이나 대인관계가 거의 없다. 영화는 크리스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는데 군인인 크리스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호신수단으로 격투술을 가르친다. 크리스에겐 정상적인 동생 브랙스턴(성인 역에 존 번달)이 있는데 이들의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인도네시아의 무술을 비롯해 온갖 무술을 가르친다.
크리스의 작은 회사는 자신의 숨은 활동을 위장한 간판용이고 실제로 그는 무기와 마약밀매상들의 회계사로 자기 차고에 있는 RV에 금괴와 거액의 현찰 그리고 잭슨 폴락의 그림까지 있다. 크리스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는 사람이 재무부 관리 레이먼드 킹(J.K. 시몬스).
그래서 크리스는 킹의 눈을 돌려놓기 위해 정상적인 업무로 실제 수족과 또 같은 기능을 하는  인공수족 등을 제조하는 대규모의 로보트공학회사의 회계장부를 돌보기로 한다. 회사의 회장은 라마 블랙(존 리트가우).
크리스가 회사의 회계장부에 이상이 있음을 발견하고 이를 회사의 여직원 데이나 커밍스(안나 켄드릭)를 비롯한 몇 명의 간부들에게 알려주면서 계속해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데이나와 크리스 간에 로맨스의 기운이 감돌다가 만다. 계속해 이 회사의 사람들이 살해되면서 크리스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이에 대전차용 자동기관총을 들고 반격에 나서면서 수십명이 황천으로 간다. 크리스를 쫓는 킬러들의 두목이 과연 누구일까요.
애플렉의 자폐증자 연기는 보는 사람에 따라 평가가 다를 수도 있겠으나 내가 보기엔 무기력한 연기다. 영화는 마치 속편을 예고하듯이 끝나는데 감독 개빈 오카너와의 인터뷰에서 그에 대해 물었더니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는 대답이었다. 안 그랬으면 좋겠는데. R. WB.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이노선츠(The Innocents)


기든스가 유령을 보고 공포에 질려 있다.

‘남매에게 붙은 악령의 정체는…’ 심리공포물의 명작


헨리 제임스의 중편소설 ‘나사의 회전’(The Turn of the Screw)을 원작으로 만든 전신에 오싹하는 냉기가 감돌게 만드는 1961년 작 영국산 흑백 심리공포영화다. 감독은 잭 클레이튼.
19세기 후반. 교외 대저택에서 사는 부유한 홀아비(마이클 레드그레이브)의 두 어린 조카들로 고아들인 플로라(파멜라 프랭클린)와 마일스(마틴 스티븐스)의 가정교사로 입주한 여자 기든스(데보라 카)가 집안에서 일어나는 괴현상의 원인을 캐내면서 경험하는 공포와 초현실적 현상을 다룬 영화다. 통속적인 충격적 장면으로 공포감을 조성하지 않고 조명과 음악 그리고 기민한 연출과 깊이 있는 음산한 촬영 등에 의해 보는 사람의 심리를 겁에 질리게 만든다. 분위기로 겁주는 영화다.
플로라와 마일스는 모두 순진무구한 아이들인데 마일스가 동료학생들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퇴학을 당한다. 그러나 기든스는 그 이유를 믿지 않는다. 그리고 기든스는 창문에 비치는 여인의 유령과 함께 추하게 이글어진 남자의 모습을 목격한다.
기든스가 이를 가정부 그로스(멕스 젠킨스)에게 말하자 그로스는 여자는 전 가정교사인 제슬(클라이티 제섭)이고 남자는 저택 집사인 피터 퀸트(피터 윈가드)로 둘은 연인이었으나 모두 사망했다고 알려준다. 그리고 두 사람은 생전 새도마조키스틱한 관계를 가졌으며 퀸트가 죽자 제슬은 집 부근 호수에 빠져 자살했다고 말한다. 이와 함께 이 두 사람의 죽음이 두 남매에게 괴이한 영향을 남겼다는 것도 알게 된다.
기든스는 남매가 죽은 연인들의 악령에 사로잡혔다고 확신하고 이 사실을 아이들에게 알려 아이들을 악령에서 해방시키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이에 플로라는 히스테리를 부리며 도주한다. 이를 지켜보는 것이 제슬의 유령. 기든스는 이번에는 마일스에게 같은 시도를 하는데 이 때 남자 귀신이 나타난다. 기븐스가 마일스에게 이 남자의 이름을 말하라고 다그치자 마일스는 “퀸트”라고 말하고 쓰러져 죽는다. 그리고 기븐스는 마일스의 입술에 키스를 하면서 그의 영혼을 위해 기도한다.
서서히 공포감을 몰아가다가 마지막에 심리를 극도로 불안하게 만들면서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으스스한 공포영화의 명작이다. 영화음악으로 전자음악의 사용을 개척한 작품이기도 하다. 18일 하오 1시 LA카운티뮤지엄 내 빙극장.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어퀘리어스(Aquarius)


클라라는 전 생애를 보낸 아파트를 자기 분신처럼 여긴다.

“내 생애가 담긴 아파트 재개발 절대 안돼”


브라질의 우아한 베테런 여배우 소니아 브라가(‘거미여인의 키스’)의 거의 허세에 가까운 위풍당당한 연기가 눈부신 진지하고 정열적인 인물에 관한 탐구다. 자신이 귀중하게 여기고 있는 것을 빼앗으려는 자들에 대한 여인의 끈질긴 저항과 자존을 지키려는 투쟁을 그린 브라질 영화로 훌륭하다.
제목은 브라질 동부의 해변도시 레시페에 있는 주인공 클라라(브라가)가 사는 2-3층 규모의 아파트 이름으로 이 아파트를 사서 고층 호화아파트를 지으려는 개발업자와 자신의 전 생애가 담긴 아파트를 고수하려는 클라라와의 치열한 신경전을 그렸다.
젊은 클라라의 이모의 70세 생일 파티로 시작되는데 이모가 아파트의 가구를 보면서 과거의 뜨거웠던 사랑의 행위를 회상하는 장면이 아름답고 자극적이다. 이어 장면은 현재의 같은 아파트에 사는 나이 먹은 클라라에게로 돌아온다. 은퇴한 음악평론가(옛 록과 클래식 음악이 많이 나오는데 방에 LP레코드가 즐비하다)인 클라라는 유방암 수술을 한 미망인으로 장성한 세 자녀가 있으나 혼자 친구 같은 가정부와 살면서 독립을 즐긴다. 
클라라는 매우 독립적인 여자로 거의 천상천하 유아독존 식인데 고독에 시달리기는 하나 이 역시 의젓하게 견디어낸다. 영화에 나이 먹은 사람의 고독의 기운이 가득한데 클라라가 육체적 욕망을 견디다 못해 남창을 불러 해소시키는 장면이 화끈하다. 
클라라의 투쟁은 개발업자가 클라라의 아파트를 사겠다고 시가보다 훨씬 웃도는 금액을 제시하고 끈질기게 매입을 시도하면서 시작된다. 여기에 이혼한 딸까지 아파트를 팔라고 재촉한다. 아파트의 다른 주민들은 다 이사 가고 클라라 혼자 살고 있다. 그러나 클라라는 이를 단호히 거절하는데 이에 개발업자가 은근히 여러 가지 방법으로 클라라에게 압력을 가하면서 영화가 스릴러 분위기마저 갖춘다.        
밀려드는 변화 속에 지나간 시간에 매어 달리는 여인의 서서히 진행되는 향수 짙은 드라마로 브라가가 혼자 영화를 짊어지다시피 하고 있는데 브라가의 연기야 말로 경건하고 강인하며 또 뜨겁고 품위 있으며 그리고 우수가 가슴을 파고드는 위대한 것이다. 촬영도 아름답다. 클레버 멘도카 필호 감독. 성인용. 142분.★★★1/2(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사막(Desierto)


모이세스(왼쪽)와 아델라가 살인자를 피해 숨고 있다.

밀입국자와 인간 사냥꾼의 사막 추격전


사막에서 벌어지는 생사를 다투는 추격과 도주의 스릴러. 긴장감과 스릴을 갖춘 흥미 있는 얘기로 캘리포니아에 사는 사람들은 잘 아는 얘기여서 사실감이 있으나(그러나 매우 비현실적이다) 지나치게 잔인하고 끔찍하며 유혈이 낭자해 이맛살이 찌푸려진다.
코넬 와일드가 나온 ‘벌거벗은 미끼’를 연상케 만드는 액션 스릴러이자 사회비판을 겸한 멜로드라마인데 깊이나 내적 성찰은 부족하다. 순전히 물리적 재미만을 추구한 영화로 ‘그래비티’의 감독 알폰소 쿠아론의 아들 조나스 쿠아론이 각본을 쓰고 감독했다.
멕시코에서 14명의 미국에로의 불법이민을 시도하는 사람들을 싣고 사막을 달리던 트럭이 고장이 나자 이들과 2명의 안내자가 걸어서 미국으로 건너온다.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자가 트럭에 남부군기를 달고 위스키를 병나발 부는 사이코 카우보이 샘(제프리 딘 모간). 샘은 강력한 라이플과 맹견 트랙커를 데리고 다니면서 ‘내 나라’로 불법 침입하는 멕시칸들을 사살하는 것이 취미다. 그리고 그는 높은 바위 위에서 사막을 걷는 멕시칸들을 마치 오리사냥하듯이 하나씩 저격 살해한다.
여기서 살아 남은 사람이 5명이지만 그 중 하나는 트랙커에 목이 찢겨 죽고 끝까지 살아 남은 것이 오클랜드에 가족이 있는 미캐닉 모이세스(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와 젊은 여자 아델라(알론드라 히달고). 둘은 자기들을 끈질기게 추격하는 샘을 피해 바위와 모래의 열사의 사막을 가로질러 도주한다.
클라이맥스에 샘과 모이세스가 모래바위산을 맴돌면서 서로 쫓고 쫓기는 액션이 긴장감 있는데 궁금한 것은 도대체 왜 샘이 사람을 파리 잡듯 하는 킬러가 돼야 했는가 하는 점이다. 아무 설명이 없다. 그런데 샘은 동물의 죽음을 사람의 죽음보다 더 슬퍼하는 무자비한 킬러다.
두 배우의 연기는 액션영화치곤 무난한 편이고 바하 캘리포니아에서 찍은 촬영이 좋다. 액션팬들이 좋아할 영화로 북소리가 주로 쓰인 음악이 좀 과장됐다. 성인용.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중국인들이 온다, 중국인들이 온다’

미^소간 냉전 중이던 지난 1966년 노만 주이슨이 감독하고 칼 라이너와 앨란 아킨 및 에바 마리 세인트가 나온 ‘러시아인들이 온다, 러시아인들이 온다’라는 영화가 있었다. 여름철 미 북동부 휴양도시 인근 해안에 좌초한 러시아 잠수함의 선원들이 발동기를 구하러 뭍에 오르면서 일어나는 혼란과 해프닝을 그린 코미디다.
그런데 지금 할리웃에는 중국인들이 몰려오고 있다. 붉은 오성기를 흔들며 할리웃 진출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 중국 최고의 갑부 왕지안린(사진)의 미디어^부동산회사 달리안 완다그룹. 완다는 먼저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극장체인 AMC를 산데 이어 또 다른 체인인 카마이클의 매입을 시도하고 있다. 두 체인을 합하면 완다는 미국 내 최대 극장체인의 주인이 된다.
완다는 얼마 전에는 ‘다크 나잇’과 ‘주라기 세계’를 만든 레전더리 엔터테인먼트를 35억달러에 샀고 최근에는 소니와 파트너십을 맺고 자사가 투자한 영화의 내용에 대한 권한을 소유하게 됐다. 완다는 또 할리웃의 6개 메이저 중 하나를 매입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다.
한편 완다는 현재 내가 속한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가 주관하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을 제작하는(NBC-TV 방영) 딕 클락 제작사(DCP)의 매입 절차에 들어갔다. 구입가는 무려 10억달러.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HFPA는 지난 11일 완다그룹의 고급 간부 우씨와 양측 변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모였다.
이 자리에서 우씨는 “DCP는 주인만 바뀔 뿐이지 골든 글로브의 주체나 그 행사에는 아무 변화도 없다”면서 “완다그룹이 DCP를 매입하는 이유는 골든 글로브가 매력 있고 또 좋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우리는 16일에 왕 회장을 만날 예정이다.
그러나 완다의 할리웃 진출은 이 동네가 매력 있고 좋기 때문만은 아니다. 전 세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할리웃 산업을 어느 정도 장악하려는 파워플레이의 일환이다. 이런 의도는 왕 회장이 중국의 한 TV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외국인들에 의해 정해진 규칙을 바꾸려고 한다”라는 말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이런 의도를 지닌 완다가 할리웃을 금권으로 잠식하면서 급기야 최근에는 16명의 연방의회 의원들이 완다의 할리웃 투자에 대한 조사를 촉구하는 서신을 법무부에 보냈다. 중국은 연예산업의 제1 목표를 ‘사회주의에 대한 봉사’로 여기는 공산주의 국가로 모든 연예물은 당국의 검열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중국 돈이 들어간 할리웃 영화들은 이 검열을 비켜가기 위해 자연히 당국의 비위에 맞는 영화를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중국 돈이 투자와 배급을 주도하면 궁극적으로 제작도 좌지우지하게 되게 마련이라는 것. 게다가 왕 회장이 현 중국 정권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도 의원들은 별로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 할리웃이 매카시즘 때 이어 또 다른 ‘적색홍열’을 앓을 우려마저 있다고 성급히 예측하는 사람들도 있다.
왕 회장에 질세라 최근 중국의 제2의 갑부인 잭마 회장의 알리바바그룹은 스필버그의 앰블린 픽처스와 공동제작 및 투자협정을 맺었다. 이로써 마 회장은 앰블린의 주주가 됐다. 또 버뱅크에 본부를 둔 STX 엔터테인먼트도 각기 중국과 홍콩에 본부를 둔 거대 자본을 지닌 회사들과 투자협정을 맺었으며 라이언스게이트사도 얼마 전 후난 TV와 투자계약을 맺었다. 위안화의 위력이 대단하다.
중국은 북미시장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세계시장이고 수년 내로 최대의 시장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연간 국내 상영 외화 편수를 34편으로 제한하고 있는데도 할리웃의 대목시장인만큼 지금 할리웃의 대·소규모의 영화와 TV 작품 제작사들은 너도 나도 중국시장을 노리고 동방 진출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할리웃의 영화와 TV 작품 제작사들이 서로 앞 다투어 중국회사들과 투자계약을 맺는 것도 이런 시장 진출의 일환이라고 하겠다.
할리웃이 중국시장 진출을 노리고 동원하고 있는 수단 중 하나가 영화에 중국배우를 쓰는 것. 그 좋은 일례가 맷 데이먼이 나온 ‘마션’에서 화성에 달랑 혼자 남은 데이먼을 구출하는 데 큰 공헌을 하는 것이 중국이었다. 또 올해 나온 히트작 ‘나우 유 시 미 2’에는 중국의 인기가수 제이 추가 나왔고 역시 올해 나온 ‘인디펜던스 데이: 리서전스’에는 배우 겸 가수인 앤젤라베이비가 전투기 조종사로 나와 외계인들을 무찔렀다. 그리고 판빙빙은 ‘X-멘: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와 ‘아이언 맨 3’에 리빙빙은 ‘트랜스포머즈: 에이지 오브 익스팅션’에 각기 나왔다.
그리고 내년에 나올 ‘스타 워즈: 로그 원’에는 무술배우 다니 옌과 지안 웽이 출연하고 ‘콩: 스컬 아일랜드’에는 징티안이 나온다. 현재 제작준비에 들어간 ‘주만지’ 신판에도 내용과 상관 없이 남녀를 불문하고 중국배우를 쓸 예정이라고 연예 전문지들이 보도했다. 이러니 ‘중국인들이 온다, 중국인들이 온다’라는 제목의 영화가 나옴직도 하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6년 10월 12일 수요일

국가의 탄생(Birth of a Nation)


냇 터너(가운데)가 노예들과 함께 백인들을 공격하고 있다.

1831년 버지니아주 흑인폭동 일으킨 냇 터너의 삶


1831년 버지니아주에서 발생한 흑인 노예들의 폭동과 이 폭동을 주도한 냇 터너의 삶을 그린 감정적으로 격하고 분노와 역사적 의식에 가득 찬 건강한 드라마로 흑인인 네이트 파커가 감독하고 각본을 쓰고 또 주연도 했다. 흑백 갈등이 심한 요즘 시의에도 잘 맞는 소명의식을 지닌 작품인데 좋은 드라마이긴 하나 특별히 잘 만들었거나 예술적으로 창의적이진 못하다. 
지나치게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의식에 집념, 보는 사람을 심리적으로 강압하고 있다. 역사적 사실을 상세하고 성실하게 보여주기는 하나 사건이 갖고 있는 역사적 정치적 및 도덕적 의미를 깊이 있게 다루진 못 했다. 
또 후반에 가서 파커는 과도하게 터너라는 개인 한 사람에 조명을 집중해 주변 인물이나 상황이 제대로 극적으로 처리되지 않아 허전한 감이 있다. 망치로 두드려 맞는 강한 충격을 받으면서도 극적 흥분감이나 흥미를 춘분히 경험할 수는 없다. 
이 영화는 파커의 과거 개인적 문제 때문에 큰 화제가 됐다. 파커는 지난 1991년 펜 스테이트대에 다닐 때 룸메이트이자 레슬링팀 동료로 흑인인 진 셀레스틴(이 영화의 공동 각본가)과 함께 여학생을 강간한 혐의로 기소됐으나 무혐의로 풀려났고 셀레스틴은 유죄판결을 받은 뒤 재심에서 이 판결이 뒤집어졌다. 그런데 둘을 고발한 여자는 지난 2012년 자살했다. 
제목은 미 영화사의 초기 거목인 D.W. 그리피스가 감독한 남북전쟁과 그 후의 얘기를 그린  대작 동명영화에서 따 왔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보고 “천둥으로 쓴 역사”라고 찬양한 이 영화는 흑인들을 강간과 약탈을 자행하는 원숭이들 같이 묘사하고 이들을 처벌하는 KKK를 영웅적 단체로 그려 인종차별영화의 표본으로 꼽히고 있다. 
냇 터너(파커)는 목화농장주 새뮤얼(아미 해머)과 엘리자베스(페넬로피 앤 밀러) 부부의 소유. 가운이 기울고 경제적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새뮤얼부부는 다른 농장주들보다 훨씬 관대해 엘리자베스는 남달리 총명한 어린 터너에게 성경을 가르친다. 그래서 그는 커서 목사가 되는데 돈에 쪼들리는 새뮤얼은 터너를 데리고 이웃 농장을 돌면서 노예들에게 설교를 시킨 뒤 주인들로부터 사례비를 받는다.
이와 함께 노예들의 비참한 삶이 묘사되고 백인들의 노예들에 대한 가혹행위가 묘사 된다. 그리고 터너는 아름다운 노예 체리(에이자 네이오미 킹)과 결혼해 현실에 적응하면서 산다. 그러나 터너가 백인에게 세례를 주면서 그는 가혹한 채찍질을 당한다. 
이와 함께 노예들의 참혹한 삶에 서서히 터너의 눈이 떠지면서 그는 ‘압제자를 타도하라’는 성경의 말대로 동료 노예들을 규합, 폭동을 일으킨다. 도끼와 칼로 무장한 이들이 죽인 백인들은 55-65명 정도. 그러나 폭동은 이틀 만에 진압되고 터너는 교수형에 처해진다.
파커는 연출보다 연기력이 나은데 영화의 진행속도가 느려 단조롭기까지 하다. 또 파커의 변신과정에도 극적 신빙성이 결여됐다. 촬영은 좋다.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봐야할 영화다. R. Fox Searchlight.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기차를 탄 여자(The Girl on the Train)


레이철이 기차 창 밖으로 이웃을 엿보고 있다.

알콜중독 이혼녀 기억상실로 범죄에 휘말려


싸구려 냄새가 나는 모조품 같은 치정살인 스릴러로 모양새는 그럴듯하지만 내용이나 인물이 깊이나 폭이 없이 평면적이고 일차원적이다. 폴라 호킨스의 베스트셀러가 원작으로 기억 상실증에 시달리는 이혼녀인 알콜중독자가 타인의 삶을 엿보면서 살인사건에 휘말려드는 내용이 흥미진진한 영화의 소재가 될 수 있었는데 테이트 테일러 감독의 연출력이 무기력하다.
영화는 뉴욕 교외에 사는 이혼녀 레이철 왓슨(에밀리 블런트)이 하루에 두 차례 기차를 타고 집에서 직장이 있는 뉴욕을 왕복하면서 창밖을 통해 지나가는 집의 사람들을 정탐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얘기는 현재와 과거를 왕래하면서 내레이션 식으로 이어진다.
슬픔을 술로 달래는 레이철은 전 남편 탐(저스틴 테루)과 그의 새 아내 안나(레베카 퍼거슨)와 둘의 갓난 아기가 사는 집 근처에 산다. 그리고 술에 취해 이 집에 전화를 걸고 무단침입까지 한다. 레이철이 또 관심 깊게 엿보는 집이 섹시하고 아름다운 메이간(헤일리 베넷)과 그녀의 마초맨 남편 스캇 힙웰(루크 에반스). 그런데 메이간은 안나의 아기의 보모였다.
어느 날 레이철은 출근(그러나 그녀는 술 때문에 직장에서 해고당했다) 길에 메이간이 집의 발코니에서 다른 남자와 키스를 하는 것을 목격한다. 이 남자는 동네의 정신과의사 카말 압딕(에드가 라미레스가 소리소문도 없이 영화에서 사라진다). 세 남자와 세 여자가 얘기를 엮어 가는데 중심 플롯은 레이철이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에 취한 날 일어난 살인사건.
영화의 문제는 누가 살인범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가 있어 긴장감을 즐길 수가 없다는 것. 여섯 명의 인물들이 하나 같이 목석같은데 그마나 가장 나은 사람은 블런트. 매우 심각하게 연기하나 자연스럽지가 못하다. 내용과 연기와 인물 개발 등이 다 부진한 영화이나 한 번 보고 버릴 공항 매점서 파는 소설의 천박한 재미 정도는 있다. PG-13. Universal.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알제리의 전투‘(The Battle of Algiers·1966)


알제시민들이 유럽인 지역으로 내려와 대규모 반 프랑스 시위를 벌이고 있다.

프랑스에 맞서 싸운 알제리 저항단체의 독립전쟁


알제리의 프랑스로 부터의 독립전쟁 중 알제리의 수도 알제에서 벌어진 저항단체 FNL(민족해방전선)의 치열한 도시게릴라전쟁을 1954-1957년 까지 3년간 집중적으로 다룬 강렬하고 사실적이며 긴장감 가득한 불후의 걸작이다. FLN의 점령자 프랑스에 대한 무차별 테러와 이에 대한 프랑스군의 가혹한 진압이 자아내는 폭력과 유혈의 악순환을 마치 기록영화와 뉴스필름 찍듯이 생생하게 사실적으로 찍은 중요한 정치영화이자 전쟁영화로 이탈리아의 질로 폰테코르보가 감독한 흑백영화다.
급박감과 폭발성 그리고 스릴과 서스펜스와 근접감이 충격적인 뛰어난 레지스탕스영화로 FNL의 결성과 테러행위 및 프랑스군에 의한 괴멸의 과정을 다루고 있는데 감독은 반드시 아랍인들을 영웅적으로 또 프랑스인들을 괴물로 묘사하지 않고 양측의 테러와 이에 대한 응징을 공평히 묘사하고 있다.
1966년 베니스영화제 대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았는데 내용이 인화성이 강하고 사회 정치적으로 뜨거운 논란거리가 될 우려가 있어 프랑스에서는 5년간 상영금지 조치를 받았다. 이 영화는 게릴라전의 교본과도 영화로서 미국의 블랙 팬서당과 북아일랜드의 에레공화군의 교본처럼 쓰여졌고 지난 2003년 미국이 이락을 침공한 뒤에도 펜타곤에 의해 군당국자들에게 ‘테러를 이기는 방법’의 참고서로 상영됐었다. 전 세계서 테러가 횡행하고 흑백대결이 악화하고 있는  미국 내 현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시의에도 적절한 영화다.
영화는 FNL의 고급간부로 체포돼 투옥된 사디 야세프가 옥중에서 쓴 책을 바탕으로 만들었는데 야세프는 영화에서 FNL의 전략가 엘-하디 자파르로도 나온다. 야세프와 함께 FNL의 리더 중 한 명인 알리 역의 브라힘 하지악 등 대부분의 극중 인물을 비배우들이 맡아 사실감을 극도로 살렸는데 유일한 배우는 FNL을 타도하기 위해 알제에 투입된 프랑스 공수부대장 중령 역의 장 마르탕. 
알제 현지에서 찍었는데 특히 항구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의 미로 같은 구 도시(카스바-이 곳은 장 가방이 나온 운명적이요 로맨틱한 ‘페페 르 모코’의 무대이기도하다)에서 손으로 들고 찍은 도주와 추격과 총격전이 긴박감 있다. 줌 과 롱샷 그리고 큰 화폭에 일필휘지로 붓질을 하듯 대담하게 담은 대중의 시위장면 등 촬영(마르첼로 가티)이 빼어나다. 
그리고 테러직전의 드럼을 위주로 한 서스펜스 가득하고 몰아대는 듯한 리듬과 테러 직후의 처참함을 진혼곡식으로 표현한 엔니오 모리코네(‘황야의 무법자’ 음악)의 음악도 훌륭하다.  음악에는 모리코네의 친구이기도 한 폰테코르보가 동참했다. 이와 함께 폭발음과 총격소리 그리고 헬기소리와 추격하는 군화소리 등 음향효과도 직감적이다.
영화는 1957년 10월 7일(화면에 연도와 날짜가 명기되는데 이는 실제 사건이 있었던 때를 말한다)부터 시작된다. FNL의 리더중 하나인 젊은 알리와 남자 동료와 소년과 여자 동료가 카스바의 집 벽 속에 숨어 있는데 여기에 폭탄을 설치한 프랑스 공수부대장 마티외중령이 이들에게 항복을 권유하면서 알리의 회상이 시작된다. 알리의 잠복처는 프랑스군의 고문에 못견딘 나이 먹은 알제의 시민에 의해 드러났다.   
1954년. 잡범인 알리는 교도소에서 프랑스의 점령에 저항하던 시민이 단두대에서 처형되는 것을 보고 레지스탕스에 가입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첫 임무로 자파르가 지시한대로 프랑스경찰을 저격한다. 그러나 권총에 실탄이 없자 알리는 경찰을 때려눕히고 도주한다. 이는 자파르가 신참인 알리의 충성을 시험한 것이다. 
FNL은 유럽인 지역에서 경찰들을 무차별 살해한다. FNL은 프랑스에 동조하는 알제시민들도 처형한다. 이어 카스바로 가는 모든 길목이 차단되고 이를 지나가야하는 알제시민들은 검문검색을 받는다. FNL에의 테러에 분개한 프랑스인들이 카스바에 폭탄을 설치, 큰 인명피해가 난다. 이에 대한 응징으로 FNL은 유럽스타일로 꾸민 세 명의 여인의 핸드백에 폭탄을 숨겨 유럽인지역의 에어프랑스 사무실과 번잡한 카페 등 세 곳을 폭파하면서 대규모의 인명피해가 난다. 유혈폭력의 악순환이다.
이에 마티외 중령이 이끄는 프랑스공수특전단이 진압군으로 도착한다. 마티외는 부하장교들에게 FNL의 세포를 고립시켜 파괴하라고 지시한다. 한편 UN에서 알제리문제가 토의되는 것을 계기로 FNL은 8일간의 총파업을 지시하고 프랑스군은 파업에 들어간 시민들을 강제로 집에서 끌어내 닫은 상점의 문을 열게 한다. 그리고 FNL과 연관이 있다고 의심되는 시민들을 잡아다 전기충격을 주고 주리를 트는 가혹한 고문을 한다. 
잠복처가 탄로난 자파르는 투항하고 FNL에서 유일하게 체포되지 않은 사람은 알리. 여기서 장면은 처음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마티외는 알리에게 투항을 재차 종용한다. 골목과 지붕 위의 알제시민들이 알리가 숨어있는 곳을 향해 두 손을 들고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를 한다.
이로부터 2년 후인 1960년 12월. 2년간 잠잠하던 대규모의 알제시민들이 천으로 급조한 알제리국기를 흔들며 유럽인 지역으로 내려와 “알제리”를 외치면서 시위를 벌인다. 밤이 되면서 알제의 하늘을 아랍인 특유의 리드미컬한 외침이 가득히 채운다. 알제리는 1962년 7월 5일 독립했다. 개봉 50주년을 맞아 새로 복원된 ‘알제리의 전투’가 7일부터 1주일간 뉴아트극장(11272 산타모니카)에서 상영된다. (310)473-8530. 사디 야세프가 9일  오후 4시 극장에서 관객과 대담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앤젤리나 졸리>브래드 핏




할리웃의 황금커플로 ‘브랜젤리나’(사진)로 불리던 브래드 핏(52)과 앤젤리나 졸리(41)가 헤어졌다. 할리웃에서 부부와 애인이 헤어지는 것은 우리가 하루에 밥 세끼 먹듯이 일상적인 일이다. 그러나 핏과 졸리는 자신들이 만들어낸 영원불멸의 사랑과 인도적 소명감에 가득 찬 부부라는 이미지로 인해 둘의 일거수 일투족이 세계적 뉴스가 되곤 해 이번 헤어짐 또한 뜨거운 화제가 되고 있다.
둘의 분리를 보고 내가 느낀 바는 할리웃 커플들이 레드카펫을 비롯해 외부에 노출시키는 그들의 광채 나는 이미지가 가짜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할리웃이라는 동네가 허영과 환상, 미혹과 허위의 보금자리로 미소와 화려한 언사가 스타들의 직업조건이니 만큼 그동안 많은 스타들을 만나고 또 인터뷰를 해온 나는 어느덧 그들의 웃음과 말을 선뜻 믿으려하지 않는 회의론자가 되고 말았다.        
남이 안 되는 것을 보고 고소하다고 느끼는 것을 ‘샤덴프로이데’라고 하는데 핏과 졸리의 결별을 보고 제일 먼저 그 것을 느낀 사람은 아마도 핏의 전처 제니퍼 애니스턴일 것이다. 애니스턴은 지난 2004년 핏이 ‘미스터 앤 미시즈 스미스’를 찍을 때 공연하던 졸리와 사랑에 빠져(물론 둘은 이를 부인했었다) 핏으로 부터 버림을 받았다. 애니스턴은 그 후에도 핏을 못 잊어 “브래드가 저렇게 수척한 것은 졸리가 제대로 못해 먹인 탓”이라고 투덜댔었다.
그런데 핏과 졸리의 만남과 결별은 다 둘이 공연한 영화 내용과 연관이 있다. 만남은 둘이 섹시한 킬러로 나온 ‘미스터 앤 미시즈 스미스’에 의해 이뤄졌는데 묘하게도 작년에 나온 졸리가 감독하고 핏과 공연한 ‘바닷가에서’는 핏과 졸리가 결혼생활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부부로 나왔다.
난 그 동안 몇 차례 핏과 졸리를 인터뷰 했는데 둘을 보면서 느낀 점은 여러 모로 졸리가 핏보다 낫다는 것이다. 졸리는 카리스마와 우아미를 겸비한 반면 핏은 뻣뻣하고 촌티가 난다. 질문에 대답하는 내용도 졸리가 핏보다 더 깊이가 있고 지적이다. 핏이 어떻게 수퍼스타가 됐는지 이해난감이다.
졸리는 윤곽이 뚜렷한 얼굴에 큰 눈과 두툼한 입술을 지녀 육감적인 흡인력을 발산한다. 여왕적인 당당함을 지녀 거리감마저 느끼게 되는데 진지하고 자신만만하나 오만하지 않다. 깡마른 것이 흠이긴 하지만. 그런데 졸리는 자신의 마른 것에 대해 “여자들은 말랐다고 하면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그 것은 칭찬이 아니라 비판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한바 있다.
졸리는 핏과의 사랑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 있어 사랑이란 둘이 함께 도덕적 가치와 미래에 대한 꿈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둘이 같이 웃음을 웃는 것이다. 브래드와 나는 가족의 중요성과 아이들의 양육법 그리고 세계관이 모두 같다.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떻게 헤쳐 나아갈 것이며 또 무엇이 옳은 일인가에 대해서도 생각이 비슷하다”면서 “핏은 나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친구요 내 남자이며 또 훌륭한 아버지”라고 극구 칭찬했다.
졸리는 유엔특별대사로 세계의 분쟁지역을 돌며 난민들을 돕고 있는 인도주의자다. 그녀는 배우와 감독과 인본주의자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서슴없이 인본주의자를 선택하겠다고 한다. 따라서 졸리는 북한의 핵무장에 대해서도 관심이 크다. 졸리는 이에 대해 “북한의 핵무장을 내 유엔활동의 일환으로 삼아 최선의 해결책을 강구하고자 한다. 난 한국에 갔을 때 그 것에 대해 사람들과 얘기를 나눴고 또 북한문제에 관해 일하는 유엔관리들과도 얘기를 나눈다”고 말했다.
자신을 배우로서보다 세계시민으로 여기는 졸리이니 만큼 그녀의 할리웃에 대한 견해는 색 다르다. 졸리는 할리웃은 자신의 총체가 아닌 한 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배우라는 직업에 감사하고 또 그 일을 즐기기는 하나 그 것은 세상사에 비해 매우 작은 것이며 할리웃 사람들은 그들의 마음을 중요한 것으로 채우지 않고 있다고 반 할리웃적 발언을 한바 있다.
여섯 아이의 어머니인 졸리의 강한 인도주의 정신은 자선가였던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다고 한다. 인도주의적 활동을 통해 약자의 슬픔과 고통을 깨달은 뒤부터 이기적이기를 거부하고 매사에 감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사적인 일이라고 하지만 졸리는 핏과의 결혼설에 대해 결혼 불과 두 달 전에도 오리발을 내민바 있다. 지난 2014년 6월의 인터뷰에서 이 문제에 대해 “결혼 계획 전연 없다”고 딱 잡아뗀 뒤 그 해 8월 프랑스에서 결혼했다. 이러니 어떻게 스타들의 말을 믿겠는가.
핏은 인터뷰에서 졸리와의 결혼에 대해 “이제 진짜 결혼한 남자로 느껴진다. 결혼 후 그 것이 단지 하나의 축하행사가 아니라 서로의 언약을 더욱 깊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이런 소리는 이제 다 빈말이 되고 말았다. 졸리와 핏은 불원 서로 새로운 다른 상대를 만나 다시 한 번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것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6년 10월 6일 목요일

부인(Denial)


홀로코스트 진위여뷰를 둘러싼 법정공방전의 세 인물 어빙, 립스탯 및 램턴(왼쪽부터).

홀로코스트를 부인한 데이빗 어빙


제목은 영국의 역사저술가로 홀로코스트를 부인한 데이빗 어빙의 주장을 말한다. 강렬하고 정열적이며 진지하고 또 엄숙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국의 정치드라마이자 법정드라마이다. 어빙을 거짓말쟁이라고 선언한 미국의 유대학 여류 교수 데보라 립스탯과 립스탯을 명예 훼손혐의로 고소한 어빙 간의 런던법정에서의 공방전을 그린 지적이요 스릴 있고 또 긴장감 감도는 훌륭한 드라마다.
진실 수호에 관한 말 많은 법정드라마치곤 아주 재미있고 집중된 관심을 이끄는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얘기로 법정의 대사는 전부 실제 재판에서 사용된 것을 그대로 써 기록영화 같은 사실감이 있다. 그리고 이 영화의 또 다른 볼만한 것은 배우들의 출중한 연기다.
영화는 1994년 립스탯(레이철 바이스)이 애틀랜타의 에모리대학에서 강의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 해 펭귄사는 어빙의 홀로코스트 부인을 비판하는 립스탯의 책을 출판했다. 이 때 강의실 앉아 있던 한 남자가 일어나 자신을 데이빗 어빙(티모시 스팔)이라고 소개하면서 립스탯에게 홀로코스트의 진위여부를 놓고 토론하자고 도전한다. 그러나 립스탯은 이를 거부한다.
그로부터 2년 후 영국으로부터 립스탯에게 어빙이 보낸 고소장이 날아든다. 어빙은 립스탯의 책 때문에 자신의 생애가 파괴됐다면서 립스탯과 함께 펭귄사를 고소한 것이다. 재판을 위해 립스탯은 런던으로 날아간다.
그런데 영국법에 의하면 명에훼손 재판에서는 피고소인이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게 돼있어 립스탯이 홀로코스트가 실제로 자행됐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할 입장이다. 립스탯의 변호사는 다이아나의 이혼소송을 맡았던 앤소니 줄리어스(앤드루 스캇). 그러나 스캇은 재판을 위한 준비와 자료수집 그리고 전략을 마련할 뿐이요 실제 법정에서 변호하는 사람은 달변의 직선적이요 강력한 리처드 램턴(탐 윌킨슨).
그리고 립스탯과 변호팀은 재판 전에 아우슈비츠를 방문한다. 이 장면이 매우 숙연하다. 립스탯은 처음에 램턴과 의견 충돌을 보이면서 갈등을 일으키나 서서히 그의 본의를 깨닫고 그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한다.
마침내 재판이 시작되면서 법정공방전이 벌어지는데 어빙은 자신이 스스로를 변호한다. 재판과정이 상당히 길고 언어의 대결이 치열한데 자칫하면 지나치게 심각하고 지루할 수도 있는 이 부분에 각본가 데이빗 헤어는 어빙을 동원해 다소 짓궂은  유머를 삽입해 무거움을 덜어준다. 법정대결이 육박전만큼이나 격렬하고 흥분된다.
연기파들인 바이스와 스팔과 윌킨슨의 연기가 불꽃을 튄다. 바이스의 연기는 열정과 에너지로 넘치는데 외골수로 자신의 진실에 매어달리는 여자 투사의 역을 단호하게 표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흡인력을 발산한다. 스팔의 연기는 기분이 나쁠 정도로 음산하면서도 우습고 또 인간적이며 윌킨슨의 분노에 찼으나 결코 이성을 잃지 않는 엄격한 연기도 보기 좋다. 착 가라 앉은 음악(하워드 쇼)과 촬영도 좋다. 믹 잭슨 감독. PG-13. Bleecker Street.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딥워터 호라이즌(Deepwater Horizon)


마이크가 화재 속에 동료 인부들을 구출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멕시코만의 해저석유굴착기 화재사건 영화 


지난 2010년 4월 발생한 멕시코만의 절반 정도 잠수가 가능한 거대한 해저석유굴착기 ‘딥 호라이전’의 화재사건 실화를 다룬 액션재난드라마로 액션을 잘 다루는 기능공과도 같은 감독 피터 버그의 작품이다. 그가 ‘론 서바이버’에서 함께 일한 마크 왈버그와 다시 콤비가 돼 만든 영화로 기능적으로 손색이 없고 특수효과를 동원한 대재난 장면은 볼만하나 깊이나 독창성이 모자란다. 그리고 영화가 너무 정통적인 재난영화의 틀을 밟아 신섬감이 없다.
이 사고로 11명의 인부가 사망했고 굴착기의 폭발로 석유가 바다를 덮으면서 미 사상 최악의 생태계 사건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그런데 이 굴착기는 한국의 현대중공업이 만든 것으로 폭발 후 이틀간 불타다가 침수했다.
영화는 2막 형식으로 구성됐다. 제1막에서는 굴착기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이 묘사되는데 주인공은 마이크 윌리엄스(왈버그). 그와 그의 아내 펠리시아(케이트 허드슨-장식용)의 관계와 함께 고참 ‘미스터 지미’(커트 러셀)와 젊은 여자 인부 안드레아(지나 로드리게스) 등이 소개된다. 그리고 후에 사고가 났을 때 인명보다 회사를 더 먼저 생각하는 석유회사의 간부 도널드 비드린(존 말코비치) 등이 필요한 악인으로 그려진다.
그런데 여기서 지나치게 자세하게 유정과 굴착과정에 대한 기술적 용어가 서술돼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는 바람에 인물 묘사가 소홀해져 작중 인물에게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막는다.  
제2막에서는 굴착기에 고장이 생기면서 해저로부터 터진 파이프를 통해 솟아오른 석유와 물과 진흙이 굴착기를 뒤 덮고 이어 화재와 폭발이 일면서 거대한 강철장비들이 쪼개지고 무너지고 사람들이 공중으로 날아가 인명피해가 발생한다.
이 재난장면은 매우 효과적으로 박진하게 그려졌다. 그리고 마이크가 필수적인 영웅이 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인명을 구출하려고 맹활약을 한다.
영화가 사람들 보다 대규모 액션과 스턴트에 치중해 공허하다. 폭발과 화재의 재난영화로선 무난하나 이로 인한 후유증과 비극과 사건 속의 인물들에 대한 무게 있는 취급이 모자라 그냥 시끄럽기만 하고 별 재미도 없는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타작이 되고 말았다. 연기를 거론할 영화도 못 된다. PG-13. Summit.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연인들과 폭군(The Lovers and the Despot)


김정일과 신상옥, 최은희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배우 최은희-신상옥 감독 북한 피랍사건 다뤄


영국의 로버트 캐난과 로스 아담이 함께 감독한 배우 최은희(89)와 그의 남편이었던 신상옥 감독의 김정일의 지시에 의한 북한에로의 피랍사건을 다룬 기록영화다. 두 영화인의 개인적 면모와 김정일의 영화에 대한 집념 그리고 북한의 실상을 서스펜스 스릴러이자 멜로물 식으로 다룬 흥미진진한 작품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최은희와 신상옥이 몰래 녹음한 김정일과의 전화 통화 내용. 김정일의 육성으로 그의 영화에 대한 애착을 감지할 수 있다.   
최은희는 1978년 7월 홍콩으로부터 영화제작자를 자처하는 여자로부터 영화를 함께 만들자는 제의를 받고 홍콩으로 갔다가 같은 달 11일 괴한들에 의해 납치된다. 최은희는 화물선에 실려 북한으로 가는 8일간 건장한 남자들이 자기를 감시했다고 증언한다. 
북한에 도착한 최은희를 반갑게 맞는 사람이 김정일. 김정일은 최은희와 악수를 하면서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며 반색을 한다. 그 후 최은희는 집이 제공되고 좋은 대접을 받았지만 방기된 상태로 남는데 김정일이 최은희를 납치한 이유는 남한의 영화가 북한의 영화보다 월등하다고 느끼면서 동경했기 때문. 
최은희 실종 2개월 후 영화인으로서 침체기에 빠진 신상옥이 최은희를 찾으러 홍콩으로 갔다가 역시 실종된다. 신상옥이 재출현한 것은 납북된지 5년 후 그가 북한에서 만든 영화가 알려지면서이다.
이 5년간 신상옥은 북한의 감옥에 투옥돼 있었는데 여기서 탈출했다가 붙잡혀 독방에 갇혀 세뇌를 받게된다. 신상옥은 김정일에게 충성서약의 글을 보내 감옥에서 풀려나 최은희와 재회, 영화 활동에 들어간다.
둘은 김정일의 감독 하에 특혜를 받으면서 작품활동을 하다가 1986년 유럽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핑계로 비엔나에 갔다가 주 비엔나 미 대사관을 통해 미국으로 오기까지 2년여 동안 총 7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김정일은 두 사람에게 ‘주의’ 대신 감정적인 영화를 만들라고 주문, ‘춘향’ 등 러브스토리와 대규모 제작비가 든 ‘불가사리’도 만들었다. 둘이 만든 ‘소금’으로는 최은희가 모스크바영화제에서 주연상을 받았다.
북한 탈출 후 두 사람은 미국에서 살면서 신상옥은 아동용 영화 ‘닌자’를 만들었는데 이어 한국으로 귀국, 지난 2006년 80세로 별세했다.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카트웨의 여왕(Queen of Katwe)


체스 챔피언 피오나와 체스 코치 로버트가 주민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우간다 빈민촌에 사는 체스 천재 소녀의 인간승리


우간다 수도 캄팔라의 빈민촌 카트웨에 사는 일자무식의 어린 체스천재 10대소녀 피오나 무테시(마디나 날완가)의 역경을 극복한 인간승리의 감동적이요 영혼을 고무하는 실화로 인도계 여류감독 미라 나이르(‘미시시피 마살라’)가 연출했다. 
가을철에 접어들어 상을 노리고 나오는 영화들의 표본과도 같은 영화로 상냥하고 기분 좋고 흥미 있는 가족용 드라마로 특히 소녀를 비롯한 여성팬들이 좋아할 것이다. 
뛰어난 연기와 함께 특별히 흠 잡을 데 없이 재미 있고  보기 좋게 만들기는 했으나 결과가 뻔한 얘기를 지나치게 감동적으로 미화시키려고 자잘구레한 얘기들을 미주알 고주알 늘어놓는 바람에 전체적으로 장황하고 반복되는 감이 들어 끝까지 보고 있자니 피로하다. 극적 긴장감이 모자란다. 
홀어머니 해리엣(루피타 니온고-‘12년간의 노예생활로’ 오스카 조연상)과 남동생 브라이언(마틴 카반자) 그리고 언니 나이트(타린 ‘케이’ 카이아제)와 함께 살면서 길에서 물건을 파는 피오나의 체스실력을 간파한 사람은 동네 아이들에게 운동을 코치하는 ‘스포츠 아웃리치 미니스트리’의 로버트 카텐데(데이빗 오이엘로). 그는 교회건물에서 아이들에게 체스도 가르치는데 피오나가 체스에 남다른 재주를 지녔다는 것을 알고 해리엣에게 피오나가 체스를 배우도록 허락할 것을 당부하나 거절당한다.
그러나 물론 피오나는 카텐데의 수제자가 되는데 독립심 강하고 끈질기며 또 역경과 문제에  잘 대처하는 피오나는 여덟 수를 내다보는 체스 귀재. 그리고 피오나는 많은 난관과 장애를 극복하고 지역대회를 거쳐 전국대회에서 우승한다. 이런 줄거리를 둘러싸고 찢어지게 가난한 피오나의 어려운 가족생활과 피오나와 어머니와의 갈등과 화해 또 나이트의 달동네 탈출을 위한 가출 등이 거의 진부할 정도로 자세히 그려진다. 
또 토목공학자인 카텐데의 아내와의 삶과 그의 장래 문제도 다른 서브플롯을 이루는데 카텐데는 좋은 직장이 생기나 아내의 격려와 함께 카트웨에 남아 동네 아이들의 페스탈로치 노릇을 계속한다. 모성과 어머니의 자녀를 위한 희생의 영화이기도 한데 감독이 메시지 전달에 집념, 다소 거부감이 가긴하나 충분히 보고 즐길만하다. 
훌륭한 것은 연기. 신인 날완가가 침착하고 다부지며 니온고의 품위 있는 연기 그리고 오이엘로의 민감한 연기를 비롯해 조연진들의 연기도 뛰어나다. 
현지촬영도 좋고 의상을 비롯해 다양한 색깔도 눈부시다. 끝에 배우들과 그들이 연기한 실제 인물들이 함께 나온다. PG. Disney.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맥베스’




야망과 권력, 음모와 배신과 살인 그리고 죄의식과 광기가 있는 오페라 ‘맥베스’(Macbeth^사진)는 베르디가 작곡한 셰익스피어의 세편의 연극 중 최초의 것이다. 나머지 둘은 ‘오텔로’와 ‘팔스타프’. 오페라 프로그램 노트에 의하면 베르디는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도 오페라로 만들려고 스케치까지 했으나 완성하지 못했다.
오페라 ‘맥베스’는 연극처럼 깊고 어둡고 강렬하면서 드라마틱하다. 지난 22일 LA 다운타운의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언에서 공연된 LA오페라의 ‘맥베스’를 보면서 느낀 점은 극과 오페라의 폭 넓은 스케일과 함께 베르디의 음악이 참으로 훌륭하다는 것이었다.
노래도 노래지만 음악이 연극이 표현하고자하는 모든 내성과 감정을 다양하고 풍성하게 드러내 오페라의 음감에 깊이 젖어들었다. 장엄하고 음산하며 쾌활하고 희롱하듯 즐겁고 또 서정적이면서 비감하게 연극의 내용을 마음껏 구현한 음악이다. LA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 제임스 콘론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가 이같은 음악을 무성한 삼림처럼 질감 있고 다변하게 연주했다.        
맥베스역의 은퇴를 모르는 사나이로 LA오페라의 총감독이기도한 플라시도 도밍고와 간교하고 표독스런 레이디 맥베스 역의 메조-소프라노 에카테리나 세멘추크를 비롯해 맥베스의 동료장군 방코 역의 로베르토 탈리아비니 및 끝에 가서 맥베스와 결투를 벌이는 맥더프 역의 아르투로 샤콘-크루스 등이 모두 노래를 잘 불렀지만 특별히 감탄할만한 음성들은 아니었다.
다만 나이 75세에도 무대를 가득 채우면서 청아한 음성을 구사하는 도밍고의 에너지가 놀랍고 세멘추크의 안개가 낀 듯한 음성이 인상적이었다. 도밍고는 처음에 바리톤으로 시작했으나 곧 이어 테너로 바꿔 활동하다가 6년 전에 바리톤으로 돌아갔다.
이번 공연에서 심하게 눈에 거슬렸던 것은 맥베스에게 스캇틀랜드의 왕이 된다고 예언을 한 마녀들이다. 연극에서는 마녀가 세 명인데 다르코 트레스냑이 연출한 이 오페라에서는 아홉 명의 긴 꼬리를 한 피부가 벗겨진 암컷 인쥐 같은 마녀들이 극중 내내 무대를 차지하면서 때로 광대처럼 굴어 극과 음악을 심하게 훼손하고 있다.
“삶은 바보가 말한 소리와 분노로 가득 찬 무의미한 얘기”라는 맥베스의 유명한 독백(윌리엄 포크너는 이 독백에서 따 자기 소설 제목 ‘The Sound and the Fury’-‘음향과 분노’로 썼다)이 있는 ‘맥베스’는 권력에 대한 야심에 가득 찼으나 머뭇거리는 스캇틀랜드의 장군 맥베스가 간악한 아내 레이디 맥베스의 사주에 따라 던칸 왕을 살해, 옥좌에 오르나 결국 부부가 함께 멸망하고 마는 얘기다.
레이디 맥베스도 말했듯이 “권력의 길이란 악의 씨가 뿌려져있어” 그것을 찬탈하려면 피를 보게 마련이다. 셰익스피어의 리처드3세와 한국의 군부쿠데타를 일으킨 군인들도 그랬다. 무서운 것이 여자라고 엉거주춤하는 맥베스를 “비겁자”라고 질책하며 던칸 왕을 죽이라고 독촉하는 것이 레이디 맥베스다.
제1막에서 레이디 맥베스가 남편의 편지를 읽는 장면은 처음에 노래가 아닌 낭독으로 시작된다. 프로그램 노트에 의하면 베르디는 오페라에 강한 극적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이런 처리를 했다. 베르디는 과거 노래 위주의 오페라 테두리에서 벗어나 극을 음악만큼이나 비중 있게 다루기 위해 레이디 맥베스는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해야한다. 거칠고 공허하고 답답하고 악마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음악과 드라마를 함께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베르디와 동시대인인 바그너의 ‘뮤직 드라마’가 생각난다.
오페라는 맥베스와 맥더프의 칼싸움으로 절정에 이른다. 맥베스는 맥더프의 칼에 찔려 죽는데 물론 그 죽음은  ‘오페라적 죽음’이어서 맥베스는 치명상을 입고도 제 할 말 다 하고 죽는다.
셰익스피어의 많은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졌듯이 ‘맥베스’도 여러 번 영화화했다. 그 중에서 유명한 것이 오손 웰즈가 감독하고 주연한 흑백영화(1948)다. 레이디 맥베스 역은 자넷 놀란이 맡았는데 촬영과 무드와 연기 등이 뛰어난 작품이다. 또 로만 폴란스키도 존 핀치와 프란시스 아니스를 써 영화(1971)를 만들었고 작년에는 마이클 화스벤더와 마리옹 코티야르가 주연한 ‘맥베스’가 나왔다.
그러나 ‘맥베스’ 영화 중 최고의 걸작은 아키라 쿠로사와가 내용을 사무라이영화로 변용한 ‘피의 왕좌’(Throne of Blood 1957)이다. 도시로 미후네가 맥베스 역을 고전미를 지닌 이수주 야마다가 레이디 맥베스 역을 한 이 흑백영화는 일본의 극 노와 가부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촬영과 화면구성과 의상 및 연기 등이 뛰어난 명화다. 마지막에 갑옷을 입은 미후네가 공포에 질려 황소 눈을 한 채 빗발같이 쏟아지는 화살을 맞으며 죽는 장면이 장렬하다.
오페라 ‘맥베스’는 10월 5일, 8일, 13일(하오 7시30분)과 16일(하오 2시30분)에 공연하며 13일 공연은 산타모니카 피어와 사우스파크 게이트에서 야외 스크린으로 무료 관람할 수 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매그니피슨트 이병헌




이병헌이 쌍칼 쓰고(사진) 총까지 쏘는 코리언 건맨 빌리 락스로 나오는 웨스턴 ‘매그니피슨트 세븐’(The Magnificent Seven-★★★½^5개 만점)은 액션과 폭력이 난무하는 오락물이다. 이 영화는 지난 1960년 웨스턴의 명장 존 스터지스가 감독하고 율 브린너, 스티브 매퀸, 찰스 브론슨, 제임스 코번 및 로트 번 등이 나온 동명영화(한국제목 ‘황야의 7인’)의 리메이크다. 그리고 ‘황야의 7인’ 역시 아키라 구로사와가 감독하고 도시로 미후네가 주연한 ‘7인의 사무라이’(1954)를 웨스턴으로 만든 것이다.
안트완 후콰가 감독하고 과거 그와 함께 2편의 영화를 만든 덴젤 워싱턴이 주연하는 ‘매그니피슨트 세븐’과 1960년 작이 서로 크게 다른 점은 옛 영화의 건맨들은 다 백인이었으나 이번에는 흑인, 동양인, 멕시칸 및 아메리칸 인디언 등 온갖 국적과 피부색깔을 지녔다는 점.
‘무지개 연합 건맨’들의 웨스턴인데 어쩌다가 한국인 건맨이 미 서부에까지 도착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이병헌이 조연으로 나와 악인들을 종횡무진으로 처치하는 모습을 보자니 동포로서 마음 뿌듯하다. 이병헌은 과거 ‘G.I. 조’등 몇 편의 할리웃영화에 조연이나 단역으로 나왔으나 이번 역은 그 것들과 달리 상당히 비중이 크다.
이병헌이 맡은 역은 옛 영화에서 제임스 코번이 했던 과묵한 칼잡이 브릿 역으로 이병헌의 칼 대 그에게 시비를 거는 카우보이의 총 대결은 옛 영화의 장면을 그대로 따온 것이다. 그러나 이 리메이크는 철저한 액션팬 용으로 깊이와 독창성 및 신선함은 부족하다. 솜씨 있게 만든 보고 즐길만한 영화이나 옛 영화의 멋과 스타일과 스타들의 카리스마를 따를 수는 없다.
1879년 미 서부의 금광마을 로즈 크릭. 이 금광을 독식하려고 탐욕스럽고 무자비한 자본가 바톨로뮤 보그(피터 사스가드의 역이 1차원적이다)가 졸개들을 동원해 주민들에게 땅을 헐값에 팔라고 위협한다. 옛 영화의 무대는 미 접경지대 멕시코 깡촌이었고 마을 주민을 위협하는 것은 산적 두목(금이빨 한 일라이 월랙)이었다.
주민들이 마을을 구하려고 고용한 건맨이 검은 옷을 입은 샘 치솜(워싱턴-이 역은 옛 영화의 율 브린너 역). 이어 치솜은 사회의 부적응자들인 건맨들을 모은다. 폭탄전문가인 도박사로 쾌활한 조쉬 패러데이(크리스 프랫), 남부군 출신의 저격수로 ‘죽음의 사자’로 불리는 굿나잇 로비쇼(이산 호크), 로비쇼의 단짝인 동양인 칼잡이 빌리 락스, 산악인 잭 혼(빈센트 도노프리오), 직업 무법자 멕시칸 바스케스(마누엘 가르시아-룰포) 및 활 잘 쏘는 아메리칸 인디언 레드 하베스트(마틴 센스마이어) 등이 나머지 6명.
다양한 건맨들을 소개하면서 이들 개개인의 면모나 성격묘사가 부족한데 액션과 폭력을 절제하고 이들을 좀 더 깊이 있게 다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클라이맥스는 개틀린 연발기관총을 동원한 보그일당 대 7인의 대결로 액션은 요란하나 과장된 만화 같다. 영화 끝에 엘머 번스틴이 작곡한 옛 영화의 신나는 음악이 나오면서 원전에 대해 치하를 하고 있다.
영화에서 약간 찜찜한 것은 로비쇼가 락스를 자기 하인이었다고 농담조로 소개하는 장면. 이에 락스가 로비쇼를 고깝지 않은 눈길로 바라보는데 미 서부시대 동양인들이란 하인이나 쿡 또는 세탁부나 철도건설 노동자들이긴 했지만 한국인이 듣기엔 거부감이 인다.
이 영화는 최근 폐막된 토론토 국제영화제 개막작이었다. 그래서 토론토에서 영화 출연진과의 인터뷰가 있었다. 다음은 내 질문에 답한 그들의 이병헌에 대한 평가이다.
*덴젤 워싱턴
난 한국영화 ‘달콤한 인생’을 좋아했는데 거기에 이병헌이 나온지 몰랐다. 그가 해외에서 그렇게 인기가 있는지도 몰랐다. 그는 훌륭하고 진지하고 조용하^ 또 철저하고 정확한 배우다. 그야말로 스타다.
*이산 호크
이병헌이 나온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최고의 현대판 웨스턴 중 하나로 내가 아주 좋아한다. 뛰어나고 얄궂은 영화로 그 영화에 나온 이병헌과 함께 일하고 또 관계를 맺은 것이 매우 자랑스럽다.
*크리스 프랫
사람들은 이병헌이 얼마나 유명한 스타인줄을 모른다. 그는 한국의 엘비스다. 그는 정말로 훌륭하고 멋지고 또 친절하고 품위 있는 사람으로 역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진짜 프로다. 이 영화가 이병헌을 몰랐던 사람들이 그를 알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며 나는 그와 함께 다시 일하고 싶다.
프랫은 인터뷰 후 나와 사진을 찍을 때도 다시 한 번 “나 정말 그와 같이 다시 일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브라보 이병헌!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