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6월 22일 월요일

인피니틀리 폴라 베어 (Infinitely Polar Bear)

샘(왼쪽)과 매기가 두 딸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다소 장밋빛으로 채색되긴 했으나 질병에 관한 영화치곤 상당히 활기차고 긍정적이며 또 우습기까지 하다. 두 딸을 혼자 돌보게 된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아버지와 딸들 그리고 그의 아내와의 관계를 그린 드라마로 순식간에 감정이 변하는 아버지 때문에 딸들이 겪어야 하는 두려움과 그런 아버지의 행동이 저지르는 엉뚱한 행복한 순간을 균형을 맞춰 정겹게 그렸다.
영화를 연출한 여류감독 마야 포브스의 자전적 얘기로 포브스는 두 딸들이 아버지 때문에 겪어야 하는 당혹감과 좌절감 그리고 위험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아버지의 과격한 행동 때문에 보면서 마음을 졸이다가도 모든 것을 밝게 처리해 안심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너무 낙관적인 처리는 영화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모습에 다소 어긋나긴 한다.
포브스가 자기 가족에게 보내는 사랑이 가득한 추억으로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재미있는 영화다. 4명의 성인과 아동 배우들이 꾸밈없고 생명력 넘치는 연기를 기차게 잘해 영화의 사실감을 잘 살리고 있다.
1960년대 말. 굉장히 재주가 많은 캠(마크 러팔로)은 감정의 높낮이가 순식간에 변하는 바이 폴라(제목은 이 이름을 우습게 표현한 것이다) 환자여서 무슨 일을 해도 제대로 끝내지 못하고 직장도 오래 못 다닌다. 그러나 그는 아주 낙천적이다.
캠과 자신의 정신질환을 알고도 자기를 사랑하는 매기(조이 샐다나)는 결혼해 매서추세츠주의 캠브리지에 단란한 가정을 꾸린다. 그리고 두 딸 아멜리아(감독의 딸인 이모진 월로다스키)와 페이스(애슐리 아우프더하이드)를 낳는다. 그런데 딸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쯤 캠의 행동이 지나치게 과격해지는 바람에 캠은 정신병원에 잠시 수감됐다 나온다.
딸들이 다니는 학교가 충분히 도전적이지 못한데 불만이 많은 매기가 컬럼비아대의 경영과정에 18개월 만에 학위를 딸 수 있는 조건으로 합격이 된다. 매기는 졸업해 직장을 잡아 딸들을 사립학교에 보내기 위해 캠에게 두 딸을 맡기고 뉴욕으로 간다. 그리고 주말마다 딸들을 방문한다. 캠이 두 딸을 무척 사랑하는 것은 분명하나 정신상태가 불안한 그에게 딸들을 맡기고 뉴욕으로 떠나는 매기의 결정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매기가 뉴욕에 사는 동안 두 딸을 혼자 돌보는 캠과 딸들 간에 일어나는 잡다한 에피소드가 자잘하니 재미있게 나열된다. 캠은 딸들을 아끼고 사랑하면서도 기분 나는 대로 딸들이 잠든 밤에 나가 술을 마시고 새로 옮긴 아파트를 안 치워 딸들로부터 “똥통”이라는 핀잔을 받는가 하면 아파트 이웃들에게 지나치게 친절해 오히려 따돌림을 받는다.
이로 인해 고통당하는 두 딸은 어머니 보고 어서 돌아오라고 사정을 하면서도 둘 다 원체 총명하고 또 긍정적인 데다가 아버지를 사랑해 가족이 똘똘 뭉친다. 4명이 연기를 다 잘하지만 특히 훌륭한 것은 러팔로다. 기분 상태가 극과 극을 이루는 정신질환자의 모습을 과장되지 않고 동정심이 일도록 하고 있다. 그와 함께 두 소녀 배우들이 아주 귀엽고 사실적이다. 음악은 좀 지나치게 달콤하거나 감상적이다.
성인용. Sony Classics. 일부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글렌 포드 주연 걸작 웨스턴 2편

 '패스티스트 건 얼라이브에서'  조지(왼쪽)와 무법자 비니가 필사의 결투에서 맞서 있다. 

글렌 포드가 주연하는 왕년의 걸작 흑백 웨스턴 2편이 24일과 25일 뉴베벌리 시네마(7165 Beverly Blvd.)에서 동시 상영된다. 필견의 명작이니 놓치지 마시도록.

‘패스티스트 건 얼라이브’
(The Fastest Gun Alive·1956)
★★★★1/2
사살된 속사의 명수였던 셰리프를 아버지로 둔 조지 켈비 주니어(포드) 역시 속사의 명수. 그러나 그는 끊임없이 도전해 오는 건맨들을 피하기 위해 아내(진 크레인)와 함께 성도 템플로 바꾸고 한 작은 마을에서 잡화상을 경영하며 조용히 살고 있다. 그런데 악명 높은 은행강도 비니(브로데릭 크로포드)가 ‘살아 있는 최고의 속사의 명수’를 죽였다는 소문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조지를 남자답지 못하다고 놀리자 자존심을 상한 조지가 숨겨둔 총을 꺼내 찬 뒤 마을 사람들 앞에서 귀신이 곡할 총 솜씨를 과시한다. 그리고 조지는 내가 ‘살아 있는 최고의 속사의 명수’라고 말한다.
한편 졸개들과 추격하는 법집행자들을 피해 조지의 마을에 찾아온 비니는 마을의 아이로부터 조지의 총 솜씨를 듣고 그와 대결하기 위해 법을 피해 달아난 졸개들과 달리 마을에 남는다. 그리고 조지가 나타나지 않으면 마을을 몽땅 불태우겠다고 위협하는 비니와 맞서기 위해 조지가 거리로 나선다. 총소리가 나고 마을 사람들이 조지와 비니의 사체가 든 관을 매장한다.

‘3시10분 발 유마행 열차’
 (3:10 to Yuma·1957)
 ★★★★★
애리조나의 한 작은 마을 비스비는 3년째 가뭄에 시달리고 있어 아내와 어린 아들과 함께 양을 치며 사는 댄(밴 헤플린)은 심한 경제난에 시달린다. 그런데 이 마을에 악명 높은 역마차 강도 벤(포드)이 졸개들에 앞서 들렀다가 마을 보안관에게 체포된다. 문제는 벤을 재판할 법정이 있는 유마로 가는 열차가 서는 컨벤션시티까지 누가 벤을 호송하는가 하는 점.
역마차 노선 사장이 개인 당 200달러를 주겠다는 데도 벤을 충실히 따르는 졸개들이 무서워 나서는 자가 없자 돈이 필요한 총이라곤 쏴본 적도 없는 댄이 아내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호송을 자원한다. 댄은 일단 벤을 컨벤션시티까지 호송, 아침에 도착해 기차가 올 때까지 호텔에서 기다린다. 마을에 벤의 졸개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얼마 있다 기적이 울린다. 이제 댄의 문제는 어떻게 졸개들을 피해 벤을 호텔로부터 역까지 호송해 기차에 태우는가 하는 점. 멋있는 심리 웨스턴으로 프랭키 레인의 주제가가 유명하다. 이 영화는 러셀 크로(벤 역)와 크리스천 베일 공연으로 리메이크 됐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4년만에 다시 찾아 온‘보바리 부인’

두 여성감독 작품 연달아 개봉


간통소설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프랑스의 문호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쓴 ‘보바리 부인’(Madame Bovary)을 원작으로 만든 두 편의 영화가 현재 상영 중이다.
먼저 개봉된 것은 프랑스의 여류감독 안 폰텐이 연출한 코믹터치의 ‘젬마 보바리’(Gemma Bovery). 영국에서 남편 찰리와 함께 프랑스의 노르망디 시골로 이사 온 아름다운 육체파 젬마(젬마 아터튼)가 따분한 남편과 시골생활에 권태를 느껴 바람을 피우다가 비극적 종말을 맞는다. 그 종말이 황당무계하게시리 희극적이다.
이 영화는 젬마의 옆집에 사는 빵가게 주인으로 고전문학 애독자인 마르탱(화브리스 뤼시니)의 관점으로 진행된다. 역시 지루하고 따분한 시골생활에 좀이 쑤시는 마르탱은 소설 ‘보바리 부인’의 주인공 엠마 보바리와 이름이 비슷한 젬마를 보자마자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면서 탐을 낸다. 경량급으로 즐길 만한데 아터튼이 감각적으로 아름답고 프랑스의 베테런 배우 뤼시니가 호연한다.
이 영화와 달리 12일에 개봉된 역시 여류감독 소피 바르테가 연출한 ‘보바리 부인’(Madame Bovary)은 매우 심각하다. 보바리 부인으로 미아 와시코우스카가 나오는데 영화는 기능적으로 뛰어나고 여성적 터치가 느껴지나 과거의 보바리 부인 영화들과 별로 다른 것이 없는 재탕에 지나지 않는다.
다분히 학구적이요 여권 주창의 뜻을 내포하고 있긴 하나 보바리 부인이 권태로운 남편과 시골생활을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내면적 욕구와 갈망이 절실히 묘사되질 못한 채 정열과 감정이 결여됐다. 보바리 부인의 욕정과 열정 그리고 사회적으로 신분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야망 및 시골생활로부터 탈출해 도시로 가고자 하는 열망 그리고 돈과 사치에 대한 그녀의 태도를 통찰력 있게 탐구하지 못하고 피상적으로 다뤄 감동을 느낄 수가 없다.
촬영은 아름답지만 와시코우스키와 그녀의 정부들로 나오는 후작 역의 로간 마샬-그린과 젊은 서기 레옹 역의 에즈라 밀러와 화학작용도 전무해 도무지 정열을 느낄 수가 없고 로맨틱하지도 못하다. 와시코우스카가 열심히 연기를 하나 차가운 연출로 인해 영화의 고동과 맥박이 느껴지지 않는다.
소설 ‘보바리 부인’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졌었다. 1934년에 프랑스의 명장 장 르놔르가 만들었고 1949년에는 빈센트 미넬리(라이자 미넬리의 아버지)가 그리고 1991년에는 프랑스의 스릴러 장인 클로드 샤브롤이 이자벨 위페르를 주연으로 발탁해 연출했다.
이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MGM작인 미넬리의 ‘보바리 부인’이다. 보바리 부인으로 제니퍼 존스가 그의 시골의사 남편 찰스로는 밴 헤플린 그리고 보바리 부인의 멋쟁이 정부로는 루이 주르단이 각기 나온다. 내용과 연기와 세트와 음악(‘벤-허’의 미클로스 로자)과 흑백촬영 등이 다 좋은데 특히 무도회 장면이 화려하다.  
그러면 왜 19세기의 한 여자의 방종과 멸망에 관한 이 소설은 이렇게 세월을 타지 않고 계속해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보바리 부인의 손에 잡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욕구와 자기가 처한 곤경에 대한 불만은 시공을 초월한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이라고 폰텐은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보바리 부인의 무언가 보다 깊고 강렬한 것에 대한 기대는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것으로 특히 여전히 남성위주의 사회에 속한 여자들에게는 보바리 부인의 얘기가 결코 남의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보바리 부인은 19세기 당시의 사회적 환경의 희생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고등교육을 받았지만 그것을 유용하게 사용하지 못하고 자기를 사랑하나 무미건조한 찰스와 결혼하는데 이 때부터 그녀는 영원한 함정에 갇히게 된다. 당시 여자들은 직업도 가질 수가 없고 또 이혼도 못하는 사회적 제한의 수인과도 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 똑똑하고 야심만만하며 또 정열적인 보바리 부인은 결국 이런 사회적 조건에 반기를 들었다가 자살하고 만다. 소설 ‘보바리 부인’은 도덕론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사회 비평이자 여성 해방과 여권 옹호의 글이라고 하겠다.
소설은 단조로운 결혼생활과 시골환경에 싫증이 난 아름답고 정신적으로 방황하는 엠마 보바리가 자신의 낭만적 동경과 정열을 좇아 외도를 하다가 비극적 종말을 맞는 얘기를 심리적으로 분석한 뛰어난 사실주의 작품이다.
맹물 같은 시골의사인 엠마의 남편 찰스는 아내를 사랑하나 그녀를 진실로 이해하지도 위로하지도 못하고 또 엠마의 절실한 필요를 충족시켜 주지도 못하는 무기력한 남자다. 이런 남편을 둔 감수성이 예민한 엠마는 자존마저 내팽개치고 죄악적인 사랑처럼 로맨틱하고 아름다운 것은 없다는 환상에 빠져 두 남자와 절망적인 사랑을 나누다 결국 모두에게 배신당하고 극약을 먹고 자살한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이혼율이 가장 높은 때는 결혼 3년째다. 뜨겁던 사랑 대신 뜨뜻미지근한 무료함이 찾아드는 시기가 됐다는 것이다. 이렇게 일단 심한 권태증에 빠지게 되면 상대가 밥을 먹는 모습도 미워지게 마련이다. 엠마의 눈에는 찰스의 밥을 먹는 모습이 소의 반추처럼 보였을 정도다. 이 같은 상황은 ‘보바리 부인’에서 미아 와시코우스카가 식탁 건너편에 앉아 열심히 음식을 먹는 찰스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잘 나타난다.  모든 엠마에게는 찰스가 있게 마련이다. 엠마를 죽인 비극의 절반 책임은 찰스에게도 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암흑의 왕자



어두운 것은 밝은 것보다 훨씬 더 유혹적이다. 필름 느와르(film noir) 영화에서 봉 같은 남자들이 파멸에 이를 줄 알면서도 팜므 파탈(femme fatale-치명적 여인)들에게 빠져드는 것도 이 요부들이 발산하는 검은 매력 때문이다.
어두운 매력은 남자들뿐만이 아니라 여자들에게도 효력을 발휘한다. 범죄자들을 사랑하는 여자들이 그 좋은 보기다. 최근 뉴욕주 교도소에서 탈출한 두 명의 살인범에게 탈출도구를 준 수감자 재활교육 여직원 조이스 미첼(51)도 범죄자들 특유의 암흑성에 매료됐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남자들을 옴므 파탈(homme fatal-치명적인 남자)이라고 부르면 될까.
살인죄로 수감 중인 악명 높은 무기수 찰스 맨슨(80)에 반해 그와 약혼까지 하고 결혼을 원하는 애프턴 버튼(26)도 마찬가지라고 하겠다. 맨슨은 지난 1969년 8월 자기를 추종하는 맨슨 패밀리를 이끌고 베벌리힐스에 있는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의 집에 침입, 폴란스키의 아내이자 배우로 임신 8개월째인 샤론 테이트 등 5명을 잔인하게 살인했다.
여러 어두운 남자들 중에서도 여자들의 오금을 짜릿짜릿하게 저리도록 만드는 유혹적인 남자는 단연 드라큘라일 것이다. 호색한인 드라큘라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흡혈하지만 특히 아름다운 여자들을 좋아한다. 아름다운 여자 좋아하기는 산 자나 죽은 자나 마찬가지다. 드라큘라가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응시하면 여자들은 최면상태에 빠져 자기 목을 스스로 바치면서 산 자와 죽은 자의 정사가 이뤄진다.
이처럼 드라큘라를 여성의 섹스 심벌로 격상시킨 장본인이 지난 11일 93세로 런던에서 사망한 크리스토퍼 리다. 준수하고 긴 얼굴에 낭랑한 음성을 지닌 그는 자신의 첫 드라큘라 영화 ‘드라큘라의 공포’(1958·사진)에서 6피트4인치의 장신에 마치 박쥐가 날개를 접은 모습처럼 몸을 꼭 감싸는 망토를 입고 야음을 타고 나타나 여인들을 유혹했다.
젠틀맨 죽음의 사자인 드라큘라의 응시를 마주하는 여인들의 눈길과 얼굴표정에서 ‘날 잡아 잡수세요’라는 간청을 읽을 수가 있다. 드라큘라의 암흑적 매력을 한층 더 짙게 채색해 주는 것이 그가 지닌 위험성이다. 배냇 쌍둥이 같은 어두움과 위험을 한 몸에 지닌 드라큘라의 섹스어필을 거부하기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드라큘라를 암흑의 왕자라고 부른다.
나는 ‘드라큘라의 공포’를 어렸을 때 중앙극장에서 봤는데 시뻘건 눈에 송곳니를 내보이면서 피를 빨아 먹겠다고 다가오는 클로스업된 드라큘라의 모습이 섹스어필하기는커녕 너무 무서워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손가락 사이로 본 기억이 난다.
이 영화로 대뜸 세계적 스타가 된 리는 그 후 여러 편의 드라큘라 속편에 나왔고 또 생전 수많은 영화에 나왔지만 크리스토퍼 리 하면 대뜸 떠오르는 것이 드라큘라다. 드라큘라는 리의 대명사이다. 리는 드라큘라 외에도 많은 공포영화에 나왔는데 ‘드라큘라의 공포’ 전에 나온 ‘프랑켄스타인의 저주’에서 프랑켄스타인이 창조한 괴물로 나와 대사 한 마디 없이 얼굴 표정으로 자신의 저주 받은 운명을 동정심이 일도록 비감하게 보여줬다.
리의 또 다른 유명한 영화는 007 시리즈 ‘황금 총을 가진 사나이’. 그는 여기서 제임스 본드의 악한인 프란치스코 스카라만가로 나와 ‘골드핑거’의 오릭 골드핑거 다음으로 가장 위험한 본드의 적이라는 평을 받았다. 그런데 리는 본드소설의 작가 이안 플레밍의 의붓 사촌이다. 리의 최근작으로는 그가 마술사 사루만으로 나온 ‘반지의 제왕’이 있다.
리 이전에 스크린에서 드라큘라 역을 멋지게 해낸 배우는 헝가리 태생의 벨라 루고시로 그는 지금까지 드라큘라의 원조로 추앙되고 있다. 드라큘라는 이렇게 치명적인 매력을 지녔는데다가 초능력을 지닌 불사의 인물이어서 내로라하는 많은 배우들이 앞 다투어 역을 맡았다. 잭 팰랜스, 프랭크 란젤라, 게리 올드맨, 러트거 하우어, 제라드 버틀러, 조나산 리스 마이어스, 조지 해밀턴, 애담 샌들러 및 레슬리 닐슨 등이 다 드라큘라들이다. ‘흡혈귀와의 인터뷰’에서 탐 크루즈가 연기한 흡혈귀도 드라큘라의 사돈의 팔촌 격이다.
드라큘라는 허구와 전설이 뒤엉킨 실제 인물이다. 그는 15세기 현 루마니아 땅인 트랜실베니아의 통치자였던 드라큘의 아들로 본명은 블라드. 드라큘은 루마니아어로 ‘용’과 ‘악마’를 뜻하고 드라큘라는 ‘악마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블라드의 별명이다. 그의 이름에는 ‘공’(prince)이라는 작위가 붙어 ‘프린스 블라드’라 불렸다.
당시 가톨릭 국가였던 트랜실베니아는 무슬림 오토만제국과 끊임없이 종교전쟁을 치렀는데 이 때 용맹무쌍한 블라드가 적들을 잡아 적에 대한 경고로 산채로 뾰족한 나무장대에 꽂아 죽을 때까지 전시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를 ‘블라드 디 임페일러’(찔러 꽂는 사람)라고 불렀다. 블라드가 이렇게 잔인한데다가 죽은 사람들의 피에 빵을 찍어 먹었다는 설이 있어 생사람 피 빨아 먹는 드라큘라의 전설이 생겼다고 한다.    
비록 크리스토퍼 리는 죽었지만 스크린을 통해 영원히 살아남을 것일진대 과연 그를 불사의 드라큘라라고 불러도 좋겠다. TCM 채널에서는 리를 기념하기 위해 22일 그의 영화들을 방영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