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3월 7일 금요일

베들레헴(Bethlehem)

팔레스타인 행동대원을 노리는 이스라엘 정보부


팔레스타인 행동대원 이브라힘(왼쪽)과 그의 동생 산후르.


현재 상영 중인 이스라엘 점령지 웨스트뱅크를 무대로 한 이스라엘 정보부원과 팔레스타인 밀고자와의 관계를 다룬 ‘오마르’는 팔레스타인 영화인 반면 공교롭게도 같은 내용을 다룬 이 영화는 이스라엘 영화다. 
이스라엘 사람인 유발 아들러가 감독하고 팔레스타인 사람인 알리 와케드가 아들러와 함께 각본을 쓴 스릴러로 극적 긴장감이나 스릴 그리고 내용의 깊이와 진지성이 ‘오마르’만 못하다. 압축적이며 강한 힘을 보여주는 ‘오마르’에 비하면 이 영화는 피상적이다. 
감독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양쪽에 모두 공평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기자인 와케드와 함께 사전에 이스라엘 정보부원들과 팔레스타인 행동대원들을 인터뷰하고 각본을 썼다고 한다.   
얘기는 베들레헴과 그 주변을 무대로 진행된다. 주인공은 팔레스타인 행동대 지도자인 형 이브라힘(히샴 술리만)의 그늘에서 사는 17세난 산후르(샤디 마리). 동료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이브라힘은 이스라엘이 지목하는 처치대상의 상위권에 속해 있다.
이브라힘을 처치하기 위해 이스라엘 정보부는 오랫동안 정보를 수집해 왔는데 이 일을 담당한 사람이 정보부 중간급 요원 라지(차이 할레비). 라지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2년간 산후르에게 온갖 선심을 쓰면서 그를 자신의 정보원으로 키워 왔다.
라지와 산후르의 관계는 마치 형제나 부자간의 그것으로 라지는 산후르에게 그가 집에서 누리지 못하는 가족적이요 인간적인 사랑과 믿음을 제공, 산후르는 진짜로 라지를 자기 형처럼 느끼면서 그에게 정보를 제공한다.         
영화는 마지막 3막에 이르기 전까지는 마치 경찰의 수사과정을 보여주는 식으로 이어지다가 클라이맥스에 이르러서야 극적 충격을 가한다. 여기서 라지와 산후르 간의 상호신뢰 그리고 이들 각자의 이념과 목적이 큰 시련을 겪으며 얘기가 극적으로 피어나나 때가 늦었다는 느낌이다. 
밀고자와 그를 조종하는 사람 간의 승자 없는 도덕적 딜레마에 보다 충실하지 못하고 두 사람의 행동과정에 치중해 보통 밀고자의 영화로 그치고 말았다. 영화를 보면 밀고자를 만드는 수단은 폭력이나 돈이 아니라 우정 즉 인간관계임을 깨닫게 된다. 마리나 술리만 모두 비배우들로 연기는 괜찮다. ‘오마르’와 비교해 보면 흥미 있을 것이다. 
성인용. 일부극장. ★★★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The Grand Budapest Hotel)

웨스 앤더슨 감독 코미디 범죄액션물


부다페스트 호텔 엘리베이터에 앉은 구스타브 H.와 마담 D.(오른쪽부터).
 뒤 소년은 로비보이 제로.

기발한 아이디어와 독특한 스타일의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쓰고 감독하는 웨스 앤더슨(‘팬태스틱 미스터 팍스’ ‘문라이즈 킹덤’)의 영화로 지적이자 감정적이며 생동감 넘친다. 온갖 장르를 짬뽕한 반 파쇼영화이자 지나간 것을 그리워하는 고즈넉한 향수감 짙은 신기한 작품이다. 
사랑과 살인, 배신과 음모 그리고 도둑질과 우정이 있는 스릴러이자 범죄영화요 또 탈옥과 도주와 추격이 있는 액션영화로 얘기 속의 얘기가 첩첩히 쌓인 여러 갈래의 플롯이 교묘하게 직조됐다. 
국제적 올스타 캐스트의 뛰어난 연기와 함께 오밀조밀한 내용과 촬영과 세트와 의상 등 안팎으로 볼 것이 많은데 앤더슨 팬들이 특히 좋아할 것이다. 그러나 앤더슨 영화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은 다소 혼란스럽다는 느낌을 갖게될 것이다. 앤더슨은 다른 사람들의 영화인 ‘샤이닝’과 ‘스리 스투지스 영화’ 및 채플린의 ‘위대한 독재자’의 일부를 빌려다 쓰면서 이들 작품을 치하하고 있다.
1985년 동유럽의 가상국 주브로브카의 알프스 아래 온천호텔 그랜드 부다페스트. 과거 부자들의 휴양지였으나 지금은 쇠락해 손님이 거의 없는 이 거대한 호텔에 묵은 작가(탐 윌킨슨)가 그가 어떻게 해서 1968년에 이 호텔에 오게 되었는지를 회상하면서 얘기가 시작된다. 
시간은 과거로 돌아가 작가(주드 로)는 이 호텔의 신비에 싸인 주인 제로 무스타파(F. 머리 에이브래햄)로부터 그가 호텔의 주인이 된 내역을 듣는다. 그리고 시간은 다시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동의 고향을 떠나온 수줍고 체하지 않는 소년 제로(토니 레볼로리)는 호텔의 로비 보이. 그는 보라색 턱시도를 말쑥하니 차려 입고 매사에 빈틈이 없는 활기찬 호텔 콘시에르지 구스타브 H.(레이프 화인즈가 완벽한 연기를 한다) 밑에서 일하는데 둘은 상하관계에서 절친한 친구 사이가 된다.
구스타브는 호텔 손님인 돈 많고 고독한 나이 먹은 여자들의 애인 노릇도 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84세난 마담 D.(틸다 스윈튼)의 총애를 받는다. 그런데 마담 D.가 의문의 죽음을 맞으면서 그의 죽음의 침상으로 제로를 데리고 달려간 구스타브는 마담이 자기에게 고가의 그림을 유산으로 남겼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그림을 노리는 사람들은 마담의 아들(에이드리안 브로디)을 비롯한 수많은 일가친척들. 아들은 잔혹한 킬러(윌렘 다포)를 고용해 구스타브를 처치하라고 지시한다. 그리고 구스타브는 엉뚱하게 살인누명을 쓰고 투옥된다. 
구스타브는 자신ㅌ의 누명을 벗기 위해 감방 동료(하비 카이텔)의 도움을 받아 탈옥을 하는데 밖에서 구스타브의 탈옥과 도주를 돕는 것이 제로와 그의 충실한 약혼녀 아가사(셔시 로난). 일부러 엉성하게 만든 탈옥과 도주의 장면이 재미 있다. 앤더슨은 작품의 영감을 오스트리아의 소설가이자 극작가 슈테판 즈바이크로부터 받았다고 말한다. 
R. Fox Searchlight. 아크라이트(선셋과 바인), 랜드마크(피코와 웨스트우드).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구글글래스



3월2일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스파이크 존스가 각본상을 받은 ‘허’(Her-존스 감독)는 가까운 미래 LA에 사는 고독한 젊은 연애편지 대필 작가 디오도어(와킨 피닉스)와 컴퓨터의 인공지능 여인 새만사(스칼렛 조핸슨 음성연기)와의 관계를 그린 공상과학 러브 스토리다.
궁극적인 고독에 관한 얘기로 존스 감독은 온라인으로 데이트를 하고 대화를 텍스트로 대신하는 컴퓨터 없이는 못 사는 현대인들의 생활습관을 악의 없이 희롱하고 있다. 인간 접촉의 필요와 당위성을 새삼 절실히 느끼게 하는 영화로 디오도어(사진)를 비롯해 영화 속의 사람들은 귀에 리시버를 꽂고 다니면서 보이지 않는 상대방과 대화를 나눈다.
인파 속의 행인들이 각기 다른 표정과 제스처를 써가면서 대화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군중 속의 고독을 소슬하게 느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지금 당장 거리에 나가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난 거리에서 혼자서 제스처를 써가면서 마치 배우가 무대에서 독백을 하듯이 중얼대는 사람들을 볼 때면 그들이 꼭 실성한 것처럼 보인다.        
기술의 발달로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편해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기술이 마침내는 인간성을 대치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도 이런 얘기를 한다). 얼마 전 조지 클루니를 인터뷰했을 때 그는 자신의 셀폰을 들어 보이면서 “이 망할 놈의 것 때문에 우리는 이제 더 이상 편지를 쓰지 않는다”고 개탄하기도 했다.
특히 스마트폰처럼 e메일을 주고받고 텍스트 메시지를 보내며 또 사진도 찍을 수 있는 스마트글래스인 구글글래스 시판을 앞두고 크게 우려되고 있는 것이 개인의 사생활 침해다.
구글글래스에 대한 이런 우려와 반감은 급기야 얼마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폭력행위로까지 비화했다. 구글글래스 성능 실험자인 새라 슬로컴(34)이 이 안경을 끼고 왕년의 히피의 터전인 헤이트-애쉬베리에 있는 한 바에 들렀다가 손님들로부터 큰 봉변을 당했다고 최근 LA타임스가 보도했다.
손님들은 자신들의 행동과 모습이 구글글래스에 의해 기록될 가능성 때문에 슬로컴에게 안경을 벗으라고 요구하면서 모욕적인 욕설과 함께 바를 닦는 걸레를 집어던지면서 악의에 찬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시애틀의 한 바에서는 구글글래스 착용을 금지시켰다고 한다.        
진보와 발전에 대한 추구와 미지에 대한 도전은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이다. 이카러스가 있었기에 지금 우주선이 하늘을 나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태양에 너무 가까이 비상하다가 몸에 붙인 깃털과 밀랍으로 만든 날개가 녹아 바다로 떨어져 익사한 이카러스의 죽음은 이런 발전 지향과 함께 오만에 가까운 인간의 지나친 확신이 낳을 수도 있는 부작용을 얘기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눈과 비를 인공으로 만들고 남의 정자를 빌려 아기를 낳고 생명체 복제까지 하고 있다. 아마 지금 어디선가는 인간 창조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신이 되고 싶은 것이다.
기술의 발전은 궁극적으로 이 세상을 유토피아로 만들어줄 것이라는 기대도 있지만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세상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가 될 가능성이 더 크다. 디스토피아에 관한 영화로 권하고 싶은 것이 찰턴 헤스턴과 에드워드 G. 로빈슨(그의 마지막 영화)이 나오는 ‘소일런트 그린’(Soylent Greenㆍ1973)이다.
2022년(8년밖에 안 남았네) 오염된 대기와 지구 온난화로 인한 고온 그리고 인구 포화상태의 식량난에 시달리는 맨해턴을 무대로 전개되는 공상 과학영화다. G.로빈슨이 베토벤의 ‘전원’교향곡을 들으며 이제는 모두 없어진 살아 숨 쉬는 푸른 숲과 야생동물 그리고 강과 바다가 나오는 스크린을 보면서 방조된 자살을 하는 끝부분 장면이 인상적이다.
난 닐 암스트롱이 달에 발을 디뎠을 때도 ‘거긴 왜 가. 그냥 놔두고 감상할 일이지’라고 생각한 퇴행성 인간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수학성적이 엉망이어서 그런지 컴퓨터라는 기계만  봐도 겁이 더럭 난다.
나 같은 사람만 있다면 세상은 아직도 미개한 상태로 남아 있겠지만 구글글래스 끼고 싶은 생각은 전연 없다. 사람들이 모두 로보캅처럼 구글글래스를 끼고 다니면서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찍는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최근 매년 전 미국의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는 보행자들 중 10%가 셀폰으로 문자를 전송하다가 다쳤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모두들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