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7월 13일 월요일

빌리 와일더 감독의 고전걸작 2편


치정 살인극의 두 주인공 요부 필리스(왼쪽)와 보험외판원 월터.

■이중배상 (Double Indemnity)


냉혹하게 아름다운 요부의 탐욕과 파멸


얼음장처럼 차갑게 아름다운 요부가 돈과 욕정에 눈이 멀어 외간남자를 유혹해 자기 남편을 살해하는 치정극으로 빌리 와일더 감독의 1954년 작이다. 역대 최고의 필름느와르 영화 중 하나로 꼽히는 이 영화는 유명 범죄소설 작가 제임스 M. 케인이 실화를 바탕으로 쓴 소설이 원작으로 와일더와 또 다른 유명 범죄소설 작가 레이몬드 챈들러(‘우체부는 항상 벨을 두 번 누른다’)가 함께 각색했다.
빙하의 냉기 속에 불길의 열기를 간직한 살인에 관한 어두운 걸작으로 연기, 각본, 연출, 흑백촬영 및 음악 등 모든 면에서 찬탄을 금치 못하게 만드는 작품으로 에누리 없이 사실적이다.
자기 정부의 총에 맞아 피를 흘리는 보험회사 세일즈맨 월터(프레드 맥머리)가 어둠이 깔린 LA 거리를 거칠게 차를 몰아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어 월터가 자기 회사 사무실에 들어가 녹음기에 자신의 범죄사실을 고백하면서 얘기는 플래시백으로 진행된다.
월터는 어느 날 보험을 팔러 LA 북쪽 로스펠리츠의 한 집에 들렀다가 결국은 자기를 잡아먹고 마는 이 집의 주부인 암거미 같은 필리스(바바라 스탠윅)의 싸늘하도록 치명적인 선정 미와 치밀한 살인계획에 휘말려 든다.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방해가 이 남자의 병약한 아내를 살해하고 결혼한 뒤 남편의 딸의 애인까지 가로 챈 필리스는 내면의 살기를 외면의 아름다움으로 위장한 음모자요 살인녀.
그녀는 젊은 월터를 만나면서 나이 먹고 무미건조한 남편 살해계획을 짜고 남편으로 하여금 생명보험과 사고보험에 들게 한 뒤 월터를 공범자로 유인한다. 역시 냉혈한이요 탐욕스런 월터는 필리스의 맹독성 아름다움에 취해 그녀의 살인계획에 가담, 사고사를 위장해 필리스의 남편을 살해한다.
그러나 보험상환액 조정자인 바턴(에드워드 G. 로빈슨)이 필리스의 남편의 죽음이 사고사가 아니라고 판단, 필리스에게 혐의를 두고 사선을 캐내 가기 시작하면서 두 간부의 범행의 전모가 한 꺼풀씩 벗겨진다. 물론 악인들은 모두 지옥으로 간다.
와일더는 긴장한 힘줄처럼 팽팽하면서 일체의 감정을 배제한 연출로 냉소적인 이야기를 어둡고 아름답게 서술하고 있다. 모든 것이 공백처럼 허무하고 차가운 영화로 특히 사악한 목적을 위해 남자를 이용하는 스탠윅의 싸늘한 비정과 성적 매력은 영화사상 역대 요부들 중에서도 으뜸이라고 할 만하다.
‘이중배상’이 19일과 20일(하오 2시와 7시) 이틀에 걸쳐 할리웃의 차이니스 극장을 비롯해 LA와 인근의 일부 극장에서 상영된다. 필견의 명화이니 놓치지 마시도록 권한다. ★★★★★(5개 만점)


노마(오른쪽)가 조 앞에서 왕년의 자기 영화를 보면서 으스대고 있다.

■선셋대로 (Sunset Blvd.)


환상 위에 세워진 할리웃의 실상 고발


빌리 와일더가 감독한 1950년작 흑백 걸작 ‘선세대로’는 환상과 미혹 위에 세워진 할리웃의 실상과 허상을 통렬하게 고발하고 또 그것을 병적으로 웃어 제친 블랙코미디 드라마다. 죽음으로 시작해 광기로 끝나는 이야기 속에서 죽은 남자와 미친 여자는 다 환상을 쫓던 할리웃 사람들로 이들은 신화와 전설과 영광을 국화빵 찍어내듯 하는 할리웃이 뜯어내버린 상처의 딱지 같은 것이다.
영화는 시작부터 충격적이요 야유조다. 무성영화 시대의 수퍼스타로 자기 과거에 파묻혀 살면서 재기를 꿈꾸는 노마(글로리아 스완슨)를 버리고 떠나는 안 팔리는 각본가인 젊은 기둥서방 조(윌리엄 홀든)가 노마가 쏜 여러 방의 총알을 등에 맞고 저택 풀에 빠진다. 여기서 영화는 죽은 조의 내레이션과 함께 과거로 돌아간다. 
조는 월부금을 못내 자기 차를 회수하러 온 사람들을 피해 선셋대로로 내빼다가 노마의 집에 숨는다. 그리고 노마의 기둥서방이 된다. 조는 노마의 재떨이나 치우는 신세가 되는데 어떻게 해서든지 좋은 각본을 써 성공하려고 애를 쓰나 뜻대로 안 돼 할리웃을 떠나 귀향할 생각마저 한다.      
이런 그에게 힘을 주는 것이 패라마운트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아름답고 착한 베티(낸시 올슨이 오스카 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베티를 사랑하게 된 조가 정신을 차리고 노마를 떠나려고 하면서 그는 노마의 총을 맞은 것. 그리고 노마는 미쳐버린다.
이 영화는 로맨틱하고 우아했던 1920년대 무성영화 시대를 그리워하는 향수감 짙은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에는 무성영화의 거장 에릭 본 스트로하임이 노마의 하인 겸 운전사로 나오고 이밖에도 역시 무성영화 시대의 명 코미디언 버스터 키튼과 당대에 명성을 떨쳤던 가십 칼럼니스트 헤다 하퍼와 명장 세실 B. 드밀도 실명으로 나온다. 영화는 작품과 감독상 등 총 11개 부문에 오스카상 후보에 올라 각본상과 미술상 및 음악상(프란츠 왝스만)을 탔다.
‘선셋대로’ 개봉 65주년을 맞아 21일 하오 7시 Royal 극장(11523 샌타모니카)에서 영화를 상영한다. 스티븐 화버 LA 영화비평가협회 회장의 소개로 상영되고 상영 전 낸시 올슨이 참석해 관객의 질문에 대답한다. (310)478-3836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로맨스 영화의 전설’프랭크 보제이지 감독 회고전


   해머뮤지엄 내 빌 와일더극장서 9월13일까지

찰스 패럴과 재넷 게이너가 주연한 꿈을 꾸는 듯한 로맨스 영화‘제7의 천국’(1927)으로 제1회 오스카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받은 프랭크 보제이지(1894~1962·사진)의 영화 23편이 10일부터 9월13일까지 해머뮤지엄 내 빌 와일더극장(웨스트우드와 윌셔 310-206-8013)에서 상영된다. 철두철미한 로맨티스트로 배우로 할리웃 생활을 시작한 보제이지의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는‘사랑은 모든 것을 것을 정복하다’였다. 내용뿐 아니라 그의 시각 스타일도 화사한 로맨티시즘을 뽐냈는데 많은 영화들이 역경과 난관에 직면한 젊은 연인들의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영화에 찰스 패럴과 재넷 게이너를 자주 사용했는데 1931년‘나쁜 여자’로 두 번째 오스카 감독상을 탔다. 그의 전성기는 1910년대 중반부터 1930년대까지로 주옥같은 로맨스 영화들을 만들었는데 전 생애를 통해 만든 105편의 영화 중 절반 정도가 분실됐다. 이번 회고전은 보제이지의 여러 편의 영화들을 복원한 UCLA 영화 & TV 아카이브가 창립 50주년을 맞아 마련하는 것으로‘릴리옴’(9130)을 비롯해 UCLA가 복원한 10편과 함께 다른 많은 명작 클래식들이 포함됐다.                                        

■ 10일(하오 7시30분)
*‘제7의 천국’(7th Heaven)-파리의 거리 청소원(찰스 패럴)과 홈리스 여인(재넷 게이너)이 후진 아파트의 고미다락방에 사랑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자신들만의 천국을 꾸민다. *‘무기여 잘 있거라’(A Farewell to Arms·1932)-헤밍웨이 소설이 원작. 1차 대전에 참전한 구급차 운전병(게리 퍼)과 간호사(헬렌 헤이즈)의 비극적 사랑.

■ 11일(하오 7시30분)
*‘게으름쟁이’(Lazybones·1925)-농부가 강물에 빠진 모녀를 구해준 뒤 자기 집에서 돌보면서 오랜 세월 후 성장한 딸을 사랑하게 된다. *‘비밀’(Secrets·1924)-나이 먹은 아내(노마 탤마지)가 병든 남편을 돌보다가 잠이 들면서 자신들이 공유했던 비밀들을 꿈꾼다.  

■ 17일(하오 7시30분)
*‘거리의 천사’(Street Angel·1928)-가출한 나폴리의 여인(게이너)과 이 여인을 자신의 뮤즈로 삼는 화가(패럴)의 파란만장한 사랑. *‘릴리옴’(Liliom·1930)-자기를 사랑하는 줄리를 학대하고 그 사랑을 무참히 짓밟아 놓은 순회흥행단의 유객담당자(패럴)가 죽었다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한 가지 선행을 하기 위해 환생한다.

■ 20일(하오 7시30분)
*‘러키 스타’(Lucky Star·1929)-농촌 처녀(게이너)와 부상당한 1차 대전 참전병사(패럴)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전원 멜로드라마. *‘강’(The River·1929)-혼자 강을 타고 모험하는 남자(패럴)가 요부를 만나 뜨거운 사랑에 빠진다.

■ 26일(하오 7시)
*‘나쁜 여자’(Bad Girl·1931)-경제공황 때 젊은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애를 쓴다. *‘비밀’(Secrets·1933)-뉴잉글랜드의 선박회사 사장의 딸(메리 픽포드의 마지막 영화)이 회사 사무원(레슬리 하워드)와 함께 캘리포니아로 사랑의 줄행랑을 놓은 뒤 어려움 속에서도 사랑을 지켜 나간다.

■ 8월7일(하오 7시30분)
*‘남자의 성’(Man’s Castle·1933)-홈리스 여인(로레타 영)이 달동네 터프 가이(스펜서 트레이시)의 집에 들어가 살면서 마다하는 남자와 진정한 관계를 맺어보려고 애쓴다. *‘젊은 미국’(Young America·1932)-사회와 법의 테두리에 사는 두 학교 동창생의 드라마.

■ 14일(하오 7시30분)
*‘내일 이후’(After Tomorrow·1932)-경제공황 때 뉴욕의 달동네에 사는 두 젊은 연인이 결혼하려고 하나 이기적인 주변사람들 때문에 시련을 겪는다. *‘내 마음의 노래’(Song O’ My Heart·1930)-사랑에 실망하고 고향인 아일랜드 시골로 은퇴한 콘서트 가수(아일랜드 태생의 테너 존 맥코맥)가 뜻밖에 자기를 찾아온 과거의 연인으로 인해 재기를 시도한다.

■ 29일(하오 7시30분)
*‘리틀 맨, 왓 나우?’(Little Man, What Now?·1934)-경제적 도덕적으로 붕괴되어 가는 독일 바이마르공화국 시절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젊은 부인(마가렛 설래반)의 드라마. *‘노 그레이터 글로리’(No Greater Glory·1934)-1914년 헝가리. 두 라이벌 소년 거리의 갱이 빈 땅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대결한다. 반전영화.

■ 9월9일(하오 7시30분)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History Is Made at Night·1937)-불행한 결혼에 시달리는 여인(진 아서)이 파리의 멋쟁이 헤드웨이터(찰스 봐이에)와 뜨거운 사랑에 빠진다. 타이태닉 비극을 빌려온 비극이자 코미디. *‘욕망’(Desire·1936)-순진한 미국인 사업가(게리 쿠퍼)의 주머니에 자기가 훔친 보석을 집어넣은 유럽 태생의 우아한 보석도둑(마를렌 디트릭)이 보석 회수를 꾀하면서 둘이 사랑에 빠진다.

■ 12일(하오 7시30분)
*‘세 전우’(Three Comrades·1938)-1차 대전에 참전한 세 전우(로버트 테일러, 로버트 영, 프랜초트 톤)와 몰락한 귀족가문의 젊은 여인(마가렛 설래반)의 관계.    *‘치명적인 폭풍’(The Mortal Storm·1940)-히틀러가 집권했을 때 서로 이념이 다른 두 가족 출신의 연인(제임스 스튜어트와 마가렛 설래반)이 겪는 시련.

■ 13일(하오 7시)
*‘유머레스크’(Humoresque·1920)-성공한 달동네 출신의 유대인 바이얼리니스트가 연인과 결혼 후 1차 대전에 참전, 비극적 일이 벌어지나 사랑의 힘으로 이를 극복한다. *‘Nth 코맨드먼트’(The Nth Commandment·1923)-백화점 여직원이 야심만만한 멋쟁이 남자의 구애를 거절하고 폐병을 앓는 동료 직원 남자와 결혼, 시련을 겪는다. 두 영화에 앞서 보제이지의 감독 데뷔작인 웨스턴 ‘피치 오 챈스’(The Pitch O’ Chance·1915)가 상영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Terminator: Genisys)


막강한 파괴력을 지닌 액체 금속 터미네이터 T-1000역의 이병헌.

액션도 스토리도 다 어디서 본듯한데…


‘터미네이터’시리즈 제5편… 내용도 연기도 참신성 실종

1984년 그의 나이 37세 때 자기를 수퍼스타로 만들어준 ‘터미네이터’ 제1편에 나와 “아이 윌 비 백”(나 돌아올 거야)이라고 말한 뒤 속편을 통해 자꾸 돌아오고 있는 전직 가주 지사 아놀드(아니) 슈워제네거가 관객에게 상의도 없이 또 돌아온 ‘터미네이터’ 시리즈 제5편으로 과거 보고 들은 얘기를 재탕 5탕한 영화다.
아니는 주지사 자리를 떠난 뒤 스크린에 컴백, 지금까지 총 6편의 액션영화에 나왔지만 모두 흥행서 실패했는데 과연 제작비 1억7,000만달러짜리 이 난장판 영화를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매우 궁금하다. 
아니는 67세이지만 아직도 신체 건강한데 그렇다고 7순이 다 된 나이에도 계속해 소음과 파괴의 불협화음과도 같은 영화들에 나와 체면을 구기는 것을 보면 “이제 그만 은퇴하세요”(적어도 또 같은 액션영화에서만 이라도)라는 말을 해 주고 싶은 심정이다. 
이 영화는 내용과 액션이 모두 지난 영화들을 마구 뒤섞어 잡탕을 만든 것으로 모든 것이 보고 들은 것이어서 구태의연하고 식상하다. 도무지 참신성이라곤 없는 나태한 영화로 배우들의 연기가 다 1차원적이요 음악도 단조롭고 귀에 거슬린다. 상영시간 125분이 길기도 한데 액션영화가 왜 그렇게 플롯이 복잡한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한국 팬들에게 있어 이 영화에서 하나 볼만한 것은 이병헌이 파괴가 거의 불가능한 모양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액체 금속 킬러 터미네이터인 T-1000로 나온 것. 그는 시리즈 1편에서 T-1000으로 나온 로버트 패트릭의 바톤을 받아 무표정으로 날렵한 연기를 한다. 인터뷰에서 만난 아니도 이병헌을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좋은 새 식구라면서 “그의 정확성과 속도감에 감탄했다”고 칭찬했다.
제5편은 특히 제1편의 내용과 장면을 여러 면에서 베껴 먹었다. 1997년 핵폭탄이 터져 30억 인구가 멸살된다. 이어 2029년. 스카이넷 휘하의 터미네이터들과 존 카너(제인슨 클락)가 지휘하는 인간들 간에 치열한 교전이 벌어지면서 인간의 승리가 목전에 다다랐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적이 인류의 구원자인 존을 낳을 어머니 새라(에밀리아 클락)를 죽여 존이 태어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막강한 파괴력을 지닌 터미네이터 T-1000을 1984년으로 보냈다는 것이 알려진다.
이에 존이 T-1000을 처치하기 위해 자기가 터미네이터들로부터 구해 전사로 키운 카일(자이 코트니)을 역시 1984년으로 돌려보낸다. 과거로 돌아간 카일이 새라를 만나는데 새라의 새로운 동지는 새라가 팝스라 명명한 나이 먹은 터미네이터(슈워제네거). 이들 셋이 집요하게 자기들을 죽이려고 쫓아오는 T-1000을 맞아 보고 또 본 요란한 액션이 벌어진다.
그리고 여차여차해 카일과 새라는 인류의 세상종말이 올 2017년으로 미래여행을 해 비극을 막으려고 필사의 노력을 한다. 영화 끝에 또 속편이 나올 것 같은 기미를 보이는데 “아니, 플리즈 돈 에버 컴백 어겐”이다. 앨란 테일러 감독. PG-13.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매직 마이크 XXL (Magic Mike XXL)


마이크(오른쪽서 두 번째)와 ‘킹스 오브 탬파’팀이 춤을 추고 있다.

몸짱 남성들이 펼치는 로드무비


스티븐 소더버그(그는 이번에는 촬영과 편집만 맡았다)가 감독하고 매튜 매코너헤이와 채닝 테이텀이 나온 남성 스트리퍼들의 우정과 춤에 대한 열정을 그린 히트작 ‘매직 마이크’의 속편으로 얘기가 지극히 빈약해 도무지 드라마의 재미를 못 느끼겠다.
그냥 신체 건강한 남자들이 몸 자랑하면서 철딱서니 없는 애들처럼 장난하는 영화로 잘 생기고 육체미 좋은 남자들을 볼모로 여성 팬들에게 관람을 구걸하는 영화다. 그런데 사실 이 영화는 여성을 비하하고 모독하고 있다.
주인공들의 몸처럼 무지막지할 정도로 내용과 서술방식이 서툰데 그럴 줄 알았는지 전편에서 달라스로 나온 매튜 매코너헤이는 속편에 안 나온다. 천박한 영화로 보고 있자니 몸이 찌뿌드드해 질 정도로 지루하다.          
전편에서 친구들과 함께 스트리퍼 팀 ‘킹스 오브 탬파’를 만들어 빅 히트를 했으나 은퇴한 마이크(테이텀-이 영화는 실제로 댄서였던 그의 경험을 참고했다)는 애인과도 헤어지고 시작한 가구제조업도 잘 안 돼 실의에 빠져 있다. 그리고 옛 친구들과의 액션과 모험 또 춤에 대한 정열이 그리워 몸살이 날 지경이다.
친구들은 켄(맷 보머)과 빅 딕 리치(조 만자니엘로)와 타잔(케빈 내쉬)과 티토(애담 로드리게스) 그리고 팀의 MC인 토비아스(가브리엘 이글레시아스). 이들은 팀을 해체하기로 결정하고 해체 전 마지막으로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머틀비치에서 열리는 남성 스트리퍼 챔피언전에 나가기로 한다. 그리고 여기에 마이크를 초청한다.
그래서 이들이 탬파에서부터 머틀비치까지 가는 로드무비로 가다가 여차여차해 잭슨빌과 사반나에 들르면서 과거의 지인과 관계를 새로 하고 또 새 사람들과 만난다. 팀이 가다가 들르는 곳은 마이크의 애인이었던 롬(제이다 핑켓 스미스-윌 스미스의 아내)이 경영하는 흑인여성 전용 남성 스트리퍼 클럽과 빅 딕 리치가 탬파에서 만났던 젊은 여자의 사반나에 있는 집.
그런데 팀이 사반나의 집에 들어서니 젊은 여자의 중년의 어머니 낸시(앤디 맥다월이 어쩌자고 이 지경인가)와 그녀의 친구 4명이 포도주를 마시면서 시간을 죽이다가 신체 건강한 남자들을 보고 너무 좋아 어쩔 줄을 모른다. 이들은 다 혼자 사는 여성들로 남자의 몸이 갈급해 몸을 비비 꼰다. 이어 팀은 목적지에 도착해 발가벗다시피 한 몸으로 원맨쇼를 과시한다. 그레고리 제이캅스 감독. R. WB.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샬리즈 테론




“남자보다 강한‘진짜 여자’보여주려 했죠”


넉달간 매일 14시간 촬영 배우생활 20년간 가장 힘들어
속편 위한 속편이 아닌 바른 이유 있는 속편엔 출연할 것


황폐화한 미래 세상에서 벌어지는 액션 모험영화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흉악한 독재자의 생식을 위한 젊은 여자 노예들을 대형 트럭에 숨긴 채 이상향을 향해 도주하는 여전사 퓨리오사로 나온 샬리즈 테론(39)과의 인터뷰가 할리웃에 있는 사이렌 스튜디오에서 있었다. 이 영화는 멜 깁슨 주연으로 1979년에 개봉된‘매드 맥스’의 제4편 격으로 감독은 제1편을 만든 호주의 조지 밀러가 다시 맡았다. 주인공은 매드 맥스(탐 하디)라기보다 왼 팔이 금속 팔인 퓨리오사라고 해야 옳다. 따라서 여권신장의 영화이기도 하다. 뒤로 딴 금발에 하이힐을 신은 장신을 짧은 스커트로 더욱 강조한 테론은 얼음처럼 차가운 미를 뽐냈는데 자세가 아주 당당했다. 처음에는 다소 긴장한 듯이 뻣뻣한 태도를 보였으나 시간이 가면서 제스처와 함께 몸을 흔들면서 농담까지 섞어 질문에 차분하게 대답했다.  

당신은 첫 차는 무엇이었나.
“1980년제 갈색 닷선이다. 난 운전하기를 좋아하지만 신제품이나 멋진 차보다는 편한 차를 몰고 다닌다.”    
     
일을 안 할 때는 어디서 무엇을 하는가.
“난 여러 다른 것들을 좋아한다. 사막과 해변을 좋아하고 산과 정글도 좋아한다. 등짐을 지고 하이킹과 산길을 따라 걷는 것도 좋아한다. 여러 곳을 찾아가 탐험하기를 좋아한다.”

이 영화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강력한 여자를 찬양하고 있는데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조지 밀러는 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영화는 세상 종말 후의 얘기지만 사실 우리의 현재 얘기라고 해도 좋다. 조지는 여자들은 어려운 환경과 재앙 속에서 남자만큼 잘 견뎌내지 못한다는 통념을 이 영화로 지워버렸다. 난 영화에서 사회적으로 쓸모없는 여자로 나오지만 결국 장한 여자임이 드러난다. 조지는 그런 나를 통해 어느 것이 진짜 여자인지를 보여주려고 했다고 본다.”

퓨리오사 역을 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가.
“조지는 영화를 매우 통렬한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 아울러 그는 영화를 몰고 가는 동력을 감정에 두고자 했다. 따라서 우린 대사를 별로 많이 필요로 하지 않았다. 이 영화에 감정이 없었다면 단순한 자동차 추격영화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퓨리오사를 단순히 여전사로만 표현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감정적으로 갈등을 겪는 살아 있는 여자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부모와의 관계는 어떠한가.
“우리 가족은 어머니날이나 아버지날 또는 생일과 같은 어느 하루에 특별히 가깝게 지낸다는 것은 일년의 나머지 날들은 소홀히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생활철학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 날들도 지켜야겠지만 어머니는 내가 자랄 때 내게 매일이 다 귀중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다.”

퓨리오사는 여자 모세라고 봐도 좋겠는데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일리가 있다. 퓨리오사가 하는 일을 보면 모세의 행동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왜 퓨리오사는 목숨을 내걸고 핍박 받는 젊은 여자들을 구한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그것이 퓨리오사가 자신을 구하고자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세상 종말 후의 지구는 지극히 혹독한 지경으로 생존만이 중요한데 그런 환경에서 자신을 돌본다는 일은 참으로 잔혹한 일이다. 내가 맥스와 퓨리오사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은 그 누구도 상관 않고 자기의 생존법칙에만 따라 행동하는 이단적인 전사들이라는 점 때문이다.”

당신은 남아프리카공화국 태생으로 그 곳에선 여자들이 강하고 그들이 생활의 근본이라고 아는데 그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는 삶에 있어 유연성을 지니고 스스로 모든 일을 하도록 배우며 자랐다. 그러나 때론 가족이나 친구들이 자신들이 남에 의해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느끼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난 한 동안 이것에 대해 달가워하지 않았는데 이젠 그것을 즐길 줄 알게 됐다.”

당신의 유머감각에 대해 말해 달라.
“나 아주 이상한 유머감각을 갖고 있다. 긴장을 하면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고 크게 후회를 하곤 한다. 몇 주 전에 오바마 대통령을 만났을 때도 그랬는데 대통령에게 너무나 터무니없는 소리를 해 이 기회를 통해 사과를 하는 바이다. 그러나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밝힐 수가 없다.”
왼팔이 금속 팔인 퓨리오사가 총을 들고 적과 맞서고 있다.

당신은 퓨리오사가 쉽게 남을 믿으려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했는데 실제로는 어떤가. 
“아까도 말했지만 남아공에선 어렸을 때부터 자립하고 독립하도록 교육을 받아 나도 남의 도움을 요구하지 않는 편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려면 우선 그 사람을 믿어야 한다. 타인에 대한 진정한 믿음이란 자신을 완전히 무방비상태로 두었을 때에서야 가능하다. 그런데 그런 것이 내겐 자연스럽지가 못하다. 그래서 난 요즘 그런 나를 고쳐 보려고 노력중이다.”

아이의 어머니로서 당신은 인류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일단 아이를 갖게 되면 책임감이 강해진다. 난 내 아이에게 이 세상을 보다 나은 곳으로 남겨주고 싶다. 자식은 부모에게 삶의 추진력과 영감을 고취시켜 준다. 내 아이는 내가 하고 있는 에이즈퇴치 운동에 큰 활력소가 되고 있다.”

당신은 곧 40세가 되는데 느낌이 어떤가.
“기분 좋다. 여자들이 40세가 되면 피부의 탄력성을 비롯해 잃어버리는 것들만 생각하고 얻는 것은 생각하지를 않는다. 나이를 먹으면서 보다 차분한 이해력을 갖게 되고 아울러 자신을 보다 잘 이해하게 됐다. 20대엔 느껴보지 못한 자신에 대한 편안함을 감지하게 되더라. 건강하게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이 영화 속편에 안 나오겠다고 했다는데 사실인가.
“그것은 과장된 보도다. 난 단지 속편을 위한 속편이 아니라 바른 이유가 있어야 나오겠다고 말했을 뿐이다.”

션 펜이 당신에게 주는 기쁨에 대해 말해줄 수가 있는가.
“션이 나를 사랑하게 된 이유는 내가 삶을 사랑하고 행복하며 또 충족된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가 서로의 삶을 보다 나은 것으로 만들어주고 있어 션을 사랑하고 또 그와의 관계를 사랑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서로 상대방의 공허를 메워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둘 다 아주 건전한 사람으로 둘이 함께 아주 멋있는 삶을 누리고 있다. 이 나이에 아름다운 아들의 어머니가 되고 그리고 내 인생의 사랑을 만나고 또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나는 참으로 운이 좋은 사람이다.”

맡은 역을 위해 신체단련을 얼마나 했는가.
“영화의 스틸을 보고나서야 내 목이 풋볼선수의 것처럼 굵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팔 굽혔다 펴기와 역기를 들었는데 따라서 상체는 튼튼해진 반면 하체는 게을리해 꼭 포파이처럼 몸이 변했다. 신체훈련과 영화촬영 모두가 너무나 힘들었다. 130여일간을 매일 14시간씩 촬영을 했는데 매일 힘을 유지하기 위해 45분간 훈련을 받았다. 배우생활 20여년간 이렇게 힘들어 보긴 처음이다. 특히 무게가 10파운드가 넘는 금속 팔을 영화 내내 목과 어깨와 몸에 달고 액션을 하느라 기진맥진 했었다.”           

퓨리오사는 수퍼우먼이라고 보는데 수퍼우먼 영화에 나올 생각이 있는지.
“난 퓨리오사가 수퍼우먼이라고 보질 않는다. 난 그런 아이들 영화에는 관심이 없고 의사 역이 하고 싶다.”

탐 하디와 육박전을 벌이는 장면은 얼마나 힘들었나.
“그는 인정사정없더라. 그 앞에선 결코 약골이 될 수가 없었다. 매우 힘들었는데 스턴트 책임자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 당신이 하고 있는 자선사업에 관해 말해 달라.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의 에이즈 예방이다. 그 곳에 사는 아이들이 사춘기가 돼 첫 성경험을 할 경우 50%가 에이즈균에 감염될 수 있다는 사실은 끔찍한 일이다. 그들을 돕기 위해선 국제적으로 보다 많은 시간과 에너지와 자금이 필요하다. 유엔도 이같은 사실을 마침내 인식하고 올해부터 우릴 적극적으로 돕기로 했다. 특히 위험한 것은 15~22세 여자들이다. 우리의 계몽과 노력으로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모유를 통해 아기가 에이즈균에 감염되는 경우가 거의 없어졌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킬러즈’


어네스트 헤밍웨이가 1927년에 쓴 살벌할 정도로 직설적인 단편소설 ‘킬러즈’(The Killers)는 삶을 포기한 남자가 묵묵히 체념적으로 죽음을 맞는 운명적인 이야기다. 이 소설은 도대체 왜 이 사나이가 자기를 죽이러 온 살인자들을 환영하다시피 맞았는지를 캐어 들어가는 연역법적인 내용이다.      
이 글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이 독일서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로버트 시오드마크 감독의 동명영화(1946)다. 살인과 강도와 남자를 유혹해 죽음으로 유인하는 여자의 이야기로 필름 느와르의 장르를 정립해준 작품이다. 잔뜩 잡아당긴 활시위처럼 간장감이 팽팽하고 거칠면서도 시적인 감수성을 지닌 멋있는 영화다.
영화는 당시 무명씨였던 곡마단 곡예사 출신의 버트 랭카스터(32)의 스크린 데뷔작으로 그는 여기서 실존주의적 짐승과도 같은 역량을 과시, 대뜸 스타가 되었다. 랭카스터는 이 암담한 분위기의 영화에서 내면에 잠복한 힘을 지닌 어두운 남성미를 보여주는데 신선할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다. 
랭카스터는 헤밍웨이의 팬으로 그의 소설은 다 읽어 더욱 주인공 스위드의 내면 연기를 묵직하면서도 차분하게 해낼 수 있었다고 후에 술회했다. 둘 다 터프 가이의 이미지를 지녔던 헤밍웨이와 랭카스터가 화면에서 호흡을 함께 한 작품이라고 하겠다.
두 킬러가 간이식당에서 스위드의 숙소를 묻는 빛과 그림자의 대조가 강렬한 첫 장면부터 보는 사람을 영화 안으로 깊이 잡아끈다. 후에 ‘벤-허’의 음악을 작곡한 헝가리 출신의 미클로스 로자의 음악이 시종일관 운명을 재촉하는데 싸구려 호텔방에 드러누워 있던 스위드는 체념한 상태로 방문을 박차고 들어온 킬러들의 총알을 빗발처럼 맞으며 숨진다.
여기서 이야기는 스위드의 생명보험 금액을 지불해야 하는 보험회사 수사관(에드몬드 오브라이언)이 스위드의 과거의 삶을 재구성하면서 과거로 돌아간다. 전직 권투선수였던 스위드는 손을 다쳐 링에서 일찍 은퇴한 뒤 범죄세계 속에 발을 디디면서 현금수송차 강탈에 참여한다. 그를 범행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치명적인 여자(femme fatale)가 범죄단 두목의 요염한 정부 키티(에이바 가드너).
스위드는 검은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담배연기를 자욱이 내뿜으면서 피아노 반주에 맞춰 허스키한 음성으로 ‘사랑을 더욱 알게 될수록’(The More I Know of Love)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키티를 보고 첫 눈에 마음을 빼앗긴다(사진). 키티는 스위드에게 현금수송차를 턴 뒤 현금을 챙겨 둘이 함께 먼 곳으로 튀자고 제의, 봉 같은 남자는 요부의 간계에 넘어간다. 그러나 돈과 보석에 눈이 먼 키티는 스위드를 배신하는데 결국 악인들은 다 지옥으로 간다.   
이 영화는 그 때까지 섹스 심벌로만 알려졌던 가드너가 처음으로 극적인 역을 맡아 연기력을 과시한 작품이기도 하다. 매우 육감적인 작품으로 각본은 모두 감독인 리처드 브룩스와 존 휴스턴이 썼으나 크레딧에는 앤소니 베일러가 올랐다.
‘킬러즈’는 1964년 단 시겔 감독(그는 원래 1946년도 영화의 감독으로 선정됐었으나 계약문제로 불발됐다)에 의해 새디스틱한 총천연색 영화로 리메이크 됐다. 두 영화는 20년의 사회변화를 뚜렷이 반영하듯 완전히 다른 모습인데 모든 면에서 흑백판이 낫지만 신판도 속도감 있고 날카롭고 흥미 있다.
당초 이 영화는 NBC-TV에 의해 네트웍 사상 최초의 TV 영화로 제작됐으나 매우 폭력적인 데다가 케네디 암살 이후여서 극장용으로 나왔다. 나는 이 영화를 중앙극장에서 봤는데 리 마빈, 존 캐사베티즈, 로널드 레이건 및 앤지 디킨슨 등 호화 캐스팅과 긴장감 있고 빠른 진행 그리고 음모와 배신과 죽음의 얘기가 화려한 신파극 못지않아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난다.
영화는 전직 자동차 경주선수 자니를 총으로 살해한 찰리(마빈)와 그의 동료 킬러 리(클루 구래거)가 태연히 죽음을 맞은 자니의 태도가 궁금해 그 까닭을 캐들어 가면서 자니의 과거를 재구성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신판은 레이건의 할리웃과의 고별작품으로 그가 냉정한 범죄단 두목이라는 최초의 악역을 맡은 영화다. 그런데 레이건은 후에 악역을 맡은 것에 대해 후회했다고 하는데 영화 개봉 2년 후 가주 지사로 당선됐다. 
레이건은 범죄 후 도주용 운전사로 쓰려고 자니(캐사베티즈)를 유혹해 범죄에 끌어들이는 요부 쉴라(디킨슨)의 남편 잭으로 나오는데 디킨슨은 자기 혼자 살아남으려다가 레이건에게 귀싸대기를 얻어맞는다. 레이건은 끝에 자기가 고용한 킬러 찰리의 총알을 맞고 황천으로 간다.
마빈의 위풍당당한 자태와 냉소적인 대사가 일품인데 총에 맞아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그가 잭을 총으로 쏴 죽인 뒤 “살려 달라”고 애걸하는 쉴라에게 내뱉는 “숙녀씨, 나 시간 없어요”라는 대사가 기차게 멋있다. 크라이티리언(Criterion)이 두 영화를 함께 묶은 Blu-ray와 DVD를 출시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두 번 죽은 사나이



영국 작가 그래엄 그린이 각본을 쓰고 영국 감독 캐롤 리드가 연출한 범죄와 우정과 배신의 드라마 ‘제3의 사나이’(The Third Man·1949)는 모든 것이 완벽한 불길한 분위기의 필름느와르다. 수수께끼 같고 유령과도 같은 주인공 사나이 해리 라임과 비엔나 지하 하수구 안에서의 음습하고 드러매틱한 도주와 추격, 사람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드는 명암을 뚜렷이 이용한 삐딱한 각도의 흑백촬영 및 부추기듯 몰아대다가 때로 비탄조로 숨을 죽이는 지터음악 등이 절대적 조화를 이룬 빼어난 영화다. 
흥미진진한 내용과 플롯과 화면의 완벽한 구성과 멋있는 연기 그리고 인물들만큼이나 중요한 전쟁의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는 전후 비엔나의 모습(6.25 후의 서울이 생각난다)과 함께 영화의 수면 아래에 잠겨 있는 못 이룰 사랑이 있는 작품으로 한 번을 보나 열 번을 보나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하는 명화다.
나는 최근에 이 영화의 각본을 읽었는데 냉소적인 대사가 많은 글이 마치 하드보일드 형사소설처럼 간결 명확하면서도 강건하다. 어둡고 운명적인 로맨틱한 분위기가 작품의 때인 으스스하고 흐린 2월의 날씨처럼 몸 안으로 스며드는 영화는 캐롤 리드의 해설로 시작된다. 이와 함께 안톤 카라스가 작곡하고 연주하는 지터음악이 마치 이야기의 등을 떠밀듯이 맹렬하게 현을 뜯는다.
‘오클라호마 키드’와 ‘샌타페의 외로운 기수’ 같은 싸구려 웨스턴 소설작가로 무일푼의 술꾼이요 백수건달 스타일의 할리 마틴스(조셉 카튼)가 죽마고우인 해리 라임(오손 웰스-해리는 그린이 알고 지내던 영국인 소련 첩자 킴 필비를 모델로 했다-사진)의 초청을 받고 비엔나에 도착한다. 비엔나는 전승국들인 미·영·불 및 소련이 4개 지구로 분할해 관리하고 있다. 
할리는 도착 당일 해리의 아파트 관리인으로부터 해리가 며칠 전 교통사고로 사망했는데 오늘이 장례일이라는 말을 듣고 장례식이 열리는 중앙묘지로 간다. 그는 여기서 모자를 쓰고 코트를 입은 해리의 애인으로 신비감이 감도는 체코 태생의 연극배우 안나(알리다 발리)의 옆모습을 훔쳐본다.           
그리고 할리는 역시 장례식에 온 영국군 경찰 캘로웨이 소령(트레버 하워드)으로부터 해리가 군수물자 암거래상으로 희석한 페니실린을 팔아 이를 사용한 병든 아이들이 죽거나 불구가 되게 한 사악한 범죄자라고 알려준다. 이에 할리는 친구의 누명을 벗기기로 결심하고 해리의 사고사를 파 들어가다가 교통사고 직후 쓰러진 해리를 옮긴 세 명의 남자 중 신원이 불분명한 제3의 사나이가 누구인지를 찾아내기 위해 생전 해리를 알던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 심문한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안나로 할리는 안나와의 만남을 이어가면서 서서히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이 영화는 필름느와르의 특징 중 하나인 그늘진 사랑의 흔적이 역연한데 가망 없는 사랑을 막연한 그리움의 눈길과 텅 빈 얼굴 표정으로 표현하는 할리의 측은한 러브스토리라고 해도 되겠다. 결국 할리는 악에 대한 응징과 함께 안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친구를 배신한다.
영화의 주인공인 해리는 영화가 시작된 지 1시간 후에야 나타난다. 모자를 쓴 채 두꺼운 외투의 깃을 올리고 장난기 있는 음모자의 미소를 띠며 남의 집 문간에 불쑥 나타난 해리를 빛과 어두움을 교차해 가며 찍은 촬영이 아찔하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클라이맥스는 비엔나의 지하 미로 같은 하수구에서 벌어지는 연합군 경찰과 해리 간의 쫓고 쫓기는 긴박한 추격전. 첨벙첨벙 소리를 내면서 하수를 밟고 뛰어 달아나는 해리의 실물보다 훨씬 큰 그림자와 땀 흘리듯 물이 흘러내리는 하수구 벽을 급작하게 비추는 플래시라이트 그리고 무거운 코트를 입은 채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도주하는 해리의 불안한 눈동자와 안면근육 및 맨홀 뚜껑을 필사적으로 들어 올리려는 해리의 손가락 등을 찍은 로버트 크래스커의 표현주의적 촬영은 조명을 신의 솜씨로 다룬 시각적 경이다. 그는 이 영화로 오스카상을 탔다. 그런데 비엔나에서는 현재 이 영화를 본 딴 ‘제3의 사나이’ 하수구 관광이 인기라고 한다. 
영화의 라스트 신은 영화사상 가장 멋 있고 아름다운 장면이다. 두 번 죽은 사나이 해리의 두 번째 장례 후 수레에 기대 선 할리를 본 척도 안 하고 나신의 떡갈나무가 길 양옆으로 늘어선 중앙묘지의 길을 안나가 말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뚜벅뚜벅 걸어 지나 간다. 카메라가 안나를 멀리서부터 가까이까지 따라가면서 찍은 이 장면은 우수가 가득히 배인 로맨틱한 라스트 신이다.  원래 그린이 쓴 각본의 마지막은 할리와 안나가 결합되는 해피 엔딩이었으나 영화의 미국측 제작자인 데이빗 O. 셀즈닉이 우겨 행복과 거리가 멀게 고쳤다. 그런데 중앙 묘지에는 해리와 함께 베토벤과 브람스와 슈베르트도 묻혀 있다.
나더러 무인도에 표류할 경우 영화 딱 한 편을 가지고 간다면 어느 것을 고르겠냐고 물으면 서슴없이 ‘제3의 사나이’를 고르겠다. ‘제3의 사나이’가 웰스의 출생(5월6일) 100주년을 기념해 4K로 복원돼 9일 까지 뉴아트극장(11272 샌타모니카)에서 상영된다. (310-473-8530)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