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10월 6일 목요일

‘맥베스’




야망과 권력, 음모와 배신과 살인 그리고 죄의식과 광기가 있는 오페라 ‘맥베스’(Macbeth^사진)는 베르디가 작곡한 셰익스피어의 세편의 연극 중 최초의 것이다. 나머지 둘은 ‘오텔로’와 ‘팔스타프’. 오페라 프로그램 노트에 의하면 베르디는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도 오페라로 만들려고 스케치까지 했으나 완성하지 못했다.
오페라 ‘맥베스’는 연극처럼 깊고 어둡고 강렬하면서 드라마틱하다. 지난 22일 LA 다운타운의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언에서 공연된 LA오페라의 ‘맥베스’를 보면서 느낀 점은 극과 오페라의 폭 넓은 스케일과 함께 베르디의 음악이 참으로 훌륭하다는 것이었다.
노래도 노래지만 음악이 연극이 표현하고자하는 모든 내성과 감정을 다양하고 풍성하게 드러내 오페라의 음감에 깊이 젖어들었다. 장엄하고 음산하며 쾌활하고 희롱하듯 즐겁고 또 서정적이면서 비감하게 연극의 내용을 마음껏 구현한 음악이다. LA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 제임스 콘론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가 이같은 음악을 무성한 삼림처럼 질감 있고 다변하게 연주했다.        
맥베스역의 은퇴를 모르는 사나이로 LA오페라의 총감독이기도한 플라시도 도밍고와 간교하고 표독스런 레이디 맥베스 역의 메조-소프라노 에카테리나 세멘추크를 비롯해 맥베스의 동료장군 방코 역의 로베르토 탈리아비니 및 끝에 가서 맥베스와 결투를 벌이는 맥더프 역의 아르투로 샤콘-크루스 등이 모두 노래를 잘 불렀지만 특별히 감탄할만한 음성들은 아니었다.
다만 나이 75세에도 무대를 가득 채우면서 청아한 음성을 구사하는 도밍고의 에너지가 놀랍고 세멘추크의 안개가 낀 듯한 음성이 인상적이었다. 도밍고는 처음에 바리톤으로 시작했으나 곧 이어 테너로 바꿔 활동하다가 6년 전에 바리톤으로 돌아갔다.
이번 공연에서 심하게 눈에 거슬렸던 것은 맥베스에게 스캇틀랜드의 왕이 된다고 예언을 한 마녀들이다. 연극에서는 마녀가 세 명인데 다르코 트레스냑이 연출한 이 오페라에서는 아홉 명의 긴 꼬리를 한 피부가 벗겨진 암컷 인쥐 같은 마녀들이 극중 내내 무대를 차지하면서 때로 광대처럼 굴어 극과 음악을 심하게 훼손하고 있다.
“삶은 바보가 말한 소리와 분노로 가득 찬 무의미한 얘기”라는 맥베스의 유명한 독백(윌리엄 포크너는 이 독백에서 따 자기 소설 제목 ‘The Sound and the Fury’-‘음향과 분노’로 썼다)이 있는 ‘맥베스’는 권력에 대한 야심에 가득 찼으나 머뭇거리는 스캇틀랜드의 장군 맥베스가 간악한 아내 레이디 맥베스의 사주에 따라 던칸 왕을 살해, 옥좌에 오르나 결국 부부가 함께 멸망하고 마는 얘기다.
레이디 맥베스도 말했듯이 “권력의 길이란 악의 씨가 뿌려져있어” 그것을 찬탈하려면 피를 보게 마련이다. 셰익스피어의 리처드3세와 한국의 군부쿠데타를 일으킨 군인들도 그랬다. 무서운 것이 여자라고 엉거주춤하는 맥베스를 “비겁자”라고 질책하며 던칸 왕을 죽이라고 독촉하는 것이 레이디 맥베스다.
제1막에서 레이디 맥베스가 남편의 편지를 읽는 장면은 처음에 노래가 아닌 낭독으로 시작된다. 프로그램 노트에 의하면 베르디는 오페라에 강한 극적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이런 처리를 했다. 베르디는 과거 노래 위주의 오페라 테두리에서 벗어나 극을 음악만큼이나 비중 있게 다루기 위해 레이디 맥베스는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해야한다. 거칠고 공허하고 답답하고 악마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음악과 드라마를 함께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베르디와 동시대인인 바그너의 ‘뮤직 드라마’가 생각난다.
오페라는 맥베스와 맥더프의 칼싸움으로 절정에 이른다. 맥베스는 맥더프의 칼에 찔려 죽는데 물론 그 죽음은  ‘오페라적 죽음’이어서 맥베스는 치명상을 입고도 제 할 말 다 하고 죽는다.
셰익스피어의 많은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졌듯이 ‘맥베스’도 여러 번 영화화했다. 그 중에서 유명한 것이 오손 웰즈가 감독하고 주연한 흑백영화(1948)다. 레이디 맥베스 역은 자넷 놀란이 맡았는데 촬영과 무드와 연기 등이 뛰어난 작품이다. 또 로만 폴란스키도 존 핀치와 프란시스 아니스를 써 영화(1971)를 만들었고 작년에는 마이클 화스벤더와 마리옹 코티야르가 주연한 ‘맥베스’가 나왔다.
그러나 ‘맥베스’ 영화 중 최고의 걸작은 아키라 쿠로사와가 내용을 사무라이영화로 변용한 ‘피의 왕좌’(Throne of Blood 1957)이다. 도시로 미후네가 맥베스 역을 고전미를 지닌 이수주 야마다가 레이디 맥베스 역을 한 이 흑백영화는 일본의 극 노와 가부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촬영과 화면구성과 의상 및 연기 등이 뛰어난 명화다. 마지막에 갑옷을 입은 미후네가 공포에 질려 황소 눈을 한 채 빗발같이 쏟아지는 화살을 맞으며 죽는 장면이 장렬하다.
오페라 ‘맥베스’는 10월 5일, 8일, 13일(하오 7시30분)과 16일(하오 2시30분)에 공연하며 13일 공연은 산타모니카 피어와 사우스파크 게이트에서 야외 스크린으로 무료 관람할 수 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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