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10월 20일 월요일

퓨리(Fury)

탱크‘퓨리’ 대원들 보이드(왼쪽부터), 노만, 트리니와 그래디. 맨앞이 단(브래드 핏).

정이 넘치는 사내들의 ‘쇠맛’나는 전쟁액션


오래간만에 보는 튼튼한 근육질의 2차 대전 영화로 마치 옛날에 할리웃이 많이 만든 전쟁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군더더기 없이 사납고 거칠고 잔인하며 폭력적이면서도 인간성과 감정이 있는 남자들의 영화로 브래드 핏을 비롯해 배우들의 연기도 좋다.
극적으로 강렬한 쇠 맛이 나는 작품인데 결점이라면 마지막 램보 식의 전투장면. 자살이나 마찬 가지인 전투를 반드시 고집해야 하는 이유를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에 불구하고 힘찬 흥분감과 전쟁 액션을 즐길 수 있는 잘 만든 영화다.
1945년 4월 독일전선. 산전수전 다 겪은 고참상사 단(핏)이 이끄는 탱크(포신에 분노를 뜻하는 ‘퓨리’라고 써 있다)에는 타이프병 출신의 신참 보조운전사 노만(로간 러만)과 포수로 신심이 깊은 보이드(샤이아 라부프)와 인간짐승 같은 포탄장전수 그래디(존 번달) 및 멕시칸 아메리칸 운전수 트리니(마이클 폐냐)가 타고 있다.
영화는 이들이 투입된 전투장면과 개개인의 성격묘사와 전투와 전투 사이의 휴지기간에 있는 짧은 드라마를 고루 섞어 진행된다. 겉으로는 사납지만 안으로는 깊고 인간적인 단(이런 군인은 전쟁영화의 상투적인 인간이다)은 훈련 받은 지 두 달밖에 안 되는 노만을 호되게 단련시킨다.
영화에서 가장 아름답고 감정적이면서 또 비극적이요 가슴 깊이 파고드는 부분은 ‘퓨리’가 맹활약해 점령한 작은 도시의 아파트 내 장면. 독일 말을 잘 하는 단이 노만을 데리고 들어간 아파트에는 독일 부인과 그의 질녀 엠마(알리시아 본 리트버그가 감동적인 연기를 한다)가 겁에 질려 있는데 이들 4명의 인간적 이해와 미소가 마치 한편의 독립된 평화롭고 정감 넘치는 단편처럼 그려졌다.
‘퓨리’와 다른 3대의 탱크가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적의 배후로 진입했다가 ‘퓨리’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파괴된다. 그리고 ‘퓨리’는 혼자서 수백명의 독일군과 대결한다. 이 부분은 너무 비현실적인 할리웃식 과장이다. 핏이 내면을 지닌 묵직한 연기를 잘 하고 나머지 배우들도 각기 개성이 뚜렷한 연기를 한다. 데이빗 에이어 감독. R. Sony.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버드맨(Birdman)

리간(마이클 키튼·왼쪽)과 팬티바람의 마이크(에드워드 노턴)가 주먹대결을 벌이고 있다.

‘왕년의 스타’할리웃 컴백 시도 블랙 코미디 


속편을 계속해 만드는 할리웃 블락버스터 영화에 대한 조롱기 섞인 풍자이자 브로드웨이의 할리웃에 대한 위선적인 태도를 신랄하게 비판한 매우 심각하고 진지한 드라마이자 폭소를 자아내게 하는 블랙코미디다.
오래간만에 본격적인 배우로서 인정을 받고자 컴백을 시도하는 왕년의 수퍼스타의 필사적인 안간힘을 통해 명성과 창의성 그리고 힘의 대결과 유명세 및 외부의 압력 등 영화와 연극계의 각종 긍정적이요 부정적인 면을 밀도 있게 그렸다.
이와 함께 스타들의 이고와 배우로서 한 개인의 자기 구제를 초현실적인 장면들과 함께 일사불란하고 흥미진진하게 그린 독창적인 작품이다. 내용이 거의 시종일관 브로드웨이의 역시와 전통을 자랑하는 세인트 제임스 극장에서 전개돼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이런 협소감은 물 흐르듯 하는 카메라 동작과 위협적이요 박력 있는 재즈드럼의 배경음악 그리고 주인공의 하늘을 비상하는 상상에 의해 위무된다.
특히 영화 전부를 마치 단 한 번의 컷도 없이 찍은 것 같은 멕시코의 촬영감독 엠마누엘 루베즈키의 유려하고 과감한 촬영이 찬사를 받을 만하고 배경음악으로 쓴 말러와 차이코프스키 및 라흐마니노프의 로맨틱한 음악 그리고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등 여러 가지로 칭찬 받을 만한 예술적이요 흥미진진한 작품이다.
감독은 ‘바벨’과 ‘21그램’ 등을 만든 멕시코의 알레한드로 G. 이나리투(공동 각본)로 그는 늘 도전적인 주제를 즐겨 다루는데 영화를 보면서 자기 경험을 어느 정도 내용에 포함시키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리간 톰슨(마이클 키튼)은 할리웃의 블락버스터 영화 ‘버드맨’으로 수퍼스타가 된 배우로 영화의 제4편에 나오기를 거부한 뒤로 인기가 시들해졌다. 이런 내용은 ‘배트맨’으로 나와 수퍼스타가 됐다가 시리즈 제3편에 나오기를 거절한 뒤로 인기가 시들해진 키튼의 사정을 똑 닮아 마치 그의 전기영화를 보는 느낌마저 든다.
리간이 ‘버드맨’ 이후 20여년만에 재기를 노리는 작품은 레이몬드 카버의 소설 ‘우리가 사랑에 관해 얘기할 때 얘기하는 것들’을 각색한 연극. 리간은 이 4인극을 각색하고 감독하고 공연도 하면서 브로드웨이에서 자신의 배우로서의 컴백과 함께 존경과 인정을 모두 추구하려고 시도한다. 그러니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할지 불문가지인데 이 스트레스는 “영화배우나 하라”면서 리간을 조롱하고 몰아붙이는 리간의 또 다른 자아인 자기 내부의 ‘버드맨’의 음성 때문에 곱으로 증가한다.
연극에는 리간 외에 콧대 높고 미끈미끈한 유명 영화배우 마이크 샤이너(에드워드 노턴이 팬티바람으로 얄밉도록 매끈한 연기를 잘 한다)와  역시 영화배우인 마이크의 과거 애인 레즐리(네이오미 와츠) 및 리간의 애인 로라(안드레아 라이스보로)가 나온다. 그런데 마이크가 연극을 혼자 말아먹으려 들면서 리간과 충돌이 일고 레즐리는 이것이 브로드웨이 데뷔여서 초조하기 짝이 없다.
여기에 할리웃 출신의 자기를 파멸시키려고 벼르는 막강한 연극 평론가 타비타(린지 던칸이 잠깐 나오지만 매우 인상적이다)에 신경을 써야 하는데 게다가 막 약물중독자 치료소에서 나온 딸 샘(엠마 스톤)이 블로거도 없고 트위터도 없는 아버지야 말로 완전히 한물간 공룡과도 같은 사람이라고 리간에게 악을 써댄다.
리간은 자기 사비를 털어 만드는 연극을 통해 어떻게 해서든지 재기하려고 하지만 회의에 시달리는데 그럴 때마다 ‘버드맨’이 되어 하늘을 나르며 시름을 달랜다. 후반에 들어 마이크와 로라와 레즐리의 역할이 약해지는 것이 흠이긴 하나 독창적이요 신랄하고 냉소적이면서 또한 정이 있는 영화다. 볼만한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노출시키면서 맹렬하고도 연민의 감을 느끼게 하는 키튼의 연기로(오스카 후보상감이다) 그가 팬티바람으로 브로드웨이를 활보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R. Fox Searchlight. 일부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아이 러브 몬티



지금 생각하니 홀어머니의 내성적인 외아들로 약골인데다 수줍음 많은 외톨이었던 내가 세상의 모든 고독을 혼자 다 짊어지고 다니는 듯한 몬고메리 클리프트(사진)에게 매료됐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자학하는 듯한 내적 고뇌가 오히려 매력적이었던 몬티는 실재와 허구에서 모두 국외자였다. 현실과 타협하려 들지 않는 고집불통인 데다가 보기만 해도 소슬한 기운을 느끼게 하는 아름다운 쓸쓸함의 소유자여서 꼬마 때부터 그는 나의 우상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내 생활과 거울 앞에서 몬티의 흉내를 내기도 했었다.
17일은 몬티의 생일로 그가 살았으면 올해로 94세가 된다. 몬티는 차사고 후 약물과 알콜 남용 끝에 1966년 45세로 요절했다. 그런데 나는 지금도 몬티의 아름다운 얼굴을 볼 때마다 그가 일찍 죽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중학교 2학년 때 ‘지상에서 영원으로’에 나온 몬티를 보고 완전히 넋을 잃은 나는 그 뒤로 그를 거의 여자처럼 사랑했었다. 뒤늦게 한국일보 김포공항 출입기자 시절 읽은 몬티의 영문 전기는 지금까지 내가 아끼며 간직하고 있는 책이다.
나는 몬티가 조소하며 수줍어하듯이 입의 한쪽으로 짓는 미소가 좋다. 몬티가 죽을 때까지 서로 깊은 우정을 나누었던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말했듯이 악동 기가 있는 미소다. 그리고 몬티의 눈은 청명한 늦가을 하늘이 내려와 몸을 씻는 호수처럼 맑고 푸르러 춥다. 그래서 몬티에겐 열렬한 여성 팬들이 많았다. 그런데 몬티는 남자와 여자 모두와 데이트한 양성애자였다.
13세 때부터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연기를 닦은 몬티는 메소드 액터로 내면 성찰과 고뇌하는 역을 찾아 거기에 심리적 깊이를 부여했다. 안으로 끙끙 앓는 듯한 연기다.
특히 몬티는 내면 감정을 손의 제스처로 절묘하게 표현해냈다. 그의 연기는 불안정한 매력이 있는데 이런 불안정감을 살짝 장식해 주는 것이 이 손의 연기다. 이 손의 제스처가 보여주는 내면 표현은 몬티가 방년 19세의 리즈 테일러와 첫 공연한 ‘젊은이의 양지’와 몬티의 라이벌이었던 말론 브랜도(몬티와 말론은 모두 고향이 네브래스카주 오마하다)가 독일군 장교로 나온 ‘젊은 사자들’ 및 나치 전범의 재판을 그린 ‘뉴렘버그의 재판’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몬티의 할리웃 데뷔작은 2차 대전 후 유럽에 주둔한 미군과 소년의 관계를 그린 ‘수색’으로 몬티는 이 역으로 대뜸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이어 같은 해에 찍은 존 웨인이 주연한 웨스턴 ‘레드 리버’로 몬티는 할리웃의 총아가 된다. 몬티의 또 다른 웨스턴으로는 클라크 게이블과 마릴린 몬로의 유작으로 이색적인 ‘미스피츠’가 있다. 몬로는 몬티가 유머감각이 특출했던 배우였다고 회상한 바 있다.
나는 2007년에 ‘지상에서 영원으로’에서 악질 군영창장으로 나와 몬티에게 칼침 맞고 죽은 어네스트 보그나인을 만났었는데 그는 그 때 내게 “몬티는 매우 조용하고 해박한 지식을 지닌 사람이었다”며 몬티를 그리워했다.
지적이요 세련됐고 민감한 무드파였던 몬티는 ‘수색자’ ‘젊은이의 양지’ 및 ‘지상에서 영원으로’ 등으로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그리고 ‘뉴렘버그의 재판’으로 조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상은 못 탔다. 할리웃의 분위기를 피해 그 테두리밖에 있던 몬티를 할리웃의 주류들이 달가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개인과 배우로서의 몬티의 삶은 1956년 5월12일에 일어난 자동차 사고로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당시 촬영 중이던 ‘레인트리 카운티’(한국명 ‘애정이 꽃피는 나무’)에서 공연하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베벌리힐스 자택서 열린 파티 후 귀가 길에 몬티가 몰던 차가 전주를 들이받으면서 그의 턱과 코를 비롯해 오른쪽 얼굴이 완전히 망가졌다. 사고소식을 듣고 현장에 제일 먼저 달려간 테일러는 피투성이가 된 몬티의 얼굴을 자기 무릎 위에 올려놓은 뒤 그의 혀에 박힌 이빨들을 뽑아냈다고 한다. 테일러는 TCM의 몬티를 소개하는 프로에서 그 때를 회상하면서 “나는 몬티를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한다”고 울먹였다.
그 후 몬티는 성형수술을 하고 영화를 끝냈지만 그의 섬세하도록 아름다운 얼굴은 다시 볼 수 없게 됐다. ‘레인트리 카운티’를 보면 영화 전반과 후반의 몬티의 얼굴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사고 후 몬티는 테일러와 공연한 ‘지난여름 갑자기’와 ‘와일드 리버’ ‘프로이드’ 및 유작인 ‘도망자’ 등에 나왔지만 육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 회복되지 못한 채 고통에 시달리면서 약물과 술에 절어 살다가 1966년 7월23일 뉴욕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사고 후 그의 이 10년은 긴 자살기간이나 마찬가지였다.
TCM은 17일 몬티의 영화들을 방영한다. *‘빅 리프트’(오전 8시) *‘나는 고백한다’(오전 10시) *‘레인트리 카운티’(오전 11시45분) *‘젊은 사자들’(오후 2시45분) *‘도망자’(오후 5시45분).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