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하니 홀어머니의 내성적인 외아들로 약골인데다 수줍음 많은 외톨이었던 내가 세상의 모든 고독을 혼자 다 짊어지고 다니는 듯한 몬고메리 클리프트(사진)에게 매료됐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자학하는 듯한 내적 고뇌가 오히려 매력적이었던 몬티는 실재와 허구에서 모두 국외자였다. 현실과 타협하려 들지 않는 고집불통인 데다가 보기만 해도 소슬한 기운을 느끼게 하는 아름다운 쓸쓸함의 소유자여서 꼬마 때부터 그는 나의 우상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내 생활과 거울 앞에서 몬티의 흉내를 내기도 했었다.
17일은 몬티의 생일로 그가 살았으면 올해로 94세가 된다. 몬티는 차사고 후 약물과 알콜 남용 끝에 1966년 45세로 요절했다. 그런데 나는 지금도 몬티의 아름다운 얼굴을 볼 때마다 그가 일찍 죽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중학교 2학년 때 ‘지상에서 영원으로’에 나온 몬티를 보고 완전히 넋을 잃은 나는 그 뒤로 그를 거의 여자처럼 사랑했었다. 뒤늦게 한국일보 김포공항 출입기자 시절 읽은 몬티의 영문 전기는 지금까지 내가 아끼며 간직하고 있는 책이다.
나는 몬티가 조소하며 수줍어하듯이 입의 한쪽으로 짓는 미소가 좋다. 몬티가 죽을 때까지 서로 깊은 우정을 나누었던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말했듯이 악동 기가 있는 미소다. 그리고 몬티의 눈은 청명한 늦가을 하늘이 내려와 몸을 씻는 호수처럼 맑고 푸르러 춥다. 그래서 몬티에겐 열렬한 여성 팬들이 많았다. 그런데 몬티는 남자와 여자 모두와 데이트한 양성애자였다.
13세 때부터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연기를 닦은 몬티는 메소드 액터로 내면 성찰과 고뇌하는 역을 찾아 거기에 심리적 깊이를 부여했다. 안으로 끙끙 앓는 듯한 연기다.
특히 몬티는 내면 감정을 손의 제스처로 절묘하게 표현해냈다. 그의 연기는 불안정한 매력이 있는데 이런 불안정감을 살짝 장식해 주는 것이 이 손의 연기다. 이 손의 제스처가 보여주는 내면 표현은 몬티가 방년 19세의 리즈 테일러와 첫 공연한 ‘젊은이의 양지’와 몬티의 라이벌이었던 말론 브랜도(몬티와 말론은 모두 고향이 네브래스카주 오마하다)가 독일군 장교로 나온 ‘젊은 사자들’ 및 나치 전범의 재판을 그린 ‘뉴렘버그의 재판’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몬티의 할리웃 데뷔작은 2차 대전 후 유럽에 주둔한 미군과 소년의 관계를 그린 ‘수색’으로 몬티는 이 역으로 대뜸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이어 같은 해에 찍은 존 웨인이 주연한 웨스턴 ‘레드 리버’로 몬티는 할리웃의 총아가 된다. 몬티의 또 다른 웨스턴으로는 클라크 게이블과 마릴린 몬로의 유작으로 이색적인 ‘미스피츠’가 있다. 몬로는 몬티가 유머감각이 특출했던 배우였다고 회상한 바 있다.
나는 2007년에 ‘지상에서 영원으로’에서 악질 군영창장으로 나와 몬티에게 칼침 맞고 죽은 어네스트 보그나인을 만났었는데 그는 그 때 내게 “몬티는 매우 조용하고 해박한 지식을 지닌 사람이었다”며 몬티를 그리워했다.
지적이요 세련됐고 민감한 무드파였던 몬티는 ‘수색자’ ‘젊은이의 양지’ 및 ‘지상에서 영원으로’ 등으로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그리고 ‘뉴렘버그의 재판’으로 조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상은 못 탔다. 할리웃의 분위기를 피해 그 테두리밖에 있던 몬티를 할리웃의 주류들이 달가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개인과 배우로서의 몬티의 삶은 1956년 5월12일에 일어난 자동차 사고로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당시 촬영 중이던 ‘레인트리 카운티’(한국명 ‘애정이 꽃피는 나무’)에서 공연하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베벌리힐스 자택서 열린 파티 후 귀가 길에 몬티가 몰던 차가 전주를 들이받으면서 그의 턱과 코를 비롯해 오른쪽 얼굴이 완전히 망가졌다. 사고소식을 듣고 현장에 제일 먼저 달려간 테일러는 피투성이가 된 몬티의 얼굴을 자기 무릎 위에 올려놓은 뒤 그의 혀에 박힌 이빨들을 뽑아냈다고 한다. 테일러는 TCM의 몬티를 소개하는 프로에서 그 때를 회상하면서 “나는 몬티를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한다”고 울먹였다.
그 후 몬티는 성형수술을 하고 영화를 끝냈지만 그의 섬세하도록 아름다운 얼굴은 다시 볼 수 없게 됐다. ‘레인트리 카운티’를 보면 영화 전반과 후반의 몬티의 얼굴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사고 후 몬티는 테일러와 공연한 ‘지난여름 갑자기’와 ‘와일드 리버’ ‘프로이드’ 및 유작인 ‘도망자’ 등에 나왔지만 육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 회복되지 못한 채 고통에 시달리면서 약물과 술에 절어 살다가 1966년 7월23일 뉴욕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사고 후 그의 이 10년은 긴 자살기간이나 마찬가지였다.
TCM은 17일 몬티의 영화들을 방영한다. *‘빅 리프트’(오전 8시) *‘나는 고백한다’(오전 10시) *‘레인트리 카운티’(오전 11시45분) *‘젊은 사자들’(오후 2시45분) *‘도망자’(오후 5시45분).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