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왼쪽)과 아내가 두 딸을 안고 폭도를 피해 도주하고 있다. |
스릴마저 삼켜버린‘폭력을 위한 폭력’
코미디언으로 더 잘 알려진 부러진 코의 사나이 오웬 윌슨(현재 상영 중인 피터 보그다노비치의 앙상블 코미디 ‘쉬즈 퍼니 댓 웨이’에 출연)이 시종일관 뛰고 달리는 액션 스릴러다. 태국에서 찍은 이국적 경치와 함께 잔인무도한 폭력과 액션을 즐기는 사람들에겐 몸의 피를 끓게 만드는 오락영화지만 모든 것이 도를 지나쳐 거부감이 인다.
특히 이 영화는 아동학대 죄로 고발을 받아 마땅할 것으로 두 어린 소녀가 살인마들로 변한 폭도들을 피해 부모와 함께 도주하면서 겪는 수난이 몸서리가 처질만큼 가혹해 두 소녀로 나오는 아역 배우들의 부모가 과연 자기들의 딸들이 이런 폭력영화에 나오는지를 알고 출연케 했는지 궁금하다.
인물이나 성격 개발과는 무관한 추격과 도주와 살인과 폭력과 액션의 영화로 두뇌와는 거리가 먼 말초 신경적 감정을 구타하는 철저히 액션 팬을 위해 만든 영화다. 서방국가들의 저개발국가 착취에 대한 피비린내 나는 보복의 영화라고도 하겠지만 그 같은 내용은 단순히 액션을 위한 핑계에 불과해 큰 설득력을 가지진 못한다.
최근 직장을 잃은 미국인 잭(윌슨)은 아내 애니(레이크 벨)와 두 어린 딸(스털링 제린스와 클레어 기어)과 함께 동남아시아의 베트남과 인접한 ‘제4 세계’ 국가(태국과 캄보디아를 연상시키는데 동남아 국가에 대한 묘사가 매우 모욕적이다)의 미국 회사 직원으로 취직해 온다. 이 회사는 이 나라의 수원지를 사유화한 회사다.
잭은 비행 중에 행동과 언사가 요란한 영국인 관광객 해몬드(피어스 브로스난-영화에서 가장 볼만한 인물이다)를 만난다. 해몬드는 밤의 쾌락 때문에 이 나라를 여러 차례 방문했다고 자랑한다.
서론식으로 이 나라의 독재자인 군부 통치자가 무자비한 혁명세력에 의해 암살되는 장면이 묘사된다. 고급 호텔에 여장을 푼 잭이 신문을 사려고 호텔 주변의 동네로 나갔다가 정부와 서방국가에 반대하는 시위군중과 이를 저지하는 경찰과의 격렬한 충돌 사이에 말려든다. 폭도로 변한 군중들은 외국인을 가차 없이 살해하는데 간신히 호텔로 돌아온 잭은 호텔로 침입한 폭도들을 피해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도주하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끝날 때까지 이들이 지붕에서 지붕으로 뛰어 넘고 어둡고 좁은 골목에 몸을 숨기면서 달아나는 것으로 이어지는데 도저히 내용이 믿어지지가 않아 긴장과 스릴을 느낀다기보다 공소가 터져 나올 지경이다.
처음에 나왔다가 사라진 해몬드(과연 그의 정체는 무엇일까)가 후반부에 불쑥 나타나 폭도들에 의해 살해되기 직전의 잭의 가족을 구하면서 브로스난이 호연한 과장된 연기가 뽐을 낸다. 이 영화는 극영화라기보다 피가 철철 넘쳐흐르는 그래픽 노블이라고 불러야 더 알맞을 것으로 이렇게 폭력적인 영화도 보기 드물다. 음악도 폭격하듯이 요란하다.
존 에릭 다우들 감독. R. Weinstein.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