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8월 31일 월요일

노 에스케이프(No Escape)


잭(왼쪽)과 아내가 두 딸을 안고 폭도를 피해 도주하고 있다.

스릴마저 삼켜버린‘폭력을 위한 폭력’


코미디언으로 더 잘 알려진 부러진 코의 사나이 오웬 윌슨(현재 상영 중인 피터 보그다노비치의 앙상블 코미디 ‘쉬즈 퍼니 댓 웨이’에 출연)이 시종일관 뛰고 달리는 액션 스릴러다. 태국에서 찍은 이국적 경치와 함께 잔인무도한 폭력과 액션을 즐기는 사람들에겐 몸의 피를 끓게 만드는 오락영화지만 모든 것이 도를 지나쳐 거부감이 인다.
특히 이 영화는 아동학대 죄로 고발을 받아 마땅할 것으로 두 어린 소녀가 살인마들로 변한 폭도들을 피해 부모와 함께 도주하면서 겪는 수난이 몸서리가 처질만큼 가혹해 두 소녀로 나오는 아역 배우들의 부모가 과연 자기들의 딸들이 이런 폭력영화에 나오는지를 알고 출연케 했는지 궁금하다.
인물이나 성격 개발과는 무관한 추격과 도주와 살인과 폭력과 액션의 영화로 두뇌와는 거리가 먼 말초 신경적 감정을 구타하는 철저히 액션 팬을 위해 만든 영화다. 서방국가들의 저개발국가 착취에 대한 피비린내 나는 보복의 영화라고도 하겠지만 그 같은 내용은 단순히 액션을 위한 핑계에 불과해 큰 설득력을 가지진 못한다.
최근 직장을 잃은 미국인 잭(윌슨)은 아내 애니(레이크 벨)와 두 어린 딸(스털링 제린스와 클레어 기어)과 함께 동남아시아의 베트남과 인접한 ‘제4 세계’ 국가(태국과 캄보디아를 연상시키는데 동남아 국가에 대한 묘사가 매우 모욕적이다)의 미국 회사 직원으로 취직해 온다. 이 회사는 이 나라의 수원지를 사유화한 회사다. 
잭은 비행 중에 행동과 언사가 요란한 영국인 관광객 해몬드(피어스 브로스난-영화에서 가장 볼만한 인물이다)를 만난다. 해몬드는 밤의 쾌락 때문에 이 나라를 여러 차례 방문했다고 자랑한다.
서론식으로 이 나라의 독재자인 군부 통치자가 무자비한 혁명세력에 의해 암살되는 장면이 묘사된다. 고급 호텔에 여장을 푼 잭이 신문을 사려고 호텔 주변의 동네로 나갔다가 정부와 서방국가에 반대하는 시위군중과 이를 저지하는 경찰과의 격렬한 충돌 사이에 말려든다. 폭도로 변한 군중들은 외국인을 가차 없이 살해하는데 간신히 호텔로 돌아온 잭은 호텔로 침입한 폭도들을 피해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도주하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끝날 때까지 이들이 지붕에서 지붕으로 뛰어 넘고 어둡고 좁은 골목에 몸을 숨기면서 달아나는 것으로 이어지는데 도저히 내용이 믿어지지가 않아 긴장과 스릴을 느낀다기보다 공소가 터져 나올 지경이다.
처음에 나왔다가 사라진 해몬드(과연 그의 정체는 무엇일까)가 후반부에 불쑥 나타나 폭도들에 의해 살해되기 직전의 잭의 가족을 구하면서 브로스난이 호연한 과장된 연기가 뽐을 낸다. 이 영화는 극영화라기보다 피가 철철 넘쳐흐르는 그래픽 노블이라고 불러야 더 알맞을 것으로 이렇게 폭력적인 영화도 보기 드물다. 음악도 폭격하듯이 요란하다. 
존 에릭 다우들 감독. R. Weinstein.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히치콕의 로맨틱 스릴러 2편


케리 그랜트(왼쪽부터), 잉그릿 버그만, (한 사람 건너)클로드 레인즈.

뉴베벌리 시네마(7165 Beverly Blvd. 323-938-4038)에서는 28일과 29일 알프렛 히치콕의 2편의 걸작 서스펜스 스릴러를 상영한다. 2편 모두 케리 그랜트가 주연한다. 

*‘의혹’(Suspicion·1941)
로맨틱 심리 스릴러로 케리 그랜트의 아내로 나온 조운 폰테인이 오스카 주연상을 받았다. 수줍고 소심한 부잣집 딸 리나는 기차 안에서 만난 무책임한 멋쟁이 플레이보이 자니에게 반해 사랑의 줄행랑 끝에 결혼한다. 이를 못 마땅하게 여기는 것이 리나의 아버지 맥레이들로 장군(세드릭 하드윅 경). 결혼 후 리나는 자니가 직업도 돈도 없는 빚 투성이의 남자로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게다가 자니는 도박꾼으로 도박 빚을 갚는다고 리나의 아버지가 결혼선물로 준 고가의 오래된 의자 2개를 팔아먹는다. 
리나의 아버지가 사망하고 딸에게 유산을 남기지 않은 것을 안 자니는 크게 실망한다. 한편 자니의 절친한 친구인 비키가 갑자기 사망하면서 리나는 자니가 친구도 죽이고 또 자신의 생명보험금을 노려 자기마저 죽이려 한다고 의심한다. 그리고 리나는 자니가 자기에게 가져다주는 우유에 독이 들었다고 생각한다. 리나는 자니에게 어머니 집에서 며칠 머무르겠다고 말하자 자니가 자기가 차를 몰겠다고 제의, 리나를 태우고 절벽가의 좁은 길을 과속으로 달린다.
*‘오명’(Notorious·1946)  
잉그릿 버그만을 둘러싼 삼각관계의 러브 스토리가 있는 스파이 스릴러로 지적이요 멋이 있는 스릴러다. 이 영화는 영화사상 가장 길고 에로틱한 키스신이 있는 영화의 하나로 그랜트와 버그만의 키스 신은 자그마치 2분30초나 된다.
당시 검열에 따르면 키스 신은 30초 이상을 초과해서는 안 됐기 때문에 굉장히 약은 히치콕은 그랜트와 버그만이 우선 3초간 키스를 한 뒤 입술을 떼게 하고 잠시 대사를 나누거나 서로의 얼굴을 얼굴로 문지르면서 사랑의 유희를 하다가 다시 3초간 키스를 하는 식으로 키스 신을 연장했다.
미 정보부 요원 데블린은 과거 자기 아버지가 나치 동조자였던 알리시아를 설득해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나치 추종자인 세바스찬(클로드 레인즈)을 유혹케 한다. 이 과정에서 데블린과 알리시아는 사랑에 빠진다. 세바스찬이 알리시아에게 청혼을 하고 데블린은 알리시아에게 그것을 수락하라고 지시한다.
세바스찬 일당은 핵을 만들 수 있는 우라늄을 저장하고 있는데 이를 알리시아가 알아내자 그녀를 제거하려고 차에 서서히 효력을 발휘하는 독약을 탄다. 이를 안 데블린이 알리시아를 구하기 위해 세바스찬의 집으로 찾아간다. 라스트 신이 긴장감 가득하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금지된 장난 (Forbidden Games·1952)


미셸이 십자가를 만드는 것을 폴렛이 바라보고 있다.

아름다워서 더 슬픈 소년소녀의 순수와 우정


알랑 들롱이 주연한 범죄스릴러 ‘태양은 가득히’(Purple Noon·1960)를 만든 프랑스의 르네 클레망이 감독한 전화 속 어린 아이들의 순수와 어른들의 우행과 배신을 강렬하고 시적이며 아름답고 또 가슴을 쥐어뜯듯이 슬프게 그린 흑백 명작이다. 아이들의 순수(순수의 상실)와 정직을 어른들의 기만과 이기심과 대조해 조용히 설득하듯이 얘기하고 있는데 결코 설교적이 아니요 꾸밈없이 사실적이자 거의 초현실적으로 그린 일종의 반전영화다.
5세난 폴렛과 11세난 미셸이 주인공인 이 영화는 특히 연기 경험이 없는 지상에 막 내려와 모든 것이 낯선 듯한 천사의 얼굴을 한 폴렛 역의 브리짓 포시의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민감하고 앙증맞은 무표정의 연기가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숨이 막히도록 가슴 아픈 연기로 보는 즉시로 보호 본능과 연민의 감정을 자극하는 자연스럽고 즉흥적인 연기다. 
1940년 6월. 나치의 프랑스 침공을 피해 파리로부터 남쪽으로 피난을 가던 5세난 폴렛과 소녀의 애견 족크 그리고 폴렛의 부모(실제 포시의 부모)가 나치 공군의 공습(이 장면이 마치 기록영화를 찍듯이 사실감 있다)을 받고 폴렛만 살아남는다. 
졸지에 고아가 된 폴렛은 피난민이 강에 집어 던진 족크를 찾으러 난민들을 떠났다가 동네 농부 돌레(뤼시앙 위베르)의 11세난 막내아들 미셸(조르지 푸졸리)을 만나 미셸의 집으로 함께 간다. 미셸의 가족은 폴렛을 따뜻이 맞아들이며 위로하고 돌보면서 폴렛은 이 집의 한 가족처럼 지낸다. 그리고 미셸과 폴렛은 떨어져선 못살 오빠와 동생처럼 짙은 정으로 맺어진다. 
한편 돌레 가족과 바로 이웃의 구아르 가족은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 다투는데 클레망 감독은 이 두 가족의 이런 어리석은 다툼과 증오를 통해 어린 미셸과 폴렛과는 다른 다 큰 인간의 기만적인 가치관을 코믹하게 조롱하고 있다.
미셸과 폴렛은 족크를 버려진 물방앗간 안에 묻는데 폴렛이 족크가 외로울 것을 걱정하자 미셸은 방앗간 안에 둘만이 아는 무덤을 만들어 죽은 두더지와 곤충과 병아리와 쥐들을 묻어 족크가 외롭지 않게 하겠다고 폴렛에게 다짐한다. 그리고 무덤을 십자가와 꽃들로 장식하겠다고 약속한다. 
이 때부터 미셸은 무덤에 꽂을 십자가들을 훔치기 시작하는데 제일 먼저 말에 채여 죽은 자기 맏형 조르지의 관을 나르는 영구마차에 장식된 십자가를 훔친다. 미셸은 성당에서 고백성사를 하자마자 성당 제단에 있는 십자가까지 훔치다가 신부에게 걸려 혼이 난다. 
그런데 방앗간 안의 무덤이 늘어나면서 거기에 꽂을 십자가가 모자라자 미셸과 폴렛은 조르지의 것을 비롯해 성당 옆 공동묘지에 있는 십자가들을 대량으로 훔쳐 손수레에 싣고 자기들만의 묘지로 이송한다. 이 같은 두 아이의 십자가 도둑질이 ‘금지된 장난’인데 클레망은 자기가 가장 앞세워 내 놓은 금지된 장난은 전쟁이라고 말했다.
자기 아들 조르지의 것을 비롯해 공동묘지의 십자가들이 사라진 것을 발견한 돌레는 신부로부터 십자가 도둑이 미셸이라는 말을 듣고 미셸을 마구 두들겨 패면서 십자가들의 행방을 다그치나 미셸은 결사적으로 묵비권을 행사한다. 
이 때 프랑스 경찰이 폴렛을 고아원에 보내기 위해 돌레 집을 찾아온다. 안 가겠다고 우는 폴렛과 떨어지기 싫은 미셸은 아버지에게 십자가의 행방을 알려주는 대신 폴렛을 보내지 말라고 부탁한다. 돌레가 이에 응하자 미셸은 아버지에게 십자가가 있는 곳을 알려 준다. 그런데 아버지가 약속을 안 지키고 폴렛을 경찰에 넘기자 미셸은 묘지로 달려가 십자가들을 모두 파괴한다.
인파로 붐비는 기차역. 불안과 슬픔에 젖은 눈동자를 한 폴렛은 역사에 앉아 수녀원의 고아원으로 자기를 데려갈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이 때 누군가가 “미셸”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에 폴렛은 벌떡 일어나 “미셸”하고 부르나 그 미셸은 다른 남자의 이름. 폴렛이 계속해 “미셸”을 찾으면서 역 안의 인파를 헤집고 뛰어가는 모습을 카메라가 서서히 공중으로 오르면서 찍은 마지막 장면이 눈시울을 적시게 만든다. 
다분히 감상적이 될 수 있는 내용인데도 철저히 감상성을 배제하고 연기를 비롯해 모든 것을  자연적으로 그린 것이 이 영화를 지금까지 잊을 수 없는 명작으로 남게 만든 요인이다. 베니스 영화제 대상과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을 받은 이 영화는 인간의 잔인성과 어리석음과 공포 그리고 전쟁의 비극을 강력하고 도전적으로 기소한 작품으로 기타로 연주되는 유일한 음악인 나르시소 예페스의 ‘로망스’가 마음을 사로잡고 놓아 주지 않는다. 이 음악은 세계적으로 빅히트했고 한국에서도 왕년에 큰 인기를 모았었다. 
클레망은 폴렛 역을 위해 니스에서 수백명의 소녀들을 테스트 했는데 우연히 그 때 칸에서 아주머니와 함께 휴가를 보내던 5세난 포시(1947년생)를 발견했다. 클레망은 처음에는 포시가 폴렛의 역을 이해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어리다고 생각해 쓰기를 주저했으나 곧 이어 포시의 지능과 섬세한 감정적 성분에 감동, 기용하기로 결정했다. 
클레망은 세세한 것에까지 주도면밀하고 사실적으로 충실하기 위해 진력했는데 특히 시각적 면에 신경을 많이 써 실내장면의 빛을 만들 때는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얀 베르미어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냈다고 한다. 
‘금지된 장난’이 새 번역과 자막과 함께 디지털로 만들어져 28일부터 9월3일까지 뉴아트극장(11272 샌타모니카)에서 상영된다. 상영시간 86분. 310-281-8223.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프롬 글렌 투 글렌



“오 대니 보이, 더 파입스, 더 파입스 아 콜링/프롬 글렌 투 글렌 다운 더 마운튼 사이드.” 노래는 아일랜드 민요지만 갤릭어로 계곡을 뜻하는 ‘글렌’(glen)은 스코틀랜드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킬트를 입은 점잖은 포터가 수문장 노릇을 하는 퍼드의 숙소 이름도 ‘글렌이글즈’(교회의 계곡) 호텔이요 이 나라의 명품인 스카치위스키의 이름들도 ‘글렌피딕’(사진) ‘글렌리벳’ ‘글렌킨치’ ‘글렌고인’ 등 글렌 일색이다. 
실제로도 계곡이 많은 한 여름 스코틀랜드는 변화무쌍한 날씨를 거울로 삼고 진초록으로 몸을 단장하고 있었다. 존 포드의 명작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가 언뜻 떠올랐다. 영화의 무대는 웨일즈이지만 외지인에겐 웨일즈와 스코틀랜드가 차이가 나지 않는다.
케이블TV 스타즈(Starz)의 인기 드라마 시리즈 ‘아웃랜더’(Outlander)의 컴버널드에 있는 촬영현장 방문과 배우 인터뷰 차 지난주 스코틀랜드엘 다녀왔다. 스코틀랜드는 영국의 한 부분이나 내가 나라라고 부른 것은 이 곳 사람들이 스코틀랜드를 완전히 독립국가로 여기기 때문이다. 
건물에 게양된 기도 유니언잭이 아니라 푸른 바탕에 X자 모양의 십자가가 그려진 스코틀랜드기다. 시리즈에 나오는 그랜트 오로크에게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진정한 차이가 뭐냐고 물었더니 “느낌”이라고 대답했다. 술꾼인 그는 박지성 때문에 한국 이름에 익숙하다면서 이왕 스코틀랜드에 왔으니 종류 불문하고 스카치를 많이 마시라고 종용했다.
우리가 방문한 스코틀랜드기가 펄럭이는 귀족 호프 가문의 대저택 호프툰하우스에 있는 여자 안내원도 손으로 가슴을 치면서 “우리는 스카티시”라며 자랑스러워했다. 션 코너리도 열렬한 스코틀랜드 독립파다. 독립 문제를 놓고 지난해에 국민투표가 시행됐지만 근소한 차로 부결됐다. 스카티시들은 모두 잉글리시들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는데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원치 않는 사람은 비애국자로 여겨지는 것이 두려워 함구한다고 안내원이 말했다.  
목이 달아난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의 대관식이 열렸던 스털링성에서 바라보니 저 멀리에 침공하는 잉글랜드군을 맞아 싸운 스코틀랜드의 국민영웅 윌리엄 월래스의 기념 건조물이 위풍당당하다. 월래스의 얘기는 멜 깁슨이 감독 주연해 오스카상을 탄 ‘브레이브하트’에서 극적으로 그려졌다.
스코틀랜드는 전쟁과 참수의 나라이자 계곡과 위스키와 성의 고장으로 잔해뿐인 것을 합해 성이 자그마치 3,000여개나 되는데 특히 빅토리아 여왕이 매우 사랑했다고 안내원이 알려줬다. 케케묵은 땅으로 어디를 가나 퀴퀴한 역사의 곰팡이 냄새가 난다. ‘아웃랜더’의 여주인공처럼 시간여행을 하고 다녔다.
‘아웃랜더’는 2차 대전에서 간호사로 일한 클레어가 종전 후 남편 프랭크와 함께 스코틀랜드로 제2의 신혼여행을 왔다가 혼자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게 되면서 겪는 로맨틱 액션 모험극이다. 클레어는 1743년으로 돌아가 침략군인 잉글랜드군에 맞서 싸우는 늠름한 스코틀랜드 사나이 제이미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게 된다. 현재 제2 시즌을 촬영 중인데 세트와 의상과 현지 촬영 및 내용 등이 모두 훌륭한 흥미진진한 드라마다.  
스코틀랜드에 왔으니 스카치위스키를 아니 마실 수가 없는 일. 스카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술인데다가 오로크의 충고도 있고 해서 다양한 종류의 스카치를 음주했다. 향기가 여인의 체취 같이 유혹적이다.            
스코틀랜드에 들르기 전 케이블TV FX가 방영할 14세기 역사극 ‘배스타드 처형자’(The Bastard Executioner)의 촬영지 방문과 배우 인터뷰 차 웨일즈의 카르디프에 먼저 들렀다. 용이 상징인 웨일즈는 모든 안내문을 영어와 웰시로 적은 것이 눈에 띄는데 도심 한복판에 11세기에 이 곳을 침공한 노만족이 세운 카르디프성이 우뚝 서 있다. 영국에서 11세기 얘기 듣는 것은 이제 옛날 같지도 않다.
못으로 둘러싼 성은 나무다리로 땅과 연결됐는데 보고 있자니 로빈 후드가 공격한 노팅엄의 성이 연상됐다. 성루에서 병사들이 화살을 쏴댈 것 같은 역사감을 느꼈다.
그러나 이 성에서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2차 대전 때 나치의 공습에 대비, 성벽을 따라 길게 만든 좁은 대피소다. 영화에서 많이 보던 대피소에는 벽을 따라 벤치와 철제 침대가 놓여 있고 벽에는 경고문과 사기 진작용 포스터가 붙어 있다. 당시의 주방과 메뉴판 그리고 군복과 군모와 라디오도 보인다.
대피소를 걷고 있는데 스피커를 통해 나치 공군의 폭격소리와 함께 처칠의 “다우닝가 10번지에서 말합니다. 오늘 부로 영국은 독일과 교전상태에 들어갑니다”라는 대국민 발표가 나온다. 이어 2차 대전 때 크게 유행한 베라 린이 부른 멜랑콜리한 ‘위일 밋 어겐’이 흘러나왔다. “위일 밋 어겐, 아이 돈 노 웨어, 아이 돈 노 웬.” 노래를 들으면서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전쟁의 물리칠 수 없는 광기를 생각하며 쓴 웃음을 지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