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10월 5일 월요일

화성인(The Martian)



화성에 혼자 남은 마크(맷 데이먼)는 생존을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한다.


‘화성의 로빈슨 크루소’구출작전


‘에일리언’과 ‘프로메테우스’ 등 외계영화를 연출한 늘 믿을 만한 리들리 스캇이 감독한 지적이요 튼튼하고 잘 짜여진 외계 모험영화로 흥분감보다는 정신집중을 요구하는 작품이다. 그 것이 재미를 깎아먹는다.
화성에 달랑 혼자 남게 된 우주비행사의 생존 드라마로 ‘화성의 로빈슨 크루소’라고 하겠는데 내용이 오늘이라도 당장 일어날 수 있는 것이어서 화성에서 일어나는 얘기이지만 생소하지 않고 아주 사실적이다.
이주 똑똑한 영화로 촬영과 연기와 세트 등이 다 훌륭한데 굉장히 유머(1인 유머이지만)가 많아 지루할 수도 있는 내용에 신선한 공기를 불어 넣고 있다. 과학용어가 좀 많아 잘 알아듣기가 힘든 점도 있으나 그것을 몰라도 전체 내용을 이해할 수는 있다. 
팀장 멜리사(제시카 체스테인) 등 4명의 동료(케이트 마라, 마이클 페냐 등)와 함께 화성탐사에 나선 마크(맷 데이먼)가 엄청난 흙먼지 폭풍을 만나 안테나 파편에 찔려 쓰러진다. 멜리사 등은 마크가 죽은 줄로 알고 급히 우주선을 타고 귀환길에 오른다.
뒤늦게 깨어난 마크는 적막강산 화성에 달랑 혼자 남아 그 때부터 생존을 위한 치밀한 계획을 짠다. 식물학자인 마크는 낙천가요 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자로 한 달분(다음 화성탐사는 4년 후에 나 있다)의 식량을 주도면밀하게 배분하는가 하면 자신과 동료들의 인분으로 감자밭까지 만들어 자급자족을 한다. 마크는 자기비하적인 신랄한 유머를 혼자 중얼대며 무료를 달래는데 영화의 유머는 전부 이런 마크의 독백에서 나온다.
한편 지구에서는 마크의 사망이 공식 발표되는데 화성의 표면을 모니터하던 미 국립항공우주국(NASA)의 직원이 화성의 표면에서 동작을 포착하면서 마크가 살아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 때부터 NASA와 캘리포니아의 제트추진연구소가 공동으로 마크 구출작전 준비에 들어간다(이 두 기관의 직원들로 제프 대니얼스, 크리스튼 윅, 션 빈, 치웨텔 에지오포 등 앙상블 캐스트가 나온다). 이들을 돕는 것이 뜻밖에도 중국.
그러나 결국 가장 신속한 구출은 지구로 귀환 중이던 우주선의 마크의 동료들에 의해 이뤄질 수밖에 없게 된다. 문제는 이들이 다시 화성으로 돌아가다 사고라도 나면 1인 구출을 시도하다 5명이 떼죽음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도덕적 딜레마.     
구출과정이 상당히 긴장감 있게 묘사되는데 우주에서의 마지막 장면은 스탠리 쿠브릭의 ‘2001: 우주 오디세이’의 장면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지상에서의 라스트신은 정말로 필요 없는 사족이다. 들뜨지 않은 침착하고 이성적인 모험영화로 요르단에서 찍은 외부촬영이 매우 사실적이요 아름다운데 무슨 역이든지 잘 해내는 데이먼이 연기를 잘 한다. PG-13. Fox.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전설(Legend)


냉정한 레지(왼쪽)와 사이코 로니 형제는 스타처럼 으스대는 갱이었다.

‘쌍둥이 갱스터’ 1인2역 탐 하디 연기 볼만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까지 런던의 이스트엔드 지역을 말아먹던 일란성 쌍둥이 갱스터 형제 레지와 로니 크레이의 실화를 만화적으로 야단스럽고 뻔뻔하게 그린 재미있는 오락물이다.
화려한 화면에 표현되는 찌르고 쏘고 두들겨 패는 말로 형언하기 힘든 폭력이 보는 사람의 감관을 유린하는데 이런 폭력 속에 다소 엉뚱한 유머가 섞여들어 고약한 티를 낸다.
예술성과는 거리가 먼 철저한 말초신경 자극적인 작품으로 볼만한 것은 두 형제 역을 혼자 맡아 한 탐 하디의 연기다. 실로 대담무쌍하고 오만방자한 연기로 성격이 완전히 다른 레지와 로니 역을 변화무쌍하게 보여준다. 강타를 맞는 듯한 느낌을 갖게 만드는 연기로 상감이다.
대뜸 레지와 로니가 이미 암흑세계의 세력을 장악한 1966년도부터 시작된다. 영화는 레지의 젊고 아름다운 아내 프란시스(에밀리 브라우닝-이 역은 다소 미흡하게 쓰여졌으나 브라우닝이 호연한다)가 두 형제의 잘 나가던 시절을 회상하는 식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된다.
처음에 크레이 형제가 망치를 무기로 삼아 라이벌 리처드슨 갱과 펍에서 지역 관할문제를 놓고 벌이는 유혈폭력 장면부터 피가 튄다. 완전히 세력을 장악한 형제는 신사복을 빼입고 으스대면서 동네를 활보하고 여가수가 미 팝송 ‘메이크 더 월드 고 어웨이’를 부르는 사치스런 클럽을 드나든다. 둘은 세간의 이목의 조명을 받고 싶어서 안달이 난 반영웅들이다.
형제와 둘의 졸개들의 범죄행각과 이들을 잡으려고 혈안이 된 런던 경시청 형사 레나드(크리스토퍼 에클레스턴)의 노력과 함께 형제의 범죄세계의 내부사정이 상세히 묘사되면서 종종 인정사정없는 폭력이 횡포를 부린다.
레지와 로니는 완전히 다른 성격과 행동양식을 지닌 쌍둥이. 레지는 냉정하고 매력적이며 논리적인 지도자 형인 반면 안경을 쓴 동성애자인 로니는 사이코. 언제 무분별한 폭력성이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인물로 하디가 위압감을 느끼게 하는 연기로 이 희비극적인 인물을 극적으로 표현한다. 육체적으로 또 감정적으로 모든 것을 소진하 는 연기다.
로니는 가공스런 폭력을 구사하면서도 어머니가 만들어주는 차와 케익을 즐기는 마마보이인데 이런 그의 모습은 갱영화 ‘백열’의 제임스 캐그니를 연상케 한다. 조연진들이 훌륭한 연기파들이나 개개인의 특성이 썩 잘 묘사되진 못했다.
채즈 팔민테리가 크레이 형제와 손을 잡고 일을 하는 미국의 갱스터로 데이빗 튤리스가 크레이 형제의 사업고문으로 그리고 폴 베타니가 형제의 라이벌 갱스터로 각기 나온다. 이들의 얘기는 지난 1990년에도 ‘크레이즈’(The Krays)라는 제목으로 영화로 만들어졌었다. 브라이언 헬게랜드 감독(각본 겸). R. Universal.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불멸의 베토벤’




개인적으로나 음악적으로 모두 혁명적이었던 베토벤처럼 극적인 인물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는 평생을 질병과 우울증 그리고 고독과 짝사랑에 시달리면서도 결코 자신의 이런 운명에 굴복치 않은 프로메테우스와도 같은 저항인이었다.
음악가로서 청각을 잃은 베토벤의 삶은 역경을 극복한 승전가로 그의 변덕스런 성격과 드라마틱한 인생이야 말로 영화의 소재로서 안성맞춤이다.
베토벤에 관한 영화로 고전 걸작은 프랑스의 거장 아벨 강스가 감독한 ‘베토벤의 삶과 사랑’(The Life and Loves of Beethoven·1937)이다. 베토벤의 일생을 상상력을 동원해 재구성한 표현력 강한 작품으로 덩지가 큰 코주부 프랑스 명우 하리 바우어가 베토벤으로 나와 강건한 연기를 한다.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베토벤이 32세 때인 1802년 10월 휴양 중이던 비엔나 인근의 광천마을 하일리겐슈타트에서의 산책 장면. 청각을 거의 상실한 베토벤이 시골길을 산책하다 나무 밑에 앉아 머릿속에 떠도는 새소리, 냇물소리, 대장간소리 그리고 천둥과 빗소리를 들고 있는 악보에 음표로 적는다. 이 때 온갖 소리를 사용한 음향효과가 극적이요 아름다운데 이 장면은 베토벤이 ‘전원 교향곡’을 작곡하는 모습이다.
나는 지난 2006년 5월 비엔나를 방문했을 때 그가 묵으면서 유서를 썼던 하일리겐슈타트의 집을 찾아갔었다. 그 때 비를 맞으면서 베토벤이 거닐었을 보리수 길을 따라 걸으며 잠시나마 베토벤의 고뇌와 고독을 생각했었다.          
베토벤 영화로 잘 만든 또 다른 것은 게리 올드맨이 베토벤으로 나오는 ‘불멸의 연인’(Immortal Beloved·1994·사진). 베토벤의 개인비서이자 그의 전기를 쓴 안톤 쉰들러가 베토벤 사후에 발견된 ‘불멸의 연인’에게 남긴 연애편지를 근거로 베토벤의 여인들을 찾아다니면서 베토벤의 삶을 회상하는 식으로 엮었다. 영화음악은 조지 솔티가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오케스트라가 연주했다.
이안 하트가 베토벤으로 나와 그 때까지의 교향곡의 틀을 완전히 바꿔 놓은 ‘에로이카’ 교향곡을 작곡할 때의 내용을 다룬 ‘에로이카’(Eroica·2003)도 좋은 베토벤 영화로 사운드트랙의 음악은 존 엘리옷 가디너가 지휘했다. 그리고 청각장애와 고독에 시달리는 베토벤(에드 해리스)과 그가 자신의 악보 정리를 위해 고용한 여음악학도와의 관계를 그린 여류 아그니스카 홀란드 감독의 ‘카피잉 베토벤’ (Copying Beethoven·2006)도 볼만하다. 사운드트랙의 피아노 연주는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의 것이다.
이들 극영화 못지않게 흥미 있는 것이 기록영화 ‘베토벤을 찾아서’(In Search of Beethoven·2009)이다. 유명 음악인들과 음악학자 및 역사학자들과의 인터뷰와 베토벤의 음악과 서한 등을 통해 베토벤의 개인적 삶과 음악 그리고 그의 예술혼을 다루었다.
그런데 새로 베토벤 영화를 만든다면 과연 어느 배우가 베토벤으로 적합할까. 내 생각에는 케이블 TV 쇼타임의 인기 시리즈 ‘정사’의 도미닉 웨스트가 적격이다.
베토벤의 음악 중 삼척동자라도 아는 것이 ‘타 타 타 타’로 시작되는 ‘운명’ 교향곡의 제1악장 첫 부분과 ‘합창’ 교향곡 제4악장의 합창 ‘환희의 송가’일 것이다. ‘운명’의 첫 부분은 디스코가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1970년대 중반 월터 머피에 의해 ‘베토벤의 다섯 번째’라는 디스코로 편곡돼 빅 히트를 했었다. 이 곡은 그 후 눈이 먼 여자 피겨스케이터의 역경을 극복한 인간 승리의 로맨스 드라마 ‘아이스 캐슬’의 스케이팅 장면에서 멋있게 쓰여졌다.
‘환희의 송가’가 폭력장면에서 쓰여져 변태적인 쾌락감을 느끼게 한 것이 스탠리 쿠브릭이 감독하고 말콤 맥도웰이 주연한 사회비판 영화 ‘클라크웍 오렌지’다.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은 앙드레 지드의 소설 제목으로 쓰여졌다. 아내와 아들을 둔 목사가 소녀 때 데려다 키워 성장한 눈 먼 거트루드를 사랑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비극이다. 영혼의 삶과 세속의 삶의 혼란 속에서 빚어지는 드라마로 1946년에 신비롭게 아름다운 미셸 모르강 주연의 프랑스 동명영화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음악의 신과도 같은 베토벤보고 “저리 물러가라”고 노래한 락뮤직이 있다. 비틀즈가 요란하게 부른 ‘롤 오버 베토벤’(Roll Over Beethoven). 동네 DJ에게 로킨 리듬 뮤직을 틀어 달라는 편지를 쓰겠다면서 “베토벤아 무덤에서 돌아누워라/그리고 차이코프스키에게도 그 뉴스를 말해라”라고 떠들어대고 있다. 이 노래는 원래 미국 록가수 척 베리가 부른 것을 베리의 팬들인 비틀즈가 편곡해 불러 히트했다.
LA필이 요즘 LA 다운타운의 디즈니 콘서트홀에서 2015~2016시즌 개막곡으로 베토벤의 교향곡 전 9곡을 연주하고 있다. ‘불멸의 베토벤’(Immortal Beethoven)이라는 제목으로 11일까지연주되는 사이클은 모두 베네수엘라 태생의 구스타보 두다멜이 음악감독인 LA필(제1, 2, 5, 6번)과 베네수엘라의 청소년 오케스트라 시몬 볼리바 심포니 오케스트라(제3, 4, 7, 8번)가 번갈아가며 연주하고 제9번은 두 오케스트라와 LA 매스터코랄이 함께 연주한다.
문의는 laphil.com이나 (323)850-2000.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