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10월 12일 수요일

국가의 탄생(Birth of a Nation)


냇 터너(가운데)가 노예들과 함께 백인들을 공격하고 있다.

1831년 버지니아주 흑인폭동 일으킨 냇 터너의 삶


1831년 버지니아주에서 발생한 흑인 노예들의 폭동과 이 폭동을 주도한 냇 터너의 삶을 그린 감정적으로 격하고 분노와 역사적 의식에 가득 찬 건강한 드라마로 흑인인 네이트 파커가 감독하고 각본을 쓰고 또 주연도 했다. 흑백 갈등이 심한 요즘 시의에도 잘 맞는 소명의식을 지닌 작품인데 좋은 드라마이긴 하나 특별히 잘 만들었거나 예술적으로 창의적이진 못하다. 
지나치게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의식에 집념, 보는 사람을 심리적으로 강압하고 있다. 역사적 사실을 상세하고 성실하게 보여주기는 하나 사건이 갖고 있는 역사적 정치적 및 도덕적 의미를 깊이 있게 다루진 못 했다. 
또 후반에 가서 파커는 과도하게 터너라는 개인 한 사람에 조명을 집중해 주변 인물이나 상황이 제대로 극적으로 처리되지 않아 허전한 감이 있다. 망치로 두드려 맞는 강한 충격을 받으면서도 극적 흥분감이나 흥미를 춘분히 경험할 수는 없다. 
이 영화는 파커의 과거 개인적 문제 때문에 큰 화제가 됐다. 파커는 지난 1991년 펜 스테이트대에 다닐 때 룸메이트이자 레슬링팀 동료로 흑인인 진 셀레스틴(이 영화의 공동 각본가)과 함께 여학생을 강간한 혐의로 기소됐으나 무혐의로 풀려났고 셀레스틴은 유죄판결을 받은 뒤 재심에서 이 판결이 뒤집어졌다. 그런데 둘을 고발한 여자는 지난 2012년 자살했다. 
제목은 미 영화사의 초기 거목인 D.W. 그리피스가 감독한 남북전쟁과 그 후의 얘기를 그린  대작 동명영화에서 따 왔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보고 “천둥으로 쓴 역사”라고 찬양한 이 영화는 흑인들을 강간과 약탈을 자행하는 원숭이들 같이 묘사하고 이들을 처벌하는 KKK를 영웅적 단체로 그려 인종차별영화의 표본으로 꼽히고 있다. 
냇 터너(파커)는 목화농장주 새뮤얼(아미 해머)과 엘리자베스(페넬로피 앤 밀러) 부부의 소유. 가운이 기울고 경제적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새뮤얼부부는 다른 농장주들보다 훨씬 관대해 엘리자베스는 남달리 총명한 어린 터너에게 성경을 가르친다. 그래서 그는 커서 목사가 되는데 돈에 쪼들리는 새뮤얼은 터너를 데리고 이웃 농장을 돌면서 노예들에게 설교를 시킨 뒤 주인들로부터 사례비를 받는다.
이와 함께 노예들의 비참한 삶이 묘사되고 백인들의 노예들에 대한 가혹행위가 묘사 된다. 그리고 터너는 아름다운 노예 체리(에이자 네이오미 킹)과 결혼해 현실에 적응하면서 산다. 그러나 터너가 백인에게 세례를 주면서 그는 가혹한 채찍질을 당한다. 
이와 함께 노예들의 참혹한 삶에 서서히 터너의 눈이 떠지면서 그는 ‘압제자를 타도하라’는 성경의 말대로 동료 노예들을 규합, 폭동을 일으킨다. 도끼와 칼로 무장한 이들이 죽인 백인들은 55-65명 정도. 그러나 폭동은 이틀 만에 진압되고 터너는 교수형에 처해진다.
파커는 연출보다 연기력이 나은데 영화의 진행속도가 느려 단조롭기까지 하다. 또 파커의 변신과정에도 극적 신빙성이 결여됐다. 촬영은 좋다.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봐야할 영화다. R. Fox Searchlight.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기차를 탄 여자(The Girl on the Train)


레이철이 기차 창 밖으로 이웃을 엿보고 있다.

알콜중독 이혼녀 기억상실로 범죄에 휘말려


싸구려 냄새가 나는 모조품 같은 치정살인 스릴러로 모양새는 그럴듯하지만 내용이나 인물이 깊이나 폭이 없이 평면적이고 일차원적이다. 폴라 호킨스의 베스트셀러가 원작으로 기억 상실증에 시달리는 이혼녀인 알콜중독자가 타인의 삶을 엿보면서 살인사건에 휘말려드는 내용이 흥미진진한 영화의 소재가 될 수 있었는데 테이트 테일러 감독의 연출력이 무기력하다.
영화는 뉴욕 교외에 사는 이혼녀 레이철 왓슨(에밀리 블런트)이 하루에 두 차례 기차를 타고 집에서 직장이 있는 뉴욕을 왕복하면서 창밖을 통해 지나가는 집의 사람들을 정탐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얘기는 현재와 과거를 왕래하면서 내레이션 식으로 이어진다.
슬픔을 술로 달래는 레이철은 전 남편 탐(저스틴 테루)과 그의 새 아내 안나(레베카 퍼거슨)와 둘의 갓난 아기가 사는 집 근처에 산다. 그리고 술에 취해 이 집에 전화를 걸고 무단침입까지 한다. 레이철이 또 관심 깊게 엿보는 집이 섹시하고 아름다운 메이간(헤일리 베넷)과 그녀의 마초맨 남편 스캇 힙웰(루크 에반스). 그런데 메이간은 안나의 아기의 보모였다.
어느 날 레이철은 출근(그러나 그녀는 술 때문에 직장에서 해고당했다) 길에 메이간이 집의 발코니에서 다른 남자와 키스를 하는 것을 목격한다. 이 남자는 동네의 정신과의사 카말 압딕(에드가 라미레스가 소리소문도 없이 영화에서 사라진다). 세 남자와 세 여자가 얘기를 엮어 가는데 중심 플롯은 레이철이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에 취한 날 일어난 살인사건.
영화의 문제는 누가 살인범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가 있어 긴장감을 즐길 수가 없다는 것. 여섯 명의 인물들이 하나 같이 목석같은데 그마나 가장 나은 사람은 블런트. 매우 심각하게 연기하나 자연스럽지가 못하다. 내용과 연기와 인물 개발 등이 다 부진한 영화이나 한 번 보고 버릴 공항 매점서 파는 소설의 천박한 재미 정도는 있다. PG-13. Universal.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알제리의 전투‘(The Battle of Algiers·1966)


알제시민들이 유럽인 지역으로 내려와 대규모 반 프랑스 시위를 벌이고 있다.

프랑스에 맞서 싸운 알제리 저항단체의 독립전쟁


알제리의 프랑스로 부터의 독립전쟁 중 알제리의 수도 알제에서 벌어진 저항단체 FNL(민족해방전선)의 치열한 도시게릴라전쟁을 1954-1957년 까지 3년간 집중적으로 다룬 강렬하고 사실적이며 긴장감 가득한 불후의 걸작이다. FLN의 점령자 프랑스에 대한 무차별 테러와 이에 대한 프랑스군의 가혹한 진압이 자아내는 폭력과 유혈의 악순환을 마치 기록영화와 뉴스필름 찍듯이 생생하게 사실적으로 찍은 중요한 정치영화이자 전쟁영화로 이탈리아의 질로 폰테코르보가 감독한 흑백영화다.
급박감과 폭발성 그리고 스릴과 서스펜스와 근접감이 충격적인 뛰어난 레지스탕스영화로 FNL의 결성과 테러행위 및 프랑스군에 의한 괴멸의 과정을 다루고 있는데 감독은 반드시 아랍인들을 영웅적으로 또 프랑스인들을 괴물로 묘사하지 않고 양측의 테러와 이에 대한 응징을 공평히 묘사하고 있다.
1966년 베니스영화제 대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았는데 내용이 인화성이 강하고 사회 정치적으로 뜨거운 논란거리가 될 우려가 있어 프랑스에서는 5년간 상영금지 조치를 받았다. 이 영화는 게릴라전의 교본과도 영화로서 미국의 블랙 팬서당과 북아일랜드의 에레공화군의 교본처럼 쓰여졌고 지난 2003년 미국이 이락을 침공한 뒤에도 펜타곤에 의해 군당국자들에게 ‘테러를 이기는 방법’의 참고서로 상영됐었다. 전 세계서 테러가 횡행하고 흑백대결이 악화하고 있는  미국 내 현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시의에도 적절한 영화다.
영화는 FNL의 고급간부로 체포돼 투옥된 사디 야세프가 옥중에서 쓴 책을 바탕으로 만들었는데 야세프는 영화에서 FNL의 전략가 엘-하디 자파르로도 나온다. 야세프와 함께 FNL의 리더 중 한 명인 알리 역의 브라힘 하지악 등 대부분의 극중 인물을 비배우들이 맡아 사실감을 극도로 살렸는데 유일한 배우는 FNL을 타도하기 위해 알제에 투입된 프랑스 공수부대장 중령 역의 장 마르탕. 
알제 현지에서 찍었는데 특히 항구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의 미로 같은 구 도시(카스바-이 곳은 장 가방이 나온 운명적이요 로맨틱한 ‘페페 르 모코’의 무대이기도하다)에서 손으로 들고 찍은 도주와 추격과 총격전이 긴박감 있다. 줌 과 롱샷 그리고 큰 화폭에 일필휘지로 붓질을 하듯 대담하게 담은 대중의 시위장면 등 촬영(마르첼로 가티)이 빼어나다. 
그리고 테러직전의 드럼을 위주로 한 서스펜스 가득하고 몰아대는 듯한 리듬과 테러 직후의 처참함을 진혼곡식으로 표현한 엔니오 모리코네(‘황야의 무법자’ 음악)의 음악도 훌륭하다.  음악에는 모리코네의 친구이기도 한 폰테코르보가 동참했다. 이와 함께 폭발음과 총격소리 그리고 헬기소리와 추격하는 군화소리 등 음향효과도 직감적이다.
영화는 1957년 10월 7일(화면에 연도와 날짜가 명기되는데 이는 실제 사건이 있었던 때를 말한다)부터 시작된다. FNL의 리더중 하나인 젊은 알리와 남자 동료와 소년과 여자 동료가 카스바의 집 벽 속에 숨어 있는데 여기에 폭탄을 설치한 프랑스 공수부대장 마티외중령이 이들에게 항복을 권유하면서 알리의 회상이 시작된다. 알리의 잠복처는 프랑스군의 고문에 못견딘 나이 먹은 알제의 시민에 의해 드러났다.   
1954년. 잡범인 알리는 교도소에서 프랑스의 점령에 저항하던 시민이 단두대에서 처형되는 것을 보고 레지스탕스에 가입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첫 임무로 자파르가 지시한대로 프랑스경찰을 저격한다. 그러나 권총에 실탄이 없자 알리는 경찰을 때려눕히고 도주한다. 이는 자파르가 신참인 알리의 충성을 시험한 것이다. 
FNL은 유럽인 지역에서 경찰들을 무차별 살해한다. FNL은 프랑스에 동조하는 알제시민들도 처형한다. 이어 카스바로 가는 모든 길목이 차단되고 이를 지나가야하는 알제시민들은 검문검색을 받는다. FNL에의 테러에 분개한 프랑스인들이 카스바에 폭탄을 설치, 큰 인명피해가 난다. 이에 대한 응징으로 FNL은 유럽스타일로 꾸민 세 명의 여인의 핸드백에 폭탄을 숨겨 유럽인지역의 에어프랑스 사무실과 번잡한 카페 등 세 곳을 폭파하면서 대규모의 인명피해가 난다. 유혈폭력의 악순환이다.
이에 마티외 중령이 이끄는 프랑스공수특전단이 진압군으로 도착한다. 마티외는 부하장교들에게 FNL의 세포를 고립시켜 파괴하라고 지시한다. 한편 UN에서 알제리문제가 토의되는 것을 계기로 FNL은 8일간의 총파업을 지시하고 프랑스군은 파업에 들어간 시민들을 강제로 집에서 끌어내 닫은 상점의 문을 열게 한다. 그리고 FNL과 연관이 있다고 의심되는 시민들을 잡아다 전기충격을 주고 주리를 트는 가혹한 고문을 한다. 
잠복처가 탄로난 자파르는 투항하고 FNL에서 유일하게 체포되지 않은 사람은 알리. 여기서 장면은 처음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마티외는 알리에게 투항을 재차 종용한다. 골목과 지붕 위의 알제시민들이 알리가 숨어있는 곳을 향해 두 손을 들고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를 한다.
이로부터 2년 후인 1960년 12월. 2년간 잠잠하던 대규모의 알제시민들이 천으로 급조한 알제리국기를 흔들며 유럽인 지역으로 내려와 “알제리”를 외치면서 시위를 벌인다. 밤이 되면서 알제의 하늘을 아랍인 특유의 리드미컬한 외침이 가득히 채운다. 알제리는 1962년 7월 5일 독립했다. 개봉 50주년을 맞아 새로 복원된 ‘알제리의 전투’가 7일부터 1주일간 뉴아트극장(11272 산타모니카)에서 상영된다. (310)473-8530. 사디 야세프가 9일  오후 4시 극장에서 관객과 대담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앤젤리나 졸리>브래드 핏




할리웃의 황금커플로 ‘브랜젤리나’(사진)로 불리던 브래드 핏(52)과 앤젤리나 졸리(41)가 헤어졌다. 할리웃에서 부부와 애인이 헤어지는 것은 우리가 하루에 밥 세끼 먹듯이 일상적인 일이다. 그러나 핏과 졸리는 자신들이 만들어낸 영원불멸의 사랑과 인도적 소명감에 가득 찬 부부라는 이미지로 인해 둘의 일거수 일투족이 세계적 뉴스가 되곤 해 이번 헤어짐 또한 뜨거운 화제가 되고 있다.
둘의 분리를 보고 내가 느낀 바는 할리웃 커플들이 레드카펫을 비롯해 외부에 노출시키는 그들의 광채 나는 이미지가 가짜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할리웃이라는 동네가 허영과 환상, 미혹과 허위의 보금자리로 미소와 화려한 언사가 스타들의 직업조건이니 만큼 그동안 많은 스타들을 만나고 또 인터뷰를 해온 나는 어느덧 그들의 웃음과 말을 선뜻 믿으려하지 않는 회의론자가 되고 말았다.        
남이 안 되는 것을 보고 고소하다고 느끼는 것을 ‘샤덴프로이데’라고 하는데 핏과 졸리의 결별을 보고 제일 먼저 그 것을 느낀 사람은 아마도 핏의 전처 제니퍼 애니스턴일 것이다. 애니스턴은 지난 2004년 핏이 ‘미스터 앤 미시즈 스미스’를 찍을 때 공연하던 졸리와 사랑에 빠져(물론 둘은 이를 부인했었다) 핏으로 부터 버림을 받았다. 애니스턴은 그 후에도 핏을 못 잊어 “브래드가 저렇게 수척한 것은 졸리가 제대로 못해 먹인 탓”이라고 투덜댔었다.
그런데 핏과 졸리의 만남과 결별은 다 둘이 공연한 영화 내용과 연관이 있다. 만남은 둘이 섹시한 킬러로 나온 ‘미스터 앤 미시즈 스미스’에 의해 이뤄졌는데 묘하게도 작년에 나온 졸리가 감독하고 핏과 공연한 ‘바닷가에서’는 핏과 졸리가 결혼생활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부부로 나왔다.
난 그 동안 몇 차례 핏과 졸리를 인터뷰 했는데 둘을 보면서 느낀 점은 여러 모로 졸리가 핏보다 낫다는 것이다. 졸리는 카리스마와 우아미를 겸비한 반면 핏은 뻣뻣하고 촌티가 난다. 질문에 대답하는 내용도 졸리가 핏보다 더 깊이가 있고 지적이다. 핏이 어떻게 수퍼스타가 됐는지 이해난감이다.
졸리는 윤곽이 뚜렷한 얼굴에 큰 눈과 두툼한 입술을 지녀 육감적인 흡인력을 발산한다. 여왕적인 당당함을 지녀 거리감마저 느끼게 되는데 진지하고 자신만만하나 오만하지 않다. 깡마른 것이 흠이긴 하지만. 그런데 졸리는 자신의 마른 것에 대해 “여자들은 말랐다고 하면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그 것은 칭찬이 아니라 비판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한바 있다.
졸리는 핏과의 사랑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 있어 사랑이란 둘이 함께 도덕적 가치와 미래에 대한 꿈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둘이 같이 웃음을 웃는 것이다. 브래드와 나는 가족의 중요성과 아이들의 양육법 그리고 세계관이 모두 같다.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떻게 헤쳐 나아갈 것이며 또 무엇이 옳은 일인가에 대해서도 생각이 비슷하다”면서 “핏은 나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친구요 내 남자이며 또 훌륭한 아버지”라고 극구 칭찬했다.
졸리는 유엔특별대사로 세계의 분쟁지역을 돌며 난민들을 돕고 있는 인도주의자다. 그녀는 배우와 감독과 인본주의자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서슴없이 인본주의자를 선택하겠다고 한다. 따라서 졸리는 북한의 핵무장에 대해서도 관심이 크다. 졸리는 이에 대해 “북한의 핵무장을 내 유엔활동의 일환으로 삼아 최선의 해결책을 강구하고자 한다. 난 한국에 갔을 때 그 것에 대해 사람들과 얘기를 나눴고 또 북한문제에 관해 일하는 유엔관리들과도 얘기를 나눈다”고 말했다.
자신을 배우로서보다 세계시민으로 여기는 졸리이니 만큼 그녀의 할리웃에 대한 견해는 색 다르다. 졸리는 할리웃은 자신의 총체가 아닌 한 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배우라는 직업에 감사하고 또 그 일을 즐기기는 하나 그 것은 세상사에 비해 매우 작은 것이며 할리웃 사람들은 그들의 마음을 중요한 것으로 채우지 않고 있다고 반 할리웃적 발언을 한바 있다.
여섯 아이의 어머니인 졸리의 강한 인도주의 정신은 자선가였던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다고 한다. 인도주의적 활동을 통해 약자의 슬픔과 고통을 깨달은 뒤부터 이기적이기를 거부하고 매사에 감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사적인 일이라고 하지만 졸리는 핏과의 결혼설에 대해 결혼 불과 두 달 전에도 오리발을 내민바 있다. 지난 2014년 6월의 인터뷰에서 이 문제에 대해 “결혼 계획 전연 없다”고 딱 잡아뗀 뒤 그 해 8월 프랑스에서 결혼했다. 이러니 어떻게 스타들의 말을 믿겠는가.
핏은 인터뷰에서 졸리와의 결혼에 대해 “이제 진짜 결혼한 남자로 느껴진다. 결혼 후 그 것이 단지 하나의 축하행사가 아니라 서로의 언약을 더욱 깊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이런 소리는 이제 다 빈말이 되고 말았다. 졸리와 핏은 불원 서로 새로운 다른 상대를 만나 다시 한 번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것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