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인생의 기본은 사랑”
과거 모국인 이탈리아와 할리웃에서 맹활약한 연기파이자 육체파 수퍼스타 소피아 로렌(80)과의 인터뷰가 할리웃에 있는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사무실에서 있었다.
이 자리는 로렌의 아들 에도아르도 폰티가 감독하고 로렌이 주연한 26분짜리 단편영화‘인간의 음성’(Human Voice)을 홍보하기 위해 마련됐다. 로렌이 최근 출판한 자서전‘어제, 오늘, 내일: 나의 인생’(이 제목은 비토리오 데 시카가 감독하고 로렌과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가 공연한 1964년작 동명의 로맨틱 코미디에서 딴 것이다)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가슴 윗부분이 들여다보이는 셔츠 위에 빨간색 드레스를 입은 로렌은 나이가 있어 젊은 시절만큼의 아름다움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위풍당당했다. 그러나 터질 것 같은 육체미를 뽐내던 로렌의 주름진 얼굴과 피부를 보면서 세월의 무상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적금발의 긴 머리와 큰 눈에 옅은 갈색 선글라스를 낀 로렌은 액센트를 써가면서 질문에 위트와 유머를 섞어 솔직하고 진지하게 답했는데 생의 예지가 가득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로렌은 현재 스위스의 제네바에 살고 있다.
-인생 80을 살면서 자기 삶에 대해 후회한 것이라도 있는가.
“왜 후회한 일이 없겠는가. 살면서 너무나 많은 일을 겪다 보면 후회도 하게 마련이나 난 어렸을 때부터 언제나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려고 애써 왔다. 그것은 결국 양심대로 사는 것이다.”
-나이를 먹은 이제 과거보다 현명해졌다고 생각하는가.
“난 늘 내 감정에 따라 살아 왔기 때문에 현명하진 못하다. 그러나 난 전후의 이탈리아에서 문제가 많고 어려운 가정환경 하에서 고생을 하며 자라 그 같은 삶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나는 그 같은 경험을 보석처럼 중하게 여기는데 나이를 먹어서도 그때의 경험에서 삶의 예지를 빌려다 쓴다.”
-지금 당신은 무엇을 추구하며 또 기대하는가.
“난 이제 내가 과거에 원했던 것을 성취했기 때문에 평화로운 삶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좋은 가족과 아름다운 자식들과 손주들이 있으니 뭘 더 바라겠는가. 단 하나 유감이라면 하얀 드레스를 입고 결혼하지 못한 것이다. 그 꿈만은 아직도 내 안에 살아 있다.”
-삶이 사랑에 관해 당신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었는가.
“사랑이란 인생의 모든 면의 기본이다. 그것 없이 무얼 할 수가 있겠는가. 난 사랑 없이 살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것은 모두가 늘 찾는 것이며 또 언제나 변함이 없는 것이다.”
-명성과 성공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지녔는가.
“난 명성과 성공이 내게 찾아오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어머니와 함께 시골서 로마로 갔을 때 그저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하리라 다짐했었다. ‘쿼바디스’의 엑스트라부터 시작했다. 거기서부터 차근차근 올라갔다. 내가 성공한 큰 이유는 나와 같은 나폴리 출신의 비토리오 데 시카가 나를 나폴리가 무대인 영화에 썼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나는 점차 무게 있는 역을 맡게 됐다. 난 데 시카와 함께 20년을 일했다. 그는 나의 꿈을 이뤄준 사람이다.”
-아들 감독과 다른 감독들과의 차이라도 있었는가.
“감독은 비교할 수 없다. 무슨 영화를 만드느냐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장 콕토의 1인 독백극이 원작인 ‘인간의 음성’은 나이 먹은 여자의 과거에 대한 회상이다. 난 늘 이 역을 하고 싶었지만 나이가 안 돼 못했다. 2년 전에야 작품의 여인과 나이가 비슷해 만들었다. 꿈의 실현과도 같은 영화다.”
-아직도 영화에 대한 정열을 지니고 있는가.
“아직도가 아니다. 난 늘 열정을 가지고 있다.”
-당신의 손주들로부터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라도 있는가.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그런지 난 그들로부터 단순함을 배우고 있다. 아이들이 있을 때면 집에 생기가 돈다.”
-당신이 오스카 주연상을 받은 ‘두 여인’에는 어떻게 나오게 됐는가.
“원래 그 역은 안나 마냐니에게 제공됐고 난 그의 딸 역을 맡을 예정이었는데 마냐니가 역을 거절하는 바람에 내가 맡게 된 것이다. 정말로 좋은 역으로 역시 데 시카가 감독했다.”
-요즘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가.
“난 육체적 운동을 싫어한다. 아침 4시 반에 일어나 이런 저런 할 일들을 한다. 난 매사에 정확한 것을 좋아한다. 이젠 마치 아이들처럼 무엇이든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가 있어 좋다. 일찍 일어나기 때문에 충분한 휴식이 필요한데 난 쉬는 것을 좋아한다.”
-나이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당신에게 그런 힘과 열정과 추진력을 준다고 생각하는가.
“나도 모르겠다. 가끔 아침에 일어나면 이것이 내 인생이라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난 아직도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으려는 열성이 있다. 난 늘 그랬다.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요즘 미국 영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안젤라(소비아 로렌)는 자기를 버리고 간 님을 애타게 그리워한다. 영화‘인간의 음성’ 장면. |
-얼마 전에 미 영화학회(AFI)가 주는 생애업적상을 받은 소감은.
“아름다웠다. 마치 4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내 생애 최고의 순간 중 하나였는데 유감인 것은 모두들 셀피를 찍으려고 하는 것이었다. 난 그 때까지 그것이 무엇인지를 몰랐는데 아주 성가시더라. 나는 원래 그런 행사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번엔 정말 즐겼다.”
-당신을 사모하던 그 멋진 사람들이 이젠 여기에 없는데 그들을 생각하면 고독해지는가.
“참 슬프다. 자기에게 매우 귀한 사람이 사라진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내 남편 칼로 폰티(명 제작자)가 죽었을 때가 그랬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나와 함께 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비록 사망했다 할지라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케리 그랜트가 당신에게 구혼했을 때 왜 거절했는가.
“그가 내게 구혼하진 않았다. 그와는 나의 첫 미국 영화 ‘자랑과 정열’에서 처음 만났다. 프랭크 시내트라도 나왔다. 그랜트는 정말로 멋있고 훌륭한 사람이었다. 우린 아주 좋은 관계였는데 난 23세였고 그랜트는 나보다 훨씬 나이가 들었었다. 나이 23세엔 사랑이 무언지도 잘 모른다. 그 후 난 이탈리아에서 칼로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어쨌든 그랜트와 나는 오래 관계를 유지했다. 우린 좋은 우정을 지키면서 편지와 전화로 교통했다. 그랜트의 삶이 끝날 때까지 우린 아름다운 우정을 지켰다.”
-건강의 비결은 무엇인가.
“많이 안 먹는다. 난 파스타를 좋아하지만 체중을 적당히 유지하기 위해 과식은 안 한다.”
-스위스에서의 생활에 대해 말해 달라.
“작은 마을에 산다. 난 외출을 잘 안 한다. 가능하면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아침 7시 반쯤 공원으로 산책을 나간다. 돌아와선 미국에 있는 아들과 손주들과 전화로 통화한다. 매우 단순한 일상으로 책과 각본을 많이 읽는다. 이 자서전을 쓰는데 1년이나 걸렸다. 누군가 날 저녁에 초대해도 난 거의 응하지 않는다. 공원에 가면 사람들이 날 보고 셀피 찍자고 요구하는데 다 들어준다.”
-과거 할리웃에서의 생활은 어땠는가.
“아주 즐겼다. 조지 큐커와 찰리 채플린 같은 훌륭한 감독들과 일한 것은 정말로 멋있는 일이었다. 특히 채플린과 일한 것에 대해선 굉장한 자부심을 느낀다.”
-아시아 영화에서 일할 생각이 있는가.
“당장은 없지만 난 새 장소를 발견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럴 생각이다. 난 세계의 구석구석과 연결되고 싶다.”
-당신과 어머니와의 관계는 어느 정도 가까웠는가.
“아주 가까웠다. 내가 이렇게 된 근원은 어머니 때문이다.”
-혹시 미를 위해 당신 모습을 고쳐볼 생각이라도 한 적이 있는가.
“사람은 태어나서 나이를 먹게 마련인데 뭘 고치려고 하는가. 젊어 보이려고 성형수술을 하다간 괴물이 되는 수가 있다. 주름살이 있지만 난 슬픈 주름살보다는 행복한 주름살을 갖고 싶다. 성형수술을 하면 영원히 슬픈 주름살을 갖게 된다.”
-편지를 무엇으로 쓰는가.
“펜으로 종이에 쓴다. 난 컴맹이다. 내 생일에 팬들이 카드를 보내오면 난 일일이 친필로 글을 써 답신한다. 컴퓨터로 답한다는 것은 너무 비인간적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