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트완(왼쪽)은 아들 쥘리앙에 대한 방문권을 놓고 별거한 아내와 치열한 대결을 벌인다. |
“내 아들 만나는 걸 왜 막아” 섬뜩한 양육권 분쟁
별거한 채 이혼 절차에 들어간 부부의 어린 아들 양육권과 방문권을 둘러싼 가족 드라마를 시종일관 긴장감 가득한 심리 서스펜스 스릴러 스타일로 교묘하게 변형시킨 프랑스 영화다. 가정 폭력과 함께 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법 체제를 비판하면서 이로 인해 겪는 피해자들의 공포와 불안 그리고 좌절감을 심도 있게 다룬 영화로 사비에르 르그랑이 각본을 쓰고 감독했다.
스크린을 외형상으로나 심리적으로 압도하는 것이 두 자녀와 함께 새 거주지로 도망가다시피 한 아내를 집요하게 쫓아가 아들을 보겠다고 요구하는 아버지 역의 드니 메노쉐의 모습과 연기다. 레슬러처럼 떡 벌어진 체구를 한 거구의 메노쉐가 씩씩거리며 아들에 대한 자기 권리를 주장하며 아내와 함께 어린 아들마저 을러대는 것을 보면 가슴이 조여드는 공포감과 위압감을 느끼게 된다.
영화는 미리암(레아 드뤼커)과 앙트완(메노쉐)이 판사 앞에서 11세난 아들 쥘리앙(토마 지오리아)의 양육권을 놓고 서로 자기 의견을 주장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미리암은 앙트완의 과거 자기와 아이들에 대한 폭력에 대해 설명하는데 이에 대해 앙트완은 아내가 주장하는 폭력행위는 허위이며 아이들에 대한 것도 폭력이 아니라 아버지로서 자녀 교육을 위해 그들에게 엄격한 행위를 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히 세드 쉬 세드’인데 영화는 절반이 가도록 과연 앙트완이 정말로 폭력적인 사람인지 아닌지를 확실히 구별하지 못하게 알쏭달쏭하게 엮어간다. 그러나 짐작은 할 수 있다.
미리암은 남편을 피해 그에게 알리지도 않고 18세 난 딸 조세핀(마틸드 오뇌베)과 쥘리앙을 데리고 이사를 가버렸다. 그리고 판사로부터 쥘리앙을 자기가 양육하되 앙트완이 아들을 보려고 주말 방문을 할 수 있다는 판결 결과를 통보받는다.
미리암이 이사한 곳을 찾아낸 앙트완은 아내를 질책하면서 아들을 차에 태우고 자기 부모 집으로 가는데 차에서 앙트완은 쥘리앙의 이마에 입을 맞추나 쥘리앙은 겁에 질려 사색이다. 그리고 공포에 떨던 쥘리앙은 아버지에게 상소리를 내뱉는다. 이 상소리 외에 쥘리앙이 하는 말은 극히 적은데 어린 아이가 어른의 폭력과 위압감에 시달리는 모습을 지오리아가 가슴이 아프도록 절실하게 표현한다.
앙트완의 부모는 아들과 손자를 따뜻이 대접하는데 식사 도중에 앙트완이 아버지의 질책에 밥상을 뒤집어 버린다. 여기서 앙트완의 성질이 고스란히 들어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그가 과연 한에 가득찬 짐승 같은 괴물인지 아니면 아들을 지극히 사랑하는 상냥한 야수인지 구별이 애매모호하게 그렸다.
그리고 영화가 종반부에 들면서 미리암으로 인해 아들을 만나 함께 있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면서 앙트완의 내면에 잠재해 있던 분노의 광기가 폭발한다. 미리암과 쥘리앙 뿐만 아니라 이를 보는 필자도 겁에 질려 몸을 떨게 만든다. 말보다도 큰 호박 같이 둥근 얼굴과 거대한 몸으로 좌절감과 아들에 대한 애정 그리고 분노를 표시하는 메노쉐의 연기가 압도적이다.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