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9월 21일 월요일

‘왼손잡이'(Southpaw) 제이크 질렌할




“권투라는 스포츠에 흠 안 남기려 애써”

  5개월간 하루 두 차례 훈련… 실제 경기 중계하듯 찍어

  육체적 한계까지 밀어붙일 때의 감정과 생각 즐기는 편


권투영화이자 보호소에 있는 어린 딸을 되찾으려고 몸부림치는 아버지의 드라마‘왼손잡이’(Southpaw)에서 몰락한 권투선수인 빌로 나와 열연한 제이크 질렌할(34)과의 인터뷰가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 덥수룩한 수염에 강렬한 눈매를 한 질렌할은 질문에 수줍어하는 듯한 미소를 지어가면서 정성껏 대답했는데 눈웃음을 치는 모습이 미소년 같았다.     

-감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매우 치열한 영화인데 경험이 어땠는가.
“내가 빌을 사랑하게 된 이유는 그가 권투선수이면서도 매우 민감하고 또 허점이 많은 사람이라는 점이다. 권투란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정신적 경기여서 민감성이 매우 중요하다. 역을 연구하면서 그들의 이런 민감성에 대해 알고 놀랐다.”

-당신은 자식도 없으면서 영화에선 어린 딸과의 관계가 아주 절실한데 어디서 그런 감정이 나오는가.
“난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각오가 돼 있다. 내 아버지가 날 그렇게 사랑하며 키웠기 때문이다. 그는 늘 나와 내 누나(배우인 매기)와 함께 놀며 즐겼다. 아버지가 내게 아이들이 어른보다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남겨준 것이다. 아이들이 어른보다 더 마음에 충실하지 않은가. 난 그들의 순수를 사랑한다. 아이들은 상상력이 자유롭기 때문에 난 연기하는 아이들로부터 오히려 배운다.”

-영화를 위해 어떤 준비를 했는가.
“과거 만들어진 많은 권투영화를 능가해야 한다는 공포가 추진력이 됐다. 감독 안트완 후콰와 함께 가급적 사실과 가깝게 만들고자 했다. 따라서 난 대역을 안 썼다. 대부분 실제 경기를 중계하듯이 찍었다. 5개월 간 하루에 두 차례씩 훈련을 받았다. 권투라는 경기를 욕되게 하지 않고자 애썼다. 나를 겸손케 하는 경험이었다.”

-역을 위해 어떤 권투영화와 실제 경기를 봤는가.
“안트완은 내가 영화에 나오기 전 7개월 동안 가능한 한 많은 권투경기를 보도록 시켰다. 그래서 메이웨더와 매니 파퀴오의 경기를 봤다. 특히 미구엘 코토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 그러나 이미 만들어진 권투영화들로부터는 가급적 거리를 두려고 했다. 상투적인 것에 빠질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인물의 성격과 행동에 보다 신경을 썼다. 내 역을 위해 특별히 참고한 것은 켄 로치 감독의 ‘내 이름은 조’다. 그리고 유튜브를 통해 가능한 한 많은 권투경기를 봤다. 

-당신과 매기와의 관계는 어떤가.
“난 아직도 매기에겐 어린 동생으로 누나의 모든 점을 존경한다. 어렸을 때부터 누나의 연기를 보면서 배우고 자랐다.”         

-당신 속에 있는 가장 강한 힘은 무엇인가.
“쓰러졌다 다시 일어날 수 있느냐를 놓고 자기반성을 하는 것이다.”

-당신의 다음 영화는 에베레스트 등반 실화인‘에베레스트’인데 역을 위해 어떤 준비를 얼마나 했는가.
빌이 피투성이가 된 채 링에서 포효하고 있다.
“그 영화는 규모가 방대하고 감정적으로 매우 깊숙한 것이다. 그리고 매우 감동적이다. 난 매우 자랑스럽게 느낀다. 네팔과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 접경지대에 있는 해발 1만7,000피트의 돌로마이트 산에서 찍었다. 나는 산을 탄 경험이 있고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막상 산에서 영화를 찍을 때 내가 한 일이란 어떻게 살아남느냐 하는 것이었다. 실제 인물을 연기했기 때문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 특히 그의 남은 가족을 위해서 역을 연기한다는 생각으로 했다. 힘은 들었지만 재미도 많았다.”

-등산 경험이 풍부한가.
“어렸을 때 아버지와 자주 캠핑과 등산을 즐겼다. 그래서 난 자연을 사랑한다. 다 아버지 덕분이다.”

-도전자들인 등산가들의 정신적 상태를 어떻게 파고들었는가.     
“나는 육체적으로 나의 한계를 밀어붙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럴 때의 감정과 생각을 좋아한다. 영화를 위해 2만9,000피트 높이의 같은 환경을 지닌 방에 들어가 15분을 버텼는데 방에 있을 땐 재미있었는데 나온 뒤 1시간이 지나 완전히 나가 떨어졌다. 난 실제로 끝까지 갈대로 가는 사람들로 부터 배우기를 즐겨한다. 무엇이 그들의 추진력인지를 알고 싶다. 내 역은 하산하다 사망한 스캇 피셔인데 그는 생전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었다. 그의 이런 생각의 배후를 파악하고 싶었다.”

-실제로도 에베레스트를 등반할 의도가 있는가.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전에 인내심을 키워야 하는데 내게 그런 인내심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에베레스트 등반은 단순히 힘과 자신을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전략이다. 난 아직도 그것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당신의 추진력은 무엇인가.
“나는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을 좋아하고 스스로의 기준을 높이 세워 놓고 있다. 근면하고 밀고 나가던 아버지의 영향이다. 난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을 싫어한다. 난 정말로 열심히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맡은 역도 다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다.”

-당신은 매우 폭력적이 될 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평화로운 사람인가.
“둘 다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 몇 년간 내가 폭력적인 인물을 맡아 한 것도 나의 그런 면을 탐구해 보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난 침착하고 사랑의 가능성도 지닌 사람이다. 빌 역을  맡은 것도 그가 처음에는 분노로 가득 찬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성공도 결국 이 분노가 가져다 준 것이다. 그가 몰락한 것도 같은 분노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궁극적으로 이 분노와 싸울 줄 아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내가 빌 역을 맡은 것은 그의 분노의 감정에 대해 호기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나온 동성애를 그린‘브로크백 마운튼’이 나온 지 10년이 지났는데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이 변했다고 보는가.
“대법원이 동성결혼을 합법화하자 내 어머니가 내게 판결문과 함께 편지를 보내 오셨다. 내용은 전부 사랑에 관한 것이었다. 그 뒤로 많이 변했지만 이직도 변해야 할 것들이 많다. 대법원 판결이 있고 나서 난 그동안 내게 찾아와 ‘브로크백 마운튼’이 자신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녔는지를 얘기해준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로 인해 내가 변화에 작게나마 일조할 수 있었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역을 위해 다이어트를 했는가.
“체중만 조금 줄였지 다이어트는 하지 않았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시카리오(Sicario)


케이트(에밀리 블런트)가 마약 루트인 터널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미-멕시코 마약거래 둘러싼 고급 스릴러


서스펜스와 스릴이 가득한 미 멕시코 간의 마약거래를 둘러싼 스릴러로 처음부터 끝까지 숨을 죽이며 작품 속으로 빨려 들도록 강력한 흡인력을 지녔다. 내용과 연출과 연기 그리고 촬영과 음악과 편집이 모두 훌륭한 튼튼한 구성을 한 지적인 마약스릴러다. 
액션과 감정이 풍부하고 법집행자들의 애매한 도덕성까지 회의하는 지적인 작품인데 액션 스릴러로서도 성공했을 뿐 아니라 주인공들의 인물과 성격 개발도 아주 충실하다. 끔찍하고 폭력적인 장면도 많지만 결코 도를 넘지 않는 강건한 스타일을 지닌 영화인데 플롯이 주도면밀하고 복잡하지만 이해 못할 정도는 아니다. 재미 만점의 강렬한 고급 스릴러다.
특히 배우들의 연기가 볼만한데 그 중에서도 순진한 FBI 요원으로 나오는 영국 배우 에밀리 블런트의 뜨겁게 달아오르는 맹렬하고 매서운 연기가 일품이다. 몸과 마음을 꽉 감아쥔 약간의 접촉에도 튕겨날 것 같은 용수철의 긴장을 보는 것 같은데 새파란 눈이 발산하는 비수 같은 총기가 ‘양들의 침묵’의 조디 포스터를 연상케 한다. 
이 영화도 ‘양들의 침묵’처럼 여자가 주인공으로 그녀의 눈을 통해 얘기가 서술된다. 작품을 비롯해 블런트의 연기가 오스카상 감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감독은 뛰어난 스릴러들인 ‘인센디지’와 ‘죄수들’을 만든 프랑스계 캐나다인 드니 비에뇌부.
애리조나주 광야에 덩그러니 혼자 있는 강력한 멕시칸 드럭범죄 집단 소유의 집을 이상주의자인 케이트 메이서(블런트)를 비롯한 FBI 요원들이 포위해 들어가는 모습을 멀리서부터 찍은 첫 장면부터 긴장감이 감돈다(감독의 사람의 마음을 서서히 교살하는 듯한 긴장감 있는 연출력이 좋다). 요원들은 여기서 벽 뒤에 감춘 수십 구의 사체를 발견하고 곧 이어 외딴 채에서 폭탄이 터진다.
이어 케이트는 샌들을 신은 건달 같은 자칭 국방부 고용계약자라는 맷 그레이버(조쉬 브롤린)가 포함된 미 정부의 부처간 통합된 대마약전담반에 의해 수사요원으로 선발된다. 그러나 케이트는 맷이 CIA 요원이라고 의심한다. 여기에 가담하는 사람이 과묵하고 일촉즉발의 위험성이 느껴지는 전직 멕시코 검사 알레한드로(베네시오 델 토로-제목은 히트맨을 뜻하는 스페인어로 알레한드로가 히트맨인데 그의 연기가 압도적이다). 그런데 알레한드로는 정의 구현보다 개인적 복수에 집념한다.
순진한 케이트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들 범죄조직이나 별 다름없는 조직에 가입하면서 그녀가 생각하던 정의에 대한 관념이 깊은 의문에 빠진다. 이들의 목적은 미국과 멕시코를 들락날락하면서 멕시코 마약조직의 고위 보스를 이용해 이 자의 위에 있는 최고위 보스를 잡아내는 것.
영화에서 숨을 죽이게 만드는 두 장면 중 하나가 미 멕시코 국경검문소 앞에 장사진을 친 차량들의 밀림 속에서의 미국 수사팀과 멕시코 마약밀매단의 대치. 명 촬영감독 로저 디킨스의 화면 구성과 촬영이 강렬한 서스펜스를 조성한다. 이와 함께 조명을 이용하지 않은 마약밀매단의 마약운반 터널 속을 밤에 침투한 장면도 긴장감 있다. R. Lionsgate. 아크라이트, 센추리15, 랜드마크.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블랙 매스(Black Mass)


지미 벌저(자니 뎁)는 파리잡듯 사람을 죽인다.


자니 뎁의 잔인하고 교활한 연기 눈길


1970년대 보스턴 남부의 서민층 동네를 말아먹던 악명 높은 ‘윈터힐 갱’의 두목인 아일랜드계 킬러 갱스터 지미 ‘와이티’ 벌저의 실화로 연기가 좋고 기능적으로도 우수하고 재미도 있지만 보통 갱영화의 범주를 뛰어넘지는 못한다. 피 끓는 열기와 심연 같은 어둠이 존재하는 대신 얘기를 너무 말끔하고 1차원적으로 끌고 가 흥분이 안 된다.
제프 브리지스가 오스카 주연상을 탄 ‘크레이지 하트’를 만든 스카 쿠퍼 감독은 마치 내 영화는 갱영화라기보다 인물과 성격 위주의 드라마라는 듯이 연출하고 있는데 따라서 긴박감이나 스릴이 미약하다. 과거 많이 본 또 하나의 갱영화라는 기시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볼만한 것은 지미 역의 자니 뎁의 꿈에 볼까 겁나는 사악하고 잔인하며 또 뱀 같이 교활한 연기. 오스카상을 노린 연기인 듯 한데 최근 잇달아 흥행에 실패한 오점을 회복시켜 줄 만한 영화로 그의 연기만으로도 가 볼만하다  
영화는 지미를 배반한 그의 측근 졸개들이 경찰에게 지미의 비행을 까발리는 식으로 진행된다. 1975년. 지미는 보스턴 남부를 완전히 장악하고 온갖 범죄를 저지른다. 그러나 동네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친절하고 또 때론 도와주는 지미를 마치 로빈 후드로 여기고 지미 자신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런 지미에게 그의 어릴 적 친구로 FBI 요원이 된 존 카널리(조엘 에저튼이 잘 한다)가 찾아와 이탈리안 마피아를 제거하기 위한 밀고자가 되어 달라고 요청한다. 그 대신 FBI가 지미의 범죄행각을 못 본 척하면서 사실 존은 지미의 공범이 되다시피 한다. 지미의 일당과 동네사람들은 똘똘 뭉쳐 서로 간의 충성이 삶의 신조이다시피 한데 존도 이 때문에 더 지미의 범죄를 묵인한다.
제3의 인물로 등장하는 것이 주 상원의원인 지미의 동생 빌리(베네딕 컴버배치). 그러나 형제간의 드라마는 충분히 개발되지 못했다. 범죄왕국의 왕 노릇을 하던 지미(현재 86세)는 결국 자기 졸개들의 배신으로 도주해 15년간을 숨어 살다가 2011년 캘리포니아의 샌타모니카에서 체포돼 현재 옥에서 두 번의 종신형을 살고 있다.   
가운데 머리털이 다 빠진 채로 검은 안경에 점퍼를 입고 썩은 이빨을 보이면서 잔혹하고 뻔뻔한 모습을 과시하는 뎁의 연기가 일품이다. 안경을 벗으면 마치 송장의 죽은 눈동자로 응시하는데 소름 끼친다. R. WB.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오! 캐롤’




‘오! 캐롤 아임 벗 어 풀/달링 아이 러브 유 도우 유 트릿 미 크루얼/유 허트 미 앤드 유 메이크 미 크라이/벗 이프 유 리브 미 아일 슈어리 다이/’
참 옛날이다. 뛰어난 피아노 연주자로 수많은 히트 팝송을 작곡하고 노래 부른 닐 세다카(76·사진)가 1959년에 불러 전 세계적으로 빅히트한 이 노래를 내가 처음 들은 것이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그 때 나는 서울 명동에 있던 지하 음악감상실 ‘돌체’를 내 집 드나들다시피 해 감상실의 표를 받는 여자로부터 “이 학생 여기서 개근상을 주어야겠네”라는 칭찬(?)을 받기도 했다.
나는 ‘오! 캐롤’의 가사를 선배 감상실 단골로부터 적어 받아 달달 외워 혼자 흥얼대곤 했는데 이 노래는 당시 동네 꼬마들까지 ‘오! 캐롤 아임 벗 어 풀’하며 노래할 정도로 장안의 인기를 독차지 했었다.
그 때 ‘돌체’에서 들은 또 다른 빅히트곡이 폴 앵카가 부른 ‘다이애나’와 ‘크레이지 러브’다. 그 뒤로 ‘올디즈 벗 구디즈’ 팬이 된 나는 음반으로만 듣던 세다카와 앵카의 노래를 세리토스 공연센터(12700 Center Court Drive)에서 들었는데 그야 말로 감개무량이었다.
세리토스 공연센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연장으로 클래시컬 뮤직에서부터 팝과 연극과 발레를 비롯해 서커스까지 다양한 프로를 공연한다. 핼 홀브룩이 주연하는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도 여기서 봤고 탐 존스와 태미 위넷과 글렌 캠벨 그리고 앤디 윌리엄스와 자니 마티스, 고기 그랜트, 패티 페이지 및 팻 분 등의 노래와 로저 윌리엄스 피아노 연주도 다 여기서 들었다.
내가 세다카의 공연을 관람한 것은 근 20년 전이다. 거의 여자 음성 같은 맑은 고음에 예쁘장하게 생긴 그의 히트송들인 ‘오! 캐롤’ ‘런 샘슨 런’ ‘유 민 에브리싱 투 미’ 및 ‘캘린더 걸’ 등을 들으며 흥에 겨워 박수를 치면서 즐거워했던 기억이 삼삼하다.
‘인 더 바이블, 1,000 이여즈 BC/데어즈 어 스토리 오브 에인션트 히스토리’하면서 시작되는 ‘런 샘슨 런’은 천하의 요부 딜라일라에게 빠진 샘슨에게 그 변장한 악마를 피해 빨리 달아나라고 조언하는 노래다. 이 노래에 비하면 탐 존스는 빅히트곡 ‘딜라일라’에서 배신녀 딜라일라를 칼로 찔러 죽였으니 세다카와 존스는 서로 국적과 생김새와 체구와 창법도 다를 뿐 아니라 요부에 대한 대처 수단도 다르다.
‘캘린더 걸’은 1월부터 12월까지 달력 속에 있는 달콤한 여자들의 사진을 보면서 1년 내내 매일 같이 그들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경쾌한 노래다. 세다카는 달력의 9월 여자를 보면서는 ‘아이 라이트 더 캔들즈 앳 유어 스윗 식스틴’하며 이 달에 16세가 된 애인의 생일을 축하하고 있다.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고등학생 때 플레이보이 달력에 스케치로 그린 섹시한 여자들을 탐하던 생각이 난다.            
‘해피 버스데이 스윗 식스틴’은 세다카의 또 다른 히트곡이다. 그는 여기서 ‘해피 버스데이 스윗 식스틴/투나이츠 더 나잇 아이브 웨이티드 포/비커즈 유어 낫 베이비 에니모어’하며 소녀티를 막 벗어난 애인을 찬미하고 있다.
그런데 난 ‘캘린더 걸’이나 ‘해피 버스데이 스윗 식스틴’ 같은 즐거운 노래들보다는 ‘원웨이 티켓’이나 ‘브레이킹 업 이즈 하드 투 두’ 같은 실연과 상심의 노래가 더 좋다. 두 노래 다 애인에게서 버림받은 사내가 속 아프다며 울고 부는 노래들이다.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세다카는 9세 때부터 줄리아드에서 피아노를 공부한 귀재로 13세 때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에 의해 뉴욕의 클래시컬 뮤직 방송쇼 연주자로 선택될 만큼 실력이 훌륭했으나 팝에 강렬한 매력을 느껴 클래시컬 뮤직을 포기했다.
그가 먼저 팝송 작곡가로 대뜸 이름을 날리게 된 곡이 줄리아드 장학생 시절인 18세 때 카니 프랜시스를 위해 쓴 ‘스튜피드 큐피드’다. 역시 프랜시스가 나오고 노래도 부른 영화 ‘웨어 더 보이즈 아’의 주제가도 세다카가 작곡했다. 세다카는 프랜시스 외에도 다른 많은 팝가수들을 위해서 작곡을 했는데 탐 존스의 ‘퍼핏 맨’과 시내트라의 ‘더 헝그리 이여즈’ 및 캡튼 앤 터닐의 그래미상 수상작 ‘러브 윌 킵 어스 투게더’ 등이 그 대표곡들이다.
세다카가 처음 직접 불러 히트한 노래들은 1959년에 나온 ‘다이어리’와 ‘아이 고 에이프’ 및 ‘오! 캐롤’ 등인데 그의 음반은 이 때부터 생애 가장 인기가 높았던 1960년대 초까지 무려 2,500만여장이나 팔렸다. 세다카는 1963년부터 가수로서의 인기가 느슨해지자 작곡에만 전념하다가 1970년대 초 엘튼 존의 도움을 받아 출반한 두 음반 ‘세다카즈 백’과 ‘더 헝그리 이여즈’가 빅히트를 하면서 재기에 성공, 지금까지 60여년 간을 노래하며 살고 있다.
7순 중반의 나이에도 꾸준히 순회공연을 하고 있는 세다카가 오는 20일 하오 3시 세리토스 공연센터(562-467-8818)에서 노래 부른다. 나도 20년 만에 그를 다시 만나 ‘오! 캐롤’을 들으면서 추억과 동무를 하려고 내려갈 예정이다. 그동안 나도 늙었지만 세다카도 이젠 많이 늙었겠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