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도 삶의 한 얼굴… 피할 대화소재 아냐”
많은 배우들이 셜록 홈즈 연기했지만 93세역은 처음
동성결혼 합헌판결 환영하지만 난 결혼할 생각 없어
현재 상영 중인‘미스터 홈즈’(Mr. Holmes)에서 시골에 은퇴해 어린 아들을 둔 가정부(로라 린니)의 돌봄을 받으면서 살면서 쇠약해가는 기억에 시달리며 자신의 과거를 정리하는 9순의 명탐정 셜록 홈즈로 나온 영국의 무대와 스크린의 베테런 배우 이안 홈즈 경(76)과의 인터뷰가 최근 포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 잿빛 머리에 머플러를 목에 감은 인자한 노신사 모습의 홈즈는 시종일관 미소를 지으며 노래까지 불러가면서 인터뷰를 즐겼는데 그러면서도 대답은 아주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했다. 장난 끼 짙은 소년 같으면서도 그는 지혜롭고 날카로운 통찰력을 지녔는데 자신의 동성애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말했다. 다정하고 인자한 인상과 언사 그리고 태도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홈즈는‘해리 포터’ 시리즈의 도사 갠달프로 아이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왜 셜록 홈즈는 세월과 무관하게 인기가 있다고 보는가.
“미스터리를 푸는 탐정은 늘 인기가 있게 마련이다. 우리에겐 숨겨진 것들을 볼 수 있는 사람의 안내를 받으며 여행을 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그를 표현한 많은 배우들이 아니었더라면 그의 명성은 그다지 빛나지 못했을 것이다. 홈즈의 또 다른 매력은 그가 상당히 어두운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는 결코 행복한 사람이 아니며 비록 총명하나 내면적으로는 보통 사람들처럼 연약한 사람이다. 내게 역이 주어졌을 때 난 ‘아이구 맙소사. 내 전에 홈즈를 연기한 사람이 무수히 많은데 또 필요하단 말인가’하고 걱정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가 93세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늙은 홈즈는 누구도 안 했기 때문에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홈즈는 기억력 상실에 고민하는데 당신의 기억력은 얼마나 분명한가.
“옛날과 달리 요즘에 기억이 필요한 사람들은 대사를 외워야 하는 배우들뿐인 것 같다. 배우가 대사를 기억 못하면 그의 인생은 끝이다. 난 그런 문제는 없다. 과거에는 대사 외우기가 연기의 가장 쉬운 것이었는데 이젠 그렇지 못하다. 내 나이가 되면 주위에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사람을 많이 보게 되는데 그저 그렇게 안 되기를 빌 뿐이다. 달리 묘안이 없지 않은가.
-이 영화는 죽음에 관한 영화이기도 한데 당신은 가끔 죽음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그렇다면 거기서 무엇을 보는가.
“촤근에 죽음의 침상에 누운 친구를 방문했고 또 다른 가까운 친구의 죽음도 봤다. 가슴이 아프다. 죽음의 얼굴은 삶의 한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에 관한 존 돈의 시 ‘종은 모든 죽음 하나 하나를 위해 울린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알려고 하지 말라. 그것은 너를 위하여 울리니 모든 사람의 죽음은 너 자신의 죽음이다’가 생각난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죽음에 대한 얘기를 회피할 필요가 없다. 그 같은 대화는 건전한 것이다. 그것은 매일의 가치를 깨닫게 만든다. 30, 40, 50대에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지만 70대가 되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얼마 전에 연방 대법원이 동성결혼에 대해 합헌판결을 내렸는데 그에 대해 당신의 의견은.
“과거에는 군대에도 갈 필요가 없고 또 결혼도 할 필요가 없어 동성애자라는 것에 감사했다. 결혼하고 싶은 사람들은 하라고 해라. 난 그들을 축복하겠다. 이번 판결은 모두가 평등하다는 아주 좋은 것이나 난 결혼할 생각이 없다.”
“아니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 반장을 했는데 우리 반의 누군가가 남의 차를 파괴한 일이 있었다. 그 때 내게 사건의 당사자를 찾아내라는 임무가 주어졌었다. 내가 맨 처음에 인터뷰한 아이는 차 주인의 아들로 난 즉시 그 아이가 무죄라고 판단을 내렸다. 그런데 그 아이가 바로 당사자였다. 셜록 홈즈 같았으면 금방 알아냈을 것이다. 난 너무 순진하다. 나는 남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 난 거짓말을 파악하는데 아주 서툴다.”
-당신은 ‘신들과 괴물들’ 그리고 이 영화와 막 촬영을 끝낸 뮤지컬 ‘미녀와 야수’ 3편에서 다 빌 콘돈 감독과 일했는데 그 경험에 대해 말해 달라.
“‘신들과 괴물들’ 이후 그와 나는 절친한 사이가 됐다. 이 영화를 마친 뒤 그가 내게 ‘당신 디즈니의 뮤지컬에 나올 생각이 없느냐’고 물어 오케이 했다. 우린 아주 친한 사이로 빌을 안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아주 겸손한 사람이다. 약간 말을 더듬어 더 매력적이다. 그리고 아주 진지하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은 모두 훌륭한 연기를 할 수밖에 없다. 그의 영화들은 큰돈을 벌지는 못해도 좋은 연기들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이 훌륭한 감독의 일이다.”
-‘미녀와 야수’에서 노래를 부르는가.
“부른다. 나는 영화에서 시계 칵스워스로 나오는데 ‘내 이름은 칵스워스, 나는 시계다 틱 톡 틱 톡”하고 노래 부른다. 그랬더니 작곡자인 알란 멘켄이 웃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더라. 영화는 대규모의 걸작이 될 것을 확신한다. 오드라 맥도널드, 이완 맥그레고, 스탠리 투치, 엠마 탐슨, 에밀리 왓슨 등 초호화 캐스팅으로 영국의 쉐퍼튼 스튜디오에서 찍었다. 빌 콘돈은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에 이르기까지 완벽히 그려낼 수 있는 감독이다.“
-일이 당신의 전 생애인가 아니면 다른 것에도 관심이 있는가.
“기본적으로는 일이 내 삶으로 그것은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이다. 다른 것도 하려고 노력한다. 좋은 친구와 이웃이 되려고 하지만 내가 제일 잘 하는 것은 역시 연기다. 난 처음부터 좋은 배우는 아니었지만 이젠 그렇다고 보겠다. 점점 더 나아지고 있는데 나는 그 점을 즐긴다. 완벽한 의자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목수와도 같다. 힘들지만 가치 있는 일이다. 특히 영화를 만드는 기쁨은 서로를 ‘달링’이라며 부르면서 일할 수 있는 배우 친구들과 일한다는 점이다. 연기가 내 생애의 전부는 아니지만 그것은 내 삶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나오는 신판 셜록 홈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의 홈즈는 머리 대신 주먹을 휘두르는 액션 탐정이라고 보는데.
“로버트에게 내가 그의 영화들을 안 봤다는 말 전하지 말기를 바란다. 따라서 영화에 대해 말 할 수는 없지만 당신의 말에 일리가 있다. 그러나 난 로버트 식의 해석에 반대하진 않는다. 하고 싶은 대로 만들라고 내버려둬라. 원작은 언제나 제 자리에 있으니까 걱정할 필요 없다. 원작을 마음대로 해석한다고 해서 그것을 파괴한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무언가를 원작에 보탠다고 볼 수도 있다.”
-로라 린니와 일한 경험은 어땠는가.
“로라 린니는 메릴 스트립과 같은 수준에 있는 배우다. 헌신적이며 안팎으로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녀는 또 철저히 직업적이며 주도면밀한 기술자다. 마음을 열어 놓는 사람이어서 함께 일 하기가 아주 쉽다. 정말 사랑스런 사람이다.”
-이성과 가졌던 아름다운 추억이라도 있는가.
“내가 9세 때 웬디라는 소녀와 사랑의 편지를 서로 교환했었다. 연애편지 쓸 때의 기쁨과 기다리는 편지가 안 올 때 느끼는 고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데 얼마 전 런던의 한 극장에서 연극을 보려고 로비에 서 있는데 한 작은 노파가 내게 다가오더니 ‘헬로 이안 내가 웬디야’라고 소개를 하더라. 이에 난 처음엔 ‘당신은 웬디가 아니야’라고 말했으나 그것이 사실임을 확인하고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었더니 ‘난 할머니가 됐어’라고 대답했다. 난 이어 ‘우린 정말 서로 잘 지냈지’ 하고 물었더니 웬디는 ‘그럼’이라고 말했다. 난 편지 생각이 나서 내 회고록 쓸 때 이용하려고 웬디에게 편지를 가지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결혼하는 날 아침에 불태웠다고 답하더라. 그것이 내가 이성과 가진 로맨틱한 경험이다.”
-직업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한 순간이 언제인가.
“난 대학생 때 연극을 많이 봤다. 나는 많은 대학 연극에 나오면서도 직업배우가 되기엔 역부족이라고 생각했다. 존 길거드와 로렌스 올리비에가 연기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할 수가 있다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대학생 때 연극 ‘헨리 4세 제2부’에 나오면서 전국지에서 격찬을 받았다. 그 날 밤 내가 기쁨과 당황감에 사로잡혀 대학 극장에 들어서자 친구들이 ‘넌 이제 에이전트가 필요해’라고 말했다. 그 때가 바로 내가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순간이었다. 그 전에는 난 그저 남의 연기를 보고 매료돼 어떻게 하면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고 고심했을 뿐이다.
-대학서 무엇을 공부했는가.
“케임브리지서 영문학을 전공했는데 21편의 연극에 나오는 바람에 학점은 엉망이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