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보 김정은 닮기 열흘간 도넛·핫독만 먹어”
크리스마스에 개봉될 코미디‘인터뷰’(The Interview)에서 김정은으로 나오는 미국 태생의 한국계 코미디언 랜달 박(40)과의 인터뷰가 최근 베벌리힐스에 있는 한국식당 겐와에서 있었다.‘인터뷰’는 미 TV의 저속한 토크쇼 사회자(제임스 프랭코)와 제작자(세스 로건)가 김정은을 인터뷰하게 되자 CIA가 이들에게 김정은 암살 지령을 내리면서 일어나는 야단스런 코미디. 북한이 제작사인 소니가 영화의 개봉을 취소하지 않으면‘결정적이요 무자비한 응징을 받을 것’이라고 공갈을 쳐 화제가 되고 있다. 영화는 저속하고 음탕하고 상스럽고 터무니없지만 웃지 않을 수가 없는데 특히 랜달 박의 김정은 묘사가 일품이다. 그는 역을 위해 체중을 늘렸다. 김정은 역은 영화보다 TV 쇼로 더 잘 알려진 랜달이 영화배우로 큰 걸음을 내딛는 계기가 될 영화다. 타이 없는 셔츠 위에 검은 색 정장을 하고 동양인 특유의 상고머리를 한 랜달은 나이보다 어려 보였는데 좌우로 북한의 인공기가 놓인 테이블에 얌전히 앉아 겸손하게 질문에 답했는데 기자가 그에게 “나도 한국사람”이라고 소개하자“형님 만나서 반갑습니다”며 깍듯이 인사를 했다. 꾸밈이 없어 친근감이 갔다. 그는 인터뷰가 시작되기 전에“이 역은 내가 나온 영화 중에 가장 큰 역으로 이 자리에 나오게 돼 마음이 심하게 들떠 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당신의 경력과 가족에 관해 말해 달라.
“나의 부모는 1960년대 한국에서 이 곳에 왔으며 나는 1974년에 여기서 멀지 않은 할리웃 프레스비테리언 병원에서 태어났다. 내가 이 역을 맡게 된 것은 나를 자기 영화에 여러 번 쓴 닉 스톨러 감독이 이 영화의 두 감독인 세스 로건과 에반 골드버그에게 김정은 역으로 날 꼭 쓰라고 적극적으로 추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디션에 나가 역의 대사를 읽었더니 다음 날 역이 주어졌다. 나 말고 다른 배우들은 만나지도 않았다고 한다. 참 놀라운 일이다.”
-감독이 당신 보고 체중을 늘리라고 했는가.
“원래는 뚱보옷을 입고 하려고 했으나 촬영이 시작되기 10일 전쯤에 카메라 테스트를 한 결과 그것이 어색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리고 두 감독은 내게 10일간 체중을 마음껏 늘리라고 권유했다. 그래서 10일간 도넛과 핫독만 먹었는데 재미있었다. 그런데 체중을 늘리는 것은 재미있었지만 그것을 다시 빼는 일은 그리 쉽지가 않았다.”
-남한과 북한 사람들의 유머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솔직히 말해 난 여기서 태어나고 자라 그것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러나 남한과 북한 사람들의 일상이 천양지차로 다른 만큼 유머도 그러리라고 본다. 남한의 감각은 폐쇄사회인 북한과 달리 서양화했고 또 미국의 그것과 서로 연결되었다고 본다. 따라서 남한 사람들의 유머는 이 곳의 유머와 어느 정도 닮은 점이 있으리라고 본다. 북한에 대해선 확실히 아는 바가 없다.”
-한국에 가 봤는가.
“열 살 때쯤 가 봤다. 그 때와 지금의 한국은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고 들었다. 매우 발전하고 현대화 했다고 들었다. 그러나 내가 갔을 땐 아주 달랐다. 대부분이 막 개발되기 시작하는 시골 같았는데 매우 빨리 발전했다고 생각한다.”
-결혼했는가.
“내 아내도 배우로 이름은 박재서이고 두 살 난 딸 루비가 있다. 우린 여기서 언덕 하나 넘어에 있는 밸리에 산다.
-노호(할리웃 북쪽)에 있는 예술인 동네에서 코미디를 한 적이 있는가.
“난 코미디언 생활 12년째로 여러 번 그곳에서 연극과 스탠드업 코미디쇼를 했다.”
-그렇게 오래 연예인 생활을 했는데 왜 이제야 우리 앞에 나타났는가.
“그것은 많은 배우들이 겪는 진보의 과정이 그렇기 때문이다. 많은 배우들이 오랫동안 조금씩 경력을 쌓다가 10년쯤 지나면 느닷없이 하룻밤 새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지난 5~6년간 조금씩 조금씩 분주한 경우가 늘어나더니 이 역을 얻게 됐다. 경력을 꾸준히 쌓은 결과 일자리도 늘어나게 된 것이다.”
-가정의 생계를 꾸려나갈 만큼 수입도 되는가.
“지난 5~6년간은 연기만으로도 생계를 꾸려나갈 수가 있었으나 그 전에는 웨이터와 각종 잡일을 해야 먹고 살았다. 아내도 마찬가지다. 아내도 광고와 영화와 TV 프로에 단역으로 나오면서 점차 조금씩 보다 큰 역을 맡고 있다. 물론 내게 있어 이 역은 생애 가장 큰 역이다.”
-제임스 프랭코와 일한 경험은 어땠는가.
“그는 참으로 흥미 있는 사람이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도 모두 다 잘한다. 이 영화를 밴쿠버에서 찍을 때도 쉬는 때는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대학에 가서 강의를 하고 또 서점에서 자기 책에 서명을 하면서 팬들을 즐겁게 해 줬다. 그는 참으로 생산적인 사람으로 자기 하는 일을 매우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거기에 전력투구를 한다. 아주 배울 점이 많은 사람으로 놀라울 뿐이다.”
-북한이 이 영화 개봉을 철회하지 않을 경우 미국을 박살내겠다고 했는데 위대한 지도자 김정은을 조롱한 당신은 신변위협을 느끼지 않는가.
“내 안전은 걱정 안 했지만 북한의 그런 반응에 대해 놀랐다. 특히 영화의 예고편이 나오면서 일찍 그런 반응이 나왔다는 것이 놀랍다. 놀랐을 뿐이지 크게 우려하진 않았다. 결국 그런 반응이 있으리라고 어느 정도 예측은 했었다. 영화를 위해 북한에 관해 공부한 결과 나온 예측이다. 그러나 난 그들이 코미디를 놓고 국가 정책을 마련할 정도로 돈 사람들은 아니라고 본다. 따라서 두려워할 것 없다.”
-위대한 지도자로서 한반도의 통일에 대한 묘안이라도 있는가.
“그랬으면 좋겠지만 난 그저 배우에 지나지 않는다.”
-당신은 아니지만 혹시 당신의 부모는 걱정하지 않았는가.
“내 부모조차도 걱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아는 코리아타운에 사는 많은 사람들도 걱정하지 않더라. 그러나 북한에 대해 잘 모르는 내 친구들은 걱정들을 했는데 어떤 친구는 전화를 걸어 ‘너 괜찮겠니, 너 어디에 숨어 있니’하고 묻기도 했다. ‘꼭꼭 숨어라’며 걱정들을 하기에 ‘나 괜찮아’라고 안심시켰다.”
-인종에 관계없이 여러 역을 얻을 수가 있다고 보는가.
“경우에 따라 다르다고 본다. 내 경력에 비추어 보건데 반반이라고 하겠다. 내가 처음에 연기를 시작했을 땐 대부분의 역이 인종과 연결된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것과 관계없이 여러 역을 맡고 있다. 미 영화계가 그런 면에서 발전했고 또 모든 인종에 대해 문도 점점 더 개방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안 아메리칸으로서 배역을 얻기가 쉬운가.
“내 경우는 기회가 점차 많아지고 있으나 그것이 모든 아시안 아메리칸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그들에겐 기회가 많이 부족하다. 그러나 점점 문이 열리면서 원래 아시안 아메리칸을 위한 역이 아닌 것도 그들이 맡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느리지만 문은 열리고 있다고 본다.”
-김정은의 행동과 말투를 모방하려 했는가.
“오디션 통보를 받자마자 연구를 많이 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이나 태도에 관한 자료는 극히 적어 애를 먹었다. 내가 본 것은 전 프로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만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그와 김정은의 모습을 찍은 HBO의 ‘바이스’ 프로였다. 그것을 자세히 보면 김정은은 자기가 어렸을 때부터 존경해 오던 로드만을 처음 만나면서 다소 안절부절 하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래서 나도 영화에서 내가 평소 존경하던 데이브(프랭코)를 만날 때 실제 김정은의 그런 태도와 로드만으로부터 시선을 돌리는 것을 모방했다.
-그밖에 그 프로에서 또 다른 점을 터득한 것이라도 있는가.
“그 프로에서 얻은 것은 아니지만 난 김정은이 젊은 나이에 갑자기 최고 권자에 오른 사실과 자신이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선 막강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 등의 정보를 역에 맞도록 사용했다.”
-자신을 얼마나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는가. 한국말을 하며 한국음식을 만들 줄 아는가. 딸에게 한국인의 뿌리를 전수해 주려고 생각하는가.
“내 한국어는 별로 안 좋다. 많이 연습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태어난 내 아내는 한국말이 유창하다. 딸이 한국어를 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나도 딸과 함께 한국어를 공부하려고 한다. 그것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 음식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다.”
-김정은의 헤어스타일에 대해서 말해 달라.
“영화를 찍는 두 달간 내내 그 헤어스타일을 지녀야 했다. 그래서 영화를 안 찍을 땐 그 끔찍한 모양을 감추기 위해 귀 덮개가 있는 방한모를 늘 쓰고 있어야 했다. 땀이 뻘뻘 날 때도 있었으나 난 결코 모자를 벗지 않았다.”
-영화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가.
“모두들 깔깔대고 웃더라. 특히 내 친구들은 우스워 죽겠다며 즐겼다. 그런데 내 아내는 영 반대다. 영화의 팬이 아니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