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8년 8월 6일 월요일

사람들이 뭐라고 말 하겠니 (What Will People Say)


노르웨이에 사는 파키스탄인  니샤(마리아 마즈다)는 보수적인 부모와의 세대간 갈등에 시달린다

무슬림 이민가정의 세대 갈등 사실적 묘사


파키스탄계 노르웨이 여류 감독 이람 하크가 각본을 쓰고 연출한 노르웨이에 사는 보수적 무슬림 가정의 10대 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문화적 갈등과 여성의 권리 그리고 이민자로서의 정체성 및 가족의 구성원으로서의 의무를 사실적이요 통절하게 다룬 알찬 영화다. 
하크가 10대 때 아버지에 의해 강제로 노르웨이에서 파키스탄으로 보내져 1년 반을 산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 촉박한 현실감과 함께 그 충격이 더 강력한데 보수적인 이민 1세대와 새 환경에 익숙한 2세대 간의 갈등과 충돌이라는 점에서 같은 이민자들인 한국인들에게 남 다른 느낌을 줄 영화다.
하크의 빈틈 없이 확실한 연출력과 표정으로 내면의 착잡한 감정을 절실하게 표현한 신인 마리아 마즈다(18)의 연기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출중한 작품으로 주인공이 겪는 고통과 좌절 때문에 가슴이 찢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또 분노와 함께 주인공 소녀를 깊이 연민하게 되면서 그의 자유와 해방을 부르짖게 된다.
파키스탄인 이민자들이 사는 동네에서 식품점을 경영하는 아버지(아딜 후세인)와 가정주부인 어머니 그리고 의대지망생인 오빠와 함께 사는 16세의 니샤(마즈다)는 총명하고 아름답고 생명력 넘치는 소녀. 니샤는 학교에서는 팝음악을 들으며 서구적인 삶을 사나 집에 돌아오면 엄격한 규율 속에서 산다. 
어느 날 밤 니샤가 자신의 동급생인 백인 애인을 몰래 자기 방에서 만났다가 아버지에게 들키면서 니샤의 긴 고난의 역사가 시작된다. 아버지가 딸의 애인을 구타하면서 이 소문이 동네에 퍼지고 사람들의 가십거리가 되면서 니샤의 가족은 동네사람들로 부터 왕따를 당한다. 이에 니샤의 아버지는 싫다는 딸과 함께 파키스탄행 비행기를 타고 시골 고향으로 간다. 그리고 니샤를 자기 어머니와 친척들이 사는 집에 맡기고 혼자 귀국한다. 
서구에서 누리던 자유를 잃은 니샤는 낯설고 물선 곳에서 새 문화에 적응하려고 애를 쓰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곳을 탈출할 생각을 버리지 않는다. 그런데 아뿔싸 니샤와 친척의 또래 소년이 서로 눈이 맞아 밤에 골목에서 키스를 나누다가 경찰에 들키면서 니샤는 이번에는 친척집에서도 금기의 인물이 된다. 
니샤는 노르웨이서 다시 온 아버지와 함께 귀국하는데 자유를 박탈당한 채 집에서 완전히 죄수처럼 산다. 그리고 니샤의 부모는 캐나다에 사는 파키스탄계 의사와 딸을 영상으로 약혼시킨다. 주인공 소녀의 자유와 자립과 자존을 찾는 불굴의 의지에 관한 영화이기도 한데 혹독하고 잔인하고 살벌한 분위기를 지녔지만 용서와 희망과 관용의 여운을 품고 있어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니코,1988’(Nico,1988)


니코(트린 디르홀름)가 통곡하며 고통을 호소하듯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록그룹 미녀 가수의 ‘추락’… 약물중독 등 요절 3년 전의 극적이고 강렬한 삶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활동한 미국의 록그룹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리드 싱어로 독일 태생의 미녀 가수이자 모델이며 배우(페데리코 펠리니의 ‘달콤한 인생’ 출연)였던 니코(본명 크리스타 페프겐)의 삶의 마지막 3년을 극적으로 강렬하고 또 꾸밈없이 거칠도록 사실적으로 그린 준수한 이탈리아와 영국의 합작품이다. 
니코는 재능 있는 미인으로 한때 앤디 와홀의 ‘팩토리’의 간판 가수였고 프랑스의 미남 배우 알랭 들롱과의 사이에 아들 아리를 두었으나 들롱은 자기가 아버지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니코는 인기가 시들면서 헤로인을 비롯한 약물중독자가 되어 1988년에 49세로 요절했다. 
이 영화는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결별한 니코가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밴드와 함께 자신의 최근 앨범을 선전하기 위해 영국의 맨체스터와 이탈리아 그리고 체코의 프라하 등지에서 공연한 내용을 그렸다. 헤로인이 없으면 못 사는 니코가 삶의 내리막길로 추락하는 과정이 덴마크 배우이자 가수인 트린 디르홀름의 치열하고 방기하는 듯한 압도적인 연기에 의해 감동적으로 그려졌다. 
1986년부터 1988년까지 니코가 영국인 매니저 리처드(존 고던 싱클레어)와 밴드와 함께 순회 공연을 하는 모습과 약물에 중독된 니코의 자포자기적인 삶을 중점적으로 그리면서 니코의 과거를 플래시백으로 보여주는 식으로 진행된다. 이 회상에서 니코와 다른 유명 가수들인 짐 모리슨, 밥 딜란, 믹 재거, 루 리드 및 레너드 코엔 등과의 교류가 얘기된다. 
과거의 아름다움을 잃은 니코는 헤로인이 없으면 노래를 못 부를 정도로 중증 약물 중독자로 일단 마이크를 붙잡으면 굵은 저음으로 통곡하고 고통에 울부짖는 듯이 노래하는데 매니저와 밴드멤버 등 대인 관계는 엉망이다. 아무렇게나 자른 머리를 검게 염색하고 가죽 재킷에 검은 부츠를 신고 마치 관중을 향해 선전포고라도 하는 듯이 노래 부르는 모습을 디르홀름이 에너지와 카리스마가 가득하게 연기하는데 완전히 그의 원-우먼 쇼다. 
마지막에 니코가 정신병동에 있는 아리를 오래간만에 찾아가 재회하는 장면이 비감하다. 니코는 너무 젊었을 때 아리를 낳아 아들을 제대로 키울 수가 없어 법원에 의해 양육권이 박탈돼 아리는 프랑스인 할머니가 키웠으나 탈선에 이어 정신병을 앓게 된다. 
화면을 가득히 메우는 디르홀름의 고통과 열정이 뒤엉킨 도발적이며 퉁명스럽고 또 때로는 우습기까지 하면서도 자기를 내던지는 듯한 연기가 보는 사람을 화면 안으로 끌어당긴다. 다양하기 짝이 없는 겁나는 연기다. 수잔나 니키아렐리 감독(각본 겸).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화이드 탈옥하다


7월 1일 일요일. 헬기가 프랑스의 레오에 있는 교도소 마당에 내린 뒤 헬기에서 복면을 한 괴한들이 튀어나와 연막탄과 철문커터를 사용해 교도소 내로 진입했다. 이어 이들은 강도미수 죄로 25년형을 살고 있는 악명 높은 갱스터 르드완 화이드(46^사진)를 교도소에서 빼내 헬기에 태운 뒤 사라졌다.
마치 특공대작전이나 찰스 브론슨이 주연한 스릴러 ‘브레이크아웃‘(Breakout)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이 탈옥에 걸린 시간은 10분 미만. 화이드 일당은 이 시간 현재 행방이 묘연하다. 그런데 화이드는 2013년에도 복역 중이던 리유 인근의 교도소에서 간수들을 인간 방패로 삼고 다이나마이트를 사용해 탈옥한 경력이 있는 프로 범죄자다.
흥미 있는 사실은 화이드가 영화광이라는 점이다. 그는 특히 범죄영화를 잘 만드는 마이클 맨의 열렬한 팬으로 로버트 드 니로가 범죄자로 나온 ‘하이스트 영화’(털이영화) ‘히트’(Heat)를 극장과 집에서 수밴 번 봤다고 르 피가로지가 보도했다. 신문은 화이드가 영화의 도주 장면을 자신의 강도질에 이용했고 이와 함께 이 영화에 보내는 헌사 식으로 영화 장면처럼 범행 시 하키 마스크를 썼다고 덧 붙였다.         
화이드가 맨에게 매료된 첫 작품은 맨의 데뷔작으로 제임스 칸이 나온 ‘도둑’(Thief). 그 뒤로  화이드는 맨을 우상처럼 섬기게 되었는데 2009년에는 맨을 파리에서 열린 영화 토론회에 찾아가 질문까지 했다. 화이드는 자니 뎁이 미 갱스터 존 딜린저로 나온 ‘공공의 적들’(Public Enemies)의 개봉에 맞춰 있은 토론회에 참석, 맨에게 질문을 던졌다.
화이드는 그 때 무장강도와 보석강도 죄로 10년간 옥살이를 하고 출소했을 때였다. 화이드는 먼저 맨에게 자신을 전직 갱스터라고 소개한 뒤 “당신의 범죄영화들은 내겐 사실보도이자 가록영화다. 당신은 나의 기술자문이요 대학교수이자 사부”라고 찬양한 뒤 “당신은 갱스터들이 당신의 영화들로부터 영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느냐”고 물었다. 이에 맨은 매우 당황해 하면서 “고맙지만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화이드는 범죄를 저지를 때 맨의 영화뿐 아니라 다른 범죄영화도 모방했다. 보석상을 털 때는 퀜틴 타란티노의 보석상 털이영화 ‘저수지의 개들’(Reservoir Dogs)에서처럼 범행동지들의 이름을 ‘미스터 와이트’ 등 본명 대신 색깔 이름으로 불렀다.
또 패트릭 스웨이지와 키아누 리브스가 나온 강도영화 ‘포인트 브레이크’(Point Break)에서 영감을 얻어 행한 은행강도 때는 프랑스 대통령들인 샤를르 드골과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의 얼굴가면을 쓴 뒤 영화의 대사까지 인용했다. ‘포인트 브레이크’에서 범인들이 은행강도를 할 때 레이건과 닉슨과 존슨 및 카터 등 미국 대통령들의 얼굴가면을 쓴 것을 모방한 것이다.
화이드는 2010년에 낸 자서전 ‘갱스터:슬럼에서 큰 범죄로’에서 자신의 범죄와 영화에 대한 똑 같은 사랑을 고백하면서 범죄로 부터의 은퇴를 선언했지만 공염불에 그치고 말았다. 그리고 자기 경험을 토대로 “영화가 없다면 범죄도 50%가 줄 것”이라고 말했다.
화이드는 허구와 사실의 혼돈 속에 존재하고 있다고 보겠는데 그의 범죄는 어떻게 보면 꼬마가 서부영화를 본 뒤 장난감 총을 빼들고 사격하는 흉내를 내는 것의 성인판이리고 하겠다. 화이드 못지않게 영화광인 나도 어렸을 때 웨스턴의 건맨 흉내를 냈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본 프랑스 영화계 누벨 바그의 효시적 작품인 ‘네 멋대로 해라’(Breathless)가 끝난 뒤 극장 밖에 나와서 주인공 장-폴 벨몽도처럼 하늘에 뜬 눈부신 태양을 쳐다보면서 인상을 쓰기도 했다.
영화의 힘이란 막강한 것인데 유감스런 것은 가끔 범죄나 폭력영화를 모방한 범죄가 저질러지는 일이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스탠리 쿠브릭의 ‘클라크워크 오렌지’(A Clockwork Orange)다. 이 영화를 본 영국의 10대들이 영화에서처럼 ‘빗속에 노래하며’를 부르면서 소녀를 강간했고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선 역시 영화처럼 10대들이 재미로 노숙자를 불태워 죽였다. 이에 쿠브릭은 자기 영화의 영국 내 상영을 오랫동안 금지한 바 있다. 
조승희의 버지니아텍 총기 살육사건 때는 조승희가 손에 망치를 든 사진 때문에 이 사건을 최민식이 망치를 휘두른 ‘올드 보이’와 연결시키려 했다. 콜로라도주 오로라극장 내 총격사건 때는 범인이 ‘다크 나잇’(Dark Knight)의 조커처럼 머리를 빨갛게 염색하고 경찰에 체포될 때 “나는 조커다”:라고 말해 그가 영화의 조커 흉내를 냈다는 말을 들었다
화이드를 영웅으로 여길 범죄자들이 그를 모방한 범죄를 저지르고 화이드의 이번 탈옥을 계기로 그의 범죄인생이 영화로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경찰이 혈안이 되어 찾고 있을 화이드와 그의 일당은 지금 어딘가에 숨어서 맨 감독의 영화를 자신들의 범죄 교본으로 보면서 다음 범죄를 계획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영화와 범죄의 순환 고리가 과연 언제 끊어질지 자못 궁금하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