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8년 3월 26일 월요일

‘툼 레이더’서 라라 크로포트 역 알리시아 비칸더



비디오 게임을 바탕으로 만든 액션 모험영화 ‘툼 레이더’(Tomb Raider)에서 7년 전에 사라진 영국인 모험가 아버지(도미닉 웨스트)를 찾아 일본 근해의 전설적인 섬에 도착, 초현실적인 악령과 다투는 여전사 라라 크로프트로 나온 스웨덴 태생의 알리시아 비칸더(29)와의 인터뷰가 최근 베벌리힐스의 포 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 그런데 라라 크로프트의 모험은 지난 2001년 앤젤리나 졸리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졌고 2003년에는 속편도 나왔다.
가무잡잡한 피부의 소녀티가 나는 비칸더는 액센트가 있는 말로 미소를 지으며 질문에 상냥하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비칸더는 작년에 ‘대양 사이의 빛’(2016)에서 공연한 마이클 화스벤더 와 결혼했다.

-영화를 위해 신체를 강건하게 단련시킨 뒤 뛰고 달리고 헤엄치면서 온갖 액션을 과감하게 해냈는데 소감은.
“난 어려서 춤을 배워 그런 액션을 춤의 연장으로 여겼다. 역을 위해 몇 달간 역기를 드는 외에도 등반과 격투를 배웠다. 그리고 수영과 자전거 달리기도 연습했는데 온 몸이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근육만 12파운드 늘렸다. 그러나 힘을 지닌다는 것이 대견하고 즐거웠다.”

-영화에서 어떤 부분이 가장 힘들었는지.
“강물에 휩쓸려 내려가는 부분이다. 이와 함께 영화 첫 부분에서 링에 올라 격투를 하는 장면도 힘들었다. 너무 쑥스러워 제작진들에게 얼굴을 돌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오는 10월에 30세가 되는데 특별히 축하할 계획이라도 있는가.
“어렸을 때 30이 되면 다 자란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젠 잘 모르겠다. 한 가지 좋은 점은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더 내가 스스로에 다가가고 있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한 살 더 먹는 것이 행복하다. 특별한 축하 계획은 없지만 파티하고 춤 출 것이다.”

-지금 20세 난 알리시아에게 인생의 충고를 해준다면 어떤 것이겠는가.
“그 나이 때는 장래 문제로 압박을 심하게 받을 때다. 난 20세의 내게 너무 자신에게 혹독하지 말고 남의 말을 따라 갈 것이 아니라 자기가 사랑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라고 말해주겠다. 그 나이에 장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너무 압박감을 느끼지 말라는 것이다.”

-40세가 됐을 때 이루고픈 꿈은.
“난 내가 사랑하는 것을 할 수 있는 행운아다. 난 내 삶에 있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어쩌면 그 땐 지금과 다른 길을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40이 됐을 때 나 자신도 놀랄 삶을 살고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라라 크로프트(알리시아 비칸더)가 절해고도의 절벽을 타고 올라가고 있다.


-만인이 다 잘 아는 라라 크로프트 역을 하면서 우려한 점이라도 있는가.
“라라는 22년 동안 만인에게 잘 알려진 인물인데다 앤젤리나 졸리가 이미 영화에서 주연을 해 신경이 많이 쓰였다. 그래서 그 역을 더 귀중하게 생각해야 했다. 그러나 또 한편 배우로서 영화를 함께 만드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라라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그런 걱정과 염려가 오히려 추진력이 됐다. 그리고 옛것과 달리 무언가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화는 부녀간의 관계를 얘기하고 있는데 당신과 아버지와의 관계는 어떤가.
“내 아버지는 영화와 달리 항상 내 곁에 계시는 내게 매우 중요한 사람이다. 나도 라라처럼 아버지를 무척 사랑하는데 나의 아버지는 자신의 딸에 대해 매우 행복하게 느끼고 계실 것으로 생각한다.”

-어려서부터 라라 크로프트와 같은 액션 모험 얘기를 좋아했는가.
“그렇다. 어머니는 내게 유럽의 예술영화들을 소개해 주었지만 난 그것보다 ‘인디애나 존스’와 ‘머미’ 같은 영화들을 더 좋아했다. 어려서 부터 책도 이집트신화 겉은 것을 통독했다. 라라 크로프트도 그와 같은 부류에 속한다.”

-비디오 게임을 하는가.
“그렇다. 10대 때 시작해 지난 15년간 그 게임을 즐겨왔다. 그런데 그 것은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일이어서 요즘은 그 것을 즐길만한 여유가 없다. 그러나 이 역을 위해서 게임을 연습했다.”

-얼음처럼 찬 물 속에서 촬영을 하느라고 온 몸이 새파랗게 됐다고 들었는데.
“그렇다. 그런데 촬영이 다 끝난 줄 알았더니 촬영 팀이 내게 와 한 번 더 찍어야 한다고 말했다. 난 처음에 농담하는 줄 알았다. 몸의 온도를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썼는데 너무 힘이 들어 거의 잠에 빠질 지경이었다.”

-라라 크로프트는 모험가인 아버지의 기질을 본받고 있는데 당신은 부모의 어떤 기질을 갖고 있는지.
“배우인 내 어머니가 날 영화의 세계로 안내했다. 지금도 그 점에 대해 감사한다. 난 아직도 어머니가 나온 영화들을 본다. 그러니까 연기가 우리의 같은 기질이라고 보겠다. 아버지는 모험과 공상과학 팬인데 그 점에서 우린 닮았다고 본다. 아버지는 정신과 의사로 사람들과 인간성 그리고 그들의 성격에 대해 관심이 많다. 배우로서의 내 일도 이와 비슷하다. 그래서 나는아버지와 종종 사람과 인간 행동에 관해 얘기를 나눈다.”

-결혼해서 뭔가 달라진 점이라도 있는가.
“난 사랑을 믿지 결혼을 믿는 것이 아니다. 난 언제나 로맨틱이었다. 사람들이 인생에서 찾고 희망하는 것은 사랑이다. 사랑에 대해 가장 잘 배울 수 있는 길은 사랑을 받는 것이다.”

-배우로서의 초기에 퇴짜를 많이 받았는가.
“그것은 배우들의 일상사다. 그로 인해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젊은 배우 지망생들이 내게 자문을 구하면 난 늘 퇴짜 맞을 각오를 하라는 것을 주지시킨다. 오디션에 응한 뒤 하루 종일 전화 옆에서 결과를 기다렸으나 ‘노’라는 말조차 해주지 않더라. 그러나 그런 퇴짜가 있어서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연기를 포기할 생각이라도 했었는가.
“사람들이 내게 ‘앞으로 뭘 하겠느냐’ ‘학교에 갈 생각이냐’고 물으면 난 그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꽃가게와 옷가게에서 일하면서 스트레스를 무척 받았다. 계속해 퇴짜를 받았더라면 학교에 가서 영화제작을 공부해 지금 제작자가 되었을지 누가 알겠는가.”

-최근 들어 여성들이 만들고 주연한 영화들이 관객의 호응을 받고 있는데 그런 경향이 계속되리라고 보는가.
“그렇다. 할리웃의 풍토가 변하고 있다. ‘헝거 게임’을 비롯해 ‘원더 우먼’과 같은 영화들의 성공은 모든 여자배우들에게 있어서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난 아주 긍정적으로 느끼고 있다. 최근 들어 각본가들과 통화를 했을 때도 그들은 여자가 주인공인 영화에 대해 관심을 많이 보였다. 그런 영화들이 이제 막 꽃들을 피우고 있다. 흥분되는 일이다. 소수계와 여성들이 주인공인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질 때가 왔다고 본다.”

-후배 여배우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겠는가.
“너 한 사람의 목소리가 매우 중요하니 남에게 밀리지 말고 할 말은 당당히 하라는 것이다.”

-좋아하는 음식은.
“난 어촌에서 태어나 생선을 좋아한다.”

-음악을 사랑하며 그것이 연기하는데 어떤 영향이라도 미치는가.
“음악에 대해 제대로 교육을 받진 못 했으나 음악을 사랑한다. 그러나 난 7년간 바이얼린을 연주했다. 자라면서 클래식 음악을 주로 들었는데 아마 내가 발레를 연수했기 때문인 것 같다. 연기를 할 때면 음악이 직접적으로 나의 감정에 접근해오곤 한다. 그래서 난 이어폰을 세트에 갖고 음악을 듣는다. 그 것은 촬영 중간의 나만의 휴식의 구실도 한다. 주로 가사 없는 음악을 듣는다. 전자음악, 테크노음악, 클래식 및 재즈 등 다양한 음악을 즐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개들의 섬(Isle of Dogs)


소년 아타리가 동료 개들과 함깨 사진 속의 애견 스파츠를 찾아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잃어버린 개 찾아라”견공들이 펼치는 기발한 모험


독특하고 변덕스럽고 창조적인 작품을 잘 만드는 웨스 앤더슨 감독의 스톱-모션 만화영화로 그가 2009년에 만든 스톱-모션 만화영화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를 연상케 만드는 기발한 작품이다. 세트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화면구도와 눈부신 시각효과가 다 훌륭한 작품으로 액션과 모험과 유머와 함께 정치적 사회적 의미마저 갖춘 고품질의 영화다.
앤더슨의 개와 일본과 일본영화에 바치는 헌사와도 같은데 그는 타이코 북소리와 스시와 벤토 그리고 스모경기와 사당을 비롯해 고양이와 도시로 미후네 등 일본의 모든 것을 흠모하고 찬양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일본 인물들은 일본어로 말하고 일본 개들은 할리웃의 기라성 같은 스타들의 음성으로 말을 한다.
주제는 영웅적인 주인공 소년이 오합지졸 견공 동료들과 같이 잃어버린 친구와 진실과 정의를 찾아가면서 겪는 얘기인데 플롯이 다소 복잡하다. 영화는 챕터 식으로 진행된다. 처음에 어떻게 해서 10세기 전 일본 열도를 헤매던 들개들이 길들어져 인간의 애완용이 되었는지가 설명된다.
20년 후의 일본 메가사키 시. 연임을 노리는 독재적인 시장 고바야시(미후네를 똑 닮았다)는 고양이를 사랑해 본토의 개들을 다 멸종시킬 음모를 품는다. 그는 인체에 전염되면 치명적이라면서 개 독감을 핑계로 개들을 ‘쓰레기 섬’에 집단 수용시킨다. 그리고 손수 모범을 보인다고 자기 집을 지키던 개 스파츠(리에브 슈라이버 음성)도 갖다 버린다. 얘기는 본토와 쓰레기 섬을 오락가락 하면서 서술된다.
버려진 개들 중에 다섯 마리의 개가 큰 활약을 하는데 이들은 지도자 격인 렉스(에드워드 노턴)와 야구팀 마스코트였던 보스(빌 머리)와 개밥광고 모델이었던 킹(밥 발라밴)과 가십 즐기는 듀크(제프 골드블럼). 여기에 떠돌이 치프(브라이언 크랜스턴)가 합류한다. 그리고 치프는 과거 개 쇼의 주인공이었던 암캐 너트멕(스칼렛 조핸슨)을 보고 단숨에 넋을 잃는다. 
이어 섬에 자기가 사랑하던 스파츠를 찾으러 고바야시의 12세난 조카 아타리가 경비행기를 몰고 와 불시착한다. 그리고 아타리와 렉스 일행은 섬의 한 쪽 끝에서 개 잡아 먹는 개들과 함께 사는 것으로 알려진 스파츠를 찾아 나선다.  
한편 일본에 교환학생으로 온 트레이시(그레타 거윅)에 의해 고바야시의 음모가 폭로되자 고바야시가 섬의 개들을 멸종시키기 위해 공격용 로봇 개들과 드론을 투입하면서 액션이 일어난다. 요코 오노가 고바야시의 정적의 여비서 음성연기를 하고 이 밖에도 프랜시스 맥도먼드, F. 머리 에이브래햄, 틸다 스윈턴 등이 음성연기를 한다. 영화에서 또 하나 훌륭한 것은 타이코 북소리를 중심으로 한 추진력 있는 타악기 음악으로 얘기를 힘차게 밀고 나간다. 음악은 올해 ‘물의 모양’으로 오스카상을 탄 알렉상드르 데스플라가 작곡했다. PG-13. Fox Searchlight.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마지막 초상화(Final Portrait)


지아코메티(오른쪽)의 요구에 따라 미국의 미술작가 로드는 초상화의 모델이 된다.

초상화 그리면서 겪는 일상들... 제프리 러쉬의 내면연기에 경탄


길게 늘인 인물 조각으로 잘 알려진 스위스의 조각가이자 미술가인 알베르토 지아코메티와 그가 생애 말년에 초상화 모델로 삼은 미국의 젊은 미술작가 제임스 로드와의 관계를 다룬 인물성격 묘사 소품 실화로 배우인 스탠리 투치가 각본을 쓰고 감독했다.
영화의 대부분이 지아코메티의 좁은 스튜디오 안에서 진행돼 2인 연극을 보는 것 같은데 볼만한 것은 지아코메티 역의 제프리 러쉬의 변화무쌍한 연기다. 지아코메티와 얼굴도 많이 닮은 그가 상 거지꼴을 해가지고 줄담배를 태우면서 “xuck”을 후렴처럼 내뱉으면서 변덕스런 연기를 하는 모습이 경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그가 오스카 주연상을 탄 ‘샤인’에서의 연기가 생각난다. 
반면 유감인 것은 로드 역의 아미 해머의 인물 묘사와 연기다. 지아코메티의 성격 묘사와 예측불허의 행동이 다채롭게 묘사된 반면 말끔한 차림의 로드는 내면 묘사가 깊이가 부족한데다가 해머의 연기도 목석과 같다. 영화에서 능동적인 역이 지아코메티이고 로드는 모델로 수동적인 역이긴 하지만 해머가 보여주는 로드의 모습은 영양실조에 걸린 듯하다.
1964년 파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지아코메티를 방문한 뉴요커 로드에게 지아코메티가 자기 초상화의 모델이 되어 달라고 요구한다. 로드가 이에 응하는데 2-3일이면 끝이 난다는 초상화는 3주나 걸려서야 완성된다. 이 동안에 일어나는 두 사람의 관계를 그렸는데 지아코메티의 불연속적인 작품 활동이 역동적으로 그려졌다. 그런데 지아코메티는 자기 회의론자이면서도 피카소나 샤갈을 우습게 생각한다. 
두 사람을 둘러싸고 등장하는 중요한 사람들이 스튜디오 2층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미술가인 지아코메티의 동생 디에고(토니 샬룹). 그리고 또 다른 중요한 두 사람이 지아코메티의 아내로 과거 남편의 뮤즈였던 아넷(실비 테스튀드)과 지아코메타의 현 뮤즈이자 애인으로 창녀인 캐롤라인(클레망스 포지).
지아코메티는 두 여자를 공유하고 있는데 아넷은 이런 남편의 모욕적인 태도와 철부지 아이 같은 행동에 지치고 좌절감에 빠져 있으면서도 남편을 곁에서 끝까지 지키면서 사랑한다. 테스튀드가 차분하고 깊이 있는 연기를 한다. 이와 반대로 젊고 활기찬 캐롤라인 역의 포지도 협소감이 있는 작품 분위기에 햇살 구실을 한다. 연기와 함께 또 다른 훌륭한 것이 조각과 그림 그리고 페인트와 진흙과 석고로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스튜디오의 모습을 재현한 세트. R등급.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8년 3월 19일 월요일

툼 레이더(Tomb Raider)


라라 크로프트(알리시아 비칸더)가 적을 향해 활을 겨냥하고 있다.

실종 아버지 찾아 무인도서 악당·악령과 벌이는 사투


가무잡잡한 피부에 가녀린 몸을 지닌 스웨덴 태생의 여배우 알리시아 비칸더가 영화를 위해 근육을 20파운드나 늘린 뒤 뛰고 달리고 떨어지고 절벽에 매달리고 급류에 휩쓸리면서 죽을 고생을 하는 액션 모험영화인데 도무지 흥도 신도 안 나고 심심하고 재미없다.
비칸더는 아버지를 찾아 이역만리 무인도에서 나쁜 놈들과 여자 악귀를 상대로 치고 박고 차고 찌르고 활을 쏘면서 맹렬한 킬러로 분주하나 공연히 땀만 흘린 셈이다. 이 영화는 비디오게임을 바탕으로 만든 것으로 ‘덴마크 여자’로 오스카 조연상을 탄 비칸더가 ‘나라고 액션 못할 것 같아’라는 듯이 탈바꿈을 시도한 것인데 아무래도 배역 선정이 잘못 된 것 같다.
특수효과에 지나치게 의존한데다가 플롯에 허점이 많고 또 인물들의 개발이 미흡한 서푼짜리 졸작으로 주인공 여전사 라라 크로프트 얘기는 지난 2001년 앤젤리나 졸리 주연으로 이미 영화화 했고 2003년에는 속편까지 나왔다. 졸리의 영화도 비평가들의 혹평을 들었는데 그래도 졸리가 비칸더보다 낫다.
영국 귀족가문의 재벌 리처드 크로프트 경(도미닉 웨스트)의 딸 라라(비칸더)는 아버지의 재산 상속을 거부하고 런던에서 자전거 배달부로 근근이 살아간다. 리처드는 7년 전 동양으로 인류를 재앙으로 몰아넣을 케케묵은 일본제 악령인 죽음의 여왕 히미코의 무덤을 찾아 떠난 뒤 행불이 된 상태.
아버지의 생존을 믿고 있는 라라는 아버지의 물건들을 정리하다가 아버지가 히미코의 무덤이 있는 일본 근해의 무인도에 갔다는 것을 발견하고 아버지를 찾아 동방여정에 나선다. 먼저 도착한 곳이 아버지가 배를 고용한 홍콩. 여기서 라라는 자기 가방을 훔친 청년들을 상대로 한바탕 액션 실력을 발휘한 뒤 아버지가 고용한 배의 주인의 아들로 술꾼인 루렌(대니얼 우)을 설득해 목적지로 떠난다.
그리고 섬에 도착해보니 잔인무도하기 짝이 없는 킬러 보겔(월턴 고긴스)이 이끄는 무뢰한들의 집단 트리니티가 먼저 와 히미코의 무덤을 찾고 있지 않겠는가. 라라와 루렌은 보겔에 붙잡혀 죽을 고생을 하다가 라라가 무술실력을 발휘해 혼자 탈출한다. 그리고 라라는 동굴 속에서 암굴 왕 몬테 크리스토 백작처럼 살고 있는 아버지를 만나 재회의 기쁨을 나눈다. 신파다.
이제 부녀의 임무는 히미코의 무덤을 찾아내 그것을 파괴하는 것. 그러나 이들의 뒤를 보겔 일당이 쫓아와 라라와 리처드와 보겔 등이 함께 동굴 속으로 깊이 히미코의 무덤을 찾아 간다. 그리고 히미코의 악령이 살아나면서 난리법석이 일어난다.
영화를 보면 ‘인디애나 존스’의 장면들을 그대로 빌려다가 쓴 부분이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 감독은 쓰나미 대재난 얘기 ‘웨이브’를 만든 노르웨이의 로어 우턱으로 그의 할리웃 데뷔작이다. 크리스틴 스캇 토마스와 함께 명연기파 데렉 자코비가 단역으로 소모되고 있는데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 속편이 나올 것처럼 끝이 난다. PG-13. WB.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엔테베의 7일(7 Days in Entebbe)


독일 테러리스트 보니(왼쪽)와 브리기테가  납치한 에어 프랑스기 앞에 무장을 한 채 서 있다.


1976년 에어 프랑스기 납치사건 소재
구출협상 작전… 액션보다 말만 무성


1976년 6월에 일어난 에어 프랑스기 납치사건을 다룬 영화로 액션과 서스펜스 대신 말이 많다. 이스라엘 정치가들은 납치된 이스라엘 시민을 구출할 방법을 놓고 갑론을박을 하고 납치범들은 그들 나름대로 자신들의 소명을 설명하느라 말이 많다.
액션 영화의 소재를 놓고 정치성이 다분한 드라마를 만들었으니 지루하기 짝이 없는데 신경을 극히 거슬리는 것은 영화 간간이 모던 댄스 장면을 삽입해 내용의 흐름을 막고 있는 점이다. 브라질 감독 호세 파디야는 댄스장면을 극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쓰고 있지만 보고 있자니 짜증이 난다.
이 사건은 1976년 커크 더글러스, 버트 랭카스터 및 엘리자베스 테일러 등 기라성 같은 배우들을 써 ABC-TV가 ‘엔테베의 승리’라는 영화로 만들었고 1977년에는 찰스 브론슨이 주연하는 NBC-TV 영화 ‘엔테베 습격’으로도 만들어졌다. 둘 다 흥미진진한 액션영화로 ‘엔테베의 7일’보다 백배 낫다.
백 수십 명에 달하는 이스라엘 시민과 프랑스 시민들을 태우고 텔아비브에서 파리로 가던 여객기가 2명의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 단원과 팔레스타인 독립을 지원하는 독일의 두 남녀 테러리스트 보니(다니엘 브륄)와 브리기테 쿨만(로자먼드 파이크)에 의해 납치된다.
그리고 여객기는 식인종 이디 아민이 통치하는 우간다의 엔테베공항에 착륙한다. 납치범들은 이들을 공항 터미널에 수용한 뒤 이스라엘 정부에 대해 이스라엘이 수감한 테러리스트와 승객들을 교환하자고 제의한다.
이스라엘은 절대로 납치범들과 협상을 하지 않는 것을 정책으로 삼고 있어 온건파 이츠학 라빈 수상(리오르 아쉬케나지)과 강경파 시몬 페레즈 국방장관(에디 마산) 등이 참석한 각료회의에서는 이 문제를 놓고 열띤 토론이 벌어진다. 그리고 밖에서는 납치된 사람들의 가족들이 자기 가족들을 살려내라고 아우성을 치면서 정부에 압박을 가한다.
이스라엘 장면과 우간다의 납치범들의 신상 소개 그리고 이들과 납치된 사람들과의 얘기가 오락가락 하면서 서술되는데 납치범들이 납치한 사람들 중에서 이스라엘 시민들을 따로 분리시키면서 공포 분위기가 조성된다. 그런데 영화는 두 독일 납치범들을 매우 인간적으로 다루고 있다.
마침내 이스라엘 군 특공대에 의해 ‘선더볼작전’이 시작되면서 이들을 실은 군용기가 심야에 엔테베에 도착한다. 작전 결과 이스라엘 군 1명과 납치된 사람들 중 4명만 사망하고 나머지는 모두 구출됐다. PG-13.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김기덕


한국에 불어 닥친 대여성 성폭행 폭로운동인 ‘미투’의 표적 중 한 사람으로 지목 받던 영화와 연극배우이자 대학교수인 조민기가 끝내 자살을 하고 말았다 그의 자살은 2009년 신성 장자연(당시 27세)이 매니저의 압력으로 영화감독과 회사사장 및 신문사 간부들에게 섹스를 제공하다 못해 자살한 것과 역설적인 대조를 이룬다. 이렇게 영화감독이나 제작자가 배역을 미끼로 여배우들로부터 섹스를 착취하던 소파를  ‘캐스팅 카우치’(casting couch)라고 일컫는다. 
지금 한국영화계에서 ‘미투’의 거센 바람을 맞고 있는 유명한 사람이 세계적인 감독 김기덕(57^사진)이다. 최근 3명의 여배우들이 김 감독으로 부터 성추행과 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하면서 이런 소식이 국제적 뉴스감이 되고 있다.
김 감독은 이에 대해 “영화감독이란 지위로 개인적 욕구를 채운 적이 없다”면서 “여자에 대한 관심으로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일방적인 감정으로 키스를 한 적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서로에 대한 호감으로 만나고 서로의 동의하에 육체적 교감을 나눈 적은 있다”고 교언영색적인 단어를 써가며 자기를 변호했다.
그런데 김 감독의 성폭행 문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전에도 이런 문제가 제기됐으나 유야무야 되곤 했다. 한국 영화계에서의 대여성 성폭행의 근원은 한국적 전통인 남성위주와 권위주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김기덕의 영화에 참여했던 한 스태프가 “그는 왕이었다”고 김 감독의 절대 권력을 표현한 것도 이런 사고방식과 일맥상통한다.
요즘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과거 한국남자들 사이에서는 ‘여자와 북어는 사흘에 한번 씩 패야 된다’는 말이 유행했었다. 이런 사고방식을 지닌 나라에서 사회전반에 걸쳐 대여성 성폭력이 만연한 것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김기덕의 영화들은 대부분 어둡고 잔인하고 폭력적이며 가학적인데 특히 여성들은 강간이나 성매매의 희생자들로 자주 나온다. ‘섬’ ‘악어’ ‘나쁜 남자’ ‘사마리아’ 및 ‘파란 대문’ 등이 다 그런 것들이다. 그는 새디스트다. 그런데 성매매를 다룬 ‘나쁜 남자’의 주연남우 조재현도 김기덕과 함께 ‘미투’에 의해 성폭행자로 거명되고 있다.
나는 김기덕의 ‘수취인 불명’이 2001년 9월 토론토국제영화제에 출품됐을 때 그를 처음 만났다. 둘이 한국식당에서 술을 마시면서 대화를 나눴는데 그는 자신의 폭력에 대해 “나는 어두운 것을 통해 밝은 곳에로의 탈출구를 찾으려고 한다”면서 “내 폭력은 어둡지만 유머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나는 그가 2004년 7월 ‘봄, 여름, 가을, 겨울....그리고 봄’의 홍보 차 LA에 왔을 때 다시 만났다. 그 때 그는 “제 영화는 한국에서 안 봐요”라며 한탄을 했다. 그러더니 급기야 2006년에는 “더 이상 내 영화를 한국에서 개봉할 계획이 없다”라고 폭탄선언을 했다. 이 폭탄선언은 후에 오리발선언이 되었지만. 내가 김기덕과 두 차례 만나고 느낀 점은 그가 자기 생각을 직선적으로 표현하긴 하나 다분히 궤변론자라는 것이다.
나는 프랑스의 거리화가 출신인 영화인 김기덕의 작품을 좋아한다. 그의 영화들은 보통 영화들과 파격적으로 다르다. 그는 자기 말대로 ‘불편한 대중성’에 아랑곳 않고 자기 뜻대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강조하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지나치게 예술 지향적이어서 팬들이 극히 제한돼 있긴 하나 그런 점에서 그는 분명 예술가이다.
그의 작품이 매년 세계 유명 영화제들인 칸과 베니스와 베를린 등 국제영화제에 초청되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김기덕은 한국에서는 푸대접을 받을지 몰라도 해외에서는 박찬욱과 홍상수 처럼 큰 대접을 받는 감독이다.
그는 2004년에는 원조교제를 다룬 ‘사마리아’로 베를린 국제영화제 감독상을 그리고 같은 해에 남편의 집착과 소유욕으로 피폐해진 여자의 드라마 ‘빈집’으로 베니스국제영화제 감독상을받았다. 이어 2012년에는 끔찍하게 가학적인 ‘피에타’로 베니스국제영화제 대상인 황금사자상을 탔다.
한국에서는 지금 김기덕을 사법 처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현재 성폭행 문제로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미국의 하비 와인스틴 사건의 한국판을 보고 있는 것 같다. 김기덕에 대한 ‘미투’의 폭로가 사실로 드러나면 그의 영화인으로서의 생애도 막을 내리게 될 것이다. 한국이나 세계 영화계로선 큰 손실이나 이를 계기로 한국영화계에서 ‘캐스팅 카우치’의 악습이 사라지게 되기를 기대해 봄직도 하다. 그런데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캐스팅 카우치’가 존재하는 데는 명성과 부를 위해선 어떤 대가도 지불할 용의가 있다는 젊은 연예인들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8년 3월 11일 일요일

아카데미상 4관왕 ‘물의 모양’ 델 토로 감독




지난 4일 열린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 감독, 음악(알렉상드르 데스플라) 및 프로덕션 디자인상 등 모두 4개를 받아 최다 수상작인 된 ‘물의 모양’(The Shape of Water)을 감독한 멕시코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53)와의 인터뷰가 지난 해 11월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 이 영화는 냉전시대 미 항공우주센터 비밀연구소의 실험대상인 온몸이 비늘로 덮인 수중괴물과 연구소의 말 못하는 여자청소원(샐리 호킨스)의 사랑을 그린 어른들을 위한 환상적인 동화다.
굵은 테 안경을 쓰고 만면에 미소를 짓고 인터뷰에 임한 뚱보 델 토로는 액센트가 있는 굵은 바리톤 음성으로 진지하게 질문에 길게 대답했는데 매우 호인 인상이다. 인터뷰 후 그와 함께 사진을 찍을 때 필자가 한국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자 델 토로는 “나 서울에 갔었지. 아이러브 코리아”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물은 장벽을 허무는 사랑 상징… 음악이 큰 역할”


▲감독의 영화들은 모두 하나도 같은 것이 없고 매 편이 새롭고 신선한데 이 영화는 어느 면이 과거의 것과 다른가
“난 지난 25년간 영화를 만들면서 이렇게 내 창조적 숨을 크게 내쉬어 본 적이 없다. 그 동안은 숨을 들여 마시고 있었다면 이번에는 그 축적된 숨을 마침내 토해낸 것이라고 하겠다. 만들기가 매우 힘들었는데 거의 불가능한 것을 이룬 기분이다. 이 영화는 스릴러이자 뮤지컬이며 코미디이자 영화에 바치는 연서로 만들면서 감정적으로 또 예술적으로 환희를 느꼈다. 뭔가 과거와 다른 것을 만들고 싶었는데 과거 내 영화의 여러 부분을 종합한 것 같으면서도 새롭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과거 영화들이 내 어린 시절 신화의 표현이라면 이 영화는 내가 성인으로서 처음 우리의 신원과 각자의 다른 점 그리고 이해와 연민과 섹스와 사랑과 같은 어른들의 관심사를 얘기했다고 본다.” 

▲음악이 아름다운데 음악은 감독의 영화에 어느 정도로 중요한가
“음악은 영화의 음성이어서 매우 중요하다. 특히 이 영화는 물과 같이 아름답고 흐르는 분위기를 갖춘 음악이 필요했다. 그리고 음악은 말 못하는 샐리(호킨스)의 음성이기도 하다. 말 대신 음악으로 그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영화는 한편으로는 미국적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유럽적이어서 작곡가 데스플라에게 그런 분위기를 갖춘 음악을 지어달라고 당부했다.”

▲라틴 아메리칸 감독들의 할리웃에서의 위치가 과거와 많이 달라졌는가
“그렇다. 20년 전만해도 우리들은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마음대로 만들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젠 멕시코나 칠레나 아르헨티나 등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대규모 예산의 액션이나 모험영화를 만들 수 있고 또 작은 예술적 영화도 가능하다. 소위 ‘멕시칸 삼총사’인 나와 알폰소 쿠아론 그리고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나리투 등 우리는 지금까지도 우정을 잘 지켜가고 있으며 이 영화를 만드는데도 그들의 격려가 컸다.” 

▲물에 대한 감독의 느낌과 의미는 어떤 것인가
“영화에는 매 2분마다 물이 어떤 형태로든 나온다. 그 중에서도 동화와도 같고 꿈과도 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만드는 수중장면은 특히 중요했다. 물이 움직이는 모양과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 카메라도 영화 내내 움직여야 했다. 물을 사랑의 상징으로 사용했다. 물의 모양이 사랑의 모양이다. 물과 사랑은 모양이 없으며 필요한대로 자유자재로 모양을 취한다. 물과 사랑은 장벽을 허무는 힘을 지녔고 또 유연하다.”

▲종이 다른 생명체간의 사랑을 통해 나와 다른 것을 수용하고 이해하라는 얘기를 하는 감독의 현 세계관은 무엇인가
“우리는 지금 공포의 세상에 살고 있다. 공포는 증오를 가져온다. 우리를 가르고 왜소케 만드는 것은 이념이다. 이념은 자기와 다른 인간을 다원적으로 보지 못하게 한다. 영화의 괴물은 동물이나 어떤 종이 아니라 강으로부터 온 본질적인 신과 같은 것으로 샐리에게 자신의 요소를 깨닫게 해주고 있다. 그래서 둘은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둘의 사랑은 결코 변태적이 아니다. 따라서 이 영화는 부처와 예수 그리고 비틀즈가 말한 ”당신이 필요한 모든 것은 사랑”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사랑은 우리가 살고 있는 증오와 야만성으로 가득한 이 세상이 입은 화상을 치료해주는 연고다.”

▲영화의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었나
“여섯 살 때 흑백 미국영화 ‘크리처 프롬 더 블랙 라군’을 보고 감동한 것이 시작이다. 영화에서 여주인공 줄리 애담스가 강물 밑에 괴물이 있는지 모르고 수영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이 현기증이 나도록 아름다웠다. 난 괴물과 줄리가 결합되기를 바랐지만 괴물은 인간에 의해 희생당한다. 그 후 자라면서 난 그 괴물을 영적인 것의 상징으로 여기게 됐다. 이것이 이 영화를 만들게 된 동기다. 그러나 난 결코 공포영화를 만들진 않는다. 나는 나만의 독특한 장르를 소유하고 있다. 난 다른 장르로부터 이미지를 취해 그것을 동화나 우화의 요소로 정제한다. 그리고 난 늘 어느 얘기든지 그것을 영웅의 시각으로서가 아니라 주변 인물들의 눈으로 말하려고 노력한다. 나폴레옹의 워털루전투 얘기도 본인의 시각으로서가 아니라 그의 군복을 빨아 풀을 먹이고 다리미질을 하는 사람의 눈으로 얘기하고 싶다.”

▲영화가 ‘미녀와 야수’ 얘기를 연상시키는데
“내가 ‘미녀와 야수’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유는 이 얘기 속 미녀는 순진무구의 완벽한 전형이라는 사실이다. 완벽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결코 러브스토리가 될 수 없다. 그리고 야수가 미녀와 함께 있으려면 왕자로 변신해야 한다는 것도 마음에 안 든다. 사랑은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고 이해하는 것이지 변용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내 영화는 ‘미녀와 야수’를 내 식으로 다르게 얘기하고 있다.”   
말 못하는 청소부 엘리사가 수중 괴물과 무언의 사랑의 표현을 하고 있다.

▲영화는 옛 할리웃영화와 미국의 팝송에게 보내는 헌사와도 같아 보이는데
“그렇다. 난 영화를 옛 할리웃의 뮤지컬처럼 찍으려고 했다. 사람들은 내 영화를 보면 할리웃의 어떤 영화에서 영향을 받았느냐고 묻곤 하는데 난 어느 한 장르의 영화만 본 것이 아니다. 더글러스 서크, 윌리엄 와일러, 빈센트 미넬리 등 여러 감독의 다양한 영화들을 모두 봤다. 그들의 영화들처럼 내 영화도 우아하고 정확하며 아름답고 눈부시고 화려하게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 샐리에게도 무성영화시대의 거장 코미디언들인 해롤드 로이드, 버스터 키튼, 찰리 채플린 및 스탠 로렐 등의 영화를 보게 했다. 그리고 영화에 나오는 옛 노래와 TV프로 및 영화 장면을 고르는데 무려 9개월이나 걸렸다. 영화의 시간대를 미·소간 냉전이 한창이던 1962년으로 고른 것은 그런 때일수록 이런 사랑의 얘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은 인종과 성차별이 극심하던 때로 당신이 이민자요 여성이요 또 흑인이라면 그 때와 지금이 같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영화와 감독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영화는 몇 번씩이나 내 생명을 구해 주었다고 하겠다. 내가 극심한 침체에 빠져 있을 때면 난 영화를 보고 소생하곤 했다. 반드시 중요한 영화만이 그런 일을 한 것은 아니다. 어떤 때는 어리석은 코미디를 보고서도 삶의 활력을 되찾곤 했다. 그래서 이 영화를 영화에 바치는 연서로 만든 것이다. 난 TV시리즈도 좋아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영화의 커다란 이미지가 주는 감동을 줄 수는 없다. 영화의 강렬한 이미지는 두고두고 기억하지만 TV는 그렇지 못하다. 영화는 내 생명의 필수적인 액체다.”

▲샐리 호킨스를 주연으로 기용한 이유는
“난 나만의 세상에서 사는데 그 안에서 샐리가 큰 스타이기 때문이다. 난 배우를 쓸 때 그의 경력이나 또 그를 쓰면 흥행이 잘 된 것인지 하는 것 등에 대해선 신경 안 쓴다. 난 단지 그 사람의 내면을 보고 기용한다. 내가 샐리를 쓴 것은 오래 전에 그가 나온 BBC 시리즈 ‘핑거스미스’를 보고 감탄했기 때문이다. 샐리는 빅토리아여왕 시대 다른 여자에게 사랑에 빠지는데 그가 사랑에 빠지는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그가 여기서 사랑에 빠지는 연기를 이 영화에서 재연케 하고 싶었다. 샐리가 훌륭한 배우인 원인 중 하나는 그가 남이 행동을 주시하고 남의 말을 경청한다는 것이다. 그를 말을 못하는 사람으로 한 것은 사랑은 당신으로 하여금 말문을 닫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샐리는 에너지가 충만하다. 샐리는 실제로는 무척 수줍은 사람이나 카메라 앞에서는 살아난다. 난 그것이 좋았다.” 

▲괴물 역을 한 배우는 어떻게 기용했는지
“그의 이름은 덕 존스로 그와는 20년간 알고 지내면서 내 영화 6편에 나왔다 그리고 그는 그 무겁고 고문당하는 감각을 느끼게 하는 특수의상을 입고 분장을 하고서도 그것을 잘 참아내는 특별난 배우다. 그가 그런 의상을 입고 생명감 넘치는 연기를 한 것은 샐리에 의해서다. 샐리가 그런 의상을 입은 괴물에게 사랑을 느끼지 못했더라면 괴물의 연기도 죽고 말았을 것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스탈린의 죽음(The Death of Stalin)


스탈린의 유해를 둘러싸고 스탈린의 측근 관리들이 서 있다. 오른쪽부터 말렌코프와 흐루시초프.

스탈린 후계다툼 둘러싼 난장판 그린 정치풍자극


과장되고 요란하며 포복절도할 새카만 정치풍자 영화로 마치 스리 스투지스의 난장판 무대극을 보는 것 같다. 갑자기 스탈린이 죽은 뒤 그의 내부 서클의 고위관리들이 스탈린의 후계 자리를 놓고 서로 다툼을 벌이는 얘기인데 이들의 혼란이 마치 요즘 엉망진창인 트럼프의 참모진의 이면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기라성 같은 연기파들인 영국과 미국 베테런 배우들이 나와 꼭두각시들처럼 노는데 이들은 모두 나이 먹은 사람들은 알만한 소련 관리들과 군 장성으로 나온다. 흐루시초프, 베리아, 주코프, 말렌코프, 몰로토프 등이 서로 스탈린이 죽으면서 남겨놓은 무소불능 절대 권력을 자기들도 누려보겠다고 야단법석을 떠는데 참으로 가관이다. 
1953년 모스크바. 스탈린(에이드리안 러플린)이 참모들을 모아 놓고 회의를 한 뒤 이들에게 개인 시사실에서 존 포드가 감독하고 존 웨인이 나온 웨스턴을 강제로 보게 한다. 그리고 비밀경찰 우두머리 베리아(사이먼 러셀)에게는 숙청할 사람 명단을 주고 처치하라고 지시한다. 
스탈린은 소련의 네로 황제인데 라디오에서 생중계되는 피아노 협주곡을 듣고 좋다며 녹음 음반을 가져오라고 지시하는데 아뿔싸 방송 제작자(패디 콘시딘)가 녹음을  안 했으니 이제 그는 죽은 거나 마찬가지. 그래서 연주가 끝났는데도 그는 피아노 연주자 마리아(올가 쿠리렌코)와 악단 단원들을 못 나가게 하고 이미 떠난 일부 청중 대신 길에서 모아온 농부들을 자리에 앉힌 뒤 같은 곡을 다시 연주시킨다.
그리고 이를 녹음한 음반을 보내는데 이 소포 안에 자기 가족이 스탈린에 의해 처형된 마리아가 스탈린을 저주하는 쪽지를 집어넣는다. 스탈린이 음악을 들으면서 이 쪽지의 내용을 읽다가 충격에 쓰러진다. 여기서부터 스탈린의 내부 서클 고위관리들의 권력 다툼이 일어난다.
일단 스탈린의 자리를 말렌코프(제프리 탬보)가 맡지만 그는 통치자 자격이 모자라는 사람. 진짜 다툼은 진보파인 흐루시초프(스티브 부세미)와 살인마 베리아 사이에 벌어지는데 이들과 다른 관리들이 스탈린의 장례식 문제를 비롯해 통치권 등 여러 가지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하는 모습이 재미 만점이다. 여기에 스탈린의 딸과 아들(루퍼트 프렌드)까지 끼어들면서 정치 쇼는 절정을 이룬다.
그리고 흐루시초프는 자기를 미는 군 참모총장 주코프(제이슨 아이작)가 베리아를 제거하는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권좌에 앉는다. 마지막 장면은 흐루시초프가 연주회에 앉아있는 것으로 끝나는데 그의 뒤에서 브레즈네프가 흐루시초프를 째려본다. 연기들이 좋다. 
아만도 이아누치 감독. R등급.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순종(Thoroughbreds)


어맨다와 릴리(앞)가 릴리의 의붓 아버지를 살해할 계획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의붓아버지 살해 계획하는 두 10대 소녀… 으스스한 분위기 다크 코미디 


사악할 정도로 어둡고 신랄한 범죄 스릴러로 비도덕적인 두 10대 소녀의 성격을 날카롭게 해부한 느와르이자 다크 코미디이기도 한데 거의 공포영화의 분위기마저 지니고 있다. 대사가 날카롭고 산성기가 있는데 연극 극본가 출신의 코리 핀리의 감독(각본 겸) 데뷔작인 만큼 영화 내내 거의 한 집안에서 일어나는 세트 설정과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사가 마치 연극을 보는 것 같다.  
특히 두 소녀 역을 맡은 올리비아 쿡과 아냐 테일러-조이의 연기가 눈부신데 이와 함께 냉기가 감도는 으스스한 분위기의 대저택 안을 샅샅이 헤집고 다니면서 찍은 촬영 그리고 드문드문 사용되는 음향 효과와 타악기 위주의 불길한 무조적인 음악도 영화의 분위기를 잘 뒷받침 해주고 있다. 두 여자의 한 남자 살해 의도를 그린 점에서 프랑스의 명장 앙리-조르지 클루조의 ‘디아볼리크’를 생각나게 만든다. 영화는 4장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처음에 코네티컷 주의 자기 집 마구간에서 순종 말 앞에 서서 말과 눈싸움을 벌이는 부잣집 딸 여고 3년생 어맨다(쿡)의 모습과 함께 어맨다가 칼을 꺼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어 반사회적이요 외톨이인 어맨다가 동급생 친구 릴리(테일러-조이)의 대저택을 찾아온다. 둘이 시험공부를 하기 위해서인데 어맨다의 어머니는 외톨이 딸을 위해 릴리에게 돈을 주고 만나라고 부탁했다. 
둘은 이 같은 사실과 진학 문제를 비롯해 여러 가지에 대해 대화를 하는데 서로를 탐지하는 언어에 독기가 묻었다. 처음부터 순진한 얼굴을 한 두 소녀의 어둡고 비뚤어진 내면이 적나라하게 노출 되는데 사악한 것과 순진한 것이 묘한 조화를 이루며 코믹한 분위기를 갖춘다. 
어맨다는 자기는 슬픔이나 기쁨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없다며 눈물도 얼마든지 즉석에서 인위적으로 짜낼 수 있다면서 눈물을 흘리는 일종의 사이코. 릴리는 어머니가 부자인 마크(폴 스팍스)와 재혼해 호강을 하지만 마크를 증오한다. 어맨다는 계속해 대학에 안 가고 스티브 잡스같이 되겠다고 말하는데 릴리는 마크가 자기를 행동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소녀들이 다니는 대학에 등록시켰다고 하소연한다.
그리고 둘은 마크를 살해하기로 합의한다. 이 살인공모에 본의 아니게 끼어든 남자가 성추행 전과자인 마약딜러 팀(안톤 옐친의 유작). 두 소녀가 다소 어리숭한 팀을 범행모의에 가담시키는 과정이 재치가 넘친다. 이런 아이들에게 걸렸다가는 본전도 못 건질 것이다. 물론 영화는 충격적으로 끝이 나는데 후반부가 다소 김이 새지만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면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스타일 좋은 소품이다. R등급.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8년 3월 2일 금요일

레드 스패로(Red Sparrow)


도미니카 에고로바는 자신의 육체를 미끼로 정보를 빼내면서 수퍼 스파이가 된다.

제니퍼 로렌스, 육체로 정보 빼내는 스파이로 변신


‘헝거 게임’을 감독하고 주연한 프랜시스 로렌스와 제니퍼 로렌스가 다시 손잡고 만든 섹스와 스파이 놀이를 혼성한 싸구려 티가 나는 스릴러다.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면서 나오는 사람들끼리 서로 속이고 속는 바람에 정신이 다 혼미한데 유혈 폭력과 잔인성이 모두 도를 넘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유명 스타들이 나오는 영화로선 타작에 지나지 않는데 냉전이 끝난 후의 얘기인데도 옛날에 쓰던 플로피 디스크를 쓰는 등 모든 것이 시대에 맞지 않는 것도 이상하다. 하나 볼만한 것은 제니퍼 로렌스의 풍만하고 굴곡진 반나체의 육체를 과시한 점. 섹스신도 많지만 하나도 섹시하지 않다.
여자 주인공이 몸과 총과 칼을 사용하면서 여러 사람 잡는 액션영화들인 ‘라 팜므 니키타’와 ‘루시’ 등을 연상케 하나 이들의 수준에 미달한다. 그러나 이것 저것 생각 안하고 보면 그런대로 즐길만한 액션 스릴러다.
한창 떠오르는 모스크바의 발레리나 도미니카 에고로바(제니퍼 로렌스)는 공연을 하다가 사고(?)로 다리가 부러지면서 은퇴를 한다. 이 때 그의 정보부 소속 고위 관리인 삼촌 바냐(마티아스 쇠너츠)가 도미니카를 찾아와 스파이 양성기관 ‘스패로 스쿨’에 등록하라고 권유한다. 발레리나여서 국가가 준 아파트에서 계속해 어머니와 함께 살게 해주겠다고 미끼를 내 던진다.
도미니카는 젊고 육체 건강하고 잘 생긴 남녀 동료들과 함께 육체적 정신적 고된 훈련을 받는데 이 과정이 불필요하게 길다. 도미니카의 지도교사는 냉전시대의 유물 같은 여자(샬롯 램플링)로 그는 “너희들의 육체는 국가의 것이다”고 역설한다. 도미니카 등 여자 스파이 후보들은 특히 자신들의 몸으로 남자를 유혹하는 기술을 터득한다.
이어 도미니카는 바냐로부터 한 남자를 유혹해 하룻밤을 보내라는 지시를 따르나 이 하룻밤의 정사는 유혈이 난무하는 암살사건으로 비화한다. 이런 식의 섹스와 피범벅 살인이 겹치는 장면이 더러 나오는데 내용과 별 관계도 없는 눈요기 거리다.
도미니카의 다음 업무는 부다페스트로 튄 모스크바 주재 CIA요원 네이트 내쉬(조엘 에저턴)를 접촉, 그로부터 정보를 빼내라는 것. 네이트가 모스크바에 있을 때 그에게 러시아의 기밀을 제공한 자의 신원을 알아내라는 것이다.
당연히 젊고 혈기왕성한 서로 비밀을 지닌 두 남녀가 만났으니 정사가 치러질 것은 명약관화한 일. 그런데 로렌스와 에저턴 간의 화학작용이 신통치 않아 이런 스파이영화에 꼭 필요한 섹스어필이 트릿하다.
이와 함께 도미니카는 미국의 기밀을 25만 달러를 받고 러시아에 팔아먹으려는 미 상원의원의 비서실장(메리-루이즈 파커)의 음모를 가로채라는 지시를 받으면서 막중한 업무에 시달린다. 물론 이런 과정에서 도미니카는 섹스와 액션을 자유자재로 구사, 스파이 실력이 일취월장 한다. 제레미 아이언스가 러시아 정보부의 고급관리로 나와 알다가도 모를 소리를 하나 중요한 조연이다. 연기파인 로렌스의 연기는 고만고만한 수준인데 벨기에 배우인 쇠너츠가 잘 한다. 상영시간 140분은 쓸데없이 긴데 속편이 나올 것처럼 끝난다. 프랜시스 로렌스 감독. R.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오 루시!(Oh Lucy!)


루시(오른쪽)가 선생 존의 지시로 팔을 벌리는 수강생 탐의 포옹 제스처 앞에서 당황해 하고 있다.

사랑 찾아서 미국 온 일본여성의 좌충우돌 해프닝


고독한 일본 여인이 사랑을 찾아 미국에 와 겪는 온갖 해프닝과 자기 각성을 다룬 다소 어수룩한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로 여러 면으로 미숙한 데가 있으나 귀엽고 매력적이다. 전반적으로 우수가 깃든 감정적으로 공허한 여인의 로드 무비이기도 한데 황당무계한 점은 있지만 마음을 건드리는 소품이다.
인물들의 성격과 개성을 중요시한 드라마인데 사람들 중 일부는 충분히 개발되지 못 했고 영화의 톤이 들쭉날쭉하며 시각적 스타일도 결여됐으나 모자라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감상적인 작품이다. 
회사의 자료담당 직원인 세추코(시노부 테라지마)는 고독하고 세상이 따분해 죽을 지경인 줄담배를 태우는 중년 여자. 세추코에게 질녀 미카(시오리 쿠추나)가 찾아와 자기가 등록한 영어회화 학원에 자기 대신 참석해 달라고 부탁 한다.
세추코가 학원에서 만난 선생이 신체 건강하고 잘 생긴 젊은 미국 남자 존(조쉬 하트넷-그의 역이 제대로 개발되지 못 했다). 존은 세추코에게 루시라는 이름과 금발 가발을 주면서 포옹과 하이-화이브로 환영한다. 형식과 예절을 중요시하는 경직된 동양적 문화와 즉흥적이요 느슨한 미국문화의 만남인데 세추코는 존의 파격적인 교습 방법에 이끌려 존에게 반한다. 
그리고 세추코는 여기서 최근에 상처한 같은 수강생 고모리(고지 야쿠쇼-일본의 베테런 배우인데 그의 역 역시 미흡하게 개발됐다)를 만난다. 고모리의 영어 이름은 탐.
세추코는 외톨이의 틀을 벗고 모처럼 적극적인 태도를 보일 준비가 됐는데 아뿔싸 갑자기 존이 미카와 함께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그래서 세추코는 미카가 보낸 엽서를 근거로 님을 찾아 무작정 미국행에 오르는데 여기 동참하는 것이 미카의 어머니 아야코(가호 미나미).
둘은 남가주의 존의 아파트를 찾아가는데 이미 존과 미카는 헤어진 뒤로 여기서부터 셋이 미카를 찾아 나서면서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난다. 보기에 안타까운 것은 세추코의 존에 대한 적극적인 사랑 공격. 그러나 존은 이에 전연 관심이 없다.
영화는 일본으로 돌아온 세추코가 우연히 고모리와 재회하면서 끝이 나는데 둘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세추코 역의 테라지마가 고독에 무너져가는 여인의 모습을 절실하게 보여준다. 아추코 히라야나기 감독.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오스카 고즈 투


제 90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이제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이맘때가 되면 영화 비평가들과 오스카 전문가들을 비롯해 장삼이사가 너도 나도 어느 작품과 누가 상을 받을지 점들을 치는데 이들의 의견이 대체적으로 모아져 실제 결과가 맞아 떨지는 경우가 흔하다. 뚜껑은 열어봐야 알겠지만 중요한 부분에 관해 작품과 인물들을 예견해 본다.
여우조연상 부분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는 두 배우가 TV 베테런 앨리슨 제니와 역시 TV와 무대의 베테런인 로리 메트캡이다. 재니는 미 여자 피겨 스케이팅 사상 최악의 스캔들에 관한 블랙 코미디 ‘아이, 토냐’(I, Tonya)에서 피겨 스케이트 유망주 토냐 하딩(마고 로비-오스카 여우주연상 후보)의 어머니로 나와 산성기가 짙은 상스럽고 야한 연기를 했다.
한편 메트캡은 10대 소녀의 성장기를 다룬 ‘레이디 버드’(Lady Bird-오스카 작품상 후보)에서 가정과 고향을 떠나 훨훨 날아가고파 안달이 난 여고 3년생(셔샤 로난-오스카 여우주연상 후보)의 어머니로 나와 차분하고 착 가라앉은 연기를 했다. 그런데 아카데미 회원들은 눈에 띠지 않는 연기보다 공격적인 연기를 더 좋아하는 경향이 있어 오스카는 재니가 탈 확률이 높다. 재니는 이미 지난 1월 골든 글로브상을 탔다.
남우조연상은 인종차별에 관한 다크 코미디 드라마 ‘미주리 주 에빙 밖의 3개의 광고’(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에서 인종차별주의자 경찰로 나온 샘 로크웰과 ‘플로리다 프로젝’(Florida Project)에서 플로리다 주 올랜도의 후진 모텔의 매니저로 나와 자상한 연기를 보여준 윌렘 다포가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이 부문도 여우조연상 부문처럼 터질 것처럼 맹렬한 연기를 한 로크웰이 탈 것이다. 로크웰도 골든 글로브상을 탔다.
여자주연상을 놓고는 ‘3개의 광고’에서 딸을 살해당해 분노에 치를 떠는 어머니로 나온 프랜시스 맥도만드와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른 어른을 위한 환상적인 드라마 ‘물의 모양’(The Shape of Water)에서 수중 괴물을 사랑하는 말 못하는 청소원으로 나와 무성영화에서처럼 심오하고 민감한 연기를 한 샐리 호킨스의 2파전. 폭발 직전의 팽팽한 연기를 한 맥도만드가 탈 것인데 그도 이미 골든 글로브상을 탔다. 맥도만드는 ‘화고’(Fargo^1997)로 오스카주연상을 탄바 있다.
남우주연상은 단연 ‘다키스트 아우어’(Darkest Hour)에서 영국 수상 처칠로 나온 게리 올드맨이 탄다. 그는 여기서 2차대전 직후 수상에 취임해 나치의 평화제스처를 거부하고 결사 항전하는 처칠로 나와 화려한 제스처와 언변을 구사하면서 경천동지할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도 이미 골든 글로브상을 탔다.     
각본상은 역시 골든 글로브상을 탄 ‘3개의 광고’가 탈 것이 유력하다.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는 것이 ‘레이디 버드’와 인종차별에 관한 공포영화이자 블랙 코미디인 ‘겟 아웃’(Get Out).
각색상은 10대 소년(티모데 샬라메-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의 동성애를 다룬 ‘네 이름으로 날 불러다오’(Call Me by Your Name)가 탈 것이다. 원작은 안드레 아시만의 동명소설로 각색은 제임스 아이보리가 했다. 영국 감독인 아이보리(89)는 작고한 인도계 영국인 제작자이자 감독으로 자신의 삶의 파트너이기도 했던 이스마일 머천트와 함께 ‘히트 앤 더스트’ ‘보스턴 사람들’ 및 ‘어 룸 위드 어 뷰’ 등 여러 편의 명화를 연출한 사람이다.     
감독상은 ‘물의 모양’을 만든 멕시코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와 ‘3개의 광고’를  연출한 마틴 맥도나가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다. 오스카는 델 토로가 탈 것이 유력하다. 델 토로도 이미 골든 글로브상을 탔다.
얼마 전만 해도 아카데미 회원들은 감독과 작품상을 한 작품에 몰아주곤 했는데 최근 들어 이런 성향에 변화를 보이면서 두 부문상을 따로 주고 있다. 작년의 경우에도 작품상은 ‘문라이트’가 탔으나 감독상은 ‘라 라 랜드’의 데이미안 차젤이 탄바 있다.
작품상을 놓고는 총 13개 부문에서 수상 후보에 올라 역시 작품상 후보에 오른 나머지 8편의 영화들을 앞지른 ‘물의 모양’과 ‘3개의 광고’가 2파전을 벌이고 있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감독과 작품상이 갈라져 ‘3개의 광고’(사진)가 작품상을 탈 것이다. 이 영화도 골든 글로브상을 탔다. 
만화영화는 ‘코코’(Coco)가 탈 것이며 주제가 상을 놓고는 ‘코코’의 ‘리멤버 미’(Remember Me)와 ‘위대한 쇼맨’(The Greatest Showman)의 ‘디스 이즈 미’(THis Is Me)가 경쟁을 하고 있는데 ‘리멤버 미’가 다소 유력하다. 음악상은 2차대전 영국군의 던커크 철수작전을 그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던커크’(Dunkirk-오스카 작품상후보)와 ‘물의 모양’의 2파전. 한스 짐머가 작곡한 ‘던커크’의 음악은 저돌적인 반면 알렉상드르 데스플라가 작곡한 ‘물의 모양’의 음악은 서정적이고 로맨틱한데 역시 골든 글로브상을 탄 ‘물의 모양’의 수상 가능성이 짙다.   
지미 킴멜이 사회를 보는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4일 하오 5시부터 할리웃의 돌비극장에서 ABC-TV의 생중계로 진행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