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11월 17일 화요일

바닷가에서(By the Sea)


바네사가 남편 롤랜드의 품에 안겨 고통과 슬픔을 앓고 있다.

졸리와 핏의 권태로운 얘기 지루하게 담아


순전히 앤젤리나 졸리 핏의 허영의 산물로 수퍼스타인 그녀의 이름 때문에 유니버설사가 마지못해 만들었음에 분명하다. 얘기 결핍증에 걸린 재미라곤 전연 없는 영화로 2시간이 넘도록 영화에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짙은 화장을 한 앤젤리나가 공연히 폼을 잡고 심각한 표정을 짓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영화로 그녀는 영화 내내 줄담배를 타우면서 죽을상을 해 보고 있자니 속이 답답하고 육신이 불편해 영화가 끝나면서 해방의 기쁨을 누렸다.
앤젤리나의 세 번째 감독 영화로 감독 외에도 각본도 쓰고 제작도 하고 또 주연도 하면서 1인4역을 하고 있는 사이비 예술영화로 지난해에 나온 ‘언브로큰’을 비롯한 그녀의 연출솜씨는 잘 해야 65점 정도다. 
브래드 핏과 앤젤리나 졸리 핏이 무슨 문제가 있는 부부로 나와 영화 내내 담배 태우고 술 마시고 침울한 표정을 지으면서 ‘피핑 탐’ 짓으로 무료를 달래다가 끝이 나는 극적으로 처음부터 사망한 영화로 얘기가 흐름이 없이 고여 상한 냄새가 난다. 
유럽 영화 흉내를 낸 이 작품은 특히 현대의 남녀 간의 무료와 무관심과 권태와 고독을 잘 다룬 이탈리아의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고독 3부작'(라벤투라, 밤, 일식)을 연상케 하나 이들과 비교할 바가 못 된다. 
1970년대로 생각되는 어느 여름 작가인 롤랜드(브래드 핏)와 댄서 출신의 바네사(앤젤리나 졸리 핏)가 빨간 컨버터블 시트로앙을 타고 프랑스의 한 한적한 해변마을에 찾아와 호텔에 짐을 푼다. 그리고 즉시 바네사는 침대에 눕고 롤랜드는 바닷가에서 홀아비 미셸(닐스 알스트룹)이 경영하는 카페에 들러 대낮부터 술을 마신다. 롤랜드와 바네사는 영화 내내 밥은 거의 안 먹고 담배 태우고 술만 마시는데 그러고도 어떻게 생존할 수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
롤랜드는 글이 안 써져 끽연에 음주를 계속하고 바네사는 역시 흡연과 음주를 하면서 베란다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침통한 표정을 짓는데 가끔 남편한테 한다는 소리가 설익은 철학용어다. 바네사의 모양이 좀비 같은데 그녀의 우울증 이유가 영화 끝에 가서 서두르듯이 얘기된다. 매우 미숙한 처리다. 
이런 두 사람의 소통 부재와 권태와 무료는 둘이 벽에 난 구멍을 통해 옆방에 든 젊은 신혼부부 레아(멜라니 로랑)와 프랑솨(멜빌 푸포)의 잦은 섹스를 훔쳐보면서 변태적인 위로를 받지만 이 같은 플롯은 바네사의 고뇌하는 심리와 아무 연관을 맺지 못한다.
졸리 핏이 큰 인공유방을 노출하면서 열심히 연기하나 그것은 마치 모델이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것 같아 가슴에서 스며나오는 진실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도대체 엄청나게 아픈 심적 질병을 앓는 여자가 왜 그렇게 시종일관 짙은 화장을 하고 있는 것일까. 브래드 핏의 연기도 심심하다. 음악(게이브리엘 야렐)과 촬영은 좋다. R. 일부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33


마리오(가운데)와 광부들이 구출되기를 초조히 기다리고 있다.

지하에 매몰된 33명의 광부 구출기


2010년 칠레에서 일어난 33명의 지하에 매몰된 광부들의 극적 구출을 그린 영화인데 인물 묘사나 얘기가 지나치게 공식적이어서 큰 긴장감이나 흥분감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다. 극적인 드라마를 폭이 크고 넓게 묘사하는 대신 잔소리하는 식으로 진행하고 있는데다가 주요 인물들도 깊이 있게 다뤘다기보다는 피상적이요 간추리는 식으로 처리했다.
보고 즐길 만은 하지만 생존의지 하나로 2달여를 지하에서 견디다가 구출되는 광부들의 서스펜스와 스릴 그리고 박진감이 가득한 내용이 과감하지 못하고 무사안일하게 그려져 맥이 빠진다. 특히 워너 브라더스가 만든 이 영화는 세계시장에 판매하기 위해 칠레 사람들로 여러 명의 국제적 스타를 기용한데다가 대사도 영어여서 보고 듣기가 어색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보기 딱한 것은 프랑스 스타 쥘리엣 비노쉬를 거리에서 음식을 들고 다니면서 파는 가난한 칠레 여인으로 캐스팅한 것. 그리고 단역인 칠레 대통령도 미국 배우이고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남편인 제임스 브롤린까지 구출요원 캐미오로 썼다.        
영화는 지하 2,300피트에 갇힌 광부들을 구출하기 위해 지상에서 굴착전문가 안드레(게이브리엘 번)가 이끄는 구조팀의 활동과 함께 광부들의 가족들이 광산 인근에 임시 마을을 형성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얘기는 지하와 지상을 오락가락하면서 진행되는데 매몰된 광부들의 리더인 마리오(안토니오 반데라스)를 주인공으로 서술된다. 마리오는 탁월한 통솔력과 넓은 인간성으로 깡통식량을 고루 배분하고 절망에 처한 광부들 간의 분쟁과 폭력을 다스린다.    
광부 매몰사건 후 10여일쯤 지나 구조팀에 의해 광부들이 있는 곳까지 작은 구멍이 뚫어져 지상과 지하 간에 쪽지로 의사가 소통되고 우주식량이 전달되나 엄청나게 두껍고 큰 돌이 장애가 돼 구출작전이 지연된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뉴스팀이 이 곳에 와 구출뉴스를 시시각각 보도하면서 칠레의 사막에 있는 광산이 삽시간에 세계적인 뉴스의 초점이 된다. 이런 내용은 빌리 와일더가 감독하고 커크더글러스가 주연한 지하에 매몰된 사람을 구출하는 잘 만든 드라마 ‘에이스 인 더 호울’(Ace in the Hole 1951)을 연상케 한다. 
33명의 광부들 중 마리오를 제외한 5~6명의 인물들이 그나마 단편적으로 묘사되면서 마리오의 역을 보조하지만 장식과도 같은 것이어서 깊이나 폭은 모자란다. 여류 패트리시아 리겐 감독. PG-13.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모비-딕’




우리는 모두 자기 안의 악마와 싸워야 하는 운명을 지니고 태어났다. 인생의 궁극적 목표가 자기 구제일진대 이 구제는 자신 속의 악마와의 싸움이 있고 나서야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포경선 피쿼드의 에이해브 선장과 백경 모비-딕과의 치열한 대결도 에이해브의 자기 구제를 위한 영혼의 투쟁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허만 멜빌이 쓴 미국의 성경이요 신화라고 불리는 ‘모비-딕’(Moby-Dick)의 영문판을 대학생 때 읽기 시작했다가 분량이 너무 방대하고 또 내용이 형이상학적이요 어려워 중도에 책을 접고 말았다. 며칠 전 필라델피아에서 ‘록키’의 부산물인 권투영화 ‘크리드’(Creed·26일 개봉)에 나오는 실베스터 스탤론을 인터뷰했는데 그도 ‘모비-딕’을 다 읽는데 장구한 시간이 걸렸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내가 아는 ‘모비-딕’의 얘기는 중학생 때 경남극장에서 본 ‘백경’(1956)을 통해서다. 존 휴스턴이 감독하고 그레고리 펙이 에이해브로 나온 이 영화는 연출과 연기 등이 다소 과장되긴 했으나 흥미진진한 모험영화다. 펙이 고래 뼈로 만든 다리를 짚고 다니면서 자기 다리를 물어 뜯어버린 모비-딕에게 복수하려고 광인이 되다시피 해 바다를 항해하는 모습이 극적이다. 그의 이런 모습은 후에 ‘조스’에서 식인상어 조스를 잡으려고 혈안이 된 퀸트(로버트 쇼)를 생각나게 한다.
‘모비-딕’은 또 인간의 집념이 불러오는 재앙에 대한 경고문이기도 하다. 에이해브는 자신의 집념을 풀기 위해선 신에게마저 대어드는데 문학 비평가들은 모비-딕을 신이요 자연이며 또 운명이라고도 해석한다.
에이해브의 이런 반-신적 행동과 언사는 지난 7일 본 LA 오페라가 공연한 ‘모비-딕’(사진)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독재자 에이해브는 자기가 종들처럼 부리는 선원들 앞에서 “그것이 날 모욕한다면 나는 태양이라도 때려 부수겠다”고 호언장담을 한다.
에이해브는 자기가 마치 신처럼 행세하는 선동가로 부질 없는 허영이나(젊은 선원 그린혼이 이렇게 노래한다) 다름없는 집념 때문에 결국 자신을 비롯한 선원들과 배에 죽음과 파괴를 불러 오는데 유일한 생존자는 순수와 순진을 상징하는 그린혼(소설에서는 이쉬매엘). ‘모비-딕’은 이처럼 다분히 신앙적 색채도 품고 있다.
신에게 거역하면서 백경과 싸우다 죽은 에이해브를 생각하면 신의 지시를 어긴 탓으로 고래 뱃속에 들어갔다가 회개하고 구출된 요나가 떠오르는 것도 그래서이다.
오페라 ‘데드 맨 워킹’을 작곡한 제이크 헤기가 작곡하고 진 쉬어가 대사를 쓴 2막짜리 오페라(공연시간 3시간) ‘모비-딕’은 현대음악치고는 멜로디가 상당히 다채롭다. 특히 바다의 정령들의 맑은 울음소리 같은 아름답고 서정적인 멜로디로 시작해 바다의 거센 물결과 선원들과 백경과의 사투를 연상시키는 격렬한 리듬으로 이어지는 서곡이 매우 인상적이다.
전체적으로 음악이 장엄하고 강렬하면서도 섬세하고 아름다운데 음들의 씨줄과 날줄들이 절묘하게 직조돼 지루한 줄 모르고 흥미 있게 관람했다. 제임스 콘론이 지휘하는 LA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훌륭한 연주를 들으면서 곡의 바그너풍을 느꼈다.
에이해브는 테너 제이 헌트 모리스가 불렀는데 고음일색이었다. 에이해브 역을 바리톤이 불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독선적인 에이해브에 맞선 양심적인 1등 항해사 스타벅은 바리톤 모간 스미스, 포경선을 처음 탄 그린혼은 테너 조슈아 게레로 그리고 나머지 선원들인 남태평양 태생의 신령한 혼을 지닌 퀴킥은 베이스 바리톤 무사 엔쿤그와나, 에이해브의 시종 핍은 소프라노 재클린 애콜스(오페라에서 유일한 여자)가 각기 맡아 잘 노래했는데 특히 스미스의 노래가 듣기 좋았다.
2010년 4월 달라스 오페라가 초연한 ‘모비-딕’은 음악뿐 아니라 “백금을 바다로부터 거두리라”를 비롯해  대사도 매우 시적이고 심오하다. 이와 함께 뛰어난 것은 큰 돛대가 무대를 군림한 검소하면서도 튼튼한 세트와 밤하늘에 뜬 별들과 대양을 질주하는 피쿼드 그리고 거칠게 몸을 뒤트는 파도 등을 스크린에 투사한 영상처리. 입체감이 압도적이다. 모비-딕은 맨 끝에 거대한 눈이 노려보는 머리가 에이해브를  향해 달려들면서 그 위용을 나타낸다.
소설은 혼자 살아남은 이쉬매엘(그린혼)이 퀴켁이 생전에 자기에게 부탁해 만든 관을 타고 포류하면서 “나를 이쉬매엘이라고 부르세요”라고 말하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오페라는 이 말로 끝이 난다.          
한편 멜빌의 ‘모비-딕’의 모델이 된 실제사건을 나사니엘 필브릭이 소설로 쓴 ‘바다의 심장 속에서’(In the Heart of the Sea)를 원전으로 론 하워드가 감독하고 크리스 헴스워드가 주연한 동명영화가 오는 12월11일에 개봉된다. 이 소설의 제목은 오페라에서 노래로 불려진다. 오페라 ‘모비-딕’은 19일, 22일, 28일 3차례 공연이 남아 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