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9월 21일 수요일

체슬리‘설리’설렌버거 역 탐 행스



난 쉽고 편안하게 살아 별 달리 스트레스 없어 


현재 상영중인‘설리’(Sully)에서 지난 2009년 1월 뉴욕에서 이륙 후 새떼와의 충돌로 엔진 고장을 일으킨 비행기(US 에어웨이즈)를 허드슨강 위에 무사히 착륙시켜 155명의 승객을 모두 위기에서 구출한 기장 체슬리‘설리’ 설렌버거 역을 한 탐 행스(60)와의 인터뷰가 지난 8월 27일 할리웃의 런던호텔에서 있었다. 짧은 머리에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행스는 씩씩하고 명랑한 사람으로 인터뷰 내내 큰 제스처와 함께 인상을 써가며 소리 지르고 노래까지 부르면서 상소리를 섞어 속사포 쏘듯 질문에 대답했다. 꼭 장난꾸러기 소년 같았는데 도무지 수퍼스타 티를 안 내 호감이 가는 사람이다. 굉장히 낙천적이요 행복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어떻게 해서 영화에 나오기로 했는가.
“나는 ‘허드슨 강의 기적’의 주인공 설리를 지난 2008년 오스카파티 때 처음 만났다. 그 후 이 영화의 각본을 단숨에 읽었는데 그 것은 영화의 교본과도 같은 것이었다. 영화에서 묘사된 설리에 대한 미 운송안전위의 조사에 대해선 나도 몰랐다. 조사 결과에 따라 설리의 40년의 경력에 큰 오점을 남길 수도 있어 설리는 그야말로 생애 최대의 위기를 맞았었다. 나는 그와 같은 긴장된 과정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영화를 감독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35분간 전화통화를 하고 출연을 확정지었다.”

-스트레스가 심한 공포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는가.
“난 당신들을 만날 때 극심한 공포를 느낀다. 난 쉽고 편안하게 살기 때문에 별 달리 스트레스를 느끼진 않는다. 그리고 난 비행기 안에서도 두려움을 안 느낀다. 가급적이면 좌석벨트도 안 매려고 한다. 난 이번에 항공사들의 기장과 승무원들에 대한 대우가 매우 나쁘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음식도 제 돈 내고 사 먹어야한다. 이 말을 듣고는 앞으론 차나 기차를 타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신은 어떤 형태의 승객인가.
“신발을 벗고 물 한 병이면 된다. 때론 난 비행 내내 잔다. 나 혼자 즐기면서 누구도 귀찮게 하지 않는다.”

-실제 삶에서 당신은 역경에 대해 얼마나 빨리 대처하는가.
“본능이란 생각 없이 반응하는 것이다. 그냥 반응대로 따라 할 뿐이다. 난 비교적 역경에 잘 대처한다고 생각한다.”      

-영화 찍을 때 물 속에서 매우 추웠는가.
“영화는 10월에 찍었다. 그래서 그렇게 춥진 않았다.”

-당신은 영화에서 여러 번 영웅으로 나왔는데 당신이 한 일 중에 가장 영웅적은 일은 무엇인가.
“성장한 것이다. 사회의 변화에 맞서면서 큰다는 것이야말로 영웅적인 일이다. 그런데 난 겁쟁이다. 우리는 네 가지 형태의 사람이 될 수가 있는데 그 것은 영웅과 악한과 비겁자와 방관자이다. 난 방관자다.”   
설리 기장이 허드슨강 위 불시착 후 육지에서 아내와 통화하고 있다.

-당신의 아이들이 아빠를 영웅이라고 생각한다고 보는가.
“아니다. 날 멍청이라고 본다. 모르겠다. 내 아이들에게 물어봐라. 난 자연적 본능을 지녀 뭘 걱정하거나 전전긍긍하면서 사는 사람이 아니다.”           

-비행기 조종할 줄 아는가.
“비행이란 재미있겠지만 조종할 줄은 모른다.

-당신을 짜증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난 무난한 사람이다. 그러나 컴퓨터의 프린터가 말을 안 들을 땐 소리를 지른다. 

-부인(배우인 리타 윌슨)이 유방암 진단을 받았는데.
“고개를 숙이고 모든 것의 우선순위를 재검토해야 했다. 그러나 내가 할 일이란 아내를 지원하고 그녀의 건강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뿐이다. 엄격히 말해 그 질병의 짐이란 아내의 것이지 내 것은 아니다.”

-영화에서 머리와 수염이 백색이 된 느낌이 어떤가.
“백색가발을 만들기란 쉬운 일이 아니어서 온통 염색을 했다. 그러면서 배운 것이 머리털과 수염의 구조가 다르다는 것이다.”

-당신 생애의 정점과 바닥은 무엇인가.
“내가 아직도 여기 있다는 것이 정점이다. 한 직업을 오래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내가 나온 많은 영화들 중에 그 어느 것 하나가 나의 바닥일 수가 있다. 배우란 대중의 관찰 대상으로 단 한 번의 실수로 판단을 받을 수가 있다. 내 경우 과거보다 요즘에 와서 어떤 실수를 하더라도 사람들이 보다 빨리 잊어주는 것 같다. 그러나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이상 늘 정점과 바닥이 있게 마련이다. 나의 또 다른 정점은 내가 아버지요 할아버지라는 것이다.”

-클린트와 일한 경험은 어땠는가.
“그는 연습을 안 한다. 그는 자기 경험을 통해 배우들이 자기 일이 아닌 것에 신경을 쓰다보면 연기자로서의 본능을 잃기 쉽다는 것을 알 고 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즉시성과 확신이다. 그런데 하루의 긴 촬영 시간 동안 그 것을 유지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그는 그 것을 방해하는 것을 전부 제거한다. 한 장면을 딱 한 번의 촬영으로 끝낸다. 혹시 배짱이 있어 그에게 가서 한 번 더 찍자고 말해봤자 ‘노’라는 소리나 들을 것이다. 그는 배우가 촬영시 자신의 최선을 다 할 것이라는 점을 믿는 사람이다.”

-취미가 무엇인가.
“한 두어 가지 스포츠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난 세 가지의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 취미를 가질 여유가 없다. 타이프라이터를 수집은하나 전문가는 아니다. 난 자유 시간이 없다. 스포츠 중에선 축구경기를 보는 것을 즐긴다. 한두 잔의 생맥주와 따스한 날씨만 있으면 족하다.”    

-타이프라이터를 몇 대나 가지고 있는가.
“집과 사무실에 모두 200개 정도 갖고 있다.”

-사람들이 결과를 다 아는 왜 이 영화를 보리라고 생각하는가.
“그 것은 책이나 사실을 바탕으로 만드는 영화가 늘 당면하는 문제다. 그러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도 그 결과를 다 알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극장엘 가서 본다. 사람들이 다 아는 일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를 보는 이유는 자신을 스크린 위에 올려놓고 환상의 대상으로 삼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언 맨’도 되고 택시 운전사도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영화를 보는 까닭은 스크린 위의 인간적인 조건을 우리가 어떻게 보며 또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영화가 어떻게 반영하는 가를 알고파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두 결과를 알긴하나 그 것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모르고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영화를 보면서 늘 나도 저렇게 할 수만 있다면 하고 느끼곤 한다. 또 때론 아이고 나도 저런 경험을 했어 하고 감탄하곤 한다.”

-프랭크 시나트라가 부른 ‘플라이 투 더 문’을 처음 들었을 때 달에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라도 했는가.
“단 한 번도 그런 생각 한 적이 없다. 그러나 하나 얘기할 것이 있다. 난 영화 일로 많은 아폴로 우주인들을 만났는데 만날 때마다 그들에게 당신은 몇 번이나 ‘플라이 투 더 문’을 들어야 했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그들이 참석하는 파티에선 반드시 그 노래가 연주됐고 우주인들은 그에 따라 콧노래를 부르는 것을 봤다.”

-당신의 생애에 있어 획기적인 전환점은 무엇인가.
“이혼하고 세금 문제에 시달리고 있을 때 ‘빅’을 찍고 있었는데 후에 그 것이 개봉되면서 빅히트를 한 것이다. 마침 그 땐 내가 막 리타와 결혼을 한 때여서 모든 시름에서 해방이 되는 경험을 했다. 생의 획기적인 전환점이란 이렇게 간단한 것일 수가 있다.”

-살면서 크게 후회한 것은 무엇인가.
“내가 젊었을 때 그 때 네 살 난 내 아들 콜린(역시 배우다)이 2층 창가에서 날 부르는 것을 무시하고 차를 타고 떠난 일이다. 그런 작은 일이 내겐 오래 동안 후회스런 일로 남아 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 그 잘못을 고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 콜린에게 그 일을 기억하느냐고 물었더니 모른다고 해 한 숨 놓았던 기억이 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스노든 (Snowden)


스노든이 홍콩의 호텔 방에서 인터뷰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NSA의 국민 사찰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의 실화


CIA와 NSA(미 국가안보국)의 정보 분석원으로 일하다가 정보기관의 개인 사생활 침해에 환멸을 느껴 국가기밀을 누설하고 러시아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는 에드워드 스노든의 실화로 음모론자요 반체제 인사인 올리버 스톤이 감독하고 공동으로 각본을 썼다. 거의 기록영화 식으로 스노든의 개인과 공인으로서의 삶과 함께 그의 기밀 폭로과정을 다루고 있는데 너무 고지식하게 얘기를 이끌고 가 도무지 흥분이 안 된다.
스노든의 얘기는 일종의 스파이 스릴러라고도 하겠는데 스톤은 영화를 진지하고 솔직하게 다루고는 있지만 연출 솜씨가 진부할 정도로 무덤덤하고 평범해 긴박감이나 스릴 또는 서스펜스가 결여돼 영화에 감정적으로 몰입하게 되지를 않는다. 한 마디로 말해 불길이 모자라는 작품이나 시사적인 영화이니만큼 볼만은 하다. 스노든의 얘기는 오스카상을 탄 로라 포이트라스의 기록영화 ‘시티즌 포’(Citizen Four)로도 볼 수 있다. 
영화는 2013년 홍콩의 한 호텔에서 포이트라스(멜리사 레오)와 런던의 가디언지 기자 글렌 그린월드(재카리 퀸토)와 그의 상사 이완 맥캐스킬(탐 윌킨슨)이 스노든(조셉 고든-레빗)을 인터뷰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얘기는 2004년으로 돌아가 스노든의 삶을 다루면서 여러 차례 이 호텔방으로 다시 돌아온다.
20세인 스노든은 처음에는 애국심이 강한 청년으로 9.11 사태의 반응으로 육군 특공대에 입대하나 부상을 입고 제대, CIA에 지원해 정보요원이 된다. 그는 고등학교도 안 나왔지만 뛰어난 지능과 컴퓨터에 정통해 상사 코빈 오브라이언(리스 이판스)의 신임과 사랑을 받는다. 스노든이 CIA에서 일하는 동안 기계실에서 일하는 행크 포레스터(니콜라스 케이지)와 친해지는데 케이지가 오래간만에 영화 같은 영화에 나와 짧지만 폭과 깊이가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스노든의 CIA와 NSA에서의 일상과 함께 그와 그의 애인으로 사진작가인 린지 밀스(쉐일린 우들리)와의 관계가 묘사되는데 린지의 역은 하나의 장식품에 불과하다. 우들리뿐만이 아니라 레오와 윌킨슨 및 퀸토 같은 좋은 배우들이 제대로 실력 발휘를 못하고 있다. 
그리고 NSA 하와이 사무소에서 일하던 스노든은 미 정보기관의 국민 사찰에 심한 좌절감을 겪으면서 이에 대한 반발로 엄청난 국가기밀을 빼내 가디언지와 접촉한다. 맨 끝에 실제로 스노든이 인터뷰에 응하는 장면이 나온다. 한편 린지는 스노든을 찾아 모스크바에서 합류했다.
고든-레빗이 내성적이요 조용한 스노든 역을 차분히 하고는 있지만 스노든이 카리스마가 있는 인물이 아니어서 감정적으로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서스펜스 스릴러 스파이영화라기보다 많은 배우를 동원한 밋밋한 기록영화 스타일이어서 극영화의 재미와 흥분감이 아쉽기는 하나 볼만은 하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얘기라는 점도 영화의 핸디캡으로 작용할 수 있다. 상영시간 134분. R. Open Road.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브리짓 존스의 아기(Bridget Jones’ Baby)


만삭의 브리짓을 데리고 병원으로 들어가는 두 애인 잭과 마크(위).

여전히 귀엽운 르네 젤웨이거의 로맨틱 코미디


르네 젤웨이거가 나와 큰 인기를 모았던 로맨틱 코미디 ‘브리짓 존스’ 시리즈 제3편으로 엉터리 제2편 ‘브리짓 존스: 이성의 낭떠러지’가 나온지 12년만이다. 어리숙한 브리짓은 나이는 먹었지만 여전히 귀엽고 동정이 가는데 영화가 너무 달콤하려고 애를 쓴 흔적이 역력해 오히려 뒷맛이 개운치가 않다. 그러나 재미있고 우습고 선의적이며 앙상블 배우들의 연기와 콤비도 좋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가 있겠는데 특히 데이트 쌍들에게 어울릴 영화다.   
전편에서 자신의 영원한 사랑인 고지식한 변호사 마크 다시(콜린 퍼스)와 헤어진 TV 토크쇼 제작자인 브리짓(젤 웨이거)이 울상을 해가지고 생일을 혼자서 자축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다시는 장가를 갔다. 그리고 전편의 대니얼 클리버(휴 그랜트)는 영화에서 종적을 감추는데 그 이유가 억지다.  
이런 브리짓을 토크쇼 호스트로 브리짓의 친구인 미란다(새라 소울마니가 매우 재미있는 연기를 한다)가 끌어내 진흙탕 바닥에서 열린 음악축제에 데려 가면서 브리짓의 인생이 대전환을 이룬다. 진흙탕 구덩이에 넘어진 브리짓을 구해준 남자가 영국에서 데이팅사이트로 거부가 된 준수한 미국인 잭(패트릭 뎀시도 보기 좋다). 여차여차해 둘은 축제에 마련한 잭의 텐트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이어 다시가 다시 브리짓 앞에 나타나면서 둘 사이에 옛 정이 모락모락 타오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브리짓은 다시와도 하룻밤을 보낸다.
그런데 문제는 브리짓이 각기 두 남자와 잘 때 사용한 콘돔이 토니 블레어가 영국 수상일 때 이미 시효가 지난 오래된 것이라는 점. 그래서 브리짓은 아기를 임신하는데 진짜 문제는 과연 아기 아버지가 누구이냐 하는 것이다. 이 신데렐라 얘기 같은 영화 속의 남자들은 어찌나 착한지 다시와 잭이 모두 아기의 아버지가 되겠다고 나선다. 그리고 영화는 아기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맨 끝에 가서야 알려주는데 그러느라고 플롯을 엿가락 늘리듯 잡아당기고 있다.
연기들이 다 좋다. 브리짓의 친구들로 나오는 셜리 헨더슨과 샐리 필립스 및 제임스 칼리스 등이 다 잘 하는데 특히 광채를 발하는 것은 브리짓의 산부인과 의사로 나와 시치미 뚝 떼는 연기를 하는 엠마 탐슨(공동 각존)이다. 브리짓의 아빠와 엄마로 나오는 짐 브로드벤트와 젬마 스톤도 좋고.    
영화에서는 ‘강남 스타일’이 요란하게 울려 퍼지면서 파티의 사람들이 신나게 춤을 춘다. 그리고 끝에 가서 속편이 나올 것을 암시하고 있다. 샤론 매과이어 감독. R. Universal.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크레이지 러브’




“크레이지 러브 이츠 저스트 크레이지 러브”라면서 숨 넘어가는 소리로 “이 미친 사랑으로부터 날 놓아주세요”라고 하소연한 폴 앵카(75·사진)의 노래를 내가 처음으로 들은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그 때 서울 명동에 있던 지하 음악감상실 ‘돌체’를 내 집 드나들다시피 하던 나는 앵카의 ‘크레이지 러브’와 ‘다이애나’ 그리고 닐 세다카의 ‘오, 캐롤’을 들으면서 미 팝송의 팬이 되었다. 나는 지금도 종종 이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과거를 그리워하곤 한다.
노래로만 듣던 앵카의 공연을 직접 본 것은 지난 2000년과 2005년 두 차례 세리토스 공연센터에서였다. 10대 때 들으며 따라 부르던 노래를 부른 앵카를 그 때로부터 무려 반세기가 지나 만나 악수까지 나눴으니 감격일색일 수밖에. 그는 칠순의 나이에도 정열과 에너지가 넘쳐 흘렀는데 모두 나처럼 인생 노을기에 접어든 남녀팬들이 박수를 치고 아우성을 지르면서 앵카의 노래를 즐기는 모습을 보자니 가슴이 찡하게 아름다웠다.
그는 철저한 쇼맨이었다. 세련되고 박력 있는 제스처를 구사하면서 자주 청중들로 하여금 자기와 함께 노래를 부르도록 해 장내가 팬들과 가수의 혼연일체가 된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던 기억이 난다.        
앵카는 가수로서의 매너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노래를 정말 잘 불렀다. 뉴욕타임스도 앵카를 “확신에 찼으나 뽐내지 않는 세련된 가수”라면서 “감상적인 노래들과 스윙송들을 다 손쉽게 다룰 수 있는 음성을 지닌 매력적인 가수로 쇼맨십의 교과서와도 같은 사람이다”고 칭찬한 바 있다.
앵카의 첫 빅히트는 그가 16세이던 지난 1957년에 부른 ‘다이애나’이다. “아 임 소 영 앤 유아 소 올드”로 시작되는 노래는 캐나다 오타와 태생인 앵카가 동네 경찰서에서 비서로 일하던 4세 연상의 다이내나 아이웁에게 바친 구애의 노래다. 그런데 앵카는 다이애나로부터 어리다고 퇴짜를 맞았다고 자서전 ‘마이 웨이’에서 고백했다. 그러나 이 노래는 순식간에 수백만장이 팔려나가면서 앵카는 10대 소녀들의 우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찬란한 가수로서의 길을 터주었다.
내가 ‘돌체’에서 들은 앵카의 노래들은 ‘다이애나’와 ‘크레이지 러브’ 외에도 ‘퍼피 러브’ ‘풋 유어 헤드 온 마이 숄더’ ‘유 아 마이 데스트니’ ‘론리 보이’ ‘텔 미 댓 유 러브 미’ 및 ‘돈 갬블 위드 러브’ 등. 노래가 좋아 따라 부르려고 가사를 외워 공부하다시피 해 내 영어실력 향상에 일조를 했다.
앵카는 가수로서뿐 아니라 작곡가로서도 팝송에 큰 공헌을 한 사람이다. 그도 자서전에서 자신의 음악인으로서의 비결은 작곡이 먼저이고 노래는 그 다음이라는데 있다고 말했다. 그가 작곡한 노래들을 부른 가수들로는 프랭크 시나트라, 엘비스 프레슬리,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앤디 윌리엄스, 탐 존스, 소니와 셰어 및 엥겔버트 험버딩크(‘릴리스 미’로 유명한 험퍼딩크가 오는 24일 하오8시와 25일 하오 3시에 세리토스 공연센터서 공연한다) 등. 그가 작곡하고 노래한 영화 주제가로 유명한 것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그린 ‘사상 최대의 작전’의 주제가 ‘더 롱게스트 데이’다.
앵카가 작곡해 남에게 준 노래로 전 세계적으로 빅히트를 한 것이 시내트라가 부른 ‘마이 웨이’다. 시내트라의 간판곡이 되다시피 한 이 노래는 앵카가 1967년 프랑스 칸 인근의 한 작은 마을에 머물 때 라디오에서 나오는 프랑스노래 ‘콤므 다비튀드’(애즈 유주얼)를 듣고 노래의 판권을 사 ‘마이 웨이’로 편곡을 한 것이다.
레바논계인 앵카는 10대 때부터 순회공연을 시작했다. 아침 9시부터 시작해 하루 5~6회 노래하고 받은 돈이 달랑 300달러. 그 때 앵카와 같이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공연한 가수들로는 후에 다 팝송의 수퍼스타들이 된 오티스 레딩, 에벌리 브라더스, 패츠 도미노 및 버디 할리 등이 있다. 앵카의 라이벌들로는 역시 10대 소녀들의 우상이었던 바비 라이델, 프랭키 아발론, 바비 다린 및 제리 리 루이스 등.
앵카는 자서전에서 그 때를 고되나 즐거웠다고 회상하면서 그러나 순회공연 하느라 자신의 어린시절을 잃었다고 회상했다. 앵카의 음악계 진출을 적극 지원한 사람은 그의 어머니. 앵카의 히트곡 ‘마마’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노래인데 앵카는 ‘파파’라는 노래도 불렀다.
자기 노래를 사랑과 인생에 관한 것이라고 말하는 앵카가 지금까지 작곡하고 노래 부른 곡은 자그마치 900여곡. 지금까지 팔린 레코드와 싱글은 1억만장에 이른다.
아직도 연 100회 공연을 하면서 ‘내 사전에 은퇴란 없다’고 말하는 앵카는 칠순 중반에도 자신의 현재를 ‘내 생애의 가을’이라고 부른다. 그는 자서전에서 “내 생의 여정이 끝날 때 중요한 것은 그 모든 잡다한 것들과 집과 자동차 그리고 상들도 아니요, 이 여정이 끝날 때 나를 따뜻하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생각해 줄 내가 남겨둘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라고 고백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6년 9월 13일 화요일

‘데칼로그’


폴란드의 거장 크르지스토프 키슬로우스키 감독.

성경 10계명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10부작... 폴란드 거장 키슬로우스키 감독


프랑스 국기의 색깔인 ‘블루’(Blue-자유)와 ‘화이트’(White-평등) 그리고 ‘레드’(Red-우애)를 바탕으로 현대 유럽의 삶을 탐구한 ‘3색 3부작’을 만든 폴란드의 거장 크르지스토프 키슬로우스키(사진)가 폴란드 TV 작품으로 만든 불후의 걸작인 10부작 ‘데칼로그’(Dekalog·1988)가 감독의 사망 20주년을 맞아 디지털로 새로 복원돼 9~13일 그리고 17~18일 두 차례로 나뉘어 시네패밀리 극장(611 N. Fairfax: 323-655-2510)에서 상영된다.   
키슬로우스키가 크리스토프 피시비츠와 공동으로 각본을 쓴 이 10부작은 성경의 10계명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것으로 압도적으로 심리와 영혼을 뒤흔들어 놓는 심오한 서사적 작품이다. 매 편의 길이는 1시간.  
감독은 제목을 단순히 ‘데칼로그: 원’에서 시작해 ‘데칼로그: 텐’으로 끝내고 있는데 ‘데칼로그 원’이 십계명의 제1계명을 나타낸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 작품이 지난 1989년 칸에서 상영됐을 때 혼란을 겪은 비평가들이 아우성을 치는 바람에 주최 측은 매 영화마다 그것이 십계명 어느 조항을 나타낸 것인지를 알려주는 제목을 새로 붙여 상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감독의 의도는 아니다.  
1980년대 중반 공산주의가 허물어져가는 바르샤바의 서민층 아파트의 주민들이 주인공들이다. 이들의 삶이 미묘하게 교차되면서 이들이 당면한 개인적이자 또 보편적으로 인간적인 제반문제와 감정적 딜레마들이 다뤄진다. 삶과 죽음, 사랑과 증오 그리고 진실과 시간의 흐름 등에 관한 도덕적 실존적 문제들을 상징적이요 은유적으로 탐구했다. 우리 삶을 형성하는 불가사의한 힘에 관한 고찰이기도 한데 키슬로우스키는 “나는 이 영화에서 인생의 참된 의미와 함께 우리는 왜 아침에 일어나는가와 같은 삶의 기본적이요 필수적이며 인간적이자 또 인간의 물음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9명의 촬영감독이 촬영을 했고 내면을 뒤흔들어 놓는 음악은 ‘3색 3부작’의 음악을 작곡한 즈비그뉴 프라이스너가 작곡했다. 잘 알려진 기성배우와 무명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다. 정신을 몽땅 화면 안으로 부어 넣으며 봐야 할 명작이다.

*‘데칼로그: 원’-언어 의미론학자요 컴퓨터가 취미인 크리스토프는 어린 아들 파벨에게 모든 의문의 답을 과학에서 찾으라고 가르친다. 이와 반면으로 파벨의 고모는 신심이 돈독한 여자. 이 두 사람은 어느 날 파벨이 아파트 앞 못으로 스케이트를 타러나간 뒤 돌아오지 않으면서 각자가 믿고 있는 체제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다. 과학의 우상화를 경고하고 있다.
*‘데칼로그: 투’-중병에 걸린 남편과 동료 음악인 두 남자를 모두 사랑하고 있는 음악인 도로타는 애인의 아기를 임신했다. 그리고 도로타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의사에게 남편의 병의 상태에 대해 알려 달라고 조른다. 남편이 죽으면 아기를 낳고 병에서 회복되면 임신중절을 할 예정이다. 도덕적 선택과 인간의 삶에서 한 마디의 말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얘기하고 있다.
*‘데칼로그: 스리’-크리스마스 전야. 에바는 결혼해 가정을 이룬 전 애인 야누스에게 자기 남편이 실종됐다고 거짓말을 하고 그와 함께 밤을 보내려고 계획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밤새 자신들의 불륜이 발견되었을 때 한 결정과 다시 한 번 맞서면서 현재의 자신들의 삶의 가치를 생각한다. 시간의 신성함을 다루었다.            
*‘데칼로그: 포’-대학에 갈 나이인 딸 앙카와 그녀의 아버지 미칼은 거의 애인과 같이 오해 받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 이에 대해 점점 불편을 느끼던 앙카가 어느 날 자신의 죽은 어머니가 남긴 뜯지 않은 편지를 읽고 미칼이 자기 친 아버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개인 신원을 규정하는 역할을 맡은 가족과 사회적 관계에 관한 내용으로 권위의 중요성을 말한다.   
*‘데칼로그: 파이브’-시골에서 비운의 사고를 목격한 뒤 바르샤바로 이주한 분노에 가득 찬 젊은이 야첵이 묻지 마 살인 식으로 택시운전사를 살해하고 체포돼 재판에 회부된다. 야첵의 변호사는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이상적인 젊은 피오트르. 야첵과 피오트르가 관계를 맺으면서 솔직한 감정들이 노출되고 피오트르는 이로 인해 모든 형태의 살인에 대해 반대하는 자신의 신념을 재확인한다. 살인과 처벌에 관한 이야기로 야첵의 살인장면은 영화 사상 가장 긴 살인장면으로 알려졌다. 
*‘데칼로그: 식스’-10대의 우체국 직원인 토멕은 자기 아파트 건너편에 살고 있는 성적으로 개방된 연상의 여자 화가를 훔쳐보는 것이 취미. 두 사람의 사생활이 뒤엉키면서 매력은 집념으로 변하고 사랑과 호기심의 경계선이 가차 없이 무너진다. 사랑과 정욕의 본질과 관계를 다뤘다.
*‘데칼로그: 세븐’-고교생 때 딸 아니아를 낳은 마이카는 그동안 자기 어머니 에바가 키워온 딸을 뒤늦게 찾으려고 하자 에바가 이에 응하지 않는다. 이에 마이카가 아니아를 납치하면서 뜻하지 않은 감정적 결과를 맞게 된다. 소유욕과 유혹에 관한 이야기.
*‘데칼로그: 에잇’-윤리학 교수인 조피아가 2차 대전 때 살아남은 유대인들의 삶을 연구하는 미국인 엘즈비에타의 방문을 받는다. 둘 간의 대화가 장시간 이어지면서 조피아는 엘즈비에타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자신이 수십년 전에 내린 결정에 대해 대답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불가피한 사악함 속에서의 진실의 어려움을 얘기한다. 
*‘데칼로그: 나인’-로만과 한카는 서로 사랑해 결혼한 사이. 그러나 남편의 성적 무능력 때문에 한카는 혼외정사를 한다. 이로 인해 로만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면서 아내와의 사랑과 자신의 삶의 의지가 시련을 당한다. 섹스와 질투와 성숙에 관한 내용. 
*‘데칼로그: 텐’-예르지와 아르투르의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형제는 아버지가 우표수집상들이 탐을 내는 귀한 우표들을 유산으로 남긴 것을 알게 된다. 형제가 뒤가 깨끗하지 못한 우표수집상들과 거래를 하면서 둘은 긴박하면서도 코믹한 상황에 빠진다. 탐욕과 관계에 과한 이야기.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이타카(Ithaca)


호머는 전보 배달부가 되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깨닫는다.

2차 대전 당시 한 마을 전보 배달부 소년


2차 대전 초기 미국의 한 작은 마을의 자전거 전보 배달부인 14세난 소년 호머의 눈을 통해본 전쟁에 마을 사람들에게 남긴 후유증과 마을의 삶을 소묘하듯이 그린 담담한 영화로 멕 라이언의 감독 데뷔작으로 출연도 했다.
영화가 감상적이요 말이 많고 전체적으로 생기가 부족하나 오랫동안 활동이 뜸했던 라이언의 모습과 함께 그녀의 왕년의 콤비인 탐 행스가 잠깐 나오는데다가 전체적으로 향수감에 젖어 있어 옛날 미국의 모습을 되돌아볼 수 있는 소품이다.
이 영화는 미국 작가 윌리엄 사로얀의 소설 ‘인간 희극’(The Human Comedy)이 원작으로 이 소설은 지난 1943년 동명영화로 만들어졌다. 믹키 루니, 도나 리드, 프랭크 모간, 마샤 헌트, 밴 존슨 등 왕년의 명배우들이 나오고 로버트 미첨이 휴가 받은 군인으로 단역으로 나오는 흑백명화다.
사로얀이 자기 경험을 토대로 쓴 소설에서 주인공 소년의 이름과 소년의 어린 동생의 이름을 각기 호머와 율리시즈로 지은 것은 그리스의 작가 호머와 그의 작품 ‘오디세이’의 주인공 율리시즈를 딴 것으로 율리시즈가 트로이전쟁 후 고향 이타카(호머의 고향이라는 설도 있다)를 향해 돌아가듯이 사로얀은 자기 소설에서 전쟁에 나간 호머의 형 마커스를 비롯해 종군한 젊은이들의 망향을 암시하고 있다. 제목의 이타카는 사로얀의 고향인 캘리포니아주 프레스노를 대신한 것이다.
이타카에서 홀머니(라이언)와 어린 동생 율리시즈(스펜서 하워드가 귀엽다)와 함께 사는 호머(알렉스 노이스태터)는 형 마커스(잭 퀘이드)가 종군하자 마을 우체국의 자전거 전보 배달부로 일한다. 호머가 미처 몰랐던 것은 자기가 배달하는 전보들이 대부분 마을에서 전쟁에 나간 젊은이들의 전사 통보라는 것. 어린 호머는 이렇게 죽음의 메신저가 되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배우고 성장한다.  
내레이션과 내적 독백이 많은 영화는 호머와 어머니(죽은 아버지로 나오는 행스는 어머니의 환상에 의해 잠깐 나온다)와 율리시즈 그리고 학교생활과 첫 사랑 등 소년의 일상으로 스케치되는데 특히 호머와 우체국의 전보 치는 나이 먹은 술꾼 윌리(샘 쉐파드가 꺼칠꺼칠한 연기를 잘 한다)와의 관계가 비중 있게 다뤄진다. PG-13. ★★★(5개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설리


설리 기장이 침착하게 승객들을 기내에서 대피시키고 있다.

여객기의 긴급 수상착륙 실화‘허드슨강의 기적’


솜씨 좋은 목공이 만든 보기 좋은 가구 같은 영화로 모양은 그럴싸 하나 깊이와 감정이 결여된 인공적인 냄새가 나는 영화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일종의 재난영화인데 이스트우드의 영화들이 다 그렇듯이 이것도 보고 즐길 만은 하나 허전한 구석이 많다.
2009년 1월15일 뉴욕의 라과르디아 공항을 이륙한 US 에어웨이즈 여객기가 공중에 오른지 얼마 안 돼 새떼들과 충돌하면서 엔진 두 개가 모두 고장 난다. 이에 기장 체슬리 ‘설리’ 설렌버거(탐 행스)는 40년의 비행경력에서 얻은 지혜를 동원, 기수를 돌려 라과르디아 공항에 착륙하는 대신 허드슨강 위에 불시착, 155명의 승객이 모두 생명을 건졌다.
‘허드슨강의 기적’이라 불린 이 사건을 이스트우드는 영웅찬가 식으로 묘사했는데 영화는 우리가 잘 모르는 미운송안전위(NTSB)의 설리와 부기장 제프리 스카일즈(아론 에카르트)에 대한 청문회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법정드라마 형식을 취한 재난 드라마요 스릴러로 그저 무난한 중간급 영화다.
영화는 호텔방의 설리가 자기가 모는 비행기가 맨해턴 도심에 추락하는 악몽에서 깨어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악몽을 비롯해 실제 여객기의 사고와 불시착 장면 그리고 설리의 젊은 시절 회상 등이 플래시백으로 여러 차례 반복되면서 영화의 리듬과 흐름을 방해하고 있다. 또 말이 많은데 특히 설리와 그의 아내(로라 린니가 완전히 소모품이 됐다)와의 전화통화가 너무 잦다.
엔진이 고장 나면서 설리는 육지에 착륙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파악하고 허드슨강 위의 불시착을 시도한다. 이 과정이 제법 스릴 있지만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의 긴박감은 없다. 
비행기가 무사히 강 위에 내려앉고 설리는 영웅이 된다. 차분한 성격의 설리는 자기는 할 일을 했다며 영웅이 아니라고 겸손해 하지만 그는 매스컴에 의해 일약 미국인들의 영웅으로 떠오른다. 보통 사람이 비상상황에 빨려들어 영웅이 되는 영웅 찬가다. 
그러나 설리와 스카일즈는 곧 이어 NTSB의 조사를 받기 시작한다. 조사의 초점은 왜 라과르디아에 착륙하지 않고 허드슨강 위에 내렸는가 하는 점. 이를 위해 여러 차례 불시착 모의실험까지 해가면서 청문회가 계속되는데 청문회 과정이 쓸데없이 길다. 그리고 청문회 부분은 본격적인 법정드라마의 스릴이나 긴장감도 결여됐는데 이스트우드는 NTSB를 멍청한 기관으로 묘사하면서 조롱하고 있다. 
질서정연한 드라마라가 되지 못하고 초점을 잃은 중구난방식의 얘기가 되면서 극적 긴장감이 결여되긴 했지만 행스의 연기 하나는 정말 좋다. 도무지 티를 안 내고 침착하고 절제된 연기로 거의 혼자서 영화를 짊어지다시피 하고 있다. 그의 원맨 쇼라고 해도 되겠다. 
PG-13. WB.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스크린 로맨스




새 영화가 나올 때마다 스타들을 인터뷰하면서 내가 느끼는 것은 그들이 참 잘 생겼다는 것이다. 화장을 잘 해서 그런지 몰라도 스타들의 몸에서 광채가 나는데 이를 두고 스타 파워라 일컫는다. 이렇게 잘 생긴 남녀 스타들이 영화에서 서로 끌어안고 입을 맞추다가 격정에 못 견뎌 침대로 들다보면 ‘인생이 예술을 모방한다’고 둘이 진짜로 사랑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그 최근의 예가 현재 상영 중인 로맨스 멜로드라마 ‘대양 사이의 불빛’(사진)에서 공연한 마이클 화스벤더와 알리시아 비칸더(올해 ‘덴마크 여인’으로 오스카 조연상 수상)이다. 호주의 절해고도에서 단 둘이 사는 등대지기와 그의 아내가 표류해온 보트에서 발견한 갓난 여아를 자기 자식으로 키우다 일어나는 비극으로 영화에서 둘은 매우 깊고 강렬한 러브신을 보여준다.
감독 데렉 시안프란스는 풍광이 수려한 섬에서 제작진과 함께 두 배우를 캠핑하듯이 합숙시키고 짧은 러브신 하나를 찍는데도 하루 종일 걸리는 정성을 들였는데 둘이 이런 분위기에서 스크린 사랑을 나누다보니 그것이 진짜로 두 사람의 가슴에 전염된 것 같다.
그런데 비칸더는 영화를 찍기 이전에 벌써 화스벤더를 사랑할 증세를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이 영화를 위한 인터뷰에서 “나는 마이클을 최고의 연기자 중 하나로 생각하며 그와 공연하고 싶어 출연에 응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둘을 뜨거운 사랑에 빠지게 만든 이 영화는 내가 보기엔 혈색이 파리한 작품이다. 흥행에서도 실패해 지난 노동절 연휴가 시작되는 2일에 개봉돼 연휴 나흘간 달랑 590만달러를 벌었다.
스크린 로맨스가 진짜 로맨스가 된 경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 모든 사랑이 다 그렇듯이 이 사랑도 시간이 흐르면서 뜨거움이 식어버리는 경우가 흔하다. 이런 로맨스 중 가장 요란하게 세간의 화제가 됐던 것이 ‘클레오파트라’(1963)에 나온 리처드 버튼과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사랑이다. 모두 제 짝이 따로 있던(당시 테일러의 남편은 가수 에디 피셔) 둘은 폭스사를 들어먹을 뻔했던 이 영화에서 열애에 빠지면서 교황청의 야단까지 맞았었다.
또 다른 유명한 스크린 로맨스 커플이 험프리 보가트와 로렌 바콜이다. 둘은 액션드라마 ‘가진 자와 못 가진 자’(1944)에서 공연하다 사랑에 빠졌는데 이 영화로 데뷔한 바콜은 방년 19세였고 보기는 45세의 유부남이었다. 둘은 보기가 이혼한 이듬해 결혼, 1957년 골초였던 보기가 후두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잉꼬부부였다.
천하의 바람둥이 워렌 베이티도 갱영화 ‘벅시’(1991)에서 만난 아넷 베닝을 만나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 베이티의 여성편력 때문에 둘이 얼마나 갈까하고 궁금해들 했었는데 다행이다. 브래드 핏과 앤젤리나 졸리가 액션스릴러 ‘미스터 앤드 미시즈 스미스’(2005)에서 공연하다 눈이 맞아 애인 사이가 됐을 때 울고불고한 것이 당시 핏의 애인이었던 제니퍼 애니스턴이다. 핏과 졸리는 지금 겉으로 보기엔 잘 살고 있는데도 툭하면 태블로이드에 의해 둘의 사이가 안 좋다는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남편을 버리고 스크린에서 만난 남자에게 갔다가 팬들의 뭇매를 맞은 여자가 ‘아메리칸 스윗하트’로 불리던 멕 라이언이다. 라이언은 액션드라마 ‘생존의 증거’(2000)에서 공연한 러셀 크로우와 열애에 빠져 역시 배우인 남편 데니스 퀘이드와 헤어졌으나 크로우와의 사랑도 오래 가진 못했다. 스티브 맥퀸과 알리 맥그로도 스크린 스캔들 커플이다. 둘은 액션영화 ‘겟어웨이’(1972)에 나오면서 사랑에 불이 붙었는데 당시 맥그로는 ‘대부’의 제작자 로버트 에반스의 아내였다.
탐 크루즈와 니콜 키드만도 유명한 스크린 커플. 둘은 자동차경주 영화 ‘천둥의 날들’(1990)에서 만나 한 쌍이 됐는데 당시 무명씨에 불과했던 키드만은 그녀를 스릴러 ‘데드 캄’에서 보고 반한 탐의 선택으로 이 영화에 캐스팅됐다. 그러나 둘은 결혼 10년 만에 이혼했는데 키드만은 한 인터뷰에서 “그 동안 키가 나보다 작은 탐 때문에 하이힐을 못 신었는데 이젠 신어서 좋다”며 웃었었다. 키드만은 지금 컨트리싱어 키스 어반과 결혼해 내슈빌에서 잘 살고 있다.
결혼은 안 했지만 동거인으로서 오랫동안 잘 살고 있는 스크린 커플이 눈이 큰 골디 혼과 커트 러셀. 둘은 드라마 ‘스윙 시프트’(1984)에서 만난 금실 좋기로 유명한 할리웃 커플이다. 역시 눈이 큰 수전 서랜든은 코믹한 야구영화 ‘불 더램’(1988)에서 만난 팀 로빈스와 맺어졌으나 얼마 전에 헤어졌다. 벤 애플렉과 제니퍼 로페스도 졸작 ‘질리’(2003)로 커플이 됐으나 매스컴의 등쌀에 못 견뎌 헤어졌다. ‘트와일라이트 사가’의 두 젊은 배우 로버트 패틴슨과 크리스튼 스튜어트도 이 영화로 연인 사이가 됐으나 스튜어트의 방종 탓에 끝이 났다.
대부분의 할리웃 커플의 관계가 오래 못 가는 까닭은 분주하고 복잡한 배우로서의 삶과 개인적 삶이 공존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할리웃이 유혹이 많은 방탕의 도시라는 점도 또 다른 이유로 들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6년 9월 7일 수요일

모르는 여인(Complete Unknown)


15년만에 앨리스라는 이름으로 나타난 탐의 전 애인(레이철 바이스).

수시로 신원을 바꾸는 수수께끼 같은 여인


우리는 모두 가끔 현재의 자신의 껍질을 벗고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신해 새 삶을 살고 싶은 환상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의 노예들인 우리에겐 한낱 꿈에 지나지 않는데 이 영화의 주인공인 아름답고 감각적이며 수수께끼 같은 여인 앨리스(레이철 바이스)는 몇 년마다 자기 신원을 바꾸고 삶의 터전도 이동해 가면서 거듭 태어난다. 
매우 의미심장하고 은유적이며 또 얘기가 밤에 일어나는 무드 짙은 드라마로 심리스릴러 분위기마저 지녔다. 일상의 무사안일과 매일 같이 비슷하고 잘 아는 것들을 견딜 수가 없어 변화와 탈출을 시도하는 앨리스의 입장을 십분 이해하겠다. 
영화는 처음에 수년마다 앨리스가 거처를 이동해 가면서 매번 다른 직업을 얻어 다른 사람으로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 홍콩에서는 마술사의 조수로, 미국에서는 떠돌이 히피였다가 응급실 간호사가 되기도 하고 교외에 사는 정장을 한 직장 여성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호주에서 희귀종 개구리를 연구한 과학자가 된다. 이렇게 새 환경에서 다양한 직업을 수행하며 산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기는 하지만 이 영화는 인간의 변신욕망을 신비하게 얘기하고 있어 상징적인 것이어서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의회에 제출하는 법안 문구 수정이라는 따분한 일을 하나 뉴욕에서 아름다운 부인 라미나(아지타 가니자다)와 함께 넉넉히 사는 탐(마이클 섀넌)의 생일파티에 탐의 친구가 고혹적으로 아름다운 앨리스를 데리고 나타난다. 그런데 미술가인 라미나가 샌디에고에 직장을 얻게 되면서 탐도 아내를 따라가느냐 아니면 별거하느냐는 문제가 생기는데 두 사람의 관계가 순탄치 않은 것으로 암시된다.   
그런데 탐은 앨리스가 15년 전에 자기를 버리고 떠난 다른 이름을 가졌던 애인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도대체 왜 앨리스는 15년만에 불쑥 탐 앞에 나타났는가.
영화의 전반부는 앨리스가 자신의 다양한 삶에 관해 얘기하면서 파티 손님들이 이에 여러 가지로 반응하는 장면으로 진행되다가 후반 들어 앨리스와 탐이 뉴욕의 밤거리를 거닐면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둘은 이 밤의 만보와 대화를 통해 둘이 과거 애인이었을 때로 돌아가는 셈인데 정착해 평범한 남편으로 살고 있던 탐은 이 밤의 여정을 통해 다시 앨리스의 궤적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잠깐이지만 탐은 다시 만난 앨리스를 통해 현재의 껍질을 벗고 변신을 한다. 삽화식으로 섞인 둘이 걷다가 들르게 된 노부부(캐시 베이츠와 대니 글로버) 집에서의 얘기도 흥미 있다. 
카멜레온처럼 끊임없이 변신을 추구하는 앨리스와 현실 정착을 고수하는 탐의 밤의 산책은 새벽이 되어 끝난다. 그리고 앨리스는 탐에게 자기와 함께 떠나자고 제의한다. 바이스의 섹시한 모습과 짙은 연기 그리고 섀넌의 극도로 자제하는 연기가 뛰어난 깊고 선정적인 영화다. 조슈아 마스턴 감독(공동 각본). 성인용.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대양 사이의 불빛’의 알리시아 비칸더




"아직 나이 어린데 벌써 어머니 역만 여섯 번 해"


2일 개봉된 드라마‘대양 사이의 불빛’에서 1차 대전 참전군인으로 호주의 외딴 섬의 등대지기인 남편 톰(마이클 화스벤더)이 주워온 아기를 자기 딸로 키우다가 남편과 함께 비극을 맞게 되는 젊은 아내 이사벨로 나온 알리시아 비칸더(28)와의 인터뷰가 최근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사무실에서 있었다. 스웨덴 여자로서는 남달리 가무잡잡한 피부를 지닌 비칸더는 어깨 아래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한 귀여운 소녀 모습이었는데 질문에 시종일관 미소를 지으며 액센트가 있는 말투로 차분하게 대답했다. 사적인 물음에는 얼굴에 홍조를 띠며 부끄러워하면서도 활기 있고 명랑한 어조로 꾸밈없이 응했다. 비칸더는 얼마전‘제이슨 본’ 홍보차 맷 데이먼과 함께 서울에 다녀 왔는데 인터뷰 후 필자와 기념사진을 찍을 때“서울서 먹은 비빔밥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며 활짝 웃었다. 그런데 비칸더는‘대양 사이의 불빛’을 찍다가 화스벤더와 사랑하는 사이가 됐다. 비칸더는 올해‘덴마크 여인’으로 아카데미 조연상을 탔다.     

△이 영화에 나오기로 결정한 이유가 무엇인가.
“감독 데렉 시안프란스와 일하고 싶어서다. 나는 데렉의 ‘블루 밸런타인’과 ‘플레이스 비연드 더 파인즈’를 극장에서 두 번이나 봤는데 보기에 쉬운 것들이 아니다. 내 역도 하기 힘든 것으로 이런 도전적이라는 점도 출연에 응한 또 다른 이유다. 그리고 뛰어난 연기자인 화스벤더와 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데렉은 어떤 감독인가.
“그는 매우 구식으로 철두철미한 감독이다.”  

△영화에서 톰은 행복한 사람이 아닌데 이사벨은 그런 남자에게서 무엇을 찾을 수가 있다고 보는가.
“그가 침울한 것은 전쟁 후유증 탓이다. 역시 전쟁에서 가족을 잃은 이사벨은 전쟁에서 돌아온 톰을 영웅으로 보면서 그를 통해 전쟁에 나갔다 돌아오지 않는 자기 가족의 전장에서의 삶을 관찰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사벨은 엄격하고 빈 말을 하지 않는 톰에게 깊은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둘이 사랑을 하게 되면서 톰이 걸어 잠근 마음 문이 열리게 된다.”

△톰같은 남자를 좋아하는가.
“믿을 수가 있고 친절하며 무엇이든 내가 하는 일을 지지하는 남자라면 가까이 하고 싶다.”

△외딴 섬에서의 촬영경험이 어땠는가.
“우린 가장 가까운 작은 마을에 가려면 차로 3시간이나 걸리는 섬에서 촬영했다. 내 생전 이렇게 자연 속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문명과 완전히 절연된 고독한 장소로 어떤 등대지기가 미쳐서 나갔다는 말도 들었다. 고독과 함께 밤이면 등대의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사람을 미치게 할 만하다. 기상도 변덕이 심해 매일의 해돋이와 석양의 모습이 달랐고 폭풍우도 여러 차례 경험했다.”  
톰과 이사벨이 사랑의 기운에 흠뻑 젖어 있다.

△마이클과 일한 경험은 어땠는가.
“우린 과거 영화제에서 만난 적은 있으나 진짜로 대화를 나눈 것은 웰링턴에서 있은 이 영화의 리허설 때였다. 그리고 난 처음부터 그와의 콤비가 잘 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 영화는 감정적이요 매우 심오한 작품이어서 두 사람 사이의 잘 맞는 호흡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는 내가 본 그 어느 배우보다 더 용감한 연기자다. 그런데 그가 매우 치열한 배우여서 처음에는 다소 겁이 났다”

△이사벨처럼 어머니가 되고 싶은 생각이 있는가.
“내가 어렸을 때 부모가 이혼해 난 어머니와 함께 오래 살았다. 우린 매우 가까웠는데 그래서인지 난 10대 때부터 가정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난 아직 어린 나이라고 하겠는데 벌써 어머니 역을 여섯 번이나 했다. 난 이 영화에서 아기를 임신하고 또 유산하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하려고 세트에서 일하는 여러 어머니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톰과 이사벨은 사랑에 빠지면서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데 당신도 사랑을 하면서 같은 경험을 했는가. 
“모르겠다. 모든 사람의 안에는 다 사랑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랑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난 커서 날 사랑하는 사람들로 둘러싸여 살았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난 지금 다른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다. 사랑을 앎으로써 우리는 남을 존경하게 되며 또 내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알게 된다. 난 내가 이렇게 배운 것을 남에게 돌려주고 싶다.”

△사랑이 톰과 이사벨을 어떻게 어려운 지경에서도 서로를 연결시켜 주었다고 보는가.
“처음에 둘이 만났을 때 그들은 서로가 달라 충돌했다. 그래서 둘은 아마도 서로가 연결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둘은 서로 모두 같은 정열을 지녔고 삶과 인간성과 사랑의 본질을 추구하고자 하는 강한 동기를 가지고 있어 결합된 것이다. 따라서 둘의 사랑은 뜬 구름 같은 것이 아닌 진짜 지적이며 어른다운 사랑이다.”            

△마이클과 다시 공연할 계획이라도 있는가.
“좋은 감독과 각본이 있다면 다시 함께 일하고 싶지만 현재로선 아무 계획도 없다.” 

△패션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LA에서 활동하면서 자연 그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그 것이 스트레스가 돼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재미라고 생각하려고 한다. 그리고 난 옷을 만드는 사람들을 훌륭한 예술가라고 여긴다. 그런데 내 스타일리스트는 나와 가장 친한 친구이다. 그러나 난 보통 때는 그저 편하고 느슨한 옷을 즐긴다.”

△유산하는 장면을 찍기가 힘들었는가.
“그 장면은 영화 내용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어서 찍기 전에 정말로 안절부절 못했다. 그리고 데렉은 촬영을 간단히 끝내는 감독이 아니어서 그 장면을 찍는데 무려 45분이 걸렸고 그런 장면을 다섯 번인가 여섯 번인가를 반복해야 했다. 한 번 찍고 나면 완전히 졸도할 지경이 되곤 했다.”                

△배우들은 거처를 옮겨 다니면서 사는데 어디서 사는가.
“지난 5년 전부터 런던에서 살고 있다. 난 나를 유러피안으로 생각한다.”

△삶에서 매우 아끼고 긍정적이며 또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경험은 어떤 것인가.
“삶 전체가 바로 그런 것 아니겠는가. 내가 잃고 이루지 못해 슬퍼하는 일들도 많지만 시간이 지나고 또 그것들과 거리를 두게 되면 과거를 통찰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 새로운 길을 걸으면서 자신이 바라는 것도 이룰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런던에서 살고 LA에서 활동하면서 어느 나라 말로 생각하고 꿈을 꾸는가.
“스웨덴 말인데 영어를 주로 쓰다 보니 모국어마저 서투르게 되는 것 같다. 그러니 어느 한 나라 말도 제대로 못하는 셈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로스 올비다도스(Los Olvidados·1950)


불량배 소년들이 거리의 악사를 희롱하고 있다.

멕시코시티에 사는 가난한 아이들의 삶


스페인의 명장 루이스 부누엘(공동 각본)이 멕시코에서 찍은 멕시코 영화로 영어제목은 ‘The Young and the Damned’. ‘소년들과 저주 받은 아이들’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멕시코시티에 사는 찢어지게 가난한 아이들의 삶을 매우 사실적이요 진지하게 다룬 사회 비판적인 명작이다. 
사회적 사실주의 작품으로 흑백촬영(가브리엘 피게로아)이 뛰어난데 부누엘의 많은 다른 영화들처럼 초현실적인 요소가 가미됐다. 부누엘이 칸영화제서 감독상을 받았다. 당초 부누엘은 멕시코시티에 사는 복권을 파는 소년의 얘기를 만들려고 했으나 제작자의 권유에 따라 내용을 변경했다.  
소년원에서 탈출한 불량배의 리더 엘 하이보는 갱과 함께 거리의 맹인 악사를 털고 악기를 부순다. 이어 엘 하이보는 친구 페드로와 함께 자기를 경찰에 고발한 훌리안을 찾아간다. 훌리안은 자신이 고발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나 엘 하이보는 훌리안을 죽이고 그의 돈을 훔쳐 페드로와 나눠 갖는다. 
페드로는 자기 어머니가 자신에게 크게 실망한 것을 알고 정직하게 살려고 대장간에 취직한다. 그런데 엘 하이보가 찾아와 비싼 칼을 훔치면서 페드로가 누명을 쓰고 교화소에 들어간다. 그는 여기서도 말썽을 피우는데 교화소장이 페드로를 시험하기 위해 그에게 50페소를 주고 심부름을 시킨다.
페드로는 심부름을 제대로 수행할 작정이었으나 길에서 만난 엘 하이보가 페드로로부터 돈을 훔치면서 둘 사이에 싸움이 일어난다. 그리고 페드로는 엘 하이보가 훌리안을 죽였다고 소리치면서 엘 하이보는 달아난다. 
이어 다시 만난 두 사람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면서 엘 하이보가 페드로를 죽인다. 그리고 달아나던 엘 하이보는 쫓아온 경찰의 총을 맞고 죽는다. 영화는 페드로의 어머니가 아들을 찾아 거리를 헤매는 장면으로 끝난다. 
내용이 너무 참담해 멕시코 정부가 부누엘에게 압력을 행사, 페드로가 교화소 소장의 심부름을 제대로 수행하고 돌아오는 것으로 된 일종의 해피 엔딩이 있다. ★★★★½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암캐’




순진하고 어리숙한 남자를 유혹해 파멸로 안내하는 여자를 팜므 파탈(femme fatale)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여자의 원조는 아마도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어보라고 꼬드겨 인류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은 이브일 것이다. 그리고 삼손을 영육으로 눈멀게 만든 딜라일라와 호세의 칼에 맞아 죽은 카르멘도 이브의 후예다.
팜므 파탈은 전후 미국에서 크게 유행한 장르인 필름 느와르에서 단골로 나온 주인공들로 그 대표적 여자가 필리스 디트릭슨이다. 로스펠리즈에 사는 필리스 디트릭슨(바바라 스탠윅)은 빌리 와일더가 감독한 ‘이중배상’에서 봉같은 보험 세일즈맨 월터 네프(프레드 맥머리)를 유혹해 보험에 든 나이 먹은 자기 남편을 살해시키는 요부로 팜므 파탈 중에서도 으뜸가는 여자라고 하겠다.
소심하고 순진하기 짝이 없는 모리스가 넋을 잃고 욕정과 사랑에 빠지는 룰루도 영화사에 길이 남을 만한 팜므 파탈이다. 룰루는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피에르-오귀스트 르느와르의 아들로 ‘위대한 환상’과 ‘인간 짐승’ 및 ‘게임의 규칙’ 같은 명화를 만든 장 르느와르 감독의 애욕과 기만과 살인이 뒤엉킨 삼각관계의 치정극 ‘암캐’(La Chienne·1931·사진)의 주인공이다. 원작은 조르지 드 라 후샤르디에르의 소설.
영화는 인형극 속의 인물의 “이 영화는 드라마도 아니요 희극도 아니며 또 도덕적 메시도 없다”로 시작되지만 실은 계급과 신분을 비롯한 사회적 현상과 도덕성을 다룬 코미디 드라마다. 파리 몽마르트르에 사는 회사 경리사원으로 아마추어 화가인 수줍은 모리스 르그랑(미셸 시몽)은 바가지를 긁어대는 아내 아델의 엉덩이에 깔려 사는 불행한 공처가.
그의 유일한 위안은 그림을 그리는 것인데 어느 날 밤 회사 회식 이후 귀가하다가 길에서 자기 애인인 핌프 데데(조르지 플라망)에게 얻어터지는 젊고 섹시한 밤의 여자 룰루(자니 마레즈)를 구해 주면서 파멸의 길로 접어든다. 룰루는 데데와 짜고 자기에게 반한 모리스의 껍데기를 벗겨 먹기로 하면서 모리스는 룰루의 요구를 만족시켜 주기 위해 회사 돈을 횡령한다.
룰루와 데데는 돈이 떨어지자 이번에는 모리스의 그림을 팔아먹는데 룰루는 화상에게 자기를 클라라 우드라고 소개하고 그림을 자기가 그렸다고 속인다. 그런데 그림들이 인기를 얻으면서 고가로 불티나게 팔린다. 모리스는 자기 그림을 팔고도 한 푼도 못 건지지만 룰루가 행복한 한 자기도 만족하는데 룰루가 데데의 애인이요 둘이 짜고 자기를 기만했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와 질투에 눈이 멀어 룰루를 편지봉투 여는 칼로 찔러 죽인다. 그리고 살인혐의는 데데가 뒤집어쓴다.
마지막 장면이 역설적 희극으로 끝난다. 알거지가 된 모리스가 팔려서 고급 승용차에 실리는 자신의 자화상을 보면서 함지박 미소를 짓는다. 거지가 되면서 비로소 자유로워진 모리스의 커다란 미소에 체념의 예지가 가득하다. 우물쭈물하는 시몽의 뛰어난 연기와 화면 구성과 흐름이 좋은 흑백촬영 그리고 발자국 소리 등 실제 음을 쓴 음향효과 및 유효 적절히 쓴 노래 등이 모두 훌륭한 명화로 플라망과 마레즈도 잘 한다. 그런데 플라망은 아마추어 배우로 실제로는 직업 범죄자였다.
영화에서 모리스가 그리는 그림은 상징적 의미를 지녔다. 르느와르는 늘 아버지의 그늘을 의식하며 살았는데 이 영화를 위해 아버지의 그림을 팔아 제작비를 조달했다고 한다.
한편 마레즈는 룰루처럼 실제로 비극적 운명을 맞았다. 르느와르는 영화의 사실성을 살리려고 마레즈와 플라망이 실제로 사랑에 빠지도록 부추겨 둘은 애인이 됐다. 그런데 시몽도 마레즈를 사랑하면서 영화 밖에서도 삼각관계가 발생했다.
그리고 운전이 서툰 플라망은 출연료로 산 자동차에 마레즈를 태우고 달리다가 교통사고로 마레즈가 사망했다. 방년 23세로 영화는 마레즈 사망 3개월 후인 1931년 11월에 개봉됐다.
‘암캐’는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독일 감독 프리츠 랭(‘M’ ‘메트로폴리스’)에 의해 ‘진홍의 거리’(Scarlet Street·1945)로 리메이크 됐다. 프랑스 판보다 훨씬 어두운 가학적 영화로 병적인 염세주의 분위기가 가득하다. 주인공들은 공처가 크리스(에드워드 G. 로빈슨)와 폭력적이요 간교한 핌프 자니(댄 듀리에) 그리고 자니의 애인으로 자극적인 거리의 여자 키티(조운 베넷).
특히 상스러우면서도 치명적인 색정미를 발산하는 베넷의 모습과 연기가 눈부시다. 크리스가 잠옷 가운 차림으로 침대에 길게 누운 키티가 앞으로 길게 내민 맨발의 발톱에 정성껏 패디큐어를 해주는 모습이 선정적이다. 이 영화는 냉소적으로 끝나는 ‘암캐’에 비해 비극적 여운을 남긴다. 유럽의 여유가 아쉽다. ‘암캐’가 크라이티리언(Criterion)에 의해 DVD로 나왔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