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7월 24일 목요일

위시 아이 워즈 히어(Wish I Was Here)

“생계 때문에 배우 꿈을 접어야 하다니…” 

에이단(가운데)이 아들 터커와 딸 그레이스를 데리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배우인 잭 브래프가 감독으로 데뷔하고 주연한 소박한 가족 드라마 ‘가든 스테이트’를 만든지 10년 만에 역시 감독하고 각본을 쓰고 주연도 겸한 차분하게 감정적이요 사실적이며 마음을 파고드는 가족드라마로 코미디 터치를 가미해 심각한 플롯을 경쾌하게 처리했다.
죽음과 종교와 가장으로서의 가족 생계유지와 자신의 꿈을 버리지 않으려는 고집 등 우리가 일상 겪는 문제들을 힘을 주지 않고 약간 변덕스럽고 자기비하적이며 또 우습고 솔직하게 다뤄 충분히 공감하면서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다소 과장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삶의 위기를 맞은 30대 가장의 자신과의 타협을 삼삼하게 그린 드라메디로 배우들의 연기가 좋다.  
브래프가 사람들로부터 제작비를 십시일반 하는 식으로 후원받은 킥 스타터 영화로 총 제작비 500만달러 중 300만달러(4만6,520명 모금)가 이렇게 조달됐다.      
LA에 사는 에이단 블룸(브래프)은 안 팔리는 배우로 오디션마다 뛰어다니지만 최근에 나온 것이 비듬약 광고. 그래서 집안 생계비는 따분한 컴퓨터 일을 해야 하는 직장(남자 동료들의 성희롱을 받으면서)에 다니는 에이단의 아내 새라(케이트 허드슨)가 꾸려나간다. 둘 사이엔 탐보이인 틴에이저 딸 그레이스(조이 킹)와 그의 남동생 터커(피어스 개그논)가 있다.
그런데 힘은 들지만 그런대로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는 에이단의 삶이 암을 앓는 아버지 게이브(맨디 패틴킨) 때문에 균형이 깨어진다. 게이브가 여태껏 지불한 그레이스와 터커의 유대인 학교 학비를 더 이상 낼 수가 없다고 아들에게 통보를 했기 때문.
그런데도 에이단은 아이들을 공립학교에 보내기를 거부하면서 학교 교장인 랍비를 면담해 도와달라고 사정하나 거절당한다. 게이브와 현모양처로 지금까지 아무 말 없이 남편의 배우로서의 꿈을 말리지 않던 새라마저 에이단에게 배우직업을 포기할 것을 종용하면서 에이단은 큰 삶의 시련에 직면한다. 
가족의 위기를 맞은 에이단은 할 수 없이 아이들을 집에서 교육시키기로 하고 집에 있는 날이 더 많은 자신이 선생 노릇을 한다. 그리고 에이단은 감정적으로 힘이 들면 자기가 14세 때 상상하던 환상의 나라로 들어가 수퍼히로 우주인이 되면서 시름을 잊는다.
서브플롯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에이단의 노총각 동생 노아(조쉬 개드). 노아는 해변의 트레일러하우스에서 두문불출하듯이 혼자 사는 컴퓨터와 만화 속 인물에 빠져 사는 너드로 아버지와 말을 안 한지 1년이 넘는다. 끝에 가서 그와 게이브가 그레이스의 주선으로 화해하는 모습이 가슴을 싸하게 만든다.         
종교와 신과(유대인을 자아비판하고 비하하는 대사들이 웃긴다) 죽음과 자신의 꿈과 책임 사이에서 애를 먹는 가장의 갈등 그리고 직면한 가족의 죽음에 대한 당황과 같은 여러 가지 영적이요 심각한 요소들을 모가 나지 않게 서로 잘 조화시켜 엮은 연출 솜씨가 좋다. 아주 희망적인 영화다.
연기들이 다 좋은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허드슨(코미디언 골디 혼의 딸)의 연기다. 자주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로맨틱 코미디(올해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으로 오스카 주연상을 탄 매튜 매코너헤이와 여러 편에서 공연했다)에 나온 허드슨이 매우 굳건하고 꾸밈없고 믿음직한 연기를 한다. 이를 계기로 허드슨도 매코너헤이처럼 괄목할 변신을 하기를 기대한다. 
R. Focus. 일부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섹스 테입(Sex Tape)

캐메론 디애즈 몸매만 볼 만한 섹스 코미디

섹스를 위한 준비태세에 들어간 제이(왼쪽)와 애니.

천하고 상스럽고 추하고 야하고 볼품없고 재미없고 우습지도 않은 섹스 코미디로 모든 것이 억지다. 아무 내용도 없는 지극히 공허한 영화로 허무하기까지 한데 별로 우습지도 않은 얘기(?)를 가지고 사람들을 웃게 만들려고 두 주연 배우인 캐메론 디애즈와 제이슨 시겔이 쥐어짜듯이 해대는 연기 같지도 않은 연기가 보는 사람을 오히려 피곤하게 만든다.
전형적인 속빈 강정식의 할리웃 영화로 어떻게 이런 흉물을 보라고 버젓이 내놓았는지 배급사인 소니의 속셈을 알다가도 모르겠다. 하나 볼 것이 있다면 40넘은 나이에도 싱싱한 육체와 뒤태를 지닌 디애즈의 전봇대만큼이나 긴 다리. 디애즈는 ‘내 몸 좀 봐 주세요’라는 식으로 브라와 손수건만한 팬티로 중요한 곳만 가리고 요사를 떠는데 언제나 배우로서 철이 들는지 한심하다.
영화는 처음에 애니(디애즈)가 컴퓨터로 자기와 남편 제이(시겔-공동 각본)가 결혼 초창기 끊임없이 즐기던 섹스장면을 보면서 섹스처럼 즐거운 것은 없다고 자랑하면서 시작된다. 결혼생활 10년에 두 남매를 둔 둘은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나 정열은 시들해진 상태. 그래서 변태적인 스타일까지 동원해 섹스를 즐기려 해도 뜻대로 되지가 않아 좌절감이 심하다. 이에 기발 난 아이디어를 낸 것이 애니로 애니는 제이에게 섹스교본 ‘섹스의 즐거움’에 있는 그대로 온갖 자세로 둘이 섹스를 하는 모습을 비디오로 남기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애니와 제이는 발가벗고 3시간 난스탑으로 섹스를 하면서 그 모습을 아이패드로 찍는다. 3시간의 마라톤 섹스 후 애니는 제이에게 촬영한 것을 꼭 지우라고 부탁하는데 아뿔싸 제이가 지우는 것을 잊으면서 난리법석이 난다.
애니와 제이의 섹스 비디오가 공공연하게 살포되면서 공포에 질린 둘은 밤새 이것을 회수하려고 친구와 애니의 직장사장 행크(로브 로우)의 집을 찾아 헤맨다. 애니와 제이가 행크의 집에서 벌이는 해프닝은 터무니가 없어 헛웃음이 나오는데 역사의 아이러니랄까 로우는 과거 자신의 섹스 테입을 찍어 스캔들에 올랐던 장본인이다.        
시종일관 철저하게 무리수를 두어가면서 억지를 부린 영화로 다행히 상영시간은 1시간35분이나 그것도 길다. 코미디언 잭 블랙이 사람들이 컴퓨터에 옮긴 섹스 비디오를 대중에게 살포하는 소스의 사장으로 잠시 나온다. 제이크 캐스단(명장 로렌스 캐스단의 아들) 감독. 
R.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인터뷰’



히틀러와 스탈린과 김정일 같은 독재자들은 영화의 힘을 파악, 이를 통치의 한 수단으로 이용했다. 내가 1991년 북한을 방문, 평양의 조선영화예술촬영소를 구경했을 때 안내를 맡은 공훈배우 김선남씨도 “김정일 동지는 영화를 통해 인민을 교양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영화에 더 애착을 둔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괴물들이어서 풍자영화의 좋은 노리갯감으로 쓰이고 있다. 지금 북한이 전쟁 불사를 부르짖으며 노발대발하고 있는 미국제 코미디 ‘인터뷰’(10월10일 개봉ㆍ사진)도 북한이 하느님처럼 떠받들고 있는 김정은에 대한 암살시도를 다룬 것이다.
소니 작품인데 두 TV 저널리스트인 제임스 프랭코와 세스 로겐(공동 각본 및 감독)이 김정은을 인터뷰하게 되자 CIA가 둘에게 김정은 암살을 지시한다는 내용이다. 김정은으로는 한국계 배우이자 코미디언인 랜달 박(40)이 나온다.
얼마 전에 영화의 예고편이 나오자 북한 외무성은 “결정적이요 무자비한 반격을 각오하라”고 으름장을 놓은데 이어 최근에는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가 “주권국가의 현직 지도자에 대한 암살영화를 제작하고 배급하는 것은 노골적인 테러리즘에 대한 후원이자 전쟁행위”라면서 “미국은 즉각 영화의 제작과 배급을 중단하라”는 항의편지를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게  보냈다. 이에 대해 유엔이 아무 말이 없자 북한은 이번에는 백악관의 오바마에게 이 영화의 배급을 중단케 하라는 서신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
미국이나 소니가 이런 공갈협박에 넘어갈 리가 없으니 ‘인터뷰’는 100만달러짜리 공짜 선전만 받은 셈인데 이 덕분에 영화의 예고편이 전 세계서 큰 인기를 얻으면서 평양에까지 상륙했다고 한다.
악몽이자 공포영화요 공상과학 영화이자 넌센스 다크 코미디와도 같은 북한은 철저한 비밀국가인 데다가 인민은 굶어죽는데 괴물 전직 미 프로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만을 초청해 경기를 즐기는 김정은의 기발 난 행동 탓에 풍자영화의 좋은 소재가 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김정은의 아버지로 영화광이었던 김정일도 2004년작 미국산 꼭두각시 영화 ‘팀 아메리카: 세계 경찰’에서 고독한 미치광이 지도자로 묘사돼 화가 난 북한 정부는 체코 정부에 영화의 상영금지 조치를 요청했다가 거부당했었다. 또 제임스 본드 팬이던 김정일은 007 시리즈 ‘다이 어나더 데이’에서 북한이 악의 국가로 그려진 것에 대해서도 크게 역정을 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한은 같은 미제 영화라도 북한군이 미국을 침공한 ‘레드 던’과 북한 테러리스트가 백악관을 박살내는 ‘올림퍼스 함락되다’에 대해서는 아무 불평을 안 했다. 불평은커녕 북한은 영화의 부분을 북한의 막강한 무력을 과시하는 선전용 비디오로 쓰고 있다고 한다.  
현직 국가수반인 독재자를 무차별 야유 비판한 걸작 코미디가 채플린이 제작ㆍ감독ㆍ작곡하고 각본을 쓰고 1인2역으로 주연한 ‘위대한 독재자’(1940)다. 영화를 만들기 전 이미 히틀러의 암살대상 리스트에 올랐던 채플린은 영화에서 콧수염을 한 독재자로 나와 이웃 국가들을 침략하는데 그 모습이나 행동이 히틀러를 똑 닮았다.
영화가 나오자 나치 정부가 노발대발한 것은 물론. 그래서 당시만 해도 독일과 친선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미국의 국무부는 “미국 정부와 이 영화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성명까지 냈었다. 그리고 영국도 처음에는 영화 상영을 금지했다가 독일과 전쟁을 시작한 후에야 상영을 허락했다. 영화는 독일은 물론이요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상영이 금지됐는데 빅히트해 채플린의 영화로선 사상최대의 수입을 올렸다.
영화는 히틀러뿐 아니라 무솔리니도 조롱하고 있는데 무솔리니는 막스 브라더스의 요절복통 코미디 ‘누워서 떡 먹기’에서도 가차 없이 야유를 받았다. 물론 이 영화는 이탈리아에서 상영이 금지됐었다.
‘인터뷰’ 때문에 골이 잔뜩 난 북한의 심기를 더욱 불편케 할 또 다른 영화가 ‘수용소의 노래’(해외 제목: ‘평양의 어항’)다. 현재 한국의 북한 전략센터 대표로 있는 강철환씨가 함남 요덕 정치범수용소에서 겪은 10년간의 경험을 다룬 책이 원작으로 최근 제작발표가 있었다. 강철환 역은 AMC-TV의 인기 산송장 시리즈 ‘워킹 데드’에 나와 호평을 받은 한국계 스티븐 연(30)이 맡는데 그는 제작도 겸한다.
북한으로선 또 하나의 ‘전쟁 불사’감이다. 우려이길 바라나 아이가 불장난하듯 노는 북한이 미국 대신 한국에 대해 국지전 형태의 ‘영화전쟁’이라도 일으키지나 아닐까 하는 걱정마저 든다.
그런데 과연 김정은은 ‘인터뷰’를 볼 것인가. 이에 대해 북한의 비공식 대변인인 북한-미 평화센터 김명철 사무국장은 한 인터뷰에서 “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자 로겐은 트위터를 통해 “김정은이 ‘인터뷰’를 볼 것이 분명하단다. 그가 영화를 좋아하길 바란다”고 능청을 떨었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