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12월 6일 화요일

‘룰즈 돈 어플라이’워렌 베이티




"일한다는 것, 깨닫지 못 할 때 진짜 좋은 일을 할 수 있어"


할리우드의 총아에서 기인이 되다시피 한 워렌 베이티(79)가 미 역사의 또 다른 기인인 하워드 휴즈로 나온 ‘룰즈 돈 어플라이’(Rules Don't Apply)는 베이티가 ‘타운 앤 컨트리’ 이후 15년 만에 만든 향수 짙은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로 그가 감독(각본 겸)도 했다. 휴즈와 함께 영화사 사장이던 그가 고용한 젊고 예쁜 예비스타 말라(릴리 칼린스)와 말라의 젊은 미남 운전사 프랭크(알덴 에렌라익)의 로맨스와 이들 3인간의 관계를 그린 영화인데 방향을 못 잡고 갈팡질팡 하고 있다. 영화에는 그의 아내 아넷 베닝이 말라의 어머니로 나온다. 
감색정장을 한 베이티는 나이답지 않게 정정하고 준수한 신사인데 비밀에 싸인 흉물이었던 휴즈 처럼 거의 음흉할 정도로 노련했다. 지적이요 유머와 위트도 있지만 질문에 알맹이가 없는 쭉정이 대답을 하는 것. 신중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질문에 엉뚱한 소리를 하거니 오리발을 내미는 식의 대답을 했다. 인터뷰 후 기념사진을 찍을 때 필자가 한국인이라고 자기 소개를 하자 베이티는 “한국엔 안 가봤는데 가보고 싶다”며 미소를  지었다.  

▶과거가 그리운가.
“난 1961년에 나온 데뷔작 ‘초원의 빛’이 빅히트하면서 순조롭게 할리우드 생활을 시작한 행운아다. 그래서인지 난 늘 이 영화처럼 과거의 일들을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초원의 빛’ 성공 이후 난 다른 사람들처럼 영화에 계속해 나오지 않아도 됐다. 버지니아주 침례교 가정에서 태어난 나는 여권운동이 한창이던 1958년에 할리우드에 왔는데 그 때 영화사들은 성적 혁명에 대한 내용을 많이 다뤘다. 나도 그 문제에 대해선 주저 없이 대응했다(플레이보이로 유명한 자기를 은근히 비꼰 말이다.)”

▶영화의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었는가.
“난 늘 몇 개의 아이디어를 갖고 있어 어느 영화의 첫 아이디어가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야 이거다’하고 짚이는 것을 만든다. 이 영화도 그렇다. 난 휴즈를 만나진 않았으나 그를 알던 많은 사람을 아는데 모두들 휴즈에 대해 좋게 말하더라. 난 늘 그에 대해 호기심이 있었다.”

▶왜 영화를 그렇게 뜸하게 만드는가.
“영화 말고 인생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때론 일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 할 때 진짜 좋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난 때로 영화 만드는 일이 마치 구토와도 같이 느껴진다. 그렇다고 내가 구토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디어가 머리에서 뱅뱅 맴돌고 그런 것이 재미있다가도 그 일로 인해 고문을 받는 경험을 하게 되면 차라리 모든 것을 구토해버리고 싶을 때가 많다.”
베벌리힐스호텔 방에서 두문불출하고 있는 하워드 휴즈 역의 워렌 베이티.

▶이 영화는 화려한 할리우드에도 사랑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데 감독은 사랑은 모든 것을 정복하다는 말을 믿는가.
“그렇다. 이유는 묻지 말라.”

▶반세가 동안 할리우드에서 일하면서 감독으로서 또 영화계가 어떻게 변화했다고 보는가.
“명성 때문에 내 삶은 큰 변화를 겪었다. 명성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다. 감독으로 말하자면 난 지금과 6개월 전이 다르다. 늘 변하고 적응해야 한다. 영화계도 디지털과 대규모 개봉 등 큰 변화를 보고 있다. 지금은 개봉일인 금요일과 그 주말에 모든 것이 결정되는데 예전에는 비평가들의 의견이 영화의 장기 개봉에 큰 영향을 미쳤었다. 자연 감독도 현재의 관객의 취향에 적응하지 않을 수 없다.”

▶아내와 4자녀와의 관계는 어떤가.
“우린 모두 아내가 하라는 대로 한다. 아이들과는 협상을 한다. 다 훌륭한 아이들이다. 유명 부모를 가진 아이들의 삶은 쉽지가 않아 난 그들의 사생활 보호에 신경을 쓴다. 그리고 난 완벽한 여자와 결혼했다.”

▶허구인 말라와 프랭크의 로맨스 아이디어는 어떻게 구상을 했는가.
“유명 인사의 전기를 영화로 만들자면 어느 정도 허구가 섞여야한다. 단순히 휴즈에 관한 것이라면 난 안 만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휴즈의 본질만 사용하면서 두 청춘남녀의 사랑을 가미했다.”

▶부모로부터 배운 것이 무엇인가. 
“부모는 다 교육자였다. 아버지는 교육심리학박사였고 어머니는 연기 교사였다. 외할머니는 대학학장이었다. 그러나 부모는 내게 일절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래서 난 버림받은 기분이었다. 아버지가 바이얼린을 켜는 바람에 나는 서푼짜리 피아니스트가 됐는데 그래서 뉴욕에 빈출했을 때 바에서 피아노를 쳤다.”

▶지나간 인생을 돌아 볼 때 과거와 달리 했으면 하고 생각하는 것이라도 있는가.
“없다.”

▶‘초원의 빛’이 한국에서 상영됐을 때 한국의 젊은 여자들은 물론이요 가정주부들까지도 워렌 비티에게 반해 난리가 났었다. 그야말로 열광이었는데 팬들의 그런 광적인 반응을 그리워하는가.
“아니 그럼 한국의 가정주부들이 나로 인해 마음으로 부정을 저질렀다는 말인가. 고맙다. 난 팬들의 그런 열광을 처음부터 아예 기대하지 않았다.” 

▶할리우드는 감독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난 할리우드를 사랑한다. 할리우드는 나를 매우 친절하게 대해줬다. 그리고 이 곳은 내가 살고 있는 곳이다.” 

▶앞으로 만들고 싶은 영화는 무엇인가.
“난 늘 몇 개의 영화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 그러나 난 느린데다가 꼭 그것들을 만들 필요성도 있는 것은 아니어서 아이디어 자체로 머물곤 한다. 그리고 내 아내와 아이들이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을 내게 가져다 줘 영화보다는 그들과 함께 할 일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 

▶죽기 전에 하고픈 일은 무엇인가.
“며칠 전에 처음으로 소셜 미디를 이용해봤는데 앞으로 그 것이나 더 해보려고 한다.”

▶명성과 돈이란 어떤 의미를 지녔는가.
“그 것은 무엇이든지 간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이런 장점은 귀한 것이긴 하  나 조심해 다뤄야한다.”

▶당신은 과거 유명한 바람둥이였는데 재미로 여자들을 즐겼는가.
“언론의 자유가 있다고 해서 아무 질문이나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질문을 하면서 즐거워하고 있다는 것도 난 안다. 그러나 난 당신 질문이 사실이 아니기에 대답을 거부하겠다.”

▶내년에 80이 되는데 나이란 무엇인가.
“모르겠다. 현명한 대답이 없다.”

▶처음 할리우드에 왔을 때 누구에게서 배웠는가.
“운이 좋았다. 윌리엄 와일러, 조지 스티븐스, 빌리 와일더, 프레드 진네만, 샘 골드윈, 데이빗 셀즈닉, 대릴 재넉 등이다. 이들로부터 배우고 또 그들과 겨루려고 했다.”

▶지구녹화를 위해 무엇을 하겠는가. 
“무엇이든지 하겠다.”

▶당신은 나르시스트인가.
“각본가로서 그렇다. 작가의 나르시즘은 모델이나 배우들의 그 것보다 훨씬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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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초원의 빛’으로 수퍼스타로 부상


제작자요 감독이요 또 각본가이며 배우인 워렌 베이티는 ‘초원의 빛’으로 대뜸 스타가 된 뒤 자신이 제작하고 주연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가 빅히트하면서 수퍼스타로 부상, 카리스마와 성적매력 그리고 지성과 영화에 대한 정열로 할리우드의 총아가 되었다.
그는 지난 1981년  미국인 공산주의자로 크렘린에 묻힌 존 리드의 실화 ‘레즈’로 오스카 감독상을 탔다.
그의 누나도 오스카상을 탄 배우 셜리 매클레인이다.
골수분자 민주당원으로 한 때 대통령 후보 출마설까지 나돈 그는 모두 ‘인식’을 먹고 사는 정치인과 배우 모두에 적합한 인물. 그러나 베이티 하면 대뜸 떠오르는 단어가 플레이보이.
그는 하룻밤에도 몇 차례씩 성행위를 즐기는 정력가로 ‘움직이고 스커트만 둘렀으며 매력만 있다면 워렌은 그것을 가지려고 고심 한다’는 말을 들었었다.
그는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여자를 사랑했는데 인도네시아 대통령 수카르노의 부인 데위와도 염문을 뿌렸다.
베이티와 공연한 여배우는 물론이요 다른 많은 연예인들도 다 그에게 함락됐는데 나탈리 우드, 페이 더나웨이, 골디 혼, 줄리 크리스티, 다이앤 키튼, 마돈나, 브리짓 바르도, 레슬리 커론,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진 시버그, 다이내나 로스 등이 그 일부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라이언(Lion)


사루가 25년만에 고향에 돌아와 자기 집을 찾고 있다.

5살 때 길 잃은 인도 소년… 25년만에 고향에


인도의 5세난 소년이 집을 떠나 길을 잃은 뒤 25년 만에 부모와 상봉하는 믿지 못할 실화로 감정적이요 민감하며 사려 깊고 또 다소 감상적인 영화다. 끝을 알고 있어 다소 극적 긴장감이나 스릴이 옅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감동적이요 따스한 내용과 훌륭한 연기 그리고 잘 개발된 인물과 성격 묘사를 비롯해 뛰어난 촬영과 음악 등이 다 좋은 모든 사람이 박수를 치고 눈물을 흘리면서 즐길 연말영화 다. 후반에 가서 얘기를 반복하는 결점은 있지만 지극히 인간적인 작품이다.
주인공 사루 역을 역시 인도가 무대인 오스카 작품상 수상작인 ‘슬럼독 밀리어네어’에 나온   데브 파텔이 맡은 데다 영화 첫 부분에서 ‘슬럼독’처럼 인도의 빈민촌의 각박한 삶이 그려져 자연 그 영화를 연상하게 된다.
자기를 몹시 사랑하는 형 구두(압히셱 바라트)와 야산에서 돌을 나르는 일로 생계를 이어가는 어머니와 인도 중부의 작은 빈민촌에 사는 어머니와 사는 5세난 사루(수니 파와르가 타고난 배우의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연기를 한다)는 총명하고 즐거운 아이. 사루는 어느 날 형과 함께 도시로 나갔다가 형과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사루는 빈 기차에 올라타 잠이 드는데 기차는 사루의 집에서 무려 1,600 킬로미터나 떨어진 캘커타에 도착한다.
자기 동네에서 쓰는 힌두어와 달리 벵갈어를 쓰는 번잡한 도시에서 방황하던 사루는 아동 밀매꾼에게 붙잡혔다가 탈출하기도 하면서 온갖 어려움을 겪다가 고아원에 들어간다. 그리고 이듬 해 여기서 호주의 타스마니아에서 온 인자한 수와 존 브리얼리 부부(니콜 키드만과 데이빗 웬햄)에게 입양된다.
이로부터 20년 훌륭한 청년이 된 사루(파텔)는 양부모의 자랑과 행복의 대상이다. 그러나 수 부부가 사루의 동생으로 입양한 만토시(데비안 라드와)는 험악한 과거로 인해 새 삶에 적응을 못해 양부모와 사루의 속을 태운다. 사루는 멜번의 대학에 입학, 미국서 온 루시(루니 마라)와 로맨스를 꽃 피우고 인도 태생의 친구들과 사귀면서 청춘을 즐긴다.
인도 친구들이 사루에게 구글 어스를 통해 고향을 찾아보라고 권유하면서 사루의 집요한 가족과 고향 찾기가 계속된다. 그리고 이와 함께 사루의 내면에 잠복해 있던 어린 시절의 어머니와 형의 기억이 사루의 가슴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광활한 인도대륙에서 5세 때 떠나온 고향을 찾는다는 것은 지푸라기더미 속에서 바늘 찾기. 이로 인해 사루는 루시와의 관계도 소원해지고 수와도 거리를 두게 된다.
파텔이 깊고 강렬하며 또 가슴을 파고드는 연기를 뛰어나게 하고 키드만의 침착한 연기도 좋다. 영화 끝의 실제 사루와 친 어머니의 만남이 콧등을 시큰하게 만드는데 인도에서는 매년 80,000명의 아이들이 실종된다고 한다. 가스 데이비스 감독. PG-13.      Weinstein.★★★1/2(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딩스 투 컴(Things to Come)


 나탈리(왼쪽)와 화비앙이  한가롭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녀의 평화롭던 삶이…“세상만사 다 그런 것이야”


프랑스의 뛰어난 연기파 이자벨 위페르가 50대의 파리 대학의 철학교수로 나와 느닷없이 동료 철학교수인 남편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뒤 겪는 삶의 변화를 매우 사실적이요 통찰하면서 여유롭게 그린 좋은 드라마다. 위페르가 마치 자기 얘기 하듯 편안하게 연기를 하는데 그의 연기가 대담무쌍한 다른 영화 ‘엘르’가 현재 상영 중이다.
시간의 흐름과 나이 먹음에 관한 영화로 그 것이 좋든 싫든 개인의 경험하는 일상사와 상관없이 삶은 계속된다는 말인데 위페르가 비록 자기 삶이 엉망이 되었지만 고집 세게 때론 유머러스하게 그 삶을 이어가는 뚝심 있는 여인의 모습을 거의 능청맞을 정도로 유연하게 연기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으나 실은 모든 일이 일어나고 있는 우리들의 매일의 얘기로 지적이요 희롱하듯 하며 또 날카로운 위트가 있는 진짜 어른들의 영화다.
남편 하인즈(앙드레 마르콩)와 25년째 무난히 잘 살고 있는 나탈리(위페르)는 책 속에 파묻혀 살면서 학생들 가르치는데서 행복감을 얻는다. 삶과 일에 대해 모두 사실적으로 대처하는 사람이다. 그가 철학교수여서 영화에 파스칼이니 루소의 말들이 자주 나온다.
어느 날 하인즈가 나탈리에게 자기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다면서 이별 선언을 한다. 그리고 많은 책을 가지고 집을 나간다. 청천벽력을 맞은 나탈리는 어안이 벙벙해 처음에는 매우 당황하는데 울다가 갑자기 폭소를 터뜨리는 격심한 감정적 몸살을 앓는다.
여기다 한 술 더 떠 치매에 걸린 나탈리의 어머니 이벳(에디트 스콥)이 밤낮으로 전화를 걸어대 몸살인 날 지경이다. 프랑스의 여류 감독 미아 한센-러브는 나탈리의 이런 불운한 일상을 무겁지 않고 세상만사 다 그런 것이야라는 식으로 솔직하고 직선적으로 또 가볍게 그려 마음에 와 닿는다.
삶이 왕창 엎질러진 나탈 리가 위안을 찾는 것이 자신의 전 제자로 학업을 중단하고 시골에서 집단을 이뤄 사는 지적인 무정부주의자들과 합류한 잘 생긴 화비앙(로망 콜링카). 나탈리가 고립되면 고립될수록 그는 화비앙에게 더 끌려들어 나탈리는 마침내 화비앙이 사는 시골을 찾아간다. 영화의 후반부는 충격을 받은 나탈리의 회복과정을 그렸는데 전반에 비해 다소 처진다. 화비앙의 인물 개발이 우리의 관심을 끌기엔 충분치 못해 나탈리의 그에 대한 관심에도 잘 수긍이 안 된다. 촬영이 따스하고 아름답다. PG-13. ★★★1/2(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쿠브릭 크리스마스




퀜틴 타란티노가 주인인 뉴베벌리 시네마(7165 Beverly Blvd. 323-938-4038)는 12월 한 달간 ‘인조이 어 쿠브릭 크리스마스’라는 제하에 명장 스탠리 쿠브릭의 걸작 6편을 그에 관한 기록영화 ‘스탠리 쿠브릭:영화 속의 인생’과 함께 상영한다.
40년의 감독생애를 통해 달랑 13편의 영화만 만든 쿠브릭은 생전 지성과 선견지명이 있는 귀재라 찬양받은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지루한 자화자찬론자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의 영화가 내용과 기술면에서 도전적이요 비타협적이며 또 혁신적이면서 한편으로는 이야기나 인물을 무시한 기술적인 면에의 집착과 지나치게 냉정하고 염세적인 인간관 때문이었다.
17세 때 잡지 루크의 사진기자로 카메라활동을 시작한 쿠브릭의 이름을 할리웃에 본격적으로 내민 영화가 그의 세 번째 영화인 필름느와르 스릴러 ‘킬링’(The Killing·1953·사진)이다. 서푼짜리 전과자 자니(스털링 헤이든)와 그의 일당이 LA경마장의 현금을 터는 긴장감 팽팽한 영화로 마지막 장면이 허무하다.
이 영화는 11일과 12일 쿠브릭이 대하사극 ‘스파르타커스’를 감독하고 스튜디오의 간섭을 피해 영국으로 이주한 뒤 만든 ‘롤리타’(Lolita·1962)와 동시 상영한다. 40대 대학 문학교수 험버트 험버트의 “롤리타, 내 생의 빛, 내 허리의 불길, 내 죄악, 내 영혼”이라는 독백으로 시작되는 블라디미르 나브코브의 소설이 원작으로 험버트(제임스 메이슨)와 12세난 조숙한 소녀 롤리타(본명은 돌로레스 헤이즈로 험버트는 소녀를 롤리타 또는 로라고 부른다)와의 변태적이요 성적 기운이 가득한 애정행각을 그렸다.
중년의 험버트가 채 틴에이저도 못 된 롤리타(수 라이언)에게 집착하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측은한데 이런 험버트를 지배하면서 마치 종처럼 부려먹고 때로 조롱하는 성적으로 막 익어가는 앵두 모습의 롤리타야 말로 타고난 팜므 파탈이다.
쿠브릭의 다음 영화가 반전반핵 풍자영화의 금자탑이라 불리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Dr. Strangelove 1964-5일 상영). ‘또는 나는 어떻게 폭탄에 대해 걱정하기를 멈추고 그것을 사랑하게 되었나’(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라는 긴 부제의 이 영화는 1960년대 미·소간 냉전의 기운이 고조에 이르렀을 때 양국의 핵경쟁과 자가당착적이요 자만에 빠진 정책과 군대식 사고방식을 대담하고 황당무계 하면서도 날카롭게 풍자했다.
광적인 미 공군장성 잭 D. 리퍼(스털링 헤이든)가 자기 기지를 폐쇄한 뒤 핵폭탄을 적재한 폭격기들에 대해 소련공격 명령을 내린다. 이에 미 대통령(피터 셀러즈)이 전쟁상황실에서 비상각료 회의를 연 가운데 미·소 양국정상이 하틀라인을 통해 핵전을 막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북한의 핵무장이 세계적 걱정거리로 떠오른 요즘 시의에도 딱 맞는 내용이다.
쿠브릭의 명함과도 같은 우주와 생명의 신비에 관한 철학적 영상시라 불리는 ‘2001:우주 오디세이’에 이어 만든 영화가 마음을 어지럽게 만드는 새디스틱한 ‘클라크웍 오렌지’(Clockwork Orange·1971-14일부터 17일까지). 가까운 미래사회의 무분별한 불량청년으로 베토벤을 사랑하는 알렉스(말콤 맥도웰)와 그의 일당의 묻지 마식의 만행을 통해 결함 있는 사회를 폭력적이요 희롱하듯이 거의 초현실적으로 매섭게 풍자하고 있다. 영화에서 베토벤의 제9번 교향곡의 ‘환희의 송가’가 알렉스에 대한 고문수단으로 사용된다.
이 영화 바로 다음에 나온 것이 시대극 ‘배리 린던’(Barry Lyndon·1975-7일과 8일과 10일). 18세기 상류사회로 진출하려는 아일랜드인 레드먼드 배리(라이언 오닐)의 야심과 모험과 사랑을 느린 속도로 그린 의상극으로 오스카상을 탄 촬영과 음악과 미술 및 의상 등이 다 훌륭하다.
28일부터 31일까지 상영되는 영화가 스티븐 킹의 소설이 원작인 ‘샤이닝’(The  Shining·1980). 한 겨울에 아내와 어린 아들과 함께 산 속의 폐쇄된 여름휴가용 호텔을 돌보는 작가(잭 니콜슨)가 돌아버리면서 아내와 아들을 쫓아다니며 도끼를 휘두르는 으스스하고 음산한 분위기의 공포환상영화다.
쿠브릭의 또 다른 걸작 반전영화가 커크 더글러스 주연의 제1차 세계대전을 시대로 한 ‘영광의 길’(1957). 그의 유작은 탐 크루즈와 그의 전처 니콜 키드만이 나온 섹스의 어두운 면을 다룬 심리스릴러 ‘아이즈 와이드 셧’(1999)이다.
쿠브릭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사회조건 그리고 비인간화 되어가는 인간조건에 관심을 가졌으면서도 인간과 사회와 정치체제를 불신하고 혐오했던 역설적인 염세주의자였다. 그래서 그는 이런 것들을 냉소하고 비관하고 또 어두운 유머로 풍자했는데 그의 작품 스타일과 인물들이 마치 외계인들처럼 소원하고 차가울 정도로 무감한 것도 이런데서 연유한다고 하겠다. 그는 비범한 작품을 만든 기인이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