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7년 1월 20일 금요일

붉은 거북이(Red Turtle)


남자가 섬을 떠나려 하자 큰 붉은 거북이가 훼방을 놓는다. 

무인도에 표류한 남자… 자연과 공존을 아름답게 그린 무언극 만화영화


인간과 자연의 평화공존을 신비한 기운 속에 그린 우화요 동화이자 전설이요 신화 같은 영화로 단순한 선과 아름다운 색채로 그린 무언극 만화영화다. 
네덜랜드계 영국인 만화가 마이클 두독 데 비트(1994년 ‘승려와 물고기’로 오스카 단편 만화영화상 수상) 가 감독한 이 영화는 플롯이 매우 단순하나 그런 단순함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는 남녀노소(그러나 아주 어린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에게 더 어울릴 것이다) 모두 즐길 수 있는 명상적인 작품이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바람이 분다’ 및 ‘이웃집 토토로’ 등을 만든 하야오 미야자키와 이사오 타카하타(이 영화의 애니메이션을 공동제작)가 공동으로 창립한 만화영화사 스튜디오 기빌리가 공동으로 제작했는데 영화를 보면 기빌리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고요와 간단한 것이 지닌 미학과 힘을 깨닫게 해주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영화다.
이름 없는 남자가 표류해 무인도에 도착해 자연과 다투고 공존하면서 생존의 지혜를 터득하는 얘기다. 남자는 뗏목을 만들어 섬을 떠나려고 하는데(‘캐스트어웨이’의 탐 행스 같다) 뗏목을 띠워 바다로 나갈 때마다 해저로부터 거대한 붉은 거북이가 뗏목을 치받고 올라와 번번이 실패한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 남자는 거북이를 때려뉘어 모래 위로 끌고 가 죽기를 기다리는데 거북이가 꿈틀대며 변신해(영화에 자주 나오는 여러 모양의 변신 과정이 매우 신비하고 보기 좋다) 긴 머리를 한 아름다운 여자가 된다. 
그리고 둘은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가 되어 아이도 낳고 세상의 부부처럼 산다. 둘의 단순한 삶은 가끔 자연의 강렬한 힘의 시련을 받는데 그 중 장관인 것은 쓰나미로 섬의 숲이 완전히 쑥대밭이 되는 것. 
잉크와 수채로 그린 그림이 유연한 애니메이션에 의해 생명을 띠고 화면에서 살아나는데 짧지만(상영시간 80분) 깊이와 폭과 아름다움을 지닌 작품이다. 가족과 생존 그리고 실낙원의 이야기로 정수만 갖춘 로빈슨 크루소의 삶이라고 하겠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작품 속으로 더욱 빨려 들어가게 되는 산수화 시와도 같은 아늑한 작품이다. 음향효과가 좋다. PG.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화운더(The Founder)


레이 크락(중간)이 미네소타지점을 차린 뒤 종업원들과 함께 축하하고 있다.

맥도널드 제국을 창설한 레이 크락의 실화 영화


맥도널드의 음식이 결코 자양분이 풍부하고 맛이 있는 것이 못 되듯이 이 영화도 내용이 견실하지 못하고 전반부와 후반부가 균형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어정쩡한 작품이다. 그러나 우리가 가끔 별식으로 맥도널드의 버거를 먹듯이 이 영화도 맥도널드 제국을 창설한 레이 크락의 실화라는 점에서 호기심 거리는 충분히 된다.
크락은 자본주의(자본주의 비판영화라고 하기엔 모질지가 못하다)가 낳은 전형적인 사업가이자 협잡꾼인데 그의 맥도널드 제국은 처음에 사실 자기 것이 아니라 남의 버거가게 이름과 메뉴를 빌린 뒤 궁극적으로 이를 가로채 세운 것이다. 따라서 영화는 어둡고 냉소적인 분위기를 지녀야 하는데도 잔 리 행콕 감독은 무엇이 두려운지 이런 모진 것을 다독인 솜방망이 터치로 연출해 소스가 빠진 버거를 먹는 맛이다.
50줄에 든 크락(마이클 키튼)의 얘기로 시작된다. 체코에서 이민 온 부모 밑에서 시카고에서 성장한 세일즈맨 크락은 주머니에 술이 담긴 플래스크를 넣고 다니는 술꾼으로 쉐비를 몰고 다니면서 밀크쉐이크를 만드는 믹서를 판다. 집을 자주 비우는데다 술꾼이어서 양처인 아내 에셀(로라 던)과의 관계가 안 좋다. 
세일즈 여행 중에 크락은 비서 준(케이트 니랜드)으로부터 캘리포니아주 남부 샌버나디노의  맥도널드 버거가게로 부터 여러 대의 믹서를 주문받았다는 전갈을 받는다. 크락이 찾아간 패스트푸드 가게는 맥과 딕 맥도널드형제(잔 캐롤 린치와 닉 오퍼맨)가 경영하는데 이들은 손님들이 주로 찾는 메뉴만 집중적으로 만들어 신속히 재공하면서 문전성시를 이룬다. 형제의 모토는 최고의 품질 버거다. 
이를 본 영악한 크락은 형제에게 가게를 확장하라고 종용, 메뉴와 식당 이름과 맥도널드의 상징인 ‘황금 아치’의 프랜차이즈권을 얻어 자기 고향이 있는 일리노이에 가게를 차린다. 크락은 아내에게 알리지도 않고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려 식당을 차려 아내와의 관계가 극도로 나빠진다.       
그리고 사업이 성공하면서 크락은 지점을 확장하는데 이 과정에서 한 지점의 주인(패트릭 윌슨)의 금발미녀 아내 조운(린다 카델리니)과 눈이 맞는다. 
크락과 조운은 둘 다 돈벌이에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들로 크락은 조운의 독려를 받으며 맥도널드형제를 배신하는 작업에 들어간다. 이를 촉진하는 것이 크락의 재정자문인 해리(B.J. 노백)의 아이디어. 즉 프랜치이즈 확장의 관건은 버거가 아니라 부동산에 있다는 것. 
여기서부터 크락은 일종의 악마처럼 변신, 맥도널드형제를 완전히 배신하고 상호와 ‘황금 아치’까지 빼앗는다. 
그리고 영화의 색조와 음조도 여기서부터 전반부의 밝고 경쾌한 분위기에서 다소 어두운 기운으로 변이하나 진짜로 어둡고 가혹하다기 보다 온건해 짜릿한 느낌이 모자란다. 볼만한 것은 키튼의 연기. 아첨 떠는 세일즈맨에서 인정사정 없는 사업가로 변신하는 과정을 다채롭게 해낸다. PG-13. Weinstein.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미셸 모르강


프랑스 영화 ‘안개 낀 부두’의 주인공인 탈영병 장은 항구도시 르 아브르의 싸구려 술집에서 만난 넬리를 보고 “당신은 눈은 참으로 아름다워요”라고 사랑의 언어를 건넸다. 이 아름다운 눈을 지녔던 넬리 역의 미셸 모르강(Michelle Morgan^사진)이 지난 12월 20일 96세로 프랑스의 뫼동에서 사망했다.
영혼에 모습이 있다면 그것은 모르강의 눈을 닮았을 것이다. 그의 눈은 신비에 감싸인 깊고 맑은 호심과도 같아 보는 사람을 익사토록 유혹한다. 그래서 모르강의 부음을 들은 프랑솨 올랑드 대통령도 “모르강은 프랑스의 관객들을 사로잡은 눈을 지녔던 전설”이라고 애도했다. 모르강의 회고록 제목도 ‘이 눈들로써’이다.
내가 모르강의 눈을 처음 보고 최면에 걸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영화가 역시 ‘안개 낀 부두’(Port of Shadows^1938)다. 시인이자 극본가인 자크 프레베르가 극본을 쓰고 명장 마르셀 카르네가 감독한 이 영화는 1930년대 프랑스 영화계에 유행했던 시적 사실주의의 대표작으로 염세적 분위기가 짙은 안개처럼 작품 전체에 깔려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인 고독한 두 남녀와 그들의 주변 인물들은 이 운명 같은 안개 때문에 사랑하고 헤어지고 자살하고 살인을 저지른다고 해도 되겠다. 모든 것이 안개 탓이다.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안개와 음습한 기운과 불길한 분위기를 찍은 흑백촬영이 아름다운 ‘안개 낀 부두’의 남자 주인공은 군모를 삐딱하게 쓴 탈영병 장(장 가방). 장이 안개가 자욱한 비 내리는 밤 지나가던 트럭을 세워 운전사와 함께 르 아브르로 간다.
장은 르 아브르에서 가짜 여권을 얻어 항구에 정박한 유령선처럼 을씨년스런 검은 화물선을 타고 베네수엘라로 튀어 새 인생을 살아 보려고 이곳에 왔다. 장은 부둣가의 씨구려 술집에서 역시 현실에서 도주하려는 투명한 비닐 레인코트에 베레모를 쓴 넬리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그러나 둘의 사랑은 애초부터 처형을 당한 것. 장은 넬리를 소유한 자벨(미셀 시몽)을 살해하고 배를 타기 위해 가다가 갱스터의 총을 맞고 넬리의 품에 안겨 죽는다. 종잇장처럼 얇은 입술에 큰 코를 한 과묵한 가방과 저 세상 여자 같은 모습의 모르강의 가라앉은 연기와 둘의 콤비가 보기 좋다. 절망속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는  영화다.
염세적 색감을 머금은 이 영화는 그 성질 때문에 나치 점령 하 프랑스의 괴뢰정권 비시정부로부터 “프랑스가 전쟁에 진 것은 ‘안개 낀 부두’ 탓”이라는 엉뚱한 소리를 들었고 상영 금지 조치를 받았다.
시적 사실주의는 주로 파리의 주변을 무대로 한 노동자 계급의 도시 드라마로 어둡고 염세적인 분위기가 특징이다. 신화 속 존재 같은 남자들이 주인공으로 이들은 범죄를 저지르고 저주 받은 사랑을 하다가 대부분 처절한 종말을 맞는다. 전쟁의 암운이 하늘을 가린 1930년대 당시 프랑스인들의 절망과 허무를 대변했는데 뛰어난 형식미 속에 서민층의 각박한 일상과 함께 서정적이요 감정적인 무드를 안고 있다.
‘안개 낀 부두’ 외에 장 가방이 나온 또 다른 좋은 시적 사실주의 영화들로는 ‘페페 르 모코’(Pepe le Moko^1931)와 ‘새벽’(Daybreak^1939) 등이 있다.        
본명이 시몬 르네 루셀인 모르강은 파리 교외의 부유층 동네에서 태어나 15세 때 배우가 되려고 집을 떠나 파리로 왔다. 미셸 모르강은 그가 영화에 엑스트라로 나올 때 지은 예명이다. ‘안개 낀 부두’는 모르강의 두 번째 주연 작품으로 모르강은 이 영화로 대뜸 스타가 되었다.
모르강은 프랑스가 나치의 침공을 받으면서 1940년에 할리웃으로 왔다. 여기서 프랭크 시내트라가 노래하는 뮤지컬 ‘하이어 & 하이어’(Higher & Higher^1943)와 험프리 보가트가 나온 전쟁영화 ‘마르세유로 가는 길’(Passage to Marseille^1944) 등 몇 편의 영화에 나오긴 했으나  타작들이다. 1942년 미국인 B급 배우이자 감독인 윌리엄 마샬과 결혼해 아들을 두었으나 6년 후 헤어졌다.
모르강의 배우로서의 생애는 전후 프랑스로 귀국하면서 만개했다. 귀국 후 첫 영화인 ‘전원 교향곡’(Pastoral Symphony^1946)으로 모르강은 칸영화제 최초의 여우주연상을 탔다. 앙드레 지드의 글이 원작인 이 영화에서 모르강은 자기를 데려다 키워준 아내와 자식이 있는 목사의 사랑을 받는 눈 먼 게르트뤼드로 나와 깊고 고요하며 엄격히 절제된 연기를 보여 주었다. 모르강의 영어영화로 유명한 것이 영국감독 캐롤 리드가 만든 ‘추락한 우상’(The Fallen Idol^1948)이다. 이 영화는 그래암 그린의 소설이 원작으로 아내 살인 혐의를 받고 있는 하인(랄프 리처드슨)을 우상처럼 여기는 소년의 드라마인데 모르강은 하인의 젊은 연인으로 나온다.
모르강은 30여 년의 연기 생활을 통해 총 60여 편의 영화에 나왔다. 그와 함께 일한 프랑스의 명장들로는 르네 클레망, 장 그레미용, 클로드 오탕-라라, 이브 알레그레, 사샤 귀트리, 르네 클레어, 앙리 베르뇌유, 로베르 오셍, 클로드 샤브롤 및 클로드 를루쉬 등이 있다.
할리웃의 바인 스트릿에 있는 ‘명성의 거리’에 모르강의 이름이 적힌 별이 있다. 아디외 모르강!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