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6월 29일 월요일

테드 2 (Ted 2)


테드(왼쪽)와 잔이 공원에서 테드의 인간화에 관해 논의 중이다.

“나 인간 맞단말야”저질 장난감의 생떼


입 걸고 상스럽고 음란하고 또 나오는 말마다 욕설인 살아 있는 장난감 곰 테드의 천방지축형 터무니없는 속편 코미디다. 대마초를 태우고 맥주를 병나발 불면서 F자 상소리를 계속해 내뱉는 성욕이 넘쳐흐르는 이 장난감 곰이 나온 전편 ‘테드’(2012)는 R등급 영화사상 최고의 흥행수입을 냈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감독과 각본 그리고 테드의 음성연기는 코미디언 세스 맥팔레인이, 테드의 인간 친구로는 역시 마크 왈버그가 나온다. 장난감 곰이 인간처럼 말하고 느끼는 전편은 귀를 씻어야 할 정도로 음담과 상소리가 심했지만 그런대로 순진하고 귀여웠다. 
그러나 속편은 전편만큼 아이디어가 참신하지 못하다. 테드가 정식으로 인간이라는 법정 판결을 받겠다고 소송을 벌이는 얘기가 무리가 심했다. 그리고 상스러운 면에서 전편을 능가해야겠다는 강박관념에 매달려 욕설과 음란한 제스처가 난무하는데 때론 구역질이 나도록 더럽다. 테드가 완전히 순수를 상실한 영화다. 그러나 흥행이 잘될 것이다.
영화는 유명 영화배우이자 연극배우인 패트릭 스튜어트의 아름다운 바리톤 음성의 해설로 진행된다. 장소는 보스턴. 마켓 캐시어인 테드가 역시 같은 마켓에서 일하는 육체파 태미-린(제시카 바스)과 결혼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전편에서 결혼한 테드의 친구 잔(왈버그)은 이혼했다. 그런데 테드와 태미-린은 결혼생활 1년 만에 권태기에 빠져 저녁마다 상소리와 함께 기물을 파괴하면서 싸운다.
둘은 마켓의 다른 종업원의 권고에 따라 관계의 회복을 위해 아기를 낳기로 한다. 그러나 테드가 생식능력이 없는 만큼(그런데도 어쩌자고 태미-린이 테드와 결혼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 남의 정자를 빌려 인공수정으로 아기를 낳기로 작정한다. 그리고 테드와 잔은 왕년의 인기만화 ‘플래시 고든’의 주인공 샘 J. 존스와 수퍼보울 우승 풋볼팀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쿼터백 탐 브레이디를 찾아가 정자를 빌려달라고 했다가 혼쭐이 난다. 한편 이와 함께 태미-린이 산부인과 의사로부터 과거의 문란한 약물남용으로 인해 자궁이 완전히 결딴 나 임신이 불가능하다는 선언을 받는다.        
영화에는 J. 존스와 브레이디 외에도 유명 연예인들이 캐미오로 나온다. 제이 레노가 화장실 동성애자로 리암 니슨이 과대망상에 시달리는 마켓 손님으로 그리고 데니스 헤이스버트가 산부인과 의사로 각기 나온다.
그래서 테드와 태미-린은 이번에는 아기를 입양하기로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매서추세츠주가 테드가 인간이 아니고 물건이라고 공식 선언을 하면서 테드는 아기 입양은커녕 태미-린과의 결혼도 무효가 되고 또 직장에서도 쫓겨난다. 
이에 뿔이 난 테드는 주를 상대로 자신이 인간임을 밝힐 소송을 하기로 하고 잔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잔이 고용한 변호사는 이제 대학을 막 나온 예쁜 새만사 L. 잭슨(애만다 사이프리드)인데 새만사 역시 대마초를 즐겨 피운다. 
그러나 소송에서 테드가 지면서 이번에는 테드와 잔과 새만사가 함께 뉴욕에 있는 전설적인 민권변호사 패트릭(모간 프리맨)을 찾아가 변호를 부탁하나 과거 테드가 잔과 함께 저지른  온갖 방종한 생활 때문에 거절당한다. 
이 와중에 잔이 한 가지 얻은 것은 새만사와의 로맨스.  낙심한 테드와 잔 간에 갈등이 생기면서 테드는 잔과 새만사를 버리고 뉴욕 시내를 방황하다가 마침 열리고 있는 만화 주인공들의 박람회인 카미칸 전시장에 들어선다. 그리고 여기서 나태하고 무의미한 액션이 일어나는데 이 부분은 순전히 상영시간을 꿰어 맞추려는 지연작전에 지나지 않는다. 
R. Universal.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옛날 옛적 서부에 (Once Upon a Time in the West·1968)


기차역에 내린 찰스 브론슨과 3인의 건맨이 마주보고 서 있다.


역대 서부영화 최고의 걸작 중 하나


‘황야의 무법자’를 만든 이탈리아의 명장 세르지오 레오네가 미 서부에 바치는 헌사로 서정적이며 센티멘털하고 또 터프한 대하서사 웨스턴이다. 헨리 폰다가 보기 드물게 검은 모자에 검은 옷과 구두를 신은 악한으로 나와 마지막에 복수심에 불타는 과묵한 찰스 브론슨의 총에 맞아 죽는다. 
이 영화는 첫 장면이 기막히게 멋있다. 허허 벌판에 달랑 서 있는 기차역에 내리는 수수께끼의 사나이의 브론슨과 그를 처치하려고 역에서 기다리는 3인의 악당을 카메라가 가물가물하게 롱샷으로 찍은 다음 갑자기 4인의 얼굴을 극대적으로 클로스업해 보여준다.
대형 시네마스코프 화면을 가득히 점령한 브론슨의 가느다랗게 뜬 두 눈이 마치 산사자의 그 것처럼 매섭다. 이 때 흐르는 엔니오 모리코네가 작곡한 하모니카가 주도하는 비감하고 다소 진혼곡과도 같은 음악이 황량한 서부의 무드를 향수감 짙은 음으로 스크린에 채색한다. 폰다와 브론슨 외에도 클라우디아 카르디나레와 제인슨 로바즈가 공연하는 165분짜리 걸작이다. 이 영화로 브론슨은 미국을 벗어나 유럽에서도 탑스타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서부의 허구의 땅 플랙스톤과 인근의 유일한 수원지가 있는 스윗워터를 무대로 벌어지는 철도 건설과 땅을 둘러싼 갈등 그리고 복수심에 불타는 정체불명의 건맨의 얘기로 폰다는 프랭크라는 이름으로 철도 건설업자 모턴의 고용된 킬러로 나온다. 프랭크가 수원지가 있는 땅을 소유한 브렛을 사살한 직후 뉴올리언스의 전직 창녀로 브렛의 신부인 질(카르디나레)이 마을에 도착해 남편의 땅을 관리한다.
프랭크와 그의 일당 그리고 모턴과 그의 졸개들간에 음모와 배신에 말려들어 살육이 벌어지고 이 난장판에 끼어드는 것이 강도 샤이엔(로바즈). 여기에 무명씨로 하모니카를 부는 브론슨이 나타나는데 이 하모니카 때문에 샤이엔은 무명씨 건맨을 ‘하모니카’라고 명명한다.
그런데 하모니카는 처음에 질의 땅을 차지하려는 프랭크를 돕는데 그가 이 킬러를 돕는 데는 이유가 있다. 프랭크는 옛날에 ‘하모니카’의 동생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자로 ‘하모니카’는 오랜 세월 뒤 프랭크에게 복수하기 위해 나타난 것. 마침내 프랭크와 ‘하모니카’ 간에 필사의 대결이 벌어지는데 이 때 마주 선 둘을 놓고 카메라가 회전촬영을 한다. 그리고 프랭크는 ‘하모니카’에게 “도대체 너는 누구냐”고 물으나 ‘하모니카’는 묵묵부답. 총성이 나고 쓰러진 프랭크의 입에 ‘하모니카’가 하모니카를 물린다. 
역대 서부영화 중 최고 걸작품의 하나로 새 프린트로 28일부터 7월4일까지 뉴베벌리 시네마(7165 베벌리 블러버드·323-938-4038)에서 상영한다.  ★★★★½(5개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주말의 엘리베이터




6월 초 로마를 찾았던 2명의 수녀가 사흘간이나 정전된 엘리베이터에 갇혔다가 구출된 사건이 있었다. 각기 58세와 68세인 아일랜드와 뉴질랜드 출신의 두 수녀는 지난 5일 바티칸 근처의 한 수녀원 기숙사 4층에서 엘리베이터에 타고 아래로 내려가던 중 정전이 발생, 층과 층 사이에 갇히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사고 당시가 금요일 오후여서 기숙사에는 두 수녀 외에 아무도 없었고 휴대폰도 기숙사 방에 두고 와 구조를 청할 길이 없었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사고가 난 주말 로마는 무더운 여름 날씨로 기온과 습도가 높아 두 수녀는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더위 및 어둠의 공포와 싸워야 했다. 두 수녀는 심한 갈증과 탈수증을 이겨내기 위해 자신들의 소변을 마시면서 폐쇄된 공간에서 사투를 벌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이 발견된 것은 사고 후 사흘이 지난 월요일(8일) 오전으로 여성 청소부에 의해서였다. 구출된 두 수녀를 돌본 의사는 “살아 있는 것이 기적”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두 수녀가 믿는 성모 마리아가 그들을 구해줬을 것이다.
나는 이 뉴스를 읽으면서 실제 사고를 똑 닮은 프랑스 영화가 생각이나 혀를 찼다. 24세의 루이 말르가 감독으로 데뷔한 필름느와르 스타일의 흑백 치정 살인극 ‘사형대의 엘리베이터’(Elevator to the Gallows·1957)이다.
콱 씹으면 짙은 초컬릿 맛이 날 것 같은 나태한 모습의 잔느 모로와 모리스 로네(‘태양은 가득히’)가 공연하는 이 영화는 누벨 바그의 기초가 된 것으로 특히 영화에서 이미지와 음악의 관계를 독특하고 완벽하게 새로 정립한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음악은 마침 영화촬영 당시 파리를 방문 중이던 미국의 재즈 트럼피터 마일스 데이비스가 말르의 부탁을 받고 즉흥적으로 작곡했다. 한 재즈 평론가는 마일스의 음악을 듣고 “당신이 들을 수 있는 가장 고독한 트럼핏 소리이니 듣고 울어라”고 찬양했다.
여름철 파리. 흐린 토요일 오후 7시. 공중전화 부스 안의 모로의 감은 두 눈을 화면 가득히 클로스업하던 카메라가 서서히 모로의 헤픈 듯 두툼한 입술을 핥고 내려가면서 모로의 심한 안개처럼 가라앉은 음성이 들린다. “나는 더 이상 못 참겠어요. 주 템므(사랑해요). 해야 해요. 난 당신을 안 떠날 거예요. 쥘리앙.” 이 때 트럼핏 소리가 비가조로 흐르면서 불길하고 로맨틱한 영화의 분위기를 전조한다.
나는 이 영화를 어렸을 때 보면서 단숨에 모로에게 빠져 들었었다. 컬을 한 금발에 하이힐을 신은 그녀가 투피스 상의의 깃을 올린 채 정부 쥘리앙을 찾아 밤새 비 오는 샹젤리제 거리를 마치 유령처럼 헤매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저런 여자를 갖기 위해서 살인마저 저지르는 쥘리앙의 심정을 이해할 것 같았다.
모로는 피곤해 보여 더욱 유혹적이다. 그늘진 얼굴, 미소 잃은 눈동자, 양끝이 아래로 처진 농염한 윗입술 그리고 약간 거슬리는 듯한 나른한 음성. 그녀는 마치 세상을 다 산 여자처럼 나태해 보여 보는 남자를 녹작지근하게 만든다. 권태와 피로가 선정적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여자로 얼굴 안에 연기가 담겨 있는 배우다.
어두운 분위기와 심리적 깊이를 지닌 영화는 모로를 세계적 스타로 만들어준 작품으로 그녀는 후에 말르의 애인이 됐다. 플로랑스(모로)는 공중전화로 쥘리앙에게 군수품 제조회사 사장인 나이 먹은 남편 시몽을 죽이라고 조른다. 시몽의 부하직원으로 알제리와 인도차이나에서 싸운 외인부대 출신인 쥘리앙은 밧줄을 타고 자기 사무실 위층에 있는 사장실에 침입, 권총으로 시몽을 살해한다. 이 때 창밖으로 검은 고양이가 지나간다.
이어 쥘리앙이 회사 앞에 세워둔 신형 컨버터블에 타 시동을 걸고 둘의 단골카페에서 자기를 기다리는 플로랑스에게 가려는 순간 자기 사무실 창밖에 걸린 밧줄이 눈에 띈다. 쥘리앙이 밧줄을 회수하려고 다시 회사 건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에 타고 올라가는 순간 경비원이 건물의 전원을 끄고 퇴근한다. 꼼짝 없이 엘리베이터에 갇힌 쥘리앙(사진.)
이 때부터 쥘리앙이 엘리베이터에서 탈출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긴장감 가득한 장면과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은 쥘리앙을 찾아 텅 빈 파리 시내를 밤새 헤매고 다니는 플로랑스의 허탈한 모습이 교차된다. 트럼핏 소리가 연무처럼 무드를 뿜어내는 가운데 앙리 드카에가 찍은 거의 안 보일 정도로 어두운 파리의 밤이 몽환적이다.  
매우 절제된 영화로 플로랑스의 하이힐 발자국 소리와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 같은 실제 음을 빼고 영화는 거의 침묵 속에 진행된다. 이 침묵을 깨고 플로랑스가 자기 내면의 언어를 독백으로 토해 낸다. “밤새 미친 여자처럼 찾아 다녔어요. 발이 차가워요”라며 자신의 피로와 절망감을 고백한다. 쥘리앙은 로마의 두 수녀처럼 월요일 아침이 돼서야 엘리베이터에서 빠져 나오나 악인은 지옥으로 간다. 주말 엘리베이터 조심하세요!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