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9년 1월 17일 목요일

버팔로 보이즈(Buffalo Boys)


자마르(왼쪽)와 동생 수워가 자신들의 아버지를 살해한 반 트락 대위와 대결하기 위해 마을에 들어섰다.

잔인하고 유혈폭력 난무 복수극
이색적인‘인도네시아판 웨스턴’


인도네시아 웨스턴을 본 적이 있는지요? 한국에서도 이병헌이 나온 웨스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있으니 인도네시아라고 해서 웨스턴 못 만들 줄 아느냐는 듯이 만든 것이 잔인하고 유혈폭력이 난무하는 ‘버팔로 보이즈’다. 제목은 총 찬 건맨이 물소를 타고 달려서 나온 말이다. 
독창적이라기보다는 존 포드의 웨스턴과 스파게티 웨스턴 그리고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와 쿵후 영화 및 ‘황야의 7인’ 등의 부분 부분을 짜깁기한 영화다. 
술집 격투와 마지막 거리에서 벌어지는 선과 악의 총대결 등 웨스턴의 상투적인 것들을 골고루 갖췄는데 음악마저 엔니오 모리코네의 스파게티 웨스턴 음악을 흉내 냈다. 그러나 액션 팬들이 즐길 이색적인 영화다.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를 통치하던 식민지 시대인 1860년. 영화는 먼저 미국에서 시작된다. 두 조카가 어렸을 때 이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온 아라나(티오 파쿠사데워)는 성장한 이들과 함께 고향 자바로 돌아온다. 형 자마르(아리오 바유)는 과묵한 반면 동생 수워(요시 수다르소)는 혈기방장한 편. 
아라나는 이들의 아버지로 영주인 자기 동생이 네덜란드의 잔인무도한 통치자 반 트락 대위(라이누트 부세메이커가 일차원적인 악인 노릇을 한다)에 의해 살해 되자 두 아이를 데리고 미국으로 도망 간 것. 
셋은 귀향길에서 산적에게 습격을 당한 촌장의 아름다운 딸 스리(미카 탐바용)를 구해주면서 스리의 마을로 초대를 받는다. 마을 사람들은 반 트락의 학정에 시달리면서 그의 지시대로 곡물대신 아편을 재배하는데 반 트락에 조금이라도 대들었다가는 즉시 교수형에 처해진다. 
두 형제는 아버지의 복수도 하고 마을 사람들을 반 트락의 학정에서 구원하기 위해 나서는데 이 과정에서 형제간에 의견이 안 맞아 둘이 싸우기까지 한다. 공연히 주먹질을 과시하기 위한 플롯이다.
두 형제가 반 트락이 있는 마을 속으로 깊이 들어가면서 반 트락의 졸개들과 생사결단의 대결이 벌어지는데 이 때 온갖 흉기와 무기와 함께 이소룡과 재키 챈 식의 주먹질과 발길질이 동원된다. 그리고 두 형제는 마침내 반 트락과 그의 심복들과 거리 한 복판에서 최후의 결판을 내는데 이 장면은 ‘O.K. 목장의 결투’나 ‘와일드 번치’ 등 미 웨스턴의 클라이맥스 신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영화는 두 형제와 스리 그리고 활의 명사수인 키오나(페비타 피어스)가 서로 눈이 맞아 로맨스를 꽃 피우면서 평화가 찾아온 마을에서 그 뒤로 내내 행복하게 살았노라하고 끝날 줄 알았는데 두 형제는 이들을 마을에 남겨놓은 채 말을 타고 석양을 향해 달려간다. 이 장면도 미 웨스턴에서 즐겨 써먹는 것이다. R 등급. Samuel Goldwyn.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걸(Girl)


남자의 몸으로 태어난 라라는 발레리나가 되기 위해 피와 땀을 흘린다.

발레리나 꿈꾸는 미소년의 갈등과 처절한 노력


발레리나가 되고 싶은 소년의 성장기이자 변신의 드라마로 성의 문제를 가까이서 정성껏 이해하면서 연민의 감을 가지고 탐구한 뛰어난 벨기에 드라마다. 각본을 쓰고 감독한 루카스 돈트의 데뷔작인데 연출 솜씨가 확신에 차 있고 엄격하면서도 자비롭다.
어떻게 해서라도 자신의 정체를 확인하고 꿈을 좇으려는 소년의 결단력과 피땀 나는 노력을 극도로 치밀하고 민감하며 감정적으로 공감하도록 만든 작품으로 감독의 연출력과 함께 주인공 소년 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가 출중하다. 거의 차갑게 느껴질 정도로 군더더기라곤 찾아 볼 수 없는 영화다. 
15세난 금발의 미소년으로 가녀린 몸을 지닌 라라(빅토르 폴스터)는 발레리나가 되는 것이 꿈이다. 그런데 문제는 라라가 남자의 몸으로 태어났다는 것. 라라는 몸만 남자이지 내면이나 행동은 완전히 여자의 것이다.
택시운전사인 라라의 아버지(아리 보르탈터)는 라라의 발레리나가 되려는 꿈을 충분히 이해하면서 아들의 성전환 수술을 의사와 상의한다. 라라에게는 어린 남동생(올리버 보다트)이 있는데 왜 어머니가 없는지에 대해선 설명이 없다. 
라라는 새 동네로 최근에 이사했는데 가까운 곳에 있는 저명한 발레학교에서 라라가 수련을 받기 위해서다. 그리고 라라는 입학이 잠정적으로 허락된다. 라라는 뒤늦게 발레를 시작해 동급생들보다 훨씬 더 맹렬한 연습을 하는데 이로 인해 발이 피투성이가 된다. 그러나 강철 같은 의지를 지닌 라라는 이런 고통을 끈질기게 참아낸다.
라라의 좌절감은 자기 몸에 대한 불만으로 폭발 직전에 있는데 발레학교에 가기 전이면 늘 가슴을 붕대로 칭칭 감고 성기는 테이프로 감는다. 이로 인해 라라는 마음을 완전히 외부와 차단시키는데 자기를 이해하는 아버지에게마저 거리를 둔다. 
맹렬한 발레 연습 장면이 영화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데 이와 함께 라라의 성전환 담당의사와 심리상담 의사와의 대면이 이야기 된다. 
호르몬 요법 후 수술에 들어갈 예정인데 수술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2년. 라라는 이 시간이 너무 길어 안절부절 하면서 속을 끙끙 앓는데 호르몬 요법마저 속도가 느리게 진행되면서 라라의 좌절감과 불만은 비등하기만 한다. 그리고 참다못해 라라는 극단적인 행동을 취한다. 그러나 영화는 희망의 여운을 보여준다. 
라라 역의 폴스터는 실제로 발레 댄서인데 여자보다 더 여자 같이 예쁘게 생겨 영화 내내 여자인지 남자인지를 구별할 수가 없어 궁금하게 만든다. 폴스터의 냉정하도록 자기를 억제한 연기가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대단히 잘 만든 예술적인 작품으로 제76회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후보작이다. R 등급.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디스트로이어(Destroyer)


안팎이 모두 죽은 LA형사 벨은 복수를 하려고 살인범인 갱두목을 집요하게 쫓는다.

송장 같은 몰골로 복수에 혈안이 된 형사
니콜 키드만의 새로운 변신… 평가는 상반


차갑도록 아름다운 니콜 키드만은 ‘세월’(The Hours)에서 유난히 큰 가짜 코를 하고 연기해 오스카 주연상을 타더니 이번에는 상거지 꼴을 한 산 송장처럼 변신해 골든 글로브 주연상 후보(드라마)에 올랐다. 그러나 그의 연기는 보는 사람에 따라 판단이 다를 수가 있다. 
LA를 무대로 한 느와르 범죄영화인데 키드만이 헝클어진 가발에 텅 비고 움푹 파인 눈 그리고 쉰 목소리에 지친 듯 느려빠진 걸음을 걸으면서 안팎으로 죽은 사람을 닮아 알아보기가 힘들 정도다. 
태양이 작열하는 불길한 기운이 가득한 LA가 인물만큼이나 중요한 구실을 하는 영화로 지나치게 어둡고 절망적이며 암담해 두 시간이 넘는 상영시간 내내 보는 사람의 안팎을 불편하게 만든다. 이와 함께 플롯이 암중모색하듯이 갈팡질팡하면서 얘기를 쓸데없이 복잡하게 엮는 것도 결점이나 더러 강한 압박감을 느끼게 하는 기술적으로는 잘 만든 영화다. 
작취미성인 LA형사 에린 벨(키드만)이 살인시건 현장에 도착한다. 그리고 벨은 사체 근처에 놓인 염색이 된 100달러 지폐를 보자마자 범인이 흉악한 갱두목 사일라스(토비케벨)라는 것을 안다. 이와 함께 벨이 어두운 과거를 회상하면서 얘기는 현재와 과거를 걸쳐 서술된다. 이어 벨은 사일라스를 찾아 나선다. 
16년 전 벨은 동료 형사로 자기 애인이 된 크리스(세바스티안 스탠)와 함께 사일라스가 연루된 사건을 수사하다가 일이 큰 비극으로 끝난다. 벨은 아직도 이 비극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벨은 10대난 딸 쉘비(제이드 페티존)와도 거리가 멀어져 완전히 내면이 빈 사람이 됐다. 
벨은 증거 조작도 마다 않는 부패한 형사로 일종의 앤티히로인 인데 사일라스를 추적하면서 자신의 어두운 과거로 접근하게 된다. 그러나 그가 사일라스를 잡으려고 혈안이 된 것은 결코 정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복수와 양심의 가책 때문이다. 영화는 다시 처음의 사건 현장이 등장하면서 끝이 나는데 벨의 구원을 찾을 길 없는 모습이 안쓰럽다. 
여류 카린 쿠사마 감독의 연출 솜씨는 매우 기능적이나 서술형태가 자연스럽다기보다 작위적이라고 해야 옳겠다. R등급. Annapurna작.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바이스(Vice)


딕 체니는 아내 린의 사랑과 격려를 등에 업고 정계의 막강한 인물이 된다.

비밀 장막 속 권력자 딕 체니 부통령의 흑역사


아버지 부시 대통령 밑에서 국방장관을 그리고 아들 부시 밑에서는 부통령을 지낸 딕 체니의 전기 영화로 미국의 정치사요 역사이자 가족 드라마이며 또 체니를 풍자한 코미디이다. 체니는 비밀의 장막 속에서 미 역사상 가장 막강한 권력을 쥐고 행사했던 부통령으로 행정부의 권력을 비만하게 확대하고 민주주의의 원칙을 훼손했던 사람으로 무소불통의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삶의 동기였다.
영화는 체니의 젊은 시절부터 부시 밑에서 8년간의 부통령직을 수행한 뒤 정계에서 은퇴할 때까지의 그의 가족관계와 정치인으로서의 삶을 폭 넓고 다양성 있게 다루고 있다. 각본을 쓰고 감독한 애담 맥케이는 ‘악의 뻔뻔스러움’을 상징하다시피 하는 체니를 사실적으로 그리면서 아울러 블랙 코미디 식으로 비꼬고 있는데 그에 대해 일말의 동정심마저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는 작품(코미디/뮤지컬), 남우주연(크리스천 베일), 여우조연(에이미 애담스) 및 감독 등 6개 부문에서 제76회 골든 글로브상 후보에 올랐다. 그 중에서도 볼만한 것은 체중을 40파운드나 늘이고 체니 역을 기차게 해낸 베일의 연기다. 
체니는 예일대를 중퇴하고 고향인 와이오밍 주에 내려와 전선 설비공으로 일하면서 술독에 빠져 삶의 방향을 잃고 살았는데 이를 구해준 것이 그의 약혼녀 린(애담스)이다. 린이 체니에게 삶의 태도를 고치지 않으면 그를 떠나겠다고 말하자 체니는 ‘앞으로 절대로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그는 이어 의회의 인턴으로 들어가는데 이 때 그는 제럴드 포드(빌 캠프) 대통령 밑에서 국방장관을 지낸 도널드 럼스펠드(스티브 카렐이 활력 넘치는 연기를 한다)를 사부처럼 모시게 된다. 그리고 체니는 철저한 자아 통제와 간지와 운을 업고 정계에서 일취성장 한다. 이런 체니의 성공에 큰 기여를 하는 사람이 강철 같은 의지와 야심을 지닌 린이다. 린은 레이디 맥베스다.
체니의 정치편력과 함께 그와 린의 서로에 대한 강인한 헌신과 애정 그리고 체니의 두 딸과의 관계가 자세히 묘사된다. 정치적으로는 괴물인 체니가 집에서는 자상한 남편이자 아버지로 그려지는데 그의 딸 중 한 명은 동성애자였다 
체니는 아버지 부시와 아들 부시 밑에서 봉사하면서 중동 전쟁을 촉발시킨 사람으로 아버지 부시 때는 이라크 전쟁을 그리고 아들 부시 밑에서는 9/11 테러에 대한 보복전쟁을 일으킨 장본인 중의 하나다. 미국은 아직도 이 전쟁에서 빠져나오고 있지 못한 상태다. 
가장 우습고 재미있는 장면은 아들 부시(샘 록웰-골든 글로브 남우조연상 후보)가 대통령 출마를 결심하고 부통령 감으로 체니를 골라 텍사스의 자택으로 체니를 초청해 대화하는 모습. 여기서 체니는 대통령 권한의 중요한 부분을 자기가 행사하는 조건으로 부통령 후보직을 수락하는데 이를 뭣 모르고 수용하는 부시가 멍청이처럼 보인다. 
베일이 완전히 체니로 변신해 카리스마가 있으면서도 감지할 수 없을 만큼 민감하고 섬세한 연기를 완벽히 해내고 단단한 모습의 애담스 역시 빼어난 연기를 한다. 모두 잘 아는 헨리 키신저, 폴 월포위츠, 콜린 파웰 및 콘돌리자 라이스 같은 정치인들이 대거 조연으로 나온다. R 등급.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스탠과 올리(Stan & Ollie)


스탠(왼쪽)과 올리가 무대에서 코미디를 공연하고 있다.

코미디 명콤비‘미국판 홀쭉이와 뚱뚱이’
영국 공연서의 가슴 찡한 우정과 갈등


무성영화 시대부터 1950년대 중반까지 활동한 미 코미디계의 위대한 듀오 스탠 로렐과 올리버 하디의 말년 영국 순회공연을 그린 향수 가득한 부드럽고 상냥한 코미디 드라마다. 미국판 홀쭉이와 뚱뚱이라고 불러도 될 이들은 보통 로렐과 하디로 잘 알려져 있는데 영화 제목은 스탠과 올리다.
맹한 표정을 지으면서 머리를 긁적이는 제스처로 유명한 스탠과 비만한 체중이 무겁다는 듯이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잘 알려진 올리는 40년간의 연예계 생활을 통해 모두 100여 편이 넘는 장편 및 단편영화에 나온 미 코미디사에 길이 남는 듀오였다. 
존 S. 베어드 감독은  두 사람의 우정과 갈등과 공연에 깊은 정을 가지고 그것에 헌사를 보내듯이 작품을 연출했는데 이들을 그리워하는 사랑의 송가라고 하겠다. 보고나서도 오래 가슴에 잔영과 여운이 남는 작품이다.
두 사람의 인기와 우정이 시들해진 1953년 일종의 연예생활 재기를 위해 가진 영국 순회공연을 다루었다. 시작은 이보다 10연년 전 스탠(스티브 쿠간-영국 배우로 스탠도 영국태생이다)  과 올리(존 C. 라일리)가 자신들의 영화에 대한 권한을 지키기 위해 그 동안 자신들의 영화를 제작한 할리우드의 명 코미디 제작자 핼 로치를 떠나 20세기 폭스로 옮기면서 시작된다. 그러나 그 후 성과가 뜻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둘 사이에 균열이 생긴다. 
영국순회 공연은 이런 관계를 다시 건강하게 회복하고 시들어진 인기도 만회해 보자는 의도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들을 동반하는 것이 스탠의 아내 아이다(니나 아리안다)와 올리의 아내 루실(셜리 헨더슨). 그러나 극장은 빈 좌석이 많고 우정은 쉽사리 회복되기보다 오히려 길등이 심화돼 둘은 대판 싸움까지 벌인다. 그리고 올리의 약한 심장도 문제다. 
둘의 순회공연에서 보여주는 코미디가 아주 재미있고 우습고 즐거운데 쿠간과 라일리가 어쩌면 그렇게 스탠과 올리의 제스처와 행동과 우스개 소리를 똑 같이 하는지 경탄을 금치 못하겠다. 진짜로 스탠과 올리를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쿠간과 라일리의 완전히 작중 인물로 변신한 연기와 콤비가 일품이다. 
둘의 대본은 스탠이 썼는데 그는 사망한 해인 1965년까지 둘을 위한 대본을 썼다고 한다. 올리는 이미 이보다 8년 전에 사망했다. 스탠과 올리를 아는 나이 먹은 사람들이 그리운 마음으로 볼 가슴 훈훈한 영화다. PG 등급. Sony Pictures Classics.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지난 해 11월 26일 77세로 로마에서 타계한 이탈리아의 명장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는 ‘마지막 황제’(The Last Emperor^1987)로 오스카상을 탔지만 그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악명(?)을 떨치게 한 영화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Last Tango in Paris^1972)다. 그가 31세에 만든 이 영화는 말론 브랜도가 나이 어린 파리지엔 마리아 슈나이더를 뒤로부터 겁탈하면서 버터를 성적 도구로 써 세계적으로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었다. 요즘처럼 #미 투 운동이 활발할 때 이 영화가 개봉됐다면 여성들의 보이콧에 시달렸을 것이 분명하다.     
아내가 자살한 충격에 빠져있는 파리의 미국인 폴(브랜도)과 잔느(슈나이더)는 같은 아파트를 보러 왔다 만나면서 서로 상대의 개인 정보나 이름도 알기를 거부한 채 격렬한 섹스를 치른다. 이 섹스 장면과 함께 폴이 잔느를 겁탈하는 장면은 성적 폭력이나 마찬가지로 애정과 감정이 일체 배제된 동물적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은 절박한 상황에 처하면 본능적 욕망에 매어달리기 마련으로 두 사람 특히 폴의 성행위는 고통과 무료와 권태 그리고 소외감과 고독에 시달리는 이방인의 본능적 행동일 뿐이다. 쫓기는 범죄자가 섹스에서 잠시 위로를 찾는다는 것과도 닮았다.
내가 이 영화의 섹스 신을 보면서 ‘젊은이의 양지’에서 몬고메리 클리프트와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키스신을 보면서 가졌던 아슬아슬한 흥분을 느끼지 못한 것도 폴과 잔느의 성행위가 목마른 사람이 물 마시는 모습을 보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영화는 개봉되면서 찬반이 극도로 갈린 반응을 받았다. 저명한 영화 비평가 폴린 케이엘은 영화를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과도 같은 혁명적인 것이라고 찬양한 반면 일부 비평가들은 “예술로 위장한 포르노”라고 비난했다. 영화는 미국에서는 X등급으로 개봉됐지만 이탈리아에서는 법원으로부터 상영금지 및 필름 몰수 처분을 받았고 베르토루치는 5년간 시민권을 박탈당했다. 당시 군인정치하의 한국에서도 상영금지 처분을 받았다.
영화는 뒤 늦게 또 한 번 논란거리가 됐는데 그 것은 슈나이더가 겁탈 장면은 각본에 없었다면서 그 장면을 찍으면서 치욕감을 느꼈었다고 고백했기 때문이다. 영화를 찍을 때 슈나이더는 19세였다. 그러나 이에 대해 베르톨루치는 “겁탈 장면은 각본에 있었지만 버터의 사용은 즉흥적이었던 것”이라면서 “이를 슈나이더에게 사전에 알리지 않은 것은 그녀로부터 사실감 있는 반응을 얻어내기 위해서였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이어 “그런 사실에 대해 죄의식은 느끼나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덧 붙였다.
지난 2012년 11월 로마영화제에 참석했을 때 만난(사진) 베르톨루치는 인터뷰에서 이 영화에 관해 여러 가지로 언급했다. 그는 “판사가 영화 필름 몰수조치를 취했을 때 매우 놀랐었다”면서 “나는 이 영화를 절대적으로 순수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런 조치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베르톨루치는 당시에도 건강이 안 좋아 휠체어에 몸을 의지했는데 그의 상표와도 같은 갈색 중절모를 쓴 채 미소를 지으면서 인자한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현자처럼 느껴졌었다.
그는 이어 자기는 그 영화를 절망적인 파리의 미국인이 무언가를 절망적으로 찾는 얘기로 생각했다면서 “폴은 너무나도 절망적이어서 사회규범에 매어달리지 않는다면 여자와 새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폴은 잔느에게 둘이 서로 상대의 이름을 알지 않을 것과 함께 둘의 신원을 비롯해 모든 것을 아파트의 창밖으로 던져버리자고 제의한 것이다.
베르톨루치는 브랜도를 극구 찬양했다. 그는 브랜도를 ‘마법의 산’에 비유하면서 “내 카메라 앞에 선 배우들 중에 브랜도처럼 강력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로 인해 나는 그에게 강렬한 애정을 느꼈었다”고 회상했다. 베르톨루치는 이어 영화는 비극으로 끝나지만 브랜도와 자기는 매우 즐겼었다고 말했다. 베르톨루치는 브랜도를 파리에서 만나 매일 영화에 대해 얘기를 했는데 브랜도는 영화에 대해 많이 알고파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었다고 한다. 그는 이어 브랜도와 대화를 하면서 신경이 극도로 곤두서 브랜도로부터 “진정하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런데 폴 역은 당초 베르톨루치의 걸작 ‘준봉자’(The Conformist^1970)에 나온 프랑스배우 장-루이 트랭티냥에게 제의됐지만 그가 이를 거절했다.
베르톨루치는 끝으로 “중국에서 ‘마지막 황제’를 찍을 때 앙드레 말로의 소설 ‘인간의 조건’을 작품의 무대인 샹하이에서 찍겠다고 마음먹었으나 중국 당국의 거부로 이루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베르톨루치의 유작은 로마영화제에서 선을 보인 ‘나와 너’(Me and You)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