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10월 28일 금요일

블랙리스트




나는 박정희 정부시대 한국일보에 입사, 처음에 외신부에서 근무했다. 그때는 신문사에 중앙정보부원이 상주했고 야근에 쓴 기사가 밤새 검열에 걸려 아침신문에서 자취를 감추는 일이 종종 있었다. 
어느 해 온두라스에서 쿠데타가 났는데 당시 외신부장으로 후에 국회의원을 한 고 조순환씨가 내게 이에 대해 해설을 쓰라고 지시했다. 난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권을 빗대어 절대권력과 부패는 일란성 쌍둥이라고 해설의 끝을 맺었다. 
이튿날 조부장이 날 데리고 신문사 옆의 다방에 데리고 가 커피를 사주면서 심각한 표정으로 “박흥진씨 당신도 정보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를지 모른다”고 말했다. 내가 블랙리스트에 올랐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그때 신문기자들은 다 블랙리스트 감이었다고 해도 된다.
그런데 최근 박정희의 딸 박근혜씨가 대통령으로 있는 대한민국에 무려 9,473명의 문화예술계에 대한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문화예술계의 분노가 뜨겁게 끓고 있다고 한다. 나는 이 소식을 듣고 ‘아니 지금이 어느 때인데’라는 한탄과 함께 ‘역사는 반복한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블랙리스트는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들에게 공연장 대관이나 각종 지원을 배제하기 위한 것. 
정부의 문화예술계에 대한 통제는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부쩍 강화됐다는 것이다. 그해 부산영화제 측에서 영화제에 지원금을 대는 부산 시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참사를 다룬 기록영화 ‘다이빙벨’(사진)을 상영, 영화제가 전방위 감사를 받고 그 결과 이용관 집행위원장이 해촉되고 검찰의 수사를 받는 등 문화예술에 대한  검열이 노골화됐다고. 그래서 올 부산영화제는 반쪽짜리가 되다시피 했다.
그런데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문화예술위 회의록에 의하면 예술인 지원여부를 논하는 자리에서 한 심사위원이 “그 분도 청와대에서 배제한다는 얘기로 해서 심사에서 빠졌다”고 말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를 놓고 문화예술계는 블랙리스트 작성이 청와대의 뜻임에 분명하다고 비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라기보다 왕국이라 해야 할 만큼 모든 권력이 청와대에 집중돼 있다. 가장 자유로워야 할 문화예술계마저 이렇게 정부의 검열과 통제를 받아야 하니 다른 분야는 말할 필요도 없겠다.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을 출품하는 영화진흥위가 출품작을 선정하는 데도 늘 정치적 입김이 작용한다고 최근 LA를 방문한 한국의 한 영화인이 내게 말했다. 
블랙리스트는 박정권 시대 툭하면 긴급조치를 발동하면서 언론과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목 조르는 수단으로 사용됐다. 그 대표적 예가 대중가요에 대한 금지곡 판정. 통기타 가수 김민기의 ‘아침이슬’은 가사 중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의 붉은 태양이 공산주의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금지 당했는데 김민기 외에도 송창식의 ‘고래사냥’과 함께 여러 통기타 가수들의 노래가 반사회적이라는 이유로 금지됐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는 일본풍이라는 이유로 금지됐는데 박정희가 술 마시고 거나하게 취하면 일본 가요를 즐겨 불렀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야말로 이율배반적이다. 또 많은 외국 팝송들도 검열에 걸려 금지곡 딱지를 맞았는데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자니 캐시의 ‘링 오브 파이어’도 검열의 제물이 됐다. 당국의 검열지침은 엿장수 마음대로였다.
영화들도 혹독한 가위질을 당한 뒤 상영이 허락됐는데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은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비롯해 무기력한 청춘묘사라는 이유로 원본의 절반이 잘려나간 채 개봉됐다. 실제로도 파출소 순경이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대생들을 잡아다 자로 스커트 길이를 재고 장발족도 끌어다가 직접 가위로 공짜 이발을 해줬었다. 
블랙리스트는 미국에서도 있었다. 가장 악명 높은 것이 2차 대전 후 미국을 휩쓴 맥카시즘. 공산당 때려잡기로 미 하원의 비미국적 활동조사위의 집중공격을 받은 것이 진보파들의 아성인 할리웃이었다. 이 마녀사냥으로 좌파성향이 있는 감독, 각본가 및 배우들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할리웃에서 퇴출당했다. 조사위에 출두, 묵비권을 행사한 죄로 옥살이를 한 ‘할리웃 텐’이 그 대표적 경우다. 
부시 정권 때도 이라크전에 반대하는 가수와 배우들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설이 있었다. 블랙리스트는 이렇게 정적 분쇄용으로 쓰이면서 많은 창조적 사람들을 파괴해 오고 있다. 한국 문화예술계는 지금 정부의 통제와 검열로 인해 문화예술인들이 자기검열을 해 창작의 자유가 심하게 위축될 것을 염려하고 있다. 블랙리스트야 말로 시대착오적이요 퇴행적인 불상사다. 박근혜씨는 아버지로부터 배웠는가.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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