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7년 6월 20일 화요일

슈테판 즈바이크: 유럽이여 안녕(Stefan Zweig:Farewell to Europe)


슈테판 즈바이크가 아내와 함께 차창을 통해 불타는 사탕수수밭을 바라보고 있다.

지적이고 아름답게 그린 유명작가의 브라질 망명생활


1920년대 토마스 만과 함께 독일어 작가로서 많은 독자를 확보했던 유대계 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즈바이크의 브라질에서의 망명생활을 시각적으로 지적으로 그리고 감정적으로 깊고 아름답게 그린 전기영화다.
다작인 그의 소설 중 대중에게 잘 알려진 것이 ‘모르는 여인의 편지’. 옆 아파트에 이사 온 멋쟁이 피아니스트를 소녀 시절부터 성장해서 까지 사랑한 여인의 얘기로 이 글은 막스 오펄스가 감독한 루이 주르단과 조운 폰테인 주연의 아름답고 비극적인 영화로 만들어졌다.
작가의 몇 개의 특별한 순간들을 중심으로 서술되는데 1930년대 중반에서 1942년 그가 두 번째 부인 로테(애네 슈바르츠)와 함께 브라질의 페트로폴리스에서 자살할 때까지의 삶을 5개의 에피소드와 에필로그로 구성했다.
심리적으로 통찰력 있고 감정적으로 강렬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감독(공동 각본)은 배우이기도 한 여류 마리아 슈라더로 독어 대사에 영어자막.
작가의 타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작가의 성격과 끊임없는 망향을 절실하고 품위있게 묘사하면서 육신은 안전하나 자기 언어의 고향인 조국을 떠나온 작가의 방황하는 마음을 절실히 보여주고 있다.
처음에 즈바이크(요젭 하더)를 환영하는 브라질 대통령궁에서의 만찬장면으로 시작된다. 즈바이크는 나치를 피해 1934년 런던으로 망명했다가 브라질에 정착하는데 영화는 그가 자기를 찬양하는 대도시와 시골마을의 독자들을 찾아 끊임없이 여행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뿌리 없는 망명생활의 모습이다.
이어 1936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열린 국제작가회의. 여기서 즈바이크는 나치정권을 비판하라는 요청을 거절한다. 이유는 변화를 가져올 수 없는 비판은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즈바이크는 이어 아내와 함께 바히아주로 여행을 하는데 차창을 통해 타오르는 사탕수수밭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장면은 불타는 자신의 조국을 바라보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엄격한 영화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시골마을의 엉성한 시장과 그의 직원들이 즈바이크의 방문에 채 때를 못 맞춰 준비하느라 법석을 떠는 장면. 우수와 경쾌함이 병행된 장면으로 넌센스 코미디 같다.
그리고 즈바이크는 1941년 뉴욕에 사는 전처 프리데리케(바바라 주코바)를 방문한다. 여기서 그와 프리데리케는 조국에서 구원을 요청하는 친구들과 친지에 대한 문제를 심각히 논의한다. 에필로그에서는 즈바이크 부부의 시신이 침실에서 발견된다. 배우들의 연기가 위엄이 있고 촬영도 훌륭하다. 일부지역.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황금 투구(Caque D‘or·1952)


저주 받은 사랑의 두 주인공 마리(왼쪽)와 조르지.

질투에 무참히 파괴되는 비극적 사랑
프랑스 명장 자크 베케의 흑백 걸작


프랑스의 명장 자크 베케의 비극적인 흑백 로맨스 걸작이다. 가슴을 아프게 만드는 어른들을 위한 숭고한 동화이자 20세기 문턱의 파리의 지하세계의 후진 인간들의 삶과 사랑을 사실적이요 아름답게 그린 탁월한 작품이다. 
가난하고 어두운 과거를 지닌 두 남녀의 사랑과 정열이 타인의 욕정과 질투에 의해 무참히 파괴되는 내용을 시적으로 정감 짙게 그렸다. 특히 제목을 뜻하는 투구모양의 헤어스타일을 한 금발의 명우 시몬 시뇨레의 모습과 연기가 황홀하다.
1900년께. 파리교외 벨빌의 갱두목 펠릭스의 졸개 롤랑의 애인 마리(시뇨레)는 패거리들과 함께 교외로 놀러 갔다가 만난 목수 조르지(세르제 레지아니)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이 때문에 롤랑과 조르지 사이에 주먹다짐이 일어난다. 그런데 펠릭스도 마리를 탐낸다. 
조르지가 갱의 소굴로 마리를 만나러 갔다가 롤랑과 칼부림을 하게 되고 이어 롤랑이 조르지의 칼에 찔려 죽는다. 조르지와 마리는 시골로 사랑의 줄행랑을 놓고 둘은 짧지만 로맨틱한 목가적인 날들을 보낸다. 질투와 복수심에 불타는 펠릭스는 간계를 꾸며 조르지의 친구로 자기 졸개인 레이몽에게 롤랑의 살해범 누명을 뒤집어씌운다. 이를 안 조르지는 자수한다.
한편 마리는 조르지를 구해내려고 펠릭스에게 자기 몸까지 주나 펠릭스는 마리를 배신한다. 이 같은 사실을 안 조르지는 호송 도중 탈출해 길에서 만난 조르지를 권총으로 사살한다. 마지막 장면은 마리가 단두대에서 처형되는 조르지를 목격하는 것으로 끝난다. 
마리가 단두대가 놓인 교도소 마당이 내려다보이는 여관에서 애인의 마지막을 바라보는 모습이 가슴을 울린다. 대사가 별로 없는 단순하고 미적인 영화로 촬영이 감각적이다. 
시뇨레(배우이자 가수인 이브 몽탕의 아내였다)가 가장 아끼는 영화로 예술 혼이 가득하다.
이 영화와 함께 장-폴 사르트르의 희곡이 원작으로 전염병이 창궐하는 멕시코 깡촌에서 만난 상처 입은 영혼을 지닌 두 프랑스 남녀(제라르 필립과 미셸 모르강)의 사랑과 처절한 운명을 그린 ‘오만한 남자와 미녀’(The Proud and the Beautiful·1953년·이브 알레그레 감독)가 19일(오후 7시30분) 에어로(Aero)극장(1328 Montana Ave. Santa Monica)에서 동시 상영된다.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내가 만난 폴란스키




국제적 도망자인 명장 로만 폴란스키(83)의 오디세이는 언제나 끝날 것인가. 폴란스키는 지난 1977년 잭 니콜슨의 집에서 13세난 모델 지망생 새만사 가이머를 강제로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돼 최종 형을 선고 받기 직전 파리로 달아난 뒤 미 사법당국으로부터 지명수배가 내려 지금까지 ‘페르소나 논 그라타’ 취급을 받으며 살고 있다.
그런데 지난 9일 가이머(54)가 LA 형사법정에 출두, 판사에게 폴란스키에 대한 법적 소송절차를 중단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또 다시 폴란스키가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다. 가이머는 “나는 이미 과거의 불상사를 극복한지 오래 된다”면서 “폴란스키에 대한 소송절차를 철회함으로써 나와 내 가족을 지난 40년간 따라다닌 미디어로부터 해방시켜 주고 아울러 폴란스키도 여행의 자유를 가지게 해 달라”고 청원했다.
폴란스키는 당시 재판 끝에 90일간의 교도소 정신병동 수감 형을 선고 받은 뒤 42일을 살고 출소했다. 폴란스키는 이로써 형을 완료했다고 믿었으나 담당판사가 당초 약속을 어기고 폴란스키에게 남은 48일을 교도소에서 마저 살고 그 뒤에 자진출국 하든지 아니면 더 긴 형을 내리겠다고 하는 바람에 달아난 것이다. 그 후 폴란스키는 지금까지 미국과 범인 인도협정을 맺은 나라에는 가지 않고 있다.
심리묘사에 뛰어난 폴란스키의 영화들은 공포와 집념 그리고 인간 마음의 탈선 특히 성적 일탈을 자주 그리고 있다. 그의 데뷔작 ‘물속의 칼’과 카트린 드뇌브 주연의 충격적인 심리극 ‘리펄션’ 그리고 미아 패로가 나온 ‘로즈메리의 아기’ 및 폴란스키가 주연도 한 ‘테넌트’ 등이 다 그렇다.
폴란스키가 할리웃에서 만든 영화로 가장 유명한 것이 잭 니콜슨과 페이 더나웨이가 공연한 ‘차이나타운’이다. 그는 지난 2003년 자기 소년시절의 참담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피아니스트’로 오스카 감독상을 탔다. 당시 흥분에 들뜬 폴란스키가 비디오영상으로 오스카 회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폴란스키를 지난 2011년 10월 파리에서 만났었다(사진) 그가 만든 연극이 원작인 4인 드라마 ‘카니지’ 홍보의 일환이었다. 작달막한 키의 폴란스키는 당시 78세라는 나이답지 않게 젊어 보이고 에너지가 가득했다. 장난기 짙은 약간 쥐 상의 아이 같은 얼굴에 총기가 번득이는 눈을 한 그는 쾌활하고 유머와 위트가 있었다. 매우 솔직해 모든 것을 그대로 털어놓았다.
그는 할리웃 귀환 의도에 대해 “요즘은 할리웃이 아니더라도 어디서나 영화를 만들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할리웃의 친구들과 단골 식당이 그립다”고 고백했다. 그는 자신이 운명론자일지도 모른다면서 “내가 할리웃에 계속해 있었다면 내 생애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폴란스키는 도망자로서의 자기신세를 자조하면서 “여러분들이 ‘카니지’로 내게 골든 글로브상을 줘도 난 할리웃에 가지 못하니 일찌감치 다른 사람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능청을 떨었다.    
그는 자신의 젊음의 이유를 일단 유전자 탓으로 돌린 뒤 “스포츠하고 좋은 음식 먹고 시가를 빼고 금연하기 때문”이라고 그 비결을 고백했다. 폴란스키는 이어 반세기가 넘도록 영화를 만드는 동기의 원동력을 “새로운 것을 하고 싶은 도전정신”이라며 “그러나 작품의 주제가 날 움직여야한다”고 덧 붙였다. 폴란스키의 아내는 배우인 에마뉘엘 세녜(50)로 폴란스키는 아내와 해리슨 포드를 사용해 서스펜스 스릴러 ‘프랜틱’을 만들었다.
유대인인 폴란스키는 파리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부모와 함께 아버지의 고향인 폴랜드로 이주했다. 2차대전이 나면서 그의 부모는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에 갇혀 어머니는 개스 처형됐다. 그 후 폴란스키는 크라카우의 유대인게토를 탈출, 시골을 전전하며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기면서 선한 타인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남았다.
폴란스키의 많은 영화들이 보는 사람 심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데는 그의 이런 어린 시절의 악몽과도 같은 경험이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는 또 할리웃에서 활동할 당시인 지난 1969년 임신한 아내로 배우인 샤론 테이트(26)가 현재도 수감 중인 맨슨가족에 의해 살해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미국의 법이 이제 그만 관용을 베풀어 폴란스키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할리웃에 돌아와 탁월한 재주와 실력을 발휘해 만든 영화를 보고 싶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