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9년 8월 8일 목요일

‘루스’(Luce)


피터(왼쪽부터)와 루스 그리고 에이미가 교장 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있다.

비방 관련 교사와 모범생 ‘누구 말이 진실일까’


‘히 세드, 쉬 세드’의 틀을 갖춘 가족과 인종문제, 계급과 진실 그리고 지나친 기대와 고정관념에 관한 스릴러 스타일의 드라마다. 시종일관 과연 누구의 말이 진실인가를 놓고 궁금해 하게 만든 어둡고 터프하며 긴장감 감도는 튼튼한 작품이다. 
영화의 스릴과 긴장감은 교사로부터 비방을 받는 모범적인 고등학생과 교사간의 비방의 내용을 둘러싼 진실여부 공방에서 나오는데 문제는 누가 진실을 말하는지를 별로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점이다. 따라서 갈수록 긴장감과 스릴이 녹아내리게 마련이다. 
백인일색인 버지니아주 중상층이 사는 동네의 고등학교 3학년생인 루스(켈빈 해리슨 주니어)는 공부와 운동에서 모두 뛰어난 모범생. 루스는 일곱 살 때 백인 어머니 에이미(나오미 와츠)와 아버지 피터(팀 로스)에 의해 전쟁으로 찢어진 에리테리아에서 소년 군인으로 있을 때 입양된 아이. 그 후 심리치료와 재활을 거쳐 이제 흑인의 모델과도 같은 학생이 된 것. 친구가 그를 ‘새 오바마’라고 부른다. 루스는 자신에 대한 지나친 기대에 지칠대로 지쳐 숨이 막힐 지경이나 이를 상냥한 미소로 감춘다. 
어느 날 루스의 흑인 역사교사 해리엣(옥타비아 스펜서)이 의사인 에이미를 호출한다. 해리엣은 에이미에게 루스가 쓴 글을 보여준다. 역사적 인물에 관한 글을 쓰면서 루스가 고른 사람은 폭력을 써 억압적인 체제를 뒤집어 놓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혁명적 심리학자 프란츠 패논. 해리엣은 이와 함께 루스의 락커에서 찾았다는 불법 폭죽도 건넨다. 해리엣과 루스는 글을 놓고 이미 심한 설전을 벌였다. 에이미는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면서도 루스에겐 모른 체 한다.
그러나 얼마 못가 에이미와 피터가 루스에게 글과 폭죽에 관해 묻자 루스는 글은 글일 뿐이며 폭죽은 자기와 함께 락커를 쓰는 급우의 것이라고 말한다. 이어 루스는 해리엣이 흑인 학생들에 대해 가혹하게 모범생이 될 것을 강조하는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에이미와 피터와 루스 그리고 교장과 해리엣이 대면하는 자리에서도 루스는 끝까지 해리엣이 거짓말을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에이미는 진실여부를 무시하고 루스를 옹호한다. 
과연 누가 진실을 말하는가. 혼자 사는 해리엣에게는 요양소에 들어간 정신질환자 여동생이 있어 시달리고 있는데 과연 해리엣은 이런 개인적 고통을 제자들을 괴롭힘으로써 해소하려고 하는 것인가. 아니면 루스는 자기에 대한 지나친 기대로 상자 속에 갇혀 질식할 것 같은 상황에 시달려 자기 주변 사람들을 해칠 악의를 품고 있는 것인가. 
한편 루스와 헤어진 여친 급우 스테파니 김(한국계 캐나다 배우 안드레아 방)이 해리엣을 찾아와 루스가 과거 자기를 성적으로 괴롭혔다고 고발한다. 과연 스테파니의 증언은 사실인가. 이와 함께 해리엣에게 불상사들이 일어나면서 해리엣은 궁지에 몰린다. 
경탄스러운 것은 해리스 주니어의 연기. 카리스마와 함께 섬세하고 미묘하며 또 민감한 연기를 하는데 압도적이다. 그리고 와츠와 스펜서도 매우 훌륭하다. 감독 줄리어스 오나의 연극이 원작. R 등급. Neon.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불타는 텔 아비브’(Tel Aviv on Fire)


아랍인 살람(왼쪽)과 유대인 장교 아시가 드라마의 각본을 놓고 토론을 하고 있다

적대관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드라마 함께 만들며 친해지는데… 풍자 속 공존 제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갈등을 마음 좋게 풍자한 이스라엘 영화로 가볍지만 재미있고 우습다. 그러나 코미디 속에 지속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대립관계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이 화약고와도 같은 지역의 종교적 정치적 및 인종적 상황들을 살펴보게 만든다.
영화나 TV프로 같은 예술적 매체는 서로 갈등 관계를 지닌 사람들마저도 하나로 만들어준다는 얘기를 다소 황당무계하게 다루고 있지만 이런 터무니없는 풍자 안에서 적대적 관계의 해결 실마리를 찾아보자는 의도가 감각된다. 결국 우린 다 감정을 지닌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팔레스타인의 싸구려 소프 오페라 ‘불타는 텔 아비브’는 중동의 6일 전쟁 발발 직전인 1967년을 시간대로 한 작품.
내용은 파리에 살던 매력적인 여자탈라(루브나 아자바이)가 예루살렘에 와서 이스라엘 장군(유셉 ‘조’ 스에이드)으로부터 기밀을 빼내는 스파이 드라마. 아랍인들뿐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도 대단한 인기를 얻고 있다.
애인 마리암(마이사 아브드 엘하디)에게서 따돌림을 받은 인생 실패자인 살람(카이스 나쉬프)은 드라마 제작자인 삼촌 덕분에 세트에서 잡일을 한다. 그는 팔레스타인 사람이지만 이스라엘에 살고 있는데 어느 날 드라마의 배우들이 하는 히브리어 대사가 서툴다고 조언을 하면서 각본 집필에 끼어들게 된다.
그러나 글 실력이 없는 살람이 매일 아침 이스라엘 검문소를 통과하다가 초소 경비 장교 아시(야니브 비톤)를 만나면서 실력(?) 발휘를 하게 된다. 아시는 이 드라마의 열렬한 팬으로 자기를 드라마 각본가로 소개한 살람에게 드라마의 플롯과 대사까지 챙겨주면서 그대로 드라마를 만들라고 지시한다. 이로 인해 적 사이인 둘의 관계가 가까워진다.
물론 아시는 드라마를 이스라엘 사람들이 보기에 좋도록 만들려고 하는데 살람이 이를 세트에서 써먹으면서 얘기가 점점 더 재미있게 된다. 그러나 때론 살람이 아시로부터 받은 내용이 지나치게 이스라엘 측에 편향돼 거절당하기도 한다. 그래서 살람은 아시로부터 일장훈계와 함께 야단을 맞는다. 살람은 캐치-22 상황에 빠져 갈팡질팡한다.
결정적 문제는 피날레를 어떻게 장식하느냐 하는 것. 살람으로선 양측 비위에 다 맞도록 글을 써야 할텐데 그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여하튼 드라마의 대미가 요란하게 장식되는데 억지가 좀 지나친 것 같다. 영화는 아시나 살람이나 다 마음 좋은 사람들로 묘사, 평화적 제스처를 쓰고 있는데 아자바이를 비롯해 나쉬프와 비톤이 어색한듯 하면서도 좋은 연기를 한다.
사메 조아비 감독(각본 겸).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옛날 옛적 할리웃에’(Once Upon a Time in Hollywood)


TV 웨스턴 배우 릭과 그의 오랜 대역 클립(왼쪽)이 지금도 있는 할리웃의 유서 깊은 식당 ‘무소 앤 프랭크’의 바에 앉아 담소하고 있다.

히피시대 할리웃 배경 디카프리오- 피트 연기 대결


이탈리안 감독 세르지오 레오네의 ‘옛날 옛적 서부에’와 ‘옛날 옛적 미국에’를 연상케 하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각본 겸)이 과거 할리웃에 바치는 헌사요 연서이다. 할리웃의 모든 것이 변화하는 히피시대인 1969년을 시간대로 설정, 지나간 할리웃을 그리워하고 있는데 연기와 과거 할리웃 거리를 재연한 프로덕션 디자인과 촬영 그리고 미니스커트와 고고 부츠와 히피 패션 등이 나무랄데 없이 훌륭하다. 
그러나 타란티노는 질서정연한 얘기 서술보다 장면 장면을 짜깁기하는데 더 능한 감독으로 이 영화도 플롯이 전무하다시피 하다. 과거 영화와 TV 장면 등을 흘러간 팝송과 함께 계속해 보여주면서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면서 중구난방 식이다. 타란티노의 아홉 번째 영화로 마치 자신의 할리웃에 대한 백과사전식의 지식을 자랑하고 있는듯 하다. 과거 할리웃 영화와 TV프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겐 어필하겠지만 이를 전연 모르는 젊은 사람들에게도 영화가 어필할지 의문이다. 
어색한 것은 영화에서 TV 웨스턴의 주연배우로 나오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그가 카우보이 모자에 부츠를 신고 권총을 뽑아 속사로 상대를 황천으로 보내는 모습이 마치 아이들 권총 장난하듯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연기는 맹렬하면서도 민감하게 잘 하지만 미스 캐스팅 같다.
릭 달턴(디카프리오)은 TV 웨스턴 시리즈 ‘바운티 로’의 주연배우로 인기가 하락세로 접어든 채 모든 것이 급격히 변화하는 할리우드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한다. 이런 그와 동병상련하는 사람이 릭의 오랜 대역 클립 부스(브래드 피트). 클립은 릭의 운전사 노릇까지 하지만 둘은 절친한 친구로 서로에 대한 충성이 지극하다. 초조하고 불안해하면서 가끔 눈물을 짜는 디카프리오와 느긋하고 약간 으스대는 연기를 하는 피트의 화학작용이 좋긴 하나 아무리 봐도 디카프리오는 웨스턴 건맨으론 안 보인다.
영화는 릭과 클립의 촬영장과 둘의 집을 오락가락하며 보여주는데 트레일러에 사는 클립은 맹견 로트와일러 브랜디를 애지중지한다. 이들의 애기와 병행해 1969년 8월에 맨슨 일가에 의해 살해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배우 아내 샤론 테이트(마고 로비)의 얘기가 서술된다. 샤론은 릭의 바로 이웃에 살고 있다. 그런데 샤론의 얘기는 수박 겉핥기 식으로 로비는 소모품에 불과하다. 샤론이 플레이보이 맨션 파티에 참석한 장면에서 데이미언 루이스가 스티브 맥퀸으로 나와 기차게 잘 하는데 죽은 맥퀸이 환생한 줄 알았다.
릭은 자기 위치에 불안을 느껴 폭음을 하면서 촬영 때 대사마저 잊어버리는데 궁여지책으로 자기 에이전트(알 파치노)가 주선한 스파게티 웨스턴에 나오기 위해 이탈리아로 가 6개월 간 싸구려 스파게티 웨스턴과 제임스 본드 모조품에 나온다. 이 부분은 TV 웨스턴 ‘로하이드’에 나온 뒤 이탈리아에 가서 레오네의 스파게티 웨스턴 ‘황야의 무법자’에 나온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생각나게 한다. 
타란티노의 영화이니 만큼 유혈 낭자한 폭력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끝에 가서 사람과 개가 동원된 차마 눈 뜨고 못 볼 끔찍하고 잔인한 폭력이 자행된다. 불필요한 폭력의 과용이다. 파치노 외에도 커트 러셀을 비롯한 유명 배우들이 많이 카메오로 나오는데 촬영장에서 릭에게 연기와 인생철학을 일장 연설하는 여덟 살짜리 아역배우로 나온 줄리아 버터스가 경탄할 연기를 한다. 이와 함께 클립이 촬영장에서 만난 브루스 리와 한판 겨루는 장면도 웃기는게 브루스로 나오는 한국계 마이크 모도 재치와 맵시를 겸비한 연기를 한다. 타란티노는 ‘인글로리어스 배스터즈’에서도 역사를 자기 마음대로 바꿔 썼는데 여기서도 그런다. 상영시간 159분은 너무 긴데 타란티노가 여러 면에서 과욕을 부린 영화다. R등급. Sony.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스킨’(Skin)


네오-나치 브라이언은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되면서 집단을 탈출하기로 결심한다.

스킨헤드·집단생활·유혈폭력·문신… 네오-나치집단 탈출자의 치열한 삶


2006년 오랜 세월을 몸담아온 네오-나치 집단에서 탈출하기로 결심한 젊은 보수극단주의자 브라이언 와이드너의 삶을 다룬 실화로 보기가 힘들 정도로 치열하고 거칠고 사실적이다. 스킨헤드의 문화와 그들의 집단생활 그리고 이들이 자행하는 유혈폭력과 또 이들의 상징인 문신 등에 관한 강건한 탐구인데 주·조연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나다.
얼굴과 온 몸에 문신을 한 브라이언 와이드너(제이미 벨)는 “미국을 하얗게 지키자”라는 구호를 외치는 네오-나치 단체 ‘노르딕 소셜 클럽’의 골수분자. 그는 오도 갈데없는 자기를 받아준 클럽을 가족으로 여긴다. 이 단체의 리더는 본능대로 행동하는 증오에 가득 찬 프레드(빌 캠프)와 그의 아내 샤린(베라 화미가). 샤린은 신참에게 “날 엄마라 불러”라고 사근사근하니 대하나 무서운 여자다. 
바이런과 동료들은 시위에 나가 자기들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무차별 폭력을 행사하고 회교사원에 방화하고 갈 곳 없는 젊은이들에게 집과 음식과 친구를 마련해 준다며 자기 집단 안으로 끌어들인다.
겉으로는 거치나 마음은 부드러운 바이런은 새로 집단에 들어온 자기처럼 오도 갈데없는 소년을 보고 자기 위치에 회의를 느끼면서 탈출을 마음먹는다. 이보다 더 큰 이유는 그가 세 아이를 키우는 홀어머니 줄리(대니얼맥도널드)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다. 
바이런은 극단주의자들의 과거 청산을 평화적 방법으로 다루는 단체 ‘원 피플 프로젝트’의 지도자 대릴 젠킨스(마이크 콜터)의 도움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탈출을 결심한다. 이와 함께 바이런은 얼굴과 몸의 문신을 제거하는 몇 달간의 작업에 들어가는데 계속해 보여주는 이 장면이 보기에 고통스럽다. 
프레드는 이런 바이런에게 “나는 아직도 너를 소유하고 있어”라며 졸개들을 풀어 바이런과 줄리와 세 아이들을 위협한다. 네오-나치들은 브라이언의 애견을 목매달아 죽이기까지 한다.  바이런과 줄리와 세 아이들은 네오-나치들을 피해 도주하기 시작하는데 여기서부터 생살 깍듯하던 영화가 다소 멜로드라마 식으로 변형된다. 
마음을 어지럽게 만드는 집요한 영화로 아역배우 출신의 벨이 뜨겁고 변화무쌍한 연기를 한다. 그리고 화미가의 연기도 간교하게 유혹적이다. 이스라엘 감독 가이 내티브의 첫 미국영화. R등급.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라이언 킹’ (The Lion King)


아버지 사자 무파사가 갓난 아들 사자 심바에게 앞으로 심바가 통치할 아프리카 초원을 소개시켜주고 있다.

실사영화로 만든‘라이언 킹’ 감동은 그대로


디즈니의 돈과 기술이 있는 대로 힘을 다 낸 잘 만들고 재미있는 온 가족용 영화다. 특히 방학을 맞은 아이들이 박수를 치며 즐겁게 볼 백수의 왕 사자의 액션과 모험 그리고 가족의 끈질긴 유대관계를 다룬 교훈적인 내용마저 간직한 영화다.
이 영화는 1994년 디즈니가 만들어 빅히트를 하고 무대 뮤지컬로까지 만들어져 역시 크게 성공한 동명의 만화영화의 라이브 액션 판이다. 라이브 액션영화라곤 하지만 사자를 비롯한 동물들과 자연경관이 모두 컴퓨터로 만들어져 만화영화나 진배없다고 하겠다.
컴퓨터로 만들어진 동물들과 광대한 아프리카의 초원을 비롯한 자연의 모습이 사실보다 더 사실적이어서 보기에 황홀무아지경이지만 이런 기술적인 완벽성이 오히려 영화의 영혼을 빼앗고 있다. 지나치게 인위적인 점으로 인해 작품에 여유와 감정이 결여된 것이 흠이지만 음성연기와 노래와 음악(한스 짐머)과 촬영(케일렙 데샤넬) 등이 다 훌륭한데 특히 시각효과가 경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감독은 디즈니의 히트작 ‘정글 북’을 만든 존 패브로.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만화영화의 그 것을 그대로 답습했다. 아프리카 초원의 백수의 왕인 사자 무파사(만화영화에서도 음성연기를 한 제임스 얼 존스)가 갓난 아들 심바(JD 맥크래리)를 온 동물들에게 소개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장난꾸러기 심바는 무럭무럭 잘 큰다.
무파사를 시기 질시하는 것이 무파사에 의해 후진 곳으로 추방돼 하이에나들을 졸개로 데리고 사는 무파사의 동생 스카(치웨텔 에지오포-만화영화에선 제레미 아이언스). 어느 날 심바가 집을 멀리 떠나 골짜기로 나들이를 나갔다가 들소 떼의 질주에 깔려죽기 직전에 무파사에 의해 구출되나 무파사는 이를 지켜보던 스카에 의해 살해된다. 그리고 심바는 아버지의 죽음이 자기 탓이라고 여기고 스카의 명령에 따라 고향을 떠난다. 이어 스카는 형의 자리를 차지한다.
집과 멀리 떨어진 곳에 도착한 어린 심바가 만나는 것이 걸맞지 않는 단짝으로 방구를 뀌는 흑멧돼지 품바(세스 로건)와 재잘대는 몽구스 타이먼(빌리 아이크너). 품바와 몽구스가 영화에 유머와 웃음을 듬뿍 쏟아 붓는다. 셋은 떨어질 수 없는 친구가 되고 심바는 여기서 아버지를 똑 닮은 우람찬 사자(도널드 글로버)로 성장한다.
집을 잊고 사는 심바를 찾아온 것이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낸 암사자 날라(비욘세). 심바는 처음에 날라의 집으로 돌아가 스카를 몰아내고 마을에 평화를 되찾아달라는 부탁을 거절하다가 각성, 날라와 같이 고향으로 돌아간다. 심바와 날라 사이에 로맨스도 꽃 피고. 둘을 뒤따르는 품바와 타이먼. 귀향한 심바와 스카 간에 최후의 결전이 벌어지고 누가 이길지는 이미 다 아는 사실.
중요한 역을 맡은 동물들의 음성(때론 노래도 부른다) 연기가 즐거운데 무파사의 심복인 코뿔새 자주(존 올리버)도 재미있다. 만화영화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신선감이 모자란다. 이렇게 기시감이 느껴지는 것이 이 영화의 결점이다. PG 등급.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전쟁과 평화’


우리가 읽지 않고도 읽은 것처럼 생각되는 책 중의 하나가 레오 톨스토이가 쓴 ‘전쟁과 평화’(War and Peace). 특히 이 책은 내용에서 나폴레옹의 1812년 모스크바 침공을 다뤄 차이코프스키가 작곡하고 할리웃 보울에서도 불꽃놀이와 함께 자주 연주되는 ‘1812년’ 서곡과 연결되면서 더 가깝게 느껴진다.
내가 이 책을 원작으로 1956년에 미국과 이탈리아가 공동 제작한 동명의 영화를 본 것은 고등학생 때였다. 헨리 킹이 감독하고 오드리 헵번과 헨리 폰다와 멜 퍼러(당시 헵번의 남편이었다)가 주연한 상영시간 208분짜리 영화에는 비토리오 가스만, 아니타 에크버그, 허버트 롬 및 오스카 호몰카 등 기라성 같은 국제적 배우들이 앙상블 캐스트로 나온다.
이 대하 서사극은 이탈리아의 두 거물급 제작자들인 디노 데 라우렌티스와 칼로 폰티(소피아로렌의 남편)가 만들고 음악과 촬영 역시 그 부문의 최고들인 이탈리아의 니노 로타(‘길’ ‘대부’)와 영국의 잭 카르디프(‘흑수선’ ‘분홍신’)가 맡았으나 겉으로 보기엔 화려하지만 내용이나 인물의 성격 묘사에 있어서는 깊이가 모자란다. 특히 다소 우유부단하고 어리숭하나 선한 마음을 지닌 피에르 베주코프(피에르는 난봉꾼 도박사에서 사회개혁자요 인본주의자로 변신한 톨스토이 자신이 모델이라고 한다)  역의 폰다와 완고하나 영웅적인 안드레이 볼콘스키 역의 퍼러가 역에 어울리지가 않아 보기에 어색했다. 미국에서 평과 흥행이 다 신통치 못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미^소간 냉전이 치열하던 당시 문화교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소련에서 상영되면서 수백만 명이 관람하는 인기를 모았는데 특히 관객들은 정열적이요 자유혼을 지닌 나타샤 로스토바 역의 헵번을 사랑했다고 한다.
이에 뿔이 난 것이 소련정부. 조국의 국보급인 작가의 소설을 적국에서 영화로 만들어 소련시민들의 큰 호응을 받은 것에 자존심을 상한 소련정부가 미국 판 보다 훨씬 더 크고 훌륭한 영화를 만들기로 작심하고 만든 것이 소련의 유서 깊은 모스필름이 1966년-67년에 걸쳐 제작한 상영시간 422분짜리 ‘전쟁과 평화’(사진)다.
얼마 전에 이 영화를 봤다. 보기 전에 전투에 임하는 것처럼 마음준비를 했다. 결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단한 작품이다. 베테런 배우로 이 영화 전에 단 한편의 작품을 연출한 세르게이 본다르추크가 감독했는데 역사적 사실에 집념하면서 준비기간만 톨스토이가 소설을 쓰는데 걸린 시간과 같은 6년이 걸렸다. 배우 선정에 걸린 시간만 1년이며 대사를 구사하는 배우들이 300여명에 이르는 거대한 작품이다. 
소련의 자존심이 걸린 영화이니만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제한 없는 제작비와 전쟁장면을 찍는 공중촬영을 위한 군용기와 헬기들 그리고 15,000여명의 군인들이 엑스트라로 동원됐으며 국내 유명 미술관들의 귀중한 소장품들이 소품으로 사용됐다.         
영화에서 비극적 영웅인 피에르로 나오기도 하는 본다르추크는 포화가 불을 뿜는 장렬한 전투장면과 세인트 피터스버그의 전쟁에 무관심한 귀족들의 화려한 모습과 세 주인공 피에르와 안드레이(비야체슬라프 티코노프)와 나타샤(19세의 발레리나 류드밀라 사벨리에바가 헵번을 쏙 빼 닮았다)의 사랑과 삶을 교차해 보여주면서 드라마를 이끌어간다. 주인공들의 연기와 함께 이들의 인물과 성격묘사도 매우 훌륭하다.
특히 눈부시게 유려하고 화사한 것은 롤러스케이트를 탄 카메라맨들이 카메라를 손에 들고 찍은 나타샤가 소개되는 대무도회장면. 경탄을 금치 못할 유려하고 아름다운 장면이다. 추하고 쓰라린 전쟁의 장면들이 압도적으로 사실적이며 이와 함께 귀족들의 위풍당당한 모습 그리고 세 주인공들의 삼각관계가 교차해 파노라마를 일으키면서 보는 사람에게 드라마의 심리적 감정적 진동을 느끼게 만든다. 복잡한 부 주제들인 정치와 종교와 철학 등을 얘기할 때에는 영화가 다소 처지긴 하지만 아찔하니 거대한 느낌을 겪게 된다.
영화는 *안드레이와 피에르의 소개와 함께 전쟁이 벌어지는 ‘안드레이 볼콘스키’(Andrei Bolkonsky) *나타샤가 소개되는 ‘나타샤 로스토바’(Natasha Rostova)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침공을 다룬 ‘1812년’ 및 * 전쟁에서 부상을 입은 안드레이의 사망과 피에르와 나타샤의 결합을 다룬 ‘피에르 베주코프’(Pierre Bezukhov) 등 모두 4부로 진행된다.
‘전쟁과 평화’는 소련서 개봉되면서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받았다. 그러나 본다르추크의 동료 영화인들이 시기로 감독과 영화를 따돌리면서 영화가 점차 관객들로 부터도 외면을 받고 그 후 수 십 년 간 잊혀 지다 시피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영화는 신화적 자리에 오르게 되고 마침내 2000년대에 들어 모스필름의 지도자들에 의해 복원돼 재생하게 된다. 이 복원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사람 중의 하나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다. 그는 “조국의 타당한 애국적 문화회복을 원 한다”면서 ‘전쟁과 평화’의 복원사업을 밀었다.
영화는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을 받았다. ‘전쟁과 평화’가 크라이티리언(Criterion)에 의해 디지털로 복원돼 최근 DVD와 블루-레이로 나왔다. 한번 볼만한 방대하고 장려한 역사적 걸작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칸피덴셜 칸피덴셜’


“우리 모두 그 주간지 읽어요. 내용이 좋아서가 아니라 우리 이름이 거기에 났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지요.” 왕년의 할리웃의 수퍼스타 말렌 디트릭이 말한 이 격주간지는 1950년대 할리웃스타들의 스캔들 폭로로 악명을 떨친 ‘칸피덴셜’(Confidential)을 일컫는 말이다.
여자들의 야한 사진 잡지로 돈을 번 로버트 해리슨이 1952년 뉴욕에서 창간한 ‘칸피덴셜’은 할리웃 스튜디오들이 로맨틱한 가짜 이미지로 미화한 스타들의 문란한 섹스와 비행과 죄를 적나라하게 폭로해 스타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잡지다.
잡지는 인기절정에 이른 1956년 가판판매부수가 무려 500여만 부를 기록하면서 타임과 라이프 같은 잡지들을 앞서갔었다. ‘칸피덴셜’은 요즘의 가십전문지들인 ‘스타’ ‘인콰이어러’ ‘어스’ 및 TV프로 TMZ의 선구자인 셈이다.
이 잡지의 내막을 파헤친 책 ‘칸피덴셜 칸피덴셜’(사진)을 재미있게 읽었다. 법학교수이자 할리웃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낸 새만사 바바스가 쓴 책은 잡지의 내막을 해부하듯이 심층 분석하면서 아울러 할리웃 황금기 스타들의 비사를 상세히 적어 흥미만점이다.
해리슨은 기사 취재를 위해 할리웃에 해리슨 리서치사 까지 차려놓고 스타들의 스캔들을 수집했다. 해리슨은 후한 대가를 지불하면서 사립탐정, 창녀, 발레, 바텐더, 웨이터, 미용사, 하녀, 영화계 종사자 그리고 경찰과 스타들의 전처와 전남편 등으로부터 스타들의 비행을 수집한 뒤 야단스런 수식어를 가미해 대서특필, 많은 스타들을 벌벌 떨게 하면서 할리웃을 군림했었다. 
이 잡지에 의해 망신과 해를 입은 스타들은 한 두 명이 아니다. 프랭크 시내트라, 에이바 가드너, 라나 터너, 록 허드슨, 탭 헌터, 로버트 미첨, 밴 잔슨, 루실 볼과 남편 데지 아네스, 버트 랭카스터, 마릴린 몬로와 야구선수 남편 조 디매지오, 앨란 래드, 메이 웨스트, 클라크 게이블, 게리 쿠퍼, 말렌 디트릭, 에롤 플린, 킴 노백 및 리베라치 등 외에도 많은 스타들이 곤욕을 치렀다.
일반인들이 우상처럼 여기는 스타들의 뒷사정을 엿보는 것처럼 짜릿한 흥분 감을 겪는 일도 흔치 않아 ‘칸피덴셜’의 인기가 천정부지로 치솟자 해리슨은 런던에 까지 지사를 설립했을 정도다.
당시만 해도 스타들을 자기 회사 직원들처럼 고용했던 스튜디오들에게 ‘칸피덴셜’은 눈엣 가시였으나 이들은 잡지를 모른 척 하면서 오히려 때론 잡지에 자사 스타들의 비리에 대한 정보까지 제공했다. 수퍼 스타들의 비밀 폭로를 막으려고 B급 스타들의 어두운 과거를 흘리는 야비한 짓을 자행했다. ‘칸피덴셜’이 록 허드슨의 동성애사실을 폭로하려고 하자 스튜디오는 이를 잘 나가던 B급 스타 로리 칼훈의 전과기록과 교환, 허드슨을 살려냈다.
‘칸피덴셜’의 기사에 시달리다 못한 할리웃의 6개 스튜디오들은 공동으로 자금까지 모아 잡지의 침몰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상호 이해관계로 인해 실패했다. 두 스타 로버트 미첨과 에롤 플린도 용감히 ‘칸피덴셜’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별무소득으로 끝났다.
마침내 1957년 캘리포니아주 검찰은 스튜디오와 스타 그리고 일부 여론의 압박에 몰려 ‘칸피덴셜’을 허위보도와 명예훼손 등 혐의로 기소를 했다. 검찰 측 증인들은 게리 쿠퍼, 빨강머리 모린 오하라, 동성애자인 탭 헌터 및 라나 터너였는데 결과는 재판무효.
검찰 측은 ‘칸피덴셜’에 당한 스타들을 증인으로 소환하려고 했으나 많은 스타들이 멕시코로 휴가를 간다는 등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이를 회피했다. 법정에 나가봤자 자신들의 아름답지 못한 과거들만 다시 한 번 광고하는 셈 이였기 때문이다.
‘칸피덴셜’은 동성애를 혐오하고 인종차별적이며 또 여성비하를 마다 않았지만 해리슨은 자신의 잡지가 로맨틱한 허위로 치장한 스타들의 실체를 궁금해 하는 팬들의 갈증을 심층보도로 해갈시켜 주는 미디아의 개척자라는 자부심을 느꼈다. 비록 잡지가 옐로 저널리즘이긴 했으나 공인인 스타들의 성적 위선을 비롯한 온갖 비리를 폭로함으로써 스튜디오가 쓴 이들의 ‘신화’를 여지없이 파괴, 나름대로 어느 정도 언론의 사명을 한 셈이다.
그러나 스튜디오들이 공들여 쌓은 스타들의 이미지를 파괴하면서 미디아왕국의 첨병이 된 ‘칸피덴셜’은 1956년 중반 들어 인기 하락의 길로 접어든다. 잡지의 무리한 확장과 보수파들의 집요한 반발 그리고 잡지를 본 받아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난 30여개의 스캔들 전문지 범람에 독자들이 실증을 느꼈기 때문이다. 해리슨은 재판무효 판결 후 1958년 가십전문의 내용을 완전히 바꿔 새 체제로 잡지를 발행했지만 독자들의 외면을 받아 세 차례 발행 후 문을 닫았다
‘칸피덴셜’의 얘기는 1997년 커티스 핸슨이 감독하고 러셀 크로우, 가이 피어스, 케빈 스페이시 및 킴 베이신저(오스카 조연상 수상) 등이 공연한 뛰어난 필름 느와르 ‘L.A. 칸피덴셜’에서  상세히 묘사됐다. 이중성과 비행의 도시 LA와 옐로 저널리즘의 어두운 이면을 아름답고 폭력적으로 가차 없이 파헤친 영화에서 ‘칸피덴셜’은 ‘허쉬-허쉬’로 그리고 해리슨은 대니 드비토가 연기한 시드 허젠스로 대체됐다. 책과 함께 영화를 보면 배로 재미가 있을 것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9년 7월 19일 금요일

‘작별’(Farewell)


한국계 코미디언 아콰피나가 주연을 맡은 빌리(앞줄 가운데)와 할머니(빌리 옆 오른쪽)를 둘러싸고 25년 만에 재회한 가족들이 앉아 있다.

할머니 죽음 앞두고 모인 이민 중국인 가족이야기


미국과 일본으로 이민 온 중국인 가족들이 집안의 기둥이나 다름없는 할머니의 사망을 앞두고 오래간 만에 함께 모여 먹고 마시고 떠들면서 가족 간의 유대와 사랑을 확인하는 달콤하면서도 신맛이 나는 가족 코미디 드라마다. 역시 중국인 가족들의 얘기인 ‘결혼 피로연’과 ‘조이 럭 클럽’ 및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등을 연상케 하는데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에서 코믹한 연기를 뛰어나게 한 한국계 코미디언 아콰피나(본명은 노라 럼으로 중국계 아버지와 한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가 주연을 맡아 앙상블 캐스트의 영화를 이끌어간다.         
아콰피나의 어머니는 딸이 6세 때 사망해 그 후 아콰피나는 친할머니가 키웠는데 영화의 중심 내용이 할머니를 극진히 사랑하는 손녀와 역시 손녀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친할머니와의 관계를 다뤄 아콰피나의 연기가 더 사실적인 것 같다. 감독하고 각본을 쓴 사람은 중국계 룰루 왕으로 그의 경험을 다룬 반 자전적 작품이다. 
중국 사람들이어서 잘들도 먹는데 이렇게 먹고 마시고 왁자지껄하니 떠들어대는 장면이 계속돼 다소 극적 추진력이 미흡하고 단조롭기는 하지만 매우 감정적이요 민감하게 가족관계와 문화와 세대갈등 그리고 전통과 현대화의 불균형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다. 우습고도 감상적인데 한국인들에게는 특별히 어필할 작품이다.          
빌리(아콰피나)는 6세 때 중국 장춘에서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 와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성장한 작가지망생. 빌리의 어머니 지안(다이애나 린)은 생활에 헌신하다보니 감정이 무뎌졌고 애주가인 아버지 하이안(치 마)은 천하태평형. 영화는 빌리가 장춘에 사는 친할머니 나이 나이(자오 슈젠)와 셀폰으로 통화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빌리와 나이 나이는 못 본 지가 오래 됐지만 이렇게 끈질기게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나이 나이가 기침이 심해 여동생 리틀 나이 나이(루 홍)과 함께 병원에 가 CT촬영을 한다. 의사는 리틀 나이 나이에게 언니가 폐암으로 앞으로 3개월 밖에 못 산다고 통보한다. 리틀 나이 나이는 이를 언니에겐 알리지 않고 빌리 네와 일본으로 이민 간 하이안의 형 하이빈(지앙 용보) 가족에게 통보한다. 
그래서 온 가족이 25년 만에 처음으로 모두 한 자리에 모이는데 핑계는 하이빈의 아들 하오 하오(첸 한)와 그가 만난 지 3개월 밖에 안된 일본인 애인 아이코(아오이 미주하라)의 벼락치기 결혼. 엉겁결에 급조된 결혼식을 올리게 된 한 쌍을 놓고 벌어지는 코미디가 재미있다. 매사에 리더 노릇을 안 하면 몸살이 나는 나이 나이의 진두지휘 하에 성대한 결혼식을 준비하느라 시끌벅적하다. 한편 나이 나이는 할머니에게 사실을 숨기는 것이 못 마땅해 속을 썩이고 항의를 하지만 가족들의 뜻을 따르기로 한다. 
아콰피나가 듬직한 연기를 하면서 영화를 어깨에 짊어지다시피 하는데 그를 둘러싼 앙상블 캐스트도 아주 좋은 연기를 한다. 특히 자오 슈첸과 치 마의 연기가 돋보인다. 촬영도 좋다. PG등급.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미드솜마’(Midsommar)


대니(오른쪽서 두번째)가 크리스천의 기상천와한 행위를 보고 대성통곡하자 마을 여인들이 함께 통곡하고 있다.

공동생활촌 축제 중 벌어지는 한여름의 공포·악몽


제목은 스웨덴어로 한 여름을 뜻하는데 이 영화는 한 여름 작렬하는 태양 아래서 눈을 뜨고 꾸는 악몽이다. 
감독 겸 각본을 쓴 아리 애스터의 재주 자랑이 장난이 지나치다시피하다고 여기질 만큼 변덕을 부리는 공포영화로 과다하게 끔찍한 장면(눈 뜨곤 못 본다)을 사용해 영화의 내용은 물론이요 흥미를 오히려 저해한다.
뭐라고 정의 내리기가 힘든 영화로 북구라파의 민화요 전설 같기도 하고 피범벅 변태적인 동화이기도 한데 영화가 잘 나가다가 어디로 빠진다는 식으로 흥미를 자극하는 얘기를 서술하다가 돌연 너무 터무니가 없어 폭소가 터져 나올 정도로 잔인하고 해괴한 내용을 섞어 넣어 “또 저러네. 별짓 다하네”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스타일과 무드가 얘기를 앞지르고 배우들의 역이나 성격 묘사가 충분히 개발 되진 못 했지만 보면서도 도저히 믿지 못 하겠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만드는 해괴망측하고 이상하고 얄궂은 영화다. 그러나 상영시간 2시간 26분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보기 전에 마음 단단히 간직할 각오들을 하도록 충고한다. 
외지인을 산 제물로 바치는 공동 생활촌의 컬트영화라고 하겠는데 삶의 순환 같은 철학적인 소리도 하고 있지만 그 것은 괜한 소리. 
주인공인 젊은 여자 대니(플로렌스 퓨)의 끔찍한 가족 비극으로 시작된다. 이로 인해 대니는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시달린다. 그에겐 대학원생으로 인류학 논문을 준비 중인 애인 크리스천(잭 레이노)이 있는데 둘의 관계는 파경 직전에 이른 상태. 크리스천은 다소 감정이 둔해 대니의 아픔 달램에 별 도움이 못 된다. 
크리스천에게는 3명의 친구가 있는데 이들은 역시 인류학을 공부하는 진지한 조쉬(윌리엄 잭슨 하퍼)와 스웨덴에서 유학 온 펠레(빌헬름 블롬그렌)와 막돼먹은 마크(윌 풀터). 이들은 펠레의 초청으로 그가 자란 스웨덴의 공동 생활촌으로 여행을 떠난다. 여기에 대니가 합류한다. 그리고 이들의 2주간의 여름 여행은 악몽과 공포와 유혈참극으로 끝난다.
모두 얇은 백의를 입고 머리에 화관을 두른 채 친절한 미소를 짓는 마을 사람들은 외지인들을 반갑게 맞는다. 크리스천 등은 환각상태를 유발하는 약초를 서비스 받으며 여름의 목가적 분위기를 즐기는데 마을은 9일간의 여름 축제를 시작한다. 그리고 축제과정의 하나로 방문객들은 차마 눈 뜨고 못 볼 끔찍한 일을 목격한다. 이들이 그 후에도 마을을 왜 안 떠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 역시 외지인인 펠레 동생의 영국인 친구와 그의 애인은 짐을 꾸려 마을 떠나나 그 후 행방불명이 된다. 
축제가 계속되면서 크리스천 일행은 기상천외한 일들을 목격하는데 이어 동네 처녀의 유혹을 받은 마크가 사라지고 그 다음 희생자는 조쉬. 그러나 대니는 쓰러질 때까지 춤을 춰야하는 댄스(상-상스의 교향시 ‘죽음의 댄스’가 들려오는 것 같다)에서 이겨 ‘메이 데이’ 여왕이 되면서 제물로 바칠 마을 사람들의 생사여탈권을 갖는다. 처음에 크리스천 일행이 마을에 도착했을 때 우리에 갇힌 거대한 누런 곰을 보게 되는데 이 곰의 역할은 영화 끝에 끔찍하면서도 폭소가 터져 나올 만큼 해괴한 용도로 쓰여진다. 마지막 대니의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 영화를 본 필자의 느낌을 대변한다. 촬영과 함께 음악과 음향효과가 아주 좋다. R등급. A24배급.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마르탕 게르의 귀환’(The Return of Martin Guerre)


베르트랑드는 9년 만에 귀환한 남편 마르탕을 반갑게 맞는다.

전쟁 나갔다 9년만에 돌아온 남편이 가짜? 스릴 넘치는 기상천외 프랑스영화


재미있게 지어낸 전설과 같은 얘기인데 실화다. 신분 도용에 관한 이상하고 얄궂은 미스터리 드라마로 흙냄새가 물씬 풍기는 토속적인 실화인데도 내용이 하도 기상천외해 초현실적 분위기마저 느껴진다.
흥미진진한 옛날 애기를 듣는 것 같은데 시간이 갈수록 서스펜스와 스릴마저 갖추면서 결과가 과연 어떻게 될까하고 긴장하게 만든다. 일종의 재판 드라마이기도 한데 이와 함께 16세기 중엽 프랑스의 농촌의 모습과 가족관계, 결혼의 신성 및 교회의 역할 그리고 재산과 돈에 관한 역사도 함께 알아 볼 수 있는 재미있고 유익한 프랑스 작품이다. 
1549년 프랑스 남부 피레네산맥 아래 농촌 마을 아티가. 근면하고 아름다운 아내 베르트랑드(나탈리 바이가 고혹적이다)와 어린 아들을 둔 마르탕은 농사에는 관심이 없고 전쟁에 나가 세상 구경이 하고파 안달이 났다. 그리고 마르탕은 어느 날 아내와 아들과 부모를 버리고 사라진다. 
그로부터 9년 후 마르탕(제라르 드파르디외)이 느닷없이 귀환한다. 동네 사람들은 처음에 많이 달라진 마르탕을 거리를 두고 대하다가 마침내 받아들인다. 그리고 베르트랑드도 마르탕과 포옹을 나눈다. 마르탕은 과거와 달리 근면하게 일하면서 아내와의 사이에 아이까지 낳고 행복하게 산다. 그리고 전쟁에서 겪은 경험을 재미있게 마을 사람들에게 들려주면서 주민들의 큰 환심을 산다. 
그런데 마르탕이 자기 없는 동안 자기 농토를 돌본 삼촌 피에르(모리스 바리에)에게 자기 땅으로 번 돈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면서 친척 간에 반목이 생기고 이 반목은 마을 사람들에게로 까지 번진다. 어느 날 마을에 떠돌이 세 명이 도착해 마르탕을 보더니 그가 마르탕이 아니라 마르탕과 함께 전쟁에 나갔던 아르노라고 마을 사람들에게 밝힌다. 진짜 마르탕은 한 쪽 다리를 잃은 채 플란더스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마르탕은 이를 부인하나 조카에게 앙심을 품은 피에르가 마르탕을 가짜라고 고소하면서 재판이 열린다. 재판에서 마르탕이 자기 결혼과 마을에 관한 질문에 대해 정확히 대답하면서 승소한다. 그러나 피에르가 얼마 후 다시 마르탕을 고소하면서 두 번째로 재판이 열리고 여기서 극적인 일이 일어난다. 
돌아온 마르탕은 진짜인가 아니면 가짜인가. 가짜라면 어떻게 해서 아내가 그 것을 모를 수가 있을까. 대답은 재판에서 나온다. 드파르디외가 차분하게 연기를 잘하고 바이도 조용하나 알찬 연기다. 촬영과 이미지도 마치 한 폭의 농촌화를 보는 것 같다. 1982년 작으로 새 프린트로 재개봉된다. 이 영화는 1993년 리처드 기어와 조디 포스터 주연의 ‘소머스비’로 리메이크됐다.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예스터데이’(Yesterday)


수퍼스타 가수가 꿈인 잭이 동네 후진 술집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비틀즈 없는 시대로 간 가수지망생
환상을 그린 뮤지컬 로맨틱 코미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비틀즈에게 바치는 헌사와도 같다. 비틀즈 노래가 계속해 나오는 뮤지컬 로맨틱 코미디 환상영화로 터무니없는 얘기지만 보고 즐길 만한 영국영화다.
감독은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만든 대니 보일이고 각본은 달짝지근한 로맨스 영화들인 ‘노팅 힐’과 ‘러브, 액추얼리’를 쓴 리처드 커티스.
커티스의 이런 영화들처럼 내용이 사카린 맛이 나고 관객에게 아첨하듯이 알록달록 겉치장을 한데다가 감상적이긴 하나 비틀즈의 노래를 들으면서 향수감에 젖어볼 만한 영화다.
런던 서부에 살면서 수퍼마켓 창고에서 일하는 인도계 영국청년 잭 말릭(히메쉬 파텔)은 유명 가수 겸 작곡가가 되는 것이 꿈. 그래서 저녁과 주말이면 동네 후진 술집에 나가 노래를 부른다. 잭을 적극 후원하는 사람이 학교 때부터 친구이자 팬으로 그의 매니저 노릇을 하는 엘리(릴리 제임스). 그런데 엘리는 잭을 속으로 사랑한다.
어느 날 전 세계가 잠깐 정전이 되는 순간 잭은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한다. 잭이 깨어나 보니 과거 시간과 공간에 변동이 생겨 아무도 비틀즈가 누구인지를 모른다. 잭이 엘리와 친구들 앞에서 비틀즈의 ‘예스터데이’를 부르니까 친구들이 “너 어떻게 해서 이런 멋진 노래를 작곡했느냐”며 경탄한다. 잭이 구글을 두들겨 보니 ‘비틀즈’는 딱정벌레라고 나온다. 그룹 비틀즈의 스펠링은 Beatles이고 딱정벌레의 그 것은 Beetles이다.
잭은 이제야 말로 출세와 부의 문이 열렸다고 생각하고 비틀즈의 노래들을 자기 것으로 소개하면서 노래 부른다. 잭이 비틀즈의 많은 히트곡들의 가사를 다 못 외워 쩔쩔매는 모습이 재미있다. 
잭의 노래를 듣고 접근한 사람이 유명 가수 에드 쉬란(실제 영국의 가수인 쉬란이 캐미오로 나온다). 쉬란은 잭을 자기 순회공연의 백업가수로 기용하는데 자기가 잭보다 재능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잭을 시샘한다.
잭의 노래 실력이 점차 널리 알려지면서 잭을 찾아온 사람이 할리웃의 비도덕적인 에이전트 한나(케이트 맥키논). 그리고 둘은 음악사상 최고의 앨범을 발매할 준비에 들어간다. 잭의 인기가 전 세계적으로 퍼지면서 잭은 명성과 부에 눈이 멀어 자기를 믿고 후원하던 엘리에 대해 소홀히 하면서 착한 엘리가 가슴앓이를 한다.
‘예스터데이’를 비롯해 ‘헤이 주드’(쉬란은 ‘주드’를 멋쟁이의 속어인 ‘듀드’로 바꾸자고 제안한다), ‘백 인더 U.S.S.R.’, ‘아이 쏘 허 스탠딩 데어’ 및 ‘아이 와나 홀드 유어 핸드’ 등 비틀즈의 노래들이 줄줄이 나온다. 파텔이 명창은 못되지만 직접 노래를 부르는데 연기도 귀염성 있게 한다. 그러나 제임스는 다소 충분히 사용되지 못한 감이 있다. PG-13 등급. Unversal.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9년 7월 18일 목요일

‘토이 스토리 4’(Toy Story 4)


우디(중간)와 보 피프(우디 왼쪽)와 로켓맨 버즈 라이트이어 등은 새 장난감 포키(맨 앞)와 함께 액션과 모험을 즐긴다.

새 장난감 캐릭터 등장… 더 신나는 액션과 모험


만화영화를 만드는 픽사(디즈니 소유)가 ‘토이 스토리’ 제1편을 만든 것이 24년 전인 1995년이고 제3편이 나온 것이 근 10년 전으로 이 시리즈는 제3편을 끝으로 할 얘기는 다 했었다. 그런데도 제4편을 만든 것인데 새 내용과 함께 새 인물(장난감)들을 등장시켜 야단스럽고 신나고 활기 왕성한 온 가족이 즐길 작품을 내놓았다.
영화에서 카우보이이자 셰리프인 우디 역을 음성 연기한 탐 행크스와의 인터뷰에서 “제5편에도 돌아올 것이냐”고 물었더니 “물론이지”라고 대답을 한 것을 보면 제5편을 만들 것임에 분명하다.
속도 빠르고 아이들이 장난치듯이 시끄럽고 요란하며 쫓고 쫓기는 액션과 모험이 가득하고 우습고 위트 있고 상상의 날개를 활짝 편 영화로 교훈적이기까지 하다. 두 번째의 기회와 세상에는 쓸모없는 것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데 아이들에겐 좋은 가르침이다.
우디와 로켓맨 버즈 라이트이어(팀 알렌 음성) 등 구면인 주인공들 외에 새 장난감들이 많이 소개되는데 그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이 캐나다의 ‘이블 크니블’인 모터사이클 스턴트맨으로 나르시스트인 듀크 카붐. 키아누 리브스가 음성 연기를 아주 우습게 잘 한다.
우디와 버즈 및 둘의 동료들의 첫 주인인 앤디는 이제 대학에 가고 이들의 새 주인은 유치원에 막 들어갈 바니(매들렌 맥그로 음성). 그런데 바니는 유치원 들어갈 생각에 매달려 우디 등에 영 관심이 없다. 이로 인해 우디와 그의 동료들은 맥이 빠졌지만 낙천적인 우디는 자신들의 때가 오리라고 확신한다.
그런데 바니가 유달리 애착을 가지는 인형이 쓰레기통에서 꺼낸 플래스틱 포크로 만든 포키(토니 헤일 음성). 이 포키가 실종되면서 우디 등이 이를 찾느라고 난리법석이 일어난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엔 얘기의 중요한 역인 포키가 별 흥미로운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데 여하튼 영화는 포키로 인해 액션과 속도를 갖추게 된다. 포키는 자기가 장난감인줄도 모르고 “나는 쓰레기야”라며 자꾸만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데 이에 우디는 “너는 이제 쓰레기가 아니고 장난감이야”라며 교육을 시킨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다는 말씀.
바니가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에 바니의 부모가 바니와 우디와 그의 동료들을 차에 싣고 마침 카니발이 열리고 있는 옛 서부마을 그랜드 베이신으로 놀러간다. 가다가 실종된 포키를 찾으러 차를 떠난 우디 등은 중고품 장난감들이 있는 가게에 들러 옛 친구인 양치기소녀 보 피프(애니 파츠 음성)와 재회한다. 이와 함께 새 인형들로 오래 방치된 말하는 인형 개비 개비(크리스티나 헨드릭스 음성)와 살인 인형 처키를 연상시키는 4개의 기분 나쁘게 생긴 신사복으로 정장한 인형들과도 만난다.
우디와 보 피프 간의 재회의 기쁨과 함께 둘이 티격태격하며 주고받는 대사가 즐거운데 둘 사이에서 로맨스 기운마저 느껴진다. 영화는 카니발이 열리고 있는 그랜드 베이신에서 본격적으로 추진력을 갖추면서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어지러울 정도로 고속으로 돌아간다. 음성연기들이 일품이다. 신예 조쉬 쿨리 감독. G등급.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레토’(Leto)


아름다운 나타샤를 둘러싸고 두 록가수인  나타샤의 남편 마이크(왼쪽)와 빅토르가 삼각관계를 이룬다.

구 소련 젊은이의 해방구였던 록뮤직, 빅토르 최의 음악·사랑 흑백필름에 담아


1980년대 소련 록뮤직의 개척자로 러시아 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밴드 ‘키노’의 창설자 중 하나인 한국계 록가수이자 작곡가요 배우였던 빅토르 최에 관한 기록영화 식의 흑백 드라마로 빅토르로는 독일 태생의 한국인 배우 유태오가 나온다. 빅토르와 유태오가 매우 닮았다. 
빅토르는 공산체제 말기인 1980년대 레닌그라드를 무대로 서방세계의 록뮤직을 들여와 소련 젊은이들의 열화와 같은 인기를 받았을 뿐 아니라 자신도 서방세계의 록뮤직에 러시아적 분위기를 가미한 록뮤직을 작곡, 노래해 러시아 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이었다. 1990년 교통사고로 28세로 요절했다. 
영화는 빅토르와 처음에 그를 자기 그룹 안에 받아들인 록그룹 주파크의 리드싱어 마이크 나우멘코(로만 빌리크)의 우정과 마이크의 아름다운 아내 나타샤(이리나 스타쉔바움이 광채가 난다)를 둘러싼 3각 사랑을 실화와 허구를 섞어 얘기한다. 제목은 러시아어로 여름을 뜻한다.
플롯은 없다시피 하다. 공산체제의 억압된 분위기 속에서 록뮤직으로 자유와 해방을 찾으려는 젊은이들의 반항과 음주파티 그리고 이들의 우정과 노래와 공연을 다소 에피소드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가끔 환상적인 내용을 만화로 묘사했다.
때가 때이니만큼 빅토르의 밴드는 공연할 노래의 가사를 미리 정부의 검열관에게 보여주고 허락을 받는데 공연장에도 검열관이 참석해 청중이 박수를 치거나 몸을 흔드는 것을 중지시킨다. 박정희 정부 때를 연상케 한다. 영화에는 데이빗 보위와 이기 팝의 노래 뿐 아니라 빅토르가 작곡한 노래도 나온다. 
그러나 영화는 정치성을 별로 띠진 않았다. 그보다는 러시아 록뮤직의 자초지종과 함께 젊은이들의 록에 대한 갈망과 열광을 통해 구소련의 잘 알려지지 않은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특별한 플롯이 없다시피 하니 만큼 내용이 반복되고 후반 들어 진행이 처지는 감이 있지만 유태오의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비롯해 소련의 언더그라운드 록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흥미 있는 작품이다. 어느 정도 기시감이 느껴지는 작품으로 향수감이 짙은 청춘 찬가라 하겠다.
영화의 감독 키릴 세레브렌니코프는 영화 제작 종료 직전에 예술지원금 횡령혐의로 가택연금에 처해졌는데 그의 동료들은 이 조치를 푸틴 정부의 비판자인 키릴에 대한 보복으로 간주하고 있다. 따라서 이 영화가 작년에 칸영화제서 상영됐을 때 키릴은 참석하지 못 했다.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죽은 사람들은 죽지 않는다’(The Dead Don‘t Die)


클립(왼쪽부터), 민디와 로니가 산송장들의 습격에 대비하고 있다.

셀레나 고메스 출연 화제… 좀비영화에 바치는 헌사


영화 끝에 숲속의 은둔자 밥(탐 웨이츠)이 산송장들이 마을 사람들을 씹고 뜯어먹는 것을 보면서 “인생은 X판이네”라고 한 말씀하는데 필자가 보기엔 이 영화가 그렇다. 여유만만하고 시치미 뚝 떼면서 은근히 비꼬고 웃기는 얘기를 잘 만드는 짐 자무쉬 감독이 산송장 영화에 바치는 블랙 코미디로 그가 각본도 썼다.
이와 함께 트럼프와 미국의 물질위주의 사고방식을 풍자한 작품인데 지나치게 끔찍하고 어둡고 절망적이며 또 비관적이어서 코미디가 맥을 못 추고 말았다. 어떻게 이런 영화가 올 칸영화제 개막작으로 선발되었는지는 알다가도 모르겠지만 필자가 칸영화제를 크게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도 영화제 측이 이런 불상사 같은 일을 종종 저지르기 때문이다.
산송장에 관한 헌사이니만큼 과거 이 종류의 영화들이 언급되는데 영화 첫 장면부터 조지 로메로의 ‘산송장들의 밤’을 연상케 만든다. 그리고 F. W. 무르나우의 ‘노스페라투’와 함께 산송장 영화는 아니지만 이 영화에 나오는 모텔이 베이츠모텔을 닮아 ‘사이코’도 거론된다.
영화는 자무쉬의 은근한 자기 자랑이기도 한데 그것이 자기비하와 은근을 지나쳐 지나치게 자의식적이어서 나중에는 희롱당하는 기분마저 느껴진다. 질척거리는 설익은 밥과도 같은 영화로 이름이 잘 알려진 배우들이 무려 20명 정도 나오는데 대부분이 산송장과도 같은 어색한 연기를 하면서 소모됐다.
인구 700여명의 마을 센터빌의 경찰서 직원은 3명. 서장 클립(빌 머리)과 그의 부하들인 로니(애담 드라이버)와 민디(클로이 세비니). 셋이 다 안경을 썼다. 처음부터 자무쉬는 트럼프를 비웃는다. 동네 다이너의 손님 중 하나인 농부 밀러(스티브 부세미)가 쓴 빨간 모자에는 ‘미국을 다시 하얗게’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그가 옆에 앉은 철물점 주인인 흑인 행크(대니 글로버)와 나누는 ‘블랙’ 농담이 웃긴다. 
클립과 로니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컨트리송 ‘죽은 사람들은 죽지 않는다’를 들으면서 차를 타고 순찰을 하는데 이상한 일이 생긴다. 전파가 방해되면서 셀폰 등이 작동을 안 한다. 이어 뉴스로 심각한 환경오염으로 인해 지구가 궤도를 이탈했다는 보도가 나온다. 그리고 어두워질 때가 됐는데도 낮이 밤으로 변하질 않는다.
산송장들의 때가 온 것이다. 이 때부터 영화 끝까지 동네 무덤에서 깨어난 산송장들이 주민들을 뜯어먹고 씹어 먹는데 첫 희생자들은 다이너의 웨이트리스와 여자 청소원. 영화 끝에 가면 동네 사람들이 하나도 살아남질 못한다. 산송장들이 인육을 먹는 장면들이 너무 끔찍해 무섭다기보다 역겹다. 그런데 산송장들은 “커피” “샤도네” “와이-파이”라고 한 마디씩 하면서 살아 있었을 때의 문명의 산물들을 그리워한다.
클립과 그의 두 부하 그리고 사무라이검을 휘두르는 외계인(무슨 소리냐고 필자에게 묻지 마시길) 여자 장의사 젤다(틸다 스윈턴이 돋보인다)가 엽총과 정글용 큰 칼 그리고 검을 쏘고 휘두르면 산송장들의 목이 덜컹 덜컹 날아가면서 피가 튀는데 가관이다. 로지 페레스, 이기 팝, 캐롤 케인 및 셀레나 고메스 등도 나온다. R등급. Focus.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존 들로리안 함정수사’ (Framing John DeLorean)


존 들로리안으로 분장한 알렉 볼드윈이 들로리안이 고안한 차 본넷에 앉아있다.

자동차산업의 풍운아 들로리안의 성공과 몰락… 스릴 있게 담은 다큐영화


영화 ‘백 투 더 퓨처’에 나온 양쪽 문이 마치 비상하는 갈매기의 날개처럼 올라가는 자동차를 고안한 자동차산업의 풍운아로 이상가요 야심가였던 존 들로리안의 기록영화이자 실제 인물들의 역을 배우들이 재연한 드라마이다. 
자동차 산업의 메카였던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난 절세 절세미남의 들로리안은 자동차산업에 혁명을 일으키면서 자동차산업의 골든 보이로 찬양 받았지만 과도한 야망으로 인해 스스로 몰락을 자초한 극적인 인물이었다. 
영화는 들로리안의 아메리칸 드림의 추구와 성공과 실패와 몰락의 과정을 그의 TV인터뷰와 기록필름 그리고 FBI가 들로리안을 잡으려고 펼친 마약거래 장면을 담은 흑백 필름 등을 통해 상세히 해부하는 식으로 만들었다. 영화와도 같은 그의 실제 삶이 허구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데 마치 스릴있는 전기영화를 보는 것 같다.
영화는 들로리안으로 분장한 알렉 볼드윈의 해설로 진행된다. 들로리안은 탁월한 디자이너요 기술자로 제너럴 모터스의 간부로 있을 때 기존 폰티악을 개조한 차를 만들어 베스트셀러가 됐었다. 
지나치게 자신만만한 나르시스트였던 그는 당연히 제너럴 모터스의 사장이 될 것으로 기대됐지만 그의 아이디어가 보수적인 경영진의 눈에는 지나치게 위험부담이 커 오히려 해고당했다.
그러나 들로리안은 이에 좌절하지 않고 신·구교도간에 유혈폭력이 자심하던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에 들로리안 모터스를 설립한다. 영국정부의 자금지원을 얻어냈으나 공장은 얼마 못 가 문을 닫으면서 들로리안의 몰락이 시작된다.
재기의 꿈을 버리지 못하면서 반드시 자기의 아이디어가 꽃을 피우리라고 믿는 들로리안은 자금조달에 혈안이 되면서 FBI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전과자 짐(마이클 리스폴리)의 유혹에 넘어간다. 콜럼비아의 마약딜러들과의 거래 흥정인데 이는 FBI가 들로리안을 잡으려고 파 놓은 함정이다. 그러나 들로리안은 재판에서 무죄로 풀려났다. 
영화는 들로리안의 아들과 딸, 벨파스트의 공장 근로자, 들로리안의 변호사 및 연방마약단속국의 형사를 비롯해 그를 알았던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들로리안의 파란만장했던 삶을 생생히 보여주고 들려준다. 그러나 모델출신의 그의 아내 크리스티나 페리리(모레나 바카린)는 인터뷰에서 빠졌다. 크리스티나는 들로리안이 무죄 판결을 받은 얼마 후 이혼했다. 단 아곳과 쉬나 M. 조이스 공동감독.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레이트 나잇' (Late Night)


캐서린은 자신의 토크쇼의 시청률이 하락하면서 궁지에 몰린다.

엠마 탐슨과 민디 케일링‘콤비’
TV 토크쇼 뒷얘기 다룬 코미디


두 여자가 주인공인 코미디 드라마로 보고 즐길 만은 하지만 내용이 다소 비현실적이고 끝도 만사형통 식으로 마감돼 어딘가 맥이 빠진다.
요즘도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남성과 백인 위주의 직장(특히 연예계) 내 여성과 소수계의 권리와 균형을 다룬 점이 돋보인다.
오스카상을 탄 영국의 연기파 엠마 탐슨과 인도계 미국인 코미디언 민디 케일링이 좋은 콤비를 이루며 호연을 한다. 탐슨이 의기양양하게 뽐을 내면서 화면을 주름 잡으면 케일링이 조심스럽고 기죽은 듯한 모습으로 탐슨의 뒷바라지를 한다.
각본은 케일링이 썼고 감독은 ‘걸스’와 케일링이 주연하는 ‘민디 프로젝트’ 등 TV작품을 연출한 여류 니샤 가나트라. 영화 내용이 TV쇼에 관한 것이어서 TV통인 가나트라에겐 잘 맞는 작품이다.
무대는 맨해탄. 인기 야간 코미디 토크 프로 ‘투나잇 위드 캐서린 뉴베리’의 사회자는 영국 태생의 위풍당당한 캐서린(탐슨)으로 나이는 56세. 캐서린 밑에는 10여명의 쇼 대사를 써주는 미 명문대 출신의 사람들이 있는데 모두 백인 남자들. 이들이 찧고 까불고 농담하는 부분이 너무 많은데 시간 낭비일 뿐 아니라 천편일률적이며 별로 우습지도 재미있지도 않다. 캐서린은 이들 위에 여왕처럼 군림하는데 수틀리면 즉석에서 해고를 하면서 힘을 과시한다. 그러나 캐서린의 이런 행동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캐서린의 문제는 한때 드높던 시청률이 자꾸 하락하는 것. 특히 젊은 층이 TV 대신 소셜 미디어 등 다른 매체로 이동하면서 낡고 구태의연한 캐서린의 쇼를 외면하는 바람에 캐서린은 궁지에 몰린다. 그래서 캐서린은 궁여지책 끝에 유튜브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젊은 남자를 고용하나 대재난이나 다름없는 결과만 낫는다.
이와 함께 캐서린의 쇼 대사를 써주는 팀이 백인 남자 일색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캐서린은 마지못해 여자 작가를 모집한다. 이에 응모하는 사람이 브루클린의 동네 클럽에서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활동하는 몰리(케일링). 
유색인종 여자가 백인 남자 일색의 팀에 합류했으니 그 대우가 어쩔지는 명약관화한 일. 그리고 캐서린도 마지못해 뽑은 몰리 알기를 우습게 안다. 그러나 몰리가 서서히 실력발휘를 하면서 팀의 동료들과 캐서린으로 부터 인정을 받기 시작하나 잘 나가던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 몰리는 해고를 당한다.
시청률의 계속되는 하락과 함께 캐서린이 과거 잠깐 저지른 불륜행위가 밝혀지면서 캐서린과 파킨슨병을 앓는 남편(잔 리트가우)과의 갈등이 생기고 캐서린은 쇼무대에서 내려온다. 죽을 지경인 캐서린이 찾아가는 곳이 몰리가 쇼를 하는 클럽. 그 다음은 어떻게 될지는 삼척동자도 아는 일.
현실적인 얘기를 다뤘는데도 사실적이라기보다는 TV 코미디 프로 같지만 여자팬들에게 어필할 영화다. R등급.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로켓맨’(Rocketman)


깃털로 장식된 야단스런 의상을 입고 커다란 안경을 쓴 엘튼 존이 공연장에서 노래 부르고 있다

록가수 엘튼 존의 파란만장한 삶을 뮤지컬로


‘로켓맨’을 노래 부른 영국의 수퍼스타 록가수 엘튼 존(72)의 전기영화로 과도하고 과장되고 과격하도록 화려하고 요란하며 야단법석을 떠는 뮤지컬이다. 작년에 나온 록그룹 퀸스의 리드싱어 프레디 머큐리의 삶을 그린 ‘보헤미언 랩소디’와 비교하면 사람의 감정을 휘몰아 감는 감동이 미흡하다.
엘튼이 생각하고 말하는 내용을 노래와 춤을 섞어 환상적으로 묘사한 뮤지컬인데 이런 환상적인 장면이 자주 등장하면서 파란만장한 삶을 산 엘튼의 생애를 극적으로 서술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이로 인해 영화는 시각적으로는 눈부시지만 극적으로는 소외감을 갖게 만든다.
그러나 이 영화는 에너지 충만하고 흥분되고 대담무쌍하며 엘튼의 수많은 노래들과 눈이 어지럽도록 화려하고 다채로운 의상 등 보고 듣고 즐길만한 작품이다. 특히 영화에 활화산 같은 불길을 일으키는 것이 엘튼 역을 맡은 영국배우 태론 에저턴(29·‘킹스맨’)의 연기다. 변화무쌍하고 정력적인 연기로 노래도 자신이 직접 불렀다. 
붉은 악마를 연상케 하는 세퀸으로 장식하고 깃털로 만든 날개가 달린 붉은 의상에 커다란 안경을 쓴 엘튼이 약물과 알코올 중독자 치료소에 보무당당하게 걸어 들어와 치료소의 다른 환자들에게 자기 신세타령을 하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영화는 가끔 이 장면으로 돌아와 엘튼의 여러 문제들인 술과 약물과 섹스와 쇼핑과 비만 그리고 성적 정체성에 대한 고뇌와 고독과 불안과 소외의식 등이 노래와 춤으로 된 뮤지컬 형식으로 얘기된다. 
전후 영국의 미들섹스 교외에서 레지날드 드와잇(엘튼의 본명)으로 태어난 엘튼은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와 음악에 천재적 재능을 지녔으나 헛된 꿈에 사로잡힌 어머니 쉴라(브라이스 댈라스 하워드)와 냉정한 아버지의 사랑을 못 받고 자라 커서도 사랑에 갈급하고 자신감을 잃은 사람이 된다. 음악적 재능으로 인해 어린 엘튼은 로열 음악아카데미에서 클래식 뮤직을 공부한다. 
이어 청년이 된 엘튼은 동네 술집에서 밴드를 구성해 활동하다가 한 매니저의 눈에 띠어 영국을 순회공연중인 미국 소울 보컬그룹의 백업가수로 활동하면서 소울뮤직에 젖는다. 엘튼의 가수로서의 생애는 작사자인 버니 터핀(제이미 벨)을 만나면서 꽃 피우기 시작한다. 엘튼과 버니는 오랫동안 함께 활동하면서 많은 히트곡을 내는데 둘의 오랜 우정이 불안정한 엘튼의 삶을 붙들어준다.
엘튼의 미국 첫 공연은 1970년 현재도 샌타모니카 블러바드와 베벌리힐스가 만나는 곳에 있는 클럽 ‘투르바두어’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엘튼은 빅히트곡인 ‘크로코다일 록’을 부르는데 엘튼과 노래에 열광하는 팬들이 공중으로 떠오르면서 환상적으로 처리된다. 이를 보는 사람도 흥분해 하늘로 떠오르는 기분이다. 여기서부터 엘튼은 세계적인 수퍼스타가 된다. 
이어 열린 개인 파티에서 엘튼은 오만방자하고 멋진 음악 매니저 존 리드(리처드 매든)를 만나 그를 자신의 매니저로 고용하는데 지금까지 고뇌하고 의문하던 자신의 성적 정체성 문제도 동성애자인 존과의 관계를 통해 해결된다. 그러나 이기적인 존은 결코 엘튼의 감정적 필요를 충족시켜주지는 못한다. 
엘튼의 자살미수를 비롯해 그가 겪는 개인적 문제들이 산만하게 묘사됐고 LA 다저스구장에서의 공연을 비롯해 여러 공연 장면들이 견본 식으로 그려지는 등 결점도 있는 작품이지만 에저턴의 연기와 노래 및 의상과 촬영 등 볼만한 것도 많은 작품이다. 덱스터 플레처(‘보헤미언 랩소디’ 촬영 종료 얼마 전 해고된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대타로 영화를 마무리 지었다.) 감독. R등급. Paramount.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미 제국의 몰락’(The Fall of the American Empire)


피에르-폴(왼쪽)이 자기 애인 아스파시와 훔친 돈의 처리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박사 배달기사와 창녀 “굴러온 돈 어떻게 쓰지”… 자본주의에 대한 냉소와 비판


제목은 미국이지만 영화의 내용은 몬트리올에서 일어나는 얘기로 자본주의의 병폐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프랑스계 캐나다인 감독인 드니 아르캉(각본 겸)의 위트와 비웃음과 사회주의적 이념이 담긴 멜로드라마요 필름 느와르이자 코미디다. 온순한 영화가 가끔 과도한 폭력을 휘두른다. 
다소 믿기 힘든 동화 같은 얘기로 끝이 할리우드 영화 식이지만 아기자기한 내용과 좋은 연기가 있는 다양한 장르를 뒤섞은 재미있는 작품이다. 돈 없는 서민들이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는 소원 성취와도 같은 작품으로 현대판 우화라고 하겠다. 
안경을 쓴 샌님 형의 철학박사 학위를 지닌 피에르-폴 다우스(알렉상드르 랑드리)는 배달차 운전사. 그는 말끝마다 철학가 이름을 들먹이면서(첫 장면에서 자기와 헤어지려는 애인 앞에서도 철학을 운운한다) 트럼프를 비롯한 잘난(?) 사람들과 세상만사를 비웃지만 인자해 거지에게 돈을 주고 빈민급식소에서 봉사활동을 한다. 
피에르-폴이 어느 날 배달을 갔다가 갱의 돈을 보관한 건물에서 일어난 강도총격사건을 목격하게 된다. 사건관계자들은 다 죽고 거액의 현찰이 든 두 개의 더플백이 건물 앞에 놓였다. 이를 들어 자기 차에 싣는 피에르-폴. 
이어 등장하는 인물이 고급창녀 아스파시(마리피에르 모랑). 피에르-폴이 이 여자를 자기 아파트로 부른 이유는 섹스 때문이라기보다 여자의 광고문구가 라신느의 말을 인용했기 때문. 둘은 서로 마음이 통해 곧바로 공범이요 애인이 된다. 거액의 현찰을 처리할 방안에 고민하던 둘은 막 교도소에서 나온 투자전문가 실뱅(레미 지라르)을 찾아가 ‘투자’상담을 한다. 한편 두 명의 형사가 피에르-폴을 뒤쫓는데 이들은 그가 돈을 가졌다고 확신하지만 물증이 없어 어쩌질 못한다. 
실뱅은 피에르-폴의 현찰을 국내에서 소화할 수가 없음을 알고 해외로 빼내 돈세탁을 하기로 한다. 그래서 찾아간 사람이 이 부문의 전문가 윌브로 타쉐로(피에르 쿠르지). 윌브로는 아스파시의 전 고객이다. 윌브로가 컴퓨터 두 대를 자기 앞에 놓고 전 세계를 무대로 돈을 세탁하는 장면이 근엄하게 보이나 아주 우습다. 
빈부차이와 돈 많은 탈세자들의 돈 세탁 그리고 갈수록 약화하는 사회 안전망 및 경찰과 정치가들의 무능과 부패를 시큼한 맛이 나게 비판하고 조소한 영화로 재미가 솔솔 난다. 연기들도 좋은데 특히 지라르와 쿠르지 그 중에서도 말쑥하니 정장한 쿠르지의 연기가 일품이다. R. 프랑스어 대사에 영어자막.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존 윅: 챕터 3-파라벨룸’ (John Wick: Chapter 3-Parabellum)


존 윅이 킬러들을 피해 교통이 혼잡한 맨해탄 거리를 말을 타고 달리고 있다.

킬러와 킬러들 대결… 키아누 리브스 특급 액션


가공할 액션과 살육과 유혈이 장장 130분 동안 난리법석을 떨면서 보는 사람을 초죽음이 되도록 피곤하게 만드는데도 온 몸의 피가 끓어오르는 흥분감을 어찌할 수가 없다. 터무니없는 비디오게임 같은 영화로 액션이 지나치도록 오만방자하고 또 잔인하고 끔찍한 장면이 많아 때론 눈을 감게 되면서도 그 과도한 허풍에 깔깔대고 웃게 되는 액션 코미디라고 하겠다. 
얻어터지고 총에 맞고 칼에 찔리면서도 결코 죽지 않는(못하는) 수퍼맨과도 같은 초특급 킬러 존 윅(키아누 리브스)의 액션 시리즈 제3편으로 ‘파라벨룸’은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라틴어에서 따온 것이다. 
필자는 시리즈 첫 번째부터 세 번째 까지 매번 존이 처치하는 악인들의 수를 세다가 포기하고 말았는데 얼마 전 뉴욕에서 리브스를 만나 인터뷰 할 때 “당신이 전 3편의 영화에서 처치한 악인들이 모두 몇 명이나 되는지 아느냐”고 물었더니 “모른다”고 대답했다.
영화는 제2편이 끝난 직후부터 시작된다. 전 세계적 킬러집단의 규칙을 어겨 집단에서 퇴출당할 위기에 처한 존이 데드라인인 오후 6시까지 자기를 보호해줄 킬러들의 숙박호텔인 컨티넨탈의 주인 윈스턴(이안 맥쉐인)을 찾아 맨해탄을 뛰어 달리면서 액션이 시작된다. 존의 목에 1,400만 달러의 현상금이 걸려 온갖 킬러들이 그를 뒤쫓는다.
먼저 책들로 가득 찬 도서관의 비좁은 공간에서 존과 거구의 킬러 간에 치열한 격투가 벌어지는데 여기서 두꺼운 장정이 된 책이 살인무기로 쓰인다(책 제목이 무얼까 하고 궁금하다). 이어 존은 골동품상점 안에서 또 다른 킬러들을 맞는데 여기서는 수십 개의 단도들이 피바람을 내면서 연속동작으로 쏜살같이 나른다. 영화 내내 이어지는 액션 안무가 장관으로 아름답기까지 하다.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존은 자기에게 신세를 진 디렉터라 불리는 여자(앤젤리카 휴스턴)의 도움을 받아 모로코로 피신, 역시 자기에게 신세를 진 소피아(할리 베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소피아는 맹견 훈련사로 남자의 중요한 곳을 물어뜯는 두 마리의 독일 셰퍼드를 갖고 있다. 존을 여기까지 쫓아온 킬러들이 개들로부터 어디를 물리겠는가. 여기서 얘기가 좀 산만해진다. 
존은 다시 뉴욕으로 돌아오는데 자기가 없는 사이 ‘하이 테이블’이라 불리는 범죄집단이 ‘심판관’을 파견해 존을 도와준 사람들인 윈스턴과 거지대왕(로렌스 피시번) 등에게 1주일 안에 존에 대한 일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현 위치를 지키지 못할 것이라고 통보한다. 물론 이는 죽음을 말한다. 
이어 존과 ‘심판관’이 고용한 포장마차 스시맨과 그의 졸개들간에 스시칼이 동원된 격투가 벌어지는데 볼만한 것은 이들과 존 간의 거울의 방에서의 액션신. 마치 이소룡의 ‘용쟁호투’와 오손 웰스의 ‘상하이에서 온 여인’의 거울의 방에서의 장면을 연상시키는데 아찔하다. 온 육체와 온갖 무기가 동원되면서 존은 비좁은 맨해탄을 말을 타고 달리기까지 한다. 액션팬들이 박수갈채를 치면서 볼 영화로 흥행서도 빅히트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제4편이 나오지 말라는 법 없겠다.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 R등급. Lionsgate.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사진’(Photograph)


밀로니가 라피(왼쪽)가 찍은 자기 사진을 보면서 라피의 사정을 듣고 있다.


가짜 약혼자 행세하다 싹트는 애잔 로맨스


외로운 홀아비와 행복하지 못한 결혼생활을 하는 부인과의 서신교환을 다룬 데뷔작 ‘도시락’(2013)과 이 영화로 할리웃의 부름을 받고 만든 로버트 레드포드와 제인 폰다가 나온 황혼기의 로맨스 얘기 ‘밤의 우리의 영혼’(2017)을 연출한 인도 감독 리테쉬 바트라의 영화로 부드럽고 애잔하고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다. 
바트라는 결코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서서히 인물들의 성격과 배경 그리고 이들 주위 사람들의 얘기와 인도의 사회적 문화적 문제들을 서술하는데 연출 스타일이 티가 나지 않고 작품에 대한 배려가 매우 인간적이어서 고요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정이 가는 솜씨로 간간 유머를 양념식으로 섞어 넣어 가라앉은 분위기에 자극을 준다.
이 영화도 ‘도시락’처럼 알게 모르게 은근하게 지속되는 두 남녀의 로맨스를 다뤘는데 두 사람이 배경과 계급이 다른 걸맞지 않는 짝이어서 둘의 로맨스가 결실을 맺을 것인가 아닌가하고 시종일관 궁금하게 만든다. 끝에 가서도 시원한 대답은 없는데 그 게 더 매력적이다.
뭄바이의 판자집에서 여러 명의 거리 행상들과 함께 사는 라피(나와주딘 시디키)는 거리 사진사. 어느 날 침울한 표정의 밀로니(사니아 말호트라)의 스냅사진을 찍으면서 모든 것이 서로 다른 두 사람의 관계가 이어지게 된다. 
라피는 시골 고향에 사는 할머니(화룩 자파르)에게 번 돈을 꼬박꼬박 보내는데 그가 할머니를 그토록 생각하는 이유는 후에 밝혀진다. 할머니가 라피가 장가를 안 가 먹던 약을 중단했다는 편지를 받은 라피는 궁여지책으로 밀로니의 사진을 자기 약혼자인 누리라고 속여 할머니에게 보낸다. 이에 할머니가 누리를 보려고 뭄바이에 오겠다고 하면서 라피는 수소문해 밀로니를 찾아내 자기 사정을 털어놓고 누리 노릇을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런데 라피는 이미 고적한 표정을 한 밀로니의 사진을 보고 마음이 이끌린 상태. 
밀로니는 중산층의 온순한 성격의 여자로 회계사 공부를 하고 있는데 부모가 결혼하라고 종용하면서 마련한 상대방 남자와의 만남에도 순순히 참석한다. 
그런데 밀로니의 성격 묘사가 좀 애매모호하다. 라피의 할머니가 올라오고 라피와 밀로니는 가짜 약혼자로서 할머니를 만난다. 그러다가 이 만남은 서서히 라피와 밀로니 둘만의 만남으로 변화한다. 둘이 영화를 구경하고 데이트를 하면서도 둘은 결코 사랑의 말이나 행동은 취하지 않는다. 장래가 암담한 라피로서는 자기와 계급과 생활 여건이 판이한 밀로니에게 자기 마음을 표시한다는 것이야말로 언감생심이다. 
하나 변화를 보이는 것은 얌전한 밀로니가 라피를 만나면서 보다 적극적이 된다는 점이다. 조용하면서도 할 말은 다 하는 웅변적인 영화로 연기들이 다 좋은데 특히 자파르의 흙냄새 나는 강인한 연기가 일품. 촬영도 좋다. Amazon Studios. ★★★½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스코틀랜드여왕 메리’의 시어샤 로난


“동작·생각·액센트까지 메리와 한몸 되려 노력”


‘스코틀랜드여왕 메리’(Mary Queen of Scots)에서 영국의 통치권을 놓고 겨루다 라이벌인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1세(마고 로비 분)에 의해 처형당한 스코틀랜드여왕 메리로 나온 시어샤 로난(24)과의 인터뷰가 할리우드의 런던호텔에서 있었다.
창백할 정도로 하얀 피부를 지닌 로난은 아직도 귀여운 소녀 모습이었는데 질문에 액센트가 있는 콧소리로 야무지도록 똘똘하게 대답했다. 아역배우 출신인 로난은 뉴욕의 브롱스에서 태어났으나 부모와 함께 세 살 때 아일랜드로 이주해 현재 더블린에서 살고 있다. 로난은 ‘레이디 버드’를 비롯해 모두 세 차례 오스카상 후보에 오른 연기파다.

-역사극의 여왕 노릇하기가 힘들었는지.
“감정적으로 도전적이었던 것은 내가 여왕 역을 한다는 것을 머릿속에 각인시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여왕이라는 것은 하나의 개념이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어 메리에 관한 역사책들을 통독했다. 이와 함께 나의 이런 접근 방식을 때론 내려놓고 내가 과거에 맡았던 다른 허구의 인물을 대하듯이 메리 역에 다가갈 필요도 있었다. 그리고 액센트와 의상, 분장과 헤어스타일 및 메리의 동작 등을 갖추고 배워가면서 메리와 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가장 최근에 당신이 감정적으로 깊은 감동을 받은 예술작품은 무엇인가.
“얼마 전에 처음으로 본 마이크 리가 감독하고 레즐리 맨빌과 짐 브로드벤트가 공연한 ‘어나더 이어’다. 레즐리의 연기는 지금까지 내가 본 연기 중에서 가장 눈부신 것이었다. 그런 강렬한 연기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보면서 마치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난 지금 ‘리틀 위민’(오는 12월 개봉 예정)을 찍고 있는데 레즐리의 연기가 내 역을 표현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당신은 연기뿐 아니라 용모도 메릴 스트립과 닮았다고들 하는데 이에 대한 느낌은 어떤가.
“그렇게 재능 있는 사람과 연기와 용모가 닮았다는 말을 듣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로 그보다 더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없다.”

-엘리자베스 역의 마고 로비와의 관계는 어땠는지.
“우린 리허설 중에도 서로 멀리 떨어져 있기로 결정했다. 촬영 전에 잠깐 몇 차례 만났을 뿐이다. 그래서 분장한 마고의 모습이나 그녀가 어떻게 역을 해낼지에 대해서도 전연 몰랐다. 그건 그 쪽에서도 마찬가지다. 서로를 모른 다는 것이 내 역에 큰 도움이 되었다. 따라서 우리가 거의 영화 마지막 부분에 가서 처음으로 만났을 때의 우리의 표정은 연습한 것이 아니라 실제의 것이었다. 우린 한 달 만에 처음으로 만나 감정적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무 격해 몸이 떨렸을 지경이었다. 그것은 내가 영화 세트에서 겪은 가장 강렬한 경험 중의 하나다.”

-분장한 마고 로비의 모습을 보고 얼마나 놀랐는가.
“인상이 너무 강해 대단히 놀랐다. 혹독하도록 엄격한 모습으로 실제 엘리자베스의 모습을 그대로 닮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원래의 마고의 얼굴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토록 달라진 모습에 충격을 받았을 정도였다. 그에 반해 내 모습은 너무 누추해 우린 서로 극과 극에 서 있는 셈이었다.”

-역사적 관점에서 메리라는 여자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스코틀랜드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로 지금도 메리는 스코틀랜드 문화와 독립성을 대변하면서 스코틀랜드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영국이 아닌 순수한 스코틀랜드의 상징으로 그것은 매우 귀중한 사실이다. 그리고 메리는 강한 사람이었다. 난 사람들 기분을 상케 하기를 꺼려하는 약골인데 그런 내가 배짱 대단한 메리 역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강해지고 또 결단력이 있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메라는 자신의 본능을 믿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무언가를 결정하려면 메리처럼 자신의 배짱을 믿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역은 젊은 여자인 나를 고무시켜 주었으며 또 직업인으로서도 내가 할 일을 결정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

-메리 얘기는 그동안 영화와 TV작품으로 여러 차례 만들어졌는데 그것들을 참고로 봤는지.
“아니다. 내가 할 일을 다른 사람이 한 것과 비교하지 않기 위해서 안 봤다. 메리에 관한 책과 그 시대에 관한 책들은 많이 봤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가서 나는 책에서 배운 것을 다 접어놓고 배우로서 느끼는 바를 역에 투입해야 했다. 그것은 내가 다른 영화의 역을 맡았을 때에 했던 자세와 마찬 가지다.”

-젊은 여자로서 연기한 역사적 인물이 당신에게 직접 어떤 영향이라도 미쳤는가.
“그것이 실제 인물이든지 아니든지 간에 어떤 인물을 연기하려면 그 사람을 실제 인물로 취급해야 한다. 그래서 그 인물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 사람이 잘났건 못났건 또 똑똑하건 멍청하건 간에 그 사람은 본질적으로 연기하는 사람의 다른 한 변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새 사람을 친구로 맞아 그로부터 새 아이디어나 의견을 취하는 것이나 마찬 가지다.”

-메리는 ‘그 누구에게도 머리를 숙이지 말라’고 말하는데 이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것은 자신을 잘 알아서 타협할 때와 아닐 때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남의 말을 전연 무시하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하겠다면 그 사람은 매우 고독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중간지점에서 사람을 만나 그의 얘기를 듣고 타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 무엇보다도 자신의 입지를 지켜야 한다. 타협은 하면서도 자신을 아는 것과 함께 자신에게 중요한 것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난 집에서 그런 교육을 받으면서 자랐다”

-메리는 당신과 같은 24세에 아들을 낳았는데 본인도 아이를 낳고 싶은가.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난 아이들을 낳고 싶다. 언젠가 아이들을 낳고 싶다. 그것이 내가 늘 바라는 바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개를 갖고 싶다.”

-개는 있는지.
“프랜이라는 개가 있지만 나보다는 엄마의 것이나 마찬가지다. 엄마는 프랜을 마치 자기 자식처럼 사랑한다. 내가 프랜에게 내 자리를 빼앗긴 셈으로 난 이제 엄마에게 두 번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스코틀랜드여왕 메리는 친척인 영국여왕 엘리자베스와의 권력다툼의 제물이 된다.

-이 영화에 나오기 전에 메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는지.
“학교에서 역사를 공부할 때 다소 들은 바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다 단편적인 것으로 완전한 내용이 아니었다. 역을 맡고나서야 본격적으로 메리에 관해 파고들었는데 그러면서 메리에 관한 많은 문서들이 얼마나 허위이고 불공정한지를 알게 되었다.”

-메리에 관해 공부하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무엇인가.
“가장 놀랐던 것은 메리가 정치적으로 상당히 기민한 사람으로 훌륭한 정치인이었다는 사실이다. 메리는 스코틀랜드로 돌아오기 전까지 프랑스 왕비로 어렸을 때부터 궁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 안에서 돌아가는 일에 정통했다. 그런데도 역사가들은 메리를 그렇게 묘사하지 않았다.”

-휴가는 가는지.
“갈 수 있는 대로 자주 가려고 한다. 최근에는 이탈리아에 갔다 왔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여자들이 집권자가 된 나라들이 많은데 그런 면에서 이 영화가 현재 국제 정세를 어떻게 반영한다고 생각하는가.
“역을 맡으면서 내가 깨닫게 된 것은 이 영화가 정치인들과 왕실 사람들을 보다 인간적으로 그렸다는 것이다. 우린 그들을 신문이나 TV로 보면서 그들이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곤 한다. 이 영화가 그들의 막후 얘기를 들려주면서 사람들이 형식적으로만 알던 정치인들이나 왕실 사람들의 인간적인 면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우리가 실제의 그들을 보는 시각을 새롭게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요리는 하는지.
“주로 엄마가 한다. 난 요리 솜씨가 아주 서툴다. 그러나 먹긴 잘 한다.”

-현대의 군주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들은 원해서 왕족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그들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왕족으로 태어났을 뿐이다. 흥미 있는 생활 스타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와 함께 TV 드라마 시리즈 ‘크라운’과 같은 작품들은 나로 하여금 그들이 갖고 있는 인간적인 면을 알게 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느꼈으리라고 생각한다.”

-메리와 엘리자베스는 사촌간으로 서로를 존경하면서도 경쟁적인 관계인데 본인도 친척간에 그런 경험이 있는가.
“내 사촌들은 다 나보다 나이가 위인데다가 하는 일도 각기 달라 그런 경험이 없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지하실의‘기생충’


봉준호 감독이 올 해 칸영화제서 최고작품상인 ‘황금 종려상’을 받은 ‘기생충’(Parasite)은 지하실에서 시작돼 지하실에서 끝난다. 지하실에는 지지리도 궁색한 김기택(송강호) 네 네 가족이 살고 있는데 이들은 기를 쓰고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그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질식할 것만 같은 비좁은 지하실의 셋방에 사는 김 씨네를 보자니 한국의 빈곤한 사람들에게는 결코 탈출구가 없다는 것처럼 느껴져 참담한 심정이 된다.
‘기생충’은 봉감독의 여느 다른 영화들보다 훨씬 오락성이 강하고 재미있다. 가족 및 사회비판 드라마요 공포스릴러이며 블랙 코미디이자 비극으로 앙상블 연기도 매우 훌륭하다. 특히 봉감독은 ‘헬 조선’ 한국의 심한 빈부격차를 거의 분노에 찬 심정으로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김 씨네가 모두 신분을 위장한 사기꾼들이어서 지난 해 칸영화제서 대상을 받은 일본의 히로카즈 코레-에다 감독의 도둑 일가족 드라마 ‘어느 가족’을 생각나게 한다.
기택과 그의 욕 잘하는 아내 충숙(장혜진) 및 대입시험에 네 번이나 낙방한 아들 기우(최우식) 그리고 미술에 뛰어난 재질을 지닌 딸 기정(박소담)은 모두 백수들로 현 직업(?)은 집에서 피자 상자 접는 일.(사진)
어느 날 미국 유학을 가게 된 기우의 친구가 기우에게 자기가 가정교사로 영어를 가르치는 박동일 사장(이선균)의 딸 고 2년생 다혜(정지소)를 자기 대신 가르쳐 달라고 부탁한다. 이에 기우는 기정이 위조한 연세대 재학증명서를 들고 박사장의 집엘 찾아가 박사장의 부인 연교(조여정)를 만난다. 면접에서 연교는 “이즈 잇 오케이 위드 유”라며 영어를 쓴다. 그리고 기우를 케빈이라고 부르겠다고 영어 작명까지 해준다. 
박사장 네는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초현대식 건물에 살면서 벤츠를 타고 다니는 엄청난 부자로 어린 외아들 다송(정현준)의 장난감도 미제다. 대사 간간이 영어가 툭툭 사용되면서 미국 물 먹은 한국인들의 풍토를 보여준다.
기우가 박사장 집에 고용되면서 김씨네 일가족이 한 사람씩 차례로 박사장 네 집에 스며들어 본격적인 기생충 노릇을 시작한다. 먼저 기정이 일리노이대학서 미술심리치료를 전공했다며 아주 어렸을 때 귀신(?)을 보고 경기를 낸 다송의 미술선생 겸 치료사로 고용된다. 기정의 영어이름은 제시카. 이어 기정은 자기가 입고 있던 팬티를 사용해 박사장의 운전사를 쫓아내고 그 자리를 기택이 차지한다.     
그리고 김 씨네는 오랫동안 박사장네 살림을 맡아온 가정부 문광(이정은)의 복숭아 앨러지를 이용해 그를 몰아내고 그 자리를 충숙이 차지한다. 타고난 사기꾼들인 김씨네 일가가 꾸며내는 간계가 발칙하면서도 경탄스럽다. 물론 이들은 자기들이 한 가족임을 숨긴다.
이렇게 해서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온 김 씨네 네 마리의 기생충들은 박사장 네에 기생하면서 모처럼 태평성대를 누린다. 그러나 박사장 네가 여름 캠프를 간 사이 어느 폭우가 쏟아지는 날 밤 문광이 챙기지 못한 물건을 가지러 왔다고 대문을 두드리면서 영화는 본격적인 공포 스릴러 식으로 변한다.
박사장 네는 자기들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갑질을 하는 나쁜 사람들이 아니다. 김 씨네에게도  존대 말을 하면서 깍듯이 예의범절을 지키는 착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비록 박사장과 그의 부인은 갑질은 안 하지만 김씨네를 완전히 하류인간들로 여긴다. 김 씨네 같은 사람들에게서는 행주 삶는 냄새가 나고 저들처럼 지하철 타는 사람들에게서도 특이한 냄새가 난다고 부자 대 빈자의 서로 다른 냄새론을 펼친다. 이를 엿듣는 기택과 충숙. 이 대사 듣고 지하철 타는 사람들의 속이 다소 언짢았겠다.                   
그러고 보면 표면상으로는 김 씨네를 자기들과 같은 인간으로 대하는 듯이 보이는 박 씨네의 친절과 예우는 그런 척하는 것이나 마찬 가지. 김 씨네도 전부 자기들 신분을 위장하고 척하는 사람들이니 만큼 이 영화는 ‘프리텐드’(척하는) 영화임에 진배없다. 결국 기택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철저히 멸시 당하면서 증오심에 눈이 뒤집혀 유혈참극이 일어난다.
그러나 김 씨네를 두둔할 것도 아니다. 이들은 전형적인 사기꾼들로 입심들도 좋고 상소리들도 잘 한다. 이들이 가난에 지쳐 사기꾼들이 된 것을 환경의 탓이라고만 보기엔 어딘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아무리 살 길이 막막하고 가난에 쪼들리면서 남의 집 지하실 방에 세 들어 산다고 하지만 모두 사지가 멀쩡한 사람들이 별로 힘 안들이고 사기와 거짓을 해서라도  편하게 살아보겠다는 마음가짐을 정당화 할 수는 없다. 그 것은 부자의 것은 빨아먹고 살아도 좋다는 기생충적 사고방식이다. 김 씨네는 모두 건강들 하던데 막노동이라도 해볼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지하실에서 나온 기택 네는 잠시 지상에서 햇볕을 즐기다가 다시 지하실로 내려간다. 특히 기택의 모습은 기생충의 끈질긴 생명력을 보는 것 같다. 영화는 기우의 “돈이 최고다”라는 말로 끝난다. 그다지 좋은 메시지는 아닌 것 같다. ‘기생충’은 현재 한국에서 1,000만 관객을 향해 빅히트 중인데 미국에서는 10월에 개봉된다. ★★★★1/2(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사랑아 나는 통곡 한다’


5피트 3인치의 단구에 동그란 얼굴과 사슴의 눈을 가진 할리웃 황금기스타 올리비아 디 해빌랜드 하면 선 듯 생각나는 사람이 외유내강한 여인의 전형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멜라니다. 디 해빌랜드는 단아한 모습에 착한 인상이어서 편한 이웃집 아주머니 같아 보이지만 고요한 위엄과 내적 힘을 지닌 여인으로 불과 27세 때인 1943년 막강한 워너 브라더스사를 상대로 부당고용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강한 의지의 소유자다. 7월 1일로 103세가 되는 디 해빌랜드는 현재 파리에서 살고 있다.
온순한 모습 속에 강철 같은 의지를 지닌 해빌랜드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또 다른 영화가 일본어 제목을 그대로 따온 것 같은 ‘사랑아 나는 통곡 한다’(The Heiress^1949)이다. 이 영화는 헨리 제임스의 소설 ‘워싱턴 스퀘어’(Washington Square)를 원작으로 연출한 연극 ‘상속녀’(The Heiress)를 바탕으로 패라마운트사가 만든 흑백 명작이다. 부녀간의 갈등과 비극적 사랑의 이야기로 명장 윌리엄 와일러가 감독했는데 빈틈없이 직조되고 절제된 연출과 연기가 돋보이는 성격탐구이자 통렬한 심리극이요 쓰라린 러브 스토리다.
와일러는 브로드웨이에서 연극을 본 뒤 영화화를 제안한 디 해빌랜드의 권고로 연극을 보고 연출을 결정했는데 물론 디 해빌랜드는 와일러에게 연극의 주인공인 소심한 노처녀 캐서린 역을 자기에게 달라고 요청했다. 와일러가 “방 안에서의 두 사람간의 감정의 충돌과 갈등이 총격전보다 더 흥분되고 긴장감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듯이 영화는 대부분 실내에서 진행되는 가정 드라마인데도 서스펜스마저 느껴지는 쓴맛 나는 치열함을 품고 있다.     
19세기 중반. 뉴욕의 워싱턴 스퀘어에 사는 유복한 의사 오스틴 슬로퍼(랄프 리처드슨)에게는 소심하고 수줍음 타는 장성한 딸 캐서린이 있다. 오스틴은 딸을 무미건조하고 매력도 없는 여자로 치부하면서 혹독할 정도로 엄격하게 대한다. 이에 캐서린은 주눅이 들어 집에서 수나 놓으면서 두문불출한다. 이를 안타깝게 여기면서 어떻게 해서라도 캐서린을 시집보내려고 안달이 난 사람이 캐서린과 한 집에 사는 숙모 라비니아(미리암 합킨스).
어느 날 모처럼 라비니아와 함께 한 파티에 참석한 캐서린은 여기서 자기에게 호감을 표하는 미남 모리스 타운센드(몬고메리 클리프트)에게 마음이 이끌린다. 이를 눈치 챈 라비니아는 둘을 짝지어주려고 적극적으로 나선다. 둘의 관계가 서서히 가까워지면서 캐서린은 처음으로 사랑에 젖어 어쩔 줄을 모른다. 
그러나 오스틴은 백수건달인 모리스가 캐서린의 재산을 노린다고 확신하고 딸에게 “네가 만약에 상속녀가 아니더라도 모리스가 널 좋아하리라고 생각하느냐”고 힐문한다. 이에 캐서린은 평소 자기를 멸시하던 아버지가 이번에는 모처럼 찾은 자신의 사랑마저 비웃는 것에 격분, 부녀간에 살벌한 감정 대립이 일어난다.
그리고 캐서린은 모리스와 함께 야반도주를 약속한다. 캐서린은 짐을 챙겨 약속시간에 오겠다는 모리스에게 자기는 아버지와의 관계를 끊기로 했다고 말한다. 모리스가 떠난 뒤 캐서린은 가방을 챙기고 모리스가 오기만을 기다리나 모리스는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오, 모리스”‘하며 통곡하는 캐서린. 
그로부터 몇 년 후. 사망한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은 캐서린 앞에 여전히 백수인 모리스가 다시 나타난다. 모리스는 약속시간에 자기가 오지 않은 것은 자기로 인해 캐서린이 아버지와의 관계를 끊으면 캐서린이 빈털터리가 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변명한다. 그리고 자기 사랑은 변치 않았다고 다짐한다.
이에 캐서린은 모리스에게 과거 실행하지 못한 야반도주를 하자고 제의한다. 그날 밤 짐을 챙겨 약속시간에 캐서린의 집에 도착한 모리스가 문을 두드리자 캐서린은 하녀에게 빗장을 지르라고 지시한다. 모리스가 문을 두드리면서 “캐서린, 캐서린‘하며 울부짖는 소리를 뒤에 남긴 채 등불을 손에 들고 계단을 올라가는 캐서린의 표정(사진)이 목석의 그 것처럼 차갑고 단호하다.
아버지로부터 잔인에 관해 한 수 배운 캐서린의 모리스에 대한 복수가 통쾌할 정도다. 그런데 몬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로 그런 탓이어서인지 나는 영화를 볼 때마다 ‘사랑에 통곡’하는 그에게 다소 동정이 가곤 한다. 여인의 해방과 독립 그리고 자존회복에 관한 드라마이기도 한데 디 해빌랜드가 엄격할 정도로 절제된 연기를 해 오스카 주연상을 탔다. 이 밖에도 음악(아론 코플랜드)과 의상 및 미술상 등을 탔다. 
디 해빌랜드는 작년에 할리웃 황금기의 라이벌 스타들인 베티 데이비스와 조운 크로포드의 경쟁의식을 다룬 미니 시리즈 ‘불화:베티와 조운’(Feud:Bette and Joan)을 제작, 방영한 케이블 TV FX를 상대로 LA법원에 명예훼손 등의 이유로 소송을 제기해 큰 화제가 됐었다. 시리즈에서 디 해빌랜드 역은 캐서린 제이타-존스가 맡았는데 디 해빌린드는 시리즈가 자기 허락도 없이 자신을 가십이나 재잘대며 라이벌 스타였던 여동생 조운 폰테인을 욕하는 천박한 여자로 묘사했다고 고소한 것. 그러나 1심과 항소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사랑아 나는 통곡 한다’가 Criterion에 의해 새로 프린트된 DVD로 나왔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기생충’


봉준호(49)가 감독한 자본주의 병폐를 파헤친 가족 드라마 ‘기생충’(Parasite·사진)이 최근 폐막된 칸영화제서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탔다. 올해로 100주년을 맞는 한국영화로선 최초의 수상이다. ‘기생충’과 함께 경쟁부문에 오른 작품의 감독들로 이미 대상을 탄 테렌스 맬릭, 쿠엔틴 타란티노, 켄 로치 및 다르덴 형제들을 물리친 쾌거다.
한국영화는 그동안 칸영화제서 감독상(‘취화선’의 임권택), 여우주연상(‘밀양’의 전도연) 및 각본상(이창동의 ‘시’) 등을 탔는데 경쟁부문에 16번이나 도전했으나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봉감독은 2년 전 ‘옥자’로 경쟁부문에 오른 뒤 두 번째 도전으로 경사를 맞았다.
‘기생충’이 대상을 타면서 벌써부터 작년에 같은 상을 탄 일본의 히로카주 고레-에다 감독의 ‘어느 가족’이 오스카 외국어영화상을 탔듯이 ‘기생충’도 그럴 가능성이 있지 않겠느냐는 다소이른 예측이 나돌고 있다. 그러나 비록 ‘어느 가족이’ 오스카상을 타긴 했지만 10명 안팎의 칸영화제 심사위원들과 8,000여명의 아카데미회원들의 취향은 현격한 차이가 나 섣부른 낙관론은 금물이다.
칸영화제 대상 수상작들은 종종 지나치게 예술성에 치중해 대중성이 희박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대상을 받았으나 타작수준에 머무르는 재미라곤 자취를 감춘 영화들이 한 둘이 아니다. ‘나, 대니얼 블레이크’ ‘코끼리’ ‘전생을 회상할 수 있는 분메삼촌’ ‘댄서 인 더 다크’ 및 ‘와일드 앳 하트’ 등이 그런 것들. 그러나 봉감독은 예술성과 대중성을 잘 조화시킬 줄 아는 감독으로 ‘기생충’은 현재 한국에서 빅히트 중이다.
나는 봉감독을 LA에서 몇 차례 만난 적이 있다. 9년 전에 그의 영화 ‘마더’와 2년 전에 ‘옥자’ 홍보차 왔을 때다. 떠거머리 총각 모습에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그는 사람이 내적으로 든든하면서도 소박하고 겸손해 정이 갔다. 그는 각본을 쓰고 감독을 겸하는 작가주의 감독으로 역시 이 범주 안에 드는 박찬욱, 이창동, 홍상수 및 김기덕 등과 함께 세계가 알아주는 감독이다. 
봉감독은 장르를 뛰어넘으며 다양한 작품을 만들지만 특히 스릴러에 능하다. 그래서 서스펜스 스릴러의 장인인 히치콕을 좋아한다.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등이 다 스릴러로 이로 인해 할리우드에서 스릴러각본이 많이 온다고 한다.
그의 작품이 비평가들로부터 찬사를 받는 이유 중 하나가 장르를 선택하면서도 그 것을 있는 그대로 따르기보다 변형을 시키기 때문이다. 이렇게 장르의 변형적 연출을 통해 오락성과 개인적 색채가 강한 예술성을 잘 결합할 줄 아는 감독이다.
봉감독이 ‘마더’로 LA를 방문한 것은 주연인 김혜자가 필자가 속한 LA영화비평가협회에 의해 2010년도 최우수 주연여배우로 뽑혔기 때문이었다. 시상식에 김혜자와 동석한 그는 “처음에 소식을 들었을 때 충격을 금치 못했지만 참으로 당연한 일”이라고 소감을 털어놓았다.
이어 봉감독은 “아직도 영화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현재 내 자신의 스타일을 찾아가고 있다”면서 ‘마더’까지가 자기 영화생애의 초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의 말대로 봉감독은 ‘마더’ 이후 만든 ‘설국열차’로 세계적 감독의 대열에 참여했고 ‘옥자’에 이어 ‘기생충’으로 명실공한 일급 세계감독의 반열에 올라섰다.
그래픽 디자이너인 아버지로 인해 집안 분위기가 봉감독을 초등학생 때부터 영화 쪽으로 몰고 갔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방안에 처박혀(다소 대인 기피증이 있다고) 주한미군 방송 AFKN-TV에서 방영하는 영화를 보면서 영화인의 꿈을 키우게 됐다. TV가 그의 시네마테크였다.
그 때 본 영화 중 깊은 충격과 감동을 받은 것이 프랑스의 앙리-조르지 클루조기 감독하고 이브 몽탕과 샤를르 바넬이 나온 서스펜스 스릴러 ‘공포의 보수’. 꼬마 때 이런 영화를 좋아했으니 상당히 조숙한 사람이다. 영화를 보면서도 대사를 몰라 상상으로 내용을 그리곤 했는데 그 뒤로 헛것을 자주 보는 버릇이 생겼다고. 이 헛것이야 말로 예술가의 비전이겠다. 그가 좋아하는 또 다른 감독들로는 김기영, 쇼헤이 이마무라(‘뱀장어’로 칸영화제 대상 수상) 그리고 조나산 데미. 
봉감독은 필자와의 인터뷰 끝에 “제작비에 대한 예의로라도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는 영화를 만들고 싶지만 돈을 추구한다거나 내용을 타협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결의가 단단해 보였다.
‘기생충’은 그가 만들겠다고 다짐한 작은 영화에 속한다. 백수가족의 가장 김기택(봉감독과 함께 4편의 작품을 만든 송강호)의 장남 기우(최우식)가 자기 신원을 속이고 부잣집 박사장의 큰 딸의 과외공부 교사로 입주한 뒤 기우의 가족들이 하나씩 박사장의 집으로 진입해 기생한다는 내용. 빈부격차가 심한 ‘헬 조선’의 어두운 이면과 탐욕과 계급 간 갈등을 그린 블랙코미디이자 비극이요 스릴러 기운마저 감도는 현대판 우화라는 평을 받았다. ‘기생충’은 미국에서는 네온(Neon)사에 의해 10월 11일에 LA와 뉴욕 등 대도시에서부터 개봉된다. 이 때 개봉하는 이유는 시상시즌에 맞추기 위해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케이 세라 세라’


나는 아직도 내가 중학생 때 서울 남영동에 있던 성남극장에서 본 히치콕의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에서 도리스 데이(사진)가 부르는 노래 ‘케이 세라, 세라’를 들으면서 노래가 참 좋구나하고 감탄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데이가 제임스 스튜어트의 아내로 나온 이 영화는 스릴러의 거장 히치콕의 영화치곤 타작이다.
노래의 원제는 ‘왓에버 윌 비, 윌 비’이지만 ‘세상만사 다 필연적이다’라는 뜻을 지닌 ‘케이 세라, 세라’로 더 잘 알려진 이 노래는 데이의 상표가 된 곡으로 오스카 주제가상을 탔다. 이 노래는 한국에서도 크게 유행했는데 ‘될 대로 되라’하면서 신세 한탄하는 사람들이 후렴처럼 빌려 쓰기도 했다.
배우이자 가수요 동물애호가로 미국의 국보급 존재였던 데이가 13일 캘리포니아주 카멜에서 97세로 타계했다. 데이하면 연상되는 모습이 깨끗하고 단정하고 착한 이웃집 아주머니의 그 것이다. 배우와 가수로서 데이의 인기가 절정을 이룬 1950년대 태평성대를 누리던 아이젠하워 시대에 딱 맞는 사람이었다. 데이는 이렇게 현모양처 형이면서도 야릇한 성적매력을 발산했는데 그의 목소리도 감칠맛 나게 달콤하면서도 어딘가 관능적이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가수로 연예계 생활을 시작한 데이는 연기보다는 노래가 더 낫다는 생각이다. 데이의 연기는 무던한 편으로 그가 나온 많은 영화들이 로맨틱 코미디여서 보기엔 즐거우나 탁월한 연기력을 발휘할 장르가 아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걸쳐 미국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흥행몰이를 했던 데이는 생애 39편의 영화에 나와 록 허드슨과 공연한 로맨틱 코미디 ‘필로 토크’로 딱 한번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데이와 허드슨은 이 영화 외에도 또 다른 로맨틱 코미디 ‘러버 컴백’과 ‘센드 미 노 플라워스’등에서 좋은 콤비를 이뤘었다.
데이가 나온 또 다른 로맨틱 코미디들로는 클라크 게이블과 공연한 ‘티처스 펫’ 리처드 위드마크와 공연한 ‘터널 오브 러브’, 데이빗 니븐과 공연한 ‘플리즈 돈 이트 더 데이지스’및 제임스 가너와 공연한 ‘무브 오버, 달링’ 등이 있다. 데이의 마지막 영화는 역시 로맨틱 코미디로 브라이언 키스와 공연한 ‘위드 식스 유 겟 에그롤’이다. 이들은 다 그저 기분 좋고 따스한 무공해 영화들이다. 
그게 그거 같은 이런 영화들을 제치고 데이가 십분 연기력을 발휘한 영화가 웨스턴 뮤지컬 ‘컬래미티 제인’이다. 데이는 여기서 서부시대 실제 인물이었던 총 잘 쏘는 괄괄한 남자 스타일의 컬래미티 제인으로 나와 맹렬한 연기를 한다. 여기서 데이가 부른 주제가 ‘시크릿 러브’도 오스카 주제가상을 탔는데 이 영화는 데이가 가장 좋아하는 자기 작품. 데이의 상대역인 전설적인 서부의 총잡이 와일드 빌 히칵으로는 하워드 킬이 나온다.
그리고 뮤지컬 드라마 ‘러브 미 오어 리브 미’에서는 1920년대 시카고의 실제 갱스터였던 마틴 스나이더(제임스 캐그니)의 가수 연인 루스 에팅으로 나와 호연했다. 또 스릴러 ‘미드나잇 레이스’에서는 스토커에 시달리는 부잣집 아내(남편 역은 렉스 해리슨)로 나와 자주 비명을 질러대면서 색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데이는 ‘케이 세라, 세라’와 ‘시크릿 러브’ 외에도 수많은 히트곡들을 냈는데 그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센티멘탈 저니’와 ‘이츠 매직’ 그리고 ‘바이 더 라이트 오브 더 실버리 문’이다. ‘센티멘탈 저니’는 1945년에 나와 2차대전 참전 미군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데이는 생애 뒤 늦게 2011년 자신의 히트곡 모음집 ‘마이 하트’를 출반했는데 이 음반은 나도 갖고 있다.
데이는 2011년 LA영화비평가협회에 의해 생애업적상 수상자로 뽑혔다. 그러나 2012년 1월에 열린 시상식만찬에는 참석치 않고 대신 집에서 전화로 보낸 고맙다는 메시지를 들었던기억이 난다. 데이는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가 매우 사랑한 스타였다. 생애업적상인 세실 B. 드밀상을 비롯해 무려 세 차례나 인기상을 탔다.
온화하고 상냥한 모습으로 가정생활도 평탄할 것 같았던 데이는 뜻 밖에도 결혼생활은 불행했다. 모두 네 차례 결혼했는데 세 번째 남편 마티 멜처는 데이가 벌어놓은 돈 2,000만달러를 아내 몰래 투자해 탕진하고 50만달러의 빚까지 남기고 죽었다. TV출연을 싫어하는 데이가 1968년 CBS의 ‘도리스 데이 쇼“의 호스트를 수락한 까닭도 파산에서 벗어나고 죽은 남편의 동업자를 상대로 제기할 소송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데이는 1970년대 초 은퇴해 카멜에서 동물애호가로 활동했다.
신시내티에서 출생한 도리스 데이(본명 도리스 카펠하프)는 처음에 10대 때부터 재능을 보인 댄서로 활동하려고 했으나 교통사고로 다리를 크게 다쳐 포기했다. 이어 라디오쇼에서 노래하는 데이의 음성을 들은 신시내티의 밴드리더 바니 랩이 데이를 자기 나이트클럽 쇼에 출연시키면서 가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데이는 생애 총 30곡의 탑20를 기록했다. 미국의 스윗하트라 불리던 데이는 이제 저 세상으로 ‘센티멘탈 저니’를 떠났다. 페어웰 도리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9년 5월 13일 월요일

‘허슬’ (The Hustle)


서로 닮은 데라곤 없는 두 사기꾼 페니(왼쪽)와 조세핀이 다음 행동을 위해 논의를 하고 있다.

뚱보-미녀 콤비, 부자 남자 등치는 코미디 사기극


잘 나가는 두 스타 레벨 윌슨과 앤 해사웨이가 동료 사기꾼들로 나와 터무니없는 소리와 행동을 해대는 참으로 한심한 영화로 창작력을 상실한 할리웃 스튜디오의 또 하나의 꼴불견의 해프닝과도 같은 작품이다. 
이 영화는 말론 브랜도와 데이빗 니븐이 나온 ‘베드타임 스토리’(1964)와 이를 리메이크한 스티브 마틴과 마이클 케인이 주연한 ‘더티 로튼 스카운들러’(1988)의 두 번째 리메이크로 이번엔 주인공들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했다.
화사한 외면에 비해 내용은 영양실조에 걸린 지저분하고 시끄럽고 싸구려 분 냄새가 나는 영화로 마치 잘못 만든 무성영화 시대의 홀쭉이와 뚱보 코미디언 콤비였던 로렐과 하디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뚱보 코미디언 윌슨이 제작까지 했는데 영화에서 계속해 뚱뚱한 자기를 비하하는 농담을 하는 것을 살이 찐 여성관객들이 보면 어떻게 느낄 것인가 하고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그리고 이 영화는 탐욕이 좋다고 찬양하는 물질만능주의 영화이기도 하다.
영국 태생의 조세핀(해사웨이)은 절경인 프랑스 남부 해안 휴양지에 고급주택을 소유한 패션감각이 뛰어난 콧대 높은 부자인데 재미로 자기 미모를 미끼로 마을 카지노에서 도박을 하는 부자 남자들을 상대로 사기를 쳐 거액의 돈이나 보석 등을 사취한다. 
미국 중부의 싸구려 술집에서 일하는 호주태생의 페니(윌슨)는 온라인에서 만난 남자와 데이트를 시도하나 매번 실패한다. 그래서 큰 마음먹고 유럽에 가서 돈 많은 남자 노리겠다며 유럽에 도착해 기차에 오른다. 그리고 페니는 객차의 자기 앞에 앉은 남자를 상대로 사기를 치는데 이를 주시하는 사람이 기차에 동승한 조세핀.
이를 계기로 모양과 성격이 판이한 둘은 사기꾼 팀메이트가 되는데 먼저 페니는 자기보다 한 수 높은 조세핀으로부터 남자들을 등쳐먹는 방법을 배운다. 이 과정에서 페니는 자신의 뚱뚱한 몸을 혹사해가면서 넘어지고 자빠지고 하는데 눈이 먼 여자로까지 위장해 흰 지팡이를 휘두른다. 이를 옆에서 보고 있는 조세핀이 어떻게나 자주 화려한 드레스를 바꿔 입고 나오는지 마치 패션쇼를 보는 것 같다. 그런데 둘은 주로 여자 알기를 우습게 아는 남자들을 성대로 사기를 친다고 주장하는데 허튼 소리다. 
여하튼 여러 남자가 조세핀과 페니의 봉이 되는데 이들이 큰돈을 노리고 봉으로 겨냥한 남자가 어리숙한 젊은 하이텍 억만장자(알렉스 샤프). 둘이 사기 칠 액수는 자그마치 500,000달러. 해사웨이와 윌슨은 서로 상부상조해 팀웍을 이룬다기보다 각자가 따로 놀면서 서로를 상대로 소리를 질러대 시끄럽다. 이런 넌센스 코미디가 지녀야 할 광적인 불꽃이 튀지 않는 창백하기 짝이 없는 영화다. 크리스 애디슨 감독. PG-13.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내 아들’ (My Son)


쥘리앙(왼쪽, 기욤 카네)과 마리가 실종된 아들의  자연공부 캠프장에서 슬픔에 젖어 있다.

“실종된 아들 찾아라”추적 나선 아버지… 기욤 카네, 절망감·긴장 넘치는 연기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올랐던 1차대전 드라마 ‘메리 크리스마스’(2005)를 연출한 프랑스의 크리스티앙 카리옹 감독과 영화에 주연한 기욤 카네가 다시 콤비가 되어 만든 가족 드라마이자 납치 스릴러로 이런 내용을 다룬 다른 여러 영화들보다 특별히 다른 점은 없지만 카네의 영육을 쥐어짜는 듯한 연기가 시종일관 긴장감을 조성, 볼만하다.
상영시간 85분짜리 짧은 영화로 실종된 어린 아들을 찾기 위해 물불을 안 가리는 아버지의 절망감과 경찰의 도움을 뿌리치고 단독으로 아들의 행방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암담하기 짝이 없는 분위가 발생하면서 순조로운 호흡을 방해한다. 다소 터무니없는 점이 있긴 하나 즐길만한 영화다. 
한 겨울. 직업 때문에 국내와 해외 출장이 잦은 쥘리앙(기욤 카네)에게 프랑스 동부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 사는 전처 마리(멜라니 로랑)로부터 공포에 질린 다급한 전화가 걸려온다. 자연 공부 캠프에 간 7세난 아들 마티스(리노 파파)가 밤새 실종됐다는 내용이다. 
황급히 차를 몰고 자기가 살던 마을로 달려온 쥘리앙과 경찰(모아메드 브리카)간의 인터뷰 과정에서 쥘리앙의 생활의 면모가 밝혀진다. 그의 잦은 출장으로 마리와 갈등을 일으켜 둘은 몇 년 전에 이혼했다는 사실이 쥘리앙과 마리의 대화를 통해 알려진다. 
쥘리앙이 아들의 실종에 더욱 안타까워하는 이유는 그가 이혼 후 자기를 매우 사랑하는 아들을 거의 찾아보지 않았다는 죄책감 때문. 한편 마리는 동네에 사는 그레과(올리비에 드 베놔스)를 새 애인으로 삼아 동거 중이다.
아들의 실종에 미칠 것 같은 쥘리앙은 그레과와 대화를 나누다가 그레과가 마티스에 대해 무관심한 것에 분노 그를 사정없이 구타한다. 그리고 쥘리앙은 그레과가 마리와 단둘이 오붓하게 살려고 마티스를 납치했다고 까지 생각한다.
이어 쥘리앙은 규칙대로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을 무시하고 자기 나름대로 마티스의 실종을 납치라고 확신하고 아들을 찾아 나선다. 잿빛 날씨의 음침한 환경(촬영이 좋다) 속에 사방팔방으로 차를 몰고 다니면서 아들을 찾는 쥘리앙을 보고 있자니 속이 탄다.  
그런데 쥘리앙이 경찰을 따돌리고 혼자서 유능한 수사관처럼 아들의 납치사건을 풀어나간다는 것이 쉽게 믿어지질 않는다. 그리고 결말도 유럽영화 같지가 않다. 카네 외에도 많은 장면에 나오진 않지만 로랑의 초조와 비통 그리고 공포와 불안에 시달리는 어머니 모습의 연기도 훌륭하다. PG-13.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롱 샷’ (Long Shot)


플라스키가 필드의 두 참모들이 자켜보는 가운데 자기가 쓴 연설문을 필드(오른쪽)에게 보여주고 있다

황당 정치·로맨스 뒤섞인 할리웃판 풍자영화


터무니없는 소리 하고 있네. 구태의연하고 황당무계한 소리 하면서 억지를 부리는 전형적인 할리웃 스튜디오의 표본과도 같은 영화로 믿거나 말거나 하는 마음가짐으로 보면 그런대로 즐길 만은 하다. 
13세 때 자기를 베이비시팅한 3세 연상의 아름다운 여자를 사랑한 소년이 20여년 후 신문기자로서 대통령 후보로 나선 이 베이비시터의 연설문 작성자로 고용되면서 둘 사이에 사랑이 영근다는 로맨틱 코미디인데 끝이 영 설득력이 없다. 
마구잡이로 각본을 쓴 작품으로 꿈같은 소리하고 있는데 샬리즈 테론이 보기 드물게 코미디에 출연해 호기심 거리는 된다. 그런데 테론과 그의 상대역으로 나온 코미디언 세스 로건 간의 궁합이 썩 좋지가 않아 둘의 로맨스에서 열기를 못 느끼겠다. 
처음에 심층취재 기자 프레드 플라스키(세스 로건)가 나치 백인 우월주의자 단체를 위장취재하다가 들통이 나는 에피소드로 시작된다. 이어 플라스키는 편집국장(한국계 랜달 박)으로부터 신문사가 폭스 스타일의 언론사 재벌인 웸블리(앤디 서키스)에게 팔렸다는 말을 듣고 직장을 때려친다. 
플라스키는 실직의 슬픔을 달래려고 끝발이 좋은 친구 랜스(오셰이 잭슨 주니어)를 불러내 술을 마시다가 랜스를 따라 언론사 유명인사들과 정치인들이 모인 맨해탄의 파티에 참석한다. 여기서 플라스키는 웸블리를 만나 그의 언론사가 국가에 백해무익한 것이라고 성토를 한다. 
이를 주시하는 여자가 미 국무장관 샬롯 필드(테론). 필드는 플라스키를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필드에게 다가간 플라스키가 “당신은 내가 어렸을 때 나의 베이비시터였다”고 말한다. 
필드는 이어 대통령후보가 되는데 그 사연이 웃긴다. 현 대통령인 체임버스(밥 오덴커크)는 TV에서 대통령으로 나온 코미디언(막 우크라이나 대통령으로 뽑힌 TV 코미디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생각난다) 출신으로 TV로 복귀하겠다며 재출마를 포기했다. 이 영화는 상당히 정치적으로 정치 풍자영화라고 해도 좋다. 
그런데 필드는 어렸을 때부터 정치성이 강한 소녀여서 결국 국무장관까지 됐는데 그래서 팝문화나 재미와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필드에게 부족한 것이 유머. 필드는 과거 플라스키의 기사를 읽고 즉흥적인 위트에 감탄한 바가 있어 그를 자기 연설문 작성자로 고용한다. 이에 결사반대하는 것이 필드의 두 고위 참모들. 그래서 이들은 플라스키를 내쫓으려고 온갖 사보타지 행위를 시도한다. 
필드는 자신이 슬로건으로 내건 환경문제에 대해 전 세계가 동참하도록 촉구하기 위해 세계순방에 나서는데 플라스키도 이에 동행하면서 연설문을 작성한다.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일어난다. 
그리고 필드는 서서히 플라스키에게 애정을 품게 되는데 필드가 덥수룩하니 수염을 기르고 막 자다 일어나 운동복 바람으로 밖에 나온 사람 모양의 어른아이와도 같은 필드를 사랑하게 되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플라스키의 순진함과 자신을 생각하지 않는 정의감에 반해서일까. 
둘 사이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필드의 두 참모들은 필드에게 은근짜를 놓는 캐나다의 독신 수상 제임스 스튜어드(알렉산더 스카스가드)와 필드를 짝지으려고 애쓴다. 그러나 백약이 무효.
대선의 열기가 깊어지면서 필드는 자신과 플라스키의 관계를 국민들에게 공개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고민한다. 그리고 필드는 폭탄선언을 한다. 과연 필드는 미 역사상 최초의 여대통령이 될 것인가. 조나산 리바인 감독. R등급. Lionsgate.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그림자’ (Shadow)


지유(오른쪽)와 징이 음양무늬의 바닥에서 무술 훈련을 하고 있다.

장이모우 감독의 예술적 액션… 대역 장군의 장렬한 전투 볼 만


‘영웅’ ‘연인’ 및 ‘황후화’ 같은 액션이 박진하고 아름다운 무술영화를 잘 만드는 중국의 명장 장이모우의 시각미가 아찔하게 예술적이며 액션이 물 흐르는 듯이 유연하고 박력 넘치는 궁중 드라마다.
음모와 배신과 기만과 로맨스가 복잡하게 연결되고 개인 간의 결투와 대규모 전투 장면이 대담무쌍하게 펼쳐지는 대하서사극인데 매우 진행이 느리고 지나치게 스타일과 외면에 치중한 감이 있는 반면 내용 서술이 실하게 처리되지 못한 감이 있다.
참으로 장관인 것은 묵화를 그린 것 같이 먹물 단색으로 찍은 화면이다. 흑백의 아름다움이 칼라보다 더욱 진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데 가끔가다 칼라로 인간의 육체와 대나무의 잎 그리고 사방으로 흩뿌려지는 피를 흑백과 대치하면서 장관을 이룬다.
이런 아름다운 화면과 마치 춤을 추는 듯한 개인 간의 액션 장면 그리고 대규모의 군중 전투장면 등 예술적으로 처리된 외형미와 스타일은 경탄스럽지만 인물들의 성격개발이나 이야기의 막힘이 없는 흐름이 제대로 안 된 것이 아쉽다. 그러나 촬영과 액션 안무 그리고 디자인 등은 참으로 훌륭하다.
내용은 ‘삼국지’를 재구성한 것이다. 페이 국의 비겁하고 자기만족에 빠진 왕 페일리앙(젱 카이)은 라이벌 나라에게 자기 영토인 징조우를 빼앗기고도 더 이상의 정쟁만 없다면 된다며 현상유지에 만족한다. 심지어 적국의 왕에게 자기 여동생 큉핑(구안 시아오통)을 첩으로 보내겠다고 다짐한다.
이런 왕의 뜻을 어기고 적국의 창을 잘 쓰는 양장군(후진)에게 도전하는 것이 페이 국의 용맹한 장군 지유(뎅 차오). 그러나 이 혈기 방장한 지유는 진짜 본인이 아니라 자기와 똑 같이 생긴 징(뎅 차오). 지유는 지난 전투에서 심한 부상을 입고 지하에 숨어 있으면서 자기가 훈련시킨 징으로 하여금 자기 ‘그림자’가 돼 궁정에서 활동하도록 한 것. 이를 아는 유일한 사람은 지유의 아내 시아오 아이(순 리). 그런데 시아오 아이가 가짜 장군 징에게 사랑을 느끼면서 묘한 삼각관계가 발생한다.
지유가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기 위해 자기가 훈련시킨 부하들을 동원해 공격을 시도하면서 장렬한 전투가 벌어진다. 무술 안무가 형용하기 힘들 정도로 이름다운데 특히 지유와 징 그리고 시아오 아이 3인이 보여주는 무술장면이 우아하고 치명적인 궁중무를 보는 것 같이 멋있다.
영화에서 또 하나 볼만한 것은 무기와 방패로 써지는 우산. 방패로 써지던 우산이 조각조각 갈라지면서 쇠 날들이 날아가 상대를 쓰러트린다. 그리고 우산은 또 마치 큰 접시처럼 되어 사람이 타고 질주하는 용구로도 써진다. WellGo.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하얀 까마귀’ (The White Crow)


파리에 도착한 누레예프가 카페에 앉아 자유분방한 거리풍경을 주시하고 있다.

서방 망명한 러시아 발레 스타 누레예프의 전기


1961년 공연차 방문한 파리에서 서방세계로 망명한 러시아의 수퍼스타 발레댄서 루돌프 누레예프의 전기영화로 배우 레이프 화인스의 세 번째 감독 작품이다. 영화에서 누레예프의 발레 선생으로도 나와 대사를 러시아어로 구사하는 화인스는 연출과 연기를 다 착 가라앉은 솜씨로 다루고 있다. 연출력이 섬세하다.
많은 발레 장면과 누레예프의 인물과 성격묘사 그리고 그의 파리에서의 생활과 마지막 망명 시도 등 극적인 부분을 골고루 다루고 있는데 칙칙한 단색으로 처리한 회상장면이 너무 많아 서술이 산만하다. 예술을 좋아하는 팬들이 즐길 영화로 누레예프로 스크린에 데뷔한 우크라이나의 발레 댄서인 올렉 이벤코의 연기가 카리스마가 부족하긴 하나 그만하면 잘한 편이다. 제목은 줏대가 너무 강해 무리에 잘 섞이지 못하는 외톨이를 가리킨다.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 누레예프는 어렸을 때부터 댄스에 재능을 보여 국립댄스학교에서 수련을 받는다. 성장한 그는 레닌그라드의 저명한 발레교사 알렉산더 푸쉬킨(화인스)의 제자가 된다. 그런데 누레예프는 오만하고 반항적이며 집단 위주의 소련에서 개인의 권리를 주장해 학교의 관리들과 충돌을 한다.
푸쉬킨은 누레예프의 재능과 최고가 되겠다는 야망을 파악, 그를 정성껏 지도하는데 누레예프에게 관심을 보이는 또 다른 사람이 푸쉬킨의 아내 세니아(출판 카마토바). 세니아는 남편의 코앞에서 누레예프를 유혹해 정사를 나눈다. 영화에서 누레예프는 양성애자로 나오는데 그는 1993년 에이즈로 사망했다.
학교를 졸업한 뒤 누레예프는 키로프 발레단원이 된다. 그리고 발레단은 1961년 5주간의 프랑스 공연차 파리에 도착한다. 파리에 묵는 동안 누레예프는 동행한 소련 정보부 KGB 요원의 통금명령과 삼엄한 감시를 무시하고 파리의 문화와 밤의 클럽문화를 즐긴다. 이에 누레예프를 동행하는 사람이 파리에서 사귄 프랑스 댄서 피에르 라코트(라파엘 페로나즈)와 피에르의 친구인 상류층 출신의 육감적인 클라라 생(아델 에사쇼풀로). 
파리에서의 발레 공연장면이 화사하니 멋있다. 이와 함께 파리의 데카당한 밤 문화가 소개된다. 프랑스에서의 성공적인 공연 후 발레단은 런던으로 가기 위해 공항에 도착한다. 여기서 KGB 요원이 누레예프에게 런던이 아니라 혼자 모스크바로 가야 된다는 지시를 내린다. 누레예프의 개인적 활동이 찍혀 호출되는 것이다. 
소련에 돌아가면 자기 인생이 끝난다는 것을 아는 누레예프는 망명을 하기로 결심한다. 정보부 요원들이 누레예프를 둘러싼 가운데 그의 과감한 망명을 돕는 사람이 피에르와 클라라. 특히 클라라가 결정적 역할을 한다. 공항에서의 이 장면이 긴장감 있다. 너무 많은 것을 얘기하려고해 서술에 일관성이 없는 것이 흠이지만 잘 만든 예술적 영화다. 
R등급. Sony Pictures Classics.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