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7월 8일 화요일

모피 입은 비너스(Venus in Fur)

여배우 지망생의 성적 매력에 그만…
로만 폴란스키 감독, 남자의 성적환상 다뤄


연극 감독 토마(마티외 아말릭·오른쪽)는 방다(에마뉘엘 세녜)의 성적 도전에 넋을 잃을 정도다.

여자의 막강한 성적 매력에 녹초가 되고 마는 남자의 우월성을 위트 있고 악마적으로 그린 로만 폴란스키의 자기학대성 쾌락에 빠진 2인극 프랑스 영화로 다시 한 번 전지전능한 여성의 성적 힘에 경배를 드리게 만든다.
미국인 극작가 데이빗 아이브스의 연극이 원작(10월 코스타메사의 사우스코스트 레퍼토리에서 공연한다)으로 신작 발표를 앞둔 감독과 뒤늦게 오디션에 나타난 껌을 질겅질겅 씹는 헤픈 자세의 육체파 배우 지망생의 힘의 균형의 변화와 함께 남자들이 잘못 갖고 있는 여자의 성적 매력에 대한 개념과 남자의 자기학대성 환상을 새카맣게 웃어댄 일종의 풍자영화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극장 안에서 대사로 진행되는데 이런 협소감이 영화의 집념성을 잘 살리고 있으며 두 배우의 뛰어난 연기와 지적이요 때로는 희롱하듯 하면서도 가혹하게 진실한 대사가 재미있다.  
콧대 높은 극작가이자 연극 감독인 토마(마티외 아말릭-폴란스키와 매우 닮아 마치 폴란스키가 출연한 것 같다)가 자신의 차기 작품 ‘모피 입은 비너스’의 주연 여배우 오디션을 끝내고 귀가하려는데 뒤늦게 큰 키에 풍성한 육체를 한 플래퍼 스타일의 방다(에마뉘엘 세녜-폴란스키의 부인)가 들어온다.
껌을 질겅질겅 씹는 방다는 오디션이 끝났다는 토마에게 사정사정하면서 대본을 읽게 해달라고 조른다. 이에 마지못해 방다에게 극본을 읽게 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방다는 연극 속의 주인공인 방다(이름이 같다)의 내성을 마치 자기 것 같이 잘 알아 대본을 기차게 잘 익어낸다.
여기서부터 극적 굴곡이 교묘하게 높낮이를 이루면서 신과도 같은 감독과 보잘 것 없는 오디션 참가자 간의 힘의 균형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한다. 토마는 방다의 역해석과 거의 완벽한 낭독에 아연실색하면서 감탄을 한다. 감탄은 서서히 경탄의 지경에 이르면서 토마는 완전히 방다의 개인적 성적 매력과 배우로서의 능력에 휘말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벌린 입을 닫지 못한다.
방다야말로 또 하나의 팜므 파탈로 남자가 이런 여자에게 한 번 빠지면 패가망신하기 십상인데 과연 토마도(아내에게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오디션을 밤이 늦도록 진행한다) 그랬는지 아니면 오디션 끝에 방다를 발탁했는지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방다는 이제 마치 풀 죽은 강아지처럼 된 토마에게 남자들이 갖고 있는 여자의 남자에 대한 변태적인 성적 지배력에 대한 관념은 순전히 남자 위주의 것이라고 비난하면서 그것은 남자들의 여자 혐오증을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고 대어든다. 
그리고 방다는 토마에게 당신도 순전히 남자의 입장에서 여자를 본 극본을 쓰고 있다면서 옷을 훌훌 벗어젖히고 자기주장을 실증하겠다고 도전한다. 방다의 길고 탐스럽고 미끈한  맨살 다리 밑의 섹시한 검은 하이힐을 신은 발에 입 맞추는 토마. 
세녜와 아말릭의 호흡이 잘 맞는데 기차게 훌륭하고 볼 만한 것은 때론 응석 부리는 순진한 아이 같고 때론 오만방자하고 또 때론 치명적 매력을 지닌 세녜의 자태와 연기다. 이런 여자에게 굴복 당하지 않는 남자는 성인이다. 그리고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유희하는 듯한 음악도 좋다. 성인용. Sundance Select. 10일까지 뉴아트(310-470-0492), 11일부터는 패사디나와 엔시노 및 오렌지카운티에서 상영.  ★★★½(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악으로부터 우리를 구하소서(Deliver Us from Evil)

사실감 있게 그린 악령추방 범죄 스릴러


멘도사 신부(에드가 라미레스)가 산티노를 상대로 악령추방 의식을 행하고 있다.
귀신 도깨비영화 치곤 여느 귀신 도깨비영화보다 짜임새가 있고 긴장감 있으며 또 무섭고  사실감 있는 악령추방 범죄공포 스릴러다. 내용이 실화여서 더욱 놀랍고 무서운데 그렇다면 세상엔 분명히 악마와 그 것을 이기는 신성한 영이 있다는 것을 깨우쳐 준다.
영화의 주인공인 뉴욕의 형사 랄프 사치와 리사 콜리어 쿨이 공동으로 쓴 ‘밤을 조심하라’(Beware the Night)가 원작으로 제작은 ‘카리브해의 해적’을 만든 블락버스터 제작자 제리 브루카이머가 했다. 뉴욕과 아부다비에서 찍었다.
영화는 처음에 이라크전에 참전한 3명의 병사가 동굴 속의 적을 찾아 들어갔다가 그 중 한명이 비명을 지르면서 밤의 비오는 뉴욕 뒷골목으로 장면전환 한다. 쓰레기통에서 영아의 살해된 사체가 발견되고 이를 수사하기 위해 형사 랄프 사치(에릭 바나)가 현장에 온다. 이어서 이 사건과 닮은 끔찍한 살인사건이 계속해 일어나는데 피살자들은 다 악마적 의식행위에 의해 살해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사랑하는 아내 젠(올리비아 먼)과 아이를 둔 랄프는 어렸을 때만 해도 가톨릭 신자로 그 뒤 인간의 만행을 못 본 척하는 신의 처사에 불만을 품고 믿음을 버림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는 늘 신에 대한 어떤 감정이 도사리고 있다. 
어느 날 랄프에게 홈리스 차림의 신부 멘도사(에드가 라미레스)가 찾아와 피살자 중 한 사람이 자기가 돌보던 귀신 들린 여자라면서 이 사건이 단순 살인사건이 아니라 악마의 행위라며 수사에 동참하겠다고 제의한다. 랄프는 처음에 그게 무슨 도깨비 소리냐고 들은 척도 안 하다가 점차 일반 상식으로는 이해 못할 일들이 벌어지면서 멘도사와 자기 파트너 버틀러(조엘 맥헤일)와 함께 사건을 파고든다. 
그리고 사건의 핵심인물로 이라크전에 참전했던 산티노(션 해리스)가 지목되는데 그의 집을 뒤진 결과 벽에 해독할 수 없는 문자들이 적혀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런데 이 글들은 산티노가 이라크의 동굴에 들어갔을 때 목격한 뒤 귀신에 들린 것과 또 같은 것이다(악령추방 영화의 금자탑인 ‘엑소시스트’도 이라크 지하에서 악령이 나온다).                
산티노의 최후 목표는 믿음을 버린 랄프. 마침내 랄프는 산티노를 체포한 뒤 멘도사 신부와 함께 둘이서 산티노에 대한 악령추방 의식을 치르는데 굉장히 오랫동안 행해지는 이 의식이 진짜로 겁난다. 랄프는 이 사건 해결 후 경찰을 떠나 다시 믿음을 찾고 멘도사 신부를 돕는 일을 하고 있다. 스캇 데릭슨 감독. R. Screen Gems. 일부 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추악한 놈 투코’


흑색이 백색보다 더 강렬하고 어두운 것이 밝은 것보다 더 음모적이며 커브가 직선보다 더 멋있고 죄인이 성인보다 더 구할 것이 많듯이 악인이 선인보다 훨씬 더 매력적이다.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에 넘어간 것도 악의 치명적 매력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악의 선을 제친 매력과 유혹은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로 지금까지 맹위를 떨치고 있는데 이런 악의 막강한 위력과 매력 때문에 우리는 선인보다 악인을 더 기억하고 즐기고 또 선호하기까지 한다.
영화에 나온 악인이 선인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릭 골드핑거(게르트 프레뵈)가 제임스 본드(션 코너리)보다 더 흥미 있고 ‘케이프 피어’에서 자기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변호사 샘(그레고리 펙)의 가족을 위협하는 사이코 맥스(로버트 미첨)의 벌거벗은 야수성에 주눅이 들게 되는 것도 ‘배디’들의 그늘진 매력 때문이다. 
늘 좋은 사람이나 영웅으로만 나오던 헨리 폰다가 냉정한 킬러 프랭크로 나온 ‘옛날 옛적 서부에’에서 그가 검은 모자에 검은 부츠 그리고 검은 옷을 입고 가차 없이 사람을 쏴 죽이던 모습과 사람 간을 안주로 키안티를 즐기던 한니발 렉터(앤소니 합킨스)의 식인에 공포와 함께 가학적인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것도 역시 이들의 악마성 때문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악인은 ‘제3의 사나이’의 해리 라임(오손 웰스)이다. 그는 전후 비엔나에서 물탄 페니실린을 팔아 어린 생명들을 희생시키면서 이득을 챙기고도 후회하지 않는 양심을 잊은 자. 그런데도 안나(알리다 발리)가 이 지적이요 냉소적인 악인을 사랑하는 것은  그의 검은 구름과도 같은 카리스마 때문일 것이다. 
악한 여자로 나와 영원히 기억될 여자들도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사악한 여자는 아마도 ‘이중배상’에서 보험회사 직원(프레드 맥머리)과 짜고 남편을 살해한 필리스 디트릭슨(바바라 스탠윅)일 것이다. 이에 버금가는 간부가 ‘우체부는 항상 벨을 두 번 누른다’에서 젊은 떠돌이(존 가필드)와 짜고 나이 먹은 여관주인 남편을 살해한 젊은 아내 코라(라나 터너)다. 이들은 모두 팜므 파탈로 소위 남자 잡는 여자들이다. 
많은 영화와 연극과 TV에 나왔으면서도 유독 두 번의 악역 때문에 영원한 악인으로 기억될 일라이 월랙이 6월24일 고향인 뉴욕에서 98세로 사망했다. 말론 브랜도, 몬고메리 클리프트 및 폴 뉴만과 함께 엘리아 카잔이 세운 액터스 스튜디오의 창립멤버인 월랙은 무대배우 출신으로 특히 테네시 윌리엄스의 작품 해석에 뛰어났다. 그는 1951년 윌리엄스의 ‘장미의 문신’으로 토니상을 탔다.
내가 월랙의 간사하고 교활하면서도 미소를 결코 잊지 않는 철저한 악인의 모습을 처음으로 본 것은 존 스터제스가 감독한 웨스턴 ‘황야의 7인’에서였다. 아키라 쿠로사와의 ‘7인의 사무라이’를 미국 판으로 만든 것으로 율 브린너, 스티브 맥퀸, 찰스 브론슨, 제임스 코번 및 로버트 번 등 기라성 같은 스타들이 나오는 액션이 콩 튀듯 하는 명작이다. 이런 액션을 엘머 번스틴의 질주하는 듯한 음악이 박력 있게 뒷받침해 주고 있다. 
월랙은 여기서 멕시코의 작은 깡촌을 정기적으로 터는 산적 두목으로 나온다. 지저분한 모습의 산적 주제에 비단셔츠를 입고 도금한 앞니를 드러낸 채 여우처럼 미소를 지으며 설교조의 사설을 늘어놓으면서 악행을 일과처럼 저질러 더욱 얄미운데도 미워할 수 없는 악인의 매력을 풍긴다. 그래서 그가 끝에 율 브린너의 총에 맞아 죽을 때 섭섭하기까지 했다. 
월랙의 칼베라 역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공연한 ‘황야의 무법자 시리즈’ 제3편 ‘선인, 악인 그리고 추악한 놈’에서의 추악한 놈 투코 역을 위한 리허설이라고 해도 좋다.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도 그는 황금에 눈이 먼 멕시칸으로 나와 간악한 목적을 위해선 수단방법을 안 가리는 킬러로 나온다. 늘 경계심을 못 늦춘채 교활하게 눈알을 굴려가면서 감언이설과 가짜 미소를 지으면서 마치 악역을 즐기는 장난꾸러기 아이 같이 굴다가 갑자기 총을 뽑아 사람을 쏴 죽인다. 이 역 때문에 투코와 월랙은 동명이인이 되다시피 했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이색적인 음악이 강한 인상을 남기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가관이다. 탐욕스런 투코가 남군이 숨겨놓은 거액의 군자금을 차지하려고 자기가 ‘블론디’라 부르는 이스트우드를 집요하게 따라붙으며 성가시게 굴자 블론디는 투코를 붙잡아 묘지의 십자가 위에 세운 채 나무에 그의 목을 매단다(사진). 투코는 바둥바둥 몸부림을 치면서 말을 타고 떠나가는 블론디를 향해 “블론디, 블론디”하고 소리치는데 총소리가 “빵”하고 난다.
오스카 생애업적상을 받은 월랙의 스크린 데뷔작은 카잔이 감독한 윌리엄스의 연극이 원작인 ‘베이비 달’. 그는 여기서 미시시피주의 다소 멍청한 남자(칼 말덴)에게 시집 온 소녀 신부(캐롤 베이커)를 어르듯 하면서 유혹하는 남자로 나왔다. 이 영화는 월랙이 가장 좋아는 영화다. 월랙의 마지막 영화는 올리버 스톤의 ‘월 스트릿: 머니 네버 슬립스’(2010)다.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