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영화‘디어 헌터’(Deer Hunter·1978)로 영화인으로서 최고의 영광인 오스카 감독상을 탄지 불과 3년만에 할리웃 사상 최악의 불상사로 일컬어지는 서부 개척시대 영화‘천국의 문’(Heaven’s Gate)으로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뒤집어 쓴 마이클 치미노가 지난 2일 77세로 LA에서 사망했다.
‘천국의 문’은 할리웃의 과도 과다와 오스카상을 타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는 감독의 통제할 수 없는 자신 자만감이 낳은 기형적 산물로 꼽히면서 할리웃의 무절제를 경고하는 하나의 교본이 되다시피 한 영화다. 그래서 그 뒤로 이런 종류의 영화를 놓고 그 제목 뒤에 ‘게이트’라는 접미사를 붙이게 됐다.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정치적 스캔들 뒤에 ‘게이트’라는 접미사를 붙이는 것과 같다.
치미노는 뉴욕에서 태어나 예일에서 미술을 공부한 뒤 광고영화를 만들다가 LA로 와 각본을 쓰면서 할리웃에 데뷔했다. 그가 쓴 최초의 작품은 환경문제 공상과학 영화 ‘사일런트 런닝’(Silent Running·1971). 이어 ‘더티 해리’(Dirty Harry)의 속편인 ‘매그넘 포스’(Magnum Force·1973)의 각본을 썼다.
치미노의 감독 데뷔작은 반문화적 분위기를 지닌 로드무비이자 버디무비요 또한 털이영화인 ‘선더볼트와 라이트후트’(Thunderbolt and Lightfoot·1974).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제프 브리지스가 나오는 흥미진진한 작품으로 브리지스가 오스카 조연상 후보에 올랐었다.
그가 두 번째로 감독한 영화가 ‘디어 헌터’다. 펜실베니아주의 한 철강도시를 무대로 베트남전에 참전한 남자들과 도시에 남은 사람들에게 이 전쟁이 미치는 걷잡을 수 없는 영향을 다룬 걸작이다. 로버트 드 니로, 메릴 스트립, 크리스토퍼 월큰(오스카 조연상 수상), 존 새비지 및 존 카제일 등이 나오는 이 영화에서 잊지 못할 장면은 충격적인 ‘러시안 룰렛’ 장면. 필자도 이 영화를 서울의 중앙극장에서 보면서 ‘러시안 룰렛’ 장면에서 엄청난 공포 속에 빠져 깊은 충격을 받았었다.
‘디어 헌터’는 총 9개 부문에서 오스카상 후보에 올라 작품과 감독을 비롯해 모두 5개의 상을 받았고 치미노는 골든 글로브 감독상도 받았다.
이 영화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게 된 치미노의 다음 영화가 그의 야심작 ‘천국의 문’이다. 19세기 말 와이오밍주에서 벌어지는 농부들과 영토를 확장하려는 권력 있는 목장주들 간의 사투를 그린 실화로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이자벨 위페르, 크리스토퍼 월큰, 존 허트, 제프 브리지스 및 샘 워터스톤 등이 나온다.
그런데 이 영화는 치미노가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다고 1800년대 말에 쓰던 기차를 촬영 현장에 옮겨 오는 등 막대한 경비를 소비하면서 당초 1,150만달러로 예상했던 제작비가 무려4,000만달러로 뛰어 오르고 제작과정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 영화가 완성되기도 전에 매스컴의 달갑지 않은 집중조명을 받았다.
치미노의 완벽성 때문에 개봉이 1년씩이나 지연된 뒤 마침내 216분짜리로 개봉됐으나 비평가들의 악평을 받으며 관객의 외면을 받자 영화 제작사인 United Artists(UA)는 개봉 직후 영화를 극장에서 거둬들였다. 그리고 치미노는 영화를 149분짜리로 재편집해 다시 극장에 내놓았지만 이 역시 비평가들과 관객의 철저한 외면을 받았다. 그래서 UA의 모회사인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둔 보험회사 트랜스아메리카는 UA를 MGM에 팔아넘기고 영화사업에서 손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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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오밍주에서‘천국의 문’을 찍고 있는 마이클 치미노(왼쪽 모자 쓴 여자 뒤). |
필자는 216분짜리로 이 영화를 봤는데 매우 훌륭한 영화로 여기고 있다. 와이오밍 현지에서 찍은 빌모스 지그몬드의 수려한 촬영과 대규모 엑스트라를 동원한 박력 있는 액션장면 그리고 장엄한 스케일 및 역사적 냄새가 가득한 세트와 의상 등이 다 좋은 작품이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장점보다 단점을 즐기는 매스컴의 희생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이 영화가 지난 2012년에 디렉터스 컷으로 복원돼 재상영됐을 때 비평가들이 영화의 가치를 재평가했다는 사실이다. 온갖 가십거리가 된 이 영화에 관해 전 UA의 고급 간부 스티븐 바흐가 <파이널 컷: ‘천국의 문’ 제작의 꿈과 재앙>(Final Cut: Dreams and Disaster in the Making of ‘Heaven’s Gate’)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영화로 할리웃의 언터처블이 된 치미노의 다음 영화는 또 다른 물의를 일으킨 ‘용의 해’(Year of the Dragon·1985). 미키 로크가 뉴욕의 차이나타운의 중국계 갱과 대결하는 형사로 나온 이 영화는 중국계 미국인들을 버러지와도 같은 범죄자들로 몰아 묘사해 중국계 커뮤니티로부터 대대적인 항의를 받았었다.
이 영화 후로 치미노는 달랑 3편의 영화를 만들고 본의 아니게 감독으로서의 생애를 마감했 다. 1987년에 만든 ‘시실리안’(The Sicilian)은 ‘대부’를 쓴 마리오 푸조의 소설이 원작으로 크리스토퍼 램버트가 주연했는데 졸작이다. 이어 윌리엄 와일러가 1955년에 만든 ‘필사의 도주’(Desperate Hours·1990)의 신판을 역시 로크를 사용해 만들었으나 원작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치미노의 마지막 영화는 우디 해럴슨이 불치의 병에 걸린 갱스터에게 납치되는 의사로 나온 ‘선체이서’(Sunchaser·1996). 이 역시 졸작이다.
치미노는 지난해에 한 인터뷰에서 “나는 결코 변호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한 일을 알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나는 몇 년 전에 한 파티에 그를 만나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 때 그는 성형수술을 받아 여자 같은 모습(사진)이었는데 내가 “나는 ‘천국의 문’을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하자 “고맙다”고 미소를 지으면서 조용한 음성으로 답례를 했다. 그는 이런 여성적인 모습 때문에 한 때 여자로 성전환한다는 낭설에 시달려야 했다. ‘천국의 문’은 다시 한 번 더 재평가 받아야 될 영화로 DVD로 출시됐으니 구해 보기를 권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