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7월 12일 화요일

캡튼 팬태스틱(Captain Fantastic)


‘파파 베어’같은 아버지 벤과 그가 자연 속에서 키우는 6남매.

6명의 아이를 매우 독특하게 키우는 아버지


루소의 가르침에 따른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자연 속에서 혼자 고교 3년생 나이의 아들에서부터 코흘리개 어린 딸까지 6남매를 키우는 아버지와 아이들의 관계를 다룬 매우 독특한 얘기로 보고 생각할 점이 많은 영화다.
독소가 만연한 세상과 그것의 문화로부터 이탈해 아이들과 숲속에 살면서 그들을 학습시키고 또 생존의 방법을 가르치면서 키우는 반문화적인 히피 아버지는 과연 좋은 아버지인가 아니면 거의 아동학대와도 같은 자녀 양육은 비판 받아야 하는 것인가.
보는 사람에 따라 판단이 다르겠지만 이 같은 양육의 문제점은 언젠가 아이들이 숲을 떠나 세상에 나가 살기로 했을 경우 부닥쳐야 하는 대인관계. 이런 난관은 영화에서 아주 코믹하고 재치 있게 묘사된다. 여느 영화들과 아주 다른 상당히 재미있고 또 의미심장한 작품이다.
영화는 처음에 워싱턴주 숲속에 사는 벤(비고 모텐슨)이 그의 6남매와 함께 장남 보데반(조지 매케이)의 성년의식을 치르는 사냥장면으로 시작된다. 마치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의식을 보는 것 같다. 아이들의 어머니 레즐리는 정신질환으로 입원했다.
벤은 ‘파파 베어’로 아이들에게 육체적으로 강훈련을 시키고(맨손 암벽등반은 너무했다) 자기방어술과 함께 자연 속에서의 생존방법 등을 가르치고 아울러 각종 책을 읽게 하고 또 아이들의 지능을 존중해 모든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하면서 모두를 젊은 성인처럼 취급한다.
어린 딸에게 강간, 성교, 성기 그리고 출산 등에 관해서 상세히 설명해 주고 ‘롤리타’도 읽게 허락하는데 그래서 아이들은 엄청나게 박식하다. 벤의 일가가 이모 집을 방문했을 때 이 집의 아이폰 중독자들인 두 아들과 벤의 어린 딸의 대조적인 지식의 깊이가 재미있다.
그런데 레즐리가 자살하면서 벤의 가족은 바깥세상의 현실과 직면하게 된다. 레즐리는 평소에 자기가 죽으면 화장을 해달라고 벤에게 부탁했는데 이와 반대로 뉴멕시코에 사는 레즐리의 완고한 아버지(프랭크 란젤라)는 매장을 강행하면서 벤은 일가족을 버스에 태우고 뉴멕시코로 간다. 이 과정에서 보데반의 첫 키스를 비롯해 여러 에피소드가 일어나는데 모든 것을 대인관계와 경험이 아닌 책에서 배운 아이들(레이디 가가도 ‘스타 트렉’도 모른다)의 바깥세상과의 엉뚱한 대면이 우습다.    
보데반은 어머니의 격려로 벤 모르게 각종 대학에 지원해 하버드를 비롯해 모든 아이비리그로부터 합격통지를 받고 고민하는데 영화는 자연 대 속세의 대립을 이런 식으로 깊이와 재치를 가미해 잘 표현하고 있다. 해변에서 치르는 벤과 아이들의 레즐리 장례식이 감동적이고 아름답다. 지적인 배우 모텐슨이 영혼이 가득한 연기를 하는데 자기 성기까지 보여준다. 그와 함께 아역 배우들이 한결 같이 뛰어난 연기를 하고 촬영도 유려하다. 맷 로스 감독(각본 겸). R. Bleecker Street.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우리들의 작은 여동생(Our Little Sister)


고다 네 자매가 정원에서 불꽃놀이를 즐기고 있다.


인물과 풍경과 내용이 아름다운 4자매의 가족영화


‘부전자전’과 ‘아무도 몰라’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가족관계와 버려진 아이들에 관한 영화를 잘 만드는 일본의 코레-에다 히로까주 감독(각본 겸)의 조용하고 투명한 또 다른 가족영화로 4자매의 얘기여서 이치가와 콘 감독의 ‘마끼오카 자매들’을 연상시킨다. 인물과 풍경과 내용이 모두 아름다운 영화로 특히 고운 촬영은 역시 가족영화를 많이 만든 오주 야수지로의 영화를 닮았다.
부드럽고 섬세하고 자연스런 연기가 좋은 작품이나 너무 차분하고 감정 노출을 극도로 억제해 극적 흥분을 느끼기가 힘든 것이 결점이다. 따라서 인내심이 요구되는데 때로 답답할 정도로 서술이 지지부진한 감마저 있다. 그러나 깊이와 아름다움을 간직한 명상하는 듯한 작품이다.  
도쿄에서 기차로 1시간가량 떨어진 해변 마을 가마꾸라(오주가 여기 살았다)의 큰 저택에서 사는 고다 3자매는 29세난 간호사 사찌(아야세 하루카)와 22세난 요시노(나가사와 마사미)와 19세난 지까(가호). 엄격하고 침착한 모범여성 사찌는 두 동생의 어머니와도 같은 역을 한다. 이들의 아버지는 오래 전에 다른 여자에 반해 집을 나갔는데 이 여자가 죽자 멀리 북쪽에 사는 또 다른 여자와 결혼을 했다. 그리고 어머니 미야꼬(오따께 시노부)도 15년 전에 남자를 만나 가출해 버렸다. 이 영화는 따라서 어른들에 의해 엉망이 된 자신들의 삶과 화해를 하는 자식들의 얘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고다 자매의 아버지의 부음이 날아든다. 자매들은 이 소식에 시큰둥하나 사찌는 자기는 일을 핑계대고 두 동생을 아버지 장례식에 보낸다. 뒤늦게 사찌도 장례식에 참석하는데 여기서 이들은 13세난 수줍음 타는 이복 여동생 수주(히로세 수주)를 처음 만난다. 그리고 사찌는 대뜸 수주에게 함께 살자고 제의한다. 그래서 세 자매가 네 자매가 된다.
이어 얘기는 가마꾸라에서의 네 자매의 삶과 희롱과 자매애 그리고 작은 다툼과 갈등 같은 것으로 점철되는데 소소한 얘기들이 아기자기하다. 그리고 사찌와 그녀를 사랑하는 의사의 관계와 자유분방한 요시노의 남자관계와 함께 이웃 주민들과의 관계 등이 잔가지를 치나 애정문제는 슬쩍 지나쳐 가는 식으로 비중이 약하다.        
이렇게 별 큰 변동이 없던 자매들의 삶은 갑자기 이들의 어머니가 나타나 용서를 구하면서 극적인 파랑을 일으킨다. 그림 같은 해변마을 풍경과 계절의 변화 그리고 기모노를 입은 자매들의 불꽃놀이와 음식장만 장면 등을 찍은 촬영이 참으로 곱고 아야세의 연기가 빛난다. 성인용. Sony Classics.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디어 헌터’마이클 치미노 감독 77세로 사망


베트남전 영화‘디어 헌터’(Deer Hunter·1978)로 영화인으로서 최고의 영광인 오스카 감독상을 탄지 불과 3년만에 할리웃 사상 최악의 불상사로 일컬어지는 서부 개척시대 영화‘천국의 문’(Heaven’s Gate)으로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뒤집어 쓴 마이클 치미노가 지난 2일 77세로 LA에서 사망했다.
‘천국의 문’은 할리웃의 과도 과다와 오스카상을 타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는 감독의 통제할 수 없는 자신 자만감이 낳은 기형적 산물로 꼽히면서 할리웃의 무절제를 경고하는 하나의 교본이 되다시피 한 영화다. 그래서 그 뒤로 이런 종류의 영화를 놓고 그 제목 뒤에 ‘게이트’라는 접미사를 붙이게 됐다.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정치적 스캔들 뒤에 ‘게이트’라는 접미사를 붙이는 것과 같다.
치미노는 뉴욕에서 태어나 예일에서 미술을 공부한 뒤 광고영화를 만들다가 LA로 와 각본을 쓰면서 할리웃에 데뷔했다. 그가 쓴 최초의 작품은 환경문제 공상과학 영화 ‘사일런트 런닝’(Silent Running·1971). 이어 ‘더티 해리’(Dirty Harry)의 속편인 ‘매그넘 포스’(Magnum Force·1973)의 각본을 썼다.
치미노의 감독 데뷔작은 반문화적 분위기를 지닌 로드무비이자 버디무비요 또한 털이영화인 ‘선더볼트와 라이트후트’(Thunderbolt and Lightfoot·1974).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제프 브리지스가 나오는 흥미진진한 작품으로 브리지스가 오스카 조연상 후보에 올랐었다.
그가 두 번째로 감독한 영화가 ‘디어 헌터’다. 펜실베니아주의 한 철강도시를 무대로 베트남전에 참전한 남자들과 도시에 남은 사람들에게 이 전쟁이 미치는 걷잡을 수 없는 영향을 다룬 걸작이다. 로버트 드 니로, 메릴 스트립, 크리스토퍼 월큰(오스카 조연상 수상), 존 새비지 및 존 카제일 등이 나오는 이 영화에서 잊지 못할 장면은 충격적인 ‘러시안 룰렛’ 장면. 필자도 이 영화를 서울의 중앙극장에서 보면서 ‘러시안 룰렛’ 장면에서 엄청난 공포 속에 빠져 깊은 충격을 받았었다.    
‘디어 헌터’는 총 9개 부문에서 오스카상 후보에 올라 작품과 감독을 비롯해 모두 5개의 상을 받았고 치미노는 골든 글로브 감독상도 받았다.
이 영화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게 된 치미노의 다음 영화가 그의 야심작 ‘천국의 문’이다.  19세기 말 와이오밍주에서 벌어지는 농부들과 영토를 확장하려는 권력 있는 목장주들 간의 사투를 그린 실화로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이자벨 위페르, 크리스토퍼 월큰, 존 허트, 제프 브리지스 및 샘 워터스톤 등이 나온다.    
그런데 이 영화는 치미노가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다고 1800년대 말에 쓰던 기차를 촬영 현장에 옮겨 오는 등 막대한 경비를 소비하면서 당초 1,150만달러로 예상했던 제작비가 무려4,000만달러로 뛰어 오르고 제작과정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 영화가 완성되기도 전에 매스컴의 달갑지 않은 집중조명을 받았다.
치미노의 완벽성 때문에 개봉이 1년씩이나 지연된 뒤 마침내 216분짜리로 개봉됐으나 비평가들의 악평을 받으며 관객의 외면을 받자 영화 제작사인 United Artists(UA)는 개봉 직후 영화를 극장에서 거둬들였다. 그리고 치미노는 영화를 149분짜리로 재편집해 다시 극장에 내놓았지만 이 역시 비평가들과 관객의 철저한 외면을 받았다. 그래서 UA의 모회사인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둔 보험회사 트랜스아메리카는 UA를 MGM에 팔아넘기고 영화사업에서 손을 뗐다.
 와이오밍주에서‘천국의 문’을 찍고 있는 마이클 치미노(왼쪽 모자 쓴 여자 뒤).
필자는 216분짜리로 이 영화를 봤는데 매우 훌륭한 영화로 여기고 있다. 와이오밍 현지에서 찍은 빌모스 지그몬드의 수려한 촬영과 대규모 엑스트라를 동원한 박력 있는 액션장면 그리고 장엄한 스케일 및 역사적 냄새가 가득한 세트와 의상 등이 다 좋은 작품이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장점보다 단점을 즐기는 매스컴의 희생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이 영화가 지난 2012년에 디렉터스 컷으로 복원돼 재상영됐을 때 비평가들이 영화의 가치를 재평가했다는 사실이다. 온갖 가십거리가 된 이 영화에 관해 전 UA의 고급 간부 스티븐 바흐가 <파이널 컷: ‘천국의 문’ 제작의 꿈과 재앙>(Final Cut: Dreams and Disaster in the Making of ‘Heaven’s Gate’)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영화로 할리웃의 언터처블이 된 치미노의 다음 영화는 또 다른 물의를 일으킨 ‘용의 해’(Year of the Dragon·1985). 미키 로크가 뉴욕의 차이나타운의 중국계 갱과 대결하는 형사로 나온 이 영화는 중국계 미국인들을 버러지와도 같은 범죄자들로 몰아 묘사해 중국계 커뮤니티로부터 대대적인 항의를 받았었다.
이 영화 후로 치미노는 달랑 3편의 영화를 만들고 본의 아니게 감독으로서의 생애를 마감했 다. 1987년에 만든 ‘시실리안’(The Sicilian)은 ‘대부’를 쓴 마리오 푸조의 소설이 원작으로 크리스토퍼 램버트가 주연했는데 졸작이다. 이어 윌리엄 와일러가 1955년에 만든 ‘필사의 도주’(Desperate Hours·1990)의 신판을 역시 로크를 사용해 만들었으나 원작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치미노의 마지막 영화는 우디 해럴슨이 불치의 병에 걸린 갱스터에게 납치되는 의사로 나온 ‘선체이서’(Sunchaser·1996). 이 역시 졸작이다.
치미노는 지난해에 한 인터뷰에서 “나는 결코 변호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한 일을 알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나는 몇 년 전에 한 파티에 그를 만나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 때 그는 성형수술을 받아 여자 같은 모습(사진)이었는데 내가 “나는 ‘천국의 문’을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하자 “고맙다”고 미소를 지으면서 조용한 음성으로 답례를 했다. 그는 이런 여성적인 모습 때문에 한 때 여자로 성전환한다는 낭설에 시달려야 했다. ‘천국의 문’은 다시 한 번 더 재평가 받아야 될 영화로 DVD로 출시됐으니 구해 보기를 권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하와이의 골디




나는 여름과 태양과 피서인파로 북적거리는 바다를 싫어한다. 내가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에게 매력을 느낀 것도 어쩌면 그가 ‘묻지 마 살인’ 식으로 아랍인을 총으로 쏴죽이고 범행동기에 대해 한다는 소리가 열기와 밝은 햇빛 때문이라고 태양을 탓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작열하는 태양을 불편해한 또 다른 주인공이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재주꾼 미스터 리플리’를 원작으로 르네 클레망이 만든 프랑스 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살인자 탐 리플리다. 리플리는 마지막 장면에서 해변 카페에 앉아 “불편한데 없으세요”라고 묻는 웨이트리스에게 “태양 때문이에요. 너무 밝아요. 그 외엔 이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어요”라고 말한다. 니노 로타의 음악이 빅히트한 영화에서 리플리 역은 알랭 들롱이 했는데 그의 비수 같은 푸른 눈동자와 맨발로 신은 간편화가 인상적이었다.
나는 여름과 태양을 싫어하는 대신 겨울과 그 바람을 좋아한다. 내가 겨울에 태어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창 문학청년으로 시를 쓰던 대학시절에 사학을 전공하던 친구 P와 함께 가끔 인천 송도로 겨울바다 바람을 쐬러 가곤 했었다. 둘이 방파제에 앉아 소주를 마시면서 겨울바람이 싹 쓸어간 세속과 인파가 종적을 감춘 겨울바다를 바라보면서 젊음만이 가질 수 있는 낭만에 잠기곤 했었다.
그런 내가 지난 주말 복중에 하와이에 간 것은 왕년에 할리웃을 주름잡던 왕눈이 코미디언 골디 혼(70·사진)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난 ‘졸병 벤자민’으로 유명한 골디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다 그녀가 지금 하와이에서 찍고 있는 영화가 그녀로선 14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하는 것이어서 만나고 싶었다.
또 다른 이유는 하와이가 어린 내게 영화의 아름다움을 가르쳐준 ‘지상에서 영원으로’의 무대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어서 난 하와이하면 대뜸 이 영화부터 생각난다. 나는 지난 1987년 이 영화에 관한 기사를 쓰려고 하와이에 가 주인공들인 군인들이 주둔한 스코필드 병영과 유부녀 데보라 카와 말뚝상사 버트 랜카스터가 달밤에 온 몸에 파도를 뒤집어쓰며 뜨거운 키스를 나눈 와이키키 해변을 둘러보았었다.
이번에 근 30년만에 하와이를 찾으면서 밤의 와이키키를 다시 한 번 거닐겠다고 다짐했었으나 숙소가 외딴 유원지 내에 있어서 뜻을 못 이뤘다. 30년이 지났는데도 변하지 않은 것은 하와이의 바람이다. 여인의 감촉처럼 부드럽다. 그리고 야자수가 긴 머리를 풀어 밤바람에 씻는 풍경도 마찬가지다.                
도착한 날 해변 잔디에서 하와이 전통 노래와 훌라춤을 듣고 봤는데 하와이를 비롯해 피지, 사모아, 타히티 및 폴리네시아의 특성을 보여주는 춤이 엘비스 프레슬리가 나온 ‘블루 하와이’에서 본 것 그대로다.
그런데 내가 염세적이어서 그런지 내겐 하와이안 송이 슬프게 들렸다. 그래서 노래하는 원주민 트리오에게 다가가 “왜 내겐 당신들의 노래가 슬프게 들리느냐”고 물었더니 그들은 “슬프다기보다 로맨틱하지 않으냐”고 답한다. 그리고 우리는 로맨스와 슬픔은 잘 어울리는 것인 만큼 슬프게 들릴 수도 있다는데 동의했다.
내가 피해망상증자인지는 몰라도 코코넛 브래지어를 한 여자들과 근육질의 상체를 드러낸 남자들이 추는 춤을 보면서 즐겁다기보다 오히려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과거의 영광과 패기를 분실당한 것 같은 그들이 먹고 살기 위해 미소를 지으면서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뭔가 가슴에 걸리는 것 같았다.
30년 전에 영화 ‘역마차’에 관한 얘기를 쓰려고 작품의 무대인 모뉴먼트 밸리에 갔을 때도 같은 느낌이었다. 안내원이 티피 안에서 피륙을 짜고 있는 아메리칸 인디언 여자를 보여줬는데 밖으로 나오니 거리에선 장사꾼이 된 인디언들이 좌판에 돌 보석을 놓고 팔고 있었다. 그 용맹무쌍하던 사람들의 초라해진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었다.
골디가 나오는 영화는 아직 제목도 정해지지 않은 액션 코미디이자 모녀관계의 얘기다. 락뮤지션인 애인과 에콰도르(하와이가 에콰도르를 대신한다)로 여행 가기 직전 애인으로부터 버림  받은 여자(에이미 슈머)가 꿩 대신 닭이라고 자기 어머니(골디 혼)와 함께 남미로 내려갔다가 괴한들에게 납치돼 곤욕을 치르면서 모녀관계를 새삼 추스른다는 내용. 인터뷰 내용은 엠바고가 걸려 쓸 수 없다.
이마를 가린 채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금발에 특유의 헤픈 듯한 웃음인 “헤 헤 헤”를 연발하면서 우리와 만난 골디는 아직도 귀염성을 지니곤 있었으나 나이는 못 속인다고 늙었다. 그러나 건강미와 함께 밝고 명랑했는데 스타 티를 내지 않아 친근감이 갔다. 인터뷰 후 사진을 찍고 “커트(지난 34년간 동거하고 있는 배우 커트 러셀) 요즘 뭘 하나요”하고 물으니 ‘분노의 질주’ 제8편을 찍고 있다면서 미소를 지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