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8년 9월 25일 화요일

콜렛(Colette)


콜렛(키라 나이틀리)이 방에서 작품을 집필하고 있다.

여류 문학가의 성적 자각과 독립
나이틀리의 단단한 연기 인상적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에 이르기 까지 활동한 프랑스의 센세이셔널 한 레즈비언 여류 문학가 콜렛의 전기영화로 차분하게 잘 만들어 어른들이 즐길만한 드라마다. 정석적으로 전기영화의 틀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데 보기 좋은 것은 콜렛 역의 키라 나이틀리의 단단하면서도 열정이 가득한 연기다. 콜렛은 뮤지컬 영화로도 만들어진 ‘지지’(Gigi)의 작자다.  
남성 위주의 세상에서 소박한 시골 처녀가 자신의 문학적 재능과 성적 기호를 자각하면서 자아와 독립을 찾는 문학적이요 개인적인 성장기라고 하겠는데 따라서 콜렛의 인물과 성격 묘사는 잘 된 반면 그녀의 재능을 갈취하는 남편 윌리의 그것은 다소 빈약하다. 윌리 역의 도미닉 웨스트는 이를 알고 그 점을 보충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돼지’라 불릴만한 저돌적이요 밉상스런 연기를 씩씩거리며 해댄다. 
버건디 지방 시골에 사는 10대 소녀 콜렛(나이틀리)은 자기 부모의 친구인 나이 먹은 윌리(웨스트)의 언변과 사내다움에 이끌려 그와 헛간에서 정사를 나눈다. 그리고 둘은 결혼하고 콜렛은 파리로 이사한다. 윌리는 파리에서 악명 높은 바람둥이로 일종의 문학작품 장사꾼. 젊은 문학인들을 싸구려로 고용해 소설과 평론을 쓰게 하고 그 것을 자기 이름으로 출판한다. 그러나 그는 오입과 도박으로 돈을 탕진해 늘 가난에 시달린다. 
한편 콜렛은 파리의 문화와 패션을 수용하면서 서서히 도시 여인으로 변모한다. 궁색에 쪼들리던 윌리는 콜렛에게 그녀가 자기에게 들려준 소녀 시절의 얘기를 소설로 쓰라고 종용한다. 그래서 쓴 글이 ‘클로딘’인데 윌리는 글이 평범하다고 원고를 내팽개친다. 이로부터 몇 년 후 윌리는 콜렛의 원고를 다시 보고 콜렛의 재능을 새삼 깨달으면서 콜렛과 함께 원고 수정 작업에 들어간다. 내용을 보다 야하게 만들어 낸 것이 ‘학창 시절의 콜렛’으로 윌리의 이름으로 출판된 책이 빅히트를 한다. 이어 윌리는 콜렛에게 속편을 쓰라면서 콜렛을 방에 가두는데 콜렛은 군소리 없이 글을 써 역시 히트한다. 이 역시 윌리의 이름으로 출판된다.          
콜렛은 자기가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을  윌리에게 통보하는데 윌리는 놀란다기보다 오히려 콜렛을 격려한다. 그래서 만난 것이 미국서 온 젊은 바람둥이 여인 조지(엘리노어 탐린슨). 그런데 윌리도 이 여자와 놀아나면서 얄궂은 삼각관계가 이뤄진다. 그리고 콜렛은이 같은 관계를 소설로 쓴다. 역시 히트. ‘클로딘’ 시리즈는 연극으로 만들어져 역시 히트를 한다.  
콜렛의 다음 연인은 남자처럼 차려 입는 귀족 여인 미시(드니즈 가우). 이 여인과의 사랑이 진하고 아름답게 묘사된다. 그리고 콜렛은 연극무대에 자기가 직접 올라 연기생활을 즐기면서 순회공연에 나선다. 이 과정에서 콜렛은 윌리가 자기 작품의 판권을 마음대로 팔아버린 것을 알게 되면서 둘의 파란만장 했던 결혼생활에도 종지부를 찍기로 한다. 콜렛은 후에 가서야 자기 이름으로 책을 냈다. 워시 웨트모어랜드 감독. R.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칠드런 액트(The Children Act)


아담은 자기를 살려준 판사 피오나(엠마 톰슨, 오른쪽)를 집요하게 쫓아 다닌다.


미성년 전담판사 역 엠마 톰슨
자비롭고 엄격한 연기 돋보여


오스카상 수상자인 엠마 톰슨의 자비롭고도 엄격한 연기가 돋보이는 어른들을 위한 영국영화로 제목은 미성년자에 관한 법령을 말한다. 일벌레 여판사의 가정문제와 법정 결정에 따른 후유증을 다루었는데 전반부가 멜로드라마가 되어버린 후반부보다 낫다.
판사가 불치병을 앓는 미성년자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의 자신의 개인적 문제와 함께 이 결정을 둘러싼 긴장감이 막상 판결 이후에 거의 믿을 수 없는 뚱딴지같은 얘기로 비화해 어리둥절한데 이 같은 단점을 톰슨의 조용하면서도 강력한 연기가 보상해준다. 
처음에 런던의 미성년 문제 전담 판사인 피오나 메이(톰슨)가 갓난 샴 쌍둥이에 대한 분리수술 문제를 심리한다. 수술을 안 하면 둘 다 죽고 수술을 하면 하나는 사는데 부모는 수술을 반대한다. 이를 놓고 피오나는 나름대로 고민한다. 하나만 살린다 해도 다른 하나는 죽이는 것이어서 법을 따를 것이냐 도덕을 따를 것이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피오나는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다. 
이에 대한 판결을 내리고 집에 돌아오니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남편 잭(스탠리 투치)이 자기는 피오나를 사랑하지만 바람을 피우겠다고 선언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알리고 바람을 피우겠다면서 둘이 지난 11개월 간 섹스를 하지 않았으며 애정의 표시라고 해야 고작해서 형식적인 볼 키스뿐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피오나가 일벌레라고 비판한다. 
겉으로 보기엔 이상적이요 흠잡을 데 없어 보이는 피오나의 가정에 파고가 일어나는 것과 함께 피오나는 법정에서 중대한 재판을 주재하게 된다. 피오나는 개인 문제와 직무 문제 양쪽으로 시달리는데 맡은 일은 백혈병을 앓는 미성년자인 17세난 아담(피온 와이트헤드)의 수혈.
아담이 독실한 여호와의 증인 신도여서 수혈을 거부하는데 그의 부모도 마찬 가지다. 이를 둘러싸고 고발한 측과 아담네 변호사 간에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는데 피오나는 판결을 내리기 전에 입원한 아담을 방문한다. 이 면담에서 아담은 수혈을 거부하면서도 피오나의 자비와 지혜에 깊이 감복한다.
그리고 피오나는 수혈 판결을 내린다. 수혈 후 아담은 일단 건강을 회복하는데 그가 너무 건강해보여 백혈병을 앓은 사람 같지가 않아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는다. 이어 아담은 피오나를 찾아가 고마움을 표시한다. 그런데 아담의 피오나에 대한 감정이 거의 집념과도 같은 사랑으로 모양을 바꾸면서 격식 있던 얘기가 엉뚱한 곳으로 간다. 아담이 피오나에게 한다는 소리가 자기 부모는 자기가 죽기를 바랐는데 당신이 날 살려주었다는 것이다. 
아담은 스토커처럼 피오나를 쫓는데 남편이 집을 나간 뒤 고독과 상심에 시달리는 피오나도 아담의 집착에 이끌린다. 이것은 완전히 신파다. 그리고 이틀 간 집을 나가 바람을 피운 잭이 귀가하면서 터무니없이 가정문제를 해결한다. 와이트헤드가 영화의 전반적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 튀어나온다. 다시 한 번 강조할 것은 톰슨의 감지하기 힘들도록 섬세하고 아름다우면서도 다부진 연기다. 리처드 아이어 감독. 등급 R.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로코와 그의 형제들’


내가 고등학생 때 지금은 없어진 서울의 중앙극장에서 이탈리아의 명장 루키노 비스콘티의 걸작 ‘로코와 그의 형제들’(Rocco and His Brothers^1960^사진)을 보면서 화면 속 모습에 단숨에 빨려들었던 여자가 프랑스 배우 아니 지라르도였다. 영화에서 창녀로 나온 지라르도는 마치 염가로 시장에 내놓은 매물 같은 모습이어서 음험토록 선정적이었다. 구름이 낀 얼굴에 드리워진 비굴한 색조를 띤 표정과 함께 방정치 못한 품행을 뽐내듯 과시하는 태도가 10대였던 내게는 과도하도록 육감적이었다.
후에 ‘표범’과 ‘이방인’ 및 ‘베니스에서의 죽음’과 같은 명작을 만든 비스콘티의 ‘로코와 그의 형제들’은 네오리얼리즘의 정수로 사실성과 약간 멜로성을 갖춘 감정을 잘 조화한 작품이다.
이탈리아의 남부에서 보다 나은 삶을 찾아 남부여대해 밀란으로 온 로코와 그의 네 형제 그리고 이들의 강인한 어머니의 이야기로 존 포드가 만든 ‘분노의 포도’를 연상케 한다. 밀란의 달동네와 거리 현장에서 찍은 주세페 로툰노의 탁월한 흑백촬영과 니노 로타의 만가풍의 비감한 음악과 함께 연기가 뛰어난 영화로 1960년 베니스영화제서 삼사위원 특별상을 탔다.
비스콘티가 가장 좋아하는 자기 영화로 그가 잘 다루는 현대화와 계급 간 갈등 및 가족의 결집력과 균열 등을 담대하게 서사적으로 다뤘는데 내가 이 영화에 심취했던 또 다른 이유는 로코 네 삶이 내가 어렸을 때 6.25를 겪은 우리 집 형편을 생각나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더욱 애착이 간다.
영화는 이탈리아 남부의 시골에 살던 파론디 가족의 기둥인 어머니 로자리아(‘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로 오스카 조연상을 탄 카티나 팍시누)가 아들 넷과 함께 보따리를 싸들고 장남 빈첸조(스피로스 포카스)가 먼저 올라온 이탈리아의 북부 산업도시 밀란의 기차역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강력한 모권을 쥔 로자리아의 둘째는 촌티가 흐르는 건강한 체격의 시모네(레나토 살바토리), 셋째는 착한 로코(알랭 들롱) 넷째는 평범한 치로(막스 카르티에) 그리고 막내는 아직 어린 루카(로코 비도라치). 밀란의 달동네 아파트를 전전하는 이들은 새로운 도시의 삶에 적응하면서 먹고 살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빈첸조는 중류가정의 딸 지네타(클라우디아 카르디나레)와 결혼한 뒤 자기 가족과 별 교류가 없다.
작품을 이끌어가는 사람은 로코와 시모네와 시모네가 사랑하는 창녀 나디아(아니 지라르도)로 두 형제간에 나디아를 두고 삼각관계가 형성되면서 끝내 피를 부른다. 시모네와 로코의 관계가 마치 카인과 아벨의 그 것을 닮았다.
시모네는 부와 명성을 빨리 거머쥘 수 있는 권투선수가 되라는 나디아의 종용에 따라 링에 오른다. 그리고 시모네는 나디아에게 창녀생활을 청산하고 자기 애인이 되어 달라고 요구하나 나디아는 이를 거절한다. 로코는 막일을 하다가 군에 입대, 투린에 주둔하는데 여기서 매춘 죄로 옥살이를 하고 나온 나디아를 만난다. 그리고 나디아는 로코의 순진성과 마음의 순결에 감동, 창녀 생활을 버리고 로코의 애인이 된다. 제대 후 로코도 권투선수가 된다. 가난한 사람들에겐 주먹과 몸이 자산이다.
그러나 시모네가 로코와 나디아의 관계를 알게 되면서 시모네와 그의 일당이 로코와 나디아에게 가공할 폭력을 행사한다. 시모네의 나디아에 대한 끈질긴 사랑을 깨달은 로코는 나디아에게 시모네에게 돌아가라면서 그녀와 헤어진다. 그 뒤 로코는 챔피언이 된다. 창녀생활을 다시 시작한 나디아는 자기에게 돌아오라는 시모네의 간청을 거부, 시모네는 나디아에게 피비린내 나는 폭력을 행사한다.
자동차공장에서 일하는 치로는 양가 규수와 결혼, 평온하게 살고 루카는 뒷전에서 형들의 삶을 관망하는데 마지막에 루카가 치로에게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과연 루카가 돌아가고파 하는 고향은 옛 모습 그대로일까.
작품의 주인공인 로코는 선의 상징으로 가족의 복지와 폐인이 되다시피 한 시모네의 재생을 위해 희생을 감수한다. 밀란에서 태어난 귀족가문의 비스콘티는 파론디 가족을 통해 이탈리아 남과 북의 지방색과 차이 그리고 역경 속에서도 지켜내려는 가족의 결집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런 파론디네의 삶이 한국가족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이 영화로 비스콘티는 세계적 명성을 얻고 당시만 해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들롱과 살바토리와 지라르도 및 카르디나레 등이 빅 스타로 부상했다. 들롱의 차분한 연기도 좋지만 뛰어난 것은 금방 터질 것 같은 살바토리의 야수적 연기와 지라르도의 오만하고 육감적이요 가엽고 또 자기를 내버리는 듯한 연기다. 이 영화는 지라르도의 데뷔작. 통렬하고 감각적이며 감정적으로 상처를 내는 걸작으로 마일스톤 필름(Milestone Film)에 의해 복원판 DVD로 나왔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