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2월 7일 금요일

7개의 상자 (7 Boxes)

파라과이 노천시장서 벌어지는 폭력액션

빅터가 손수레를 밀고 시장바닥을 달리고 있다.
파라과이 수도 아순시온의 도심 8개 블락을 차지하는 야외시장을 무대로 펼쳐지는 피와 살육이 판을 치는 사납고 폭력적인 액션영화이면서 다크 코미디인데 플롯이 시장의 미로 같은 좁은 골목들처럼 배배 꼬였다. 인간 탐욕과 순진한 소년의 잘 살아보겠다는 꿈의 얘기이기도 한데 에너지가 충만하고 역설적이며 영특하고 재미있다.
17세난 순진하고 꿈 많은 빅터(셀소 프랑코)는 아순시온의 인파로 붐비는 대규모 노천시장 마켓 4의 외바퀴 손수레 배달꾼. 빅터는 일거리 얻는데 분주하기보다는 TV를 보면서 자기를 드라마 속의 주인공으로 상상하기를 더 즐겨한다. 빅터에겐 적극적인 여친 리스(랄리 곤살레스)와 중국식당 주방에서 일하는 누나 타마라(넬리 다발로스)가 있다.
그런데 빅터의 라이벌인 넬슨(빅터 소사)이 정육점 주인 다리오(팔레티타)로부터 내용물 미상의 상자 7개를 목적지까지 배달하면 후한 돈을 주겠다는 언약을 받는다. 넬슨은 병에 걸린 어린 자식이 있어 이 돈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나 넬슨이 지각을 하면서 상자를 옮기는 일이 빅터에게 떨어진다.
빅터는 손수레에 상자들을 싣고 좁은 시장골목을 헤치고 다니면서 배달업무를 시작하나 목적지까지 가기 전에 수많은 장애를 극복해야 한다. 우선 자기로부터 일거리를 빼앗으려고 결사적으로 훼방을 놓는 넬슨이 있고 경찰은 순시를 강화하고 골목골목 귀퉁이마다 도둑들이 잠복해 이 상자들을 노린다.
카메라가 빅터가 밀고 달리는 손수레 바퀴의 모습과 속도를 땅바닥에서부터 찍으면서 긴장감 가득한 이야기의 속도와 빅터와 주변 인물들의 심정을 헐레벌떡 대면서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빅터가 계속해 손수레를 밀고 달리는 것과 함께 내용은 점점 더 고약하고 간교할 정도로 동아리를 틀면서 우리는 이 순진하고 아직 아이 티를 못 벗어난 빅터의 장래를 걱정하게 된다. 그리고 영화는 3막에 이르면서 폭력과 살인이 자행되고 사체가 수북이 쌓인다.
가난한 사람의 액션영화로 프랑코를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나고 현장에서 찍은 추격 장면을 비롯해 촬영도 좋다. ★★★½, 성인용. 일부지역.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모뉴먼츠 멘 (The Monuments Men)

“나치 약탈 미술품 찾아라”특공대에 특명

나치가 숨긴 미술품들을 회수하는 특공대원들. 앞줄 왼쪽이 조지 클루니 그 오른쪽이  맷 데이먼.

2차 대전 종전 직전 나치에게 약탈당한 유럽의 귀중한 그림과 조각 등 미술품 500만여점을 회수하기 위해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의 특명을 받고 적진 독일에 투입된 미국인 미술전문가들이 주동이 된 특공대의 활약을 그린 실화다. 로버트 M. 에셀의 책이 원작. 
조지 클루니의 5번째 감독 작품으로 그가 제작(공동)과 주연도 하고 각본(공동)도 쓴 올스타 캐스트의 영화. 긴장감과 스릴과 박력 그리고 피와 땀과 액션이 있어야 할 영화가 잘 생긴 클루니의 얼굴처럼 모양만 그럴싸하고 긴박감이 없어 맹물 마시는 기분이다.
일종의 전쟁영화인데도 거칠고 사나운 것을 피하고 온화하게 중도노선을 걷고 있어 극적 흥분감을 느끼지 못하겠다. 드라마틱한 높낮이도 부족하고 감정적 격렬성도 모자라는데다가 다소 설교조인데 위기감을 느끼지 못해 심신이 나른해진다.
소수의 특공대의 적진 활약을 그린 여러 전형적인 2차 대전 영화의 형태를 답습한 이 영화의 내용은 존 프랑켄하이머 감독이 만든 흑백 스릴러 ‘기차’(The Trainㆍ1964)에서도 다뤄졌었다. 버트 랭카스터, 폴 스코필드, 잔느 모로 및 미셸 시몽 등이 나온 이 영화는 시종일관 맥박과 심장이 격렬히 뛰게 만드는 엄청나게 흥미진진한 영화다. 이 영화와 ‘모뉴먼츠 멘’을 한번 비교해 보기를 권한다. 
나치가 퇴각하면서 못 가져가는 세잔과 미켈란젤로와 라파엘 그리고 르느와르 및 피카소 등의 수많은 귀중한 미술품들을 소각한다는 사실을 안 미국인 미술전문가 프랭크 스톡스(클루니)는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이 같은 내용을 알린 뒤 대통령의 특명으로 미술전문가들로 구성된 미술품 회수 특공대를 조직한다. 
이들은 미술전문가인 제임스 그레인저(맷 데이먼), 건축가 리처드 캠벨(빌 머리), 조각가 월터 가필드(존 굿맨), 미술사가 프레스턴 새비츠(밥 밸라반), 프랑스인 미술품 거래상 장 클로드 클레르몽(장 뒤자르댕) 및 영국인 미술전문가 도널드 제프리스(휴 본느빌).
먼저 총 한 번 안 쏴본 이들에 대한 기초훈련이 실시되는데 여기서 약간 유머가 첨가되나 별로 우습지도 않다. 그리고 이들은 1944년 7월 노르망디 해변을 통해 유럽에 도착한다. 그런데 시간을 다투는 것은 유럽 동부에서 독일로 진격하는 러시아군. 이들은 미술품을 회수해 원 소유주에게 반환하려는 미국 측과는 달리 전리품으로 소유할 생각이다.
문제는 스톡스가 약탈된 미술품들이 숨겨진 도시들은 아나 명확한 장소를 모른다는 점. 이를 돕는 여자가 나치가 약탈한 미술품들을 보관했던 죄 드 폼에서 큐레이터로 일한 프랑스 여인 클레어 시몬(케이트 블랜쳇). 미술품들의 이동상황을 낱낱이 기록해 둔 시몬에게 접촉하는 사람이 서툰 프랑스어를 하는 고지식한 유부남 그레인저. 그와 시몬 간에 로맨스의 분위기를 피워보려는 어수룩한 시도가 있다.
스톡스의 일행은 퇴각하면서 못 가져가는 미술품을 소각하는 독일군과 미술품을 차지하려는 러시아군으로부터 유럽문화의 꽃들인 그림과 조각품들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계륵 같은 영화로 관람은 권한다. ★★★(5개 만점) PG-13. Sony. 전지역.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우디의 스캔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우디 알렌(78)의 영화 ‘맨해턴’에서 우디는 42세의 TV 코미디 작가 아이잭으로 나와 17세의 여고생 트레이시(매리엘 헤밍웨이)를 사랑한다. 우디가 영화뿐 아니라 실제로도 젊은 여자를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다. 우디가 지금의 부인으로 자기의 애인 미아 패로의 입양녀 순이와 첫 관계를 맺었을 때 그의 나이는 56세였고 순이는 19세였다.
며칠 전 우디와 패로가 입양한 딜란이 뒤늦게 다시 자기가 7세 때 우디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뉴욕타임스에 공개서한을 보낸 먼 원인은 이 우디와 순이의 스캔들(우디는 스캔들은 무슨 스캔들이냐며 반박한다)에 있다고 봐야겠다. 우디와 순이는 1997년에 결혼해 두 아이를 입양해 키우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패로는 우디와 순이의 관계를 발견한 직후인 1992년 우디와 헤어지면서 자식들의 양육권을 놓고 치열한 법정다툼을 벌였었다. 그리고 둘이 낳은 아들 로난은 후에 자기 성을 패로로 바꾸고 지금까지 우디를 혐오하고 있다. 이 때 딜란이 처음으로 우디가 자신에게 성추행을 했다고 고발, 조사가 있었지만 우디는 무혐의로 기소되지 않았다.
이 후 미아는 우디를 원수처럼 증오해 왔는데 1월에 있은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우디가 생애 업적상을 받는(우디의 옛 애인 다이앤 키튼이 대신 수상) 것을 보고 견딜 수가 없어 딜란을 사주해 편지를 하게 했다고 우디의 변호인 측은 주장한다. 남자로부터 퇴짜를 맞은 여자의 한이라는 것이다.
딜란도 편지에서 우디가 골든 글로브 생애업적상을 받는데 분개해 글을 쓰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디가 매번 상을 받을 때마다 자기는 질책을 받는 기분이라고 적었다. 골든 글로브상은 내가 속한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가 주는 것이니 결국 이번 우디의 스캔들은 우리 탓인 셈이다.
우디의 영화를 보면 대부분 주인공들이 짝이 있는데도 계속해 한눈을 팔거나 창녀와 매춘을 버젓한 직업으로 여기며 찬양마저 하고 있다. ‘마이티 아프로다이티’에서는 창녀 미라 소르비노를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다이티처럼 묘사, 소르비노가 오스카 조연상을 받았다
또 4월18일에 개봉될 ‘늙어가는 남창’(Fading Giggolo)에서는 우디가 아예 남창(존 투투로)의 핌프로 나와 재미를 본다. 그는 약간 변태적이라고 하겠는데 우디 영화의 매력은 바로 이런 상식을 일탈한 규칙 위반과 변태를 마치 아이가 죄를 저지르는 것처럼 순진하게 행하고 있는데 있다고 하겠다.    
우디의 열렬한 팬인 나는 그를 몇 차례 만나 악수하고 얘기를 나눴는데(사진) 겁먹은 토끼눈을 한 우디는 아주 재미 있고 아이 같다. 물론 겉만 봐선 속은 모르겠지만 그런 우디가 어린 아이를 성추행 했다고는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는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우디 알렌의 영화는 무엇입니까’로 시작하는 딜란의 글은 우디의 자신에 대한 성추행을 생생하게 사실적으로 적고 있다. 거짓말이 아닐 것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극사실적이다. 이와 함께 딜란은 우디의 영화에 나온 배우들인 케이트 블랜쳇과 다이앤 키튼에게 내 경우를 생각해 봤느냐고 도전하고 있다.
우디는 이런 사실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우리는 그 누구도 단순한 일방적 비난만 가지고는  사람을 단죄할 수는 없다. 기소돼 법절차에 따라 유죄판결이 내려질 때까지는 무죄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우디 스캔들이 터지면서 할리웃에서는 새삼 작품과 작가의 윤리도덕은 따로 여겨야 할 것인가라는 논쟁이 일고 있다. 바그너 얘기가 나올 때마다 유대인 증오자인 그의 음악은 과연 개인의 단점을 떠나 평가돼야 할 것이냐는 논제가 대두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3월2일에 열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우디의 ‘푸른 재스민’이 각본(우디 알렌)과 여우주연상(케이트 블랜쳇) 후보에 올랐는데 아카데미 회원들이 투표할 때 우디의 개인적 문제도 참작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 아카데미 측은 “아카데미는 영화업적에 명예를 주는 것이지 영화인과 예술가들의 개인적 생활에 명예를 주는 것이 아니다”고 못 박았다. 아카데미가 LA에서 미성년자를 겁탈하고 파리로 도망간 로만 폴란스키에게 2003년 ‘피아니스트’로 감독상을 준 것이 좋은 예다.
우디는 이번 스캔들로 사실 여부를 떠나 그의 명성에 오점이 남게 됐다. 작년 말 우디를 뉴욕에서 만났을 때 그는 내게 “순이 등쌀에 못 견뎌 나 내년에 마침내 한국에 갈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렇게 골치 아픈 일이 생겨서 한국행이 과연 실현될지 공연히 염려된다.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