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6월 30일 월요일

‘멀레피선트' 앤젤리나 졸리

“악에 맞서 싸워야… 아이들이 그걸 배우길”




현재 빅히트하며(23일 현재 흥행수입 1억8,600만달러) 상영 중인 프랑스 동화‘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원작으로 만든 디즈니의‘멀레피선트’(Maleficent)에서 마녀로 나온 앤젤리나 졸리(38)와의 인터뷰가 5월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잠자는 숲 속의 미녀’는 차이코프스키가 발레곡으로도 작곡했고 1959년에 디즈니에 의해 만화영화로도 만들어진 동화로 멀레피선트(나쁘다는 뜻)는 작품 속의 공주 오로라를 영원한 잠에 빠지도록 저주한 마녀다. 이번 영화는 원작을 새로 해석, 차가운 마음을 지닌 멀레피선트가 주인공이다. 갈색 긴 머리에 가슴 윗부분이 들여다보이는 검은 망사 발렌티노 드레스를 입은 졸리는 갈비씨였지만 두툼한 입술과 큰 눈 그리고 윤곽이 뚜렷한 마스크 때문에 카리스마가 있어 보였다. 단정히 앉아 가끔 유머도 섞어가며 진지하면서도 명확하게 질문에 대답을 했는데 심사숙고 형이다.  

*우리는 살면서 멀레피슨트처럼 겉보기엔 악한 사람 같아도 자세히 알고 보면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멀레피슨트가 오로라에게 한 일은 가공스럽고 악한 짓이다. 영화의 요점은 그런 그를 용서하자는 것이 아니다. 단지 어떻게 해서 멀레피슨트가 그런 사람이 되었는가를 이해하려고 했다. 우리는 살면서 누구나 어둡고 악해질 수 있는 경우를 만나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저항하는 것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아이들이 영화에서 그런 메시지를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란다. 악이 자신을 점령하는 것을 허락한다는 것은 잘못이라는 사실을.

*주위에서 악을 목격한 적이 있는가.
-물론이다. 난 유엔을 위해 일하기 때문에 자기 집이 불에 타고 개스공격을 받고 손톱이 뽑혀진 어머니들이 다친 아이들을 데리고 피난 다니는 것을 많이 본다. 분명히 이 세상엔 악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의 근원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에 진실로 대항할 길이 있는가를 찾아 봐야 한다. 그 방법이란 정의와 교육이다. 좋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의 힘을 모아 악에 대항해 싸워야 한다.”   

*당신은 배우이자 감독이며 또 인본주의 운동가인데 셋 중 어느 하나만을 고르라면 어느 것을 선택하겠는가. 
-인본주의적이요 정치적인 일이 먼저다. 그러나 나는 이 세 가지 일에 모두 애착을 느낀다. 감독은 내가 스스로 역과 소재를 고를 수가 있어 좋다. 나는 늘 역사적으로 교훈이 될 수 있는 소재를 좋아한다. 메시지 영화다. 

*당신은 아이가 여섯인데 그 중에 배우가 되고 싶어 하는 아이가 있는가. 
-아이들이 연기에 관심이 있는 것 같진 않다. 만약에 관심이 있다면 난 적극 후원할 것이다. 우리의 뜻은 아이들에게 영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면서 또한 영화 외에 다른 것도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다양한 사람들이 되도록 하고 싶다. 그러나 우리는 단지 아이들의 길잡이일 뿐이지 그들이 어떤 사람이 되는지는 각자에게 맡길 것이다. 

*당신은 인본주의자로서 세계 각지를 다니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가.
-아이들에게 세상을 알려주려고 가능하면 그들을 데리고 다니려고 한다. 얼마 전 요르단에 갔을 때도 아들을 데리고 갔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처럼 위험한 곳에는 혼자 간다. 그럴 땐 아이들이 학교에서 선생님과 함께 지도로 내가 간 곳을 찾아 왜 엄마가 사람들을 돕는지 그리고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얘기한다. 어떤 땐 아이들이 내가 여행을 떠나기 전에 가난한 곳에 사는 아이들에게 주라고 적은 돈과 물건을 주기도 한다. 

*여름에 프랑스에서 브래드와 결혼식을 올린다는 얘기가 있는데 사실인가. 그리고 당신이 프랑스에서 포도주를 양조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결혼 계획 전연 없다. 프랑스제 포도주를 만들고 있으며 포도주에 대해 배우는 일은 아주 재미있는 일이었다. 브래드와 나는 포도주 마시기를 좋아한다.

*당신에게 있어 진정한 사랑의 의미는 무엇인가.
-아이들을 가지기 전까지는 그 뜻을 잘 몰랐다. 그런데 고아원에서 매독스(2002년 캄보디아 고아원에서 7개월 됐을 때 입양)의 눈을 보는 순간 내 세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것이 나의 진정한 사랑의 첫 경험이다. 그를 보는 순간 나는 내가 더 이상 내 세상의 중심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타인이게 자신을 주고 그들이 나의 행복이 되는 것 그리고 그들에게 일어날지도 모르는 위험한 일이 내게 일어나게 해 줄 것을 바라는 것 바로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본다.

*유방 절제수술을 받은 후의 건강상태는 어떤가.
멀레피선트(왼쪽)와 어린 오로라.
-아주 좋다. 난 그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을 아주 잘 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의 건강문제를 공개한 것은 다른 여자들에 대한 의무감 때문이었다. 나의 건강문제를 공개한 뒤로 많은 다른 사람들과 연결이 되었다. 

*당신과 브래드가 함께 영화를 만든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인가.
-그렇다. 4년 전에 내가 쓴 것이 있다. 그것을 바탕으로 불원 독립적이요 실험적인 영화를 만들까 한다. 내가 감독을 할지도 모른다.

*당신은 많은 여자들의 귀감과도 같다. 당신의 대 여성관계는 어떤 것인가.
-내가 아는 가장 강한 첫 여자는 나의 어머니다. 내가 만난 진정한 첫 여자 친구는 내가 20대 때 유엔을 위해 캄보디아에서 일할 때 만난 여자들이다. 할리웃에서 성장한 나로선 그들이 자기 대신 남을 위해 헌신하는 것을 목격하는 것은 하나의 영감이었다. 어머니가 되고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강해지게 마련이다. 내게 가장 많은 것을 가르쳐준 여자들은 그 누구보다 내 딸들이다. 나는 그들에게서 아름다운 희망과 힘과 확신과 독립 그리고 사랑하는 본질을 본다. 

*브래드와 아이들의 관계는 어떠며 그와 당신의 사랑은 여전한가.
-브래드는 딸의 말이라면 뭐든지 들어준다. 그러나 아들들과도 남자만의 시간을 즐긴다. 그와 나는 아이들 앞에서 서로를 돌보고 아끼고 존경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브래드는 아들들에게 여자와 어머니를 존경하는 길을 가르쳐 준다. 브래드와 나의 삶은 가족이 중심이다. 처음에 만났을 때는 서로 사랑에 빠져 흥분했지만 지금은 그와 다른 가족적인 사랑이라고 불러야 좋을 것 같다. 단순히 파트너요 연인 간의 사랑이 아닌 하나의 가족이라는 말이다.

*당신에 대한 오해를 경험한 적이 있는가.
-난 나에 대해 쓴 글들을 읽지 않아 그에 대해 잘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그런 것에 신경을 안 쓴다는 것이다. 이 동네에서 어떻게 오해가 없을 수 있겠는가. 그저 꾸준히 자기 길을 간다면 결국은 이해 받게 마련이다. 오해하는 사람은 무시하면 된다.

*당신의 패션은 어떤 것인가.
-중요한 것은 최신 유행을 따를 것이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물론 실수가 있을 수도 있지만 자신이 고른 것인 만큼 밖에 나갈 때면 난 언제나 나 자신을 느끼곤 한다. 

*난소암 수술도 받는다고 알려졌는데 사실인가.
-사실이다. 그러나 수술문제는 내 사적인 일로 수술이 끝난 후 그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다. 

*도대체 어떻게 한 사람이 어머니와 아내와 감독과 배우와 제작자와 각본가 그리고 인본주의 운동가의 일들을 해낼 수가 있단 말인가.
-나는 스케줄에 집착하는 사람이다. 나는 내 일을 사랑하고 내 아이들을 사랑한다. 브래드 같은 파트너를 둔 것이 큰 행운이다. 나는 일할 때 아이들을 데리고 올 수도 있고 또 삶의 여러 가지 일들을 하기 위해 비교적 자유롭게 내 시간을 낼 수가 있다. 내가 받은 것을 돌려주지 못하고 남에게 유용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난 내게 주어진 삶을 누릴 자격이 없다고 본다. 그것이 내가 최소한 할 수 있는 일이며 또 내 기쁨이다.    

*난민 구호활동에 관해 말해 달라.
-먼저 목적지에 도착하면 내가 할 일에 대해 알기 위해 브리핑을 받고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낸다. 나는 현장에 가면 곧 바로 난민들을 직접 만나 땅바닥에 주저앉아 그들의 고충을 듣곤 한다. 그리고 그들의 애로사항과 메시지를 전파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난민들을 찾는 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자기 일상의 일을 떠나 고통에 빠진 사람들을 염려하고 돌보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런데 난 유엔 친선대사가 된 이래 각국의 대통령과 수상 및 정치인들을 만나 난민문제를 상의하느라 다소 정치적이 됐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설국열차(Snowpiercer)

눈과 얼음뿐인 지구, 살아남아야 한다


보안 시스템 전문가 남궁민수(송강호)가 딸(고아성)을 안고 부유층의 객실 쪽으로 가고 있다.

김지운과 박찬욱(이 영화의 제작자)에 이어 할리웃에 진출하는 봉준호 감독의 대하 공상과학 액션 스릴러로 유혈폭력 속에 지구의 환경파괴와 경제적 불평등 그리고 인간성과 도덕의 타락 등 매우 진지하고 심각하며 철학적인 명제들을 다룬 상징이 많은 현대판 우화다. 
지구 종말 후 끊임없이 달리는 열차에 탄 경제적 하류층의 부유층에 대한 불만을 폭력으로 해결하는 내용은 마치 공산주의 혁명을 연상시키는데 이와 함께 구제불능의 인간성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가하면서 과연 인간은 구제받을 가치가 있는가 하고 묻고 있다.
빈곤층과 격리된 열차의 객실에 탄 부유층과 그들의 리더가 마치 나치나 북한(생체실험과 세뇌교육 등)의 실상처럼 묘사됐는데 이와 함께 이들을 태우고 달리는 열차의 신성한 엔진에 대한 절대적 숭배는 프리츠 랭의 ‘메트로폴리스’를 생각나게 한다.
지적이요 야심적이며 총명한 연출력이 돋보이긴 하나 너무나 교훈적인 것이 탈이다. 깃발을 흔들며 구호를 외치듯이 현 세상의 사회적ㆍ경제적 불평등과 인간성ㆍ도덕성의 몰락과 함께 환경문제와 인구문제 등 너무나 잡다한 메시지를 내세워 체하겠다. 다소 절제가 필요한데 이로 인해 오히려 영화의 재미와 함께 감동이 감소되고 말았다. 원작은 프랑스 그래픽노블.
2031년. 17년 전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실험이 실패하면서 지구는 생명체가 살 수 없는 눈과 얼음의 나라가 됐다. 여기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지구를 끊임없이 순환하며 달리는 기차에 탔다. 기차는 축소판 세상으로 거지꼴을 한 가난한 사람들은 기차 뒤 칸에 부유한 특권층 사람들은 앞 칸에 탄 채 두 사회는 여러 개의 강철문으로 차단이 됐다.
기차의 주인은 영화 끝에 나오는 윌포드(에드 해리스)로 그는 자신의 하수인인 틀니를 한 메이슨(틸다 스윈튼이 해괴한 차림으로 코믹한 연기를 한다)을 비롯해 부유층의 신과도 같은 존재다. 윌포드는 기차 내 질서를 유지하고 한심한 인간들을 통제하는 독재자로 히틀러나 김정은과 다를 바가 없다.
부유층의 횡포와 호사에 이를 가는 빈곤층(바퀴벌레로 만든 바를 음식으로 먹는다)은 젊은 커티스(크리스 에반스)와 그의 2인자 에드가(제이미 벨)를 리더로 부유층의 객실을 점령하고 엔진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을 시작한다. 유혈폭력 속에 이들은 객실을 하나씩 점령하는데 객실과 객실을 차단한 강철 문을 여는 사람이 기차의 보안 시스템을 고안한 남궁민수(송강호). 민수에겐 ‘기차 베이비’인 17세난 딸 요나(고아성)가 있다.
총궐기한 빈곤층과 부유층의 군대 간의 피가 튀는 전투 끝에 커티스 일행은 마침내 부유층의 객실로 침투한다. 여기서 여태까지 어두컴컴하고 사색을 띠던 색깔이 알록달록한 총천연색으로 바뀌면서 부유충의 호사방탕한 생활상이 초현실적인 만화경처럼 묘사된다. 마약과 술과 디스코텍 그리고 수영장과 병원과 양복점 등이 있는 초호화 지상낙원이다. 이어 인류의 운명을 바꿔놓을 희생이 감행된다. 
촬영과 프로덕션이 훌륭한 반면 컴퓨터 특수효과는 수준 이하. 빈곤층의 정신적 지도자 길리엄(존 허크)과 옥타비아 스펜서를 비롯한 호화 캐스트의 연기는 무난하다. R. Radius-TWC. CGV(213-388-9000), 선댄스 선셋(323-654-2217).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새 출발(Begin Again)

음악으로 재결합하려는 사람들


댄(마크 러팔로·왼쪽)과 그레타(키라 나이틀리)가 음반제작에 관해 대화중이다.
        
오스카 주제가상을 받은 영화 ‘원스’의 각본을 쓰고 감독한 아일랜드의 존 카니의 작품으로 음악과 깨어진 관계를 재 연결시키려는 사람들의 노력을 다룬 아름답고 가슴에 와 닿는 영화다. 
감정적으로 솔직하고 깨끗한 영화로 음악의 치유 효과와 순수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여러 곡의 발라드풍의 노래가 참 듣기 좋고 편안하다. 이 중 몇 곡은 주연한 키라 나이틀리가 직접 부른다.
로맨스도 있지만 그것은 노골적으로 표현된다기보다 가슴 안에서 맴돌고 있는데 버림받고 헤어진 사람들의 얘기인데도 조금도 냉소적이지 않아 마음에 든다. 쾌적한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작은 보석과도 같은 영화로 뉴욕 현지촬영도 좋다.            
맨해턴의 바에서 최근 영국에서 온 싱어 송라이터인 그레타(나이틀리)가 동향인 스티브(제임스 코든)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손님들의 반응은 시큰둥한데 혼자 박수를 치는 사람이 독불장군식 음반제작자 댄(마크 러팔로).
여기서 영화는 두 차례 과거로 돌아가 그레타와 댄의 배경을 설명한다. 그레타는 영국에서 역시 작곡자인 애인 데이브(애담 르바인)와 함께 뉴욕에 왔는데 데이브가 부른 영화 주제가가 빅히트를 하면서 그레타를 버리고 새 애인에게로 간다.
댄은 음악기자인 아내 미리암(캐서린 키너)과 별거 중으로 10대의 딸 바이올릿(헤일리 스타인펠드)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려고 애를 쓴다. 그는 아직도 미리암을 사랑하고 있다. 댄은 디지털시대 감각이 없는 사람으로 순수음악을 강조하는 데다 최근 실적이 부진, 자신이 물주인 솔(모스 데프)과 함께 세운 음반사로부터 쫓겨났다.
그레타의 노래를 들은 댄은 히트송의 가능성을 직감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그레타에게 함께 데모음반을 제작하자고 제의한다. 이 음반제작 과정이 아주 기발 나고 다채롭고 에너지가 넘친다. 댄은 밴드를 급조한 뒤 스튜디오 안에서의 취입 대신 도시의 골목과 지붕 위 그리고 공원과 지하철 구내에서 음반을 만든다. 뉴욕이라는 도시의 생생한 배경이 음악의 효과를 십분 살려주고 있다.     
이런 음악 얘기와 함께 댄과 미리암과 바이올렛과 솔 그리고 그레타와의 인간적 얘기가 충실히 그려지는데 댄과 그레타는 서로에게 깊은 매력을 느끼면서도 이를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할리웃 영화 같지 않게 끝이 나는데(그래서 더 마음에 든다) 나이틀리와 러팔로의 화학작용이 절묘하다. 사운드 트랙을 하나씩 사서 들으시기를 권한다. 대부분의 노래는 뉴 래디칼스의 프론트맨 그렉 알렉잰더가 작곡했다.
R. TWC. 랜드마크(310-470-0492), 아크라이트(323-464-4226), 센추리15(888-AMC-4FUN).  ★★★★½(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예루살렘, 예루살렘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향해 걷던 ‘고통의 길’은 좁은 길 양쪽으로 빼곡히 들어선 상점에서 외치는 상인들의 호객소리와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한 가게는 자기 전생활비인 동전 두 닢을 연보한 과부를 칭찬한 예수의 말을 적은 입간판(사진)을 세워놓고 기념동전을 팔고 있었다.
2,000년 전 예수는 성전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며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굴혈로 만든다”고 질책했었다. 2,000년이 지나도록 거룩하고 성스러운 것을 상품화해 팔아먹는 아이러니는 여전했다.
텔아비브에서 각기 찍는 USA와 FX-TV의 ‘딕’(Dig)과 ‘독재자’(Tyrant) 세트 방문차 이스라엘에 다녀왔다. 지중해변의 숙소인 데이빗 인터콘티넨탈 호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모든 것이 구약성서로부터 기인하는 이 ‘성지’에 발을 딛는 순간 마치 신과 접촉이나 한 듯한 흥분감을 느꼈다.
비록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들이 공존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끊임없는 분쟁의 땅이다. 할리웃 외신기자협회원들이 이스라엘에 도착하기 며칠 전 이스라엘 점령지인 웨스트뱅크에서 3명의 10대 유대인 소년들이 납치돼 이스라엘은 초비상사태였다.
우리는 이런 긴장상태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의 올드시티를 찾아갔다. ‘성의’와 ‘벤-허’ 등 많은 성경영화에서 본 돌로 깐 보도와 굽어진 골목들이 낯설지 않다. 시온 문을 지나 2,000년 전의 장터를 거쳐 ‘통곡의 벽’으로 가는 길에 야물케를 쓰고 검은 정장을 한 걸인들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구걸을 한다.
나는 1회용 흰색 야물케를 머리에 쓰고 두 손으로 벽을 짚었다. 다윗이 통곡으로 속죄하며 십계명이 든 성궤에 두 손을 짚는 모습이 그려졌다. 종이에 ‘나의 가족을 축복해 달라’는 글을 적어 벽 틈에 꽂고 기도했다. 특히 목사인 아들을 부탁했다.
벽 바로 뒤에 황금돔을 머리에 인 회교성전이 보인다. 벽을 사이에 두고 유대교와 회교가 공존하고 있지만 그 공존은 언제든지 갈등으로 갈 수 있는 불안한 것이다. 예루살렘은 종교가 불러일으킨 많은 전쟁의 역설의 땅이자 영혼의 집결지요 또 인류 역사의 개요의 현장이다.
엄격한 마음으로 ‘고통의 길’로 들어섰다. 언덕길을 가득 메운 인파와 소음 속에서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이 길을 걸었을 때 사람들이 그의 고통에 통곡하는 소리와 함께 그를 야유하던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예수가 힘에 겨워 처음으로 쓰러진 곳과 그가 잠시 쉬려고 벽을 짚은 손자국 자리를 지나 골고다 언덕 위의 성묘교회에 들어섰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곳과 그의 매장을 준비한 자리 그리고 무덤이 다 이 교회 안에 있다.
순례객들과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느라고 분주하다. 나도 사진을 찍으면서도 자신의 행동에 자괴감을 느꼈다. 예수의 무덤에서 기도를 하면서도 나를 비롯한 사람들이 자아내는 디즈니랜드 같은 분위기에 죄책감을 느꼈다. 이런 난장판 관광지 기운 탓에 거룩하고 성스러워야할 가슴이 피해를 입는 기분이었다.
예수가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한 방과 다윗의 무덤(진짜는 어딘지 모른다)을 둘러보고 호텔로 돌아왔다. 이 모든 장소에 대해선 이설이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실제 장소라기보다 믿는 마음이다. 자기 마음이 교회일 테니. 뜨거운 태양 아래 하루 성경체험을 하면서 예수는 어떻게 40일간 광야에서 이 뜨거움을 견뎌냈을까 하고 궁금해 했다.
돌아오는 길에 저 멀리 팔레스타인인들의 주거지 한복판을 갈라놓은 ‘벽’이 보인다. 안내원이 “벽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그 덕분에 자살폭탄 차량이 없어졌다”고 자랑한다. 남의 집과 정원을 한 가운데서 갈라놓은 횡포의 물증을 보면서 남북한 간의 분단의 벽을 비롯한 모든 분리의 상징인 벽의 존재가 미웠다. 벽들은 허물어져야 한다.      
귀국 전날 예수도 먹었을 마른 빵과 양고기와 포도주를 먹는 자리에서 하이파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한국 정치를 선택과목으로 공부했다는 팔레스타인계 이스라엘 시민 청년과 얘기를 나눴다. 내가 그에게 “너는 팔레스타인의 국가 설립을 원치 않느냐”고 묻자 그는 “이 자리에 혹시 유대인이 없느냐”고 속삭이며 대답을 회피했다. 이스라엘인 친구가 많다고 자랑하던 청년의 이런 태도에서 속박 받는 사람들의 피해의식을 봤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입국은 쉬운데 오히려 출국심사가 매우 까다로웠다. 그리고 여권에 입국허가 도장을 찍는 대신 체류허가증을 주었다. 일생에 한 번 있을 영적 경험을 마치고 귀국행 비행기에 오르면서 “예루살렘, 예루살렘”을 속으로 되뇌었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