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즈몬드가 부상자를 밧줄로 묶어 고지 위에서 아래로 내려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 |
양심적 집총 거부한 데즈몬드 T. 도스 실화 영화
필자가 본 전쟁영화 중에서 가장 참혹하고 끔찍하고 잔인하며 유혈이 강같이 흐르는 전쟁영화다. 역동적이고 강건하며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장에 있는 듯한 현실감을 느끼게 되는 사실적인 작품이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게끔 전쟁의 참상이 적나라하게 묘사됐는데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출작전’은 이에 비하면 아이들 전쟁놀이다. 내장이 튀어나오고 몸과 팔 다리가 너덜너덜하니 끊어지고 쥐가 사체의 얼굴을 파먹는 등 심장 약한 사람이 봤다간 졸도하겠다.
감독은 극단적으로 치닫지 않으면 못 견디는 멜 깁슨. 그의 ‘그리스도의 수난’을 연상케 만드는 피와 고통의 작품인데 묘하게도 이런 피범벅 영화의 주인공은 전장에서 총을 들기를 거부한 실제 인물 데즈몬드 T. 도스(2006년 사망)다. 깁슨은 게이와 유대인을 싫어하는 편협한 인간이긴 하지만 영화 하나는 잘 만든다.
영화는 도스의 민간인으로서의 생활과 그가 입대해 훈련을 받고 오끼나와 전투에 투입돼 혁혁한 전공을 세우는 얘기로 나뉘어 묘사된다. 버지니아 시골태생의 비쩍 마른 키다리 도스(앤드루 가필드)는 독실한 제7일 안식일 재림교 신자로 어느 형태로든 폭력을 거부한다.
도스와 그의 1차 대전 베테런인 알콜중독자이자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휴고 위빙)와의 갈등과 함께 도스가 2차 대전에 나간 군인들을 위해 헌혈을 하러 갔다가 만난 아름답고 현명한 간호사 도로시(테레사 파머)와의 사랑이 먼저 이야기된다.
이어 도스는 군에 입대한다. 그런데 도스가 종교적 이유로 총을 만지지도 않겠다면서 의무병을 시켜달라고 요구, 말뚝상사와 장교들은 물론이요 동료 군인들로부터도 질책을 당하고 시달림을 받고 배척을 당한다.
도스에게 악을 지르면서 밀어붙이는 사람이 그를 훈련시키는 하웰 상사(빈스 번이 군인영화에 자주 나오는 터프하나 가슴은 따스한 고참상사 역을 재미있고 힘차게 한다). 동료 졸병들 중에서는 특히 터프한 스미티(루크 브레이시)가 도스를 가혹하게 다룬다. 그러나 도스는 자기 믿음을 배신하지 않는데 군재에 회부되기 일보직전에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나 그는 의무병으로 오끼나와 전투에 투입돼 일본군이 사수하는 ‘핵소 고지’ 탈환작전에 뛰어든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면서 일본군의 필사의 방어로 아군 피해가 막대해지자 고지철수 명령이 내리는데 이를 어기고 고지에 달랑 혼자 남는 것이 도스. 그는 “주여 제발 한 명 더 구하도록 저를 도와주소서”를 되뇌이며 부상한 동료들을 100피트 높이의 고지에서 밧줄로 묶어 아래로 내려 보내는데 그가 구한 인명은 적어도 50명. 그 중에는 부상한 일본군도 있다.
도스는 양심적 거부자로서 대통령으로부터 무공훈장을 받은 최초의 군인이다. 처절하고 강인하며 살점과 피가 튀는 영화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키 큰 갈비씨 가필드(‘스파이더 맨’)가 내용에 딱 맞게 캐스팅 돼 안으로 팽팽한 연기를 잘 한다. 조용하게 맹렬한 연기다.
R. Summit.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