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8월 9일 화요일

자살 특공대(Suicide Squad)


자살 특공대원들은 7,000년 묵은 마녀와 싸운다.

흉악범들로 조직된 특공대의 활약을 그린 액션


필자가 보기엔 어수선하기 짝이 없는 소음과 파괴와 혼란의 난장판인데 이런 만화 같은 영화를 좋아하는 팬들이 극장을 찾아 떼로 몰려들어 엄청나게 돈을 벌 것이다. DC 코믹스의 만화를 워너 브라더스가 떼돈을 들여 만든 올스타 캐스트의 환상이나 다름 없는 액션영화로 너무 나오는 인물들이 많아 머리가 다 어지럽다. 
철저한 혼돈과 무질서의 영화로 때론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얘기가 빈약하고 방향감각을 잃고 갈팡질팡하고 횡설수설하는 바람에 다중 충돌사고를 일으킨 교차로에 서있는 느낌이다. 주인공들을 소개하는 다소 긴 서막 부분은 그런대로 재치 있고 앞으로의 얘기를 기대하게 만들었으나 곧 이어 얘기가 참신성을 잃고 진부한 만화 액션영화로 전락한다. 독창성 대신 얄팍한 재주와 우스갯소리 그리고 막무가내식의 액션에 의존한 영화로 보고 있자니 사람 피곤해진다. 많은 액션이 밤에 일어나는데 영화가 전반적으로 매우 어둡다. 
미국 정부의 고지식한 고위관리 애만다 월러(바이올라 데이비스)는 살상과 파괴를 자행하는 정체불명의 막강한 힘을 지닌 적을 타도하기 위해 독방에 수감된 흉악범들을 규합해 특공대를 조직한다. 이들은 백발백중의 저격수 데드샷(윌 스미스)와 야구방망이로 사람 잡는 짙은 화장을 한 심리학자 출신의 할리 퀸(마고 로비) 그리고 손에서 불길이 치솟는 디아블로(제이 허난데즈). 이들 외에 부머랭을 무기로 쓰는 부머랭(제이 코트니)과 아무데나 기어오르는 슬립낫(애담 비치)과 사무라이 칼을 휘두르는 눈가리개를 한 여자 닌자 카타나(카렌 후쿠하라) 및 악어얼굴을 한 돌연변이 킬러 크락 등 특공대는 총 9명. 전자 4명을 뺀 나머지는 장식용이다. 
이들과 국가의 적이 싸우는 것이 내용인데 영화의 또 다른 결점은 이 적이라는 것이 구체적이지 못하고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는 그저 막연히 사악한 존재라고만 설명이 돼 너무나 인간적인 자살 특공대와 균형이 이뤄지지 않는다. 이 사악한 적의 우두머리는 7,000년 묵은 마녀인데 혼이 현재의 과학자인 준 문(카라 델레비비뉴) 속에 들어가 준을 조종한다. 그런데 마녀의 심장은 애만다가 보유하고 있어 애만다는 준을 자기 마음대로 다룰 수가 있다. 이런 얘기를 이해할 수 있는가.
무슨 소리인지 또 왜 그런지는 알 바 없으나 준의 애인은 자살 특공대를 지휘하는 릭 플랙 대령(조엘 킨나맨). 여기다 한 수 더 뜬 재미있는 한 쌍은 할리와 그녀의 애인 조커(재레드 레이토). 할리는 조커를 치료하다가 그의 매력에 사로잡혀 애인이 됐다. 
그나마 영화에서 보기 생기 있고 보고 즐길 만한 것은 금속이빨에 푸른 머리 그리고 빨간 립스틱을 칠한 조커와 거리의 여인 같은 조커의 애인 할리의 관계. 조커는 무미건조한 영화에 충격을 주기 위해 동원된 일종의 게스트 스타다. 어둡게 변칙적이요 파괴적이면서 아울러 유머를 겸한 멋지고 재미 있는 영화가 될 수 있는 소재를 조막손으로 다루다시피 해 타작에 그치고 말았다. 뱃맨(벤 애플렉)도 잠깐 나온다. 데이빗 에이어 감독. PG-13.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미녀와 야수(Beauty and the Beast)


미녀가 야수가 차려준 만찬상 앞에 앉아 있다.

장 콕토가 1946년에 만든 흑백 로맨틱 환상영화


오스카 음악과 주제가상을 탄 디즈니의 동명 만하영화와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동화를 원작으로 다재다능한 예술인 장 콕토가 1946년에 만든 흑백 로맨틱 환상영화다. 황홀하게 아름다운 꿈과도 같은 작품으로 보고 있으면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승천하는 기분에 빠지게 된다.
몰락한 상인이 가운을 되일으키려고 장사의 길을 떠날 때 그의 세 딸 중 탐욕스런 나이 먹은 두 딸은 아버지에게 비싼 선물을 요구하나 착한 막내 뷰티(조젯 데이)는 장미 한 송이만을 원한다. 일이 뜻대로 안 돼 낙심해 귀가하던 상인은 숲속에서 길을 잃고 한 신비한 성에서 하룻밤을 묵게된다.
이튿날 성을 떠나기 전 상인이 뷰티를 위해 뜰의 장미 한 송이를 따자 그의 앞에 사자얼굴을 한 야수(장 마레)가 나타나 상인에게 죽음을 선고한다. 집에 돌아온 아버지로부터 이런 사실을 알게 된 뷰티는 아버지 대신 자신의 목숨을 바치려고 야수에게로 간다.
뷰티의 아름다움과 착한 마음에 감동한 야수는 뷰티에게 청혼을 하나 거절당한다. 그러나 뷰티는 점차 야수의 흉측한 모습 안에 따뜻한 마음이 있음을 느끼면서 그에게 끌린다. 그리고 야수는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한 번만 보게 해달라는 뷰티의 청을 받아 들인다. 야수는 뷰티를 보내면서 1주일 안에 안 돌아오면 자기는 죽는다고 말한다.
집에 돌아온 뷰티는 언니들과 오빠에게 속아 약속한 날까지 야수에게 돌아가지 못하자 야수는 고통에 시달린다. 뒤 늦게 마법의 장갑을 끼고 야수의 성에 도착한 뷰티 앞에서 화살을 맞은 야수는 멋쟁이 왕자로 변신, 뷰티를 안고 하늘로 올라간다.
마레와 데이의 연기와 콤비 그리고 음악(조르지 오릭)과 촬영(앙리 알르캉) 및 세트 등이 다 훌륭한 작품으로 9일 하오 1시 LA카운티 뮤지엄 내 빙극장(윌셔와 페어팩스)에서 상영한다.
한편 디즈니의 뮤지컬을 바탕으로 만든 동명의 실사 뮤지컬 영화가 2017년 3월17일에 개봉된다. 뷰티로는 ‘해리 포터’ 시리즈로 잘 알려진 엠마 왓슨이 야수로는 댄 스티븐스가 나온다. 감독은 뮤지컬 ‘드림걸스’를 만든 빌 콘돈.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도쿄 올림피아드’




테러위협과 범죄와 오염과 시설미비 등으로 열리기 전부터 말도 많았던 리우 올림픽이 드디어 오늘 개막됐다. 근대 올림픽의 시초인 지난 1896년에 열린 아테네 경기서 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전 올림픽은 필름에 기록됐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것이 베를린 경기를 담은 ‘올림피아’(Olympia·1938)와 도쿄 경기를 기록한 ‘도쿄 올림피아드’(Tokyo Olympiad·1965)다.
배우 출신의 미녀감독으로 생전 ‘히틀러의 여자’라 불린 레니 리펜슈탈이 찍은 장장 220분짜리 ‘올림피아’는 물 흐르듯 하는 카메라가 움직이는 인간의 영육을 함께 불사르는 경쟁과 이상형으로서의 선수들 그리고 경기장 밖에서의 환희와 좌절을 담은 불후의 걸작이다.
손기정이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뛴 마라톤에서 우승한 베를린 올림픽은 히틀러와 그의 선전상 괴벨스가 나치스를 선전하고 아리안족의 우수성을 세계 만방에 과시하기 위해 열었고 영화도 이런 뜻에서 만들어 ‘악을 선전한 작품’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의도를 떠나서 본다면 이 영화는 고대 그리스의 이상주의를 예찬한 명화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보다 작은 것들에 관심을 보인 ‘도쿄 올림피아드’를 더 좋아한다. 이 흑백영화는 켄지 미조구치, 야스지로 오주, 아키라 쿠로사와 등과 함께 전후 일본의 4대 거장이라 불린 곤 이치가와 감독(1915~2008·사진)의 작품이다. 나는 이 영화를 한국에서 LA로 온지 얼마 안돼 그 때 네 살짜리 아들과 함께 윌셔가의 맥아더팍 인근에 있던 리바이벌 하우스 배가본드 극장에서 봤다.
통상적 스포츠 기록영화라기보다 한 편의 시적 인간 드라마라고 하겠는데 영화를 보면서 사실이 참으로 아름답구나 하고 느꼈었다. 상영시간 170분이 훌쩍 지나가도록 재미있고 감동적인 작품이다.
영화의 각본은 남편 영화의 각본을 여러 편 쓴 이치가와의 아내 나토 와다가 썼다. 와다와 이치가와가 쓰고 연출한 두 편의 걸작 반전영화가 ‘버마의 수금’(The Burmese Harp·1956)과 ‘야화’(Fires on the Plain·1959)다. 오스카 외국어영화상 후보작인 ‘버마의 수금’은 태평양전쟁 말기 버마 전투에서 영국군의 포로가 된 젊은 일본군의 영적 변신을 그린 숭고한 작품이다.
‘야화’는 필리핀 전투에서 살아남은 폐병환자인 일본군 타무라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그린 영화로 그의 전우들은 살아 남기 위해 인육을 먹는다. 폭력적이요 절망적으로 어둡지만 전쟁의 무모함을 호소한 위대한 반전작품이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처음에 ‘도쿄 올림피아드’의 기록을 쿠로사와에게 의뢰했었다. 그러나 쿠로사와는 국제올림픽위원회가 개막식 연출을 자신에게 맡기지 않자 영화촬영을 거절했다. 이치가와가 ‘평화와 인간 평등의 시각적 시’라고 말한 ‘도쿄 올림피아드’는 단순히 운동경기를 보여주는 차원을 넘어 선수들의 감각적 고뇌와 희열과 함께 구경하는 관중들의 모습을 손에 든 카메라를 이용해 와이드 각도로 파노라마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마라톤 경기를 보려고 길에 나온 사람들의 목을 길게 뽑은 채 뒷짐 진 모습을 찍은 장면 등에서 인간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데 영화를 보는 사람들을 화면 속으로 끌어들여 환호는 구경꾼들로 만들고 있다.
이치가와는 메달 수상자들보다 패자를 비롯한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삐딱한 각도로 선수들의 얼굴과 손과 발 그리고 일거수 일투족을 기록하면서 아울러 패배한 사람들이 서로를 위로하고 슬픔을 극복하는 모습을 감동적으로 기록했다. 그리고 환호하는 음향과 침묵을 절묘하게 사용, 경기의 흥분과 적막한 긴장감을 극적으로 살렸다. 매우 인간적인 작품으로 감독의 인본주의 정신이 가득한데 내용과 함께 형식미도 뛰어나다.  
이치가와는 1930년대부터 시작해 사망하기 2년 전까지 50편에 가까운 영화를 만들었다. 그는 형태와 분위기에 뛰어난 예술가로 인본주의적 전쟁(반전)영화와 기록영화 그리고 세련된 사회풍자극과 화려한 시대극 등 모든 장르를 잘 다루었다.
그는 우아한 화면구도와 매서운 위트 그리고 과감한 서술을 구사하면서 끊임없이 스타일과 주제 변혁을 시도한 개혁자였다. 이치가와는 또 세세한 것 모두의 사실성에 철저한 완벽주의자여서 히치콕에 비유되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이치가와의 영화가 드라마 ‘마키오카 자매들’(The Makioka Sisters·1983)이다. 주니치 다니자키의 소설 ‘세설’이 원작으로 1930년대 오사카의 몰락한 부잣집 네 자매의 이야기다. 지천으로 나부끼며 떨어지는 벚꽃들과 고운 무늬로 수놓은 비단 기모노가 내는 감각적인 소리 그리고 벚꽃들이 겨울을 맞아 변신해 내리는 듯한 세설과 아름다운 네 자매의 모습이 총천연색으로 투영된 색채미의 극치를 이룬 작품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