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7년 4월 3일 월요일

사육사의 아내(The Zookeeper‘s Wife)


안토니나(제시카 채스테인)가 사자 새끼들을 아기 돌보듯 하고있다.


나치로부터 유대인 탈출시킨 동물원 사육사 부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홀로코스트영화요 전쟁영화이자 동물영화이며 또 인간의 선과 영웅주의 및 용기를 그린 드라마로 극적이요 스릴과 서스펜스 그리고 액션마저 있는 내용을 너무 말끔하게 처리해 깊이나 충격 그리고 진정한 감정을 느낄 수가 없다. 
믿어지지 않는 놀라운 사실 속에 담긴 다양한 얘기를 지극히 평범하고 진부하고 감상적으로 처리해 참담하고 대담하고 과감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마음이 움직이질 않는다. 뉴질랜드의 여류 감독 니키 카로(‘웨일 라이더’)는 복잡한 얘기를 너무 단순화 했고 또 윤택을 냈는데 마치 벅찬 과제를 받은 학생이 어쩔 줄을 몰라 대충 뭉뚱그려 내놓은 답안지 같다.
동물원의 많은 동물들과 주인공 역의 연기파 제시카 채스테인의 모습 그리고 프로덕션 디자인과 촬영 및 음악 등 여러 모로 중간 수준은 되나 기대에 못 미치는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는 타작이다. 
나치의 폴랜드 바르샤바 점령 때 동물원을 지키면서 300명의 유대인들을 보호하고 탈출시켰던 동물원 사육사 부부 안토니나(채스테인)와 얀(요한 헬덴버그) 자빈스키의 실화로 안토니나의 일기를 바탕으로 다이앤 애커만이 쓴 베스트셀러가 원전이다.
나치가 폴랜드를 폭격하면서 어린 아들을 둔 얀과 안토니나가 돌보는 동물원이 쑥대밭이 된 채 동물들이 대량으로 죽고 호랑이와 낙타가 시내를 방황 한다(이 장면이 재미있다). 그리고 나치군인들은 우리 밖으로 나온 코끼리를 쏴 죽인다. 
전쟁 전부터 얀과 안토니나를 알고 있던 나치의 권위 있는 동물학자 루츠 헥크(다니엘 브륄)는 자빈스키 부부에게 살아남은 동물들을 전쟁이 끝날 때까지 독일에서 보호하자며 이들을 이동시킨다. 그리고 동물원의 폐쇄를 꺼리는 자빈스키 부부는 루츠에게 동물원을 독일군들을 위한 식량 조달처인 돼지농장으로 운영하겠다고 부탁해 허락을 받는다. 
돼지들의 먹이는 유대인들을 격리한 게토의 음식쓰레기. 얀은 아들과 함께 트럭을 몰고 게토로 가서 쓰레기를 옮기는데 이 때 쓰레기 속에 유대인들을 숨겨 나온다. 그리고 이들은 자빈스키 집의 지하실에 숨어 안토니나의 극진한 돌봄을 받는다. 이렇게 해서 이들의 집에 숨어든 뒤 바르샤바를 탈출한 유대인들은 무려 300여명.
그런데 필요 이상으로 게토의 참상을 자주 보여주는 영화에서 이런 참상이나 유대인 탈출과 지하실 피신 장면 등이 아무런 공포감이나 충격을 주지 못한다. 솜방망이 터치다. 영화에 약간의 액센트를 주는 것이 안토니나를 사랑하는 루츠의 모습. 안토니나가 자기 집을 찾은 루츠가 지하실에서 나오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려고 그의 귀를 막고 입을 맞추는 장면이 있는데 이 역시 서투르다. 이어 얀을 포함한 폴랜드 게릴라들과 독일군과의 시가전 장면이 나오나 마찬가지로 평범하기 짝이 없다. 
연기를 잘 하는 채스테인이 겉으로는 연약하나 속은 대담무쌍한 여자의 모습을 잘 표현하나 폴랜드 액센트는 어색하다. 나머지 배우들의 연기는 덤덤하다. 인간들보다는 컴퓨터 특수 이미지 효과를 거의 안 쓴 동물들의 생생한 모습이 무미건조한 영화에 생기를 불어 넣는다.   PG-13. Focus. 랜드마크(피코와 웨스트우드) 등 일부 지역.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빅 히트(The Big Heat·1953)


갱스터의 애인 데비(왼쪽)는 자기를 보호해주는 데이브에게 애인의 범죄사실을 털어 놓는다.

죽은 아내의 복수를 위해 범죄조직을 파헤치는 형사


펄펄 끓는 커피가 충격적인 효과물로 사용되는 뛰어난 필름 느와르다. 
거칠고 가차 없는 야수적인 영화로 명암이 뚜렷한 촬영과 불연속적인 음악 및 에누리 없는 대사가 작품의 살벌한 분위기를 극대화 하고 있다.           
정의롭고 과묵한 형사 데이브 배니언(글렌 포드)이 동료형사의 의문의 자살을 수사하면서 상사로부터 수사 중단 명령을 받는다. 자살한 동료 형사가 시정부 관리들의 부패상을 기록한 노트를 미끼로 형사의 아내 버타가 부패사건에 연루된 범죄단의 두목 알렉산더를 협박하면서 버타가 사체로 발견된다.
이어 데이브는 알렉산더를 찾아가 그와 정면대결 한다. 그리고 알렉산더의 졸개들이 데이브의 차에 설치한 폭탄이 터지면서 데이브의 아내 케이티(조슬린 브랜도-말론 브랜도의 누나)가 숨진다. 악이 난 데이브가 알렉산더 체포에 열을 올리자 그의 상사가 다시 사건에서 손을 떼라고 지시하면서 데이브는 경찰배지를 내던지고 개인적으로 아내 살해범을 찾아 나선다.
데이브는 알렉산더의 오른 팔인 빈스(리 마빈)의 애인 데비(글로리아 그래암)를 찾아가 아는 대로 고백하라고 윽박지른다. 이를 안 빈스가 데비의 얼굴에 펄펄 끓는 커피를 들어부으면서 데비의 얼굴 반쪽에 흉한 상처가 남는다. 그리고 데비는 데이브를 찾아가 알렉산더와 빈스가 저지른 살인사건에 대해 털어놓는다. 
이어 데비는 빈스를 찾아가 이번에는 자기가 빈스의 얼굴에 끓는 커피를 들어붓는다. 격분한 빈스가 데비를 사살하고 이 때 현장에 도착한 데이브는 빈스를 걸레가 되도록 두들겨 팬 뒤 경찰에 인계한다. 데비는 입고 있는 밍크코트로 얼굴의 흉터를 가린 채 자기를 내려다보는 데이브를 바라보면서 숨진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그 중에서도 무지막지한 살인자의 모습을 촌티가 나면서도 냉혹하게 보여준 마빈의 것이 기억에 남는다)를 통한 다양한 성격 묘사와 사실적이요 긴박감 있는 내용을 잘 뒷 받침해주는 촬영 등이 돋보이는 명작 범죄영화다. 프리츠 랭 감독. 
이 영화와 함께 여러 남자를 멸망의 길로 몰아넣는 웨이트리스의 행각을 다룬 또 다른 필름 느와르 ‘사악한 여인’(The Wicked Woman^1954)이 4월 2일(하오 7시30분) 이집션극장(6712 할리웃)에서 동시 상영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나우 보이저’




공교롭게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두 편의 연애영화의 여자 주인공들의 눈은 모두 매우 크다. 데이빗 린이 감독한 ‘짧은 만남’의 실리아 존슨과 어빙 래퍼가 연출한 ‘나우, 보이저’의 베티 데이비스의 눈은 다 크고 수심이 깊어 그들의 영화 내용처럼 이루지 못할 사랑에 걸 맞는다.
둘 중에서도 도톰한 눈두덩 아래 호수처럼 맑은 눈동자를 지녔던 데이비스의 눈은 사이렌의 노래 소리와도 같은 치명적인 흡인력을 지녔다. 그래서 킴 칸즈는 ‘베티 데이비스 눈’이라는 노래를 불렀고 데이비스는 내가 흠모하는 여배우가 되었다.
데이비스는 할리웃 황금기인 1930년대와 40년대 탑 박스 오피스 스타로 시대를 군림했던 신경 과민한 에너지의 소유자였다. 성질이 불같아 자기에게 주어지는 각본이 나쁘다고 당시 할리웃의 제왕과도 같았던 전속 사 워너 브라더스의 잭 워너 사장을 상대로 법정소송을 벌였던 시대를 앞서간 여권운동의 선봉자이기도 했다.
데이비스는 또 경쟁심도 강해 자기와 같은 시대의 또 다른 스타 조운 크로포드와 벌였던 스크린 주도권 쟁탈전은 할리웃의 전설적 에피소드로 남아있다. 모두 오스카 수상자들인 이들은 나이 먹어 퇴물 취급을 받을 때 괴이한 드라마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What Ever Happened to Baby Jane?^1962)에 처음으로 공연하면서 치열하게 대결, 영화가 히트하고 데이비스는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올랐었다.
둘이 이 영화를 만들 때의 얘기는 최근 FX-TV에 의해 ‘불화’(Feud)라는 시리즈로 만들어져 방영됐다. 데이비스 역은 수잔 서랜든이 크로포드 역은 제시카 랭이 각기 맡았다.
데이비스는 ‘여성 영화’에 강했다. ‘제저벨’(Jezebel^1938) ‘다크 빅토리‘(Dark Victory^1939) ’편지’(The Letter^1940) ‘작은 여우들’(The Little Foxes^1941) 및 ‘이브의 모든 것’(All About Eve^1950) 등에서 모두 강한 여성의 이미지를 보여줬는데 그 중에서도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나우, 보이저’(Now, Voyger^1942)다.
이 영화는 어빙 래퍼가 올리브 히긴스 프라우티의 소설을 원작으로 감독한 화사한 흑백 멜로드라마다. 소설 제목은 월트 위트맨의 시 ‘풀잎’ 중 ‘자, 항해자여 구하고 찾기 위해 돛을 올리세’라는 구절에서 인용한 것이다.
샬롯 베일(데이비스)은 보스턴 상류층의 폭군적인 어머니(글래디스 쿠퍼)의 가혹한 통제 밑에서 자란 소심하고 수줍음 많은 혼기를 놓친 여자. 샬롯이 가정의 정신과의사 자퀴즈(클로드 레인즈)의 권유에 따라 남미 행 여객선을 탄 뒤 동승한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는 제리 던스(폴 헨리드-레인즈와 함께 데이비스가 가장 좋아한 남자배우)를 만나면서 생애 처음으로 사랑의 희열에 젖는다.
둘은 짧은 로맨스를 남긴 채 헤어지는데 샬롯은 이 사랑으로 미운 오리새끼로부터 우아하고 아름다운 백조로 화사하게 변신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재회, 변함없는 사랑을 확인하나 결합하지 못하고 둘이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에서 행복을 찾는다.
영화에서 샬롯이 말하는 마지막 대사는 할리웃이 남긴 최고의 대사 중 하나로 남아있다. 샬롯이 제리에게 “오, 제리, 우리 달을 요구하지 말아요. 우리에겐 별들이 있잖아요.”라고 말하면서 카메라가 서서히 별이 가득한 하늘을 향해 올라간다.
영화에서의 ‘담배 두 개비’장면(사진)은 영화의 그 어느 면보다 더 잘 알려진 것이다. 제리가 담배 갑에서 담배 두 개비를 꺼내 자기 입에 물고 불을 붙인다. 이어 제리가 건네준 담배 한 개비를 샬롯이 입에 무는데 두 입술의 뜨거운 접촉을 실제의 키스를 대신해 아름답게 상징한 장면이다. 이 제스처는 헨리드가 생각해낸 것이다.
영화는 빅 히트를 했고 데이비스와 쿠퍼가 각기 오스카 주^조연 상 후보에 오르고 풍성하고 로맨틱한 맥스 스타이너의 음악이 오스카상을 탔다. 이 영화는 고도의 오락성과 로맨티시즘 그리고 당시 시대상황에 거역하는 여성의 힘이라는 주제를 지닌 주옥같은 명화다.
데이비스는 반세기간의 연기생애를 통해 ‘데인저러스’(Dangerous^1935)와 자기 애인이었던 윌리엄 와일러가 감독하고 자기를 스타로 만들어준 ‘제저벨’로 두 차례 오스카 주연상을 탔다. 그리고 ‘다크 빅토리’ ‘편지’ ‘작은 여우들’ ‘미스터 스케핑턴’(Mr. Skeffington^1944) ‘이브의 모든 것’ 및 ‘스타’(The Star^1952) 등으로 모두 여덟 차례 주연상 수상후보에 올랐었다. 데이비스는 한 인터뷰에서 ‘이브의 모든 것’의 베테런 연극배우 마고 채닝 역으로 오스카상을 탔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아카데미상의 작은 남자상에 오스카라는 별명이 붙게 된 것은 데이비스 때문이다. 데이비스는 이 남자상을 보고 그 뒷모습이 미들 네임이 오스카인 자기 첫 남편의 것을 닮았다고 말해 그 뒤로 오스카로 불리고 있다.
렘리극장은 ‘나우, 보이저’ 개봉 75주년을 맞아 오는 4월 4일 이 영화와 역시 데이비스가 주연하고 험프리 보가트가 공연한 갱스터 드라마 ‘마크트 우먼’(Marked Woman^1939)을 화인아츠(8556 윌셔)와 노호7(노스 할리웃) 및 플레이하우스7(패사디나)에서 동시상영 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