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12월 21일 월요일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Star Wars: The Force Awakens)


레이(왼쪽)와 핀이 스톰트루퍼의 공격을 피해 달아나고 있다.

‘제다이의 귀환’ 이후 30년 뒤 선과 악의 대결


마치 천지가 개벽이라도 하는 듯이 요란하게 선전을 해대고 또 팬들이 기다렸던 ‘스타워즈’의 일곱 번째 시리즈로 올드 팬들과 새 젊은 팬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옛 인물들과 새로운 인물들이 나와 치고 박고 광선 칼싸움하고 도망가고 추격하고 웃고 떠들면서 난리법석을 떤다. 특수효과가 대단한 액션영화인데 매우 코믹하게 만들어 때론 ‘스타워즈’의 패러디를 보는 것 같다.  
‘제다이의 귀환’(1983)이 끝난 지 30년 뒤의 얘기인데 플롯이 매우 복잡하지만 이 시리즈의 기본골격인 선과 악의 대결이 주제. 보고 즐길 만하지만 얘기가 그렇게 참신하지도 못하고 또 일부 미스 캐스팅이 눈에 띄는데다가 내용이나 톤이 고르다기보다 울퉁불퉁해 재미도 역시 울퉁불퉁하다.
볼만한 것은 나이 먹은 한 솔로 역의 해리슨 포드. 완전히 포드의 영화라고 해도 될 만큼 그가 시치미 뚝 떼는 표정과 함께 코믹한 대사를 구사하면서 액션을 하는데 그가 영화에 나올 땐 영화가 살아나고 그가 없어지면 맥이 빠질 지경이다. 포드와 함께 영화에 젊은 에너지를 부여하는 것이 새 인물 레이 역의 신인 데지이 리들리. 여전사 역을 단단하게 해내는데 마치 ‘헝거게임’ 시리즈의 캐트니스를 보는 것 같다.
김정은 같은 수프림 리더 스노크(앤디 서키스 음성)가 지배하는 악의 세력 퍼스트 포스와 시리즈에서 공주로 불렸던 레아(캐리 피셔)가 이제 장군이 돼 지도자가 된 퍼스트 포스에 대한 저항세력 리퍼블릭이 공중전과 지상전을 벌이면서 선과 악의 대결이 벌어진다. 
리퍼블릭은 이 싸움을 이끌 영웅 루크 스카이워커(마크 해밀)가 절실히 필요한데 루크는 종적을 감춰 그를 찾는 것이 급선무다. 리퍼블릭과 함께 퍼스트 포스도 루크를 찾는데 그의 거처를 알려주는 지도의 부분을 간직한 사람이 리퍼블릭의 제트 파일럿 포(오스카 아이잭). 그런데 포는 스노크의 하수인으로 시리즈의 다트 베이다처럼 검은 마스크를 쓴 카일로(애담 드라이버)의 군대 스톰트루퍼의 습격을 받기 전 이 지도의 일부를 수록한 장치를 굴러다니는 귀여운 로봇 BB-8 속에 감춘다.
포를 돕는 것이 스톰트루퍼의 만행에 질려 군에서 탈영한 핀(잔 보이에가가 마치 ‘궁정의 어릿광대처럼 군다). 둘이 퍼스트 포스 본부에서 쌕쌔기를 타고 탈출하다 격추돼 불시착한 곳이 정크야드 혹성 자쿠. 그리고 둘은 여기서 본의 아니게 헤어지고 핀은 독립심 강한 여전사 레이를 만나 전우가 된다. 영화 절반쯤 지나 이들은 정크가 된 한 솔로의 비행기 밀레니엄 팰콘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한 솔로와 그의 털북숭이 친구 추바카를 만난다. 영화에는 추바카 외에도 R2D2와 C-3PO도 나온다. 
클라이맥스는 푸른 광선 검을 든 레이와 붉은 광선 검을 든 카일로의 격투.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한 특수효과와 액션신이 장관인데 영화는 물론 속편을 예고하면서 끝난다. 시리즈의 음악을 작곡한 존 윌리엄스가 이 영화의 음악도 작곡했는데 영화의 첫 부분과 마지막 크레딧 장면의 음악을 LA 필의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이 지휘했다.
J.J. 에이브람스 감독. PG-13. Disney.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사울의 아들(Son of Saul)


사울이 마스크를 한 채 유대인들의 사체를 치우고 있다.

나치의 유대인 집단학살 ‘아우슈비츠’배경


보면서 견디기가 힘들 정도로 사실적이요 처참하고 끔찍하며 또 강력한 헝가리 영화로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의 개스처형실 안에 갇힌 공포와 절망과 고통을 느끼게 만드는데 상영시간의 상당 부분을 개스처형된 유대인들의 벌거벗은 사체를 보고 있자니 몸과 마음의 느낌이 모두 마비가 된다. 이것은 영화를 잘 만들었다는 얘기도 될 수 있겠지만 그와 반대로 영화의 진면목을 제대로 느끼고 생각할 수 없게 하는 부작용 구실을 한다. 과도하다. 
음악이 없는 영화로 음악 대신 비명과 총성과 구령 그리고 개스실 철문이 닫히는 소리와 “살려 달라”며 철문을 두드리는 소리 등 음향효과가 절실한데 얘기는 간단한 반면 이런 음향효과와 시각적 강렬성이 거의 기록영화도 같은 경지로 끌어올렸다. 
이 영화로 데뷔한 라즐로 네메스 감독(그는 각본도 공동으로 썼다)의 연출력이 확고하고 자신만만한데 영화 내내 질식할 것처럼 짓누르던 긴장감과 강렬성이 끝까지 지속되지 못하고 끝에 가서 김이 빠진다. 그러나 연기를 비롯해 대단한 작품으로 보는 사람에 따라 반응이 정반대로 갈릴 것이다. 
사울(헝가리 시인 게자 로릭)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힌 존더코만더. 존더코만더는 나치를 위해 사체운반 등 잡일을 하는 유대인들로 이들은 처형이 연기된 사람들이다. 사울이 하는 일은 개스실에 들어간 사람들의 유품을 정리하는 것. 그는 개스실의 비명소리를 들으면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유품을 정리하는데 그 모습이 완전히 산송장 같다. 
그런데 사울이 어느 날 자기 아들의 것이라고 확신하는 소년의 사체를 목격하면서 그는 자기 아들(사울의 아들인지 밝혀지지 않는다)에게 유대교 의식에 따른 장례를 치러주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아들의 사체를 숨긴 뒤 수용소 내에서 율법사를 찾아다닌다. 
지금까지 좀비 같던 사울은 이런 사명의식 때문에 몸에 뜨거운 피가 흐르는 강렬한 인간으로 변신한다. 사울의 이런 집념은 그가 유물을 정리한 죽은 자들에 대한 속죄행위와도 같다. 사울의 이런 행적과 함께 유대인들의 탈출 모의와 폭동 등이 곁가지로 얘기된다.    
영화는 내용이나 카메라가 거의 모두 사울에게만 집중돼 있어 관객은 다른 많은 일들은 음향효과를 통한 상상으로 감지하게 만들었다. 무표정하면서도 안으로 끓어오르는 로릭의 얼굴연기가 훌륭하다. 최근 LA 영화비평가협회에 의해 올해 최우수 외국어 영화로 선정된 이 영화는 2015년도 헝가리의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부문 후보작으로 골든 글로브상 후보에 올랐다. 오스카와 골든 글로브상을 모두 탈 가능성이 크다. 
성인용. Sony Classics. 일부 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물 먹은 자니 뎁




자니 뎁이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로부터 큰 물을 먹었다. 10일 발표된 각 부문 골든글로브상 후보 중 실화인 ‘블랙 매스’(Black Mass·사진)에서 보스턴의 악명 높은 갱 와이티 벌저로 나와 호연, 주연배우(드라마) 후보로 오를 것이 떼놓은 당상처럼 여겨지던 뎁이 후보에서 탈락된 것은 이번 발표에서 일어난 경악할 만한 변괴다. 나는 그에게 표를 찍었는데 뎁은 HFPA의 총아로 그동안 총 10번이나 주연상 후보에 올랐었는데 이번 탈락은 뎁에게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HFPA는 메이저 스튜디오의 영화와 함께 인디 영화도 여러 부문에서 수상후보로 골랐는데 1950년대 미 부유층 가정주부와 젊은 백화점 여직원 간의 동성애를 그린 ‘캐롤’(Carol)이 작품, 감독 및 주연여우 등 총 5개 부문에서 드라마 부문 후보에 올라 최다 후보작품이 됐고 이어 2008년 미 주택가격의 붕괴를 다룬 ‘빅 쇼트’(The Big Short·뮤지컬/코미디)와 지난해에 ‘버드맨’으로 오스카 감독상을 탄 멕시코 태생의 알레한드로 G. 이나리투가 감독하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한 살벌한 생존과 복수의 웨스턴 ‘레버난트’(The Revenant·드라마)와 애플컴퓨터 공동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삶을 다룬 드라마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각기 작품상 등 총 4개 부문에서 후보에 올랐다. 
디카프리오는 그동안 모두 4차례나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오르고도 번번이 고배를 마셨는데 이번에 ‘레버난트’로 골든글로브 상에 이어 마침내 오스카 주연상을 탈 가능성이 매우 높다.  
화성 탐사를 갔다가 팀과 떨어져 달랑 혼자 남게 된 우주인의 생존투쟁을 그린 드라마 ‘마션’(The Martian)이 뮤지컬/코미디 부문에서 작품상 후보에 오른 까닭은 이 영화의 배급사인 폭스가 드라마 부문에서 작품상 후보로 오른 자사 작품 ‘레버난트’와의 경쟁을 피해가기 위해서 뮤지컬/코미디로 밀었기 때문이다.   
각기 드라마 부문과 뮤지컬/코미디 부문에서 작품상 후보로 오른 ‘스팟라이트’(Spotlight)와 ‘빅 쇼트’는 모두 앙상블 캐스트의 영화. 그런데 ‘빅 쇼트’의 크리스천 베일과 스티브 커렐은 각기 주연상 후보에 오른 반면 보스턴 가톨릭교구 내 신부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취재 보도한 보스턴 글로브지 기자들의 드라마 ‘스팟라이트’의 마이클 키튼과 마크 러팔로는 다 탈락됐다. 러팔로는 ‘인피니틀리 폴라 베어’(Infinitely Polar Bear)로 주연상(뮤지컬/코미디) 후보에 오른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빅 쇼트’처럼 한 작품으로 두 배우가 주연상을 놓고 경쟁하는 또 다른 영화가 ‘캐롤’. 오스카상을 이미 탄 베테런 케이트 블랜쳇과 떠오르는 신예 루니 마라가 겨루게 됐는데 둘이 다투는 바람에 다른 배우가 어부지리를 얻을 가능성이 있다.  
스웨덴 태생의 떠오르는 연기파 알리시아 비칸더는 실제로 의학 사상 최초로 남자에서 여자로 성전환 수술을 한 덴마크의 화가 릴리 엘베의 아내 화가로 나온 ‘덴마크 여자’(The Danish Girl)로는 주연상(드라마) 후보 그리고 공상과학 스릴러 ‘엑스 마키나’(Ex Machina)에서는 인간화한 인조인간으로 나와 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연기상 후보에 오른 베테런 중 먼저 눈에 띄는 배우가 실베스터 스탤론이다. 스탤론은 권투영화 ‘크리드’(Creed)에서 록키 발보아로 나와 왕년의 자기 라이벌의 아들의 권투코치 노릇을 하는데 이는 그가 39년 전 ‘록키’로 주연상 후보에 오른 이후 처음으로 연기상 후보에 다시 오르는 쾌거다. 그리고 8순의 음악가와 그의 영화감독 친구의 삶에 대한 성찰을 그린 ‘청춘’(Youth)에서 화장을 짙게 하고 상소리를 마구 내뱉는 여배우 역으로 조연상 후보에 오른 제인 폰다도 30년만에 처음으로 후보명단에 올랐다. 
또 다른 베테런은 ‘대니 칼린스’(Danny Collins)에서 한물 간 가수로 나온 알 파치노(뮤지컬/코미디). 파치노는 HFPA의 사랑을 받는 배우로 그동안 모두 17번 연기상 후보에 올라 4번 상을 탔고 생애업적상인 세실 B. 드밀상도 받았다. 그리고 릴리 탐린(할머니)과 매기 스미스(밴 속의 여자)도 노련한 연기파들이다. 또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피범벅 웨스턴 ‘헤이트풀 에잇’(The Hateful Eight)으로 음악상 후보에 오른 엔니오 모리코는 ‘황야의 무법자’ 시리즈음악을 작곡한 베테런이다.       
한편 한국영화는 이번에도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서 탈락됐다. 한국은 송강호와 유아인이 공연한 사도세자의 얘기인 ‘사도’(The Throne)를 출품했었다. 다소 위안이 되는 것은 만화영화상 후보에 오른 ‘좋은 공룡’(The Good Dinosaur)의 감독이 한국인 피터 손이라는 점과 조수미가 부르는 ‘청춘’의 노래 ‘심플 송 #3’(Somple Song #3)이 주제가상 후보에 오른 점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