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7년 2월 24일 금요일

케디(Kedi)


임자 없는 고양이가 이스탄불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여유로운 이스탄불의 떠돌이 고양이들


여유롭고 즐겁고 우아하며 명상에 잠기게 만드는 이스탄불의 주인 없는 고양이들에 관한 기록영화다. 터키인으로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세이다 토룬이 연출했는데 제목은 터키어로 고양이를 말한다.
이스탄불 도처에 사는 수천마리의 떠돌이 고양이들의 눈으로 본 이스탄불 찬미와도 같은 영화로 고양이와 도시와 도시 주민들에 관한 고찰이다. 마법적인 매력을 지닌 작품으로 인간이 고양이를 돌보고 그들과 사귀면서 얻고 깨닫는 삶의 예지를 보게 되는데 말하자면 고양이 철학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고양이를 키우며 사랑하는 사람들이 매우 좋아할 영화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큰 기쁨을 줄 것이다.  
특히 보기 좋은 것은 촬영이다. 온갖 모양의 고양이 얼굴을 클로스업으로 보여주다가 카메라가 네발로 움직이는 이들을 따라가면서 물 흐르듯이 움직인다. 이와 함께 이스탄불이라는 아름다운 도시와 주민들의 일상을 다정하고 인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카페와 상점의 고양이들 그리고 골목과 지붕 위와 부두 방파제에 사는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면서 돌보는 사람들의 관계가 마치 인간 대 인간의 관계처럼 포착됐는데 사람들은 고양이들을 통해 사람으로부터 배울 수 없는 것을 배우고 있다고 말한다. 
고양이들은 비록 사람들이 주는 음식에 의존하지만 매우 독립적이다. 언제든지 집에 들오고 싶으면 들어오고 또 나가고 싶으면 나간다. 그 모습이 도도하다.    
어떤 사람은 “개는 사람을 신이라고 생각하지만 고양이는 그렇지 않다. 고양이는 사람을 신의 뜻의 중개인으로 생각 한다”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은 고양이를 쓰다듬으면서 “고양이를 쓰다듬는 것은 기도용 염주를 만지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고양이와 대화는 마치 외계인과의 교류와도 같은 우리와 전연 다른 생명체와의 통화라고 말한다. 한 빵가게 주인은 고양이로 인해 자신의 삶이 풍부해졌다고 고양이 예찬론을 고백한다. 
한 작은 배의 선주는 자기가 고양이로부터 입은 은혜를 갚기 위해 버려진 고양이 새끼들에게 정성껏 우유를 먹이고 또 어떤 사람은 고양이를 쓰다듬으면서 이 고양이는 자기가 다른 고양이를 쓰다듬으면 질투를 낸다고 말한다.
고양이들이 분주하게 가게와 집을 들락날락하는 모습과 새끼들을 품고 보호하는 모습 또 거리를 배회하고 저희들끼리 다투는 모습을 카메라가 역동적으로 쫓아다니는데 사람들은 도시에 고층건물들이 늘어나면서 점점 고양이들이 살 수 있는 녹지대가 줄어들어 걱정이라고 말한다.  
고양이들이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그들의 시각으로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따스하면서도 지적인 작품으로 풍성함과 희열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스탄불의 고양이들은 오토만 제국 때 이 도시가 무역의 중심지가 되어 전 세계로부터 온 상선들에 타고 있던 고양이들이 땅에 내려 정착하면서 늘어났고 아울러 하수구가 건설되고 쥐가 번성하자 집집마다 고양이를 키우면서 고양이 천국이 되었다고 한다. 
아크라이트(바인과 선셋) 로열(11523 산타모니카) 플레이하우스(패사디나) 유니버시티 타운센터(어바인).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레이디 이브(Lady Eve^1941)


카드 사기꾼 진(왼쪽)이 순진한 찰스를 유혹하고 있다.

프레스턴 스터지스 감독의 재미있고 신랄한 로맨틱 코미디


할리웃 황금기 탁월한 풍자가로 통렬한 위트로써 미국사회의 다양한 면을 날카롭게 비판했던 감독이자 각본가인 프레스턴 스터지스의 재미있고 신랄한 로맨틱 코미디다. 성의 대결을 그린 영화로 두 주인공 역의 헨리 폰다와 바바라 스탠윅의 기막힌 콤비와 총명하고 짜릿짜릿한 대사 그리고 절묘한 타이밍과 조연진의 훌륭한 연기가 있는 보석같이 반짝거리는 흑백영화다.
백만장자 양조장 집 아들 찰스(폰다)는 모든 여자는 돈 때문에 자기를 노린다고 생각하면서 오로지 정글에 사는 희귀종 파충류 연구에만 몰두한다. 찰스는 브라질 여행 후 귀국 여객선에 오르는데 여기서 카드 사기꾼 부녀 해리(찰스 코번)와 진(스탠윅)을 만나면서 그의 인생항로가 급커브를 튼다.
두 부녀는 아이처럼 순진한 찰스의 껍데기를 벗기기로 하고 사기 카드게임으로 그를 유인하는데 찰스는 이런 줄도 모르고 아름답고 명랑한 진에게 넋을 잃고 만다. 그런데 진도 찰스를 사랑하게 되면서 찰스가 진에게 구혼한다. 그러나 찰스의 충직한 바디가드(윌리엄 디마레스트)가 진의 정체를 캐내는 바람에 실망한 찰스는 진을 떠난다.
그로부터 세월이 흐른 뒤 찰스에 대한 복수를 시도하는 진은 영국 귀족처녀로 위장하고 찰스에게 접근, 자기를 몰라보는 그의 마음을 다시 빼앗아 결혼에 성공한다. 둘이 기차로 신혼여행을 떠나면서 마침내 진의 복수가 시작된다. 진은 자신이 과거에 사랑했고 또 결혼했던 많은 남자들의 이름과 뜨거웠던 사랑의 행위를 줄줄이 늘어놓는데 이를 듣는 찰스의 얼굴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다. 그리고 찰스는 진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한편 해리는 딸에게 거액의 위자료를 요구하라고 종용하나 진은 자기가 찰스를 사랑한다며 이를 거절한다. 해리와 진은 다시 사기 카드게임을 위해 브라질행 여객선에 오르는데 역시 배에 탄 찰스와 진이 재회하면서 해피 엔딩.
풍자와 슬랩스틱이 잘 조화를 이룬 달콤한 영화로 찰스가 자기 머리를 가슴에 꼭 끌어안고 유혹하는 진의 육탄공격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과 진이 자기 옆을 지나가는 찰스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는 장면 등 재미있는 장면들이 많다.
28일 하오1시. LA카운티 뮤지엄 내 빙극장.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오스카 고즈 투


제 89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오는 26일 하오 5시부터 할리웃에 있는 돌비극장에서 지미 킴멜의 사회로 열린다. ABC-TV가 전 세계로 생중계한다.    
오스카상이라고도 불리는 아카데미상의 최고의 영광이라 할 수 있는 작품상 부문에는 총 9개의 영화가 후보에 올랐는데 일찌감치 뮤지컬 ‘라 라 랜드’(La La Land^사진)가 탈것으로 점쳐졌다.
옛 할리웃과 뮤지컬에 바치는 헌사인 이 노스탤지어 가득한 영화는 작품상을 비롯해 무려 14개 부문에서 수상 후보에 올랐는데 이미 제작자협회상을 탔고 지난 1월에 열린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도 작품상(뮤지컬/코미디) 등 모두 7개의 상을 탔다.  
작품상을 타는 영화의 감독이 감독상을 타는 것이 관례가 되다시피 해 감독상은 ‘라 라 랜드’를 연출한 데미언 차젤(32-‘위프래쉬’)이 탈 것이 분명하다. 차젤은 이미 감독협회상을 탔는데 그를 바짝 추격하는 사람이 마이애미 흑인 달동네 소년의 성장기인 ‘문라이트’(Moonlight)를 연출한 배리 젠킨스.
남자 주연상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사람이 ‘바닷가의 맨체스터’(Manchester by the Sea)의 케이시 애플렉과 ‘울타리’(Fences)의 덴젤 워싱턴. 이 부문에서는 쓰라린 과거를 지닌 아파트 핸디맨의 고뇌와 자아 구제의 모습을 극도로 절제해 보여줘 골든 글로브상(드라마)을 탄 애플렉이 상을 탈 것이 유력했다.
그러나 최근 아카데미 회원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배우협회가 가정을 독재자처럼 군림하면서 독설을 내뱉고 허세를 부리는 피츠버그의 쓰레기차 용원으로 나와 겁이 날 정도로 위협적인 연기를 한 워싱턴에게 상을 주면서 워싱턴이 유력한 오스카상 후보로 부상했다. 워싱턴이 주연상을 타면 그는 오스카 3관왕이 된다. ‘울타리’는 어거스트 윌슨의 퓰리처상 수상작인 동명 연극이 원작이다.
애플렉이 배우협회상을 타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여성 비하 행동과 성적 희롱 등 그의 과거의 개인적 편력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작년 초만 해도 오스카 작품상과 감독상 후보에 오를 것으로 평판이 자자했던 젊은 흑인 감독 네이트 파커의 흑인 노예들의 폭동 실화를 다룬 ‘국가의 탄생’이 파커가 대학시절 연루돼 재판 끝에 무죄 판결을 받은 동료 여대생(후에 자살했다) 강간사건이 알려지면서 영화계로부터 완전히 외면을 받은 것과 일맥상통한다.
여자 주연상은 ‘라 라 랜드’에서 할리웃에 사는 배우 지망생으로 나와 빛나는 연기를 한 엠마 스톤이 탈 것이 유력하다. 스톤은 이미 골든 글로브상(뮤지컬/코미디)을 탔다. 스톤에 이어 유력한 수상 후보자가 ‘엘르’(Elle)에서 강간을 당한 후 도덕적으로 애매모호한 행동을 취하는 여사장 역을 맹렬히 한 프랑스의 베테런 이자벨 위페르. 위페르는 골든 글로브상(드라마)을 탔으나 오스카상은 5명의 후보가 나온 작품 중 유일하게 작품상 후보에도 오른 ‘라 라 랜드’의 스톤이 탈 확률이 높다.
남자 조연상은 ‘문라이트’에서 주인공 소년의 후견인 노릇을 하는 마약 딜러로 나와 따스하고 인간적인 연기를 한 마헤르샬라 알리가 탈 것이다. 그는 이미 배우협회상을 탔다. 여자 조연상은 ‘울타리’에서 남편의 허세와 독재적 군림을 너그러운 마음과 지혜로 인내하는 아내로 나와 깊이와 무게를 지닌 연기를 한 바이올라 데이비스가 탈 것이 유력하다. 데이비스는 이미 골든 글로브상과 배우협회상을 탔다.
데이비스가 상을 타면 남녀 주조연상 부문에서 여자 주연만 빼고 모두 흑인 배우들이 상을 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지난 2년간 연기상 부문에서 단 한 명의 흑인 배우도 포함되지 않아 ‘오스카는 온통 백색이다’라는 구설수에 올랐던 아카데미가 면죄를 받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 올 해 연기상 부문에서는 워싱턴과 알리 및 데이비스 외에도 또 다른 여자 주연상 후보인 루스 네가(‘러빙’)와 조연상 후보들인 네이오미 해라스(‘문라이트’) 및 옥타비아 스펜서(‘히든 피겨즈’) 등도 다 흑인들이다. 연기상 부문에서 흑인 배우들이 6명이나 후보에 오른 것은 오스카 사상 초유의 일이다.
‘라 라 랜드’는 작품과 감독 및 여자 주연상 외에도 음악, 주제가(‘시티 오브 스타즈’) 그리고 촬영과 의상상 등도 탈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는 여러 부문에서 오스카상을 휩쓸다시피 할 것이다.
외국어 영화상은 이란의 아스가르 화라디가 감독한 ‘세일즈맨’(The Salesman)이 탈 것이 유력하다. 트럼프의 이란인들의 미 입국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이 이 영화가 상을 타는 것을 더 힘차게 뒷받침해준 셈이다. 이에 경쟁하는 영화가 독일영화 ‘토니 에르트만’(Toni Erdmann). 만화영화는 ‘주토피아’(Zootopia)가 탈 것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