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3월 15일 화요일

하늘의 눈(Eye in the Sky)


캐서린 대령(헬렌 미렌)이 드론기 공격에 대한 상부 지시를 촉구하고 있다.

테러전쟁 피해자를 둘러싼 드론 부대의 딜레마


전쟁 액션 드라마이자 심리 스릴러의 스타일을 혼용한 이 영화는 현재 미국이 테러리스트들을  살해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드론기의 공격에 의해 살해될 수도 있는 부수 피해자를 둘러싼 도덕극이기도 하다. 매우 사실적이요 현실적이어서 극중의 인물들과 함께 초조하고 긴장된 심장으로 내용에 함몰케 된다.
엉뚱한 사람의 피해를 염려해 드론기의 공격을 미루는 조종사와 공격을 주장하는 지휘관 그리고 최종 결정권을 지닌 정부의 고위 관리들의 갈팡질팡하는 거의 코믹한 탁상토론이 3중으로 교직되면서 보는 사람을 안절부절 못하게 만든다.
영국의 각료 상황보고실에 모인 각 부처에서 참석한 고위관리들과 프랭크 벤슨 장군(알란 릭크만의 유작) 등이 보는 가운데 영상으로 영국이 잡으려고 혈안이 된 무슬림 극단주의 단체에 합류한 영국 여자 테러리스트의 나이로비 은둔처가 포착된다. 테러리스트 체포작전을 총괄하는 사람은 영국군 여자 대령 캐서린 파웰(헬렌 미렌).
은둔처에 대한 공격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미국에서 드론기를 원격 조종하는 공군 조종사 스티브 와츠(아론 폴-TV 시리즈 ‘브레이킹 배드’). 그가 화면으로 드론기를 몰아 테러리스트들의 은둔처를 조준하는 장면이 마치 비디오 게임을 보는 것 같다. 한편 캐서린은 은둔처 내부를 살피기 위해 현지의 협조자(바카드 압디)를 시켜 장난감 같은 소형 드론기를 띄워 집 밖과 안의 상황을 포착한다.
이 소형 드론기에 의해 각기 미국인과 영국인인 두명의 젊은 극단주의자들이 몸에 자살폭탄 조끼를 입는 것이 포착되면서 캐서린은 정부 관리들에게 은둔처에 대한 드론기 공격명령을 촉구한다. 문제는 은둔처 바로 밖에서 어린 소녀가 빵을 팔고 있는 것. 드론기가 공격을 하면 이 소녀가 부수적으로 살해될 것이 필연적이어서 관리들은 공격명령을 놓고 서로들 갑론을박하면서 자신들의 상관의 최종 결정과 함께 미 국무부의 의견을 묻는다.
자살폭탄 준비가 거의 끝나고 두 테러리스트들이 임무를 수행할 시간이 임박하자 캐서린은 소녀가 부수 피해자가 될 확률까지 속여가면서 정부의 결정을 다그친다. 여전히 결정을 못하고 서로 미루는 관리들. 이에 캐서린은 연합군인 스티브에게 은둔처를 폭격하라고 지시하나 스티브는 부수 피해자가 있을 경우 공격을 금한 군의 규칙을 내세우면서 버튼을 누르지 않는다.
인간 살상에 대한 양심과 책임감과 결과 그리고 이를 둘러싼 결정권 등을 심리적으로 무게 있고 심각하게 다룬 작품으로 연기들이 좋다. 미렌의 단단한 연기도 좋지만 특히 폴의 고뇌하는 양심의 갈등이 비쳐진 강렬한 눈동자 연기가 매우 훌륭하다. 아주 시의에 맞는 작품이다. 개빈 후드 감독. R. Bleecker Street. 아크라이트(323-464-4226), 랜드마크(310-470-0492).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그림스비 형제(The Brothers Grimsby)


노비(왼쪽)와 세바스티안이 폭발하는 건물에서 도주하고 있다.


고아시절 헤어진 두 형제의 액션 코미디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는 해괴망측한 저질 코미디로 요절복통할 코미디 ‘보랏’을 만든 영국 코미디언 사샤 배론 코엔이 제작하고 각본 쓰고 또 주연한 난장판 스파이 액션 코미디다. 대사와 행동이 음탕하기가 짝이 없는데 특히 코끼리 항문이 동원된 장면에서는 그저 아연실색할 뿐이다. 
내 생애 처음 보는 음담과 욕설과 온갖 형태의 성행위 그리고 인간과 동물의 성기를 비롯해   에이즈와 아동 성추행 및 배설물 등이 총동원된 막가파식의 영화다. 영화에 ‘강남 스타일’이라는 말과 함께 월드컵 결승전이 열리는 칠레의 경기장에 대형 태극기가 나온다. 왜 유독 태극기를 썼는지 궁금해 인터뷰 때 배론 코엔에게 물어봤는데 “세계적인 경기이기 때문”이라는 애매모한 대답이다. 어쨌든 웃지 않을 수 없는 영화로 영화를 보고나서 눈과 귀를 비누로 열 번 씻어야 할 것을 조언한다. 
런던 북쪽에 있는 그림스비의 달동네에 사는 노비(배론 코엔)는 백수건달로 뚱보 아내(레벨 윌슨)와의 사이에 ‘강남 스타일’을 비롯해 ‘쟁고 언체인드’ 같은 이름을 가진 아이를 10여명을 두었다. 부모와 아이 할 것 없이 술 마시고 담배를 태운다.
노비는 어렸을 때 고아시절 동생 세바스티안과 헤어진 뒤로 늘 동생을 그리워한다. 그런데 그로부터 28년 후 우연히 노비와 스파이가 된 세바스티안(마크 스트롱)이 재회를 하면서 둘이 지구를 돌면서 난리법석을 떨어댄다. 영국에서 사우스아프리카를 거쳐 칠레 등지를 돌면서 터무니없는 액션과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남자 대 여자 그리고 남자 대 남자 간의 음탕한 행동이 자행되는데 그래서 배론 코엔은 인터뷰 때 필자에게 “야, 이 영화 한국에서 상영될 것 같으냐”고 물어봤다. 낸들 알 수가 있나.                 
영화에서 뚱뚱한 여자가 농담의 대상이 되는데 윌슨 외에 또 다른 여자는 사우스아프리카의 호텔의 하녀로 나온 흑인 배우 개버리 시디비(‘프레셔스’). 그런데 동생 따라다니다가 본의 아니게 스파이 노릇을 하게 된 노비는 임무수행을 위해 이 하녀를 유혹해 섹스를 한다.
배론 코엔의 실제 아내 이슬라 피셔가 영국 정보부 요원으로 나오나 그와 윌슨은 낭비된 역인데 페넬로피 크루스가 악역을 즐긴다. 영화 끝에 월드컵 구경하던 도널드 트럼프가 에이즈균에 감염된다. R. 루이스 레테리에 감독. Columbia.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하우스 오브 카드’




내가 막말하는 선동가 도널드 트럼프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이 딱 하나 있다. 그것은 “정치가는 거짓말쟁이다”라는 말이다. 정치의 필연적 내성 중 하나가 거짓말이다. 그 좋은 예가 워터게이트 사건 때 궁지에 몰린 리처드 닉슨이 쌓이고 쌓이는 거짓말 때문에 코가 피노키오처럼 석자나 빠졌는데도 “나는 악한이 아니다”라고 오리발을 내민 것이다.
힐러리는 트럼프가 되는 소리 안 되는 소리를 마구 내뱉자 “대통령이 될 사람은 자기 속에 있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가 없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 말은 현재 네트플릭스가 방영하는 정치드라마 시리즈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사상누각)에 나오는 “정치가란 선택적 진실만 말한다”는 대사와 일맥상통한다. 이 ‘선택적 진실’은 결국 립 서비스의 테두리 안에 들어간다.
트럼프의 인기가 높은 이유 중 하나가 정치가들의 이런 립 서비스에 신물이 난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는 미 서민층의 기성 정치인들에 대한 반발 때문이다.
트럼프가 부동자세로 서서 연설하는 모습을 보면 그 선동적 내용과 우스꽝스런 헤어스타일 그리고 오른 손 제스처를 비롯해 히틀러를 닮은 데가 있다. 둘이 다 과거의 영광을 되찾겠다고 내세운 구호도 닮았다. 그러나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도 말했듯이 트럼프는 가짜요 사기꾼으로 내가 보기엔 독일을 패망시킨 히틀러처럼 아주 위험한 파시스트다.          
대중이란 늘 우매하게 마련이지만 트럼프의 높은 인기는 가히 불가사의할 뿐이다. 초보수파인 내 미국인 친구 마이크조차 “아무리 미국의 기둥인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나빠졌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트럼프를 지지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 못하겠다”며 고개를 내젓는다.
나는 트럼프의 구토 같은 연설을 들으면서 재미 만점의 TV 시리즈 ‘하우스 오브 카드’의 주인공들인 표가 우선인 정치가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드라마는 연방 하원의원을 거쳐 부통령이 된 프랭크 언더우드(케빈 스페이시·사진)가 갖은 권모술수를 동원해 현직 대통령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올라앉기까지의 과정을 스릴러 분위기를 섞어 긴장감 가득하게 다루고 있다.
이런 프랭크의 권력에 대한 야망의 실현에 역시 권력의 맛을 좋아하는 프랭크의 아내 클레어(로빈 라이트)가 동참한다. 마치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와 ‘오텔로’ 그리고 ‘맥베스’를 뒤 섞어 놓은 듯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야, 정치판은 정말로 협잡꾼이요 야바위꾼들의 놀음판이로구나’ 하고 혀를 찼다. 프랭크는 “민주주의는 과대평가됐다”고 믿는 자로 술수와 간계와 조작과 거래에 능한 기회주의자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식언을 밥 먹듯이 하면서 온갖 사악한 방법을 동원해 장애물을 제거하는데 스스로도 “나는 거짓에 거짓을 수 없이 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어떻게 보면 그는 잔인무도한 실용주의자인데 프랭크가 대통령이 된 뒤 “대통령은 보다 인간적으로 보여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들으면서 권력의 길은 위선으로 포장돼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프랭크와 클레어는 소위 ‘무시 못 할 정치적 현실’ 탓에 거짓말을 하고 오리발을 내미는데 이에 대해 극중 한 인물이 “많은 사람들이 워싱턴을 증오하는 까닭이 바로 그 ‘무시 못 할 정치적 현실’을 내세우는 당신과 같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힐난한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트럼프가 이 드라마를 보고 정치가들의 술수를 배운 것이 아닌가 하 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드라마야말로 모든 정치가들이 보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이야기다.
트럼프는 또 필름느와르 스타일의 정치드라마 ‘모두가 왕의 사람들’(All the King’s Men·1949)의 주인공 윌리 스타크(브로데릭 크로포드가 이 역으로 오스카 주연상 수상)를 생각나게 만든다. 이 영화는 로버트 펜 워렌의 퓰리처상 수상작인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로버트 로센이 감독한 흑백명작이다.
스타크 역시 선동가로 작은 카운티의 공직자로 시작해 대중의 구미에 맞는 내용의 공약을 열변하면서 주지사 자리에까지 오르는데 그 과정에서 처음의 순수를 잃고 자기가 대항해 싸우던 기성 정치인들처럼 부패하게 되고 결국 암살당한다.
이 영화는 지난 1928~1932년 루이지애나 주지사를 지내고 연방 상원의원이 되었다가 1935년 암살당한 휴이 P. 롱의 삶을 변용한 것이다. ‘킹피시’(The Kingfish)라는 별명을 지녔던 롱 역시 생전에 선동가요 중우정치가라는 말을 들었었다. ‘올 더 킹스 멘’은 지난 2006년 션 펜 주연으로 리메이크 됐었다.
오바마 대통령도 말했듯이 트럼프는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의 한 스케치의 인물거리는 되나 대통령감은 아니다. 그런데도 그는 백악관이라는 궁전의 주인이 되겠다고 열을 내고 있는데 내가 보기엔 궁전의 주인보다는 궁전의 어릿광대로서 썩 어울린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