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4월 12일 화요일

루마니아 체조요정 나디아 코마네치




“고된 훈련 불평한 적 없어… 자기 일에 정열 있어야”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체조경기 7번 10점 만점
아들 하루하루 돌보는 일, 내 인생의 금메달 꿈


14세 때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체조경기에서 7차례나 10점 만점을 받으면서 금메달 3개와 은메달 1개 그리고 동메달 1개를 탄 루마니아의 체조요정 나디아 코마네치(54)와의 인터뷰가 지난달 15일 베벌리힐스의 포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 ‘나디아’로 불리며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은 코마네치는 이어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서도 2개의 금메달과 2개의 은메달을 땄다. 코마네치는 지난 1996년 미국 올림픽 체조챔피언 바트 카너와 결혼, 9세난 아들을 두고 있다. 두 사람은 현재 오클라호마에서 살면서 바트 카너 체조아카데미를 경영하고 있으며 체조잡지 발행과 함께 TV 제작사 및 체조용구 공급사를 운영하고 있다. 단발에 나이답지 않게 젊어 보이는 코마네치는 처음에는 다소 굳은 표정을 지었으나 시간이 가면서 긴장이 풀렸는지 액센트 있는 영어로 더러 유머도 섞어가면서 침착하고 진지하게 질문에 대답했다. 홍조를 띨 때는 예쁜 소녀 같았다. 코마네치는 인터뷰 후 하이힐을 신은 채 물구나무를 서면서 자신의 건재를 과시했다.

-선수 때 고도의 힘든 훈련을 받았을 텐데 무슨 후유증이라도 있는가.
“없다. 난 훈련을 잘 견디어낸 편이다. 난 6세반 때부터 체조를 시작했다. 그리고 1984년에 은퇴했다. 몸 여기저기에 약간의 통증이 있고 발목을 삐기도 했지만 큰 부상은 없었다. 내 몸을 잘 조절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운동선수들은 약물복용으로 문제가 많은데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법을 어기면 책임을 져야 한다. 난 어렸을 때 무작위로 여러 가지 약물 테스트를 받았지만 그 땐 너무 어려서 약물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힘든 훈련을 받으면서 트레이너를 증오하기라도 했는가.
“아니다. 난 한 번도 고된 훈련에 불평한 적이 없다. 성공하려면 불편하나 아침 5시에 일어나 고된 훈련을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가 하는 일에 정열이 있어야 한다. 난 사실 어떤 땐 충분히 연습하지 못했다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세스쿠의 이름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나는가.
“그는 내가 자랄 때 우리 나라의 대통령이었다. 정부는 스포츠를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따라서 내 승리도 가능했던 것이다. 내가 조국을 떠난 것은 무언가 내 인생에 있어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난 지금도 매년 대여섯 차례 루마니아에 간다. 가족도 있고 또 재단도 있기 때문이다. 

-무슨 재단인가.
“스포츠를 할 능력이 있는데도 사정이 허락지 않아 못하는 아이들을 돕는 일이다. 그 일에 행복감을 느낀다.” 

-지금의 당신에게 10점 만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나의 스포츠와 나의 조국과 연결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내 인생을 바꾼 것이다. 난 14세 때 그것을 몰랐다. 내가 경기장에 나섰을 때 난 역사를 만들기 위해 경기에 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0점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로 인해 지금까지도 내겐 많은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 
14세의 나디아 코마네치가 몬트리올 올림픽 경기에서 체조 묘기를 보이고 있다.

-당신의 루마니아에서의 결혼식은 하나의 국가적 행사처럼 화려했는데 그에 대해 말해 달라.
“매우 감동적이었다. 내 나라와 함께 내 삶의 한 순간을 나누고 싶어 조국에서 결혼했다. 정부가 내 결혼식 날을 공휴일로 선포해 많은 사람들이 직장에 안 가고 날 축하해 주었다. 내 결혼은 10점 만점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에 관한 기록영화를 케이트 홈즈가 만들었는데 그 과정에 대해 말해 달라.
“어느 날 홈즈(탐 크루즈의 전처)가 내게 전화를 걸어와 나에 관한 30분짜리 기록영화를 만들겠다고 제안했다. 난 할리웃 사람이 나에 관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신기해 응낙했다. 그래서 홈즈가 오클라호마에 와 사흘간 찍었는데 우린 그 때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냈다. 영화 제목은 ‘영원한 공주’로 홈즈가 선정했는데 좋은 영화라고 본다.     

-왜 오클라호마에서 사는가.
“내 남편은 젊었을 때 시카고에서 오클라호마의 코치에게 체조를 사사하려고 갔다. 그도 1976년 게임에 출전했는데 1984년 게임에서 2개의 금메달을 땄다. 그리고는 오클라호마의 대학촌인 노만에 정착했다. 남편은 은퇴 후 자신의 코치와 함께 체조아카데미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나도 거기 살게 된 것이다. 우린 LA 인근 베니스비치에도 집이 있지만 그것은 휴가용이다.”

-체조 외에 당신 인생에 있어 금메달 꿈은 무엇인가.
“아들의 하루하루를 돌보는 것이다. 아들은 지금 여러 가지 스포츠를 하고 있다. 우린 아들이 네 살 때까지 우리의 얘기를 안 해줬는데 어느 날 아들이 유치원에 갔다 오더니 ”엄마, 아빠 둘이 다 유명한 줄 아세요“라고 물었다. 그리고나서 아들은 체조를 시작했다. 아들은 그밖에도 축구와 테니스도 즐긴다.”

-당신에게 승리란 무엇을 뜻하는가.
“난 매우 경쟁적이긴 하나 이기기 위해서 일을 하진 않았다. 내 첫 승리는 5세 때 유치원의 세발자전거 경주에서였다. 그 때부터 남보다 잘 하겠다는 야심이 있었던 것 같다. 승리란 매일 누군가에 의해 격려를 받고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나는 내 가족과 팀메이트들로부터 고무를 받는다.”

-어떻게 해서 체조를 시작했는가.
“6세 때 난 에너지가 넘쳐흘러 끊임없이 뛰고 움직였는데 내 어머니가 그런 나의 에너지를 발산하라고 체육관엘 데려갔다. 체조선수가 되라는 것이 아니라 트램폴린 위에서 실컷 뛰면서 집안의 가구를 부수지 말라는 뜻에서였다. 그 때 코치가 후에도 날 지도했다.”

-아들에게서도 당신의 재질을 보는가.
“그렇다. 또 아들은 나 같이 고집불통이고 경쟁심이 강하다.”

-선수 때 식사조절은 어떻게 했는가.
“영양사가 있어 고기와 샐러드와 과일을 기본으로 한 식단을 마련해 주었다.”

-아직도 그런 식으로 먹는가.
“그렇다. 그리고 난 매일 30분씩 운동을 한다. 15분간 달리고 역기를 들고 몸을 푼다. 몸에 맞게 하지 무리하진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체조선수가 당신의 평생의 직업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가.
“내가 좋아 체조를 했는데 한 때는 어른이 되면 외과의사가 될 생각이 있었다.”

-남편과 어떻게 만났는가.
“우리 둘이 다 1976년 3월28일 뉴욕의 매디슨 스퀘어가든에서 열린 아메리칸컵 대회에 나갔을 때 만났다. 난 14세 바트는 18세로 우리 둘이 다 승리했다. 그리고 우리 둘이 상을 받으러 단에 올라갔을 때 바트가 내 볼에 키스를 했는데 그것은 뉴욕타임스의 기자가 시켜서 한 일이다. 그 때 찍은 사진은 그 후 유명해졌다. 그리고 나와 바트는 모두 몬트리올 올림픽에 출전했다. 그러나 그 때까지 그와의 만남은 순전히 체조경기를 통해서였다. 그로부터 수년 후 내가 루마니아를 떠나 미국에 왔을 때 한 TV쇼에 나갔는데 그 때 바트가 게스트로 출연했다. 그것이 우리 결합의 결정적 계기가 된 것 같다.”

-메달들은 어디에 보관하고 있는가.
“올림픽과 세계대회의 메달들은 오클라호마에 있고 그 밖의 메달들은 루마니아에 있다.”

-팬들이 당신을 만났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대부분 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파괴(Demolition)


데이비스가 정장을 한 채 도구로 주택을 파괴하고 있다.

부인을 잃은 상실감 어떻게 치유하는지에 관한 영화


교통사고로 부인을 잃은 남자가 슬픔과 상실감을 달래기 위해 마음에 안 드는 것을 닥치는 대로 때려 부수는 별난 영화로 부분이 전체보다 낫지만 희한한 흥미를 유발시키는 에너지 가득한 작품이다. ‘딜라스 바이어즈 클럽’과 ‘와일드’를 감독한 캐나다 퀘백 출신의 장-마크 발레가 연출하고 최근 잇달아 영육을 크게 소모시키는 영화에 나온 제이크 질렌할이 주연하는데 보편적인 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질렌할의 전력투구의 연기와 함께 매우 기이한 방법으로 상심과 생존과 치유의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주인공의 소란하고 파괴적이나 결국은 공허한 행동에 눈이 간다. 매우 특이한 영화로 묻지 마식의 파괴에서 혐오감보다 오히려 활력이 솟아나는 블랙 코미디다.        
잘 나가는 젊은 투자전문가 데이비스(질렌할)가 교통사고로 아내 줄리아(헤더 린드)를 잃고 정신이 나간 채 병원의 벤딩머신에서 M&M을 사려고 돈을 기계 속에 넣었으나 기계는 돈만 먹고 M&M은 안 준다. 영화는 이렇게 시작한다.  
집에 돌아온 데이비스는 책상 앞에 단정히 앉아 벤딩머신사에 자신의 불상사와 함께 기계문제를 편지로 쓴다. 그는 편지를 잇달아 써 보내면서 이와 함께 장인(크리스 쿠퍼)의 “네 삶을 조각조각 뜯어낸 뒤 재조립하라”는 조언을 듣고 문자 그대로 뜯어내는 작업에 들어간다. 집의 연장통에서 도구를 꺼낸 뒤 먼저 새는 냉장고부터 분해한다. 이어 회사에 가서 삐걱대는 변소 문을 뜯어내고 툭하면 얼어붙는 컴퓨터도 박살낸다.
파괴증세는 갈수록 심해지면서 데이비스는 집의 고급가구를 비롯해 벽까지 뜯어내면서 상실과 아픔과 공허를 해소하는데 이런 파괴행위는 데이비스의 잔인하도록 솔직한 성질에 아주 잘 어울린다. 그런데 데이비스의 이런 파괴행위 뒤에는 그가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죄책감이 도사리고 있다.    
한편 데이비스는 자기 편지를 접수한 벤딩머신사의 여직원 캐런(네이오미 와츠가 덜 쓰여졌다)과의 전화통화에 이어 직접 만나면서 둘이 관계를 맺는다. 캐런은 12세난 괴팍하고 조숙한 아들 크리스(신인 주다 루이스가 뛰어난 연기를 한다)를 둔 외로운 여자. 두 고독한 사람끼리여서 관계가 급속히 진전한다. 그러나 캐런을 알고도 데이비스의 파괴행위는 계속되는데 그는 심지어 주택철거 현장에 가서 신사복을 입은 채 무료로 철거작업을 돕는다. 그리고 데이비스의 최신 고급주택은 완전히 넝마가 되어버린다.    
데이비스와 캐런의 관계보다 더 마음에 다가오는 것이 데이비스와 그의 파괴행위의 단짝이 된 크리스와의 관계인데 둘이 나누는 동성애에 관한 대화와 방탄조끼와 실탄실험 장면이 고약하게 우스우면서도 가슴을 찡하게 울린다. 한 남자의 자기 구제와 정화의 건설과정을 파괴로 이룩한 역설적인 내용으로 끝을 전체적인 톤과 달리 미국식으로 말끔히 맺은 것이 마음에 안 든다. R. Fox Searchlight.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보스(The Boss)


미셸이 은밀한 부분에 향료를 뿌리고 있다.


벤 팰콘 감독과 멜리사 맥카시 부부 최악의 작품


추잡하고 음탕하고 시끄러운 넌센스 코미디로 저질의 바닥끝까지 갔는데 얼마 전에 나와 흥행서 참패한 사샤 배론 코엔의 저질 코미디 ‘그림스비 형제’를 연상케 만든다. ‘보스’는 ‘브라이즈메이즈’와 ‘스파이’ 등 재미있고 우스운 코미디를 만든 부부 콤비 벤 팰콘 감독과 뚱보 코미디언 멜리사 맥카시의 영화인데 이번에는 큰 실수를 했다. 그들의 오발탄으로는 ‘태미’와 ‘신원 도둑’ 등이 있다. 
일종의 스쿠리지의 개과천선의 상냥한 얘기에 음탕하고 폭력적인 요소를 가미했는데 이것이 조화가 잘 안 돼 서로 겉돌고 있다. 그리고 내용도 진부하기 짝이 없는데다가 F자 상소리가 난무하면서 진짜로 냄새나는 음탕한 장면들이 있어 역겹기 짝이 없다. 최근 잇달아 나온 올 해 최악의 영화들 중에 들 만한 ‘배트맨 대 수퍼맨: 정의의 새벽’과 ‘그림스비 형제’ 및 ‘마이 빅 팻 그릭 웨딩 2’의 대열에 동참할 영화다.
새빨간 가발에 야한 의상을 입은 백만장자 미셸 다넬(맥카시-도널드 트럼프의 여성판이다)은 내부자 거래로 영창을 살고 알거지가 되다시피 해 출소한다. 여기서부터 미셸은 과거의 부와 영광을 되찾기 위한 작전을 짠다. 
왕년의 자기 부하 클레어(크리스튼 벨)와 고교생인 클레어의 딸 레이철(엘라 앤더슨)을 중심으로 여자들로만 된 제과사를 만들어 브라우니를 제조해 팔기 시작하는데 그것이 빅히트를 한다. 터무니없는 플롯이다. 
얘기를 억지로 만들자고 미셸의 성공에 맞서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 하나는 레이철의 라이벌 급우의 어머니 헬렌(애니 무몰로)이요 다른 하나는 미셸의 왕년의 연인 르노(피터 딩클리지가 정말로 서커스의 광대 같다). 이런 서툰 얘기들이(각본도 부부가 같이 썼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영화로 만들어질 수가 있는지 불가사의할 뿐이다.
그야 말로 꼴불견은 미셸이 욕조에서 뚱뚱한 한쪽 다리를 들어 올린 채 은밀한 곳에 향료를 살포하는 장면. 그리고 느닷없이 미셀의 부대와 헬렌의 부대가 백주에 슬로모션까지 동원해 가면서 거리에서 육박전을 벌이는 장면과 사무라이 칼을 든 르노와 미셸의 격투장면 등 내용과 별 상관도 없는 엉뚱한 장면들이 눈에 거슬린다. 연기도 언급할 것이 없는 지상 최대의 흉물 중 하나다. R. Universal.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대그우드의 존댓말




부부님 여러분들은 서로 존댓말을 합니까? 또는 반말을 합니까? 아니면 남편은 반말을 하고 아내는 존댓말을 합니까? 우리 부부는 서로 반말을 하는데 내가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편은 반말을 하고 아내는 존댓말을 쓰던 대그우드와 블론디의 말투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느닷없이 대그우드가 낮에는 물론이요 잠자리에서 까지 블론디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으로 번역을 하는데 듣기에 매우 어색하다.
가끔 아내가 보는 한국 연속극을 곁눈질로 봐도 남편이 아내에게 존댓말을 하는 것을 본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아내에게 대그우드의 블론디에 대한 존댓말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봤더니 “반말을 할 때가 더 다정한 것 같다”고 대답한다.
1930년 칙 영이 그리기 시작(지금은 칙의 아들 딘)한 이래 지금까지 전 세계 팬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한국일보에도 연재되고 있는 만화 ‘블론디’(Blondie)의 부부 대그우드와 블론디는 올해로 결혼 83년. 그런데도 대그우드는 지금도 출근과 귀가 때면 블론디를 꼭 끌어안고 “쪽” 소리가 나도록 키스를 하는 잉꼬부부다(사진).
둘은 지금은 매우 평화롭게 살고 있지만 그들의 결혼과정은 순탄치가 않았다. 블론디는 처녀시절 골드디거(돈 많은 남자 노리는 여자) ‘후라빠’(flapper)여서 백만장자 집 아들 대그우드가 블론디와 결혼하겠다고 하자 그의 아버지가 이를 결사반대 했었다.
이에 대그우드는 단식투쟁에 들어가 투쟁 28일 만에 아버지의 결혼 승낙을 받았으나 아버지는 대그우드를 유산상속에서 빼버렸다. 그래서 대그우드는 성질이 고약해(사실 마음은 착하다) 자기 사원들을 구타하는 디더스 사장의 건설회사에 월급쟁이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실수 연발의 대그우드는 보통 사람 중의 보통 사람으로 잠보요 먹보요 게으름뱅이다. 툭하면 사무실 책상에 엎드려 졸고 있으니 디더스에게 얻어터지는 것이 당연한데 그러고도 해고를 안 당하는 것이 기적이다. 그런데 디더스의 부하 직원 구타는 어쩌면 공처가인 그가 아내 코라에게 우산으로 얻어맞는 것에 대한 엉뚱한 화풀이인지도 모른다.
대그우드가 블론디 다음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마도 샌드위치일 것이다. 수시로 배가 고픈 대그우드는 자다가도 허기가 지면 부엌으로 내려가 냉장고에 있는 먹다 남은 미트로프와 햄과 야채 등을 꺼내 몇 층짜리 샌드위치를 만들어 입을 크게 벌리고 먹는데 이 잡탕 샌드위치를  일컬어 ‘대그우드 샌드위치’라 부른다. 대그우드는 또 가끔 냉장고에 있는 닭다리도 꺼내 먹는데 나도 그로 인해 닭다리 밤참 버릇이 붙었다. 대그우드는 그렇게 먹어대는 데도 살이 안 찌니 알다가도 모를 일.
대그우드는 철이 덜난 어른 아이 같은데 그런 면에서 자주 대그우드 집에 들러 카우치에서 새우잠 자는 대그우드를 깨워 같이 놀자는 이웃집 꼬마 엘모가 더 어른 같다. 대그우드 하면 못 잊을 사람이 우체부 비즐리. 대그우드는 아침에 “5분만 더”하고 게으름을 피우다가 출근시간에 늦었다며 상의를 입으면서 문을 열고 쏜살 같이 뛰어나가는데 이 순간 집 앞에서 우편물을 배달하던 비즐리와 충돌사고를 내곤 한다. 오죽하면 비즐리가 대그우드 집에 올 때 헬멧을 썼을까.  
만년 아이 같은 대그우드의 가정을 받쳐주는 기둥 구실을 하는 사람은 사실 블론디다. 블론디는 예쁘고 지혜롭고 명랑할 뿐 아니라 건전하고 실제적인 생활인이다. 그래서 가계를 돕는다고 수년 전에 케이터링업을 시작해 대그우드는 먹을 복이 터졌다. 그리고 커브가 진 몸매에 컬을 한 금발의 블론디는 늘 짧은 치마에 하이힐을 신고 있어 섹시한데 블론디야말로 모든 남자가 바라는 섹시한 가정주부의 표본이다.
이젠 내 이웃 같이 친해진 대그우드와 블론디는 틴에이저가 된 두 남매 알렉산더와 쿠키 그리고 대그우드처럼 잠이 많은 애견 데이지와 함께 잘 살고 있다. 모범 부부요 가정이다.
나는 ‘블론디’와 아주 가까운 사연이 있다. 내가 1974년 서울의 한국일보에 입사, 처음에 외신부에서 근무했는데 그 때 조순환 외신부장(작고)이 종종 내게 신문에 연재하던 ‘블론디’의 번역을 시키곤 했다. 만화 번역은 기사와 달라 미국 서민들의 생활용어와 유머를 알아야 하고 또 말하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번역해야 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자주 만화를 들고 자매지인 영자지 코리아타임스의 미국인에게 찾아가 도움을 청하곤 했다.
그 때 물론 대그우드는 블론디에게 반말을 하고 블론디는 남편에게 존댓말을 했었다. 이 때문인지 구시대의 유물인 나는 요즘의 대그우드의 블론디에 대한 존댓말이 영 귀에 거슬린다. 이 것이 시쳇말로 ‘폴리티칼리 코렉트’ 때문인가. 그렇다면 영어로 말해 ‘기브 미 어 브레이크’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