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2월 2일 월요일

흑이냐 백이냐 (Black or White)

엘리옷(오른쪽)이 손녀 엘로이즈의 공부를 도와주고 있다.

7세 혼혈소녀 양육권 둘러싼‘흑백 갈등’


자녀 양육과 가족애 그리고 흑백문제를 다룬 감상적인 드라메디로 옛날 영화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매우 선의적인 온 가족용 영화로 각본을 쓰고 감독한 마이크 빈더의 가족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아주 온화한 작품으로 흑백문제를 비록 충돌과 갈등이라는 관점에서 다루긴 했으나 결국 흑이냐 백이냐 하는 문제는 우리가 모두 착한 인간성을 지닌 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충분히 해결될 수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런 얘기는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식의 결론인데 그래서 영화가 재미도 있고 구겨진 데가 없이 잘 만들긴 했으나 극적 충격이나 추진력이 다소 모자라고 또 드라마의 파고도 잔잔하다. 그러나 어린 손녀를 놓고 흑백 맞대결을 하는 두 주인공 옥타비아 스펜서와 케빈 코스너의 강렬한 연기 대결이 볼만하고 언제나 시의에 맞는 얘기여서 관람을 적극 권한다.
LA의 부유한 변호사인 엘리옷 앤더슨(코스너)은 최근에 사랑하는 아내 캐롤(제니퍼 엘)을 자동차 사고로 잃고 슬픔과 실의를 스카치로 달랜다. 그에게 유일한 삶의 기쁨이 남았다면 아내와 함께 갓 나았을 때부터 키운 7세난 흑백혼혈의 손녀 엘로이즈(질리안 에스텔-신인인데 깜찍하게 연기를 잘 한다).
엘로이즈는 엘리옷의 딸이 17세에 출산한 딸로 엄마는 아기를 낳다가 사망했다. 엘로이즈의 흑인 아버지 레지(안드레 홀랜드)는 마약중독자로 감옥에 수감 중이다. 엘리옷은 온 정성을 다해 엘로이즈를 키우는데 그는 겉으로는 무뚝뚝한 할아버지이지만 가슴은 손녀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하다. 이런 모습을 코스너가 눈물겹도록 아름답게 표현한다.
이 집에 엘리옷이 손녀의 수학 가정교사로 남의 집 가정교사 겸 일종의 집안 비서로 실력이 넘치고 재치 있는 흑인 두반(엠포 코아호)을 고용하면서 심각한 가정 분위기에 코믹 터치가 스며든다.
그런데 느닷없이 엘로이즈의 친 할머니 로웨나(스펜서)가 엘리옷을 찾아와 남자 혼자서 어린 손녀 키울 수가 없으니 엘로이즈를 내놓으라고 선언한다. 엘리옷에겐 청천벽력이나 다름없는데 그가 로웨나의 말을 들을 리가 없다. 
LA의 캄튼 흑인 동네에 사는 강철 같은 의지와 불같은 성격을 지닌 황소 눈알을 한 로웨나는 이어 LA 다운타운에서 잘 나가는 조카 변호사 제레마이아(앤소니 맥키)를 시켜 엘리오즈에 대한 양육권 소송을 제기한다. 
여기서부터 엘로이즈를 둘러싼 엘리옷과 로웨나의 감정싸움을 곁들인 치열한 대결이 일어나는데 여기에 한 수 더 떠 엘리옷이 사갈시하는 레지가 나타나 뒤늦게 딸과 관계를 연결하겠다는 바람에 엘리옷은 속을 팍팍 썩이며 스카치를 벌컥벌컥 들이마신다. 
그리고 영화는 법정 드라마 모양을 갖추는데 엘리옷이 홧김에 어쩌다 ‘N’(깜둥이) 단어를 내뱉는 바람에 이 말이 법정에서 엘리옷에게 크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클라이맥스에 엘리옷이 자기 발언에 대해 사과하면서 오랫동안 엘로이즈에 대한 사랑과 흑백문제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코스너와 함께 볼만한 것은 ‘헬프’에서 하녀 역으로 오스카 조연상을 탄 스펜서의 뚝심 좋은 연기다. 그의 큰 눈은 천군만마도 물리칠 수 있는 강함 힘을 발산하는데 단단한 모습과 표정으로 강직하면서도 이해심 있고 선한 근성을 지닌 훌륭한 여인의 연기를 감탄스럽게 해낸다. PG-13. Relativity.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팀북투 (Timbuktu)

사티마와 키다네와 토야가 텐트집에서 단란한 한 때를 보내고 있다.

회교 근본주의 횡포-가족애 대비


사막에서 유목민처럼 자유롭게 살고 있는 가정의 평화를 가차 없이 유린하는 회교 근본주의의 횡포와 공포 그리고 우행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아울러 가족애와 단결을 찬양한 아프리카국가 모리타니아의 작품으로 올 해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후보작이다.
영화의 톤이 고르지 못하고 서술도 다소 일관성이 없어 감정적 충격이 약하긴 하나 우리가 잘 모르고 있는 회교 근본주의의 현상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어 시의에도 맞고 또 그것에 대해  배우는 바도 있는 매우 재미있는 드라마다.   
다소 단점은 있지만 인물들의 성격 개발과 묘사가 뚜렷하고 연기도 좋고 또 태양이 작열하는 뜨거운 사막과 원주민들의 삶과 새빨간 진흙집을 비롯해 밝고 다채로운 의상 등 화면을 시적으로 가꾸어놓는 촬영이 아주 훌륭하다.
아프리카 말리의 팀북투는 최근에 회교 근본주의자들이 점령했다. 총을 멘 근본주의자들은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스피커로 각종 금기사항을 발표한다. 흡연과 축구와 음악이 금지되고 여자들은 뜨거운 낮에도 양말과 장갑을 껴야 한다. 
영화는 이렇게 심각하고 어두운 부분을 자주 유머로 다독이고 있는데 금기사항을 발표하는 사람의 언어가 지역 언어가 아니어서 불어와 영어로 통역해야 한다. 그리고 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여자가 근본주의자들의 장갑을 끼라는 지시에 “아니 어떻게 장갑을 끼고 생선을 팔라는 말이냐”고 대어든다. 영화는 근본주의자들을 무기 좋아하는 꼭두각시처럼 그렸다. 
마을 밖의 사막에서 텐트를 치고 소 몇 마리를 키우면서 평화롭게 살고 있는 키다네(이브라힘 아메드)는 아내 사티마(툴루 키키)와 12세난 총명하고 독립심 강한 딸 토야(레일라 월랫 모하메드가 예쁘고 연기도 똘똘하게 잘 한다)와 함께 근본주의자들의 직접적인 지배 밖에서       기타도 치고 머리를 가리지도 않고 다소 자유롭게 산다. 이 집의 마지막 식구는 소떼를 돌보는 고아 소년 이사. 키다네 집의 이런 행동은 동네에서 했다가는 공개 매질감으로 영화는 셀폰을 쓰는 현대의 암흑기를 고발하고도 있다.  
그런데 키다네의 소가 동네 어부가 쳐놓은 그물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키다네와 어부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고 이 하찮은 분쟁 때문에 키다네 가족은 비극을 맞으면서 전연 기대치 않던 결말에 다다른다.  
보면 볼수록 피부로 직감하게 되는 감각적인 촬영과 아름다운 열사의 사막 그리고 토속적인 음악을 비롯해 월랫 모하메드의 연기 등이 좋은 볼만한 영화다. 아데라마네 시사코 감독. 
PG-13 정도. Cohen Media. 일부지역.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켄지 미조구치의 흑백명작 2편

오하루의 인생 (Life of Oharu·1952)
마지막 국화 이야기 (The Story of the Last Chrysanthemum·1939)

오하루의 인생
(Life of Oharu·1952)


17세기 에도시대 자기 집 하인(토시로 미후네)과 사랑을 하다가 집에서 쫓겨난 뒤 귀족의 후처와 창녀와 시녀 노릇을 하면서 당시 남성위주의 일본사회의 계급과 신분의 엄격한 차별의 틀에 갇혀 평생을 불행하게 산 오하루(키누요 타나카)의 한 많은 일생을 그린 심오하고 아름답고 비극적인 드라마. 롱 테이크를 잘 쓰는 미조구치의 촬영이 눈부신 흑백명작.
얼굴과 몸이 모두 고운 오하루는 집에서 쫓겨나 군주의 씨받이로 팔려가 아들을 낳으나 다시 쫓겨나 집으로 돌아온다. 오하루의 아버지는 딸을 다시 창녀로 팔아먹으나 오하루는 여기서도 실패, 이번에는 남의 집 하녀로 팔려간다. 그러나 여기서도 쫓겨난 오하루는 부채 만드는 사람과 결혼하나 남편은 결혼 직후 강도에 피살된다.   
오하루는 절에 들어가 승려가 되려고 하나 여기서도 남자문제 때문에 쫓겨난다. 이어 자기가 아들을 낳아준 군주로부터 다시 부름을 받고 집안의 비밀유지를 위해 연금 상태에 처해진다. 오하루는 아들을 찾아 탈출하나 거지가 되고 만다. 148분. 30일 하오 7시30분. 해머 뮤지엄 내 빌리 와일더 극장(윌셔와 웨스트우드 310-206-8013)) ★★★★½(5개 만점)

마지막 국화 이야기 (The Story of the Last Chrysanthemum·1939) 

남편의 출세와 성공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여인의 감동적인 드라마. 1885년 도쿄. 유명한 카부키 배우의 양자인 키쿠노수케 오노에(연극배우 쇼타로 하나야기)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배우로서 성공하려고 노력한다. 아직 실력이 모자라는 오노에에게 솔직하게 사실을 말해주는 사람은 오노에 가문의 갓난아기의 유모 오토쿠(카쿠코 모리).
그러나 키쿠노수케의 아버지가 아들과 유모 간의 스캔들을 염려해 오토쿠를 해고하면서 분노한 키쿠노수케는 혼자 연기 수업을 하려고 도쿄를 떠난다. 그리고 오노에를 내연의 처로 맞는다. 키쿠노수케는 아내의 격려를 받으며 연기를 연마, 마침내 도쿄의 유명한 카부키 단체에 입단할 기회를 맞는다. 이에 오노에는 남편을 위해 내연의 처 관계를 단절한다. 
그리고 마침내 키쿠노수케의 아버지도 오토쿠를 아들의 처로 인정하나 오토쿠는 폐병으로 죽음에 이른 처지다. 마치 늦가을 국화처럼 시든 오토쿠는 남편이 무대에서 명연기로 배우로서 승리하는 순간 숨을 거둔다. 흑백. 142분. 2월6일 하오 7시30분. 빌리 와일더 극장.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아니타의 분수



로마에 가면 동전 몇닢은 꼭 준비해야 한다. 레스피기와 포 에이시즈가 교향시와 노래로 찬미한 트레비 분수에 던지기 위해서다. 던질 땐 분수에 등을 대고 뒤로 던지면서 로마에 다시 올 것을 기원하면 그 소원이 이뤄진다고 한다. 
나도 몇 년 전에 로마에 갔을 때 트레비 분수에 두 번에 걸쳐 매번 1유로짜리 동전을 던졌으면서도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하는 인파에 밀려 소원을 깜빡 잊었었다. 생각하면 지금도 아쉽기 짝이 없다.
콜러시엄과 스패니시 계단만큼이나 유명한 트레비 분수는 영화에도 많이 나온다. ‘로마의 휴일’에서는 로마 주재 미 신문기자 그레고리 펙이 평상복 차림으로 숙소를 빠져나온 공주 오드리 헵번의 사진을 찍으려고 이 분수에 견학차 온 어린 여학생이 목에 건 카메라의 끈을 손가락으로 잡아당기면서 빌려달라고 하다가 수행 여선생의 눈총을 받았다.
그리고 애천(Three Coins in the Fountain)에서는 로마에 사는 세 미국인 처녀들이 분수에 동전을 던지면서 로맨스를 기원, 정말로 꿈이 이뤄진다. 오스카상을 받은 이 영화의 주제가는 프랭크 시내트라와 카니 프랜시스 및 포 에이시즈 등 유명 가수와 보컬그룹 등이 노래해 빅 히트를 했다.
그러나 트레비 분수 하면 대뜸 눈앞에 선하게 떠오르는 영화는 이탈리아의 명장 페데리코 펠리니가 감독한 흑백영화 ‘달콤한 인생’(La Dolce Vita·1960)이다. 마치 그리스 신화에서 걸어 나온 여전사 아마존과 같은 풍만한 육체의 아니타 에크버그가 옷을 입은 채로 분수 안으로 첨벙첨벙 걸어 들어가 슬로 댄스를 추는 모습이야말로 저 세상의 것처럼 몽환적이다. 나도 영화를 보면서 아니타의 경악할 지경으로 거대하고 탐스러운 육체가 휘저어대는 율동에 압도당했던 기억이 난다.
어깨 밑으로 내려오는 치렁치렁한 금발에 젖무덤의 절반이 훤히 드러나고 옆이 길게 찢어진 검은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아니타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분수 속에서 긴 두 팔을 각기 아래위로 쭉 뻗은 채 눈을 감고 천천히 춤을 추는 모습(사진)은 몸 둘바를 모르게시리 유혹적인 제스처다. 이 장면 때문에 사람들은 트레비 분수를 지금도 아니타의 분수로 생각하고 있다.
옆에 있다간 다칠 것 같은 위험감을 느끼게 하는 폭발 직전의 힘차게 솟아 오른 거대한 두 개의 활화산과도 같은 젖가슴을 지녔던 스웨덴 태생의 배우 아니타 에크버그가 이달 11일 로마에서 83세로 타계했다.
39-22-37의 몸매를 지녔던 아니타는 20세에 미스 스웨덴에 뽑혀 부상으로 미국에 왔다가 할리웃에 들어섰다. 그러나 존 웨인이 나온 ‘블러드 앨리’와 딘 마틴과 제리 루이스가 나온 ‘화가와 모델’ 및 프랭크 시내트라와 딘 마틴이 공연한 ‘텍사스의 4인’ 등 아니타의 할리웃 영화들은 대부분 그의 육체미를 내세운 것들이었다. 그 중 그래도 나은 것이 ‘전쟁과 평화’에서의 헨리 폰다의 부정한 아내 역이지만 영화가 외화내빈이다.        
바이킹의 유전인자를 그대로 물려받은 아니타는 영화의 질과는 무관하게 1950년대 할리웃의 섹스심벌로 군림했는데 이런 그를 대뜸 국제적 스타로 만들어준 감독이 펠리니다. 펠리니는 아니타의 강력한 아름다움과 가득한 육체와 함께 그의 위풍당당한 태도와 귀족적 자세에서 프리 마돈나의 자질을 포착하고 아니타를 ‘달콤한 인생’에 전격 발탁했다.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가 가십기자로 나온 ‘달콤한 인생’은 당시 로마의 옐로 저널리즘과 사회적 도덕적 타락을 비판하고 풍자한 작품으로 ‘파파라치’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아니타는 이 영화 이후로도 ‘보카치오 70’과 ‘광대들’을 비롯해 ‘인터비스타’ 등 펠리니의 영화에  나오면서 1993년 그가 죽을 때까지 서로를 사랑하고 이해하는 친구관계를 유지했었다.
뭇 남성들을 왜소하게 만들었던 아니타를 놓고 밥 호프는 “스칸디나비아식 전채 이후 스웨덴에서 나온 가장 훌륭한 산물”이라면서 “아니타의 부모는 이로 인해 노벨 건축상을 받았다”고 농담을 했다. 이 보다 한 수 더 뜬 농담은 유명 가수이자 배우였던 에셀 머맨의 것. 머맨은 “아니타는 생각하는 남자의 던스 캡(공부 못하는 아이에게 벌로 씌우는 원추형 모자)이다-합이 두 개”라고 아니타의 벅찬 가슴을 찬양했다.     
그런데 아니타는 할리웃 활동 때 별명이 ‘아이스버그’(빙산)였다. 아니타가 할리웃의 절대군주들과 같았던 제작자와 감독들에게 대놓고 할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니타는 섹스심벌답게 할리웃의 숱한 빅 스타들과 로맨스를 불태웠는데 타이론 파워, 게리 쿠퍼, 에롤 플린, 율 브리너 및 프랭크 시내트라 등이 아니타의 연인들이었다.     
아니타는 결혼을 두 번 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사망할 때까지 로마 교외에 있는 집에서 혼자 살았다. 이 집은 ‘인터비스타’에서 나온다. 
나는 아니타의 사망 소식을 듣고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의 스웨덴 동료기자 마그너스에게 소감을 물었다. 그는 “내가 어렸을 때 내 엄마와 아빠가 스웨덴을 벗어나 국제적으로 명성을 날린 아니타를 크게 칭찬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다”면서 “그러나 어린 나에겐 아니타는 겁나게 생긴 괴이하고 나이 먹은 여자였다”고 회답했다. 활화산 아니타는 이제 사화산이 됐지만 늘 검은 드레스를 입고 트레비 분수 안에서 우리를 유혹하는 슬로 댄스를 추고 있을 것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