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8년 1월 26일 금요일

‘적의 있는’(Hostiles)


블락커 대위는 자기가 증오하는 아메리칸 인디언들을 호송하고 대륙종단의 길을 간다.

대륙종단 여정서 겪는 모험 ‘웨스턴 무비’


웨스턴의 장인 존 포드 감독의 ‘역마차’(Stage Coach)와 ‘수색자’(The Searchers)의 분위기를 갖춘 옛날 스타일의 준수한 웨스턴으로 중심 플롯이 포드의 마지막 웨스턴으로 리처드 위드마크, 칼 말덴, 제임스 스튜어트 및 캐롤 베이커 등 올스타 캐스트의 ‘샤이엔 가을’(Cheyenne Autumn)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오스카 작품상 수상작인 강인한 웨스턴 ‘용서 받지 못한 자’(Unforgiven)의 숨결도 느껴진다.
대형화면에 파노라마치는 서부광야의 웅장한 아름다움과 심각한 내용 그리고 뛰어난 연기 등이 있는 길고 긴 대륙종단의 드라마로 사실감 가득한 폭력이 영화의 쓴 맛을 한층 북돋는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을 고향으로 호송하는 미군 기마대 장교의 얘기여서 인디언들을 다룰 땐 상투적인 점도 있으며 진행 속도가 매우 느리긴 하지만 감독(각본 겸) 스캇 쿠퍼의 야심만만한 대하 서사극이다.
1892년. 뉴멕시코 주 베린저 요새에 주둔한 조셉 블락커 대위(크리스천 베일)는 수십 년 간 아메리칸 인디언들을 토벌하면서 그들에 대한 적개심에 가득 찬 사람. 그에게 상관이 긴 세월을 부대 내 감옥에 수감돼 살면서 이제 불치의 중병에 걸린 샤이엔 인디언 추장(웨스트 스투디)과 그의 아들(애담 비치) 등 가족을 그들의 몬태나 주의 고향까지 호송하라고 지시한다.
블락커는 처음에 이를 거절하다가 군인으로서의 명예와 곧 제대하면 타게 될 연금을 생각해 마지못해 자기가 믿는 부하들과 신병(‘네 이름으로 날 불러다오’로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오른 티모데 샬라메가 어색하다)을 소집해 인디언들과 함께 북행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 긴 여정에서 살인혐의를 받고 있는 범죄자(벤 포스터)와 인디언들의 습격으로 가족을 잃어 거의 실성할 지경에 이른 여인 로잘리 퀘이드(로자먼드 파이크) 등을 만나 이들도 일행에 합류한다. 
영화는 처음에 퀘이드의 가족이 인디언들의 습격으로 살해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폭력이 매우 사실적이다. 이들이 길을 가는 도중에 여러 가지 사건과 인디언들과 또 다른 적들의 습격이 발생하는데 이런 액션과 함께 블락커와 인디언 추장 간의 증오와 적대감이 극적 긴장감을 조성한다. 그리고 블락커는 이 여정에서 서서히 인간성을 되찾으면서 백인과 인디언이 모두 같은 사람이라는 교훈마저 남긴다. 좀 상투적이나 관용을 얘기하고 있다.
베일의 연기가 눈부시다. 얼굴과 몸에 힘을 꽉 주고 시종일관 팽팽한 긴장감을 풀지 않아 보는 사람의 숨통을 조인다. 아메리칸 인디언 배우들인 스투디와 비치의 연기도 훌륭하다. 파이크도 연기는 좋지만 뜨거운 태양 아래 말을 타고 긴 여정을 하는 여자의 백색 피부가 어떻게 그렇게 타지도 않고 흰지 알다가도 모를 일. 그리고 라스트 신은 통속적인 할리웃식 결말이다. R등급.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아메리칸 포크(American Folk)


엘리옷(왼쪽)과 조니가 차 안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66번 국도 따라 뉴욕 가며 만나는 다양한 풍경·사람


제목 그대로 미국의 민요에 바치는 헌사이자 때가 덜 묻은 미국의 뒤안길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는 로드 무비로 ‘홍하의 골짜기’ ‘섀난도’와 같은 민요와 ‘잠발라야’ 등 컨트리 송이 많이 나온다. 두 남녀 주인공으로 나온 조 퍼디와 앰버 루바드는 배우가 아니라 실제 포크송 가수들이다. 그래서 둘은 노래는 잘 부르나 연기는 어색하다. 그러나 그 점이 오히려 사실감을 살리는 가슴을 따스하게 만들어주는 소품이다. 
뉴욕의 무대에서 동료 음악인들과 함께 연주하기로 된 포크싱어 엘리옷(퍼디)과 중병을 앓는 어머니를 보기 위해 역시 뉴욕으로 가야 하는 가수 조니(루바드)는 LA발 뉴욕행 비행기에 탔다가 9/11 테러로 비행기가 회항하면서 다시 LA에 내린다. 이어 조니는 토팽가캐년에 사는 친구(크리샤 페어차일드)로부터 낡아빠진 밴을 빌려 뉴욕으로 가면서 여기에 엘리옷이 동승한다.
여기서부터 둘은 미국의 최초의 하이웨이인 66번 국도를 따라 뉴욕으로 가면서 서로에 관해 얘기를 나누고 또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난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미국의 아름다운 풍경과 다양한 인물들을 소개하면서 국토를 찬양하고 인간관계를 살펴보고 있다.
엘리옷은 다소 좌절감에 빠진 노한 사람인 반면 조니는 밝고 명랑한 사람으로 엘리옷은 여정을 통해 조니의 긍정적인 마음에 영향을 받아 굳은 마음이 눈 녹듯 한다. 밴이 원래 낡아 가다가 툭하면 과열돼 둘이 차를 세우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사람은 사막 한복판에 세워둔 차 안에서 혼자 사는 나이 먹은 남자(데이빗 화인). 또 이들이 밴에 태워준 두 명의 젊은 여자 동성애자들과의 에피소드도 관용에 관해 얘기하고 있다. 
엘리옷과 조니가 밴 안에서 또 가다가 쉬면서 기타를 치면서 부르는 노래들이 아주 좋은데 9/11 테러 직후의 얘기여서 미국인들이 이를 슬퍼하는 분위기가 화면에 배어 있다. 그러나 영화는 결코 이 사건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뉴스도 밴의 라디오를 통해 희미하게 들리고 사람들이 TV로 뉴스를 보는 장면에서도 실제 테러 장면은 보이지 않는다. 사려 깊은 조치다. 
둘이 여러 장소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얘기가 아기자기 하게 재미있는데 실제로 14개 주에서 찍은 현장감 가득한 촬영이 아름답다. 차를 타고 엘리옷과 조니가 간 길을 따라 대륙횡단을 하고 싶은 마음을 일게 한다. 데이빗 하인즈 감독.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농, #미투’


하비 와인스틴의 여성에 대한 성추행 고발로 비화된 돈과 힘과 명성이 있는 남자들의 성추행 문제가 연예계는 물론이요 정^관계와 언론계 및 사회 전반적 문제로 대두하면서 급기야 클래식 음악계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최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명예감독 제임스 르바인(74)은 과거 청소년 연주자들을 그리고 영국의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 샤를 뒤트와(81)는 여자 성악가와 연주자들을 성추행 했다는 고발이 있자 두 사람 다 자리에서 물러났다. 
요즘은 자고 일어나면 트럼프가 또 무슨 망언을 했을까와 어떤 유명인사가 성추행자로 찍혔을까를 살피는 것이 일상사가 되다시피 했다. 특히 성추행 및 폭행 문제는 그 어느 사회조직보다 남성위주인 할리웃에서 빈발하고 있다.
최근 성추행자로 거론된 영화인으로는 오스카상을 탄 배우 마이클 더글러스와 지난 골든 글로브 시상식서 TV시리즈 ‘매스터 오브 넌’으로 남자주연상을 받은 아시안 아지즈 안사리가 있다. 또 ‘디재스터 아티스트’로 역시 골든 글로브 남자주연상(뮤지컬/코미디)을 탄 제임스 프랭코도 성추행자로 거론됐다. 이 탓인지 프랭코는 지난 23일 발표된 오스카상 후보 발표 시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주연상 후보에서 탈락됐다.   
성추행이 거론될 때마다 단골로 이름이 들먹거려지는 우디 알렌도 무사하지 못하다. 과거 알렌의 아내였던 미아 패로가 입양한 딸 딜란 패로가 최근 다시 자기가 어렸을 때 알렌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하면서 많은 배우들이 다시는 알렌의 영화에 출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알렌의 ‘뉴욕의 비 오는 날’에 나온 레베카 홀과 티모데 샬라메(‘네 이름으로 날 불러다오’로 오스카 남자주연상 후보)는 이 영화 출연료를 전액 대 여성성폭력과 남녀불평등 퇴치를 위해 최근 조직된 ‘타임즈 업’(Time’s Up)에 기부하기로 했다.
그런데 여성에 대한 성추행 및 폭력을 고발하는 ‘#미투’(#MeToo)’와 ’타임즈 업‘을 통한 여성들의 피해 사례가 소셜 미디아를 통해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면서 일각에서는 이의 폐단에 대한 우려가 일고 있다.
가벼운 성희롱마저 도매금으로 성폭력과 같은 범죄행위의 테두리 안에 포함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는 논리다. 맷 데이먼도 최근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엉덩이를 토닥이는 것과 강간과 아동 성추행은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가 바가지로 야단을 맞고 “앞으론 입 조심 하겠다”며 사과를 했다. 그러나 그의 말은 맞는 것이다. 
요즘에는 분위기가 ‘#미투’나 ‘타임즈 업’에 거슬리는 말을 했다가는 반동분자로 몰리게 마련이다. ‘레이디 버드’로 오스카 감독 및 각본상 후보에 오른 그레타 거윅도 최근 알렌에 대한 성추행 고발에 관한 질문에 “깊이 생각해 봤다.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만 말하고 더듬거리다가 여론의 질책을 받았다. 이에 과거 알렌의 영화에 나온 거윅은 며칠 후 “다시는 그의 영화에 안 나오겠다”고 선언했다.
한 할리웃 관계자는 이처럼 ‘#미투’나 ‘타임즈 업’에 대해 이견이나 심지어 “노 코멘트“를 할 경우 마치 죄인 취급을 받아 그에 대한 개인의 솔직한 의견을 말 할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털어 놓았다. 잘 못 말했다가는 소셜 미디아에 의한 캥거루재판에 회부될까봐 두렵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베테런 여배우 카트린 드뇌브(74^사진)와 100여명의 연예계와 출판계 및 학계여성들이 최근 르 몽드지에 ‘#미투’와 프랑스판 ‘#미투’인 ‘너의 돼지를 폭로하라’를 비판하는 일종의 ‘농(non-아니다라는 뜻) #미투’의 글을 발표한 것도 바로 이 운동의 이런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이들은 글에서 “‘#미투’가 개인적 경험을 공개적으로 기소하고 있으며 전체주의적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도를 너머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글은 이어 “남자가 여자의 무릎에 손을 대고 키스를 하려고 하는 등 서툴게 추근댔다고 해서 자기변호의 기회도 안 주고 벌로 직장에서 물러나게 한다는 것은 희생자를 미리 정해놓은 정의의 성급한 집행”이라고 덧 붙였다. 
드뇌브 등은 또 “여자들도 같은 날 직장의 리더가 되면서 아울러 남자의 성적 대상이 되는 기쁨도 즐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글은 결론으로 여성들에게 “피해자 의식을 버리고 자유에 따르는 위험을 수용하라”면서 “여자의 육체에 영향을 주는 불상사가 반드시 자존에게도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우리의 내적 자유는 범할 수 없는 것이며 우리가 아끼는 이 자유는 위험과 책임을 동반하게 마련”이라고 매듭지었다.
섹스를 먹는 것이나 자는 것처럼 삶의 자연스런 한 조건으로 생각하는 유럽과 그 것을 아직도 청교도적 입장에서 보는 미국의 성에 대한 인식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드뇌브와 그의 동료들의 선언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녔다. 어쩌면 이런 성에 대한 서로 다른 인식이 미국에서 ‘#미투‘ 쓰나미를 일으키게 한 원인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8년 1월 19일 금요일

‘위대한 쇼맨’ 휴 잭맨




스리-링 서커스의 창시자인 P.T. 바넘의 삶을 그린 초호화 뮤지컬 ‘위대한 쇼맨’(The Greatest Showman)에서 바넘 역을 맡아 춤추고 노래 부르는 호주 태생의 휴 잭맨(49)과의 인터뷰가 최근 베벌리힐스의 포 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 영화의 음악은 지난해 ‘라 라 랜드’로 골든 글로브와 오스카상을 탄 저스틴 허위츠가 작곡했고 작사는 역시 ‘라 라 랜드’로 골든 글로브와 오스카상을 탄 저스틴 폴과 벤지 파섹이 했다.
그런데 바넘과 후에 동업자가 된 제임스 베일리가 1881년에 세운 ‘바넘 & 베일리’ 서커스는 1919년 링글링 형제 서커스와 합병, 링글링 브라더스 앤드 바넘 & 베일리 서커스로 불리다가 지난 5월에 폐쇄했다. 큰 키에 호남형인 잭맨은 매우 상냥하고 겸손했는데 큰 제스처와 함께 만면에 미소를 지으면서 진지하게 질문에 대답했다. 스타 티를 안내는 서민적인 사람이어서 더 호감이 갔다. 그는 필자의 영어 이름이 H.J. 라는 것을 알고 자기 이름의 두 문자와 같다고 웃으며 반가워했다.


“춤추는 장면 위해 10주간 매일 10시간씩 리허설”


-만나본 사람들 중에 가장 위대한 쇼맨은 누구인가.
“멜번의 한 카페를 무대로 노래 부르던 록 그룹 ‘멘 앳 웍’의 리드 싱어 콜린 헤이다. 그는 솔로로도 유명했는데 내 아내 데브의 가까운 친구이기도 하다. 그는 청중을 다룰 줄 아는 재주를 지녔는데 노래 하다가 멈추고 얘기를 하면서 청중을 매료시켰다. 그리고 저스틴 팀벌레이크와 비욘세와 스팅도 위대한 쇼맨들이다.” 

-첫 서커스를 구경한 소감은.
“다섯 살인가 여섯 살 때였다. 아버지와 함께 갔는데 아버지는 팝콘이 비싸다고 음식을 장만해 가 그것을 먹으면서 봤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어릿광대를 보면서 우습다기보다 슬프다고 느꼈다. 그 서커스는 처음으로 동물을 동원하지 않은 서커스 중 하나다.”

-춤추고 노래하는 장면을 위한 리허설이 힘들었는지.
“영화는 4년간의 작업 끝에 만들어졌다. 일단 브로드웨이의 뛰어난 연예인들과 2주간 리허설을 한 뒤 영화를 찍기 전 10주간의 리허설에 들어갔다. 그렇게 오래 걸린 것은 할리웃 황금기의 명 댄서 진 켈리가 춤추는 장면을 위해서 8주간의 리허설을 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보다 2주는 더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매일 하루에 10시간 씩 영화의 모든 춤 장면을 리허설 했다.”

-당신의 아이들(17세난 아들 오스카와 12세난 딸 에이바)도 연예인이 되려고 하는가.
“난 그저 아이들에게 그들이 사랑하는 것을 추구하라고 격려할 뿐이다. 난 연기를 사랑하나 때로 힘들 때가 있다. 자기가 사랑하는 것을 추구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결코 늘 편안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매우 민감한 사람이었나.
“난 아직도 민감하다. 젊어서 아버지에게 내가 배우가 되겠다고 말했더니 아버지는 ‘좋아’라고 말하면서도 내가 너무 민감하고 부끄러움이 많아 걱정이라고 했다. 나는 요즘에도 내 영화에 관한 평을 읽지 않는 이유는 나쁜 부분만 기억하기 때문이다. 내가 깨달은 것은 그저 최선을 다 해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배우로서 끊임없이 비판을 받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텐데.
“그렇긴 하다. 그러나 자기가 믿는 것을 행하는 데는 위험 부담이 있게 마련이다. 때로 실패해도 괜찮다는 사실과 타협해야 한다. 바른 이유로 한 일이 실패했을 때는 후회하지 않아도 좋다. 이 영화에 나온 것도 잘 만들어지지 않는 뮤지컬에 대한 믿음과 함께 도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바넘은 스웨덴 가수 제니 린드(레베카 퍼거슨 분)에게 완전히 매료되는데 실제로도 그렇게 누구에겐가 매료된 적이 있는가.
“초등학생 때 아버지와 함께 구경한 고등학생들이 나오는 뮤지컬 ‘맨 오브 라 만차’의 주인공 휴고 위빙을 보고 그의 연기에 완전히 반했었다. 후에 배우가 된 위빙은 당시 17세였다. 그의 노래와 연기에 감복해 뮤지컬의 레코드를 사 반복해 들었다. 최근에 크게 매료됐던 것은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의 주인공 벤 플랫의 노래와 연기다.”

-세실 B. 드밀이 감독해 골든 글로브와 오스카 작품상을 탄 ‘지상 최대의 쇼’도 바넘의 서커스 얘기인데 참고로 이 영화를 봤는가.
“안 봤다. 난 영화에 나오기 전에 비슷하거나 같은 내용의 작품을 안 본다. ‘레 미제라블’에 나왔을 때도 같은 내용의 다른 영화들을 안 봤다. 일단 같은 내용의 작품에 대해 어떤 말을 듣거나 또 그것을 보게 되면 내 직관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배우는 영감을 찾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스스로가 맡은 인물을 찾아내야 한다.”
 
P.T. 바넘(중앙)이 서커스 단원들에 둘러싸여 노래를 부르고 있다.

-바넘에 이어 실제 인물들인 미 정치인 게리 하트(민주당 대통령 후보 제1순위였으나 혼외정사가 드러나 중도하차)와 이탈리아의 스포츠카 재벌 엔조 페라리로 나오는데 실제 인물들을 연기하는데 어떤 책임감이라도 느끼는지.
“게리 하트는 아직 살아 있어 하기에 압박감과 책임감을 더 크게 느낀다. 그러나 무슨 역을 하든지 늘 그 역의 직업과 같은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어서 어차피 책임감을 피할 수는 없다. 바넘 역을 충실히 하기 위해 그에 관한 책을 37권이나 읽었다. 이 영화는 문자 그대로의 뮤지컬이라기보다 바넘이라는 인물과 그의 삶에 대한 고찰이라고 해야 좋을 것이다.”

-살아 있는 사람 중에 만나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가. 
“교황이다.”

-갖고픈 드림 하우스라도 있는가.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만 있다면 난 어디서든지 행복하다.”

-이 영화에 출연하게 된 계기는.
“내가 지난 2009년 오스카 시상식에서 사회를 맡아 춤추고 노래를 부른 뒤 이 영화의 제작자인 래리 마크가 날 찾아왔다. 그는 사람들은 나를 지금까지 ‘울버린’으로만 기억하고 있는데 이제부터는 브로드웨이 쇼맨이라고 알게 될 것이라면서 뮤지컬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난 좋다고 했다. 그 때까지 23년간을 어떤 스튜디오도 창작 뮤지컬을 제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뮤지컬은 참으로 만들기가 힘들다. 그 것은 음악의 에베레스트 산이나 마찬가지다. 관객이 처음 듣는 음악을 작곡해 그들을 감동시킨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노래와 음악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야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이 영화 만드는데도 7년이나 걸렸다.”

-무대에 올라 춤추고 노래 부를 때 어떤 기분인가.
“난 다섯 살 때부터 무대에 섰는데 늘 무대에 오르면 편안했다. 마치 집에 있는 것 같은 느낌으로 무대에서 내려 왔을 때보다 올라갔을 때가 더 편하게 느껴졌다. 무대에 오르면 전연 생면부지인 관객과 연계되는 것을 느끼곤 하는데 그것은 실제 삶에서 좀처럼 경험하기 어려운 일이다. 바로 무대의 마술이다. 난 관객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그것은 날 흥분시킨다. 그래서 오스카 시상식 때도 내가 무대에 나서지 않을 땐 무대 옆에서 서 있었다. 난 매일 같이 이것이 마지막 공연이라는 생각으로 무대에 선다. 특히 춤추고 노래 부를 땐 내 안에서 무언가 다른 것이 솟아난다. 영화 할 때와는 다르다.”

-과거의 삶과 지금의 그것이 어떻게 달라졌는가.
“난 젊었을 땐 모든 것을 너무 세기말적으로 생각했다. 애인과 이별했을 때 그것이 세상의 끝인 줄 알았고 학기말 시험에 낙제를 하고선 내 인생은 끝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생을 크게 즐기질 못 했다. 그러나 그런 과거의 투쟁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있을 수가 없다고 믿는다. 난 요즘엔 매일 아침 조용히 명상을 하면서 하루의 삶을 구상한다. 그리고 저녁에는 그 날의 내 하루를 돌아보며 점수를 매긴다.”

-이 영화에서 가장 하기 어려웠던 부분은 무엇인가.
“‘컴 얼라이브’를 노래 부르며 춤 출 때가 가장 힘들었다. 나이 49세가 되니 다리와 무릎이 제대로 말을 안 듣는다. 난 그 동안 춤을 많이 추었지만 이 영화처럼 힘들기는 처음이다. 그리고 노래도 고음으로 불러야해 쉽지가 않았다.”

-아침에 명상하는 것 말고 무엇 다른 것으로 시작하는 것은 없는지.
“내 친구의 아버지가 비뇨기과 의사인데 그의 말에 따라 아침에 최소한 2리터의 물을 마신 뒤 커피를 마신다. 그리고 운동을 하고 명상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메리와 마녀의 꽃(Mary and the Witch’s Flowers)


메리가 빗자루를 타고 하늘의 도시에 도착했다.

빗자루 타고 간 구름 위 마법학교서 펼쳐지는 모험


‘키키의 배달 서비스’(Kiki’s Delivery Service)와 ‘스피리티드 어웨이’(Spirited Away) 등 아름답고 독창적이며 상상력 풍성한 손으로 그린 만화영화들을 만드는 스튜디오 기블리의 하야오 미야자키 감독 밑에서 수련한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감독이 스튜디오 기블리를 떠나 만든 첫 만화영화로 그림이나 내용이 스튜디오 기블리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소녀들의 영화다. 그러나 이 영화는 어른들도 즐길 수 있다.
스튜디오 기블리 작품에서 자주 다룬 소녀(여자)의 독립성과 융통성 그리고 적응능력을 여기서도 얘기하고 있다. 
원작은 영국의 여류작가 메리 스튜어트가 쓴 ‘작은 빗자루’(The Little Broomstick). 
영국의 푸른 시골과 하늘의 도시가 무대다. 빨강 머리 소녀 메리(12세의 루비 반힐의 음성)는 여름방학을 맞아 시골의 이모 할머니 샬롯(린다 배론) 집에 온다. 시골 생활이 지루한 메리는 우편물을 배달하는 자기 또래의 소년 피터(루이스 애쉬번 서키스)를 만나 그의 소개로 마을과 주변 시골을 둘러본다.
어느 날 샬롯의 주의에도 불구하고 혼자 깊은 숲속으로 들어온 메리는 피터의 고양이들을 만나 이들을 따라가다가 덤불 속에서 빛을 내는 이상한 푸른 꽃과 함께 오래된 빗자루를 발견한다. 그리고 꽃의 끈적끈적한 화밀이 움직이면서 힘을 발휘하더니 빗자루가 요동을 하면서 공중으로 뜬다. 
메리가 빗자루를 타고 공중 높이 올라 도착한 곳이 구름 위에 떠있는 도시의 엔도 마법 대학(‘해리 포터’를 생각나게 한다.). 이 학교는 여교장 멈블추크(케이트 윈슬렛)와 그를 보좌하는 신비한 닥터 디(짐 브로드벤트)가 돌본다. 
멈블추크는 메리의 마법 능력에 크게 감탄, 즉시로 메리를 학교에 입학시킬 생각을 하나 메리는 자신의 신통력이 잠정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과연 시간이 지나면서 메리의 마법 능력은 힘을 잃기 시작한다. 
오래 동안 ‘마녀의 꽃’이라 불리는 마법의 푸른 꽃의 소재를 찾으려고 애 써온 멈블추크는 갑자기 태도를 바꿔 메리를 적으로 여기면서 피터를 납치한 뒤 메리에게 ‘마법의 꽃’의 소재를 대라고 위협한다. 그리고 메리가 위험을 무릅쓰고 피터를 구출하기 위해 자꾸 힘을 잃어가는 빗자루를 타고 하늘의 도시를 다시 찾으면서 추격과 도주의 액션과 모함이 일어난다.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자신감과 독립심을 발견해 어른이 되는 문턱에 이르는 소녀의 신선하고 상상력 가득한 작품으로 무대가 여름 시골과 구름 위 창공에 뜬 도시여서 보기에 눈이 시원하다. 그림이 아주 자연스럽다. 그리고 세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들의 음성연기가 듣기 좋다. 온 가족이 즐길 영화다.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나의 예술(My Art)


엘리가 ‘모로코’의 마를렌 디트릭을 재연하고 있다.

아마추어들이 재연하는 황금기 영화들… 향수 물씬


여류 영화인이요 사진작가이며 또 미술가인 로리 시몬스의 감독(각본 겸) 데뷔작품으로 약간 자기도취적이요 소품 안에 너무 많은 아이디어를 채워 넣긴 했지만 상냥하고 민감하며 낙조의 서글픈 분위기를 지닌 예술적 작품이다.
전원목가요 로맨스영화이며 예술계 풍자극이요 중년의 위기 얘기이자 할리웃 황금기와 스타 파워에 대한 동경이요 대마초에 취한 코미디로 시몬스가 주연한다. 레나 던햄과 파커 포지 캐미오 출연.
뉴욕에서 미술을 지도하는 60대의 비디오 미술가 엘리(시몬스)는 하던 직업과 수업지도를 떠나 북부 교외의 친구가 집을 오래 비운 사이 쉴 겸 집을 봐주려고 병으로 뒷다리를 제대로 못 쓰는 애견 빙을 데리고 거대한 저택에 도착한다.
엘리는 집 안에서 친구가 숨겨놓은 다량의 대마초를 발견, 영화 내내 이를 피워대 보자니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그리고 엘리는 모두 배우 지망생들인 두 명의 정원사(로버트 클로헤시와 조시 새프디)와 인사를 나눈다.
이어 엘리는 자기 프로젝트 제작에 들어간다. 프로젝트란 화면에 투영된 할리웃 황금기 영화들의 장면을 재연해 비디오에 담는 것이다. 옛 영화를 사랑하는 팬들은 엘리가 재연하는 영화들을 보고 그 영화 제목과 장면들을 상기하면서 애잔한 향수감에 젖게 될 것이다. 이 영화 장면 재연에 출연하는 사람들이 엘리를 비롯해 두 정원사와 엘리 제자의 아버지(존 로스만).
엘리가 재연하는 영화들은 다음과 같다. 마를렌 디트릭의 ‘모로코’, 킴 노박의 ‘피크닉’과 ‘벨, 북 그리고 캔들’, 마릴린 몬로의 ‘미스피츠’와 ‘뜨거운 것이 좋아’, 윌리엄 파웰과 앤 블라이스의 ‘미스터 피바디와 인어’, 스탠리 쿠브릭의 ‘클라크웍 오렌지’ 그리고 두 편의 프랑스영화인 카트린 드뇌브의 ‘쉘부르의 우산’과 잔느 모로의 ‘쥘르와 짐’.
이들 영화의 장면들이 감독의 애정과 정성이 가득히 담긴 마음으로 재연되는데 아마추어 배우들이 연기하듯이 다소 엉성한 부분이 있어 더 재미있다.
시몬스는 보통 사람들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화사한 스타 파워를 자신이 재연하는 환상을 통해 찬미하고 느끼고 있는데 그 같은 마음이 화면 밖으로 분출되면서 보는 사람의 마음속으로 파고든다. 시몬스의 영화예술에 대한 정열이 가득히 담긴 영화다.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8년 1월 12일 금요일

패딩턴 2(Paddington 2)


패딩턴이 교도소 주방장 맥긴티 앞에서 떨고 있다.


입양된 곰 적응과정 벌이는 해프닝
재미와 감동의 가족용 애니메이션


런던의 단란한 브라운 가족에 입양된 페루산 곰 패딩턴의 새 세상 적응과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해프닝 그리고 인간 가족과의 관계를 아기자기하고 재미있게 그린 ‘패딩턴’(2014)의 속편으로 전편 못지않게 아기자기하고 재미있고 우습고 신나는 온 가족용이다. 
전편에 나온 배우들이 다시 다 나오고 여기에 휴 그랜트와 브렌단 글리슨 같은 유명 배우들이 조연으로 나와 톡톡 튀는 대사와 노련한 연기로 웃음을 배가시키는 앙상블 캐스트의 영화다. 주·조연 외에 짐 브로드벤트, 이멜다 스턴튼, 마이클 갬본 및 탐 콘티 같은 유명 배우들이 카메오로 나온다. 
액션이 많고 속도감 있으며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대사 그리고 좋은 연기가 있는 상냥하고 부드럽고 사뿐한 영화로 곰이 주인공이니만큼 플롯에 좀 어리석은 부분이 있다. 이 영화는 여러 가지로 교훈적인 부분도 있다. 나와 다른 것에 대한 수용과 함께 친절과 예의범절 및 우리들 속에 있는 선한 마음을 소홀히 하지 말자는 호소가 담겨 있다.
패딩턴(벤 위셔 음성)이 입양된 브라운 가족이 사는 동네에 새로 이사 온 사람이 과거의 영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허영 덩어리인 한물 간 배우 피닉스 뷰캐넌(그랜트). 그는 지금 개밥 광고로 연기생활을 하고 있다. 브라운 가족의 가장과 그의 아내 그리고 이들의 아들과 딸 및 나이 먹은 가정부로는 각기 전편에 나온 휴 본느빌, 샐리 호킨스, 새뮤엘 조슬린, 매들렌 해리스 및 줄리 월터스 등이 다시 등장한다. 이들 중에서 제일 재미있는 사람이 가정부 월터스로 그가 “배우란 다 사악한 것들”이라고 한 마디 한다. 
입양된 집에서 가족의 일원이 되어 잘 살고 있는 패딩턴의 이 닦고 세수하는 등의 일상묘사가 아주 우습고 재치 있다(애니메이션이 매우 좋다). 패딩턴은 동네 골동품가게(가게 주인이 브로드벤트)에서 19세기에 만든 희귀한 팝-업 책을 보고 이를 사서 자기가 오매불망 못 잊는 고향의 아주머니에게 보내려고 유리청소 등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런데 이 책을 노리는 자가 있으니 그가 바로 뷰캐넌. 이 책에는 엄청난 액수의 보물이 숨겨진 장소를 알려주는 단서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밤 패딩턴은 괴한이 골동품 가게에 침입해 팝-업 책을 훔치는 것을 목격하고 그를 뒤쫓다 오히려 절도범으로 몰려 교도소에 들어간다.
영화 중간 부분을 차지하는 교도소 내 패딩턴의 생활이 아주 우습고 재미있다. 죄수들의 우두머리는 속은 착하나 험악한 인상에 거구인 주방장 너클스 맥긴티(글리슨). 살벌한 감방 분위기를 바꾸는 것이 물론 패딩턴. 그는 맥긴티에게 마마레이드를 사용한 조리법을 지도, 그 때까지 맥긴티가 무서워 그가 해주는 맛없는 음식을 참고 먹던 감방 동료들의 입맛을 바꿔 놓으면서 감방에 화해와 평화 무드가 가득하게 된다. 
한편 브라운 가족은 패딩턴의 무죄를 입증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하나 쉽지가 않다. 그래서 패딩턴과 맥긴티가 교도소를 탈출하면서 추격과 도주와 액션과 모험이 일어난다. 세트 디자인과 의상과 칼러도 알록달록하니 다채롭다. PG.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커뮤터(The Commuter)


마이클이 협박전화를 받으면서 정체불명의 프린을 찾고 있다.

60세 넘은 리암 니슨  “미지의 인물 찾아라”  통근열차 속의 액션극


나이 60 넘어 ‘테이큰’ 시리즈와 ‘논-스탑’등 액션영화 배우로 맹활약하는 리암 니슨이 달리는 기차 안에서 좌충우돌하면서 쏘고 찌르고 치고 박는 B무비 스타일의 액션영화로 보자 마자 잊어버릴 영화다. 얘기도 신빙성이 모자라고 심리적 깊이도 부족하고 긴장감도 약하지만 액션팬들은 보고 즐길 만하다. 연출은 스페인 감독 하우메 코옛-세라가 했는데 그와 니슨은 ‘논-스탑’을 비롯해 이 영화로 네 번째 함께 일한다.
내용의 대부분이 협소한 공간인 달리는 기차 안에서 일어나는데 히치콕의 기차가 나오는 ‘숙녀 사라지다’와 ‘기차 안의 낯선 사람들’ 그리고 ‘의혹의 그림자’의 이 부분 저 부분을 오려내 짜깁기한 것 같다. 도대체 누가 나쁜 자이며 또 시간에 쫓기는 설정까지 히치콕을 모방했는데 감독은 히치콕의 열렬한 팬이다.
전직 형사로 뉴욕에서 보험회사 직원으로 일하는 마이클 맥컬리(니슨)는 은퇴를 몇 달 앞두고 해고된다. 그렇지 않아도 자녀 대학등록금 때문에 아내(엘리자베스 맥거번은 완전히 소모품)와 함께 걱정이 많은데 이야말로 설상가상이다. 
그는 회사 인근 술집에서 시름을 달래는데 그를 위로하는 사람이 뉴욕경찰서 형사 친구 알렉스(패트릭 윌슨). 둘은 술집에서 형사반장 호손(샘 닐)을 만나는데 알렉스와 호손의 설정은 완전히 관객을 혼란시키기 위한 얕은 수법이다.
이어 마이클은 집으로 가는 통근 기차를 타는데 그의 앞자리에 고혹적인 여자 조앤나(베라 화미가)가 앉더니 제의를 한다. 기차에 자기가 찾는 중요한 물건을 소지한 프린이라는 이름을 지닌 사람이 탔는데 그를 찾아주면 거액의 현찰을 주겠다는 것. 제의를 거절하면 마이클의 가족은 죽는다.
이 때부터 마이클은 울며 겨자 먹기로 기차 안을 샅샅이 뒤지며 전직 형사의 감각을 이용해 프린을 찾는데 도대체 프린이 누구인가. 그리고 누군가 마이클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 이어 온갖 무기와 흉기가 동원된 도가 넘치는 액션이 일어난다.
마지막은 고속으로 달리는 기차가 탈선해 아우성 난장판이 되는데 끝에 가서 주인공이 어떻게 될지 잘 알 영화여서 흥분감이나 서스펜스를 느끼게 되지 않는다. 사족 같은 라스트신은 터무니가 없는데 속편을 만들자는 말인가. 니슨은 이런 역은 여러 번 해 누어서 떡 먹기 식으로 해낸다. PG-13.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블랙 선데이


모두가 하비 와인스틴 탓이다. 지난 7일 베벌리 힐즈의 베벌리 힐튼호텔에서 열린 제75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은 온통 흑색으로 물결쳤다. 여성 스타들이 모두 흑색 드레스를 입어 그들이 밟는 레드 카펫과 치열한 대조를 보였다.(사진)
흑색 드레스는 미 독립영화계의 거물 와인스틴의 여성에 대한 성적 폭력이 폭로된 이후 미 사회전반에 걸쳐 만연한 여성에 대한 성적 학대와 불균형에 저항하는 의도로 스타들을 비롯한 할리웃 여성들이 조직한 ‘타임즈 업’을 지지하는 차림이다.
물론 예년 같았으면 식장의 VIP 테이블을 차지했을 와인스틴은 보이지 않았고 먹을거리와 마실 것이 푸짐했던 와인스틴 애프터 파티도 종적을 감췄다. 푸어 소울.
내가 속한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가 주최하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은 식 중에도 먹고 마시고 떠들면서 즐기는 할리웃 최고의 파티로 알려져 있다. 식 중에 탐 행스가 식장 옆의 오픈 바에서 칵테일을 주문해 쟁반에 올려놓고 손수 들고 조심스럽게 걸어 자기 자리로 간다.   
그러나 이 날은 ‘타임즈 업’의 분위기가 축제 분위기를 압도해 마치 사회적 문제에 관한 소견 발표회장에나 온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여성 수상자들이 한 결 같이 여성에 대한 성적 학대와 불균형에 대해 한 마디씩 해 참석자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여기에는 물론 옷깃에 ‘타임즈 업’ 핀을 꽂은 남성들도 동참했는데 살펴보니 마지못해 박수치는 남자도 더러 보인다. TV 드라마 ‘레이 도노반’으로 주연상 후보에 오른 리에브 슈라이버는 박수와 기립이 모두 엉거주춤하는 모양이었다.
여성 파워가 식장을 뜨겁게 달궜는데 묘하게도 여성이 주인공인 작품들이 대거 상을 탔다. 딸이 살해된 어머니가 쓴 경찰의 수사를 촉구하는 광고를 둘러싼 도덕극 ‘미주리 주 에빙 밖의 3개의 광고’가 드라마 부문 작품^각본(감독인 마틴 맥도나)^여우주연(프랜시스 맥도만드) 및 남우조연상(샘 락웰)을 타 최다 수상작이 되었다.
또 가족과 삶의 터전을 떠나고파 안달이 난 여고 3년생의 얘기로 여배우 그레타 거윅이 감독한 ‘레이디 버드’는 뮤지컬/코미디 부문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서샤 로난)을 탔다. 그리고 TV 부문에서도 여자가 주연하는 여성들의 얘기인 ‘하녀의 이야기’와 ‘빅 리틀 라이즈’가 작품상 등 여러 부문에서 수상했다.
생애업적상인 세실 B. 드밀상 수상자 오프라 윈프리가 수상 소감을 발표하면서 시상식은 절정에 달했다. 윈프리는 “새날이 지평선에 떠오르고 있다”면서 “그 누구도 결코 다시는 ‘미 투’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될 때가 오기를 희망 한다”고 강력한 발언을 해 참석자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윈프리도 성적 학대의 희생자이다.
윈프리의 소감 내용이나 발언하는 모습이 마치 정견 발표를 하는 것 같았는데 이 장면이 NBC-TV로 방영되면서 윈프리를 다음 선거에 대통령후보로 내보내자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에대해 트럼프는 9일 “내가 오프라에게 이길것”이라고 호언장담 했다.
작년 세실 B. 드밀 상 수상자는 메릴 스트립으로 스트립은 수상 소감에서 대통령 당선자인 트럼프를 신랄하게 비판해 큰 화제가 됐었다. 2년 연속 여성 수상자가 홈런 성 소감 발표를 한 셈이다.     
이 날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은 ‘다키스트 아워’에서 처칠 역을 한 게리 올드만이 뮤지컬/코미디 부문 남우주연상은 할리웃 사상 최악의 영화인 ‘룸’을 자비로 만든 타미 와이조의 영화 제작과정을 다룬 실화 ‘디재스터 아티스트’에서 와이조로 나온 제임스 프랭코가 탔다. 감독상은 벙어리 여자청소부와 수중괴물의 사랑을 서정적으로 묘사한 ‘물의 모양’의 기예르모 델 토로가 탔다. ‘물의 모양’은 음악상(알렉상드르 데스플라)도 탔다.
여우조연상은 피겨 스케이터 타냐 하딩의 실화를 그린 ‘아이, 타냐’에서 타냐의 악모로 나온 앨리슨 재니에게 돌아갔다. 외국어영화상은 독일작품 ‘인 더 페이드’ 그리고 만화영화상은 ‘코코’에게 각기 돌아갔다.   
이 날 각본상을 주기 위해 배우 며느리 캐서린 제이타-존스가 미는 윌체어에 앉아 나온 커크 더글러스(101)를 본 것은 안 보는 것만 못 했다. 다부지고 강인했던 체구의 스파르타커스가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더듬대며 말하는 것을 보다가 얼굴을 돌리고 말았다.   
시상식은 대의명분이 축제 분위기를 앞지른 쇼였다. 그래서인지 심야 토크쇼 사회자인 세스 마이어스가 사회를 본 쇼의 시청률이 작년보다 5%나 떨어졌다.
그러나 골든 글로브쇼는 2017년 오스카 시상식에 이어 시청률이 가장 높은 비스포츠 TV프로다.
*지난  칼럼 ‘나의 베스트 텐’에서 2차대전시 영국군의 던커크 철수를 다룬 ‘던커크’가 누락됐습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2018년 1월 9일 화요일

‘마이어로위츠 스토리’ 더스틴 호프만




‘마이어로위츠 스토리’(The Meyerowitz Stories)에서 뉴욕에서 열리는 자신의 조각작품 회고전을 위해 오래간만에 자기를 찾아온 장성한 두 아들을 만나 새삼 부자지간의 관계를 되새김질 하는 아버지 해롤드 마이어로위츠로 나온 더스틴 호프만(80)과의 인터뷰가 최근 베벌리힐스의 포 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 호프만은 배가 좀 나오긴 했지만 나이에 비해 정정했는데 코맹맹이 소리로 시치미를 뚝 떼고 음담까지 섞어가며 재미있게 인터뷰에 응했다. 그러나 역시 나이는 못 속인다고 인터뷰 도중에 주머니에서 보청기를 꺼내 “이거 비싼 거다”라면서 귀에 꽂고 질문을 받았다. 그런데 호프만은 최근 과거에 저지른 여성에 대한 성추행 구설수에 휘말려 사과를 한 바 있다.


“난 내 연기에 대해 결코 만족한 적이 없어”


-영화에서처럼 자식들은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기 마련인데 당신의 경험은 어떤가.
“난 행복하게 자라지 못 했다. 나의 아버지는 내가 자기보다 잘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나 난 내 자식들을 골고루 사랑한다. 내 성장기를 잘 알고 있어 더욱 그렇다.”

-당신이 영화계에 발 디뎠을 때와 지금을 비교할 때 영화산업이 어떻게 변했다고 보는가.
“지난 1984년 펠리니를 만났을 때 그는 이제 더 이상 대형 스크린을 찾아 볼 수가 없다고 한탄을 했다. 옛날에는 25센트를 내고 극장에 들어가면 극장 안에 샹들리에가 달린 것이 마치 부잣집에 온 느낌이었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극장 안에 있는 경험만으로도 환상적이었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손바닥만한 전화기로 영화를 본다. 사실 나도 밤에 화장실에 갔다 오면 금방 잠이 안 와 아이폰으로 영화를 보면서 잠을 청한다. 중독이 되다시피 했다. 세상이 그렇게 됐으니 어쩌겠는가.” 

-당신이 주연한 ‘파피용’이 리메이크 됐는데 옛 영화에 관련된 재미있는 에피소드라도 있는지. 
“사실 내 역은 처음에 각본에도 없었다. 내가 캐스팅 된 이유는 스티브 매퀸이 출연료로 당시로서는 엄청난 액수인 200만 달러를 받는 바람에 그에 맞설만한 빅스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매퀸은 내게 10대 때 감옥에 간 일이 있었다고 뽐을 냈다. 그는 유별난 사람이었다. 영화를 스페인의 산세바스찬에서 찍을 때 그는 애인 알리 맥그로와 함께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식당에서 만났을 때 그는 사람들 눈에 띄기 싫다면서도 옆에 번호가 부착된 경주용 차를 타고 왔다. 그리곤 음식 값을 내가 내려고 하니까 그가 반반씩 내자고 하더라. 그는 처음에 날 의심하는 눈치더니 내가 그가 잘 하기만을 바라는 것을 알고는 서로 아주 가까워졌다. 또 다른 에피소드는 영화를 자마이카에서 찍을 때 매퀸은 미국으로부터 자기 픽업트럭을 자마이카로 가져가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바퀴 덮개 속에 코케인을 잔뜩 숨겨 놓았기 때문이었다.”  

-트럼프를 비롯해 의회와 대법원 등이 온통 보수 일색인데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금 우리 나라는 분열된 상태다. 오바마와 부시 정권 16년간 켄터키를 비롯한 시골 사람들이 정부로부터 외면을 당해 그에 대한 반발로 트럼프가 당선된 것으로 본다. 트럼프는 이들의 마음을 파악하고 ‘당신들은 더 이상 안 보이는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편을 들어주면서 선거에 이겼다. 정부로부터 무시당한다고 생각한 사람들의 극에 달한 불만과 분노가 결국 지금 우리나라의 현 상황을 초래했다고 볼 수 있다.”

-요즘과 같은 특수효과 위주가 아니라 옛날처럼 연기 위주의 스타들과 내용이 있는 영화들을 다시 볼 수 있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보는가.
“지금도 있다. 인디들이다. 그들은 훌륭한 영화들을 만들고 있다. 난 지금 영화계에 훌륭한 배우와 감독 그리고 각본가들이 없다고 보진 않는다. 많은 훌륭한 각본가들이 TV로 옮겨간 것은 사실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거기서 더 많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50여년의 경력을 돌아 볼 때 영화계는 사실 큰 변화를 하지 않고 있다. 특히 각본가에 대해서 서자 취급을 하고 있다. 영화계에선 감독이 최고다. 요즘 정말 잘 만든 영화들은 모두 인디영화다. 
파티에 초대 받은 아버지 역의 더스틴 호프만(왼쪽)과 아들 역의 애담 샌들러.

-당신은 7년 전에 영화 ‘바니스 버전’에서 창녀 집에서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었는데 남자로선 죽기에 꽤나 좋은 곳이라고 본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도 그 장면을 찍을 때 당신과 같이 느꼈었다. 그 영화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만들었는데 그 장면은 진짜 마사지 업소에서 찍었다. 거리에 일렬로 마사지 업소들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 곳을 사창가라고 안 부르고 마사지 업소라고들 했다. 업소 단골들은 거기 사는 정통 보수파 유대인들이었다.”

-연기에 대한 접근 방식이 세월과 함께 달라졌는가.
“연기란 늘 배우는 것이다. 언제나 새로운 것이 있다. 난 내 연기에 대해 결코 만족한 적이 없다. 언젠가 바리쉬니코프를 만났을 때 춤을 특별나게 잘 추어본 적이 있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더니 결코 없다고 대답하더라. 내가 존경하는 연기파는 말론 브랜도와 마를렌 디트릭이다. 난 진 해크만과 함께 패사디나 플레이하우스에서 연기 수업을 했는데 해크만은 재능이 없다고 해서 석 달 만에 쫓겨났다. 그것은 해크만의 연기가 연기 같지 않고 너무나 사실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영화는 대사의 단어 하나하나를 전부 배워야해 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당신은 유명 인사인데 그에 대한 어떤 좋은 경험이라도 있는지.
“1979년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로 뉴욕 영화비평가 서클로부터 상을 받은 뒤 비행장에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내게 다가오더니 ‘호프만씨 당신이 나온 ’대부 1편‘과 ’대부 2편‘ 중 어느 것의 연기가 더 좋다고 생각 하십니까’라고 묻기에 ‘대부 2편’이라고 대답했더니 그 사람이 ‘저도 그래요’라고 말했다. 이 게 나의 유명인사가 겪은 기찬 실화다.” 

-아버지와 할아버지로서 자식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었다고 생각하는가.
“난 6남매에 손자가 3명이다. 난 단지 그들에게 남과 다른 자기만의 개성을 지니라고 말 할 뿐이다. 결코 이전에도 이후에도 너와 같은 사람은 없다는 것을 깨닫도록 하고 싶다. 삶의 신비란 매 개인마다 독특한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타인이 자기와 같아지기를 원하고 있다.” 

-‘졸업’이 TV에 나오면 보는가 아니면 외면하는가.
“TV 채널을 돌리다가 내가 나온 영화가 나오면 본다. 그러나 잠깐 보고 채널을 바꾼다. 이보다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졸업’만은 끝까지 본다. 그것은 정말로 훌륭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한 달간 철저한 리허설을 하고 나서야 촬영을 시작했다. ‘졸업’을 만든 마이크 니콜스 감독은 참으로 훌륭한 감독이었다. 그는 날 캐스팅 해놓고 잘 못했다고 생각 했었다. 왜냐하면 영화의 원작에서 내가 맡은 인물은 로버트 레드포드처럼 6피트 키에 금발과 푸른 눈을 했기 때문이다.” 

-당신의 자식들은 유명 인사인 당신을 아버지로 가짐으로써 어떤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가.
“부모가 유명 인사인 자식들은 부모가 이룩한 수준이 높아서 그에 따르기가 힘들 게 마련이다. 그 점이 가장 자식들에게 힘든 부분이다. 난 첫 아내에게 ‘그래 내 일이 나의 전부야’라고 소리친 적이 있다. 내 일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인데 40년이 지나서야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은 일일 뿐이고 가족이 당신의 전부다.” 

-이 영화에서 당신은 매우 온화한 아버지로 나온다. 당신은 젊었을 때 상당히 호전적이었다고 아는데 지금 당신은 어느 쪽인가.
“그렇다 난 전에는 호전적이었지만 이젠 여러 요법을 통해 남과 동의하지 않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을 배웠다. 난 예전엔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적으로 생각했다. 내가 지금도 화가 나는 일은 연기할 때 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데 감독은 좋다며 다음 장면 찍자고 할 때다. 그러나 난 요즘엔 이것도 잘 참고 보낸다. 좌우간에 이제 난 너무 늙어 남의 비위를 맞출 줄 안다.“

-요즘 할리웃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권력 있는 영화감독과 제작자들의 여성에 대한 성추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가 배우 생활 시작할 때인 50년 전에도 캐스팅 카우치는 있었다. 이제라도 그것이 폭로된 것은 잘 된 일이다. 그것은 밝혀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래 동안 여러 가지 형태로 존속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영화계뿐 아니라 산업 전반에 걸쳐 있는 일이다. 난 왜 페미니즘이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지 이해하기가 힘들다. 여성들은 2류 시민으로서 아직도 봉급 차이를 비롯해 남성의 우월 및 특권의식과 투쟁을 하고 있다.”

-당신은 나이에 비해 매우 건강해 보이는데 테니스를 쳐서 그런가. 젊음의 비결이 무엇인가.
“얼마 전에 힘줄 두 개가 끊어져 당분간 테니스는 쉬고 있다. 난 50세 생일 때 지미 카너스 하고 테니스를 했다. 어서 다시 칠 수 있기를 기다린다. 다른 비결은 섹스 꿈을 꾸는 것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팬텀 스레드(Phantom Thread)


레널즈가 알마의 몸을 재고 있다.

디자이너와 뮤즈 둘러싼 삼각관계 예술적 표현


드물게 영화를 만드는 독립영화의 대표적 인물 폴 토마스 앤더슨이 감독하고 역시 영화 출연이 뜸한 오스카상 수상자인 연기파 대니얼 데이-루이스가 주연한 예술가와 그의 뮤즈에 관한 드라마다. 두 사람은 ‘피를 볼 것이다’(There Will Be Blood·2007)에서도 함께 일했는데 데이-루이스는 ‘팬텀 스레드’를 끝으로 은퇴하고 구두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집념적인 런던의 고급 패션 디자이너와 그의 도도한 누나 그리고 디자이너가 주워오다시피 한 모델의 예술적이요 감정적이며 또한 정신적 충돌을 그린 삼각관계와 함께 창조적인 예술가에 의해 미운 오리 새끼에서 백조로 변신하는 여인의 성격 탐구 드라마다.
기술적으로 빈틈이 없고 뛰어난 연기와 함께 눈으로도 볼 것이 많은 화사한 작품인데 극적 강렬함이 모자라는 대신 지나치게 예술적이요 감정적으로 차가운데다 너무 주도면밀해 보면서 뜨거운 마음이 일지 않는다. 생명력이 있다기보다 표본을 보는 것 같아서 화면에 몰입하는 대신 거리감을 느끼게 되는 작품이긴 하나 볼 만하다.
1950년대 런던. 항상 말끔한 차림에 성질이 까다로운 레널즈 우드칵(데이-루이스)은 상류사회 층을 위한 고급 패션 디자이너. 예술가가 작품을 만들 듯이 영혼을 쏟아 부어 디자인을 하는 완벽주의자다.
디자인 영감이 안 떠올라 애를 먹던 레널즈는 우연히 시골 식당에 들렀다가 어딘가 신비한 분위기를 지닌 키가 껑충하니 크고 어색한 태도의 웨이트리스 알마(비키 크립스)를 보고 마음이 끌린다. 레널즈가 알마를 저녁에 초대하고 이어 자기 아틀리에에 데려가 여자의 몸에 맞는 이브닝 가운을 제작하면서 둘은 가까워지고 급기야 연인 사이가 된다. 그리고 알마는 거처를 레널즈의 저택으로 옮긴다. 이 집의 안방마님은 레널즈의 파트너이자 살림을 돌보는 독재적이요 오만한 누나 시릴(레즐리 맨빌).
둘 다 독립심이 강하고 도도한 여자들이 한 집에 사니 갈등이 일어나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 게다가 레널즈와 시릴의 관계가 거의 근친상간 적이어서 시릴에게 알마는 눈엣가시. 알마는 처음에 레널즈의 시중이나 들고 마네킨 노릇을 하다가 점차 레널즈의 창작에 깊이 빠져들면서 서서히 자기주장을 하기 시작한다.
이로 인해 둘 사이에 충돌이 일지만 서로는 상대방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알마가 차차 레널즈의 영역에서 위치를 굳혀가면서 그로부터 밀려나고 있다는 사실을 안 시릴은 알마와 눈에 안 보이는 치열한 대결을 하고 레널즈에게 자신의 입장을 항변하나 레널즈는 알마의 편을 든다.
이어 끝 부분에 이르러 다소 활기가 부족하던 영화가 시골 색시 출신으로 런던의 화려한 패션계에 자리를 잡은 알마가 자신의 야망과 정열을 노골화 하면서 극적 흥미를 북돋운다. 데이-루이스는 맡은 역을 집요하게 분석해 완전히 자기 영육의 안으로 이식하는 배우여서 여기서도 경탄할 연기를 보여준다. 그에 못지않은 것이 크립스와 맨빌의 연기다. 세 사람의 연기가 압도적이다. R. ★★★(5개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인 더 페이드(In the Fade)


카티야는 아들과 남편을 살해한 네오 나치들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어린 아들과 남편 잃은 분노의 여인
증오범죄자에 충격적 복수과정 생생


수년전 독일에서 일어난 증오범죄를 바탕으로 터키계 독일 감독 화티 아킨이 만든 서스펜스 스릴러로 남편과 어린 아들을 잃은 어머니로 나오는 다이안 크루거의 치열하고 불같은 연기가 눈부시다 크루거는 이 역으로 작년 칸영화제 주연상을 탔다. 
인종과 종교적 긴장과 테러가 빈번한 요즘 시의에 맞는 흥미 있는 복수극으로 시종일관 긴장감이 감돌면서 관객의 관심을 요구한다. 남편과 자식을 잃고 슬픔과 분노 그리고 고통에 시달리는 어머니가 마지막에 선택하는 길이 충격적인데 정의 실현을 위한 복수가 정당화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자유분방한 카티야(크루거)는 대학생 때 대마초를 구입하다 약물 거래자인 쿠르드계 누리(누만 아카르)와 사랑에 빠져 누리가 옥살이를 할 때 결혼한다. 그로부터 5년 후 약물 거래에서 손을 씻은 누리는 함부르크의 터키 커뮤니티에서 여행사를 경영하며 카티야와 아들 로코와 함께 안락한 삶을 산다. 
어느 날 카티야가 로코를 가게의 남편에게 맡기고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면서 남편의 가게가 폭파된 것을 목격하는데 남편과 아들의 사체도 제대로 못 찾는다. 경찰은 누리의 전력 탓에 사건을 약물 거래자들과 연계시키나 남편이 깨끗하다는 것을 아는 카티야는 폭파를 네오 나치들의 소행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범인들로 두 젊은 남녀 네오 나치가 체포돼 기소되면서 검찰 측과 변호인 간에 치열한 설전이 벌어지고 재판에 참석한 카티야는 이 과정에서 재생되는 사건의 전말을 들으면서 치를 떤다. 긴 재판 과정 동안 카티야는 폐인이 되다시피 하지만 정의가 실현되기만을 기다리며 참는다. 카티야가 재판정과 집에서 겪는 내적 고통의 모습이 처절하다.
그러나 재판 결과가 자기 생각과 달리 끝나면서 카티야는 자기 손으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그리스로 간다. 카티야는 복수의 화신이 되고 주저하고 회의 하면서도 남편과 아들의 죽음에 앙갚음하기 위해 극단적인 행동을 취한다.
남편과 아들의 죽음에 시달리면서 절망의 벼랑 끝까지 이르렀다가도 그들의 죽음을 복수하려고 마치 형사가 사건을 수사하듯이 치밀하게 범인들을 추적하는 카티야 역의 크루거의 냉철하면서도 뜨거운 연기가 볼 만하다. 
독일의 제90회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후보작으로 9편의 예비 후보 리스트에 올랐다. 
R등급.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