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3월 16일 월요일

신데렐라 (Cinderella)


신데렐라와 왕자가 무도회에서 월츠를 추고 있다.

현실은 잠시 잊고… 동화 속 거닐어요


살아 있는 동화의 꿈나라에서 노니다 나온 듯이 황홀하다. 영국의 셰익스피어 대가로 영화와 연극의 배우이자 감독인 케네스 브라나가 연출했는데 마치 마술사가 경탄을 금치 못할 재주를 부린 것처럼 어지럽도록 다채롭다.
따스하고 매력적이고 로맨틱하며 또 화려하고 우아하며 위트와 유머와 함께 삶의 예지도 가득한데 브라나는 전통적인 옛 동화에 약간 현대적 색채를 가미해 요즘 아이들이 보기 좋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어른들도 보고 충분히 즐길 만한 생동감 넘치고 알록달록하기 짝이 없는 잘 생긴 작품이다.
두 남녀 주인공의 화학작용도 좋고 의상과 세트와 촬영과 풍성한 음악 그리고 특수효과도 모두 최고급인데 특히 오스카상 수상자인 단테 페레티가 만든 화려한 무도회가 열리는 궁정을 비롯한 세트가 눈부시고 신데렐라가 입은 하늘색 푸른 드레스가 곱기도 하다.
1950년에 디즈니가 만든 만화영화로 잘 알려진 신데렐라 얘기는 이번에 신데렐라를 악조건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낙천적이며 독립심 강한 여자로 묘사해 현대 여성답게 재생시켰다. 그러나 그런 현대적 터치는 얘기의 고전적 감각에 거슬린다기보다 서로가 잘 섞여들고 있다.
엘라(엘로이즈 웹)가 열 살 때 어머니(헤일리 애트웰)가 죽고 딸과 함께 혼자 살던 여행하는 상인인 엘라의 인자한 아버지(벤 채플린)가 아내 사후 몇 년이 지나 촌스런 두 딸 드리셀라(소피 맥쉐라)와 아나스타시아(할러데이 그레인저)를 둔 허영에 들뜬 레이디 트레메인(케이트 블랜쳇)을 아내로 맞아 데려온다.
얼마 안 있어 엘라의 아버지는 해외에서 사망한다. 이제 집주인이 된 트레메인과 그의 두 딸은 엘라를 신데렐라라고 부르면서 부엌데기처럼 부려 먹는다. 그리고 신데렐라를 다락방으로 쫓아낸다. 그러나 신데렐라는 이런 학대 속에서도 4마리의 쥐를 친구로 위로 받으면서 열심히 산다.
신데렐라(릴리 제임스)는 어느 날 말을 타고 숲 속으로 갔다가 사냥 나온 왕자(리처드 매든)를 만나고 둘은 서로에게 첫 눈에 반한다. 물론 신데렐라는 왕자의 정체를 모른다. 병약한 선군인 아버지(데렉 자코비)가 사망하기 전에 결혼을 해야 할 처지인 왕자는 신붓감을 고르기 위해 무도회를 열기로 한다. 왕자는 민주적이어서 전 세계의 공주들뿐만 아니라 자기 나라의 모든 평민들의 딸도 무도회에 참석하도록 발표한다. 이를 달갑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 왕자의 정략결혼을 도모하는 대공(스텔란 스카스가드).
트레메인이 신데렐라는 버려둔 채 두 딸을 데리고 무도회에 가자 착한 신데렐라를 불쌍하게 여긴 요정대모(헬레나 본햄 카터가 재미있다)가 호박과 도마뱀과 개구리와 거위에게 마술을 부려 마차와 말과 마부 등으로 만든다. 그리고 신데렐라에게 푸른색 드레스를 입히고 유리구두를 신켜 마차에 태워 왕궁으로 달려 보낸다. 자정을 알리는 마지막 종소리가 끝날 때 까지 귀가해야 한다는 조건이다.
재회한 왕자와 신데렐라는 중인환시리에 월츠를 추면서 사랑에 빠져 드는데 아뿔싸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린다. 그 다음은 다 아는 얘기. 잘 생긴 선남선녀 릴리 제임스와 리처드 매든의 콤비가 보기 좋고 케이트 블랜쳇이 못된 계모 역을 품위를 지닌 채 사악하게 해낸다. PG. Disney.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히로시마, 내 사랑 (Hiroshima, Mon Amour)


헤어져야 할 연인 남자와 여자는 히로시마의 밤을 아쉬워 한다.

원폭의 도시, 암울하고 강렬한 사랑의 불꽃  


핵폭탄의 파괴성과 적의 그리고 그것의 암울하고 긴 잔영을 사랑의 수용 불가능성과 상징적으로 연결시킨 프랑스의 명장 알랭 르네 감독의 사무치게 아름다고 사색적이며 또 비감한 1959년 작 흑백 러브스토리다. 시랑의 망각성과 기억의 아픔을 히로시마의 고통과 원폭투하 불과 14년 만에 서서히 잊혀져가는 기억의 상실과 접목시킨 사랑의 얘기이자 반전영화다.
히로시마라는 범세계적 장소에서 일어나는 두 남녀의 하루 남짓한 이야기는 호텔 히로시마 118호실에서 두 남녀가 벗은 상반신을 꼭 부둥켜안고 있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이어 나신 위에 내려앉은 핵진이 서서히 정사로 촉진된 땀방울로 변하는데 둘의 이런 모습은 핵을 맞아 응고된 두 연인을 상기시킨다.
남자(영화에서 두 사람의 이름은 없다)는 단조로운 톤으로 “당신은 히로시마에서 아무 것도 보지 않았소”라는 독백을 계속한다. 여자(에마뉘엘 리바-‘아무르’)는 히로시마에 평화에 관한 영화를 찍으러 온 파리지엔 배우요 남자(에이지 오카다)는 건축가. 
내일이면 떠나야 할 여자는 2차 대전 때 고향 느베르에서 겪은 독일 병사와의 쓰라린 첫 사랑 때문에 또 다른 살육의 장소인 히로시마에서 또 다른 외국인인 남자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친다.
남자와 여자는 밤새도록 인적이 끊긴 바와 식당의 네온만이 명멸하는 거리를 마치 이별을 연장시키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천천히 걷는다. 둘의 보조에 맞춰 따라가는 카메라의 걸음과 흑백촬영이 검소하면서도 고혹적이다.
두 사람은 다 기혼자이나 르네는 이들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여자는 “남겠다”고까지 말하나 그것은 단지 염원일 뿐이다. 둘이 마지막으로 들른 카페는 ‘카사블랑카’. 이어 호텔로 돌아온 여자를 뒤쫓아 남자가 방문을 두드린다. “올 수밖에 없었다”는 남자는 여자의 두 팔을 아프도록 붙잡고 “내 이름은 히로시마, 당신 이름은 느베르”라면서 영화는 사랑의 교착상태로 끝난다. 
이 영화와 함께 르네의 1961년 작으로 상징이 가득한 흑백 예술영화 ‘작년 마리앙바드에서’(Last Year at Marienbad)가 15일 하오 7시30분 이집션 극장(6712 Hollywood Blvd.)에서 동시 상영된다. (323)466-3456.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말러의 ‘비극적’ 교향곡 제6번




프랑스 영화 ‘라스트 해머 블로우’(The Last Hammer Blow)는 ‘비극적’이라는 부제가 붙은 말러의 방대한 교향곡 제6번이 플롯의 주요 부분을 차지하는 검소하고 온화한 드라마다. 10년 전에 자기를 버리고 떠난 오케스트라 지휘자인 아버지 새뮤엘과 13세난 아들 빅터와의 관계의 연결을 다룬 소년의 성장기로 이 관계 연결의 촉매구실을 하는 것이 이 교향곡이다.
암을 앓는 어머니를 정성껏 돌보는 빅터가 사는 몽펠리에에서 이 교향곡을 연주하기 위해 오래간만에 도시를 찾아온 새뮤엘은 자기를 만나러온 생면부지이다시피 한 빅터에게 교향곡 제6번의 CD를 주면서 들으면서 느낌을 적으라고 이른다.
며칠 후 새뮤엘이 빅터에게 소감을 묻자 빅터는 대뜸 “길다”라고 대답한다. 그래 맞다. 교향곡 제6번은 참으로 길다. 7일 디즈니홀에서 구스타보 두다멜의 지휘로 LA필이 연주한 제6번은 휴게시간 없이 장장 75분이 계속됐다.  
새뮤엘은 리허설을 하면서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이 음악이 비극적이라고 해서 훌쩍훌쩍 우는 것은 아니다”면서 “스트레스가 큰 음악”이라고 교향곡의 성질을 설명한다. 그래 맞다, 영육을 스트레스로 질끈 동여매는 음악이다. 그런 스트레스 끝에 느끼는 융성한 기쁨은 가히 마조키스틱하다고 해도 좋겠다. 이어 새뮤엘은 플룻과 클라리넷과 오보 연주자들에게 보다 부드럽고 물 흐르듯 연주하라고 지시한다.
고전과 현대가 혼합된 제6번은 세기말 병 환자요 염세주의자이며 운명론자인 말러의 교향곡 중 가장 어둡고 비극적이며 또 염세적이다. 역설적인 것은 이 음악이 그가 매우 행복했던 때 작곡됐다는 점이다. 아름다운 알마와 결혼해 첫 딸 마리아를 낳고 자신의 음악도 점점 많이 연주되고 또 자신이 감독으로 있는 비엔나 오페라의 공연도 내리 히트를 했던 시기였다.
그런데 말러가 1906년 5월 이 곡을 독일의 에센에서 초연한지 1년 안에 4세난 마리아가 죽고 알마의 부정이 밝혀지고 비엔나 오페라와도 결별하는가 하면 자신이 심장병을 앓고 있다는 진단을 받는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말러가 이 음악에서 자기 미래를 예견했다고들 한다.
말러의 이 같은 운명론은 이 교향곡의 장렬한 제4악장 후반부에 사용되는 떡메 같은 커다란 해머의 두 차례의 강타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난다. 말러는 마치 타격에 의해 큰 나무가 쓰러지듯 영웅의 종말을 상상했다고 하는데 따라서 교향곡 제6번은 말러의 ‘운명’교향곡이라고 불러도 되겠다. 해머 타격은 원래 세 차례였는데 후에 말러가 둘로 고쳤다. 이에 대해 영화의 빅터는 “말러가 세 번째 타격을 지운 것은 자기 운명을 피하고 또 무시하겠다는 의도를 보인 것”이라고 성숙한 해설을 한다. 
제4악장과 함께 군대의 행진곡 풍으로 시작되는 제1악장을 지휘하는 두다멜은 다소 놀랍게도 사납도록 강건하고 우람찼다. 타악기와 금관악기가 천둥번개를 치고 하늘의 승전가를 연주하듯 눈부신데 나는 말러의 제4악장의 금관악기 소리를 들을 때마다 구름을 타고 하늘에 오르는 느낌을 겪곤 한다.
나는 말러의 음악을 생각하면 헤세의 글이 떠오르곤 한다. 둘 다 자연과 산책을 사랑했는데 둘 다 자연이 자신들의 작품에 큰 영감을 제공했다. 교향곡 제6번의 서정미 그윽한 제2악장은 헤세의 ‘페터 카멘진트’를 연상시키는 말러의 풍경화다. 
말러는 교향곡 제6번을 1903년과 1904년 뜨거운 여름 오스트리아의 휴양지 마이에르니크의 뵈르터제 호숫가의 오두막(사진)에서 작곡했는데 제2 악장에는그가 즐긴 숲속 산책과 함께 오두막 창으로 내다본 자연의 풍광에서 얻었을 악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뭉게구름이 함박꽃 피듯 피어오르고 산새가 지저귀며 푸른 숲이 숱 많은 머리를 풀어헤치면서 바람이 불면 호수가 잔잔한 물결을 규칙적으로 일으키고 멀리서는 워낭 소리가 딸랑딸랑하고 반향을 불러온다. 
꿀빛 부드러움과 피곤한 영혼을 위무하는 듯한 멜로디와 하모니가 고즈넉이 아름답다. 물감 대신 음표로 그린 평화로운 풍경화다. 두다멜은 마치 연인을 끌어안고 애무하듯이 정성들여 아늑하게 지휘했는데 음악에 취한 듯이 보였다. 빈 틈 없는 지휘다.
그러나 교향곡의 뿌리는 제4악장에 있다고 하겠다. 오케스트라 뒷좌석에 앉은 청중들이 미소를 지으면서 지켜본 떡메가 마치 천둥번개의 신 토르가 망치 내려치듯 하는 소리를 내는 마지막 악장은 첩첩산중의 압력으로 몸과 마음을 짓누르는 거대한 무게와도 같다. 감정이 채 다 감당 못할 정도로 크고 장엄하다. 말러의 운명뿐 아니라 모든 인간의 운명을 통고하는 결연하고 치열한 종말이다. 절정에 이르렀다 아래로 내리 곤두박질치듯 허무하다. 
내 몸을 두 팔로 꼭 끌어안고 오케스트라 쪽으로 몸을 내밀고 들을 수밖에 없었다. 대단한 음악이다. 이상하게 두다멜의 팬이 못된 나로서는 장쾌하고 맵시 있는 그의 지휘를 오래간만에 즐겼다. 그리고 음악은 지식으로 아는 것보다 감각으로 느끼는 것이라는 영화 속 새뮤엘의 말이 떠올랐다. 말러의 제6번 교향곡은 이달 말 LA 필의 아주 순회공연 때 한국에서도 연주된다. *‘주말 산책’은 기자의 블로그 <hjpark1230.blogspot.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