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10월 27일 월요일

‘이퀄라이저’ 덴젤 워싱턴



“사람들은 모두 신이 준 재능이 따로 있어”


현재 상영 중인 보스턴을 무대로 한 범죄 액션 스릴러‘이퀄라이저’(The Equalizer)에서 10대의 러시안 창녀를 악의 구렁텅이에서 구하기 위해 러시안 마피아들과 싸우는 은퇴한 CIA 킬러 로버트 맥콜로 나온 덴젤 워싱턴(59)과의 인터뷰가 9월 토론토영화제 기간에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 앤 타워에서 있었다. 이 영화는 워싱턴이 오스카 주연상을 탄‘트레이닝 데이’를 감독한 안트완 후콰 감독이 다시 워싱턴과 손을 잡고 만들었다. 검은 바지에 짧은 검은 셔츠를 입은 신체 건강한 워싱턴은 원기 왕성했는데 마치 연기를 하듯이 제스처와 얼굴 표정 그리고 인상을 요란하게 써가면서 질문에 대답했다. 인터뷰 후 기자와 사진을 찍을 때 기자가“나 한국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자 워싱턴은 크게 미소를 지으면서“나 한국에 가야지”라고 말했다.                                                   

―당신의 과거를 돌아볼 때 특별히 기억나는 것은 무엇인가.
“1983년 잠시 TV 출연을 중단하고 ‘크라이 프리덤’을 찍기 위해 런던에서 얼마 전 작고한 리처드 아텐보로 감독을 만났던 일이다. 그는 내게 ‘난 정말로 이 역을 위해 아프리카인을 찾았다’고 말했다. 우리는 아프리카로 갔는데 비행기 문을 열자 아프리카의 냄새가 났던 것을 기억한다. ‘아 나는 마침내 아프리카에 왔구나’하고 감격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나는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난 단지 영화를 만들 뿐으로 언제나 나의 가장 좋은 영화는 다음 영화라고 말한다.” 

―당신이 한 일 중 가장 자랑스러운 것은 무엇인가.
“4명의 자식들이다. 그리고 리처드 아텐보로, 조나산 데미, 토니 스캇, 에드 즈윅 및 안트완 후콰와 함께 일한 것이다.”

―이 영화는 개인이 법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정의를 구현하는데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건 위험한 일로 그래선 안 되겠지만 이 영화는 개인적인 복수영화는 아니다. 나는 러시안 창녀를 러시안 마피아로부터 구해 주려고 현찰을 들고 마피아를 찾아갔다가 그들이 말을 안 듣기에 내가 가진 기술을 사용했을 뿐이다.” 

―요즘 젊은 흑인 배우들의 활약이 큰데 할리웃이 과거보다 흑백의 구분을 덜 한다고 보나.
“모르겠다. 그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과거보다는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난 그들의 모범이 아니다. 내 전에 시드니(포이티에)가 있었고 시드니 전에는 1939년 오스카상(‘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을 탄 해티 맥대니얼이 있었다. 난 그저 그들의 연장선의 일부일 뿐이다.”

―당신은 열심히 일하나 아니면 역을 쉽게 얻는가.
“피부 색깔이 무엇이든지 매우 열심히 일해야 한다. 내가 ‘말콤 X’로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을 때 알 파치노가 상을 타자 사람들이 인종차별이라고 말들 하더라. 그래서 난 ‘알 파치노는 오스카상 후보에 8번이나 오르고도 상을 못 탔는데 난 두 번밖에 후보에 오르고도 벌써 탔다(조연상)’라고 말해 주었다. 모든 것을 인종차별이라고 핑계대긴 쉽다. 물론 그것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나 할리웃은 어디까지나 사업장소다. 얼굴 색깔이 무엇이건 간에 일을 잘하지 못하면 기회가 줄어들게 마련이다. 소위 쇼 비즈니스라는 것이다. 아니 비즈니스 쇼라고 해야겠네.”

―안트완 후콰와 다시 일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먼저 각본을 읽고 출연을 결심했다. 그리고 후콰와 만든 ‘트레이닝 데이’가 크게 성공했기 때문에 그에게 연출을 부탁했다. 나는 늘 각본의 처음 4페이지 정도를 읽으면 영화가 좋을지 나쁠지를 감지하곤 한다.”
은퇴했던 킬러 로버트(덴젤 워싱턴)는 러시안 창녀(클로에 그레이스 모리츠)를 
구하기 위해 다시 총을 집어든다.

―영화가 속편을 예고하며 끝나는데 속편을 만들 것인지.
“우린 모두 사람들이 보고 즐길 영화를 만들었을 뿐이다. 속편은 관객의 반응에 달렸다. 흥행이 어떤지 두고 봐야겠다.”(제작사 소니가 속편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당신은 영화에서 대형 건축자재상에서 일하면서 거기서 파는 온갖 도구를 이용해 러시아 마피아를 살해하는데 당신이 실제로 마지막으로 건축자재상에 가서 산 물건은 무엇인가.
“수퍼글루를 샀다. 이것으로는 사람의 눈을 붙여놓을 수가 있다. 나는 안트완과 해군 특공대 출신의 스턴트맨과 함께 자재상의 물건 중 무엇이 무기로 쓰여질 수 있는가를 연구했다. 핀, 유리, 모래, 전화와 시계 등이 모두 무기로 쓰여질 수가 있다.”

―당신이 다음 제임스 본드라는 설이 있는데.
“인터넷의 힘이 크네. 내가 인터넷으로 무엇이든지 물어 보세요 라는 인터뷰를 했을 때 누군가 그런 말을 꺼낸 것이 삽시간에 전 세계로 퍼져 나간 것이다. 내가 본드 역을 위해 로비를 한다고.”

―당신에 대한 가장 엉뚱한 가십은 무엇이었나.
“내가 죽었다는 것이다. 내가 스키 타다 죽었데. 난 스키는 물론이요 스노보드도 탈 줄 모른다. 그 후 사람들이 내게 전화를 걸어 ‘덴젤 진짜 당신 맞아’라고 묻더라. 온갖 풍문이 나도는데 별로 창의성들이 없다.”

―평소 어디 가길 좋아하는가.
“수퍼마켓이다. 사람들이 날 보고 ‘당신 여기서 뭘 하세요’라고 묻곤 한다. 목록대로 도마도니 물건을 사는 것을 즐긴다. 

―부인 폴레타의 근황은 어떤가.
“아내는 원래 가수였으나 아이들 키우느라 노래를 포기했다. 그러나 이젠 아이들이 다 커서   다시 가수로 돌아갈 것이다. 곧 토론토에서 노래 부른다. 그리고 시카고와 노스캐롤라이나와 애틀랜타를 거쳐 유럽에서도 공연할 예정이다. 우린 뉴욕에도 집이 있는데 아내가 거기서 노래를 하는 바람에 가끔 음식이 떨어질 때가 있다. 그러면 내가 수퍼엘 가곤 한다.”

―이 세상이 영화 속의 당신과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다고 보는가.
“매 개인이 다른 한 사람을 돌봐준다면 나 같은 사람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세상 사람들은 모두 로버트라고도 할 수가 있다. 사람들은 로버트가 불의를 처단하는 것을 보면서 그와 관계를 맺으면서 그를 응원하게 된다.”

―영화 출연을 잠시 쉬려고 하는지.
“올해는 브로드웨이에서 토니상을 탄 ‘펜시즈’라는 연극에 나와 영화를 안 찍었다. 2005년 후 ‘줄리어스 시저’와 ‘펜시즈’와 ‘태양 속의 건포도’ 등 3편에 나왔다. 그래서 난 연극과 영화에 나오고 또 감독도 하느라 바쁘다. 난 인생을 즐기고 있다. 서두를 것 없다.” 

―로버트는 매우 깔끔하고 단정한데 당신도 그런가. 그리고 당신에게 있어 자제라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난 단정하지도 않고 자제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는다. 나로 말하자면 조직된 혼란이다. 내 팬티가 마룻바닥에 있어도 내 아내처럼 신경 안 쓴다.”

―어제 영화 시사회 극장 앞에 모인 사람들이 “덴젤, 덴젤”하며 당신 이름을 부르짖는 것을 봤는데 사람들의 당신에 대한 관심에 압박감이라도 느끼나.
“1980년대 초에 150석짜리 극장에서 연극 ‘말콤 X’에 나왔을 때 일이다. 내 연기가 호평을 받으면서 1,000명의 관객이 표를 사려고 줄을 섰다. 난 그 때 극장 건너편의 공원 벤치에 앉아 쉬고 있으면서 ‘야 내 인생에 무엇이 변하고 있구나’하고 느꼈다. 성공하면 주위 세상이 당신을 포위하고 들어와 샤핑하러도 잘 못 간다. 때론 그런 경우가 싫지만 그러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것은 내가 일을 잘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니까. 난 내가 수퍼스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다 신이 준 재능이 있다. 어쩌다 내게 명성이 따랐을 뿐이다. 사람들이 날 보고 환호하는 것이 토마토를 집어던지는 것보다 훨씬 낫다.”
―내일 모레가 60인 당신이 어떻게 그렇게 젊어 보이나.
“좋은 유전인자 탓이다. 내 어머니는 89세인데 아직 정정하시고 내 딸은 26세인데 13세 같고 난 30세 때도 술을 사려면 신분증을 요구했다. 그러나 나이가 먹을수록 안으로 곪는 것 같다. 고통이 과거보다 훨씬 오래 남는다.”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불가항력(Force Majeure)

토머스(왼쪽)가 아내와 아이들을 내팽개치고 혼자 눈사태를 피해 달아나고 있다.

  위기 순간 혼자만 도망친 아빠, 당신 가족은?

제목 그대로 우리가 마음대로 다룰 수 없는 엄청나게 큰 사건이 일어나고 이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미치는 치명적인 후유증과 영향을 날카롭고 내밀하게 해부한 심리 드라마이자 블랙 코미디로 스웨덴의 내년도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후보 출품작이다.
우리는 남들이 보통 때 보는 것처럼 그렇게 결코 최선의 사람들만은 아니다 라는 명제와 함께 우리가 내면에 가지고 있는 최악의 모습과 전연 기대치 않았던 측면을 도전적으로 노출시킨 작품인데 우롱하다시피 인간의 생존본능을 천착하고 있다.
눈사태를 만난 남자가 자기 가족을 구하는 대신 순간적이요 본능적으로 자기만 살겠다고 “걸음아 나 살려라”하고 도망간 사실이 가족에게 미치는 다시는 복원할 수 없는 정신적이요 감정적인 관계의 균열을 고약할 정도로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다.
전체적으로 느린 템포와 움직이지 않는 롱테이크 위주의 카메라 그리고 비발디의 매섭게 몰아치는 ‘사계’의 음악과 기하학적인 화면 구성 및 좋은 연기 등이 절대적 조화를 이룬 훌륭한 영화다. 밤의 인공 눈사태를 만드는 폭음소리와 함께 전체적으로 불안한 분위기가 거의 으스스한 공포영화 분위기마저 조성한다.
스웨덴의 부르주아 층인 직장인 토머스(요하네스 바 쿤케)와 그의 현모양처인 에바(리사 로벤 콩실) 그리고 이들의 두 어린 남매 하리(빈센트 베터그렌)와 베라(클라라 베터그렌)는 5일간(영화는 마치 5막의 연극 식으로 진행된다) 알프스의 스키장으로 휴가를 온다. 토머스의 가족은 모범 가족의 모델이다.
스키장에 도착한 이틀째 되는 날 토머스 가족은 식당의 야외 테라스에서 점심을 먹는데 갑자기 눈사태가 나면서 눈이 식당을 덮칠 것처럼 달려 내려온다. 이에 에바는 두 아이를 보호하려는 행동을 취한 반면 토머스는 자기 아이폰과 스키장갑을 들고 식탁에서 달아난다.
그러나 다행히 눈사태는 식당 앞에서 멈춰 인명피해는 없는데 뒤 늦게 다시 식탁으로 돌아온 토머스를 대하는 나머지 가족의 눈길과 태도가 매우 차갑고 경멸적이다. 여기서부터 토머스의 도주를 놓고 토머스와 에바는 계속해 말다툼을 하고 대립하게 되고 그동안 유지돼 오던 가족 간의 우애관계는 치명상을 입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토머스가 자기 행동의 심각성을 제대로 깨닫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설사 그가 자기 잘못을 알고 있다고 해도 그는 이를 대수롭지 않은 하나의 작은 실수로 취급하려고 든다.
남편을 사랑하는 에바는 어떻게 해서든지 남편을 이해하려고 애를 쓰나 별무효과. 그리고 토머스와 에바는 각기 그 사건을 각자의 견해로 보자는 관계 땜질용 합의까지 하나 에바는 남편이 이기적인 괴물이라는 생각에 분노와 치욕과 슬픔에서 빠져 나오질 못한다.    
이런 두 사람의 관계와 느낌과 생각은 토머스 부부가 자기들 방으로 초대한 스키장에서 만난 한 쌍의 즉석 애인과의 저녁식사 장면에서 거의 잔인토록 코믹하게 까밝혀진다. 잘 나가던 식사 중에 갑자기 에바가 남편의 비겁한 행동을 까발린다. 이에 처음에는 아내의 말을 웃어넘기려던 토머스는 급기야는 자기는 도망간 것이 아니라고 대어든다. 여기서 우리는 토머스와 에바의 진정한 화해는 물 건너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어 토머스의 노르웨이 친구 마츠와 그의 20세난 애인 화니가 토머스 부부를 방문하는데 에바의 얘기를 들은 화니는 마츠에게 당신이라면 어떻게 행동했겠느냐고 따지면서 둘 간에 싸움질이 일어난다. 과연 당신 같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영화가 다소 긴데 마지막의 사족 같은 토머스네를 비롯한 관광객들의 귀가장면은 잘랐어야 했다. 루벤 오스트룬드 감독(공동 각본). 성인용. Magnolia. 일부 지역. 31일 개봉.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잔 윅(John Wick)

복수의 화신 킬러 존(키아누 리브스)이 총을 난사하고 있다.

‘돌아온 킬러’ 키아누 리브스의 유혈낭자 복수극


유혈폭력이 난무하고 액션이 달아오른 프라이팬 위에서 콩 튀듯 하는 킬러영화로 마치 살아 있는 그래픽 노블이나 비디오 게임 또는 만화를 보는 것 같다. 눈알이 돌아가는 스타일 좋고 잔인한 액션 속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악인들이 죽어 다소 터무니가 없지만 액션 팬들에겐 그야 말로 연말 선물 같은 영화다.
요즘 많이 나오는 은퇴한 킬러가 어쩔 수 없이 다시 총칼을 집어 드는 얘기로 키아누 리브스(50세라곤 믿어지지 않을 만큼 젊어 보인다)가 착 가라앉은 연기를 하는데 그는 온갖 무기와 육신의 모든 부분을 동원해 마치 춤을 추듯이 아름다운 동작으로 사람을 죽인다.
지하세계에서 가장 두려운 킬러인 존 윅(리브스)은 헬렌(브리젯 모내핸)을 사랑해 살인에서 손을 씻고 헬렌과 결혼해 조용한 삶을 즐긴다. 그러나 헬렌이 병으로 죽고 존은 헬렌이 죽기 전에 자기에게 보낸 선물인 애견과 단 둘이 고독과 슬픔을 달랜다.
그런데 브룩클린을 말아먹는 러시안 마피아(요즘 액션영화의 나쁜 놈들은 다 러시안이다) 두목 비고(미카엘 니크비스트)의 철딱서니 없는 아들 이오세프(알피 알렌)가 두 명의 졸개와 함께 존의 스포츠카를 탈취하고 애견을 죽이면서 존은 이를 갈면서 복수에 나선다.
영화에서 액션 외에 볼만한 것은 약간 환상적일 정도로 이색적인 범죄세계의 모습. 존은 킬러들만 묵는 호텔에 짐을 풀고 살인에 나서는데 이 호텔과 함께 킬러 전문의 나이트클럽을 디자인한 세트가 스타일 좋다. 그리고 윈스턴(이안 맥셰인)이 일종의 대부로 군림하는 이 킬러들의 세계에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어 이를 어기면 잔인한 보복이 따른다.
존이 이오세프를 죽이려고 집요하게 그를 추적하면서 러시안 마피아들이 수 없이 황천으로 가는데 비고는 섹시한 여자 킬러 퍼킨스(아드리앤 팔렉키)를 비롯해 수십명의 졸개들을 풀어 존을 처치하려고 하나 상대가 안 된다. 존이 죽인 사체들은 사체처리 업자가 말끔히 청소해 준다. 
간단한 내용의 영화로 영화의 후반부는 완전히 살육의 액션으로 이어진다. 이 액션이 장관인데 무기와 인체를 총 동원한 유혈의 발레이자 치명적으로 날렵한 쿵푸액션 그리고 스턴트가 눈부시다. 윌렘 다포가 존의 옛 동지 킬러로 나온다. 이것이 히트하면 속편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기자가 얼마 전에 리브스를 만나 “영화를 보면서 사체를 세기 시작하다 포기했는데 도대체 몇 명이나 죽였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70여명은 족히 된다.” 데이빗 레이치 감독. R. Lionsgate. 전지역.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내가 “스칼렛 오하라는 미인은 아니었다”로 시작해 “결국 내일은 또 다른 날이니까”로 끝나는 마가렛 미첼의 영문 페이퍼백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를 읽은 것은 서울의 한국일보 사회부 기자 시절이었다.      
방대하면서도 거센 물결처럼 굽이치는 흐름과 개성이 뚜렷한 인물들 그리고 미 남부를 불사르는 전쟁의 화염 속에 타오르는 뜨거운 사랑과 갈등 등 극적인 얘기를 흥미진진하게 이끌어가는 글 솜씨에 휘말려들어 단숨에 읽어 내려갔던 기억이 난다. 미첼이 35세 때 쓴 이 책은 그의 유일한 글로 퓰리처상을 받았는데 현재도 매년 전 세계서 5만여권이 팔리는 성경 바로 다음의 베스트셀러다.
나는 물론 소설을 비탕으로 만들어 1939년에 나온 영화는 책보다 훨씬 먼저 봤는데 지금까지 모두 열댓 번은 봤을 것이다. 미국 영화는 단 2편뿐으로 하나는 ‘GWTW’요 다른 하나는 나머지 모든 다른 영화들이라는 말이 있다. ’GWTW‘의 뛰어난 장엄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영화는 빅터 플레밍이 감독했지만 진짜 창조자는 제작자 데이빗 O. 셀즈닉이다. 그의 원 맨 쇼와도 같은 것으로 셀즈닉은 엑스트라에서 감독과 주연배우들에 이르기까지 총 1만2,000여명의 인원을 마치 신이 인간을 부리듯 일사불란하게 조종, 위대한 작품을 완성했다. 작품과 감독 및 여우주연상(비비언 리)과 조연상(스칼렛의 하녀 매미 역의 해티 맥대니얼이 흑인 사상 최초로 오스카 수상) 그리고 각본과 촬영 등 총 10개의 오스카상을 탔다.
호걸형의 사업가 렛 버틀러(클라크 게이블)와 농장 ‘트웰브 옥스’의 주인으로 골샌님형의 이상주의자 애슐리 윌크스(레즐리 하워드) 그리고 애슐리의 인간 천사와도 같은 아내 멜라니(올리비아 디 해빌랜드-현재 98세로 파리 거주) 및 목화농장 타라의 주인 제럴드 오하라(토머스 미첼)의 딸로 애슐리를 짝사랑하는 요부형인 스칼렛(비비언 리)이 주인공들.
그러나 ‘GWTW’는 어디까지나 실로 당찬 여인 스칼렛의 얘기다. 스칼렛이야말로 시대를 앞서 가는 여성으로 철딱서니가 없는 것 같으면서도 생존의 교본과도 같은 여자다. 고집불통에 오만하고 독선적이며 불같은 정열적인 성질을 지닌 여자로 어떤 난관과 패배에도 다시 발딱 일어서는 오뚝이와도 같다.
참 사랑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애슐리에게 집념하는 자기를 버리고 떠나가는 남편 렛을 향해 스칼렛은 처음에는 “난 어떻게 살란 말이에요”라며 징징 울어댄다. 이에 렛은 영화사에 길이 남는 한 마디 “솔직히 말해 이 사람아, 난 당신 일에 전연 관심 없어”(Frankly, my dear, I don’t give a damn)를 남기고 스칼렛에게 등을 돌린다.
이렇게 렛으로부터 치욕적인 한방을 얻어맞고도 스칼렛은 결코 굴하지 않는다. 스칼렛은 “전부 다 타라에서 내일 생각할 거야. 그땐 견딜 수 있을 거야. 내일 그를 되찾을 어떤 방안을 생각해야지. 결국 내일은 또 다른 날이니까”라며 앙칼지게 다짐한다. 가공스럽기까지 한 억척스런 낙관론이다. 그런데 당시에는 영화에 ‘댐’이라는 말을 쓸 수 없어 셀즈닉이 검열기관에 500달러의 벌금을 내고 이 단어를 썼고 가톨릭으로부터 금지딱지를 받았다.
영화의 무대는 조지아주 애틀랜타이나 전부 LA 인근 컬버시티에 있던 셀즈닉 스튜디오(이름만 바뀐채 현재도 있다)에서 찍었다. 나는 1987년 12월 이 영화를 취재하기 위해 애틀랜타를 방문, 도착하자마자 관광안내소에 들렀었다. 여직원이 나를 보고 대뜸 “타라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러 왔지요”라며 웃었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모두 제일 먼저 타라의 소재지를 묻는다는 것.
그 때 애틀랜타 도서관의 ‘마가렛 미첼 기념관’을 둘러봤다. 4인치11피트의 단구에 단아한  모습의 미첼의 초상화를 보면서 멜라니가 연상됐다. 어떻게 저렇게 조그마한 여자가 밀물치 듯 힘차고 거대하며 또 정열적인 글을 쓸 수가 있었을까 하고 의아해 했었다. 그런데 미첼은 매우 내성적이요 수줍음을 타는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인플레를 감안하면 현재의 액수로 국내 총수입 16억달러라는 할리웃 사상 최고의 흥행수입을 보유하고 있는 ‘GWTW’의 스칼렛 역에는 당대 모두 내로라하는 32명의 할리웃 스타들이 참가했었다.
캐서린 헵번, 수전 헤이워드, 폴렛 고다드, 진 아서 및 베티 데이비스 등이 스크린 테스트를 했지만 역은 비교적 신인인 비비언 리에게 돌아갔다. 스칼렛이야 말로 표독스러울 정도로 아름답고 개성 있는 얼굴과 작지만 탄력 있는 체구에서 풍겨 나오는 도전성을 지닌 리를 위해 만들어진 역이라고 해도 되겠다. 디 해빌랜드는 리가 지극히 자기 직업에 충실했던 노력파라고 칭찬했었다.  
그런데 미첼은 스칼렛 역에 미리암 합킨스를 그리고 렛 역에는 프랑스 배우 찰스 보이에를 원했다고 한다. 미첼은 클라크 게이블이 렛 역에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영화에서 또 하나 잊지 못할 것이 맥스 스타이너의 음악. 감상적일 만큼 서정적이면서도 모든 것을 휩쓸고 가는 바람처럼 도도한데 음악의 주제는 ‘마이 오운 트루 러브’라는 노래로 만들어졌다.  
올해로 ‘GWTW’ 개봉 75주년을 맞아 워너 홈 비디오는 영화와 함께 각종 부록을 담은 4장의 디스크와 36쪽의 책자 및 뮤직박스와 손수건 등 기념품이 담긴 블루-레이 박스셋(사진 50달러)을 출시했다.    <한국일보  편집위원 /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