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11월 28일 월요일

‘사랑이 이끄는 대로’(Un+Une) 감독 클로드 를루슈




지난 50여년 간 가장 큰 변화는 '남녀관계'


인도판 ‘로미오와 줄리엣’인 ‘줄리엣과 로미오’의 영화음악을 작곡하려고 인도에 간 약혼녀가 있는 프랑스 작곡가 앙트완(마크 뒤자르당)과 인도 주재 프랑스대사(크리스토퍼 램버트)의 부인 안나(엘사 질버스타인)와의 사랑을 코믹터치를 가해 로맨틱하게 그린 ‘사랑이 이끄는 대로’(Un+Une)의 감독인 프랑스의 노장 클로드 를루슈(79)와의 인터뷰가 최근 LA의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본부에서 있었다.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를루슈는 옅은 미소를 지으면서 조용하고 겸손하게 질문에 대답했는데 ‘사랑’에 대해 무척 강조했다. 철학이 있는 예술가의 깊이가 느껴져 감동적인 인터뷰였다. 그는 영어가 서툴러 질버스타인이 통역을 했다. 각기 남성 부정관사와 여성 부정관사를 뜻하는 프랑스어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를루슈가 50년 전에 연출한 사랑의 명화 ‘남과 여’(A Man and a Woman·1966)의 변형이라고 하겠는데 음악 역시 ‘남과 여’의 음악을 작곡한 프란시스 레이(‘러브스토리’의 음악도 작곡)가 지었다.   

-영화 제목이 남성과 여성을 나타내는 부정관사로 감독이 50년 전에 만든 ‘남과 여’를 연상시키는데 왜 이런 제목을 달았는가.
“난 그 영화 이후 50여년 간에 걸친 남녀관계의 변화를 보여주고 싶었다. 지난 50여년 간 가장 큰 변화를 본 것이 남녀관계다. 옛날에는 남자가 여자에 비해 우월했지만 지금은 여자들이 매우 강해졌다. 이젠 여자가 남자 없이도 아이를 혼자 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난 이런 변화를 실제로 개인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운 좋은 사람이다. 다섯 명의 다른 여자로부터 7명의 아이들을 보았으니 말이다. 내게 있어 여자들은 나보다 월등한 존재다. 이 영화는 내 개인적 얘기인 셈이다.”

-영화음악을 ‘남과 여’의 음악을 작곡한 프란시스 레이가 작곡했는데 그와 특별한 관계라도 있는지.
“어떤 면에서 그는 또 다른 나다. 내가 이미지를 만들 듯이 그는 음악을 짓는다. 그동안 우린 함께 35편의 영화에서 일했다. 이 영화는 음악에 대한 오마지이자 프란시스 레이에 대한 오마지이다.”   
안나(왼쪽)와 앙트완은 인도여행을 하면서 사랑에 빠진다.

-50여년 간의 남녀관계의 변화가 어떻게 변화했다고 보는가.
“앙트완은 어떤 면에서 아직도 자기 생각만 하는 이기적인 마초맨(남성 우월주의자)이다. 그는 아직 어른이 덜 된 사람이다. 그동안 남녀 간의 문제는 엄청나게 변해 이젠 남자들이 여자를 무서워한다. 그래서 요즘에는 남녀관계가 쉽지가 않다. 아직 서로 매력은 느낄지 몰라도 상호 신뢰는 사라졌다. 
사람들은 이제 관계에 접어들기 전에 그 것의 안전을 위한 보험부터 생각한다. 그들은 과거처럼 자유롭지 못하다. 그 큰 잘못은 남자에게 있다. 나 자신도 죄의식을 느낀다. 영화에서 안은 앙트완의 아이를 혼자 키우면서도 그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로 인해 앙트완은 진실로 안을 깊이 사랑하게 된다. 앙트완은 안이 매우 강한 불굴의 의지를 지닌 여자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제 젊었을 때보다 여자를 더 잘 이해한다고 생각하는가.
“난 결코 여자를 무서워한 적이 없다. 난 여자를 날이면 날마다 더욱 더 사랑한다. 좌우간 내가 여자들이 얼마나 멋들어진 사람들인가를 이해하는데 평생이 걸렸다. 이 영화는 여자에 대한 오마지이기도 하다.”

-여자로부터 무엇을 배웠는가.       
“난 내가 관계한 여자들로부터 늘 배운다. 매번 학교로 다시 돌아가는 셈이다. 난 이제 함께 시간을 보낼 마지막 여인을 찾았다. 전에는 여자들이 매번 날 다른 여자들에게로 안내하는 일을 했는데 이제 바른 여자를 찾았다고 느낀다. 내가 만드는 러브 스토리는 또 다른 궁극적 러브 스토리를 위한 준비인 셈이다. 나의 러브 스토리는 모두를 위한 것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인터넷으로 인해 러브 스토리가 매우 변질되고 있다. 그 것으로 사람 찾기가 쉬워졌는지는 몰라도 갈수록 올바른 사람을 찾기는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지금 세상은 젊은 사람들에게 보다 나이 먹은 사람들에게 쉬운 때라고 본다.”

-왜 인도로 장소를 정했는가.
“그동안 친구를 비롯한 사람들이 내게 계속해 인도에 가보라고 권유했다. 그들은 나의 사람과 사물을 관찰하는 방식이 인도를 그리기에 아주 적합하다며 꼭 인도에 갈 것을 권유했다. 나도 인도처럼 죽음을 결코 믿지 않는다. 인도는 영원의 나라다. 난 그 점을 다루고 싶었다. 
인도가 또 하나 멋있는 점은 질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고통을 해야 배운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다. 삶에 있어 가장 좋은 학교는 고통이다. 난 내 영화들 중 성공한 것들보다 실패작들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성공이 아니라 실패가 우리를 보다 좋게 만든다. 모든 삶은 다음 삶을 위한 준비라고 생각하는 인도가 마음에 든다. 나도 그런 생각을 지니고 자랐다. 내 영화들도 이런 문제를 고찰하고 있다. 난 단지 세상의 관람자일 뿐이다. 난 내 작품의 인물을 통해 내가 삶으로부터 느낀 점을 얘기하고 있다.”

-러브 스토리란 무엇인가.
“그 것은 두 사람간의 긴 대화다. 둘이 얘기를 나누는 것이 사랑이며 침묵은 러브 스토리의 끝이다. 그래서 두 사람이 계속해 얘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난 말하고 싶어 하는 사람을 좋아하는데 그래서 우디 알렌을 좋아한다.”

-감독과 음악과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음악은 우리의 무의식을 향해 얘기한다. 그리고 우리가 말하지 않는 것과 다룰 수 없는 것에 대해 얘기한다. 내게 음악은 신의 음성이다. 어떤 의미에서 음악은 영원을 뜻한다. 거기엔 죽음이 없다. 나는 의기소침해지거나 기분이 상할 때면 음악을 듣는다. 그 것이 내 첫 번째 약이다. 스포츠인들 중에는 체육관에 들어가기 전에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래서 난 영화를 찍기 전에 음악부터 작곡하고 배우들로 하여금 그것을 듣게 한다. ‘남과 여’를 찍을 때도 세트에 음악을 보내 배우들이 걷고 대화를 나누면서 음악을 듣도록 했다. 내 모든 영화에서 같은 방식을 취한다. 난 음악을 공백을 메우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말하는 하나의 인물로 쓰기 때문에 영화를 찍기 전에 음악부터 녹음한다.”

-그러면 프란시스 레이는 각본에 따라 작곡을 하는가.
“내가 영화 내용을 맨 먼저 얘기해 주는 사람이 레이다. 그리고 그에게 나의 얘기를 음악으로 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어 우린 함께 주제에 관해 일한다. 대작업이다. 우린 다른 방법으로 같은 얘기를 하는 것이다.”

-왜 우리는 사랑에 빠지기를 원하는가.
“그 때가 바로 자신보다 남을 보다 많이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때이기 때문이다. 우린 자신들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남을 사랑하게 되면 다른 곳으로 가면서 보다 관대해지게 된다. 인생에서 가장 훌륭한 선물은 러브 스토리로 사랑이란 연약하고 복잡한 것이나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 것이 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주제다. 사랑은 세상을 지배한다. 그리고 결혼은 사랑의 완전범죄이다.”             

-자신이 훌륭한 아버지가 아니었다고 말했는데 그 것이 무슨 뜻인가.
“예술가가 좋은 아버지가 되기는 쉽지 않다. 영화인은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없다. 정열적인 사람은 좋은 아버지가 되기 힘들다. 정열은 다른 것과 공유되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난 아이들보다 내 작품을 더 소중히 여겼다.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옆으로 달려갔지만 그 것이 해결되면 아이들 곁을 떠났다. 그래서 난 과거 한 영화를 통해 아이들에게 용서를 빌었다. 배우나 감독이란 대중에게 자신들의 생애를 바치는 사람들로 대중이란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괴물이다. 마릴린 몬로가 그 좋은 예다. 따라서 그들은 개인적으로 행복하기가 힘들다. 내가 이제껏 만난 수퍼스타 중 유일하게 행복한 사람은 장-폴 벨몽도다. 그는 아이로 머물러 살고 있는데 아이로 머물러 있으면 개인적 행복을 누릴 수 있으나 그 것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요즘 미국영화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난 어렸을 때 미국영화를 보면서 자랐다. 그리고 미국은 자유의 나라로 난 미국에서 살 수는 없으나 이 나라를 사랑한다. 그런데 요즘 미국의 블락버스트들은 보고 있기가 쉽지 않다. 영화란 인물과 성격에 관한 것인데 미국영화보다는 유럽영화들이 이들을 지키고 있다. 물론 우디 알렌, 스코르세지, 코폴라 등은 다르다.” 

-이 영화는 매우 영적인데 감독도 영적인 사람인가.
“그럴 수 있다. 나는 모든 종교를 존경한다. 그 것은 슬프거나 방황하는 영혼을 지닌 사람들 또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다. 나도 영적인 순간을 가질 때가 있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앨라이드(Allied)


마리안(왼쪽)과 맥스가 카사블랑카 주재 나치 대사 살해 후 도주하고 있다.


사랑하는 아내가 나치의 첩자라고?


할리웃의 황금기에 많이 만들어졌던 스펙타클한 스파이로맨스영화로 두 수퍼스타 브래드 핏과 마리옹 코티야르가 나온 영화치곤 지극히 통상적인 작품이다. 
배우와 세트디자인을 비롯해 외양은 번드르르하나 내부가 부실한 영화로 액션과 스릴 그리고 로맨스를 비롯한 내용이 모두 어디서 많이 본 듯해 기시감이 가득하다. 그리고 얘기도 억지를 부리고 있다. 
액션이나 로맨스가 다 게으를 정도로 미적지근한 영화인데 핏과 코티야르의 화학작용도 미지근하고 연기도 마찬가지. 핏은 어색하기 짝이 없는데 마치 내가 왜 이 영화에 나왔나하고 궁금해 하는 모습이고 오스카 수상자인 프랑스 배우 코티야르도 마치 잘 차려 입은 할리웃의 B급배우가 메이저영화에 나온 것처럼 어수선하다.
1942년 모로코의 카사블랑카. 영국 주둔 캐나다군의 비행사 맥스(핏)가 프랑스인 사업가로 위장하고 모로코주재 나치대사를 암살하기 위해 도착한다. 
그의 파트너는 아름다운 프랑스 여인 레지스탕스요원 마리안(코티야르). 맥스와 마리안은 부부로 행세한다. 그런데 1942년은 영화 ‘카사블랑카’가 개봉된 해이고 영화 내용도 둘이 비슷한 데가 있어 이 영화는 마치 ‘카사블랑카’에 보내는 헌사 같다. 
잘 생긴 두 선남선녀가 만났으니 로맨스가 생길 것이 분명한데도 공연히 처음에는 뜸을 들인다. 영화의 매사가 이런 식으로 서툴다. 맥스는 임무에 매달리는 반면 마리안은 맥스에게 은근짜를 놓는다. 그러나 결국 맥스도 마리안의 매력에 굴복, 둘은 사랑에 빠지면서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자동차 앞좌석에서 뜨거운 정사를 벌인다. 이 때 카메라가 360도 회전촬영을 하는데 이런 기법은 히치콕의 장기이다. 그런데 둘의 정사가 정열적이라기보다 마지못해 하는 식으로 어색하다.
이제 연인 사이가 된 둘은 대사관저에서 열리는 파티에 참석, 임무를 수행하고 도주한다. 그리고 맥스는 마리안에게 함께 런던으로 가자고 제의한다. 여기서 장소는 나치공군의 무차별 폭격이 한창인 런던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맥스와 마리안은 결혼한다. 
만삭의 마리안은 입원한 병원에 폭탄이 떨어지면서 난리가 일어나는 순간 아기를 낳는다. 모든 것을 극적으로 만들려고 몹시도 애를 쓰고 있다. 
맥스와 마리안이 행복하게 살고 있는 어느 날 맥스의 상관 헤슬롭 대령(자레드 해리스)이 맥스에게 청천벽력의 소식을 통보한다. 마리안이 나치의 첩자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 물론 맥스는 이를 부인하면서 펄펄 뛰나 헤슬롭은 맥스에게 마리안을 시험하라면서 그 결과  마리안이 나치 첩자이면 맥스가 직접 죽이라고 명령한다. 맥스는 이 명령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자기 나름대로 마리안의 결백을 밝히려고 적지 프랑스에 까지 들어간다. 그리고 영화는 딴따라 신파극 식으로 끝이 나는데 보기에 어색할 정도로 유치하다.          
스파이 액션 로맨스 영화가 역동성이나 긴장감이 부족하고 사랑의 불길도 뜨뜻미지근하다. 촬영과 의상과 프로덕션 디자인은 좋으나 매우 평범한 보통영화로 눈요기 거리는 된다. 로버트 즈멕키스(‘포레스트 검프’ ‘워크’) 감독. R. Paramount. ★★★(5개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룰즈 돈 어플라이(Rules Don't Apply)


예비스타 말라가 휴즈의 호출을 받고 그의 호텔방에 서 있다.

기인으로 소문난 하워드 휴즈 얘기 영화로 만들어


이 멋없는 제목을 가진 영화는 할리웃의 총아에서 기인이 된 워렌 베이티(79)가 미 역사의 또 다른 기인 하워드 휴즈를 기려 감독(각본 겸)한 것으로 향수 짙은 심각한 로맨틱 코미디다. 장르 구별이 쉽지 않듯이 영화가 무엇을 얘기하려고 하는지 또 어디로 가려고 하는 것인지 몰라 갈팡질팡 하고 있다. 간혹 재미있는 영화라고 하겠다.
제작자요 감독이요 배우인 베이티는 지난 1970년대부터 휴즈 얘기를 영화로 만들려고 구상해 오다 이제야 실행에 옮겼다(그의 마지막 영화는 2001년에 만든 졸작 ‘타운 앤 컨트리’.) 베이티는 휴즈와 함께 두 젊은 남녀 주인공을 내세우긴 했으나 그 어느 연령층에도 어필 할 것 같 지 않은 톤이 고르지 못한 작품이다.
1958년 할리웃. 휴즈영화사에 고용된 신앙심 돈독한 젊고 예쁜 말라 메이브리(릴리 칼린스-가수 폴 칼린스의 딸)가 어머니 루시(베이티의 아내 아넷 베닝)와 함께 이 곳에 도착, 할리웃보울 뒤 언덕 위에 있는 휴즈가 제공한 저택에 머문다. 그런데 말라 외에도 25명의 젊은 여자들이 스타의 꿈을 품고 휴즈와 계약하고 왔다.
말라의 운전사는 잘 생기고 젊음이 넘치는 프랭크 포브스(알덴 에렌라익). 두 순진하고 젊은 남녀는 서로 상대에게 호감을 느끼나 휴즈가 운전사와 예비스타와의 관계를 금지, 서로 눈치를 본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스크린 테스트는 없고 대신 말라와 프랭크의 로맨스가 서서히 무르익는다.
영화가 시작한지 30분쯤 지나서야 휴즈(베이티)가 나타나는데 등장한 뒤에도 어둠 속에 얼굴을 가리면서 흉물스럽게 군다. 그리고 휴즈의 온갖 기행들이 자질구레하니 묘시된다. 마침내 ‘숫처녀 침례교인’ 말라가 베벌리힐즈호텔의 휴즈의 방에 호출된다. 그리고 생전 처음으로 술을 마신 말라가 취해 휴즈에게 성적으로 도전한다.
휴즈가 주인공인지 아니면 말라와 프랭크가 주인공인지 애매모호한데 휴즈가 정면으로 등장하면서 얘기의 핵심을 이루던 말라와 프랭크가 뒷전으로 물러난다. 말라와 프랭크의 인물개발도 미적지근하고 연기도 마찬가지다. 이상한 영화다. 알렉 볼드윈, 매튜 브로데릭, 마틴 쉰 공연. 촬영과 옛 할리웃을 재생한 프로덕션 디자인과 의상 등은 좋다. 영화에서 로맨틱한 분위기 고취용으로 말러의 제5번 교향곡의 아다지에토가 흐르는데 너무 자주 쓴다. PG-13. Fox. ★★1/2(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바닷가의 맨체스터(Manchester by the Sea)


리와 그의 전처 랜디가 가슴 아픈 대화를 나누고 있다.

가족의 죽음으로 고향으로 돌아오는 남자 이야기

보스턴 인근 바닷가의 작은 도시 맨체스터를 무대로 일어나는 가슴 아픈 가족 드라마로 고통과 슬픔과 절망 속에서도 유머와 한 줄기 가느다란 희망을 잃지 않은 심리묘사가 뛰어난 작품이다. 16년 전에 역시 가족얘기인 ‘유 캔 카운트 온 미’로 데뷔한 케네스 로너갠의 세 번째 영화로 로너갠이 쓴 각본이 사실적이요 꾸밈이 없어 인물들의 희로애락에 함께 하게 된다. 
거의 연극풍의 작품인데 로너갠은 서두르지 않고 얘기를 서서히 풀어나가면서 인물들의 성격이나 감정적 모양 그리고 그들이 처한 상황도 심사숙고하듯이 여유를 갖춰 묘사하고 있다. 허구 같지가 않고 마치 내 이웃의 얘기인양 근접감이 강한 준수한 영화다. 
주인공은 보스턴에서 혼자 살면서 아파트 청소부로 일하는 리 챈들러(케이시 애플렉-벤 애플렉의 동생). 리는 침울하고 무뚝뚝하며 자학적인데 잠깐 플래시백으로 리가 자신과 사이가 매우 가까운 형 조(카일 챈들러)와 어린 조카 패트릭과 함께 바다낚시하는 장면이 나오면서 리의 가족의 일부가 소개된다. 
그런데 조가 심장병으로 사망하면서 리는 느닷없이 16세난 패트릭(루카스 헤지스)의 보호자가 된다. 패트릭의 어머니 엘리즈(그레첸 몰)는 일찌감치 가족을 떠났다. 리는 심리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전연 후견인이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나 법적으로 그 노릇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를 계기로 리의 복잡다단한 가족문제들이 그를 둘러싼 소문 식으로 노출되나 리는 모든 면에서 이를 해결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영육이 완전히 무기력해진 사람. 
여기서 리와 그의 전처 랜디(미셸 윌리엄스)와 어린 두 딸과의 행복했던 시절의 모습과 함께 엘리즈의 얘기도 잠깐 소개되는데 이들 보통 사람들의 인물 묘사가 아주 흥미 있고 보는 사람의 관심을 끌도록 그려졌다. 감독의 이런 얘기와 인물을 펼쳐 놓는 솜씨가 주도면밀하면서도 느긋하다. 
그리고 리의 엄청난 비극적 사건이 묘사되면서 리가 왜 자포자기적 인간이 되었는지를 알게 된다. 이런 사람이 틴에이저 조카의 보호자 노릇을 하려니 책임감 때문에 죽을 맛인데 패트릭은 동료 여학생을 비롯해 이 여자 저 여자와 사귀면서 리의 신경을 건드린다. 이런 리와 패트릭의 심리적 감정적 상호관계가 중점적으로 묘사되면서 영화는 코믹한 분위기마저 띤다. 
영화에서 가장 극적이요 강렬한 장면은 아직도 리를 사랑하는 랜디와 리의 해후 장면. 랜디는 리와의 재연결을 바라나 리는 이를 물리치느라 안간힘을 쓴다. 이 때 미셸 윌리엄스가 보여주는 연기가 보는 사람의 가슴을 헤집는다. 
쉰 목소리를 내면서 머뭇거리는 듯한 태도와 안으로 파고드는 자세와 분위기를 발산하는 애플렉의 깊은 연기가 정말로 훌륭하다. 또 헤지스도 잘 한다. 
사족이라 할 것은 패트릭이 어머니 집을 방문, 어머니와 어머니의 새 남편(매튜 브로데릭)과 함께 저녁을 먹는 장면. 영화의 제작자는 맷 데이먼으로 당초 그가 리의 역을 맡을 예정이었으나 스케줄 문제로 애플렉이 맡게 됐다. 성인용. Amazon/Roadside Attractions.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엘르(Elle)


미셸은 겁탈을 당하고도 희생자가 되기를 거부한다.


강간범 기다리는 섹시하고 용감한 여성의 이야기


변태적이요 폭력적이며 세이도매조키스틱한 섹스영화로 얄궂은 성적 흥분감과 쾌감마저 느끼게 만드는 다크 코미디요 스릴러이자 여성 파워의 승전가다. ‘여자의 영화’인 ‘원초적 본능’과 ‘쇼걸즈’를 만든 네덜란드의 폴 베어호벤의 첫 프랑스어 영화로 대담무쌍한 연기파 이자벨 위페르가 기차게 섹시하고 용감한 연기를 보여준다.             
성적 공격의 피해자가 제물이 되기를 거부하고 의연하고 교활하게 이에 대처하면서 오히려 승자가 되는 스타일 멋진 음탕한 영화로 어둡고 폭력적인데도 사뿐하고 고약한 유머를 갖춰 아슬아슬한 재미가 있다. 
파리 교외의 대저택에서 사는 50대의 비디오게임 회사 사장으로 이혼녀인 미셸(위페르)이 집에서 대낮에 복면을 한 남자에게 폭력적인 겁탈을 당한다. 미셸은 공포와 고통에 질려 비명을 내지르는데 과연 이 비명은 반드시 공포와 고통때문 만일까 아니면 쾌감에 내지르는 것일까. 사건 후에도 미셸은 큰 집의 자물쇠만 바꾼 뒤 혼자서 산다. 미셸은 겁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강간범을 다시 기다리는 것일까.  
이어 미셸은 같은 범인에게 겁탈을 또 당한다. 미셸은 그러나 이에 공포와 분노 그리고 성적 흥분을 동시에 느끼면서 결코 피해자가 되기를 거부한다. 그리고 서서히 자기 주변의 남자들을 자신의 희롱의 제물로 삼는다. 
이들은 이웃집의 멋쟁이 유부남 파트릭(로랑 라피트), 유순한 전 남편 리샤르(샤를르 베를링), 미셸의 파트타임 애인으로 미셸의 친구이자 회사 파트너인 안나(안 콩시니)의 남편 로베르(크리스티앙 베르켈) 및 임신한 독설가 애인 조지(알리스 이삭)를 둔 20대의 자기 아들 뱅상(조나스 블로케). 이 중 어느 한 명이 강간범일까.
여성의 본성과 섹스가 가진 막강한 힘을 자학적인 방법으로 발휘하는 여자의 이야기로 중년의 삶의 위기와 성적으로 갈급한 여자의 도도한 심적 육체적 태도를 위페르가 위엄 있고 강인하게 표현한다. 기차게 의기양양하고 약은 연기로 별 표정도 없이 해내는 그의 연기는 가히 상감이다. 
위페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로 ‘피아노 선생’에서도 이런 스타일의 연기를 했었다. 브라바! 으스스한 음악과 따스한 색깔의 촬영도 좋다. 
R. Sony Classics.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이유 없는 반항’




제임스 딘을 영원한 청춘의 우상으로 만들어준 ‘이유 없는 반항’(Rebel without a Cause 1955^사진)을 LA필이 생으로 연주하는 영화음악과 함께 듣고 있자니 이젠 식어버린 10대의 열기와 반항감이 신기루처럼 아득하니 느껴진다.
술 취한 짐(딘)이 경찰서에 찾아온 자기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당신들이 날 찢어 놓고 있어”라고 울부짖는 순간 레너드 로젠만의 재즈기가 섞인 날카로운 현대음악이 짐의 좌절감을 처절하게 부추긴다.
지난 17일 디즈니 컨서트홀에서 무대 위에 설치된 스크린에 ‘이유 없는 반항’이 상영되면서 LA필이 생으로 영화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들었다. 영화 보랴 음악 들으랴 다소 혼란스럽기는 했지만 영화의 내용과 무드를 LA필이 화면 밖으로 끌어내 생체이식적 생생한 사실감을 만끽했다.
청춘과 죽음에 관한 약간 염세주의로 채색된 낭만적인 이 영화의 음악은 ‘배리 린든’과 ‘바운드 포 글로리’ 등의 음악으로 오스카 음악상을 두 차례 받았고 ‘반지의 제왕’의 음악을 작곡한 레너드 로젠만이 지었다.
로젠만은 뉴욕에서 아놀드 쇤버그 밑에서 공부한 현대음악 작곡가. 그는 끼니를 때우기 위해 맨해탄의 칵테일파티에서 피아노를 쳤는데 한  파티에 참석했던 제임스 딘이 로젠만의 연주에 반해 로젠만의 집을 찾은 것을 계기로 클래시컬 음악 작곡가가 영화음악 작곡가가 되었다. 그런데 로젠만은 늘 클래시컬 음악계에서 서자 취급을 받는 것에 대해 한탄했다고 한다.
딘은 어느 날 느닷없이 로젠만의 집을 방문, 그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면서 둘은 친구가 되었고 이어 딘이 ‘에덴의 동쪽’(1955)에 나올 때 로젠만을 엘리아 카잔 감독에게 소개, 이 영화음악을 작곡했다. 로젠만은 딘의 생애 3편의 영화 중 2편의 음악을 작곡했다.
로젠만의 이런 과거에서 알 수 있듯이 ‘이유 없는 반항’의 음악은 그 때까지 할리웃 영화음악의 주도를 이루던 로맨티시즘을 절제하고 20세기 음악을 도입한 것이다. LA필의 연주한 음악은 로맨티시즘과 모더니즘 그리고 재즈가 혼성된 것이었는데 짐과 주디(나탈리 우드)의 로맨스를 에워싸는 우수가 우거진 낭만적 멜로디가 심금을 뜯는다. 그리고 음계를 벗어난 듯이 저돌적인 색소폰 소리는 청춘의 고독과 반항과 분노를 마음껏 고조시키고 있다.
이날 지휘한 할리웃보울 오케스트라 부지휘자 스캇 던은 “로젠만의 음악은 상심하는 낭만성과 음조에서 해방된 아방-가르드 정신이 절묘하게 혼합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 없는 반항’은 폭력의 시라고나 할 정열적인 영화로 10대의 아픔과 절망 그리고 외로움과 반항을 슬프도록 아름답게 그린 멜로드라마다. 나도 이 영화를 10대 때 보면서 딘이 안으로 품었다 발산하는 이유 없는(사실은 이유가 있지) 반항과 그의 고독을 절감했었다. 10대의 경험과 감정에는 국경이 없는 것이다.  
영화는 LA가 무대다. 갓 이사온 짐이 도슨고교(존 마샬 하이와 샌타모니카 하이에서 촬영)에 등교한 첫날 학교 건달패두목 버즈가 휘두르는 잭나이프로 첫 상면 인사를 받은 곳이 LA 뒷동네 할리웃힐스에 있는 그리피스천문대. 이 천문대 옆에는 딘의 흉상이 있다.
버즈의 애인은 앳된 모습의 주디. 버즈는 영화 초반에 치키런(자동차를 절벽 끝을 향해 전속력으로 몰다가 먼저 뛰어내리는 자가 비겁자)의 희생자가 되고 그 후 짐과 그의 애인이 된 주디의 동아리에 들어오는 것이 플레이토(샐 미네오). 짐과 주디는 다 부모와 대화가 안 통하는 소외된 아이들. 플레이토는 홀어머니뿐인데 그나마 어머니는 툭하면 집을 비워 플레이토는 고아나 마찬가지.
이런 고독한 3명이 자기들끼리 가족을 이뤄 버려진 별장에서 소꿉놀이 가족을 구성한다. 짐과  주디의 곁에서 잠이 드는 플레이토에게 주디가 슈베르트의 자장가를 콧노래로 불러주는 장면이 곱다. 짐과 주디의 부모는 도대체 자기들의 아이들이 왜 반항하고 방황하는지를 몰라 어리둥절할 뿐이다. 어떻게 보면 부모와 10대간의 소통의 다리는 늘 끊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딘의 연기야 말로 청춘의 좌절감을 저주 받은 듯이 격렬히 표현하고 있다. 설움 가득한 눈동자, 주저하고 생각에 잠긴 제스처, 수줍은 미소, 낄낄대며 웃고 울고 예민한가하면 진지하고 로맨틱한가하면 은밀하며 아울러 생기와 우울을 함께 머금은 표정이다. 소외된 모든 10대에게 소속감을 주는 매력적인 연기다.
감독(공동각본)은 니콜라스 레이(‘자니 기타’ ‘북경의 55일’). 레이는 영화의 극적 충만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작품의 사건을 하루 안에 묶고 사실감을 위해 로케이션 촬영을 했다.
그런데 영화가 나오자 열렬히 호응한 10대들과 달리 이들의 부모는 “폭력과 광기와 죽음과 음산함으로 가득 찬 모든 부모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기소”라고 들고 일어났었다. 10대들의 바이블이 된 이 영화가 지금에 와서도 유별나게 기억되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딘(개봉 한 달 전 사망)과 우드와 미네오가 모두 비운의 죽음을 맞았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나폴레온 솔로 가다


미소 간 냉전의 기운이 한창이던 1960년대 전 세계 팬들의 열화와 같은 인기를 누렸던 스파이 액션 TV시리즈 ‘맨 프롬 U.N.C.L.E.’(The Man From U.N.C.L.E.)의 미국 스파이 나폴레온 솔로로 나왔던 로버트 본(사진)이 지난 11일 백혈병으로 83세로 타계했다.
그는 생애 70여편의 영화와 여러 TV 작품에 나왔지만 로버트 본 하면 본명보다 더 유명한 것이 나폴레온 솔로다. NBC-TV가 지난 1964~68년 방영한 이 시리즈는 국제적 스파이들로 구성된 첩보기구 U.N.C.L.E.(‘법과 집행을 위한 연합 네트웍 사령부’의 머리글자)에 소속된 솔로와 그의 동료인 소련 스파이 일리아 쿠리아킨(데이빗 매컬럼·83)의 활약을 그린 것.
시리즈가 방영되자 인기가 천정부지로 치솟아 두 배우에게 한 달에 7만여 통의 팬레터가 날아들었고 1965년 비틀즈가 LA를 방문했을 때 본과 매컬럼을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시리즈가 성공을 한 배경에는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히트가 놓여 있다. 냉전 분위기에 걸맞는 ‘007’시리즈가 히트하면서 이 시리즈를 본 따거나 풍자한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솔로’ 시리즈도 그 중 하나다.
이 때 나와 인기를 얻은 또 다른 TV 시리즈로는 흑백 2인조 스파이 빌 코스비와 로버트 컬프가 나온 ‘아이 스파이’와 단 애담스가 실수연발의 스파이 맥스웰 스마트로 나온 ‘겟 스마트’ 등이 있다. 그리고 본드영화를 모방한 다른 영화들로는 딘 마틴 주연의 ‘맷 헬름’ 시리즈와 제임스 코번이 나온 ‘플린트’ 시리즈 등이 있다.
‘본드’ 시리즈가 어른들을 위한 첩보물이라면 ‘솔로’ 시리즈는 아이들 장난처럼 가볍고 경쾌하고 코믹한데 시리즈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자 TV판을 확대한 영화를 무려 8편이나 제작, 개봉해 이 역시 히트했다. 나도 대학생 때 단성사에서 시리즈 중 하나인 ‘내 얼굴을 한 스파이’를 재미있게 본 기억이 난다.
매력적이었던 것은 나폴레온 솔로라는 이름과 본드 역의 션 코너리를 연상시키는 세련되고 멋진 모습의 본, 그리고 본과 노랑머리의 똑똑하고 야무지게 생긴 앳된 얼굴의 매컬럼의 찰떡콤비 및 냉전시대 적지간인 미국과 소련의 스파이가 동지가 돼 세계를 말아먹으려는 악인들을 처치한다는 얘기도 흥밋거리였다.
솔로와 쿠리아킨의 뉴욕 본부는 위장한 양복점으로 둘의 상관은 영국인 웨이벌리. 웨이벌리는 본드의 상관인 M이요 솔로의 적 ‘스러시’는 본드의 적 ‘스펙터’이며 웨이벌리의 비서 겸 교환수는 M의 비서 모니페니인 셈이다. 이 밖에도 솔로가 플레이보이라는 점과 솔로가 쓰는 펜라디오와 단추폭탄을 비롯해 메인 타이틀 전의 액션 시퀀스와 제리 골드스미스의 박력 있는 음악 등 ‘솔로’ 시리즈는 철저히 ‘본드’ 시리즈를 모방하고 있다. ‘본드’ 소설을 쓴 이안 플레밍이 TV 시리즈 시작에 관여했으니 이상할 것도 없다.
그러나 내가 로버트 본을 처음 보고 매력을 느꼈던 것은 ‘솔로’ 영화가 아니고 율 브린너가 주연한 ‘황야의 7인’(1960)이었다. 그는 여기서 일곱 명의 건맨 중 한 명인 리로 나온다. 말끔한 차림의 리는 술에 취한 채 맨 손으로 테이블 위의 파리 세 마리를 잡으려다 두 마리만 잡는다. 그는 이에 “옛날엔 세 마리 다 잡았다”고 자신의 무디어진 손놀림을 자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또 영화에서 멕시칸 산적들의 총을 맞고 죽을 때도 매우 극적으로 죽는다.
본은 이 역으로 골든 글로브 신인상 후보에 올랐었다. 본은 이밖에도 ‘솔로시리즈로 두 차례 TV 시리즈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폴 뉴만이 주연한 영화 ‘젊은 필라델피아인’으로 남우조연상 후보(오스카 조연상 후보작이기도 하다)에 오르는 등 영화와 TV를 합해 총 네 차례 골든 글로브상 후보에 올랐었다. 본의 영화로 잘 알려진 것은 ‘황야의 7인’ 외에 스티브 매퀸이 나온 ‘불릿’과 역시 매퀸이 나온 올스타 캐스트의 ‘타워링’ 등이 있다.
뉴욕에서 모두 배우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본은 어렸을 때부터 연기에 소질이 있었다. 5세 때 어머니가 가르쳐준 대로 ‘햄릿’의 독백 “투 비 오어 낫 투 비”를 극적으로 외웠다. 본이 6세 때 시카고에서 이 독백을 외웠을 때 참석자 중 한 사람이 브로드웨이에서 햄릿 역을 한 유명한 연극과 영화배우 존 배리모어. 배리모어는 본의 독백을 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더 해, 아이야, 더 해”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본은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맹렬한 반전논자로 린든 존슨 대통령을 강력히 비판, 살해위협과 FBI의 뒷조사를 받기도 했다. ‘맨 프롬 U.N.C.L.E.’은 지난해에 솔로로 헨리 캐빌 그리고 쿠리아킨으로 아미 해머가 각기 주연한 동명영화로 만들어졌으나 평과 흥행이 모두 안 좋은 졸작이었다. 온갖 위험과 음모를 물리치고 빗발치듯하는 총알을 피해 동부서주 하던 수퍼 스파이 솔로도 세월의 힘 앞엔 무기력하구나. 페어웰 나폴레온 솔로!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