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4월 1일 화요일

‘달라스 바이어즈 클럽’ 매튜 매코너헤이

“영화 위해 47파운드 감량, 건강엔 문제 없어”




제86회 올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달라스 바이어즈 클럽’으로 남우주연상을 탄 매튜 매코너헤이(44)와의 인터뷰가 이 영화가 토론토 국제영화제에 출품됐을 때인 지난해 9월 토론토에서 있었다. 매코너헤이는 1980년대 실제 인물로 동성애자를 오물 보듯 하던 텍사스의 약물을 즐기는 술꾼 전기공 론 우드러프로 나와 에이즈에 걸린 뒤 오히려 동성애자들을 비롯한 에이즈 환자들을 돕는 구원의 천사 역을 영혼을 불사르듯이 연기한다. 그는 역을 위해 체중을 47파운드나 뺐다. 우드러프는 멕시코에서 사제 에이즈 약을 매입, 미국으로 밀반입한 뒤 자기도 복용하고 다른 에이즈 환자들에게도 팔았는데 이 약 덕분인지 의사의 1개월 시한부 인생이라는 진단과 달리 7년을 더 살다가 1992년 42세로 사망했다. 언제나 봐도 호남인 매코너헤이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인터뷰에 응했는데 텍사스 태생이어서 코맹맹이 액센트가 있는 소리와 함께 두 손으로 활발한 제스처를 써가면서 차근차근히 질문에 답했다. 매우 진지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는데 질문에 대해 심사숙고한 뒤 대답하면서 가끔 유머도 구사했다.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사람 같았는데 쏘아보는 파란 눈동자가 날카로웠다.          

―영화를 위해 체중을 엄청나게 뺀 줄 아는데 그 과정에 대해 말해 달라.
“출연에 응한 뒤 영양사를 만나서 영화에 나오기 전까지 4개월간 그가 마련한 식단대로 음식을 먹었다. 밖에 나가면 내가 좋아하는 스테이크 집을 찾아갈 것 같아 아예 외출을 안 했다. 은둔자처럼 지냈는데 하루에 3.5파운드씩 줄었다. 목표 체중인 135파운드에 이르렀을 때 체중 줄이기를 마쳤는데 내 평균체중이 182파운드니 47파운드를 뺀 것이다. 그러나 건강에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체중이 줄면서 가슴 아래로는 힘이 빠졌지만 그 위로는 오히려 날카로워지더라. 그리고 줄어든 체중 때문에 밤에 잠을 보통 때보다 3시간 덜 자도 됐다.”

―구체적으로 무얼 먹었나.
“생선과 야채를 소량 섭취했다. 다이어트 코크 같은 것도 안 마셨다. 그러니까 사실은 건강식만 먹은 셈이다.”

―영화는 편견적인 사람이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려 마음을 여는 내용인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아주 젊었을 때부터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 공통분모를 찾고 그들과 공존하기 위해 세계여행을 즐겼다. 내가 LA에 간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내게 거기에는 별 이상한 종교도 있고 머리를 파랗게 염색한 사람들이 있으며 또 게이들이 많다고 하더라. 그래서 난 그거 좋을 일이구만이라고 응했다. 론의 경우를 말하자면 그는 편견적이요 상놈이다. 그런 그가 에이즈에 걸리고 나서 자기가 평소 멸시하던 사람과 같은 처지가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를 자신의 과거를 뉘우치는 사람으로 묘사하려고 하지 않았다. 단지 그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여주면 거기서 자연스럽게 그의 구제자로서의 특성이 나타나리라고 생각했다.”

―론 우드러프에 관해 연구할 때 그의 가족의 도움을 받았는가.
“가족이 큰 도움을 주었다. 특히 그의 일기를 보고 론이라는 사람을 잘 알게 됐다. 그는 중1과정만 마친 사람으로 한 번도 무언가를 끝마친 적이 없었다. 그런 그가 에이즈 환자가 되면서 의사들보다 더 그 병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됐고 과학자가 된 것이다. 그는 매우 고독하고 갈 길을 잃었던 사람인데 에이즈 환자가 되면서 비로소 생애 처음으로 무언가 붙잡고 매달릴 일이 생긴 셈이다.” 

―론은 사제 에이즈 약을 팔아 이득을 많이 남겼는가. 그리고 그의 여자관계는 어땠는가.
“론은 결코 구세군이 아니었다. 그는 금과 캐딜락을 좋아했다. 에이즈 약을 사러온 사람이 돈이 모자라면 되돌려 보냈다. 그의 여자관계는 매우 문란했다. 에이즈에 걸리고 나서도 보호책 없이 여자와 섹스를 했는데 당시 에이즈 환자들은 진짜로 모두 함께 환자가 되자는 심정으로 아무 대책도 없이 섹스들을 했었다.”

―당신은 영화에서 완전히 론이 되는 변신을 하는데 그 과정에 대해서 얘기해 달라.
“영화를 만드는 4개월간 난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나도 론이 한 대로 에이즈에 관한 책을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또 연구도 많이 했다. 덕분에 난 매우 과학적인 사람이 됐다. 그리고 그가 완전히 국외자가 됐듯이 나도 나 자신을 고립시켰다. 론이 의사의 말과 달리 7년을 더 산 것은 그의 분노 탓이다. 그것이 그를 보다 활동적으로 만든 삶의 자극제가 된 셈이다.”     

―당신이 두문불출하면서 갈비씨가 되는 것을 보는 아내와 아이들의 반응은 어땠는가. 
“매일 같이 조금씩 줄어들었기 때문에 그들은 별로 심각히 느끼질 못했다. 한 번은 딸이 내게 ‘아빠 목이 왜 기린처럼 길어지고 있어요’라고 물은 적은 있다. 어느 날 벽에 비친 내 실루엣을 보니 해골처럼 보여서 기분이 으스스하더라. 진짜 날 보고 놀란 사람은 내 어머니로 오래간만에 날 본 어머니가 ‘너 어떻게 된 거니’라고 물으셨다. 가족은 전적으로 날 지원했다. 그런데 은둔자가 된다는 것은 당분간은 정신적으로 건강한 일이라고 본다.”

―당신은 모두 여섯 살 미만의 2남1녀를 두고 있는데 가정생활은 어떤가. 아이를 더 가질 생각인가.
사제 에이즈 약을 파는 두 에이즈 환자 파트너인 재렛 레토(왼쪽·
오스카 조연상)와 매튜 매코너헤이.
“아주 즐겁고 좋다. 모두 건강하다. 나는 영화를 찍을 때면 아내와 아이들을 모두 함께 데리고 다닌다. 그리고 좁은 트레일러에서 같이 산다. 좀 불편은 하지만 서로 가깝게 보낼 수 있어 좋다. 아내의 건강을 위해서 아이는 이제 그만 낳으려고 한다.”

―당신은 과거 여러 편의 로맨틱 코미디에 나왔으나 최근 들어 이 영화처럼 극단적인 인물 역을 맡고 있는데 스스로 그러기로 결정한 것인가.
“모두 내 결정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페이퍼 보이’와 ‘킬러 조’ 및 ‘매직 마이크’는 내가 결정했다기보다 내게 주어진 것이다. 난 영화와 영화 사이에 영감을 얻기 위해 어느 정도 휴지기간을 둔다. 최근 내가 맡은 역들은 대부분 반 영웅들인데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규칙을 세우는 사람들이며 또 자기 자신만의 형태를 창조하는 사람들이어서 하기가 아주 즐겁다. 난 상상력이 만개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 상상력을 동원해 반 영웅들을 만화 같은 인물들이 아니라 인간적인 인물들로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당신이 집에서 굶으면서 가족에게 이것이 끝나면 성대한 외식을 대접하겠다고 약속이라도 했는가.
“아니다. 그들은 매일 같이 잘 먹었다. 그런데 그 음식은 내가 요리한 것이다. 난 가족에게 거의 매일처럼 진수성찬을 요리해 대접했는데 난 그저 손가락만 빨았을 뿐이다. 고약한 쾌감이 생기더라. 그러나 재미있었다. 우리 집에서는 요리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론은 결코 좋아할 수 없는 사람인데 당신은 그를 연민에 찬 모습으로 보여주었다.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는 천박한 편견주의자이자 호모를 사갈시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러나 그가 조금이라도 인간적인 점을 가지고 있다면 그에게 연민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에게 접근했다. 그렇다면 그를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내면에 있을 인간성에 기대를 걸었지 그를 도덕적으로 판단하려 하지도 또 옳고 그름을 따지려고 하지도 않았다.”

―체중을 47파운드나 줄이면서 극단적인 역을 한다는 것이 때로 위험하다는 얘기를 들었는가.
“상황이 요구해서 체중을 줄인 것이지 어떤 허영이나 과시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난 론의 사진을 보고 그 즉시 그를 책임 있게 표현하려면 체중을 줄여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니까 내가 체중을 줄인 것은 극단적인 것을 위한 극단적인 행위가 아니었다.”

―이 영화 이후 약이나 의사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라도 했는가.
“난 늘 서양식 처방에 대해 우려를 하고 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처방약에 의존하는데 그 것은 여러 가지 식품 첨가물을 좋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것은 항상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그보다는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과 물과 숨 쉬는 공기에 대해 신경을 보다 더 써야 한다고 본다.”

―당신은 세계여행을 즐긴다고 했는데 아이들에게도 그것을 권장하는가.
“물론이다. 문화는 좋은 교육이다. 아이들이 앞으로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자기와 다른 것과 새로운 것을 사랑할 줄 알고 또 그것에 적응하도록 권장할 것이다. 어린 내 딸은 뉴욕이 수많은 다른 사람들과 색깔이 있어서 좋다고 한다.”

―역을 마치고나서 감정적인 후유증이라도 있었는가.
“영화에 나온 경험은 마치 로데오에서 황소를 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전신이 탈수현상을 겪는 것 같았지만 그것은 기분 좋은 탈진이었다. 모든 역은 다 심한 신체단련 훈련 같지만 난 그것을 즐긴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노아 (Noah)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침략자가 있었으니…


빗속 방주 위에 선 노아(러셀 크로우).
을씨년스럽고 장황하고 지루한 구약성경 얘기다. ‘블랙 스완’을 만든 독창적인 감각을 지닌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작품인데 대하 서사적 규모 속에 노아라는 인간의 개인적 고뇌와 궁극적 구제라는 매우 심각한 내용을 담았으나 둘이 잘 어울리지가 못한다.
공상과학 액션모험영화 같기까지 한 작품으로 사랑의 얘기이자 가족영화요 또 전쟁 액션영화이자 재난영화인데 이런 여러 장르가 조합이 잘 안 돼 따로 놀고 있다. 감독은 짧은 내용의 노아의 얘기를 영화를 위해 자의적으로 확대했는데(상영시간 139분) 얘기가 그렇게 보는 사람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노아 외에도 그의 할아버지(앤소니 힙킨스)와 아내(제니퍼 카넬리)와 세 아들 그리고 첫째 며느리(엠마 왓슨)를 비롯해 가상 인물인 노아의 적인 타부족 장군 투발케인(레이 윈스턴) 등 여러 사람이 나오는데 인물 개발이 아주 약하다. 그리고 연기도 노아 역의 러셀 크로우를 제외하곤 덤덤하다. 카인 이후의 황량한 지구와 그 후의 홍수영화여서 화면이 시퍼렇게 추위를 먹었다.
노아의 세상은 강한 부족이 약한 부족을 정복하는 양육강식의 살벌한 땅으로 노아와 그의 가족은 창조주가 만든 짐승을 안 잡아먹고 채식을 한다. 그런데 노아가 세상이 물에 잠기는 꿈을 꾸면서 창조주의 뜻에 따라 자기 가족과 세상의 모든 짐승과 조류가 피신할 거대한 방주를 짓는다. 
물론 주위 사람들은 이를 비웃는데 막상 비가 쏟아지자 투발케인은 자기 전사들을 이끌고 방주에 들어가기 위해 이를 공격한다. 투발케인은 특히 노아의 둘째 아들로 아버지에게 반항적인 햄(로간 러만)을 자기편으로 만들려고 유혹한다. 영화는 노아와 햄의 부자간 갈등에 적당한 무게를 주고 있다.
방주에 들어가는 짐승들과 홍수 장면 등 컴퓨터 특수효과를 쓴 장면들도 별로 경탄스럽지가 못한데 하늘에서 지구로 쫓겨난 천사라는 거대한 돌로 만든 생명체와도 같은 물체가 내용에 전연 어울리지가 않는다. 재난영화치곤 굉장히 답답하고 부담감 주는 영화다. 
PG-13. Paramount.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레이드 2 (Raid 2)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는 `유혈 액션'  


장도리를 무기로 쓰는 갱두목 베조의 여자 킬러가 전철 안에서 일본 
야쿠자들을 처치하고 있다.

길길이 날뛰는 폭력이 빗발치듯 작렬하고 피가 폭우처럼 쏟아져 내리는 2011년 인도네시아산 액션 스릴러 ‘레이드’의 속편이다. 보지 않고는 믿을 수가 없는 잔인무도하고 속도감 빠르고 에너지 충만한 영화로 사체가 즐비하다. 뼈 부서지는 소리와 비명, 총격소리와 흩뿌려지는 선혈이 화면을 채우면서 거의 웃음이 나올 정도로 지나친 액션이 광란의 피의 발레를 추는데 이에 비하면 재키 챈의 무술영화는 아이들 장난이고 타란티노의 영화도 비린내만 피울 정도다.
동원된 무기를 보면 야구 배트와 공, 장도리와 곡괭이, 긴 칼과 단도와 손에 감아쥐는 톱니 칼, 몽둥이와 빗자루. 깨진 병과 뜨거운 구이용 철판 그리고 권총과 엽총과 장총 및 주먹과 발 등으로 이런 무기에 의해 적어도 100여명이 죽어 넘어진다.
내 평생 이렇게 아름다울 정도로 가혹하고 폭력적인 영화는 처음 보는데 약간 타케시 키타노의 영화를 닮은 데가 있다. 특히 주연 배우 이코 우와이스가 공동으로 안무한 대담무쌍한 손과 발을 쓰는 무술액션 신은 정말로 장관이다. 
신참 형사 라마(우와이스)가 경찰 내사반의 반장에 의해 부패한 정치가와 경찰 간부 등과 연루된 자카르타의 막강한 갱 두목 방군(티오 파쿠소데와의 착 가라앉은 연기가 돋보인다)의 조직으로 침투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이를 위해 라마는 방군의 오만불손한 아들 우콕(아리핀 푸트라의 표독스런 연기도 좋다)에게 접근하기 위해 우콕이 수감된 교도소에 죄수로 들어간다.
교도소 내 좁은 변소에서 벌어지는 라마 대 수십명의 우콕의 졸개들 간의 격투와 비가 내린 후 진흙탕이 된 교도소 마당에서 벌어지는 우콕의 일당과 그의 라이벌 일당 간의 치명적인 머드 레슬링 격투가 박력 있다. 진흙탕 싸움에서 우콕의 생명을 구해준 라마는 우콕의 친구가 되고 그로부터 2년 후 출소한 라마는 방군의 일원이 된다.
방군의 조직은 일본인 갱 두목 고토(케니치 엔도)의 조직과 과거 10년간 평화공존을 하면서 자카르타를 말아먹고 있다. 방군을 뒤에서 봐주는 것은 부패 정치인과 경찰. 그런데 이 둘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자기 터전을 확보하려는 아랍계 피가 섞인 갱스터 베조(알렉스 압바드)와 아버지의 권력을 차지하려는 성질 급한 우콕이 손을 잡으면서 갱전쟁이 일어난다.
액션 신 가운데 가장 멋있는 것이 황금색 가죽점퍼에 흰색 치마를 입고 창백한 얼굴에 선글라스를 낀 가녀린 여자(줄리 에스텔)가 전철 안에서 양손에 든 장도리를 써 10명에 가까운 단도를 든 야쿠자들을 처치하는 장면. 장도리에 처참히 당한 야쿠자들의 몸에서 터져 나오는 선혈이 하얀 치마 위에 꽃망울을 터뜨린다.
이와 함께 도주와 추격의 절정을 이루는 달리는 자동차 안의 좁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격투를 찍은 공중촬영과 불법 도색영화 촬영장과 포도주 저장소와 국수집 그리고 흐릿한 조명 속의 클럽 주방과 창고 및 좁은 복도에서 치러지는 사투 등도 볼만하다. 상영시간 2시간반동안 거의 쉬지 않고 숨 가쁘게 벌어지는 격투에서 무수히 얻어터지고 온 몸에 칼을 맞고도 다시 오뚝이처럼 발딱 발딱 일어서는 라마는 분명 불사신이다.  
액션위주의 영화여서 플롯이 때로 이치에 닿지가 않지만 방군과 우콕의 부자간 알력을 그린 드라마 부분은 시종일관 계속되는 액션에 적당한 쉼표 구실을 한다. 액션영화 치곤 인물개발과 연기도 좋고 특히 재빠른 촬영과 편집과 박동감 있는 음악이 매우 좋다. 감독은 전편에 이어 웨일즈 태생의 가레스 에반스. 
R. Sony Classics. 아크라이트, 센추리15, 그로브, 다운타운 리갈. ★★★★½(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성경영화



2014년은 할리웃 사상 보기 드물게 성경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들이 하늘에서 만나가 쏟아져 내리는 듯한 해로 기록될 것 같다. 제일 먼저 2월에 나온 예수의 얘기인 ‘신의 아들’이 히트하면서 지금까지 총 5,600만달러의 수입을 냈고 21일에 개봉된 인디영화 ‘신은 죽지 않았다’가 개봉 주말 사흘간 뜻밖의 920만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이어 28일에는 노아의 얘기를 다룬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노아’(영화평 참조)가 개봉됐고 4월16일에는 ‘천국은 실재한다’가 개봉된다. 그렉 키니어가 주연하는 이 영화는 수술 중 가사상태에서 천국을 본 소년의 얘기다. 그리고 12월에는 리들리 스캇이 감독한 입체영화 ‘엑소더스’가 나온다. 모세의 출애굽기를 다룬 ‘엑소더스’는 찰턴 헤스턴이 모세로 나온 ‘십계’와 달리 모세(크리스천 베일-사진)를 투사로 다룬 ‘글래디어터’ 스타일의 대규모 액션영화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메이저 영화 외에도 앞으로 10여편의 아트하우스용 기독교 영화가 나올 예정이다. 그리고 윌 스미스는 현재 카인과 아벨의 얘기를 각본으로 구상 중이고 워너브라더스는 본디오 빌라도의 얘기를 또 소니는 다윗과 골리앗의 얘기를 영화로 구상 중이다.
이렇게 갑자기 많은 성경영화가 쏟아져 나오는 것은 결코 할리웃이 새삼 신의 계시를 받아서라기보다 수익성 때문이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사자굴에라도 들어가는 할리웃이 흥행수입의 큰 원천이 될 수 있는 많은 기독교인들의 관객으로서의 잠재적 가능성을 뒤늦게 포착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성경영화는 성경내용에 충실히 만들면 신도들의 호응을 받아 히트를 하지만 그 내용이 신도들의 비위를 건드렸다가는 흥행서 망하는 경우가 많다. ‘성의’와 ‘십계’와 ‘벤-허’ 및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멜 깁슨이 감독해 흥행수입 5억4,000만달러의 대박을 터뜨린 ‘예수의 수난’이 전자의 경우. 반면 예수(윌렘 다포)가 십자가에서 내려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해 보통 남자처럼 사는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이 후자의 경우다.
성경영화가 나올 때마다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기독교인들의 반응이다. 어차피 오락성을 감안해야 하는 할리웃으로선 성경내용을 그대로 답습하기보다는 그것을 확대 해석해 만들게 마련이다. 러셀 크로우가 주연하는 ‘노아’가 개봉 이전에 보수 기독교파의 강한 반발을 산 것도 이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 성경에 없는 내용이 많은데다가(하기야 창세기 6장에서 10장까지의 노아의 짧은 얘기를 2시간20분짜리 영화로 만들려면 확대 해석이 불가피하다) 노아에 대한 해석도 다른데 이에 대해 기독교인들이 “그런 얘기가 성경에 어디 있느냐”고 따지고 들었던 것. 그래서 영화의 배급사인 패라마운트는 광고에 ‘이 영화는 성경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것’이라는 단서를 삽입했고 다른 영화들과 달리 비평가들의 평 대신 뒤 늦게 영화를 본 기독교단체들의 찬사를 대문짝만하게 싣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노아의 얘기가 있는 코란을 믿는 무슬림 국가들인 바레인, 아랍 에미리트 및 인도네시아 등은 아예 ‘노아’의 자국 내 상영금치 조치를 취했다. 며칠 전 인터뷰에서 만난 아로노프스키는 이에 대해 “내 영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영화도 보기 전에 소문만 듣고 반대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런데 ‘노아’는 미국보다 먼저 개봉된 한국에서 현재 히트 중인데 아로노프스키는 인터뷰 후 나와 사진을 찍을 때 “내 영화 당신 나라에서 흥행이 잘 되고 있어 고맙다”며 미소를 지었다.
노아의 얘기는 과거에 존 휴스턴이 감독하고 그가 하나님과 노아로까지 나온 창세기를 다룬 ‘바이블’(1966)에서 묘사된 적이 있다. 또 2007년에는 스티브 카렐이 주연한 현대판 코미디 ‘전지전능한 이반’으로 만들어졌으나 내용이 불경스러워 흥행서 실패했다.
성경영화로서 기독교 측의 가장 격한 반발을 받은 것이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1988)이다. 마틴 스코르세지 감독이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이 영화는 그 내용 때문에 상영극장 앞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몰로토프 칵테일 습격까지 받았으며 스코르세지는 살해위협까지 받았다. 흥행수입은 달랑 840만달러였다. 나도 영화에 대해 호평을 했다가 한국인 기독교 신자들로부터 질책을 받았다.
기독교도들은 할리웃을 도덕적 시궁창으로 보고 있어 일단 성경영화를 만든다는 소식만 나오면 신경을 곤두세우게 마련이다. 할리웃에서 성경영화가 계속해 성공하려면 사탕발림 식의 교언영색이 아니라 기독교인들의 마음에 진심으로 접근하는 성실한 자세가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하고 있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