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4년 12월 5일 금요일

‘케익’ 제니퍼 애니스턴



“유머야 말로 고통스런 삶에 가장 좋은 처방”


2015년 1월에 개봉될 드라마‘케익’(Cake)에서 교통사고로 어린 아들을 잃고 온 몸에 상처를 입은 채 영육으로 고통하는 이혼녀 클레어로 나오는 제니퍼 애니스턴(45)과의 인터뷰가 최근 베벌리힐스의 포 시즌스 호텔에서 있었다.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애니스턴은 탄력 있는 몸에서 윤기가 났는데 갈색 긴 머리로 가린 얼굴이 예뻤다. 아주 명랑하고 재치가 넘쳤는데 파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 손으로 제스처를 써가면서 솔직하게 질문에 대답했다.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나 가벼운 드라마로 잘 알려진 애니스턴이 시상시즌을 맞아 심각한 배우로 인정받고자 시도한 작품인데 이 날도 영화 속 인물처럼 짙은 화장도 안 하고 평범한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어떻게 이 영화에 나왔는가.
“매니저로부터 각본을 받아 읽으면서 강한 충격을 받고 클레어 역을 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역을 따내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다. 그리고 감독 대니얼 반즈를 만나 역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하겠으며 결코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당신은 평소 명랑한 사람으로 알려졌는데 이 같은 고통스런 역을 육체적 정신적으로 어떻게 처리할 수 있었는가.
“배우란 어떤 고통스런 역도 할 수 있는 무기를 지녔다. 단지 그것을 정직하게 해내는 것이 문제다. 난 평소 클레어처럼 세상에서 고립돼 매우 어둡고 분노하는 사람들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과 많은 얘기를 나눴다. 나 자신에서 탈피해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의 역을 한다는 것은 배우로선 꿈과도 같은 일이다.”

-당신은 평소 고통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유머로 대처한다. 난 각본을 읽으면서 클레어가 고통 속에서도 신랄한 유머를 지닌 여자로 느껴 깔깔대고 웃었다. 고통과 정반대인 유머야 말로 고통에 대한 가장 좋은 처방이다.”

-감사의 계절이다. 당신은 무엇에 대해 감사하는가.
“모든 것이다.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감사한다. 그리고 이 영화에 나온 것에 감사한다.”

-당신은 분노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는가.
“분노를 느낄 때마다 잠시 멈춘다. 난 소리를 지르는 스타일이라기보다 스스로를 통제할 줄 아는 사람이다.”

-무엇이 당신을 뿔나게 하는가.
“거짓말쟁이와 꾸민 이야기 따위들이다.”

-당신은 영화에서 케익을 만드는데 좋아하는 케익은 무엇인가.
클레어는 교통사고 후 영육이 심한 고통에 시달린다.
“홍당무 케익이다.”

-크리스마스에 어떤 선물을 보내는가.
“지금이야 말로 모자라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보낼 때다. 난 손으로 크리스마스 트리용 장식을 만들어 선물로 친구들에게 보낸다.”

-실제 삶에서도 클레어처럼 귀중한 사람을 잃은 적이 있는가.
“그렇다. 가까운 사람들을 죽음으로 잃었다. 다시는 그 사람들을 볼 수가 없다는 것은 지극히 고통스런 일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손실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우리를 인간되게 하는 것이다.”

-당신은 감독과 제작자이기도 한데 연기와 다른 점이 무엇인가.
“난 질서와 상호교통을 좋아한다. 배우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나 같으면 이 장면을 다르게 찍을 텐데 하고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리고 또 나 같으면 얘기를 다르게 서술할 텐데 하고 느낄 때가 있다. 그리고 자기 비전을 창조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아주 재미있다.”

-당신은 갈수록 젊어지는데 피부에서 광채마저 난다. 비결이 무엇인가.
“물을 많이 마시고 잠을 잘 자며 야채를 비롯해 좋은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리스인의 피를 물려받은 것도 큰 도움이 된다.”

-당신의 약혼자인 배우 저스틴 테루가 과거 당신의 애인들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그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 정직하고 친절하며 관대하며 깊은 동정심을 지닌 사람이다. 그리고 일에 열광하며 짓궂은 유머감각이 넘쳐흐른다. 하루 종일 얘기할 수 있다. 그는 나의 최고의 친구다”

-결혼할 생각인가.
“그럴 계획이나 서두를 것은 없다.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우리의 삶을 살고 있다. 결혼할 때가 오면 내가 직접 여러분들에게 통보할 것이다.”

-아이를 가질 생각인가. 
“그렇다.”

-새 해가 다가오는데 연초에 한 해 할 일에 대해 결심이라도 하는가.
“어차피 지키지도 못할 것을 결심하지 않는다. 새 해에 내가 기대하는 것은 기대치 못한 일들이다.”

-당신의 인기 TV 프로 ‘프렌즈’에서 공연한 배우들과 계속해 교분을 나누는가.
“그들은 나의 영원한 친구들이다. 그 10년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따라서 그들은 내게 매우 중요한 사람들이다. 우린 정말 재미있게 지냈다. 그것에 대해 진실로 감사한다. 나와 코트니 칵스와 리사 쿠드로는 함께 자란 가족 같아서 정기적으로 만나 저녁을 먹는다.”

-당신은 누구로부터 영감을 얻는가.
“내 친구들인 여배우들이다. 그 중 하나는 셜리 맥클레인이다.”

-당신은 코미디 ‘호러블 보스 2’에도 나왔는데 당신은 어떤 보스인가.
“난 아주 좋은 보스다. 난 소리를 지르지 않는 공평한 보스다.”

-역을 위해 어떤 연구를 했는가.
“보트사고로 다리가 절단 난 친구가 있다. 그는 스턴트우먼으로 30차례 이상 수술을 했을 것이고 또 진통제 약물에도 중독됐다. 그의 얘기를 듣는 것이 큰 도움이 됐다. 그를 통해 끊임없이 고통하는 사람에 대해 다소나마 이해하게 됐다. 그리고 약물에 관해 의사들에게도 자문을 구했다. 우리가 진실로 확실히 하고자 원한 것은 어떻게 하면 클레어의 얘기를 솔직하게 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이 영화를 당신의 ‘몬스터즈 볼’(할리 베리의 오스카 주연상 수상작)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극히 감동적이요, 나를 겸손하게 만드는 비유다. 그 영화는 정말로 훌륭한 영화다.”

-곧 개봉될 당신의 다음 영화 ‘쉬즈 퍼니 댓 웨이’는 어떤 영화인가.
“피터 보그다노비치가 감독한 코미디로 콜걸의 인생을 바꾸어주려고 노력하는 브로드웨이 감독의 얘기인데 난 잠깐 나왔다 사라진다. 주연은 오웬 윌슨과 캐스린 한이다.”

-당신은 역을 위해 체중을 늘렸는가.
“2달간 운동하지 않고 먹기만 한 결과다. 특별히 그래야겠다고 결정해서 된 일이 아니고 난 원래 운동을 안 하면 살이 찐다. 10파운드가 늘었는데 쉽게 빠지질 않는다.”

-당신과 저스틴 테루는 모두 배우로서 바쁜데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는가.
“우리는 취미가 서로 비슷하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인간으로서 또 직업인으로서 존경하고 있다.”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와일드 (Wild)

배낭을 진 쉐릴(리스 위더스푼)이 1,100마일의 산행길에 나서고 있다.

1,100마일 산행을 통해 육체와 영혼의 힐링…


산행은 육체적 건강에 좋을 뿐만 아니라 쇠약한 영혼의 건강마저 회복시켜 준다. 방탕하고 방향감각을 잃은 젊은 여자가 무작정 길고 긴 산행에 나서면서 자신의 영혼을 구제하는 인간승리의 아찔한 이야기다.
생전 산행이라곤 해 본적이 없는 쉐릴 스트레이드가 26세에 매우 가깝던 어머니를 잃은 뒤 멕시코 국경지대서부터 오리건에 이르기까지 1,100마일의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을 달랑 배낭 하나 지고 혼자 걸은 사실을 적은 베스트셀러가 원작이다.
자연을 배경으로 한 모험영화이자 개인의 영혼 구제 얘기이면서 아울러 가족 드라마이기도 한데 가슴을 에이 듯 사실적이자 거칠고 고통스러우면서도 험난한 역경에 도전하면서 자신을 재발견하려는 한 인간의 강인한 정신력에 희망과 환희를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영화 간간이 유머가 곁들여져 힘든 여정에 쉼표 구실을 하는데 특히 영육을 완전히 탈바꿈한 리스 위더스푼의 연기가 압도적이다.
영화는 쉐릴(위더스푼)이 산행의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부터 시작되면서 중간 중간 플래시백으로 그의 개인생활과 어머니 바비(로라 던)와의 관계가 묘사된다. 첫 장면부터 쉐릴이 겪어야 하는 좌절감이 사실 그대로 발톱 빠지듯이 아프게 그려지면서 쉐릴이 내뱉는 “Xuck you”가 산중에 메아리친다.
이어 플래시백으로 쉐릴과 바비와의 가까웠던 관계와 함께 쉐릴의 방종한 개인생활과 자기를 극진히 사랑하는 남편(토머스 새도스키)과의 평탄치 못한 결혼생활이 묘사되면서 쉐릴의 산행 선택의 배경 설명을 한다.
바비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혼자 딸을 키우면서도 삶의 희열에 가득 찬 여자인데 이렇게 자기를 사랑하던 바비가 갑자기 병으로 사망하면서 쉐릴은 완전히 삶의 방향타를 잃는다. 그리고 쉐릴은 탈출구가 없는 따분한 일상을 견디지 못해 헤로인과 난잡한 섹스로 날을 보낸다.
쉐릴은 바비가 숨진 뒤 거의 즉흥적으로 산행을 결심하는데 등산이라곤 해 본적이 없는 그가 모텔 방에서 산행준비를 하는 과정이 웃긴다. 그리고 이윽고 바비는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한 도전으로 산행에 나선다.
그런 결정을 후회하기가 한두 번이 아니지만 쉐릴은 걷고 또 걷는데 그 모습이 마치 여자 예수 같다. 산행 중에 갖가지 짐승과 악천후 또 짐승처럼 겁나는 인간도 만나면서 위험한 지경에도 빠지지만 쉐릴은 이를 악물고 목적지를 향해 간다.
그가 겪는 악조건과 고행이 절실하게 느껴지는데 이는 위더스푼의 모든 것을 벗어던진 도전적이자 통절한 연기 탓이다(뉴욕에서 검문하는 경찰에게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말한 경박함을 뉘우치려는 듯이).
쉐릴의 인간성 회복의 갈망이 남의 것처럼 여겨지지 않아 가슴에 훈기가 감도는데 위더스푼의 연기(오스카상 후보감이다)와 함께 던의 생기발랄하면서도 천진난만한 연기도 아주 좋다. 뜨거운 사막과 장엄한 산을 비롯해 다양한 경치를 찍은 촬영도 좋다. 다소 에피소드 식이어서 맥이 끊어지고 조금만 더 거칠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훌륭한 영화다. 감독은 올해 오스카 남자 주·조연상을 탄 ‘달라스 바이어즈 클럽’을 만든 캐나다인 장-마르크 발레. R. Fox Searchlight. 아크라이트(선셋과 바인)와 랜드마크(피코와 웨스트우드). ★★★★(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스틸 앨리스 (Still Alice)

앨리스(줄리안 모어)가 기억상실에 망연자실하고 있다.

알츠하이머 걸린 언어학자의 의연한 삶


50세에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언어학자 앨리스는 비록 자기가 사랑하는 언어들을 급속히 잃어버리지만 여전히 앨리스다. 불치의 병에 시달리면서도 이를 용감하게 수용하는 앨리스를 보면서 가슴이 메어지는 아픔을 그와 함께 느끼게 되는데 영화가 결코 감상적이거나 심적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는 것은 순전히 앨리스 역의 줄리안 모어의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민감하고 아름다운 연기 때문이다. 절대적 통제력을 행사하는 감탄할 연기로 오스카상 후보감이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여자가 이 질병의 공포와 막강한 파괴력에 가족과 함께 대응하는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50세의 뉴요커로 컬럼비아 대학에서 언어학을 가르치는 뛰어난 지능의 소유자 앨리스 하울랜드(모어). 앨리스는 자기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남편 존(알렉 볼드윈)과 장성한 세 남매 애나(케이트 보스워드)와 탐(헌터 패리쉬)과 LA에 사는 배우 지망생인 리디아(크리스튼 스튜어트)를 둔 남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앨리스가 갑자기 강의를 하면서 단어를 잊어버리고 또 방향감각을 잃어버린다. 앨리스는 처음에는 이를 숨기다가 상태가 악화하자 남편과 함께 의사를 찾아 간다. 진단은 50세의 사람에게는 극히 드문 경우인 알츠하이머병. 의사는 이 병이 유전된 것이라며 세 자녀가 이 병에 걸릴 확률이 50%라고 폭탄선언을 한다. 그리고 검사 결과 셋 중 하나가 양성반응으로 나타난다.
영화는 앨리스가 급속도로 악화하는 병에 대해 두려워하고 절망하고 고통하면서도 결코 자신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의연히 이에 대처하면서 삶을 진행해 가는 과정과 그의 가족의 단결된  사랑을 차분하고 감동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질병에 관한 영화인데도 전연 감상적이거나 볼썽사납지가 않은 것은 두 감독 리처드 글래처와 워쉬 웨스트모어랜드(베스트셀러를 공동 각색)의 신중하고 착 가라 앉은 연출과 모어의 확실하면서도 빈 틈 없는 연기 탓이다. 그의 얼굴 표정과 자기 처지와 상황에 대한 반응을 보여주는 동작 그리고 내면의 지도를 섬세하게 그려 표현한 연기는 경이로울 정도다.
참담하고 어두운 내용이나 절망을 허락지 않으면서 유머마저 곁들였다. 자살하려는 사람의 행동을 이렇게 처연히 아름다우면서도 유머가 있게 그린 영화는 처음 봤다. 앨리스가 만약의 경우를 위해 컴퓨터에 남겨 놓은 자살지침을 이행하려는 장면이다. 그리고 앨리스가 알츠하이머 회의에 연사로 참석해 하는 연설도 심금을 울린다. PG-13. Sony Classics. 아크라이트와 랜드마크. ★★★1/2(5개 만점)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행진은 계속된다




역사는 반복되는가. 1965년 3월21일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흑인 투표권 확보를 위해 민권운동가들 및 지지자들과 함께 닷새에 걸쳐 앨라배마주 셀마에서부터 몬고메리까지 행진한 지 반세기가 지났다.
그로부터 50년 뒤인 2014년 11월29일 전미 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 회원들과 지지자들이 미주리주 퍼거슨에서부터 제퍼슨시티 주지사 관저까지 7일간의 120마일에 걸친 ‘정의를 위한 행진’을 시작했다.
이 행진은 퍼거슨의 백인경관 대럴 윌슨의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 총기 살해사건을 계기로 백인 경관들의 흑인들에 대한 공권력 남용을 항의하는 걸음이다. NAACP의 행진은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행진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 같은데 이야 말로 역사의 반추라고 하겠다.
흑인이 대통령이 됐지만 미국에서는 아직도 흑백 차별이 횡행하고 있다. 특히 백인 경찰의 흑인에 대한 공권력 남용이 문제인데 최근 유엔 고문방지위원회가 미국 경찰의 흑인 등 소수 인종 민족을 상대로 한 과잉대응 등을 지적하는 공식 보고서를 채택했을 정도다.
오바마는 최근 퍼거슨 사태를 계기로 경찰의 과잉대응 논란이 빚어진 가운데 경찰 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밝혔지만 이 사태에 대해 직접적인 논평은 삼가고 있다. 오는 크리스마스에 개봉될 셀마-몬고메리 행진에 관한 드라마 ‘셀마’(Selma)에서 린든 존슨 대통령이 마틴 루터 킹 주니어에게  말했듯이 “당신은 민권운동가이지만 나는 정치가”이기 때문이다.
‘셀마’는 절묘하게 현실과 타이밍을 맞춰 나온다. 난 얼마 전에 이 영화를 보면서 “야 반세기가 지났는데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구나”하면서 참담한 기운에 젖었었다. 그리고 도대체 인종차별 문제는 그동안 과연 얼마나 또 무엇이 달라졌는가 하고 궁금해 했다.
퍼거슨시는 뒤늦게 흑인 경관을 더 많이 고용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미 남부에 뿌리 깊이 박힌 흑백차별 관념이 그것으로 해결될지 의문이다. 이 번 퍼거슨-제퍼슨시티 행진에 관한 반응을 보니 많은 백인들이 행진자들을 ‘깡패들’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미국은 총으로 세운 나라여서 웨스턴에서 잘 볼 수 있듯이 총 잘 쏘는 사람이 영웅이다. 존 웨인이 그 대표적 인물로 보통 이들은 정의 구현자들이다. 대럴 윌슨도 자신을 정의 구현자라고 생각했음직한 데 웨스턴의 영웅들은 윌슨과는 달리 총 없는 사람은 쏴 죽이지 않았다.
나는 이번 퍼거슨 사건을 보면서 미국의 정의가 총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품었다. 결국 정의란 힘 센 자들에 의해 정의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니 늘 골탕을 먹는 것이 소위 소수계들이다.
브래드 핏과 오프라 윈프리(출연 검) 등이 제작한 ‘셀마’(사진)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동지들과 함께 셀마-몬고메리 행진을 준비하는 과정과 실제 행진 그리고 그의 사적 생활을 고루 균형 있게 그린 감동적인 영화다.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인데도 가슴이 뭉클해지고 영혼이 고양되는 스릴과 감격을 느끼게 된다.
미국은 1964년에 남부의 흑백 차별을 철폐하는 법을 통과시켰지만 앨라배마 같은 주에서는 흑인들이 백인들의 온갖 방해공작과 탄압으로 유권자 등록을 못해 투표를 할 수가 없었다. ‘셀마’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이런 불평등을 해결하고 흑인들의 투표권을 확보하기 위해 투쟁하는 과정을 매우 지적이요 날카롭고 민감하게 서술한 훌륭한 작품이다.
특히 아름답고 감동적인 것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역의 영국 배우 데이빗 오이엘로의 연기다. 그는 생긴 것도 마틴 루터 킹 주니어를 많이 닮았는데 엄숙하고 무게 있는 민권운동가이자 개인적 문제와 자아 회의에 고뇌하는 사적 인물의 서로 다른 면을 빼어나게 보여준다.
흑인 여류 에이바 뒤버네이가 유연한 솜씨로 연출한 영화에서 충격적이요 참혹한 장면은 셀마-몬고메리 행진의 첫 번째 시도를 저지하는 경찰의 공권력 남용. 행진자들이 셀마의 에드먼드 피터스 다리에 이르렀을 때 기마경관을 비롯한 경찰의 행진자들에 대한 무차별 폭력행사를 보면서 가슴에 통증을 느꼈다. 이를 ‘블러디 선데이’라고 부른다.
이 진압과정이 TV로 생중계 되면서 행진에 성직자들을 비롯한 많은 백인들이 동참하게 되고 결국 행렬은 몬고메리에 도착한다. 그리고 존슨 대통령은 그 해 흑인 투표권 법안에 서명한다.
마틴 루터 킹이 주 청사 앞에서 하는 연설 “하우 롱, 낫 롱”(‘우리들의 하나님은 행군한다!’ 라고도 부른다)이 세월이 지났음에도 귀에 생생하게 들리는 까닭은 아직도 이 땅에 인종차별이 생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게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홍해를 가르고 유대인들을 이집트 땅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한 모세처럼 보였다. 오이엘로 외에도 존슨 역의 탐 윌킨슨, 조지 월래스 앨라배마 주지사 역의 팀 로스 그리고 코레타 스캇 킹 역의 카르멘 에조그 등 조연진의 연기도 훌륭하다.
미국의 인종차별 문제는 반세기 전보다는 많이 나아진 것은 사실이나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그들은 도대체 언제나 배울 것인가.”  <한국일보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