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왼쪽)는 자기를 기억 못하는 아내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갖은 방법을 쓴다. |
공리, 사랑과 상실의 깊은 슬픔 절절히…
두 사람 모두의 데뷔작인 ‘홍고량’으로부터 시작해 ‘홍등’ 등 여러 편의 영화를 함께 만든 장이모 감독과 그의 연인이었고 뮤즈인 연기파이자 감각적인 스타 공리가 다시 손잡고 만든 사랑과 상실과 그리움에 관한 멜로드라마다.
문화혁명과 그로 인한 비극 그리고 그런 과거와의 화해라는 정치적 색채도 지닌 영화인데 기억상실증의 남편(로널드 콜만)의 기억을 되살리려고 애쓰는 부인(그리어 가슨)의 아름다운 드라마인 ‘마음의 행로’(Random Harvest)의 거꾸로 판이라고 하겠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아름답고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슬픈 내용 그리고 인물 개발과 촬영 등이 모두 좋은 변치 않는 사랑의 영화로 특히 공리가 거의 자기를 감추는 듯한 착 가라앉은 연기를 뛰어나게 한다.
문화혁명의 혼란스런 말기 아름답고 헌신적인 아내 펭(공리)과 발레리나가 꿈인 딸 단단(신인 장 후이웬)과 살던 지식인 루(첸 다오밍)는 당에 찍혀 강제노동 수용소로 보내진다. 루는 수용소 탈출을 시도했다가 붙잡힌 뒤 사상교육 끝에 근 20년 만에 풀려난다.
이 긴 기간 펭은 변치 않는 가슴으로 남편이 돌아올 날만을 기다리면서 돌아올 남편을 맞기 위해 종종 기차역에 나가 기다린다. 한편 단단은 당에 의해 세뇌교육을 받은 뒤 지식인인 자기 아버지에 대해 반감을 갖는다.
그런데 루가 돌아와 보니 펭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입고 기억상실증자가 돼 자기를 알아보질 못한다. 그러나 펭은 기억만 못할 뿐이지 정신적으로는 이상이 없다.
펭은 어떻게 해서든지 남편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려고 남편이 쓴 편지를 뒤적이고 계속해 기차역에 나가 남편을 기다린다. 그리고 단단은 발레리나의 꿈을 빼앗긴 채 공장의 근로자로 일한다.
루는 아내가 전연 자기를 못 알아보자 그녀의 기억을 되살리려고 여러 가지 수단을 쓰나 백약이 무효. 그래서 루는 펭과 가까이 있기 위해 그녀의 집 근처에 거처를 마련하고 친절한 타인으로서 아내에게 접근한다. 루가 이렇게 친절한 이웃으로서 펭에게 접근하는 모습이 심금을 울린다.
마지막 기차역에서의 장면은 목이 막히고 가슴이 메어질 듯이 슬픈데 장이모는 이런 슬픔을 아주 상냥하고 또 아름답게 처리해 눈물을 흘리게 된다. 첸 다오밍의 조용하면서도 힘이 있는 연기가 훌륭하고 장 후이웬도 잘 하나 공리의 포착하기 힘들 정도로 민감하고 깊이 있는 연기가 감탄스럽다. 감정적으로 모질게 매질을 당하는 것 같은 사랑의 이야기다.
PG-13. 로열극장(11523 샌타모니카) 310-478-3836.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