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6년 1월 4일 월요일

헤이트풀 에잇(The Hateful Eight)


바운티 헌터 존(왼쪽)이 또다른 바운티 헌터 마키스 소령을 총으로 맞고 있다.

폭력과 유혈·잔인함이 뒤죽박죽 가학적 쾌감 느끼는 영화


선혈과 잔인무도 그리고 폭력과 상소리가 무성한 말이 많은 영화를 기차게 잘 만드는 감독이 쿠엔틴 타란티노다. 옛날 영화를 모르는 것이 없어 자기 영화에 옛날 것들을 빌려다 쓰기로도 유명하지만 그는 정말로 뛰어난 각본가요 감독이다.
그런데 어쩌자고 그런 타란티노가 이런 쓸데없는 잔소리들을 늘어놓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유혈낭자하고 무의미한 영화를 만들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타란티노는 본인 자신도 말을 속사포 쏘듯이 청산유수로 쏟아내는데 영화에 나오는 앙상블 캐스트들이 되지도 않는 소리들을 계속해 주절대는 바람에 사람 피곤하다.
말과 폭력과 유혈과 잔인함이 모두 과도·과다한 뒤죽박죽 영화로 별 내용도 없는데 타란티노가 옛날 로드무비 식으로 필름을 사용해 70mm로 찍은 데다가 서주와 중간 휴게시간마저 있는 상영시간 3시간7분짜리여서 큰 화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내용이 거의 전부 폭설에 휩싸인 역마차 휴게소 안의 테이블 주위에서 전개돼 왜 그런 노고를 했을까 하고 의문이 간다.
영화는 후반부에 가서 끔찍하고 포악한 폭력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별 폭력 없이 마치 아가사 크리스티의 ‘덴 데어 워 논’처럼 알쏭달쏭한 추리물을 연상케 만들었는데 따라서 아가사 크리스티 웨스턴이요 설원의 스파게티 웨스턴이라고도 하겠다.
또 이 영화는 첫 장면부터 존 포드가 감독하고 존 웨인이 나온 웨스턴 ‘역마차’를 연상시키는데 복수심에 불타는 주인공과 함께 역마차 휴게소 안에서 ’를 그대로 본 땄다.
‘역마차’에 대한 피와 폭력의 헌사라고 하겠다. 여기에다 타란티노의 또 다른 유혈이 낭자한 폭력영화 ‘저수지의 개들’도 닮았으니 타란티노는 자기 것과 남의 것을 마구 뒤섞은 짜고 맵기만 하지 제 맛이 안 나는 짬뽕을 한 사발 내놓은 셈이다.
엔니오 모리코네(‘황야의 무법자’ 음악)의 으스스하게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멀리서 눈밭을 가로지르며 달려오는 멋있는 첫 장면을 보면서 기대가 컸었다. 때는 남북전쟁 직후. 장소는 와이오밍주. 마차 안에는 레드락에서 사형이 집행될 흉악범 여죄수 데이지(제니퍼 제이슨 리)를 호송하는 바운티 헌터 존(커트 러셀)이 타고 있다. 곧 이어 마차는 북군 베테런인 또 다른 바운티 헌터 마키스 소령(새뮤얼 L. 잭슨)과 그가 사살한 무법자의 사체 2구를 태운다. 이어 레드락의 새 셰리프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크리스(월터 고긴스)를 태우는데 아무리 봐도 크리스는 셰리프 같질 않다.
마차는 ‘미니의 휴게소’에 도착하고 폭설이 쏟아지면서 출발이 지연된다. 밥(데미안 비치르)이 주인인 휴게소 안에는 남군 장교 샌디(브루스 던)와 덩지가 큰 카우보이 조(마이클 맷슨)와 말 많은 영국인 오스왈도(팀 로스)가 먼저 와 있다. 8번째 인물인 조디(채닝 테이텀)는 영화 거의 끝에 가서 나온다. 이들이 각자 한 마디씩 하는데 털어놓은 말 어딘가에 무언가를 숨겨 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도대체 이들의 정체가 무엇일까. 슬슬 궁금증이 끓기 시작한다.
후반부에 접어들어 폭력이 난무하고 피가 튀고 사체가 쌓이면서 마키스 소령에 의해 ‘미니의 휴게소’에 연관된 과거가 회상식으로 전개되면서 휴게소 안의 인물들의 정체가 양파껍질 벗겨지듯이 벗겨진다. 8명의 남자들 중 유일한 여자인 데이지가 죽을 고생을 하는데 이 건 완전히 여성학대다. 이와 함께 N자 상소리가 범람한다. 타란티노가 배우들을 폭력의 제물로 삼으면서 그들과 함께 영화를 보는 관객들마저 학대하면서 혼자 가학적 쾌감을 느끼는 영화다. 앙상블 캐스트의 연기는 볼만하다. R. Weinstein.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조이(Joy)


조이는‘기적의 걸레’를 고안, 백만장자가 된다.

 ‘기적의 걸레’조이 망가노의 실화… 로렌스 연기 일품


이야기꾼의 재주를 지닌 각본가 겸 감독 데이빗 O. 러셀이 다시 앙상블 캐스트를 사용해 만든 ‘미국인의 성공’ 코미디 드라마인데 그의 다른 영화들과 달리 이번에는 플롯이 산만한데다가 같은 내용을 반복하고 있으며 기라성 같은 배우들을 소모품처럼 다루고 있어 드문드문 재미가 있지만 전체적으론 실패작이다.
손으로 짜지 않아도 되는 ‘기적의 걸레’를 비롯해 자질구레한 가정용 도구를 여러 개 고안해 백만장자가 된 조이 망가노의 실화로 러셀의 ‘실버 리이닝스 플레이북’과 ‘아메리칸 허슬’에 나온 제니퍼 로렌스가 주연하는데 이 영화에서 볼만한 것은 로렌스의 카리스마 있는 연기다.
로렌스 외에 로버트 드 니로, 브래들리 쿠퍼, 이사벨라 로셀리니, 다이앤 래드, 버지니아 맷슨 및 에드가 라미레스 등이 나오지만 이들은 산산조각이 난 얘기처럼 뿔뿔이 개별적으로 행동하면서 별 신통치도 않은 대사를 반복해 남발하고 있다.
조이는 어렸을 때부터 무에서 유를 고안해 내는데 특별한 재주를 지녔다. 고등학교도 우등으로 졸업할 정도로 똑똑한 아이인데도 대학을 안 가고 엄마 캐리(맷슨)를 버리고 새 여자를 찾아간 아버지 루디(드 니로)의 고철장사의 경리사원으로 일한다. 캐리는 하구한날 침대에 누워 소프 오페라를 보는 것이 취미.
조이는 가수 지망생인 백수 라티노 토니(라미레스)와 결혼해 아이를 둘 낳고 이혼을 했는데 토니는 아직도 조이 집 지하실에서 산다. 그런데 루디가 동거하던 여자한테서 쫓겨나면서 조이 집으로 짐을 싸들고 들어온다. 이런 난장판 집안의 기둥과 같은 사람이 조이인데 이해 난감한 것은 조이가 모든 사람에게 다 친절하고 상냥하며 집을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희생한다는 점. 천사와도 같은 여자다.
그런데 조이가 어느 날 걸레질을 하다가 아이디어를 얻어 고안해낸 것이 ‘기적의 걸레’. 아이디어는 있으나 제품생산 자본이 없어 고민인데 돈을 대는 여자가 루디의 새 애인으로 죽은 남편한테서 유산을 물려받은 트루디(로셀리니). ‘기적의 걸레’를 만든 조이는 견본을 들고 그 때 막 시작한 홈샤핑 TV 채널 QVC의 사장 닐(쿠퍼)을 찾아간다.
그러나 TV에서 ‘기적의 걸레’를 소개하는 사람이 사용법을 몰라 크게 실패한다. 이에 굴하지 않고 조이는 다시 닐을 찾아가 자기가 직접 쇼에 나가 시범을 보이겠다고 졸라 닐의 허락을 받는다. 그리고 ‘기적의 걸레’가 빅 히트를 한다. 얘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공연히 시간을 낭비해 가면서 조이의 후일담을 늘어놓는데 사족이다. 조이의 콩가루 집안처럼 얘기나 인물들이 제각각 튀는 콩가루 같은 영화다, PG-13. Fox. 전지역. ★★★(5개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대통령이 될 뻔했던 지휘자




1991년부터 2002년까지 11년간 뉴욕 필을 이끌며 이 세계 굴지의 교향악단의 오랜 연주 태도인 날이 선 외형미에 대한 치중을 지양하고 보다 따스하고 쾌적한 소리를 만들어낸 상임지휘자 쿠르트 마주어(Kurt Masur·사진)가 지난달 19일 코네티컷주 그리니치에서 88세로 타계했다. 마주어는 주빈 메이타의 바톤을 이어 받아 뉴욕 필을 맡은 이래 이 교향악단과 청중을 크게 변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뉴욕 필은 웅장하고 윤곽이 뚜렷한 음악을 창조하는 악단이면서도 단원들의 성질이 까다로운 데다가 콧대가 높아 지휘자를 산 채로 잡아먹는다는 소리를 들었다.
음악 전문가들은 마주어가 뉴욕 필의 지휘자가 되면서 작품의 감정을 물 흐르듯 함으로써 작품이 스스로 숨 쉬고 노래하도록 고전음악의 전통적 의미를 되찾아 주었다고 평가한다. 즉 그는 모든 음표가 다 들리도록 허락함으로써 작품이 스스로 소리를 내게 하고 자연스러운 색채와 무게를 찾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고약한 자들’로 알려졌던 단원들로 하여금 인간성을 서로 보다 가깝게 연결시켜주는 음악의 힘을 깨닫게 만들어 주었다고 LA타임스가 현 뉴욕필의 상임지휘자인 알란 길버트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마주어는 지휘자로서 뿐 아니라 인도주의자로서도 세인들의 칭송을 받았다. 현재 폴란드 땅인 브리크에서 출생한 그는 특히 동독 땅이었던 라이프치히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라이프치히 음대에서 피아노와 작곡과 지휘를 공부한 마주어는 1970년부터 1996년까지 무려 26년간 세계적인 교향악단인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를 역임했다. 그런데  멘델스존도 이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였다.
마주어는 1989년 10월 라이프치히에서 대규모 민주화 시위가 일어났을 때 이를 저지하려고 출동한 진압군과 민중 간의 유혈사태를 막은 ‘라이프치히 6명’ 중 한 사람이다. 마주어는 그 때 시위군중과 진압군 양측 모두에게 평온과 대화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라디오로 방송, 피가 흐르는 것을 막을 수가 있었다.
결국 라이프치히 시위 한 달 후 동독은 서독과의 국경을 개방했고 그 이듬해 독일 통일을 보았으니 마주어는 통독의 영웅이라고 해도 되겠다. 독일이 통일되자 마주어는 축하곡으로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을 연주했다. 그리고 통독 후 새 대통령 후보로 마주어의 이름이 거론되기도 했으나 그는 이를 거절했다. 그러니까 마주어는 독일 대통령이 될 뻔했던 사람이다.  
마주어가 2012년 뉴욕 필을 떠난 것은 타의에 의해서다. 당시 막강한 힘을 지녔던 뉴욕 필의 대표로 진취적인 데보라 보다(현 LA 필 대표)에 의해 쫓겨난 셈이다. 이유는 마주어가 베토벤과 브람스와 브루크너 같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정통 고전 낭만파 음악가들을 좋아한 반면 현대음악을 기피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그의 후임은 로린 마젤.
보다와 마주어의 대결은 지금 서울서 벌어지고 있는 서울시향의 예술감독 정명훈의 재임명을 둘러싼 논란을 연상케 만든다. 1년여 전에 정명훈과 시향대표였던 박현정 간에 세력다툼이 일어나 박현정이 물러났는데 지금 이 사건이 다시 도져 지난해로 끝난 정명훈의 예술감독직 재임명이 일단 보류된 상태다.
클래시컬 음악은 고상하고 거룩하며 또 순수하나 그것을 연주하는 교향악단의 지휘자와 단원들과 교향악단 관계자들 간의 세력다툼과 함께 섹스와 드럭과 술이 범람하는 막후 광경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라고 한다. 이런 사정을 코믹하고 흥미진진하며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현재 방영되고 있는 아마존의 30분짜리 드라마 ‘정글 속의 모차르트’(Mozart in the Jungle)이다. 이 드라마는 뉴욕 심포니의 아이 같고 야단스럽지만 천재적인 멕시칸 지휘자 로드리고 데 수자(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와 이사장 글로리아(버나뎃 피터스) 그리고 단원들과 후원자 및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를 그렸는데 로드리고의 모델은 베네수엘라 태생의 두다멜이다. 그리고 글로리아도 보다를 닮은데가 있다.
두다멜과 베르날은 둘 다 라티노인 데다가 서로 작달막한 키까지 닮았는데 베르날이 두다멜의 지휘를 그대로 흉내 내고 있어 드라마에서 베르날 즉 로드리고가 지휘하는 모습을 보면 자연 두다멜의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시리즈는 현재 제2 시즌이 방영 중으로 시즌 첫 에피소드에는 할리웃보울과 함께 두다멜이 캐미오로 나왔다. 나는 지난 8월 이 에피소드를 찍을 때 보울 무대 뒤에서 두다멜과 베르날을 만나 인터뷰를 했는데 둘이 나란하 서서 웃고 얘기하는 모습이 마치 정다운 형제 같았다.
나는 마주어가 지휘하는 뉴욕 필의 연주를 1998년 연말에 오렌지카운티 공연예술센터에서 들은 적이 있다. 당시 연주곡목은 리햐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돈 환’과 ‘죽음과 변용’ 그리고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5번이었다. 독일 사람답게 큰 체구에 인자한 얼굴의 산타클로스처럼 생긴 마주어는 극히 절제된 제스처로 아름다운 화음을 빚어 나로 하여금 음들의 해심에 잠기게 만들었었다. LA 필의 소리보다 폭과 감촉이 깊고 짙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