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운티 헌터 존(왼쪽)이 또다른 바운티 헌터 마키스 소령을 총으로 맞고 있다. |
폭력과 유혈·잔인함이 뒤죽박죽 가학적 쾌감 느끼는 영화
선혈과 잔인무도 그리고 폭력과 상소리가 무성한 말이 많은 영화를 기차게 잘 만드는 감독이 쿠엔틴 타란티노다. 옛날 영화를 모르는 것이 없어 자기 영화에 옛날 것들을 빌려다 쓰기로도 유명하지만 그는 정말로 뛰어난 각본가요 감독이다.
그런데 어쩌자고 그런 타란티노가 이런 쓸데없는 잔소리들을 늘어놓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유혈낭자하고 무의미한 영화를 만들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타란티노는 본인 자신도 말을 속사포 쏘듯이 청산유수로 쏟아내는데 영화에 나오는 앙상블 캐스트들이 되지도 않는 소리들을 계속해 주절대는 바람에 사람 피곤하다.
말과 폭력과 유혈과 잔인함이 모두 과도·과다한 뒤죽박죽 영화로 별 내용도 없는데 타란티노가 옛날 로드무비 식으로 필름을 사용해 70mm로 찍은 데다가 서주와 중간 휴게시간마저 있는 상영시간 3시간7분짜리여서 큰 화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내용이 거의 전부 폭설에 휩싸인 역마차 휴게소 안의 테이블 주위에서 전개돼 왜 그런 노고를 했을까 하고 의문이 간다.
영화는 후반부에 가서 끔찍하고 포악한 폭력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별 폭력 없이 마치 아가사 크리스티의 ‘덴 데어 워 논’처럼 알쏭달쏭한 추리물을 연상케 만들었는데 따라서 아가사 크리스티 웨스턴이요 설원의 스파게티 웨스턴이라고도 하겠다.
또 이 영화는 첫 장면부터 존 포드가 감독하고 존 웨인이 나온 웨스턴 ‘역마차’를 연상시키는데 복수심에 불타는 주인공과 함께 역마차 휴게소 안에서 ’를 그대로 본 땄다.
‘역마차’에 대한 피와 폭력의 헌사라고 하겠다. 여기에다 타란티노의 또 다른 유혈이 낭자한 폭력영화 ‘저수지의 개들’도 닮았으니 타란티노는 자기 것과 남의 것을 마구 뒤섞은 짜고 맵기만 하지 제 맛이 안 나는 짬뽕을 한 사발 내놓은 셈이다.
엔니오 모리코네(‘황야의 무법자’ 음악)의 으스스하게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멀리서 눈밭을 가로지르며 달려오는 멋있는 첫 장면을 보면서 기대가 컸었다. 때는 남북전쟁 직후. 장소는 와이오밍주. 마차 안에는 레드락에서 사형이 집행될 흉악범 여죄수 데이지(제니퍼 제이슨 리)를 호송하는 바운티 헌터 존(커트 러셀)이 타고 있다. 곧 이어 마차는 북군 베테런인 또 다른 바운티 헌터 마키스 소령(새뮤얼 L. 잭슨)과 그가 사살한 무법자의 사체 2구를 태운다. 이어 레드락의 새 셰리프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크리스(월터 고긴스)를 태우는데 아무리 봐도 크리스는 셰리프 같질 않다.
마차는 ‘미니의 휴게소’에 도착하고 폭설이 쏟아지면서 출발이 지연된다. 밥(데미안 비치르)이 주인인 휴게소 안에는 남군 장교 샌디(브루스 던)와 덩지가 큰 카우보이 조(마이클 맷슨)와 말 많은 영국인 오스왈도(팀 로스)가 먼저 와 있다. 8번째 인물인 조디(채닝 테이텀)는 영화 거의 끝에 가서 나온다. 이들이 각자 한 마디씩 하는데 털어놓은 말 어딘가에 무언가를 숨겨 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도대체 이들의 정체가 무엇일까. 슬슬 궁금증이 끓기 시작한다.
후반부에 접어들어 폭력이 난무하고 피가 튀고 사체가 쌓이면서 마키스 소령에 의해 ‘미니의 휴게소’에 연관된 과거가 회상식으로 전개되면서 휴게소 안의 인물들의 정체가 양파껍질 벗겨지듯이 벗겨진다. 8명의 남자들 중 유일한 여자인 데이지가 죽을 고생을 하는데 이 건 완전히 여성학대다. 이와 함께 N자 상소리가 범람한다. 타란티노가 배우들을 폭력의 제물로 삼으면서 그들과 함께 영화를 보는 관객들마저 학대하면서 혼자 가학적 쾌감을 느끼는 영화다. 앙상블 캐스트의 연기는 볼만하다. R. Weinstein. 전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