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5년 8월 23일 일요일

‘비이성적인 남자’ 감독 우디 알렌




“더 이상 웃음만 위한 영화는 원치 않아”


지금 뉴욕엔 부자와 빈민 두 계층만 있어 아주 슬픈 일
아내 순이가 늘 서울 가자 조르는데 난 가능한 미루려해


삶과 자기 직업에 깊은 회의를 느끼는 작은 마을 대학의 철학교수(와킨 피닉스)가 여제자(엠마 스톤)와의 로맨틱한 관계와 함께 뜻밖의 끔찍한 실존적 행위를 저지르면서 다시 생의 활기를 찾는 어두운 드라마‘비이성적인 남자’(Irrational Man)를 감독한 우디 알렌(79)과의 인터뷰가 7월25일 뉴욕의 런던 호텔에서 있었다. 알렌은 한국계 순이(44)의 남편. 안경 속에 놀란 토끼 눈을 한 알렌은 청력이 나빠서 손으로 귀를 감싼 채 질문을 듣고 대답을 했는데 자기비하적인 농담을 시치미 뚝 떼고 하면서 인터뷰를 즐겼다. 재치와 유머가 대단해 인터뷰가 재미 만점이었는데 순이 얘기를 할 때는 두 손으로 야단스러울 정도의 제스처를 써가면서 젊은 아내를 찬양했다. 둘이 굉장히 행복한 관계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와는 구면인 데다가 필자 역시 한국 사람이어서 그는 필자를 만나자 반색을 하면서“할로”하고 인사를 했다. 인터뷰 후 사진을 찍을 때 내가 그의 손을 꼭 잡자 알렌은“만나서 반갑다”며 미소를 지었다.                                 

영화의 교수는 창조적 능력을 상실한 채 허우적대는데 당신이 그런 경우에 처할 때면 거기서 어떻게 빠져 나오는가.
“난 다행이 그렇게 심하게 글이 안 써지거나 작품을 만들지 못해 허우적댄 경험을 하진 않았다. 내가 정신적으로 침체되거나 우울하거나 또는 의기소침해 질 때면 난 일을 함으로써 긍정적인 결과를 얻어낸다.”

작은 결정이 때론 우리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가.
“그렇다. 우리는 늘 사소한 결정을 하면서 살고 있다. 그런 결정은 때론 큰 보상을 가져다주기도 하나 또 때론 평생을 저주처럼 따라다니기도 한다.”

뉴요커 영화인으로서 옛 뉴욕과 요즘 뉴욕이 많이 달라졌다고 보는지.
“살기가 더 비싸졌다는 것이 문제이지만 도시 자체는 변함없다. 9.11사태가 일어난 후 사람들이 나보고 ‘뉴욕이 이 이후로 과거와 같을 수가 있겠느냐’고 묻더라. 그에 대해 난 ‘예스’라고 대답했다. 그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거리를 걷고 극장과 식당엘 가면서 왕성한 에너지와 열광과 더불어 살고 있다. 뉴욕은 여전히 창조적이며 로맨틱하고 살기에 위대한 도시다. 그러나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것은 빈부 차가 벌어지면서 중산층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뉴욕에는 부자와 생계를 위해 투쟁하는 두 계층만이 있다. 아주 슬픈 일로 뉴욕에 중산층이 되살아나야 도시도 중흥하게 될 것이다.”

오랜 감독생활을 해오면서 당신의 스타일에 달라진 점이라도 있는지.
“세트에선 변함없다. 난 조용한 편이고 별로 재미없는 개성을 지닌 것이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외엔 모든 것이 변했다. 난 지금까지 45편 정도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아무리 바보라도 그렇게 많은 영화를 만들다보면 경험상 기술과 지식을 얻게 마련이다. 내가 위대한 감독이라는 것은 결코 아니나 1969년의 데뷔작인 ‘돈을 갖고 튀어라’를 만들었을 때보다는 나은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연출기법이 많이 달라진 것은 분명하다. 이제 난 생의 문제에 처한 사람들에 관한 영화를 만든다. 따라서 영화가 옛날 것처럼 속도가 빠를 필요도 없다. 난 아직도 웃음을 사랑하나 옛날처럼 웃음만을 위한 웃음을 원치는 않는다.”

요즘 정치·사회문제 중 관심이 있는 것이 있는지.
“난 예술가로서 그런데 조금도 관심이 없다. 그러나 시민으로선 우리 정부와 대통령과 나의 도시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에 관심이 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진보적인 민주당원으로서 빈부의 격차와 불평등 등 제반 문제에 관심이 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영화로 만드는 데는 관심이 없다. 난 늘 철학적 심리적 문제와 인간관계에 대해 관심을 가져 왔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문제들보다는 지속적인 관심사에 더 신경을 쓴다.”

순이 잘 있는지요.
삶의 의미를 잃은 철학교수 와킨 피닉스(왼쪽)는 제자 엠마 스톤을 사랑한다.
“잘 있다. 지금 아이들과 함께 ‘파리의 미국인’을 구경하고 있다. 그들이 집에 없으니 혼자 조용히 각본을 쓸 수 있어 아주 좋다. 그런데 사실 나 오늘 여기 오는 것 깜빡 까먹었었다. 집에서 각본을 쓰고 있는데 내 언론담당자가 내게 전화를 걸어 ‘아니 당신 지금 어디 있는 거예요. 기자회견에 와야 해요’라고 말해 부랴부랴 달려 왔다.”

당신은 2년 전에 내게 순이 때문에 둘이 함께 서울에 간다고 해놓고 안 갔는데 어떻게 된 것인가.
“그 때나 지금이나 상황은 똑같다. 우선 내 딸이 한국에 가 고아원에서 봉사하고 며칠 전에 돌아왔다. 순이가 몸살 나게 서울에 가고 싶어 한다. 모두들 순이에게 ‘너 꼭 서울에 가야해’라고 부추기는데 난 정말로 별로 가고 싶지가 않거든. 그러나 순이가 몇 년째 조르고 있어 결국은 가야 할 줄 안다. 나는 순이에게 ‘우리 파리나 바르셀로나에 가자’고 제의를 하지만 순이는 ‘거긴 그만 가도 돼’라면서 ‘당신 12월에 80세가 되고 곧 죽을 텐데 그 전에 서울 가고 싶어’라고 조른다. 따라서 불원 순이를 데리고 가야할 줄 알지만 가능한 한 지연작전을 쓰고 있다. 운이 좋으면 그 전에 죽을지도 모르지.”

인생에서 돌연한 우연의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많다. 우린 살면서 모두 수백만 번의 우연한 순간을 경험한다고 본다. 내게 있어 그것은 아주 의미심장한 것이다. 예를 들지. 내가 옛날에 신년파티를 열었을 때다. 파티 후 며칠 지나 미아 패로로부터 초청해 주어 고맙다는 감사선물로 책이 왔다. 그래서 답을 한다고 전화를 걸다가 ‘다음 주에 점심이나 할까요’라고 제안했다. 거기서부터 우리는 세계적인 뉴스가 됐지 (배우인 패로는 프랭크 시내트라와 앙드레 프레빈의 전처로 그녀가 한국 고아원으로부터 입양한 아이가 순이다. 알렌은 패로와 애인 사이였을 때 순이와도 관계를 가져 큰 화제가 됐었다).

80세 생일을 어떻게 보낼 것이며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난 다섯 살 때부터 죽음에 집착해 왔다. 그래서 그 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난 늘 죽음에 문턱에 섰다고 느껴왔고 그러면 공포에 휩싸여 몸이 굳어진다. 생일파티는 전연 계획이 없다. 난 그런 것 별로 안 좋아한다. 사람들이 모여 먹고 마시면서 ‘자 이제 너는 80이다, 70이다, 또는 90이다’라면서 축하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런 분위기는 불안만 조성할 뿐으로 내 스타일이 아니다. 그저 가족과 식당에 기서 조용히 저녁을 먹을 예정이다. 건강이 지속되는 한 일을 계속해 하고 싶을 뿐이다. 내 아버지는 100세까지 살았으니 나도 그러고 싶다. 그래서 일을 하면서 보다 나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 

영화의 장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기술의 발전으로 곧 사람들이 극장에 안 가고 집에서 큰 스크린으로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볼 날이 올 것이다. 그러나 내가 어렸을 때는 일어나자마자 극장에 갈 생각에 흥분했었다. 크고 아름다운 극장에서 수백명의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본다는 것은 마법적 경험이었다. 그런데 이젠 랩탑으로들 영화를 본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옛날 영화에 관해 애기하면 그들은 ‘시민 케인’과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봤다고 하는데 극장이 아니라 전화기로 본 것이란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결국 밖으로 나가 어딘가 가고 싶어 하기 때문에 극장이 그렇게 쉽게 없어지진 않을 것이다.”

당신은 스스로를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비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너무 이성적이다. 그래서 난 예술가보다는 선생 타입이다. 내가 조금만 더 비이성적이었다면 보다 나은 예술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난 너무 중간층이고 이성적이고 조직적이며 비겁하다. 이성적인 것은 나를 제 정신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어주기에 어떤 면에선 좋다. 그런데 너무 정신이 멀쩡한 것은 예술가에게는 좋은 일이 아니다.”

여전히 왕성한 당신의 창작활동의 근원은 무엇인가.
“건강이 좋았고 이 나이에도 활동적이요 정력적인 것은 유전인자 탓이다. 운동하고 잘 먹고 담배도 안 피고 또 건강을 해치는 어떤 나쁜 습관도 없다. 난 일하기를 좋아하고 또 즐긴다. 건강이 유지되는 한 내 아버지처럼 90 넘게 살지 말라는 법도 없겠지. 나도 그렇게 산다면 계속해 쓰고 영화를 만들 것이다. 난 백만 가지의 아이디어가 있거든. 난 쓰고 영화 만드는 것 외엔 아무 것도 할 줄 모른다.”   

영화의 주인공은 대학 교수인데 당신은 좋은 교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난 논리적이요 생각이 분명하고 또 가르칠 수가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본다. 나는 자신이 영화인으로서보다 선생으로서 더 잘할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난 아주 불량한 대학생이었다. 뉴욕대의 영화제작과에 들어간 것은 순전히 부모 탓이다. 그러나 1학년 때 모든 과목에서 낙제를 해 퇴학당했다. 그런데 요즘 미국 대학교육은 아주 엉망이다. 어떻게 가르칠지를 모른다. 따라서 셰익스피어를 배운 학생들이 오히려 셰익스피어를 미워해 다시는 그 근처에 가려고 하지를 않는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그랜드마 (Grandma)


엘리가 손녀 세이지(왼쪽)와 함께 돈 빌릴 사람을 찾아 차를 몰고 있다.

레즈비언 할머니와 고교생 손녀의‘낙태비용 구걸기’


내용과 대사와 연기가 모두 훌륭하고 사실적이며 또 마음이 따스한 소품으로 성질 고약한 레즈비언 할머니와 고교 3년생인 임신한 손녀의 하루에 걸친 돈 구걸 오디세이다. 우습고 가슴 사무치게 만드는 코미디 드라마로 여자 3대의 이야기이자 레즈비언 영화이기도 한데 이와 함께 나이 먹음이 가져다주는 득과 상실을 솔직하고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이 영화는 베테런 레즈비언 코미디언인 릴리 탐린(75-영화 ‘9 투 5’)이 혼자 말아 먹다시피 하는데 우습고 연민스럽고 또 때론 거칠다가도 인자한 연기로 보기에 아주 좋다. 손녀 역의 신인 줄리아 가너와 함께 한국계 존 조를 비롯한 탐린을 둘러싼 여러 배우들의 알찬 연기가 탐린의 연기를 더욱 빛나게 뒤에서 받쳐 준다. 
LA 북쪽 로스펠리츠에 사는 엘리(탐린)는 왕년의 유명한 시인이었으나 지금은 대학 시간강사로 근근이 연명한다. 영화는 처음에 엘리가 지난 4개월 간 동거하던 애인 올리비아(주디 그리어)에게서 버림받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슬픔과 시름에 젖어 있는 엘리 앞에 느닷없이 고교 3년생인 손녀 세이지(가너)가 나타나 임신중절을 하기 위해 600달러가 필요하다고 사정을 한다. 세이지의 어머니 주디(마시아 게이 하든이 맹렬하면서도 민감한 연기를 아주 잘 한다)는 막강한 변호사이지만 세이지는 군림하는 엄마가 싫어 할머니를 찾아온 것이다. 엘리와 주디 간의 사이도 별로 안 좋다. 
그래서 돈이 없는 엘리와 세이지는 병원이 문을 닫기 전에 돈을 구하기 위해 엘리의 구닥다리 차(진짜 탐린의 고물차다)를 몰고 아는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평소 알던 성전환을 한 문신가게 주인도 찾아가고 다음 사람을 찾아가다 들른 카페에서는 꽤 까다로운 젊은 주인(존 조)과 말다툼을 하면서 입이 건 엘리의 입에서 막말이 튀어나온다. 그리고 엘리는 에누리 없이 완고한 책방 여주인(고 엘리자베스 페냐)에게 자기 책의 초판을 팔려고 하나 주인은 거들떠 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어 엘리와 세이지는 아기 아빠인 새파랗게 젊은 백수건달 캠(냇 울프)을 찾아가 협조를 구하나 오히려 캠으로부터 조롱만 당한다. 이에 화가 난 엘리는 하키 스틱으로 캠을 구타한 뒤 전리품으로 마리화나가 든 백을 들고 나온다. 
만나는 사람들 중에 가장 감정적으로 무게와 깊이를 지닌 것은 엘리의 옛 애인 칼(샘 엘리옷)과의 대면. 엘리와 칼의 재회는 30년만에 이뤄지는 것인데 칼은 처음에 엘리에게 돈을 빌려 주기로 했다가 과거 둘 간의 고통스런 사연이 개입되면서 엘리는 빈손으로 떠난다. 두 사람의 만감이 교차하는 모습과 대화가 가슴을 파고든다.
시간이 자꾸 가면서 엘리와 세이지는 마음이 급해지고 둘은 결국 마지못해 주디를 찾아간다. 여기서 여자 3대 간의 애증이 교차하는 관계가 진지하면서도 우습고 아주 현실적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세 여자는 잠정적 합의와 이해에 도달한다.     
성격위주의 드라마로 꾸밈이 없고 신선한데 대사가 진실하고 연기는 아름답다. 세이지 역의 줄리아 가너가 실팍한 연기를 하는데 앞으로 빛을 볼 배우다. 폴 와이츠 각본 및 감독. 
성인용. Sony Classics. 일부 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운전교습 (Learning to Drive)


다완(왼쪽)이 웬디에게 운전을 가르쳐주고 있다.


“운전은 인생살이와 다를 바 없다우”


두 베테런 배우 벤 킹슬리와 패트리샤 클락슨이 보기 좋은 균형을 이루고는 있지만 이 영화는 운전교습은 인생수업이라는 구태의연한 소리를 하는 말캉한 작품이다. 맨해턴의 문학 평론가인 개인주의에 물든 백인 여자와 그녀의 인도계 미국인 운전선생 간의 문화의 차이를 넘어선 관계와 두 사람 사이의 미묘한 감정의 교차를 다룬 영화로 두 배우의 상호교류가 보기엔 좋으나 영화 자체로선 타작에 지나지 않는다.
제시카 탠디와 모간 프리만이 나온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를 생각나게 하는데 깊이나 예술적 면에서 옛 영화가 월등히 낫다. 두 배우를 제외하곤 내용이나 외모가 다 매우 싱거워 간을 좀 쳐야 할 영화로 경쾌하질 못하고 발걸음이 무겁고 또 감정적이라기보다 감상적이다. 그러나 보고 즐길 만은 하다.
맨해턴에 사는 문학평론가 웬디(클락슨)는 느닷없이 21년간 살던 남편 테드(제이크 웨버)로 부터 버림을 받는다. 둘의 말다툼은 인도계 미국인으로 정치망명한 시크교도 다완(킹슬리)이 운전하는 택시 안에서 일어난다. 
운전을 못하는 웬디가 운전을 배우기로 한 까닭은 버몬트에 사는 딸 타샤(그레이스 거머-메릴 스트립의 딸)를 방문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부업으로 운전을 가르치는 다완을 부른다. 다완은 원리 원칙적이지만 민감하고 인내심이 있는 사람. 여기서부터 머리에 터번을 쓴 시크교도로서 타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종차별과 여러 가지 역경을 헤쳐 나가면서 삶에 대해 철학적 관념을 유지하고 있는 남자와 철저한 개인주의적인 백인 여자 간에 선생과 제자의 관계가 성립된다.
그리고 다완은 운전은 인생살이와 같다는 것을 웬디에게 주지시키면서 참을성 있게 그녀를 지도한다. 둘이 이렇게 함께 있으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삶과 사랑에 관해 주고받으면서 둘간에 감지하기 힘든 감정이 발생한다. 
그러나 다완은 인도에서 온 자슬린(사리타 추두리)과 중매결혼을 한다. 이에 웬디는 어떻게 해서 얼굴 한 번 본 여자와 결혼을 할 수가 있느냐고 의아해 한다. 이에 다완은 연애결혼 끝에 망가진 웬디의 현실을 생각하며 고개를 내젓는다. 
다완의 엄하나 자상한 지도 끝에 웬디는 운전시험에 합격한다. 그리고 이 교습으로 인해 삶을 다시 추스르게 된다. 
다소 경직된 킹슬리보다는 우아하게 아름다운 클락슨의 연기가 빛난다. 그런데 다완에 대한 묘사가 모범적인 소수계를 너무 판에 박은 듯해 보기에 오히려 민망하다. 이자벨 코이셋 감독. 성인용. Broad Green. 일부 지역. ★★½(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암살’




최근 현재 한국에서 1,000만 관객을 목전에 두고 있는 ‘암살’을 비롯해 한국 영화 여러 편을 몰아서 봤다. 최동훈이 감독하고 이정재, 하정우, 전지현 등 한국의 수퍼스타들이 나오는 ‘암살’(사진)은 일제강점기 때 상해 임시정부에서 일본 측 요인과 한국의 매국노를 암살하기 위해 파견한 투사들의 활약을 그린 다소 코믹터치를 섞은 액션 스릴러다.
여자 암살자를 등장시킨 점이 이색적인 액션이 콩 튀듯 하는 철저한 오락영화로 재미는 있지만 예술성이나 세련미는 부족하다. 주인공들을 소개하는 서두 부분이 장황하고 혼란스러운 이 영화는 영화적으로 보면 국적불명이라고 하겠는데 ‘황야의 무법자’와 주윤발 느와르 식의 만화 같은 액션과 ‘제3의 사나이’의 하수구 도주장면과 나치의 유대인 즉결처형까지 빌려다 쓴 액션 멜로드라마다.
그러다보니 자연 인물들의 성격묘사가 피상적인데 인물뿐 아니라 영화 전체가 보기엔 멀끔하나 너무 오락성에 치중해 깊이나 진지성이 모자라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이 영화도 한국 영화의 고질인 사족을 겸해 상영시간이 140분이나 되는데 20분은 잘라도 된다.
‘암살’이 한국서 빅 히트를 하고 있는 까닭에는 국민적 반일감정도 한몫했음에 분명하다. 히틀러 같은 아베 탓에 대일감정이 악화하고 있을 때 한국의 열사들이 일본군을 때려잡고 있으니 흥분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베가 영화의 히트에 일조를 한 셈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의 성공은 ‘명량’과 ‘연평해전’의 히트와도 일맥상통한다. 두 영화 역시 평범한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관객이 몰린 이유 중 하나는 우리의 적들인 일본과 북한에 대한 반격을 주제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런데 김무열이 주연하는 ‘연평해전’은 마지막 전투장면이 있기 전까지는 잡담에 지나지 않는 함정 해군들 간의 이야기를 장황하고 단편적으로 늘어놓은 별 재미도 없는 타작이다.  
이런 영화들의 흥행 성공은 할리웃에서의 블락버스터 영화들의 히트와도 같다. 재미가 예술성을 앞지르고 있는 것이 범지구적인 영화계의 현실이다.
한국의 요즘 큰 문제 중의 하나인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를 그린 두 영화가 ‘산다’와 ‘마돈나’이다. 박정범이 감독과 주연을 겸한 ‘산다’는 강원도 건설현장의 일용직 노동자의 생존투쟁을 아플 정도로 가차 없이 사실적으로 그렸는데 철저히 절망적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빈곤의 함정에 갇힌 바닥인생의 일상을 매우 어둡고 실존적으로 그린 진지한 영화다. 그러나 2시간40분이라는 상영시간은 너무 길어 강력한 현실 고발이 가난의 장탄식이 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여류 신수원이 감독한 ‘마돈나’는 부를 위해서라면 타인의 생명마저 빼앗을 수 있는 젊은이를 통해 부자들의 탐욕을 스릴러 터치를 섞어 비판하고 있으나 내용이 믿어지지도 않고 값싼 화장품 냄새가 난다.    
한국의 베테런 임권택이 감독하고 안성기와 김규리가 주연하는 ‘화장’은 일종의 메이-디셈버 로맨스를 흉내 낸 멜로물이다. 상처한 중년의 회사 간부가 딸 나이의 신입사원을 몰래 연모하는 얘기인데 도무지 극적인 굴곡이 부족해 무미건조하다.
임 감독은 표현 못할 남자의 감정을 수심의 고요로 그리려고 한 것 같은데 그 고요 속에 갇힌 감정의 진동이 느껴지지 않아 애타는 연모의 내연성이 간 곳이 없다. 로맨스 영화치곤 우아한 멋도 없는데 안성기는 완전히 미스 캐스팅이다. 그는 로맨틱하고는 거리가 먼 지극히 평범한  마음 좋은 이웃집 아저씨 같아서 도무지 연애영화 보는 기분이 안 난다.
장인 임감독의 솜씨가 세월과 함께 조금씩 쇠약해 지는 느낌이다. 나는 안성기를 부산과 LA에서 각기 만난 적이 있는데 아주 겸손한 사람이다. 착한 시람 영화 흉봐서 미안하지만 ‘화장’은 그야말로 물에 물 탄 듯한 영화다.  
‘화장’처럼 소품인 ‘봄’은 손이 불편한 조각가가 불현듯 나타난 모델로 인해 창작욕구가 재점화하는 차분하고 고운 영화. 아트하우스용이다.
한국 영화는 할리웃 쪽인 박찬욱과 봉준호 그리고 유럽파인 홍상수와 김기덕 때문에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한국 영화하면 폭력적인 스릴러 전문으로 알려지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박찬욱의 ‘올드 보이’ 때문이다.
나는 할리웃 배우들과의 인터뷰 후 그들과 함께 사진을 찍을 때마다 “아임 프롬 코리아”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럴 때마다 많은 스타들이 “아, 나 한국 영화 좋아해. ‘올드 보이’ 잘 만들었더라”고 대답한다. ‘올드 보이’가 도대체 언제적 영화인데. 도대체 한국 영화는 언제나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를 것인지 한국 영화를 볼 때마다 나오는 물음이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