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8년 1월 26일 금요일

‘적의 있는’(Hostiles)


블락커 대위는 자기가 증오하는 아메리칸 인디언들을 호송하고 대륙종단의 길을 간다.

대륙종단 여정서 겪는 모험 ‘웨스턴 무비’


웨스턴의 장인 존 포드 감독의 ‘역마차’(Stage Coach)와 ‘수색자’(The Searchers)의 분위기를 갖춘 옛날 스타일의 준수한 웨스턴으로 중심 플롯이 포드의 마지막 웨스턴으로 리처드 위드마크, 칼 말덴, 제임스 스튜어트 및 캐롤 베이커 등 올스타 캐스트의 ‘샤이엔 가을’(Cheyenne Autumn)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오스카 작품상 수상작인 강인한 웨스턴 ‘용서 받지 못한 자’(Unforgiven)의 숨결도 느껴진다.
대형화면에 파노라마치는 서부광야의 웅장한 아름다움과 심각한 내용 그리고 뛰어난 연기 등이 있는 길고 긴 대륙종단의 드라마로 사실감 가득한 폭력이 영화의 쓴 맛을 한층 북돋는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을 고향으로 호송하는 미군 기마대 장교의 얘기여서 인디언들을 다룰 땐 상투적인 점도 있으며 진행 속도가 매우 느리긴 하지만 감독(각본 겸) 스캇 쿠퍼의 야심만만한 대하 서사극이다.
1892년. 뉴멕시코 주 베린저 요새에 주둔한 조셉 블락커 대위(크리스천 베일)는 수십 년 간 아메리칸 인디언들을 토벌하면서 그들에 대한 적개심에 가득 찬 사람. 그에게 상관이 긴 세월을 부대 내 감옥에 수감돼 살면서 이제 불치의 중병에 걸린 샤이엔 인디언 추장(웨스트 스투디)과 그의 아들(애담 비치) 등 가족을 그들의 몬태나 주의 고향까지 호송하라고 지시한다.
블락커는 처음에 이를 거절하다가 군인으로서의 명예와 곧 제대하면 타게 될 연금을 생각해 마지못해 자기가 믿는 부하들과 신병(‘네 이름으로 날 불러다오’로 오스카 주연상 후보에 오른 티모데 샬라메가 어색하다)을 소집해 인디언들과 함께 북행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 긴 여정에서 살인혐의를 받고 있는 범죄자(벤 포스터)와 인디언들의 습격으로 가족을 잃어 거의 실성할 지경에 이른 여인 로잘리 퀘이드(로자먼드 파이크) 등을 만나 이들도 일행에 합류한다. 
영화는 처음에 퀘이드의 가족이 인디언들의 습격으로 살해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폭력이 매우 사실적이다. 이들이 길을 가는 도중에 여러 가지 사건과 인디언들과 또 다른 적들의 습격이 발생하는데 이런 액션과 함께 블락커와 인디언 추장 간의 증오와 적대감이 극적 긴장감을 조성한다. 그리고 블락커는 이 여정에서 서서히 인간성을 되찾으면서 백인과 인디언이 모두 같은 사람이라는 교훈마저 남긴다. 좀 상투적이나 관용을 얘기하고 있다.
베일의 연기가 눈부시다. 얼굴과 몸에 힘을 꽉 주고 시종일관 팽팽한 긴장감을 풀지 않아 보는 사람의 숨통을 조인다. 아메리칸 인디언 배우들인 스투디와 비치의 연기도 훌륭하다. 파이크도 연기는 좋지만 뜨거운 태양 아래 말을 타고 긴 여정을 하는 여자의 백색 피부가 어떻게 그렇게 타지도 않고 흰지 알다가도 모를 일. 그리고 라스트 신은 통속적인 할리웃식 결말이다. R등급. ★★★½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아메리칸 포크(American Folk)


엘리옷(왼쪽)과 조니가 차 안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66번 국도 따라 뉴욕 가며 만나는 다양한 풍경·사람


제목 그대로 미국의 민요에 바치는 헌사이자 때가 덜 묻은 미국의 뒤안길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는 로드 무비로 ‘홍하의 골짜기’ ‘섀난도’와 같은 민요와 ‘잠발라야’ 등 컨트리 송이 많이 나온다. 두 남녀 주인공으로 나온 조 퍼디와 앰버 루바드는 배우가 아니라 실제 포크송 가수들이다. 그래서 둘은 노래는 잘 부르나 연기는 어색하다. 그러나 그 점이 오히려 사실감을 살리는 가슴을 따스하게 만들어주는 소품이다. 
뉴욕의 무대에서 동료 음악인들과 함께 연주하기로 된 포크싱어 엘리옷(퍼디)과 중병을 앓는 어머니를 보기 위해 역시 뉴욕으로 가야 하는 가수 조니(루바드)는 LA발 뉴욕행 비행기에 탔다가 9/11 테러로 비행기가 회항하면서 다시 LA에 내린다. 이어 조니는 토팽가캐년에 사는 친구(크리샤 페어차일드)로부터 낡아빠진 밴을 빌려 뉴욕으로 가면서 여기에 엘리옷이 동승한다.
여기서부터 둘은 미국의 최초의 하이웨이인 66번 국도를 따라 뉴욕으로 가면서 서로에 관해 얘기를 나누고 또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난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미국의 아름다운 풍경과 다양한 인물들을 소개하면서 국토를 찬양하고 인간관계를 살펴보고 있다.
엘리옷은 다소 좌절감에 빠진 노한 사람인 반면 조니는 밝고 명랑한 사람으로 엘리옷은 여정을 통해 조니의 긍정적인 마음에 영향을 받아 굳은 마음이 눈 녹듯 한다. 밴이 원래 낡아 가다가 툭하면 과열돼 둘이 차를 세우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사람은 사막 한복판에 세워둔 차 안에서 혼자 사는 나이 먹은 남자(데이빗 화인). 또 이들이 밴에 태워준 두 명의 젊은 여자 동성애자들과의 에피소드도 관용에 관해 얘기하고 있다. 
엘리옷과 조니가 밴 안에서 또 가다가 쉬면서 기타를 치면서 부르는 노래들이 아주 좋은데 9/11 테러 직후의 얘기여서 미국인들이 이를 슬퍼하는 분위기가 화면에 배어 있다. 그러나 영화는 결코 이 사건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뉴스도 밴의 라디오를 통해 희미하게 들리고 사람들이 TV로 뉴스를 보는 장면에서도 실제 테러 장면은 보이지 않는다. 사려 깊은 조치다. 
둘이 여러 장소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얘기가 아기자기 하게 재미있는데 실제로 14개 주에서 찍은 현장감 가득한 촬영이 아름답다. 차를 타고 엘리옷과 조니가 간 길을 따라 대륙횡단을 하고 싶은 마음을 일게 한다. 데이빗 하인즈 감독.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농, #미투’


하비 와인스틴의 여성에 대한 성추행 고발로 비화된 돈과 힘과 명성이 있는 남자들의 성추행 문제가 연예계는 물론이요 정^관계와 언론계 및 사회 전반적 문제로 대두하면서 급기야 클래식 음악계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최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명예감독 제임스 르바인(74)은 과거 청소년 연주자들을 그리고 영국의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 샤를 뒤트와(81)는 여자 성악가와 연주자들을 성추행 했다는 고발이 있자 두 사람 다 자리에서 물러났다. 
요즘은 자고 일어나면 트럼프가 또 무슨 망언을 했을까와 어떤 유명인사가 성추행자로 찍혔을까를 살피는 것이 일상사가 되다시피 했다. 특히 성추행 및 폭행 문제는 그 어느 사회조직보다 남성위주인 할리웃에서 빈발하고 있다.
최근 성추행자로 거론된 영화인으로는 오스카상을 탄 배우 마이클 더글러스와 지난 골든 글로브 시상식서 TV시리즈 ‘매스터 오브 넌’으로 남자주연상을 받은 아시안 아지즈 안사리가 있다. 또 ‘디재스터 아티스트’로 역시 골든 글로브 남자주연상(뮤지컬/코미디)을 탄 제임스 프랭코도 성추행자로 거론됐다. 이 탓인지 프랭코는 지난 23일 발표된 오스카상 후보 발표 시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주연상 후보에서 탈락됐다.   
성추행이 거론될 때마다 단골로 이름이 들먹거려지는 우디 알렌도 무사하지 못하다. 과거 알렌의 아내였던 미아 패로가 입양한 딸 딜란 패로가 최근 다시 자기가 어렸을 때 알렌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하면서 많은 배우들이 다시는 알렌의 영화에 출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알렌의 ‘뉴욕의 비 오는 날’에 나온 레베카 홀과 티모데 샬라메(‘네 이름으로 날 불러다오’로 오스카 남자주연상 후보)는 이 영화 출연료를 전액 대 여성성폭력과 남녀불평등 퇴치를 위해 최근 조직된 ‘타임즈 업’(Time’s Up)에 기부하기로 했다.
그런데 여성에 대한 성추행 및 폭력을 고발하는 ‘#미투’(#MeToo)’와 ’타임즈 업‘을 통한 여성들의 피해 사례가 소셜 미디아를 통해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면서 일각에서는 이의 폐단에 대한 우려가 일고 있다.
가벼운 성희롱마저 도매금으로 성폭력과 같은 범죄행위의 테두리 안에 포함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는 논리다. 맷 데이먼도 최근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엉덩이를 토닥이는 것과 강간과 아동 성추행은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가 바가지로 야단을 맞고 “앞으론 입 조심 하겠다”며 사과를 했다. 그러나 그의 말은 맞는 것이다. 
요즘에는 분위기가 ‘#미투’나 ‘타임즈 업’에 거슬리는 말을 했다가는 반동분자로 몰리게 마련이다. ‘레이디 버드’로 오스카 감독 및 각본상 후보에 오른 그레타 거윅도 최근 알렌에 대한 성추행 고발에 관한 질문에 “깊이 생각해 봤다.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만 말하고 더듬거리다가 여론의 질책을 받았다. 이에 과거 알렌의 영화에 나온 거윅은 며칠 후 “다시는 그의 영화에 안 나오겠다”고 선언했다.
한 할리웃 관계자는 이처럼 ‘#미투’나 ‘타임즈 업’에 대해 이견이나 심지어 “노 코멘트“를 할 경우 마치 죄인 취급을 받아 그에 대한 개인의 솔직한 의견을 말 할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털어 놓았다. 잘 못 말했다가는 소셜 미디아에 의한 캥거루재판에 회부될까봐 두렵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베테런 여배우 카트린 드뇌브(74^사진)와 100여명의 연예계와 출판계 및 학계여성들이 최근 르 몽드지에 ‘#미투’와 프랑스판 ‘#미투’인 ‘너의 돼지를 폭로하라’를 비판하는 일종의 ‘농(non-아니다라는 뜻) #미투’의 글을 발표한 것도 바로 이 운동의 이런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이들은 글에서 “‘#미투’가 개인적 경험을 공개적으로 기소하고 있으며 전체주의적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도를 너머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글은 이어 “남자가 여자의 무릎에 손을 대고 키스를 하려고 하는 등 서툴게 추근댔다고 해서 자기변호의 기회도 안 주고 벌로 직장에서 물러나게 한다는 것은 희생자를 미리 정해놓은 정의의 성급한 집행”이라고 덧 붙였다. 
드뇌브 등은 또 “여자들도 같은 날 직장의 리더가 되면서 아울러 남자의 성적 대상이 되는 기쁨도 즐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글은 결론으로 여성들에게 “피해자 의식을 버리고 자유에 따르는 위험을 수용하라”면서 “여자의 육체에 영향을 주는 불상사가 반드시 자존에게도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우리의 내적 자유는 범할 수 없는 것이며 우리가 아끼는 이 자유는 위험과 책임을 동반하게 마련”이라고 매듭지었다.
섹스를 먹는 것이나 자는 것처럼 삶의 자연스런 한 조건으로 생각하는 유럽과 그 것을 아직도 청교도적 입장에서 보는 미국의 성에 대한 인식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드뇌브와 그의 동료들의 선언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녔다. 어쩌면 이런 성에 대한 서로 다른 인식이 미국에서 ‘#미투‘ 쓰나미를 일으키게 한 원인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