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018년 5월 18일 금요일

‘나 예뻐졌네’ 에이미 슈머




뚱뚱한 몸 때문에 자신이 없던 직장 여성인 르네가 머리를 다친 뒤 자기 몸이 날씬해졌다고 믿고 삶의 활력을 찾는 코미디 ‘나 예뻐졌네’(I Feel Pretty)에 나온 에이미 슈머(36)와의 인터뷰가 최근 뉴욕의 위트비 호텔에서 있었다. 
토실토실 살이 찐 슈머는 귀여운 소녀 같았는데 코미디언답게 시종일관 농담과 유머와 함께 상소리를 섞어가며 질문에 씩씩하게 대답했다. 옆눈질을 하더니 이어 눈을 치떴다 내려떴다 하면서 애교 만점의 표정으로 사근사근하게 굴어 정답고 가까운 친구처럼 느껴졌다. 슈머는 지난 2월 사귀던 애인으로 셰프인 크리스 피셔와 결혼한 새색시다.

“외모가 진정한 자신이 아니란 걸 깨달았으면”


-언제 자신이 예쁘다고 느끼는가.
“내 외모에 신경을 안 쓸 때 내가 가장 예쁘다고 느낀다. 화장 안하고 운동복 입고 편안하게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지킬 때가 가장 예쁘다고 느낀다. 몇 시간이고 거울을 안 들여다 본 것을 알 때 내가 가장 예쁘다는 말이다.”

-패션과의 관계는 어떤가.
“나의 패션은 전부 내 영화에서 함께 일한 나의 스타일리스트 리사 에반스가 알아서 돌봐준다. 내 결혼 드레스도 에반스가 마련한 것이다. 난 패션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며 쇼핑가서 드레싱 룸에서 옷 입어보는 것도 싫다. 내 몸에 딱 맞는 것들이 별로 없다. 내 몸이 마네킨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셔츠 같은 것은 포레버 21 같은 곳에서 사는데 몸에 잘 맞아 보기 좋다. 에반스와 나는 지금 우리 브랜드로 모든 사이즈에 맞는 옷을 만들고 있는데 싼 값에 팔 예정이다.”

-배우로서의 성공으로 인해 무엇이 과거와 달라졌는가.
“성공했기 때문에 그전 같았으면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날 수가 있다. 그리고 영화를 만들 때도 예전처럼 내 생각을 말하기 전에 ‘미안하지만’이라고 서두를 떼지 않고 당당하게 내 생각을 말할 수가 있다. 그리고 내 자신의 TV쇼도 제작하게 됐다. 성공은 나로 하여금 내 가치를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거울과의 관계는.
“거울을 좋아하지만 지나치게 들여다보진 않는다. 난 거울을 볼 때면 내 얼굴을 보고 웃는다.”

-어떻게 크리스가 바로 이 사람이라고 알았는가.
“내 보조자인 몰리가 크리스의 여동생이다. 몰리의 소개로 알게 됐는데 휴양지 마사스 비녀드에서 우리 가족이 휴가를 즐기고 있을 때 몰리와 크리스의 가족도 함께 있었는데 그 때 크리스가 우리를 위해 음식을 만들었다. 그 모습이 매우 귀여웠다. 우린 둘 다 가족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꾸밈이 없는 자신들을 서로에게 드러내 보여주었다. 그 뒤로 알고 지내다가 반년 쯤 지나 데이트하는 사이로 변했다. 그 전에 난 몰리에게 크리스와 데이트해도 괜찮겠냐고 물었더니 ‘예스’라고 그랬다. 자기 직업을 잃지 않으려고 그랬던 것 같다. 난 결혼을 한 번도 중요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크리스를 만나고보니 그가 정말로 친절하고 우습고 똑똑하며 또 남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그의 동반자가 되고 싶었다. 우린 살면서 험한 길을 갈지라도 함께 그 어려움을 헤쳐 나갈 것으로 믿는다.”

-결혼식은 순조로웠는가.
“사흘간 준비를 했고 매우 순탄하게 치렀다. 내가 술에 좀 취하긴 했지만.”    

-이 영화를 만든 이유가 무엇인가.
“여자들이 자신의 가능성을 100% 발휘하라고 말하고 싶었다. 우린 잘못 했다간 자신들의 가치가 모욕이라도 당할까봐 지나치게 걱정을 하고 있다. 그러다보면 사람들과 거리감이 생기게 마련이다. 내가 이 영화에서 보내고자 하는 메시지는 여자들은 외모가 진정한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라는 것이며 당신도 자신만의 음성과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니 그에 상응하는 삶을 사는 것은 각자의 책임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했다. 자신을 자신의 어머니처럼 사랑하라고 말하고 싶었다.”

르네가 비키니 경연대회에 참가해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있다.

-미모에 추한 마음을 지닌 여자와 추한 외모에 아름다운 미음을 지닌 여자 중 하나를 택하라면 어느 것을 택하겠는가.
“아름다운 마음이다. 난 진짜로 이 영화의 르네처럼 나에 대해 자존을 느끼지 못 했고 자신감도 아주 약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살면서 외모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난 이제 나이가 먹었지만 나의 가슴을 사랑하고 또 내가 누구인지도 알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최고의 기분이다.”

-르네가 자신감이 없게 된 까닭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요즘 와선 소셜 미디어나 태블릿을 열어보면 비키니를 입거나 드레스를 입은 여자들이 전부 늘씬한 미녀들뿐이다. 그들의 얼굴을 가리면 몸이 다 똑같이 생겼다. 그러니 이들과 다른 몸을 가진 여자들이라면 자기 몸에 대해 회의를 하기가 십상이다. 그러나 이런 것은 변화해야 된다. 다양성이야 말로 중요하다. 소셜 미디어가 판을 치는 요즘 세상에 10대 여자 아이들이 성장하기가 얼마나 힘들 것인지 생각하면 끔찍하다.” 

-결혼하고 나서 언제 처음으로 ‘남편’이라는 말을 했는가.
“결혼한 날 밤인데 난 너무 많이 그 말을 썼다. 나 뿐 아니라 내 남편도 ‘아내’라는 말을 과용하면서 둘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신나게 즐겼다.”

-남을 웃게 하는 코미디언은 타고난 것인가 또는 수련해서 터득한 것인가.
“둘 다다. 천성이 우스울 수는 있지만 모든 다른 것들처럼 코미디언이 된다는 것은 엄청난 작업을 필요로 한다. 음악가들이 그냥 악기를 들었다고 해서 대뜸 명연주를 하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꾸준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천성이 우습지 않아도 코미디언이 될 수는 있지만 거기에는 한계가 있다.”

-당신은 강력한 총기 규제를 찬성하는 사람으로 코미디 공연 시 이를 주제로 농담을 하는데 청중의 반응은 어떤가. .
“남발하는 총기 폭력을 보고 입을 다물 수가 없다. 물론 그래서 내 쇼에 총기 애호가들은 안 와 표가 덜 팔리긴 하지만 그 사람들이 밖에 나오는 것보다는 집에 있는 것이 훨씬 낫다. 내가 쇼에서 총기 반대를 농으로 삼고 있는 것이 어느 정도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니 계속 말을 할 것이다. 그러나 총기 반대의 진짜 지도자들은 젊은 세대들이다. 그들은 지금 우리 세대의 생각을 바꾸고 있으며 우리는 그들로부터 배우고 있다. 플로리다 주 파크랜드의 학생들이 주도해 전국적으로 확산된 총기 반대 운동이 그 좋은 예다.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다” 

-코미디로 인기가 있고 유명한 당신은 심각한 드라마나 또는 비극을 해볼 의향은 없는지.
“비록 이런 코미디라도 드라마적 요소는 갖추고 있다. 난 드라마와 코미디의 양쪽 성질을 두루 갖춘 영화를 만들기를 좋아한다. 본격적으로 진지한 영화를 만들 생각은 있지만 오래 동안 슬픔에 잠겨 있는 역은 하고 싶지 않다. 그 것은 내게 있어 육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이롭지가 못하다고 생각한다.”

-셰프인 남편을 둔 지금도 음식을 직접 만드는가.
“솔직히 말해 음식도 안 만들고 설거지도 안 한다. 남편이 음식 만드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이다. 남편은 채소 요리에 관해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줬다. 그런데 남편은 채소를 너무 좋아하는 반면 난 별로다.”

-자기에 대해 자신이 없어하는 사람에게 어떤 충고를 해주겠는가.
“우선 자신의 기분이 최고조이었을 때를 생각하라고 이르겠다. 그리고 감사하는 것에 대해 리스트를 작성하라고 조언하겠다. ‘나는 좋은 딸인가’ ‘나는 좋은 어머니인가’ 또는 ‘나는 좋은 친구인가’라는 질문을 본인에게 하면서 자신의 무엇이 자랑스러운지를 생각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 영화도 그런 것들을 얘기하고 있다.”

-결혼하기 전의 데이트에 대해 말해보라.
“난 과거 몇 명의 애인을 두었고 또 그들과 동거했다. 그러나 그 누구와도 결혼할 마음은 없었다. 그 중의 어떤 사람은 나와의 미래를 얘기한 적도 있지만 난 그것을 피해 갔다. 그러나 난 내 과거 애인들과 친구처럼 지낸다. 그들은 내 결혼식에도 왔다.”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데드풀 2(Deadpool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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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풀이 적이 타고 달리는 차에 올라 재주를 부리고 있다.

액션·유머·살육전 범벅의‘불사신’수퍼 히어로 영화


액션과 유머와 피비린내 나는 살육을 과다하게 뒤섞어 느긋느긋한 맛이 나는 이 수퍼 히어로 풍자영화는 2016년에 나와 비평가들의 호평과 함께 흥행서도 크게 성공한 ‘데드풀’의 속편이다. 
불사신 데드풀의 역을 맡은 라이언 레널즈(각본 겸)는 이런 액션영화로선 보기 드물게 전편으로 골든 글로브 주연상(코미디/뮤지컬 부문) 후보에까지 올랐었다.
따라서 속편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데 신선감이 있다기보다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다시 겪는 기시감만 가득하다. 액션과 상소리와 자기 비하적인 농담도 그렇고 ‘세이 애니씽’을 비롯해 닥치는 대로 여러 영화들을 모방하고 풍자해 마치 전편의 남은 찌꺼기를 보는 느낌이다. 
특히 이번에는 마블만화의 산물인 데드풀이 역시 마블만화의 주인공들인 X-멘의 인물들과 결합해 길길이 날뛰면서 총과 칼 등 온갖 흉기와 육체를 동원해 쏘고 찌르고 자르고 치고 박고 때리면서 난리법석을 떨어대 피바다 액션 소화불량에 걸릴 지경이다. 
액션과 농담이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는 바람에 보는 사람 지치고 지루하게 만드는 조미료를 과다하게 친 짬뽕과도 같은 영화. 오프닝 크레딧 장면에서부터 데드풀이 치르는 액션이 요란한데 007 시리즈를 흉내 내고 있다. 이런 식으로 이 영화는 창의성이 있다기보다 남의 것을 베껴 먹은 모조품이다. 
데드풀은 이제 사랑하는 여인 바네사(모레나 바카린)와 함께 아기 낳고 평화롭게 살아보려고 둘이서 뜨거운 정사를 벌이는 순간 데드풀에게 원한이 있는 자들이 보낸 야쿠자와 갱스터 그리고 러시안 살인자들이 들이닥친다. 데드풀과 이들 간에 피비린내가 나는 대규모 살육전이 벌어지는데 목과 팔 다리가 절단되면서 아수라장을 이룬다. 그리고 바네사가 살해되면서 데드풀은 자기도 죽기를 바라지만 그는 불사신이어서 죽지도 못한다. 그가 할 일은 복수뿐.
이어 장소는 X-멘의 돌연변이들이 교육을 받는 학교로 옮겨진다. 교장은 역시 찰스 사비에르. 그리고 데드풀은 X-멘을 조롱하는 농담을 늘어놓는다. 데드풀의 도착에 이어 이 학교에 나타난 자가 미래에서 시간을 타고 건너 온 기계 팔을 가진 케이블(조쉬 브롤린). 그는 이 학교에서 자라 앞으로 자기 아내와 딸을 죽일 화염을 내뿜는 능력을 지닌 14세난 러셀(줄리안 데니슨)을 사전에 처치하기 위해 온 것. 이런 플롯도 ‘터미네이터’를 연상시킨다. 
데드풀은 러셀을 구하기 위해 나머지 돌연변이 학생들을 규합해 케이블과 대결하면서 또 한바탕 액션이 콩 튀듯 한다. 데드풀의 또 다른 동지들로는 초능력을 지닌 도미노(제이지 비츠)와 타이태니엄 피부를 지닌 막강한 러시안 콜로서스가 있다. 
데드풀은 액션 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관객을 향해 별의 별 농담을 해대는데 도로 상의 대규모 차량충돌 장면에서는 “이것은 다 특수효과”라고 가르쳐 주는가 하면 자기가 전편으로 골든 글로브 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니까 이번에는 아카데미가 자기를 주시하게 될 것이라고 자기선전까지 하고 있다. 어림도 없는 소리! 연기라곤 말 할 것 없는 영화이지만 그런 중에 비츠가 신선한 감을 준다. 제3편이 나올 것이 분명하다. 데이빗 리치 감독. R. Fox.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북 클럽(Book Club)


북 클럽 친구들. 왼쪽부터 다이앤, 비비안, 샤론 그리고 캐롤.

제인 폰다, 다이앤 키튼 등 화려한 캐스팅... 유한 할머니들의 섹스 코미디


시니어 시티즌 할머니들도 얼마든지 섹스를 즐길 수 있다면서 베테런 여우들(이들과 관계된 남자 배우들도 역시 베테런 스타들)이 찧고 까부는 섹스 코미디로 철딱서니 없는 진부한 영화지만 잘 차려 입고 마음껏 화장을 한 기라성 같은 스타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저 웃고 즐길 만은 하다. 
유한 할머니들이 변태적이요 얄궂은 섹스 소설을 읽으면서 안에 잠복해 있던 성적 욕망이 분출, 새로 로맨스를 발굴한다는 얘기인데 영화라기보다 시트콤 같다. 오스카상을 탄 배우들이 어쩌다 이런 영화에 나왔는지는 모르겠으나 연기나 대사나 내용이 다 판에 박은 것 같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영화. 나이 먹은 여자들의 영화다. 
LA에 사는 유한 할머니들인 베벌리힐스의 호텔주인 비비안(제인 폰다)과 막 이혼한 주부 다이앤(다이앤 키튼) 그리고 20년 전 남편 탐(에드 베이글리 주니어)과 이혼한 뒤로 남자를 멀리해온 판사 샤론(캔디스 버겐) 및 유일하게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식당 경영인 캐롤(메리 스틴버젠)은 친구로 북 클럽 회원. 
비비안은 남자와의 오랜 관계를 마다하고 두려워하는 여자요, 다이앤은 애리조나에 사는 두 딸로부터 이사를 해 함께 살자고 시달림을 받고 있고, 샤론은 전 남편이 새파랗게 젊은 여자와 결혼한다는 소식에 대경실색을 한다. 그리고 캐롤은 비록 자기를 사랑하는 건실한 남편 브루스(크레이그 T. 넬슨)와 잘 살고 있지만 화끈한 정열이 그리워 안달이 났다. 
이런 넷이 비비안이 고른 섹스소설 ‘50 셰이드 오브 그레이’(50 Shades of Grey)를 읽는 중에 잠잠하던 여성 섹스 호르몬이 요동을 하면서 새로 남자도 만나고 남편과의 관계에도 다시 불길이 당겨진다는 케케묵은 소리.
비비안은 자기 호텔에 묵는 학창시절의 옛 애인 아서(단 잔슨)를 오랫만에 만나 옛 사랑이 재점화 되고, 다이앤은 딸들을 보러가는 비행기를 탔다가 옆자리에 앉은 잘 생긴 남자 미첼(앤디 가르시아-나중에 알고 보니 조종사)과의 얄궂은 접촉으로 그와 사귀게 되고, 샤론은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를 통해 조지(리처드 드라이퍼스)를 만나 데이트 당일에 카섹스를 즐긴다(그러나 노골적인 섹스신은 기대하지 마시라). 그리고 캐롤은 아내가 도대체 결혼생활에 있어 뭐가 불만인지를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 브루스를 각성시킨다. 해피 엔딩.
기라성 같은 여배우들이 허약한 유머를 남발하면서 하는 연기가 보기에 민망스러운데 이들은 마치 패션쇼를 하듯이 화려한 옷을 자주 갈아입는다. 세트도 화려한데 외관이 내용보다 낫다. 빌 홀더만 감독. PG-13. Paramount.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수호자들(The Guardians)


프랑신(왼쪽)과 오르탕스가 밭에 씨를 뿌리고 있다.

농촌 돌보는 여인들 강인한 모습
거룩하고 아름답고 심오하게 담다


마치 밀레의 그림 ‘만종’이 현실로 살아난 것처럼 거룩하고 엄숙하며 아름답고 심오한 프랑스 영화로 내용과 연기와 촬영과 음악과 연출이 모두 완벽한 농촌영화다. 농촌영화요 전쟁영화이자 여성영화이며 전장에 나간 남자들 대신에 농촌을 돌보는 여인들의 강인한 모습을 그린 땀냄새가 물씬 풍기는 극기와 인내의 영화이다.
고전영화의 분위기를 지닌 영화는 얘기를 직선적이요 단순하게 이끌어가지만 안으로 감정이 가득히 고인 심금을 울리는 작품으로 절절히 속으로 끓어오르는 감정은 결정적인 순간에 가서 분출이 된다. 철저하게 절제된 작품인데 와이드 스크린에 펼쳐지는 화면 구성이 완벽한 농촌풍경이 한 폭의 살아 숨 쉬는 그림이다. 
1차 대전 중인 1915년부터 종전에 이르기 까지 몇 년에 걸친 얘기. 파리디에 농가의 남자들은 모두 전장에 나가 이 집의 미망인 주부인 중년의 오르탕스(나탈리 바이)가 농사를 관리한다. 두 아들을 전장에 보낸 오르탕스와 인근에 사는 일가친척들은 똘똘 뭉쳐 산다. 
오르탕스를 돕는 것이 남편을 전선에 보낸 딸 솔랑지(로라 스멧).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손이 모자라 오르탕스는 젊고 아름답고 원기 왕성한 프랑신(이리스 브리)을 임시직 일꾼으로 고용한다.  
프랑신은 고아 출신으로 조용하지만 속은 알찬 여자로 밝고 맑고 근면하고 일을 잘 해(그리고 노래도 잘 부른다) 오르탕스는 그를 풀타임 일꾼으로 고용하고 거의 양녀처럼 여긴다. 영화는 이들 여자들이 밭에 나가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추수하고 타작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자세하게 보여주는데 흙냄새가 날 정도로 사실적이다.
어느 날 오르탕스의 잘 생긴 둘째 아들 조르지(시릴 데쿠르)가 휴가를 맞아 귀가해 프랑신을 보고 마음을 주는데 프랑신도 마찬가지. 그런데 오르탕스는 자기 아들이 천민 고아 프랑신을 좋아하는 것을 강하게 반대한다. 그러나 다시 전장에 나간 조르지와 프랑신은 편지를 나누면서 서로 깊은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오르탕스는 프랑신을 해고, 프랑신은 짐을 싸들고 남편이 전장에 나간 뒤 혼자 어린 딸을 키우는 여자의 집에 일꾼으로 들어간다. 전쟁과 온갖 간난을 견디고 자유를 쟁취한 여인의 이야기이기도 한데 라스트 신이 이 강인한 여인을 치하하고 위로하고 있다. 
신인인 프랑신 역의 브리의 민감한 연기가 돋보인다. 그러나 영화에서 깊은 감명을 느끼게 하는 것은 베테런 바이의 연기다. 거의 무표정한 얼굴로 희로애락의 감정을 섬세하면서도 든든하게 보여준다. 거의 무서울 정도로 차분한 연기다. 
또 하나 훌륭한 것은 베테런 영화음악 작곡가 미셸 르그랑(‘쉘부르의 우산’)의 음악. 곱고 우아하고 서정적인 멜로디가 농촌 풍경과 작품의 내용을 절묘하게 뒷받침 해주고 있다. 감독(공동 각본 겸)은 사비에르 보봐로 옛날 스타일의 대가적인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Music Box. ★★★★★ (5개 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야수(Beast)


미녀 몰과 야수 파스칼(오른쪽)은 주위의 눈길을 무시하고 사랑에 함몰된다.

정열적 사랑과 연쇄살인 둘러싼 스릴러


애매하고 함축성 있는 제목을 가진 이 영화는 끝까지 우리의 기대를 뒤집어 엎어놓는 분위기 스산한 범죄 심리 스릴러요 정열이 뒤끓는 러브 스토리이자 공포영화에 가까운 살인 미스터리요 일종의 우화다. 내용이 프랑스 우화 소설 ‘미녀와 야수’를 생각나게 하는데 영화는 이 글과 달리 매우 어둡다. 
감정과 정열을 눌린 채 사는 어두운 과거를 지닌 여자와 역시 어두운 과거를 지닌 정체불명의 야성적 남자간의 활활 타들어가는 사랑과 이들 간에 벌어지는 고양이와 쥐의 심리적 게임을 강렬한 연기와 함께 계속해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기민한 연출 수법으로 다룬 영국 드라마다. 욕망과 위험 그리고 순수와 죄의식이 음험하게 뒤엉킨 쓴맛 나는 드라마다.
그림 같은 작은 섬 저지에 사는 20대 후반의 빨강머리 몰(제시 버클리)은 엄격한 어머니 힐라리(제랄딘 제임스)와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 여동생과 오빠는 다 결혼했지만 몰은 가혹할 정도로 지배적인 어머니의 지시를 받으며 감정의 문을 닫아 걸은 채 질식할 것 같은 삶을 살고 있다. 
몰은 집에서 열린 자기 생일 파티에서도 한 쪽에 밀려 있다가 갑자기 파티 장소를 떠나 바에 들러 술에 취해 미친 듯이 춤을 춘다. 그리고 이튿날 새벽 거의 홈리스 차림의 사냥꾼 남자 파스칼(자니 플린)을 만나면서 둘은 서로에게 강하게 이끌린다. 비록 파스칼은 허름한 차림이나 야성적 매력을 지닌 미남. 둘은 서서히 가까워지는데 몰은 짓눌렸던 정열이 용솟음치면서 파스칼을 불타듯이 사랑하게 된다. 
한편 마을에서 소녀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나면서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로 전과가 있는 파스칼을 지목한다. 그러나 소녀 시절 폭력적인 사건을 저질렀던 몰은 파스칼을 절대적으로 믿고 그를 옹호하려고 경찰에 허위 진술까지 한다. 몰과 파스칼은 같은 종류인 셈이다. 
영화는 과연 누가 야수요 짐승인가를 명확히 밝히질 않으면서 우리의 궁금증을 부추기고 있다. 애완동물과 같은 버클리와 야생동물 같은 플린이 서로 애증에 가까운 감정의 줄다리기를 하며 정열적이면서도 통렬한 로맨스 불꽃을 태운다. 기막힌 콤비를 이룬다. 그리고 섬의 아름다운 풍경에 상반되는 내용과 주인공들의 어두운 내면을 잘 대비시킨 촬영도 매우 좋다. 마이클 피어스의 감독(각본 겸) 데뷔작으로 장인의 솜씨다. Roadside Attractions. ★★★½(5개만점)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



피양냉면


내 어머니와 아버지는 모두 이북사람들이다. 어머니는 북한의 국제공항이 있는 평양시 순안구역의 순안 태생이고 아버지는 함경북도 길주가 고향이다. 내 몸 안에 이렇게 금단의 땅 이북의 피가 흐르고 있어서인지 난 분단조국의 남북이 만나는 소식을 들을 때면 눈물을 흘리곤 한다. 이번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나 다정히 서로의 손을 잡는 모습을 보면서도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두 사람이 만찬에서 평양의 유명 냉면집 옥류관에서 면을 가져와 만든 평양냉면을 먹는 모습을 보면서 돌아가신 내 어머니의 피안도(평안도)사투리가 생각났다. 어머니는 생전에 “피양냉면이 남쪽의 냉면보다 훨씬 더 맛이 좋디”라며 이북의 맛을 그리워했었다.   
나도 이 피양냉면을 옥류관에서 먹어본 적이 있다. 1991년 9월 재미경제인연합회의 북한방문단을 따라 열흘간 북한에 머물렀을 때였다. 그런데 남한과 LA의 온갖 양념을 친 냉면 맛에 익숙해서였던지 난 밍밍하고 심심한 것이 특징인 피양냉면을 먹으면서 입안의 모든 감관을 사용해 열심히 맛을 찾았지만 실패하고 말았었다. 공연히 어머니에게 미안하다는 마음까지 들었던 기억이 난다.       
요즘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동료회원들은 나를 보면 “너희 나라의 남북정상이 만난 것을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묻곤 한다. 난 좋은 일이고 그렇게 서로 자꾸 만나야한다“면서도 ”그러나 남북이 그렇게 쉽사리 통일 되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고 대답하곤 한다.
이를 듣던 독일 동료 한스는 “나도 내 생전에 동독과 서독이 통일될 줄은 몰랐으나 된 것처럼 너의 나라도 어느 날 갑자기 통일 될 수도 있을 것”이라며 날 격려했다. 그러자 또 다른 독일 동료 카렌이 “통일이 되면 우리나라가 그랬듯이 남한이 북한에 엄청나게 돈을 쏟아 부어야할 것”이라고 한 마디 보탰다.   
내가 북한에 갔을 때 우리를 안내한 지도원 동무를 비롯해 북녘사람들에게 자주 물었던 것이 “조국통일이 언제 되리라고 생각하느냐”는 것. 그들은 조국통일을 후렴처럼 외우고들 있었는데 질문에 대한 답은 한결같이 “조국광복 50년째인 1995년 까지는 통일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 ‘통일의 해’로부터 23년이 지났는데도 우린 지금까지 분단의 아픔 속에 살고 있다.
방북 후 쓴 기사를 다시 읽으니 북한에서 보고 듣고 겪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방북단 중의 많은 사람들이 이산가족이었다. 나도 6.25 때 아버지가 인민군에 의해 납치된 이산가족이다. 방문단 중 일부는 북의 고향에 있는 일가친척을 만나는 기쁨에 들떠 있었는데 난 아버지의 생사여부라도 알려고 북한당국에 내 사정을 적어 제출했으나 ‘알 수 없다’는 통보만 받았었다. 가슴에 묵중한 통증을 느꼈었다.
북한 체류 중 평양의 고려호텔에 머물면서 만수대예술단과 평양교예단(서커스)의 공연도 보고 조선예술영화촬영소도 둘러보고 이어 명사십리와 금강산과 해금강 구경에 이어 외자가 투입된 합영회사도 방문했었다. 거리에서 만나 얘기를 나눈 동포들이 참 소박하고 순진하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비록 남한사람들 보다는 못 살지만 모두 자존심이 세다는 것도 깨달았었다.
영화기사를 쓰는 나로서 인상이 깊었던 곳이 1947년에 세운 조선예술영화촬영소. LA의 유니버설이나 폭스의 스튜디오와 같은 곳으로 세트가 매우 정교하고 실물 크기였다. 당시는 영화광 김정일이 통치하던 때여서 안내원은 그가 “영화를 통해 인민을 교양 시킨다”며 김정일을 찬양했었다. 내가 안내원에게 북한에서 활동하다 탈출한 신상옥과 최은희에 관해 물었더니 그는 “신필름 예술영화촬영소까지 세워줬는데 배은망덕한 것들이지. 우리가 언젠가 단죄할 것”이라며 화를 벌컥 내던 모습에 겁마저 났던 기억이 난다.
북한 방문 중 가장 깊은 감동을 받은 곳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금강산이었다. 김정일이 “참으로 금강산은 조선의 기상입니다”라고 찬양한 금강산은 장엄하고 섬세하고 유려한 산 중의 산이었다. 아버지의 엄숙한 기상과 어머니의 포근한 가슴을 겸비한 절대였다. 한 가지 유감은 거대한 절편과도 같은 바위마다 김주석 부자를 찬양한 글을 파 빨간 페인트로 칠한 것. 북에선 찾아보기 힘든 공해였다.
해금강에 갔다가 6.25 때 월북해 인민배우가 된 한국영화 초창기의 여류스타 문예봉(무성영화 ‘임자 없는 나룻배’)의 딸 림종숙씨(당시 42세)를 만났다.(사진) 림씨는 그 때 평양중앙방송위 대외방송국 편집국기자여서 우린 깡통맥주로 건배하며 “조국통일을 위해 언론인들이 힘쓰자”고 다짐했었다. 북한 땅을 떠나는 날 ‘언제 다시 오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졌었다. 중학교 때 우리에게 음악을 가르쳐주신 안병원 선생님이 작곡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몇 번쯤 더 불러야 통일이 올까.
                                                              <한국일보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1230@gmail.com>